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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시리아 난민 100명 이상 강제 송환한 것은 충격적인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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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시리아 난민 100명 이상 강제 송환한 것은 충격적인 퇴보

익명 (미확인) | 월, 2016/01/11- 12:25
© REUTERS/Yannis Behrakis

© REUTERS/Yannis Behrakis

 

레바논 정부가 8일 시리아 난민 100명 이상을 본국에 강제 송환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국제앰네스티가 밝혔다. 송환되지 않은 난민 약 150명은 여전히 레바논 베이루트의 라픽 하리리 국제공항에서 발이 묶인 채로 수 시간 내에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해 있다. 레바논 정부는 뒤이어 도착하는 현지 시간 오후 9시 30분 항공편으로 이들을 돌려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터키로 향하기 위해 시리아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베이루트에 도착한 난민들로, 1월 7일 베이루트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터키 정부의 난민 입국 제한 정책이 8일부터 시행되면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비자 규정도 변경되었고, 이에 앞서 터키항공 항공편 2대가 취소됨에 따라 난민들의 발이 묶이게 되었다.

“100명이 넘는 난민들을 강제로 시리아에 돌려보낸다면 레바논 정부는 충격적일 수준의 퇴보를 저지르는 것이며 이들 난민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는 시리아의 유혈사태와 박해를 피해 온 모든 난민을 보호해야 할 레바논의 국제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말도 안 되는 행위”
– 셰리프 엘세이드-알리(Sherif Elsayed-Ali) 국제앰네스티 난민이주민권리국장

셰리프 엘세이드-알리(Sherif Elsayed-Ali) 국제앰네스티 난민이주민권리국장은 “100명이 넘는 난민들을 강제로 시리아에 돌려보낸다면 레바논 정부는 충격적일 수준의 퇴보를 저지르는 것이며 이들 난민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는 시리아의 유혈사태와 박해를 피해 온 모든 난민을 보호해야 할 레바논의 국제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말도 안 되는 행위”라며 “터키 정부가 새롭게 시행한 이번 비자 규제로 시리아의 분쟁으로부터 벗어날 안식처를 절실히 찾고 있는 시리아인들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 되는 한편 이러한 제한이 난민들에게 초래할 수 있는 엄청난 결과를 목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어전문 보기

Lebanon: Forcible return of more than 100 refugees to Syria a shocking setback

More than 100 Syrian refugees have been forcibly returned to Syria by the Lebanese authorities today, Amnesty International has learned. Around 150 others are still stranded at Beirut’s Rafic Hariri International Airport and are at risk of imminent deportation in the coming hours. The authorities are reportedly planning to force them to leave on the next flight at 9:30pm local time.

The refugees had arrived in Beirut on flights from Syria with the intention of travelling on to Turkey. They were due to depart on 7 January but were unable to leave as two Turkish Airlines flights were cancelled ahead of new visa regulations for Syrian refugees imposed by the Turkish authorities that came into force today restricting access to the country.

“By forcibly returning more than 100 refugees to Syria the Lebanese government has stooped to a shocking new low and is putting these people in mortal danger. This is an outrageous breach of Lebanon’s international obligations to protect all refugees fleeing bloodshed and persecution in Syria. The Lebanese government must halt all further deportations of Syrian refugees immediately,” said Sherif Elsayed-Ali, Head of Refugee and Migrants’ Rights at Amnesty International.

“The new visa regulations in Turkey present yet another hurdle for Syrians desperate to seek sanctuary from the conflict and show what devastating consequences such restrictions can have for refugees.”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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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7년 전인 2011년 3월15일은 '아랍의 봄’ 을 맞아 시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날이다. 시리아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으로 기록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국가가 됐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참극을 끝장내지 못하고,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는 더 늘어났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회에 걸쳐 시리아 전쟁의 실상과 문제점을 다룬다. 편집자 주

 

UN조차 집계 포기한 21세기 참극 시리아 전쟁 7년 

시리아 전쟁 발발 7년 연속 기고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구시가지 ⓒ유네세프한국위원회

 

21세기 접어들어 생겨난 최악의 인도적 재난이라 일컬어지는 시리아 유혈충돌이 3월15일로 7년째 접어들었다. 2대에 걸친 독재체제, 즉 하페즈 알 아사드(1970~2000)→바샤르 알사드(2000~현재)에 걸쳐 45년 동안 시리아에서 철권을 휘둘러온 아사드 일족의 권력 의지는 완강하다. 반군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적인 지도력이 없고 지친 상태이다. 전쟁 초기에 다마스쿠스로 진격해 들어갈 기세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이즈음의 흐름을 보면, 자칫 시리아 독재정권의 군사적 승리로 전쟁이 끝날 판이다.  

 

돌이켜 보면, 역사의 격랑은 처음엔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시리아에서도 맞아떨어진다. 튀니지에서 동쪽으로 이웃 리비아, 이집트를 거쳐 시리아로 '아랍의 봄' 바람이 다가올 무렵인 2011년 2월16일, 시리아 남부에 위치한 고대도시 다라에서 14살 소년들이 학교 담벼락에다 "의사 선생님, 이번에는 당신 차례야"라고 적었다. 여기서 '의사 선생님'은 영국에서 안과 의사 교육을 받은 뒤 2000년 아버지 독재자 하페즈 알 아사드의 뒤를 이어 집권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가리킨다.  

