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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삶이 없다면 일이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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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삶이 없다면 일이 무슨 소용일까?

익명 (미확인) | 월, 2016/01/11- 15:10

희망제작소는 2016년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시민 관점의 정책제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 설문조사를 위한 것입니다. 설문결과는 전문가토론을 거쳐 ‘2016 정책제안 보고서’에 반영됩니다.

[기획연재] 좋은 일, 공정한 노동⑥ 삶이 없다면 일이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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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회사 제품은 하나도 사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빠를 빼앗아갔으니까요.”
LG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일한 경험을 ‘한국인은 미쳤다!’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 씨가 재직 당시 아들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 말을 듣고서야 법인장을 지낸 2년 동안 휴가는 5일뿐이었고 토요일마다 출근했으며 일요일에도 격주로 일했다는 점을 돌아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 깨달음은 그가 엘지전자를 그만두고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기로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자녀가 이런 말을 해봐야 “커서 아빠하고 결혼할래요” 수준의 철없는 소리 취급만 당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직장은 ‘균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균형이 없으면 지속성도 없다. 중심 잃은 자전거는 넘어지고 만다. 대표적인 경우가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 임신 및 출산, 육아, 자녀 교육(초등학생)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기혼여성은 2014년 기준 197만7,000 명으로 54세 이하 기혼여성 중 20.7%를 차지한다.

이 두드러진 현상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은 여성들의 문제로 여겨지곤 한다. 심하게는 임금이 충분치 않거나 복지가 덜 갖춰진 직장에 다니는, 그러니까 ‘덜 노력했던’ 여성들의 문제로 치부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한국 남자들’에게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이런 인식들은 모두 ‘균형’이 상실된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지 않고, 개인 책임으로 돌릴 뿐이다.

‘일과 삶의 균형’, 일부 여성의 문제일까?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셋은 30대 후반의 비슷한 나이로, 1996~1997년 대학에 입학해 IMF 경제위기 여파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수차례 이직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전문성을 찾아가고 있다. 자녀 한 명씩을 두고 있으며 주양육자라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이 중 한 명은 남성이다. 어찌 보면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보다 정규직이 많을 때 취업했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왔고, 아르바이트나 학자금 대출에 극도로 시달리지는 않을 만큼 부모의 지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로써 돌아보고 싶은 것은, ‘일과 삶의 균형’ 문제로 위기를 맞고, 좌절을 겪는 것은 정말 ‘덜 노력한, 여건이 안 좋은 일부 여성’만의 일인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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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인터뷰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뉴스킨 코리아’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이 기업의 시니어 스페셜리스트 이명은(39)씨가 첫 번째 주인공이다.
뉴스킨 코리아는 화장품‧건강보조식품 등을 판매하는 네트워크마케팅 기업 뉴스킨의 한국법인다. 이곳은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유명하다. 언론사 등에서 이 부문 1위로 선정된 일도 여러 차례다. 기업의 기본 가치부터가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할 정도다. 과연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만 먼저 이명은씨가 여기서 일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IMF 위기 직후라 ‘어디라도 불러주는 데 취업하자’는 생각으로 입사지원을 했었어요. 의류회사였던 첫 직장을 1년여 다닌 뒤에야 비로소 ‘뭘 하면 재미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 때 찾아낸 곳이 이벤트 회사였다. 전시, 컨벤션, 제품 홍보 행사, 모터쇼 등을 대행하는 곳이었는데 4년간 다니며 확실히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더 일할 수는 없었다. ‘골병 들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바쁠 때는 2박3일 연속 일하며 사우나에만 잠깐 다녀오는 게 일상이었다. 친구 결혼식도 갈 수 없었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쥐어짜듯 일한 끝에 행사를 치러내면 짜릿함도 있었지만 “이렇게 10~20년은 다닐 수 없는 직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음 직장은 식품 분야 대기업이었는데, 이곳에서 4년 일하면서도 분명 “재미있었다”고 했다. 고객관계마케팅(CRM) 분야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업무에 따른 성과가 선명한 점도 동기부여가 됐다. 근무강도는 역시 심각했다.
“임원들이 9시30분에 회의를 하면 전날 매출 반영한 자료를 8시30분까지 만들어 당당 임원한테 브리핑 해야 하기 때문에 7시40분까지 출근했어요. 그런 날도 저녁 7시에 일어나면 ‘벌써 가?’ 하는 소리를 들었고요. 하루 12시간 근무가 당연한 환경이었어요.”