 

문제는 시리아 비밀경찰 조직인 무카바라트 요원들이 그곳 소년들을 잡아가 배후를 밝힌다면 고문으로 가혹행위를 했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가뜩이나 아랍의 봄바람에 술렁대던 민심이 요동쳤다. 급기야 3월15일 수도 다마스쿠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아사드 정권의 강경 대응과 그에 맞선 무장저항은 오늘까지 7년째 유혈 분쟁으로 이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강제징집 당한 젊은이들은 4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젊음을 송두리째 잃었다. 그들은 스스로 '잃어버린 세대'라고 일컬었다. 지난 7년 동안 시리아 사람들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 걸쳐 삶을 망쳤다.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비록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누리진 못했지만 최소한의 평화로운 삶을 누렸다. 지금 시리아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이란 아득한 옛날 얘기처럼 기억조차 흐려진 모습이다.  

 

사망자 50만명? UN조차 집계 포기 

 

지난 7년 동안 시리아에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과 재산을 잃었다. 한 마디로 '21세기 초 지구촌이 맞닥뜨린 최대의 재앙'이라 할 만큼 많은 사람이 피와 눈물을 흘렸다. 시리아 현주소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인지는 통계 분야를 보면 금세 드러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아온 것으로 추정될 뿐 전쟁 희생자의 정확한 통계조차 잡기가 어렵다. 국제사회의 중심인 국제연합(UN)조차도 2015년부터는 시리아 전쟁 희생자 집계를 포기한 상태이다. 

 

UN은 전쟁 3년째인 2014년 봄 전쟁 희생자 규모를 25만 명으로 잡았었다. 하지만 그 뒤 이슬람국가(IS)가 세력을 떨치며 시리아-이라크에 걸쳐 점령지역을 넓혀가면서 내전이 더욱 격화되고 중동 전역이 혼란에 빠지자, 통계 작업을 멈추었다. UN 시리아 특사 스테판 데 미스투라는 전쟁 5년째인 2016년 봄 희생자 숫자를 40만 명쯤으로 잡았었다. 그러면서 40만이란 숫자는 UN 공식통계가 아닌 개인적 추정일 뿐이라 했다. 

 

희생자 집계를 UN이 포기한 상황에서 그나마 참고할 자료가 있긴 하다. 영국 버밍햄에 있는 '시리아 인권 관측소'(The 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 SOHR)의 집계 자료이다. 2000년 시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온 라미 압둘 라흐만(47)은 200명쯤의 시리아 현지의 활동가들로부터 얻는 실시간 정보를 바탕으로 피해 상황을 혼자서 집계해왔다. 이에 따르면 사망자가 50만 명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전쟁 연구자들이 널리 합의하는 전쟁 개념의 양적 기준은 '1년 동안 쌍방 사망자 1000 명'이다. 시리아는 이 기준선을 분쟁 발생 첫해인 2011년에 이미 넘어섰고 2012년에서 2018년에 이르는 7년 동안 해마다 사망자가 1000명을 훨씬 웃도는 '전쟁 중인 국가'가 됐다. 정확한 숫자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해마다 5만 명에서 7만 명의 희생자가 시리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분쟁 관련 통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분석 자료 Uppsala Conflict Data Program에 따르면, 21세기 들어와 해마다 1년 동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숫자는 4만 명을 넘기진 않았었다. 하지만 시리아 전쟁의 영향으로 2014년부터 1년 동안 전쟁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시리아 한 군데에서 전쟁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생겨나는 셈이다.  

 

시리아는 취재기자의 무덤 

 

시리아는 취재 기자를 포함한 언론인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기자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 이하 CPJ) 자료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시리아에서는 1279명의 언론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 가운데 821명이 누군가가 언론인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리아 독재정권이 비판적인 언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아예 목숨을 끊으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질러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CPJ에 따르면, 2011년 내전이 터진 뒤로 시리아 내전 취재 과정에서 죽은 언론인은 최소한 116명에 이른다. 시리아의 혼란 상황을 떠올리면, 물론 일부 언론인들의 죽음이 이 집계에서 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내전이 터진 뒤로는 오히려 독재정권의 보복에 따른 언론인 살해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겠으나, 116명이란 희생자 숫자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다. 

 

필자는 내전이 터지기 전인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 시리아 현지 취재를 다녀왔다. 시리아 분쟁 1년이 되던 해인 2012년 그곳으로 취재를 떠났었다. 1980년 광주에서의 민중 항쟁과 군사 압제를 기억하는 한국의 민주 시민들에겐 시리아의 상황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 민중 항쟁을 직접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한국에 생생히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권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이란, 레바논 등을 다녀온 기록으로 미뤄 단순한 '관광' 목적의 방문이 아니라는 것이 입국 거부 이유였다. 

 

시리아의 참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즈음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의 반군 장악지역인 동구타(Eastern Ghouta)는 시리아 정부군, 그리고 이들과 합동군사작전을 펴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있는 중이다. 2월 19,20일엔 단 이틀 사이에 공습과 로켓 공격으로 250명이 죽었다. 이들 희생자 가운데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지난 3개월 사이에 이 지역에서만 적어도 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병원과 학교도 포격을 받았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상 써서는 안 될 염소가스 성분의 화학무기로 동구타 지역의 참상을 키웠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이 문제를 조사하기로 했지만, 현장 접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제사회는 시리아 정부를 비난만 할뿐 제대로 된 조치나 제재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팔레스타인을 웃도는 난민 위기 

 

전쟁은 난민을 낳는다. 시리아 난민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시리아내전 7년을 맞아 3월9일 발표한 <시리아 분쟁 7년> 문서에 따르면, 국경을 넘은 난민은 560만 명에 이른다. 시리아 내전의 심각성은 시리아가 세계 최대의 난민을 배출한 국가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시리아 인구는 1800만 명. 시리아 국민 3명 가운데 1명이 피란 보따리를 싸고 국경을 넘은 셈이다.  

 

시리아에서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의 난민은 팔레스타인 난민이었다. UNHCR이 해마다 세계난민의 상황을 집계해 발표하는 <글로벌 동향보고서>(Global Trends Report, 2017년 6월)에서 시리아 난민이 팔레스타인 난민 숫자를 넘어선 것은 2015년부터였다. 이 보고서는 세계 난민 숫자를 2130만 명(2015년말 기준)으로 발표하면서 △시리아 난민 550만 명 △팔레스타인 난민 520만 명이라 했다. 지난 1년 사이에 시리아 난민이 10만 명 더 늘어난 셈이다.  

 

시리아를 떠난 난민들이 안전한 정착지를 찾아 헤매며 겪는 고난은 말로 다하기 힘들다. 지난 2015년 터키 해변에서 발견된 3살배기 쿠르디의 시신은 시리아 전쟁의 비극성을 새삼 일깨운 바 있다. 허술한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빠져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나 자주 우리 귀에 들려온다.

 

국경을 넘은 전통적 의미의 난민(refugee)들과 구별되는 국내 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이하 IDPs)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시리아 IDPs 숫자는 610만 명으로, 전 세계 IDPs 4080만 명 가운데 가장 많다. IDPs는 국경을 넘은 난민들의 고난 못지않은, 아니 국제구호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해 더 어려운 상황에서 날마다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 

 

UNHCR의 <시리아 분쟁 7년>에 따르면, 전쟁이 터지기 전보다 식료품 가격이 8배나 올랐다. 이 때문에 시리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10명 가운데 7명꼴로 극빈층이나 다름없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긴급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국제 구호기관의 손길이 닿기 쉽지 않다. 반군 지역의 경우 시리아 정부가 의도적으로 접근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5일 다마스쿠스 동쪽 반군장악 지역인 동구타에 국제 구호차량이 생필품을 싣고 들어간 것은 독재자 아사드가 드물게 보여준 '인도적 결단'이다.  

 

전쟁으로 문 닫은 학교들 

 

전쟁은 어린이들에게 더 무시무시한 괴물로 다가온다. 아이들은 7년 전쟁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빼앗겼다. UNICEF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가운데 학교에 다녀야 할 연령층 170만 명 가운데 43%가 아예 학교 공부를 하지 못한다. 시리아 국내에 남은 어린이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리아 학교 3개 가운데 1개가 포격으로 파괴된 상태이다. 건물이 멀쩡히 남아있더라도 정상 수업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 학교 문이 열려 있다 하더라도, 가족이 생존의 벼랑에 내몰려 무엇이든 일을 해 생계를 도와야하기에 공부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전쟁이 끝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엄청난 시간과 복구비용이 들 것이다. 시리아 전쟁 4년째를 맞던 2015년 3월, 비영리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시리아 아이들의 교육 중단을 걱정하면서 <전쟁의 비용>(The Cost of War)이란 이름의 보고서를 냈다. 이에 따르면, 전쟁으로 무너지거나 파괴된 학교 시설을 복구하려면 30억 달러가 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으니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은 말할 나위 없다.

 

7년째 이어진 전쟁으로 시리아는 문명국가의 모습을 잃었다. 많은 시설물이 파괴되었기에 시리아가 석기시대로 되돌아갔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겠지만, 국제사회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2011년 '아랍의 봄' 바람을 타고 벌어진 유혈 갈등 속에 죽음을 일상적으로 목격해온 시리아 시민들은 지금의 고통스런 극한상황인 '아랍의 겨울'에서 벗어나기만 바라고 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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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3/1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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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8 아시아생각] ① UN조차 집계 포기한 21세기 참극 시리아 전쟁 7년 

 

7년 전인 2011년 3월15일은 '아랍의 봄’ 을 맞아 시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날이다. 시리아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으로 기록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국가가 됐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참극을 끝장내지 못하고,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는 더 늘어났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회에 걸쳐 시리아 전쟁의 실상과 문제점을 다룬다. 편집자 주