이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반년 남짓 쉬었다. 사회생활 시작한지 10여 년 만의 첫 휴식이었다. 근무강도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이씨는 “어느 정도까지는 연차에 따라, 노력하는 만큼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사내정치가 작용했고 묘하게 여성은 배제됐다”면서 “더 열심히 해서 돌파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퇴직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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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 1위’ 꼽히는 이유

사표를 냈을 때는 막연했지만 쉬는 동안 결혼을 하게 되면서 다음 직장에 대한 기준이 생겼다.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직장을 계속 다니려면 어떤 기업이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했어요. 가구 하나 사면서도 100개를 넘게 보는데, 아이 낳아 키우는 문제에 대해서 그보다는 더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죠.”
짧게나마 경력단절이 됐던 셈이지만 다행히 CRM 경력을 인정받아 재취업에 성공했다. CEO부터가 여성인, 여성친화적 기업문화가 있는 패션기업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뒤 개인적 사정으로 한 번 더 옮긴 곳이 현재의 뉴스킨 코리아다.

어떤 근무환경이기에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로 꼽히는지 궁금했는데, 의외로 제도적인 측면이 별다르지는 않았다. 정당한 이유 없이는 야근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특히 매주 수요일은 ‘패밀리 데이’로 회식도 하지 않도록 정해놓은 정도다.

이씨는 “그보다는 기업문화에서 차이가 크다”고 했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화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이전 직장에서는 상사가 욕하며 보고서를 던지고, 수화기를 집어던지는 일이 흔했지만 이 기업만 경험한 후배들은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 아니냐”며 믿지 않는다고 한다.
제품을 파는 기업이니 매출이 안 중요할 리 없지만, 개인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압박하지는 않는다. “서두르지 말고 함께 방법을 고민해 보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편이다. 위계보다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내부경쟁이 심하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승진에서 밀리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 반해, 이곳 문화에서는 ‘자리’가 중요하지 않은 편이라고. “팀장보다 나이 많은 매니저도 있고, 그보다 어린 임원도 있지만, 각자 자기 전문성 가지고 일하면 된다는 문화예요.”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직원들, 특히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에게 ‘여기서라면 계속 일할 수 있겠다’는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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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거쳐 초원에 도착한 것 같은 이명은씨 상황에 비해, 이송아(39)씨의 고민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사회생활 초기 몇 차례 이직을 한 뒤 대형 자산운용사에서 10년간 근무했던 그는 현재는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중소 규모 자산운용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직장 선배들 어떻게 사는지 보고 취업해야”

“저도 처음 취업할 때는 뭘 하고 싶은지 몰랐어요. 운 좋게 자산운용분야에 들어가서 큰 매력을 느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고, 여성이 적은 분야다보니 어떻게든 살아남고 인정받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경제‧경영을 전공하지 않은 약점을 보완하려고 주말에는 대학원도 다녔고요. 야근, 회식, 대학원 수업으로 주 7일이 꽉 찼었죠.”

그렇게 ‘일과 삶이 일치된’ 삶을 살다가 결혼을 하고나서야 “일과 삶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하고, 태어날 아이의 육아 문제를 고민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저는 이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지금도 ‘전문성을 갖기까지 적어도 10년은 남들보다 치열하게 일하고 헌신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겠어요. 저 스스로가 ‘다른 데는 몰라도 이 업계는 이렇게 일해야 살아남는다’고 동의하고 살아왔으니까요.”
그렇게 ‘올인’ 했지만 출산과 육아만큼은 남의 몫으로 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일 못지않게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출산이 나쁜 일도 아닌데, 우리나라 같은 저출산 국가에서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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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빠지면 다른 팀원들이 고스란히 그 부담을 져야 하는 구조 탓에 언감생심 육아휴직은 못 쓰고, 출산휴가 3개월만 채운 뒤 업무에 복귀했다. 친정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아무래도 이전처럼 일할 수는 없었다. 조부모의 손길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했고, 부모님도 점점 건강이 약해지셨기 때문이다. 아이를 데리고, 혹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할 때도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데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딱 1년만, 약간의 여유만 줘도 이 고비를 넘기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결국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여유를 좀 줄 테니 다시 생각하라”고 붙잡는 이는 없었다.

이후, 업계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기회가 닿아 단축근무를 경험했다. 바라마지않던 것이었지만 막상 경험하니 “이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거죠. 여성만이 아니라 그 남편이 다니는 기업까지, 사회 전반적으로요. 직장생활은 이 직원의 삶에서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거예요. 더 넓게는 다양성과 선택권,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하는 거죠.”

단기간에 사회가 바뀔 수 없다면, 사회생활을 앞둔 사람들에게라도 꼭 말해주고 싶다고.
“은퇴할 때까지 삶의 100%를 일로 채울 게 아니라면, 업계를 잘 보고 들어가야 해요. 10년 이상 일하다가 다른 업계로 간다는 건 우리 환경에서 지극히 어려운 일이니까요. 업계 선배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는지를 살펴본다면 앞으로 자신의 삶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거예요.”
또 “직업을 탐색하는 시기부터 노동시간은 얼마나 긴지, 휴가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지, 개인에 대한 배려는 어느 정도인지 따지는 게 자연스러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래야 기업들도 원하는 인재를 얻기 위해서라도 기업 문화를 바꿔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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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아빠들, 뭘 잃고 사는지도 몰라”

서울 중구 스페이스노아에서 만난 이현종(39) 노무사는 육아를 위해 ‘경력단절’을 경험한 남성이다. 전문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직장단절’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긴 하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를 놓고 “왜 여성만 경력이 단절돼야 하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해당 가정 내에서 내린 합리적 판단의 결과다. 부부 중에서 대체로 남성이 더 안정적이고 급여가 높은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 연결된 많은 사회구조적 불합리성을 논외로 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택한 합리성이라는 뜻이다.

이씨의 가정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둘 다 대기업 직원이었지만 아내보다 이씨의 급여가 높았다. 그렇지만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낸 시점에서 다른 양육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굳이 찾으려면 다른 방법도 있기는 했을 것이다. 보통은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다. 그렇지만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이전 경력을 살리는 재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남성이라고 재취업이 쉬운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그가 그만두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좀 만만하게 생각했어요. 아이를 안정되게 키우면서 여유 시간에 공부도 할 수 있으니까 1석 2조 아니냐고요. 그렇지만 역시 육아는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제 어머니가 도움을 주셨는데도 적응하기까지 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아이를 키우며 양육자가 얻는 대가도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아빠를 믿고 푹 잠드는 아이를 볼 때, 같이 산책하고 놀면서,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얻는 행복감과 안도감 말이다.
“돈 잘 벌고 잘 나가는 친구들은 아이가 다 크도록 제대로 함께 놀아보지도 못 하거든요. 삶에서 뭘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거죠. 저는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드물게 아이와 교감해 본 아빠잖아요. 당장 돈 못 벌어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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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만일 남성의 육아 전담 기회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정책적으로 장려하면 우리 사회에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육아를 제대로 해본 남자들이 늘어나면 사회적으로 천천히 학습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남녀 차별, 성역할 갈등, 권위적이고 경쟁이 과도한 직장 문화 등도 달라져 갈 것이라는 의견이다.