 

 

'정의의 무력감' 안긴 시리아 전쟁 어떻게 끝장낼까

[아시아생각] 시리아 전쟁발발 연속기고 ②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구시가지 ⓒ유네세프한국위원회

 

3월 15일로 7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전쟁의 문제는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내전이라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어느 한 쪽이 힘이 빠지면 짧은 기간 안에 그치기 마련이다. 시리아 전쟁에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지닌 여러 외부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7년이나 시리아의 참극이 이어져 온 데엔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린 외부 세력들의 개입 탓이 크다. 결국은 비판의 화살은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시리아에 개입한 강대국과 주변국들로 향한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은 2016년 유엔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안토니오 구테헤스의 후임자이다. 그는 UNHCR에서 3월 9일에 낸 문건 <시리아 분쟁 7년> 앞머리에서 시리아 시민들이 그동안 겪은 고난을 가리켜 국제사회의 '부끄러운 실패(shameful failure)'탓이라고 못 박았다.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가 굳건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엄청난 비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그란디 고등판무관이 지적했듯이, 군사적 수단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면 패자와 희생자만 있을 뿐 승자는 없다. 어느 쪽에선가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일 뿐이다. 누가 이기든 희생자는 분명하다. 분쟁에 휘말려 생목숨을 잃은 시민들, 그리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채로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시민들이다.  

 

시리아 내전? 전쟁? 분쟁? 

 

여기서 짧게 용어 선택의 문제를 짚어보자. 흔히 시리아에서 지난 7년 동안 벌어져 온 유혈 충돌을 '시리아 내전'이라 부른다. 내전은 한 국가 안에서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무장세력들이 벌이는 유혈사태를 뜻한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의 군대와 그에 맞선 반군 사이의 전쟁은 내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시리아에서 무장활동을 벌이는 세력은 정부군과 반군뿐 아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헤즈볼라 민병대), 터키 등 중동지역에 이해관계를 지닌 세력들이 저마다 군사작전을 펴는 중이다. 따라서 '시리아 내전'이란 용어보다는 '시리아 분쟁' 또는 '시리아 전쟁'이란 용어가 더 정확해 보인다. 

 

전쟁을 오래 끈 4가지 이유 

 

시리아 전쟁이 7년을 넘도록 이어진 까닭은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로, 아사드 독재정권의 물리적 바탕인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군사적 균형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군사력의 강약으로 결판이 난다. 그런데 시리아에선 여러 해에 걸쳐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이 팽팽히 맞서왔다. 탱크나 전투기 등 고급 군사 장비 면에선 정부군이 압도적이지만, 국제 여론을 등에 업고 민주화를 피로써 이루겠다는 전투 의지의 측면에선 반군이 우세했다. 

 

시리아 인구 1800만 명(2017년 추정) 가운데 △수니파 무슬림은 74%로 시리아 사람 4명 가운데 3명은 수니 무슬림이다. 나머지는 △시아파 무슬림 13%(시리아 독재자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기독교 10%, △드루즈 3% 등이다. 시아파의 한 분파로 독재자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 사람들은 세속적인 성향을 보이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 시아파나 수니파 모두 시리아 전쟁이 종파 간의 전쟁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리아 정부는 정부대로 반란을 진압하고 테러 위협으로부터 사회질서와 안정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며, 반란군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 싸울 뿐이라 주장한다. 독재자 아사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테러분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겠다고 강조한다. 시리아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결코 그의 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아사드 체제를 지지하는 시리아 시민들 가운데는 수니파도 소수지만 섞여 있다. 이들은 체제 안정이 민주화보다는 우선하는 가치라 여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약 4년 동안은 그런대로 힘의 균형 상태에 있었다. 반군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힘을 하나로 모아 다마스쿠스로 진격하지 못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민중의 강력한 저항으로 사기가 떨어져 반군을 압도할 수가 없었다. 정부군 가운데에서도 아사드 독재에 환멸을 느낀 병사와 장교들이 탈영해 반군에 가담하는 일들도 잦았다. 아사드 정권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화학무기를 사용해온 데엔 체제 붕괴의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리아 전쟁 초기에 서구의 여러 중동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아사드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 예측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드 정권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너졌던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는 달랐다. 군 주요 지휘관들은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출신들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아사드는 집권 바트당과 함께 자본가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몇몇 족벌에게 특혜를 주어왔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양극화가 생겨났지만, 그 수혜자인 대기업가들과 고위 종교인사들로 구성된 기득권층은 아사드 체제에 충성을 바쳐왔다.  

 

이런 내부 결속과 러시아 등 외세의 지원을 바탕으로 아사드는 2016년 말 시리아 제2도시이자, 북부지역의 산업·금융 중심지인 알레포를 반군으로부터 되찾았고, 그 뒤로도 정부군의 우세가 뚜렷이 보인다. 2018년 봄 다마스쿠스 동쪽 교외지역인 동구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즈음 아사드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곧 시리아의 안정과 평화를 이룰 것이다"라며 큰소릴 치고 있다.  