노무사로서 이씨는 최근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노동시간을 주당 60시간까지 가능하도록 명기했다는 점에서 기업주들이 합법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리도록 물꼬를 터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보육지원정책은 표류하고 있는 실태를 놓고 “시간도 안 주고 돈도 안 주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부부 중에 한 명은 경력이 단절됐고, 나머지 한 명은 회사에서 쥐어 짜이는데도 그 원인을 사회에서 찾지 않고 서로 애를 더 봐주네, 안 봐주네 싸우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그보다는 지금 노동법이 어떻게 개정되는 건지 보육 정책, 출산장려 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은 남녀의 동등한 문제

국제노동기구(ILO)는 1981년에 이미 ‘가족부양 책임 있는 남녀 근로자 기회 균등 협약’(156조)을 통해서 ‘일과 삶의 균형’은 남녀의 동등한 문제라고 천명했다. 폐기된 기존의 123호가 ‘가족책임이 있는 여성의 고용에 관한 권고’라는 이름이었던 것과 분명히 구분된다.

남성에게 유급 부모휴가를 준 최초의 국가인 스웨덴은 한 자녀 당 최장 480일의 부모휴가를 주는데, 주목할 부분은 이 중 60일은 한쪽 배우자가 다른 쪽에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한쪽이 최소 60일을 써야 480일을 다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제도 덕분에 2012년 기준으로 스웨덴은 자녀를 둔 남성의 90%가 부모휴가를 사용하고, 부모휴가 일수의 전체의 24%를 남성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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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아씨의 말대로 우리는 저출산 국가에 살면서 왜 아이를 낳는 문제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이명은씨의 말대로 우리는 가구 하나를 살 때는 100개를 살펴보면서 직업을, 직장을 택할 때는 왜 ‘삶을 영위하면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인지’ 따져보지 않는 걸까? 왜 삶의 여러 가지 행복을 포기해야 했던 직장인들이 그런 구조와 문화가 유지되는 데 계속 기여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 오르지 않는 임금, 개인의 여건을 존중해 주지 않는 기업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미 극에 달해 있다. 더는 감내하기 힘든 정도로 삶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해결책은 단순하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아니, 잘 살기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바로잡으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도 없다’, ‘놀 거 다 놀고 글로벌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느냐’는 비판은 나온다. 이에 대해 이현종씨가 인터뷰 중에 냈던 의견을 전하면 이렇다.
“기업가들이 존경하는 고(故) 정주영 회장님의 말를 인용하고 싶네요. ‘해봤어?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라고 말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좋은 일’의 기준을 찾기 위해 연재 시리즈와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고용안정, 노동시간, 임금, 노동조합,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 등의 주제를 다뤘고 앞으로도 존중 등 측면을 더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기준을 세우면, 위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청소년‧청년들이 직업을 탐색하는 시기부터 “그 업계는, 그 기업은 좋은 일의 기준에 맞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고, 기업들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도저히 달라질 것 같지 않던 사회가, 그런 식으로 바뀌어 가면 전혀 다른 사회가 될지도. 해보지 않았으니까, 이제 한 번 해볼 만한 일이다.

글_황세원(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_이우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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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정부는 진심 어린 사과,

책임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년 11월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집회현장에서 쓰러진 지 317일만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모두 목격했으며 알고 있는 것처럼 경찰 방호벽 앞에 서 있던 그는 일흔에 가까운 노인이었고 맨손뿐이었습니다. 그가 공권력을 향해 외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쌀 한 가마(80kg) 21만 원 보장을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고인을 향해 정조준하여 살수차를 발사하였고, 그가 쓰러진 뒤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멀리 서울까지 올라와 도로에서 외친 것은 대단한 특권과 이익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농민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난데없는 요구가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선거를 앞두고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농업은 농민들의 생업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쌀값 보장 공약이 등장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공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쌀값 보장을 위한 노력은 진척되지 않았고 오히려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과 쌀값 폭락이 이어졌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맨손으로 경찰 방호벽 앞에 나서서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정부와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유족들이 애끓는 심정으로 해를 넘기며 병상을 지켰지만 이제까지 진정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집회 시위의 과정의 진압 장비 사용과 공권력 행사는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경찰은 이를 준수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무고한 피해자가 또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공권력을 남용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백남기 농민이 거리에 나서서 절박하게 외치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절멸의 위기로 내몰린 우리 농업의 현실이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 번 정부가 유족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염원하던 대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현실을 향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9월 26일