 

미국의 IS 공격, 아사드에게 반사이익 

 

둘째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아울러 독재자 아사드의 군대가 수세 국면에서 공세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데엔) 강대국들의 이해 타산적인 개입 정책 탓도 크다. 여기서 강대국이란 미국과 러시아를 가리킨다.  

 

아사드 체제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슬람국가(IS) 세력이다. 2014년 6월 시리아북부 락까를 수도로 한 '이슬람국가(IS)'를 선포하면서 기세를 올리자, 수도 다마스쿠스도 위협받은 상황이 됐다. 바로 여기서 미국이 무력 개입하고 나섰다. 2014년 9월부터 공습이 이루어졌고, 해병대를 주축으로 20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투입했다. 쿠르드 민병대와 손을 잡은 미군이 공격 목표로 겨냥한 것은 시리아 독재정권의 군대가 아니라 IS였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미국이 IS를 공격한다면 누구에게 이로울까. 먼저 이스라엘이다. 미국의 중동정책 핵심은 첫째는 중동석유의 안정적 확보, 둘째는 이스라엘 안보로 요약된다. 중동석유를 위해서라면 사우디 독재정권과도 친구가 되며,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서라면 중동지역의 반미정서가 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왔다. 허약한 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강성 이슬람 극단세력인 I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다면, 이스라엘에겐 안보 위협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스라엘로선 약한 독재자가 강한 극단세력보다 만만하다. 

 

미국이 IS 공격으로 이스라엘 안보를 챙겨주는 상황에서 반사 이익을 얻는 쪽은 아사드 독재체제이다. 아사드는 2014년 9월부터 벌어진 미군의 공습이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IS는 여러 시리아 반군조직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하고 전투적인 투쟁성을 지녔기에 시리아 정부군조차 두려움을 품었다고 알려진다.  

 

아사드에게 고마운 친구는 또 있다. 미군의 시리아 공습 꼭 1년 뒤인 2015년 9월엔 러시아군이 IS공습으로 시리아에 군사 개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오로지 IS를 공습하는 미군과는 달리 짬짬이 반군의 근거지들을 공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시리아-러시아의 우호 관계는 옛소련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군의 무기체계는 미그 전투기와 미사일을 비롯해 옛소련제로 채워져 왔다. 지금 러시아가 옛소련 이외의 지역에 유일하게 해군기지를 두고 있는 곳이 지중해변의 시리아 타르쿠스 항구라는 점은 두 나라의 밀접도를 잘 보여준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투기 등을 수입하고, 러시아는 시리아의 인프라 확장공사, 천연가스처리공장 등에 연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서로의 이해관계를 이어왔다.  

 

지역 패권 노린 사우디-이란의 대리전 

 

셋째,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저마다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개입한 것도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한 요인이다. 중동 지역 패권을 노린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proxy war) 양상은 전쟁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아사드 독재정권엔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헌법상 대통령보다 높은 최고 지도자인 이란은 같은 시아파의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가 권력자로 있는 시리아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왔다. 9.11 테러 뒤 이란 동쪽 아프가니스탄, 이란 서쪽 이라크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이란은 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인 '초승달 벨트'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을 덜어내려 한다. 

 

하지만 많은 이란 사람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음을 느끼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독재 팔레비 왕조를 몰아냈다는 정치적 자긍심을 지닌 이란 시민들의 시각에선 시리아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정부의 대외정책에 박수를 치기 어렵다. 결국 이란-시리아 동맹관계는 시아-수니를 가르는 종교적 신념보다 지정학적 국가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정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넷째, 끝으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국제사회의 무능한 대응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릴 때 내세웠던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이하 R2P) 논리는 시리아엔 적용되지 않았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달라 시리아 평화를 위한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일시적 휴전을 이뤄내고 그 틈에 긴급 구호활동을 펴는 것이 고작이다. 화학무기로 시리아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UN 안보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 문서들은 시리아에서 휴지처럼 구겨졌다.  

 

정치적 해법으로 전쟁 끝내야 

 

기득권 체제의 충성과 외세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아사드 체제는 초반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2016년 무렵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의 균형은 깨졌고, 미국과 사우디 등 지원세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력이 없는 반군은 이제는 수세 국면이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리아 전쟁은 자칫 정부군의 승리로 끝날 조짐마저 보인다. 

 

'극적인 반전'이란 군사적 해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이다. 늦었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제라도 정치적 해법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장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대로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적 해법으로 전쟁을 끝내도록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리아에 개입한 주요국들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탓에, 아사드에게 퇴로를 열어주거나 퇴진을 압박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한계로 꼽힌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미국의 이른바 중동 전문가들이 포진한 여러 싱크 탱크, 또는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와 같은 외교전문가 집단에서 시리아 해법에 관련된 글들을 거듭 검색해봤다. 하지만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스라엘 안보 챙겨주기에 무게중심이 있는 까닭일까, 눈에 띄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은 글을 찾아보질 못했다.  