한살림연합

 

월, 2016/09/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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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1/17(화) 국회정론관, 주최 손잡고-적폐특위]  노동자 죽이는 적폐 중의 적폐 ‘손배가압류’, 국회가 해결하자!   2017년 새해에도 광장은 변화를 바라는 시민으로 가득하다. 한겨울 한파 속에서도 매주 촛불을 […]
화, 2017/01/1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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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당협 서울시당 대의원 후보 김운호


<약력>

2005년도 민주노동당 강동갑 장애인위원회 위원장 역임

2007년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 역임

2009년도 사회복지 강동협의체 장애인분과 위원으로 활동

2004년도부터 2010년도까지 강동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역임

현재 포이에마 자립센터 소장으로 활동 중

<출마의 변>


노동조합과 지역사회가 배출하고, 진보정당이 키운 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선거에 출마한 김운호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노동당 서울시당 당원동지들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당활동을 못하다가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활동하려 합니다


마침 당원분들께서 저를 좋게 봐 주시고 저에게 선거에 출마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능력을 아는 바 망설였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그리고 추천해 주신 당원 여러분들게 보답하고자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대의원이 돼어서 지역에서에 당원조직하는 것과 당원들의 의견들을 서울시 대의원대회에 정확히 전달하려 합니다 당원분들의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공약>

1. 지역 장애인 활동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 평등한 당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3.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이 배제되지 않는 당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화, 2017/02/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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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희망제작소, 중국의 르핑재단, 일본의 니폰재단이 함께 모여 한중일 삼국 및 아시아 지역의 사회혁신을 증진하기 위해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를 결성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워크숍을 통해 만난 팬 리 중국 르핑재단 수석자문으로부터 이 협의체의 의미와 배경,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았습니다. 한글 번역문과 영어 원문을 함께 싣습니다.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s, 이하 EASII)의 시작

아시아에서 사회혁신이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식품안전이 최대 이슈인 베이징 인근에서는 소비자-농민 주축의 에코 벤처농업이 뜨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통근자들을 위해 빅테이터를 대폭 활용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는 위탁가정에서 자라는 10대 청소년의 복지를 위해 최초로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s) 워크숍에서는 바로 이런 사회혁신의 성과들이 소개되었다.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는 이렇듯 한중일 삼국 및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사회혁신을 소개하고 증진시키기 위해 결성되었다. 사회혁신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사회적기업가와 비영리조직, 사회투자자들과 같이 사회를 바꾸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여러 단위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중국의 르핑재단, 일본의 니폰재단, 그리고 한국의 희망제작소가 함께 뜻을 같이 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주요 경제주체인 중국, 일본, 한국은 삼국은 환경 오염, 고령화사회와 같이 공통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다. 한중일 삼국은 각기 새로운 혁신 프로젝트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사회문제들을 해결해왔지만, 동아시아를 관통하는 사회적 욕구, 문화, 환경에 적합한 긍정적인 사회 변화에 대한 개념과 연구, 그리고 이론은 부족한 상태이다. 동아시아의 사회혁신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서로의 아이디어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융합과정을 통해 각 분야와 지역을 포괄하는 통합적 파급력(Collective Impact: 특정 사회문제의 이해관계자가 모두 모여 문제의 총체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동아시아사회혁신협의체(EASII)가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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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II 은 2015년 7월 도쿄에서 첫 시작을 알렸다. 2차 워크숍은 11월 5일 서울에서 2015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Global Social Economy Forum)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한중일 삼국 사회혁신의 최근 동향과 사례를 공유하고 공통적으로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소개된 각 나라의 엄청난 창의성과 눈에 띄는 결단력은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사회혁신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었다. 동시에 우리가 분명히 느낀 바는,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조직에 의해서 이끌어진 사회혁신이라 할 지라도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오롯이 홀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섹터의 사회혁신가들이 만나고, 서로 영감을 얻고,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정부-시민섹터 협업이라든지 비영리조직의 연대의 영역을 넘어서는 체계적인 접근과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EASII는 연구와 네트워크 단위로서 동아시아의 사회혁신 섹터 협업을 이끌고, 새로운 생각과 모델에 기초한 사회투자 해결책을 모색하고, 동아시아의 필요와 환경과 문화에 기여하는 사회혁신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스탠포드 사회혁신센터(The Stanford Center for Social Innovation)는 사회혁신을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사회혁신은 고정된 하나의 이념이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그 의의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세워진 르핑사회적기업가재단은 EASII와 함께 함으로써 중국과 동아시아에 더 큰 임팩트를 만들고, 더 많은 사회혁신가와 솔루션메이커들과 함께 하기를 열망한다.