 

큰 틀에서 바람직한 정치적 해법은 독재자 아사드 일족이 물러나고 다마스쿠스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쪽이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년 집권)처럼 면죄부를 받고 퇴진하는 수순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러시아로 망명해 푸틴의 보호를 받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아사드로선 그럴 뜻이 없다고 알려진다. 지금껏 아사드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측근들도 아사드의 퇴진을 반대할 것이다. 군부 쿠데타나 암살 등 극적인 사건이 터진다면? 전쟁의 긴 터널 끝이 보이겠지만, 그 가능성은 말하기 어렵다. 

 

끝으로 전쟁범죄. 국제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전쟁범죄를 덮어주긴 어렵다. 아사드와 그의 일족이 퇴진을 거부하는 데엔 전쟁범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아사드 체제가 저지른 전쟁범죄 목록은 길다. 전쟁범죄는 공소시효나 국적에 관계없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사법권' 논리가 국제법계에서 힘을 얻는 마당에, 아사드를 전쟁범죄자로 붙잡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좀 더 시일이 지나야 될 일처럼 보인다.  

 

 

결론적으로 전쟁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아랍의 봄'을 시리아에서 되살리려면, 결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아사드 독재정권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면서 평화 중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 아사드의 퇴진과 전쟁범죄 처리는 그 뒤 수순이다. 인권과 민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계 시민들은 지난 7년 동안 시리아의 재앙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픔 속에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시리아에 7년째 이어지는 '아랍의 겨울'은 끝내려면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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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3/1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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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의 민간인 학살 중단과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

일시: 2018년 3월 22일(목) 오후 7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시리아에서 민간인 학살 중단과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해주세요

 

따스한 봄 햇살처럼 세상 모든 이들에게도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인사드립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도시 다라에서 15명의 청소년들이 반정부 구호를 담벼락에 쓴 혐의로 체포돼 고문당한 사건을 신호탄 삼아 시리아에서 민주화 항쟁이 시작된 지 어느덧 햇수로 정확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7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유와 정의, 인간의 존엄을 향한 시리아 국민들의 고귀한 용기와 감동적인 헌신은 어느덧 끝 모를 전쟁과 학살, 굶주림, 질병, 이산이라는 고통으로 변질돼 주민들은 날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선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2월 18일부터 수도 다마스쿠스 동쪽의 반군 장악지역인 동구타(Eastern Ghouta)를 상대로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공군이 집중적인 공습과 지상전을 벌이면서 2016년 말 불과 한 달여 만에 역시나 정부군의 포위 공격으로 천여 명의 주민들이 완전히 고립된 채 죽어갔던 ‘알레포 사태’의 지옥도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과거 100만 명에 달했던 인구가 전쟁으로 인해 40만 명까지 줄어든 동구타의 주민들은 2013년 8월 최소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화학무기 공격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매일 100여 회가 넘는 폭격과 전투를 극도의 공포 속에 고스란히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런 상황을 타개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이른바 ‘국제사회’는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2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시리아 동구타 30일 휴전안’을 결의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잇달아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비명소리에 묻혀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비극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끝내야 할까요? 불행히 누구도 그 명쾌한 답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동구타에서, 지금 이 순간 터키군의 집중적인 포위공격을 받고 있는 아프린에서, 그리고 시리아 전쟁 현장 그 어느 곳에서든 간에 이런 비인도적인 살상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학살을 중단하라고, 전쟁을 멈추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런 무거운 책임감과 절박함을 함께 공유하는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오는 3월 22일 목요일 저녁 7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리아에서의 민간인 학살 중단과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엽니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부탁합니다. 

 

개요

  • 일시: 2018년 3월 22일(목), 저녁 7시
  • 장소: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 주최: 경계를넘어, 나눔문화, 다른세상을향한연대, 법인권사회연구소, 국제엠네스티한국지부, 반전평화연대(준), 시민평화포럼, 옥바라지선교센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평화바닥, 피스모모, 헬프시리아 등
  • 문의: 나눔문화 02-734-1977,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02-723-4250
월, 2018/03/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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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팟 10회 / 시리아에 평화를 Peace for Syria

 

21세기 참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전쟁이 어느덧 7년 째 접어들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35만명, 난민은 2000만명에 이릅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맞아 시작된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이 참혹한 국제전으로 확대된 것은 시리아 정부의 강경 대응과 강대국과 주변국의 이해 관계, 무력한 국제사회의 대응 등이 복잡하게 얽힌 탓입니다. 

 

특히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동구타 공습으로 한 달 새 민간인 12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5분의 1은 어린이 입니다. 도대체 시리아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우리는 이 참극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아시아팟에서는 '헬프 시리아' 사무국장인 압둘 와합씨를 모시고 시리아 전쟁에 대해 들어봅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s://goo.gl/bxLNmo (팟빵에서 듣기)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dvLk7h

* 유튜브로 듣기 : https://youtu.be/IUHzeDD1U_A

 

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이미현 간사 (참여연대 정책기획실)

  • 고정출연 : 김형종 교수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제관계학과)

  • 이슈손님 : 압둘 와합(헬프 시리아 사무국장 https://ko-kr.facebook.com/helpsyriaplease/)

 

같이보기

 

[아시아팟] 목록

1회. 두테르테 1년, 필리핀 가도 될까요?

2회.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3회. 버마의 '로힝쟈',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4회. 아시아 사람들은 한국 기업을 반가워할까요?

5회. 미안해요, 베트남!

6회. 우리가 몰랐던 '아세안'

7회.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안녕한가요?

8회.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 후폭풍은 어디까지?

9회. 한국의 원조로 고통받는 필리핀 선주민

10회. 시리아에 평화를 Peace for Syria

 

수, 2018/03/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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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와 러시아가 하는 말은 잊으라.

기자가 서구(Western) 언론인 최초로 화학무기 피해자들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시리아 듀마(Douma)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을 만나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왔다.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30년 가까이 영국의 인디펜던트(Independent)지에 기고하며 많은 언론상을 거머쥔 언론인으로, 그는 약 1분 가량 이어지는 아래의 음성파일에서 비디오 속 호흡이 곤란한 피해자의 모습은 실제 상황이 맞지만 화학무기공격과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음성파일 자막은 이와 같다.

방금 듀마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있고,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물을 끼얹는 영상이 촬영된 병원을 찾았는데요.

이 병원의 의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침 영어를 잘 하더군요. 이 의사가 말하길, 그 비디오 자체는 사실이지만 비디오 속 아이들이 가스 중독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는 터널 먼지 때문에 저산소증(산소부족) 왔다는 겁니다. 듀마 지역의 사람들은 일년내내 집을 내버려두고 그 아래에서, 그러니까 터널과 지하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그날 밤 시리아군대와 러시아공군의 공격이 있었고, 그 결과 거리가 먼지와 잔해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숨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이 의사가 말하길, 아이들이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 누군가가 “가스”라고 외쳤고, 그 말에 다들 패닉 상태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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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

최신 업데이트: 피스크 기자는 오늘 인디펜던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전문)

냄새 나고 망가진 마을, 부서진 아파트 단지로 가득한 듀마 그리고 그 마을의 한 병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지하 병원에서 찍힌 영상은 지난 주 서구의 3대 강대국이 시리아를 폭격하도록 한 빌미가 되었다. 나는 이 병원을 찾아 해당 영상 속 푸른 가운을 입은 의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전세계를 놀라게 한 일명 ‘가스’ 비디오는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진실이라고 밝혔다

***

그는 올해 58세인 시리아인 의사, 아심 라하이바니(Assim Rahaibani) 박사이다. 그런데 그는 매우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영상 환자들은 가스가 아닌 산소부족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쓰레기 더미 속 터널과 지하에서 사는 데다가, 밤사이 바람과 포격으로 먼지폭풍이 일어나 산소가 부족해진 것이라 한다.

라하이바니 박사가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화학공격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는 유창한 영어로 듀마의 자이시 엘 이슬람(Jaish el-Islam, 이슬람군대라는 뜻)의 요원을 두번이나 “테러리스트”라고 칭했는데, 이는 시리아 정권이 적국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시리아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

다른 듀마 주민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가스 이야기를전혀 믿지 않았다는 이들이 많았고, 대개 그런 소문은 무장 이슬람단체가 퍼뜨린다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단체들은 포화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집 또는 죄수들이 곡괭이로 벽을 뚫어 마을보다 3층 정도 아래에 만든 지하도로와 연결된 넓은 터널 등에서 살며 목숨을 부지했다.

***

어제는 군인이나 경찰, 경호원 없이, 시리아에서 나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카메라와 노트 한권만 들고 발길 닿는 대로 혼자 마을을 돌아다녔다.

***

라하이바니 박사가 있는 곳까지 금방이었다. 이 반(半)지하 도시의 독특한 지형 상 “Point 200”이라고 불린다는 이 지하병원에는 출입구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침상 몇 개가 놓여있었고, 한 여자아이가 간호사들이 눈 위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울고 있었다.

 “그날밤 저는 이 병원에서 300 미터 떨어진 저희 집에서 가족들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든 의사들이 알아요. (정부군에 의한) 포격이 많았고, 밤이면 항상 전투기가 듀마 상공을 다녀요. 그런데 그날 밤에는 바람과 엄청난 먼지구름이 지하와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저산소증, 산소부족으로 병원에 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현관에 있던 시리아민방위대 (White Helmet) 요원이 ‘가스다!’라고 외쳤고, 다들 어쩔 줄 모르다가 서로 물을 끼얹어 주기 시작했어요. , 비디오는 여기서 찍은 맞아요, 진짜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스중독이 아니라 저산소증입니다.”

이 기사의 원 출처는 워싱턴 블로그입니다.