글_팬 리 (수석자문위원, 르핑사회적기업가재단 / 글로벌링크이니셔티브 공동창립자)

Korea + Japan+China + Social Innovation = Infinite Possibilities
—The Launch of 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EASII)

Social Innovation is an emerging field that takes many different forms, from a consumer-farmer supported eco-agriculture venture in a suburb area of Beijing where food safety is the biggest concern, to the use of big data by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to bring more convenience to millions of commuters, to the first social impact bond initiative in Japan to help teenagers in foster care have a better life. These are a few of the examples discussed at the 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 (EASII) workshop held in Seoul in November 2015.

The East Asia Social Innovation Initiative is a collaborative venture aimed at creating and supporting a robust social innovation movement in China, Japan, Korea and elsewhere. Launched by the 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 (China), the Nippon Foundation (Japan) and the Hope Institute (Korea), the initiative aims to play a critical role in raising awareness about social innovation and promoting an environment that helps social enterprises, nonprofit organizations, impact investors and other change agencies achieve greater impact.

As the three major economies of East Asia, China, Japan and Korea face many of the same urgent social challenges, ranging from an aging society to pollution, and each has its own unique innovative projects and ideas on how to resolve them. The region lacks a shared base of concepts, research and theories of positive social change that can fit the needs, culture and environment of the three countries. To take social innovation in East Asia to the next level requires active exchanges of ideas and values as well as integration and collective impact that crosses sectors and the region. Here, EASII can play a pioneering role.

The inaugural EASII workshop was held in July in Tokyo 2015; a second workshop convened in Seoul in November 2015 in partnership with The 2015 Global Social Economy Forum. Participants shared the latest trends and practices in social innovation in the three countries as well as the challenges they face. We were inspired and encouraged by the creativity and determination evident in the case studies from the three countries. At the same time, it became clear that isolated efforts led by even the best and brightest organizations cannot solve the complex social problems that exist today. We need to create a market for social innovation where cross-sector players meet, get inspired and work together. This will require systematic approaches and a new type of leadership that goes beyond “government-social sector collaboration” or “nonprofit alliances”. With this goal in mind, EASII will serve as an accountable research body and network hub by working closely with leading cross-sector organizations active in social innovation in East Asia and globally to develop new concepts, benchmarks and solutions to challenges for social investment and social innovation that will serve the needs, culture and environment of East Asian countries.

The Stanford Center for Social Innovation defines social innovation as a novel solution to a social problem that is more effective, efficient, sustainable, or just than present solutions. Social innovation is a continuing process rather than an ideology. As a foundation established with the mission of leveraging social capital to help the poor, 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 is committed to making a bigger impact in China as well as East Asia, and is eager for more innovators and solution makers to join EASII.

Fan Li (Senior Advisor, LePing Social Entrepreneur Foundation; Co-founder, Global Links Initiative)

화, 2015/12/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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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2018년 3월, 희망제작소는 평창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산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새 터전에서 희망제작소는 ‘모든 시민이 연구자인 시대’를 실현하려 합니다. 생활 현장을 실험실로 만들고, 그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이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수송동과 평창동에서 희망제작소는 여러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시민을 만났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우리 사회의 어떤 요구에서 탄생했을까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글은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 밀레니얼세대(millenials)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을 겪어 평균 소득이 낮으며 대학 학자금 부담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출처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기획연재] 마이 밀레니얼 다이어리 : ① 내 고향은 ‘식민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차를 타고 50여 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시내’라고 불리는 곳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곳에는 작은 규모나마 병원과 슈퍼, 음식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길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불편은 당연한 것?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추적 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에 가는 날에 아버지는 다른 일정을 일절 잡지 않았다. 이동에만 왕복 다섯 시간, 대기와 진료시간까지 합치면 일곱 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호자 역할로 아버지 따라 병원에 가는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자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됐지만,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 살필 겨를 없이 병원만 찍고 집에 돌아가기 바빴다. 우리 부녀의 하루는 돌아볼 여유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잽싸게 지나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도시로 ‘유학’을 가게 됐다. 고향에는 4년제는 물론 2, 3년제 대학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라는 것을 하게 됐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보다 생활비가 배로 들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지만 ‘유학’ 온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았다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은 친구가 아프면서부터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병원에서 이상 징후 소견을 들은 친구는 그다음 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했고 한 주 뒤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후에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애인과 데이트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고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하면서 아버지와 서울 병원을 오갔을 때가 떠올랐다. 미묘한 이질감과 박탈감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니 병원뿐만이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본 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겠다고 서울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공연 관람비는 2만 원이었지만 왕복 교통비는 4만 원에 달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하지만 서울에서는 왕복 2천 원이면 공연장과 집을 오갈 수 있다 했다. 내 고향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는 4년제만 해도 60여 개에 달한다.
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은 당연한 게 아니었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것들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 의료, 문화, 일자리 등 내 삶의 궤적과 직결된 모든 것이 대도시, 특히 서울에 집중돼 있었다. 그렇다보니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내 생활은 철저히 대도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 식민지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식민지의 삶은 ‘여전히’ 유효

지금 내 일터는 서울에 있다. 생활터전 역시 서울이다. 부모님은 대도시에서 일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시지만, 화려한 싱글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1인 가구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언제라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서도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이제는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쓰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왕복 3천 원의 교통비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그대로 겪고 있을 것이다. 주체와 대상만 바뀔 뿐 현상은 그대로다. 근본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식민지의 삶은 유효하다.
그간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역대 정권의 빠지지 않는 공약과 과제였다. 하지만 성과는 늘 미약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헌법 개정안에 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친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몇 년이 되었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라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도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지방분권, 즉 분산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런 설명 없이도 잘 알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지역 간 격차가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

민선 5기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분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지방정부이다보니, 현안에 따라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속초, 고성, 양양 등지에서만 가능하던 때에, 속초시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고 해외에 ‘속초’라는 지역을 널리 알렸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이라는 자산을 근처 남부시장과 엮어 전통시장 살리기에 성공했다. 모두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장 많은 것을 바꾸거나 격차를 한순간에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중앙에 몰려있는 것들을 분산하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 출발이 지방분권이 되길 바란다. 이번에는 부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내 고향이 더는 식민지라는 단어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나는 농어촌에서 나고 자란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은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 간 격차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며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한국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지요.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이래, 지역 문제에 꾸준히 천착해 왔습니다. 지역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고 국가의 중심이며, 지역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역과 중앙의 균등한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자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 대표 활동
– 목민관클럽 : 지방자치 혁신을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입니다. 정기포럼과 소식지 발간 등으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 협치 아카데미 : 지역의 정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주민과 행정이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치 아카데미와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했습니다. (사례 보기)
– 지방분권 매니페스토 운동 :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을 위한 7대 과제 실천서약(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쳤습니다. 약 120여 명의 여야 후보가 서명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 주민참여예산교육 :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의무화되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주민이 더욱 쉽게 제도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매해 각 지역 특성에 맞춘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례 보기)
– 지역리더교육 : 통·반장, 자치위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을 지원했습니다.
– 목민관학교 :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 출마 희망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아카데미입니다. 2008년부터 총 7기에 걸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약 170여 명의 역량 있는 지역사회리더를 발굴, 양성하였습니다. (사례 보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설정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현실에 기초하여 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 글 : 최은영 | 커뮤니케이션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8/01/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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