글쓴이: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 그리고 워싱턴 블로그(Washington’s Blog)

2018년 4월 16일, 글로벌 리서치(Global Research)

워싱턴 블로그(Washington’s Blog)

 

금, 2018/04/20-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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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 강제송환 계획 중단하라

미얀마 정부의 학살 인정 없는 송환 안돼

학살 책임자 처벌, 소수민족으로의 인정, 시민권 회복 등이 전제된 송환 논의 이루어져야

 

지난달 30일,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정부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실무그룹 회의를 열어 미얀마 군부의 탄압을 피해 국경을 넘었던 미얀마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11월부터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로힝야와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모임은 난민들의 신변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지는 이번 송환에 깊이 우려하며, 미얀마, 방글라데시 양국 정부에 로힝야 난민에 대한 강제송환 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로힝야 난민의 자발적이고 안전하며 존엄한 귀환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학살 책임자 처벌, 소수민족으로의 인정, 시민권 회복 등이 전제된 송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로힝야들이 필요로하는 국제사회의 보호 메커니즘이 우선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는 이번달 15일 미얀마 거주사실이 확인된 4천여 명의 로힝야 난민 가운데 1차로 2천 260명의 신병을 방글라데시로부터 넘겨받을 예정이다. 현재 방글라데시에는 미얀마 군부에 의한 무차별적인 집단살해, 강간, 방화 등으로 고향을 떠나 난민캠프에서 지내는 로힝야 난민의 수가 9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은 미얀마 군부에 의한 잔인한 학살로 눈 앞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떠나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다.

 

이들에 대한 박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교도가 주류인 미얀마 구성원 대부분은 로힝야를 ‘벵갈리’라고 부르며 불법체류자로 취급했고 1978년에 20만명, 1991년에는 25만명을 방글라데시로 강제추방했다. 로힝야에 대한 억압은 사회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로힝야의 시민권은 박탈되거나 부여되지 않았고, 이동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돼 인근지역 방문도 허가를 받거나 통행료 등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가능했다. 결혼도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고, 산아제한 조치로 로힝야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낙태를 실행하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 교육과 생업의 기회를 박탈당했고, 공직에 진출할 수도 없었다. 2015년에는 선거권과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했다. 여기에 더해 2016년 미얀마 군부는 경찰 초소를 공격한 로힝야 무장세력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에 대한 구타, 살인, 고문, 자의적 구금과 처벌, 집단강간, 방화, 재산약탈 등을 자행했다. 2017년에도 대규모 인종청소 작전을 통해 수만 명을 살해했다. 이렇듯 지난 40여년간 지속되어온 로힝야에 대한 박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이러한 로힝야에 대한 박해와 학살은 한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 ‘천천히 진행되어 온 제노사이드’이자 유엔진상조사단(UN Independent International Fact Finding Mission on Myanmar)의 마르주키 다루스만(Marzuki Darusman) 단장이 유엔 안보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전히 진행중인 제노사이드’이다. 잔혹 행위는 계속되고 있고, 학살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로힝야 박멸을 주장하는 미얀마 군부의 리더십도 미얀마 대중의 견해도 바뀐 것은 없다. 현지 소식에 따르면 11월 4일, 라카인주 주도인 시트웨이에서는 로힝야 송환에 반대하는 불교도들의 시위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라카인주에 로힝야들이 거주하는 것을 반대하며 이 지역에 보다 많은 불교도 마을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로힝야에 대한 강제송환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미얀마 정부는 송환된 로힝야 난민을 임시캠프에 수용하겠다는 입장인데 이곳에 얼마나 머물러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임시캠프라고 하지만 사실상 강제수용소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송환을 반대하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제사회는 미얀마 군경에 의한 로힝야 박해와 학살을 ‘전쟁범죄’, ‘반인도주의적 범죄’, ‘제노사이드’라고 명백히 규정하였지만 미얀마 군과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간정부는 여전히 책임을 부인하고 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도 침묵하고 있다. 이렇듯 학살에 대해 어떠한 반성도, 개선도 약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얀마로 로힝야 난민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이들을 제노사이드, 킬링필드의 현장으로 다시 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는 박해, 고문, 생명의 위협, 속은 잔인하고 비정상적인 대우를 받을 위협에 처하는 국가로 송환되어서는 안된다는 강제송환금지의 원칙(principle of non-refoulement)을 위반하는 것이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정부는 송환에 대한 국제기준을 준수해야 하고, 국제사회는 로힝야를 보호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유엔난민기구 콕스바자르 외무담당국장 크리스 멜제르(Chris Melzer, the UNHCR’s senior external officer based in Cox’s Bazar, Bangladesh)는 “로힝야족의 주요 거주지였던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의 상황이 아직은 난민들의 귀환에 적절치 않다”며 송환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인권을 위한 ASEAN 의원들(ASEAN Parliamentarians for Human Rights)’의 샤를 산티아고(Charles Santiago) 의장 역시 로힝야 송환에 반대하며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like system)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로힝야들의 안전과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제 송환된 로힝야들은 학살의 악몽에 시달리며 두려움과 공포의 일상을 보낼 것이 분명하다. 로힝야에 대한 제도화된 차별, 박해, 혐오 및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강제송환은 중단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로힝야’라고 부를 권리마저 부인된, 가장 박해받고 있는 이들의 자발적이고 존엄하고 안전한 귀환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원하는 바와 같이 1982년 박탈된 시민권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2018년 11월 5일

로힝야와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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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1/0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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