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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소식] 대전충청지부 활동기 “후문입니다.”

지역

[지부소식] 대전충청지부 활동기 “후문입니다.”

익명 (미확인) | 수, 2015/12/23- 14:14

대전충청지부 활동기 “후문입니다.”

1. 느리지만 꾸준한 신입회원 증가

 대전충청지부는 본부나 다른 지부에 비하여 신입회원 증가속도가 매우 느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역쉬 충청도에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천안에서 활동하고 계신 이문우 회원, 대전에서 활동하고 계신 김영배 회원, 청주에서 활동하고 계신 오진숙 회원께서 새로 가입해 주셨고, 특허청에서 근무하시는 전진희 회원께서는 지부 회원으로 소속 변경해 주셨습니다. 신입회원 분들 중에서 사랑이 싹트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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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충남대학교 총장 선거 관련 연대 활동

 교육부의 치졸한 압력으로 대학교 총장 선거가 간선제로 전환되는 분위기를 타고 지역의 대표적인 국립대학교인 충남대학교가 총장 선출 간선제 방침을 발표한 가운데, 충남대학교 교수협의회 및 민교협 회원들의 연대 요청으로 민변대전충청지부가 중심이 되어 제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충남대학교 총장 선거 간선제 폐지 직선제 시행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습니다. 기자회견 후 지부장, 사무처장, 간사가 의기투합하여 곰탕에 낮술을 묵었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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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부대표자회의 및 지부연합산행

 도심을 떠나 황톳길로 유명한 대전 계족산 주변에서 맑은 기운을 충전하시길 기원하며 지부대표자회의를 준비하고, 아울러 지부연합산행까지 주관하였습니다. 일정에 맞는 코스를 적절히 선택하고, 계족산성의 유래 등을 전 사무처장이신 장동환 회원께서 재미나게 설명해 주시고, 계족산성에 올라 함께 점심을 드시며 막걸리에 웃음꽃을 피우고, 여성 이주민들의 원만한 정착과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다문화 식당 아임아시아에서 진한 뒤풀이까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무처장인 문현웅 회원이 사비를 털어 정연순 부회장님 등께 그 유명한 성심당의 튀소를 뇌물로 안겼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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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법률구조 및 연대활동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티움 자활센터 입소인을 대상으로 파산교육, 대전비정규근로자지원센터 상담원 대상 노동법 교육을 진행하였고, 한국타이어 정승기 해고노동자 복직 및 민주노조활동보장 공대위에 참여하였으며 사무처장인 문현웅 회원은 대전시 공익신고자보호조례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사회를 보고, 대전인권연대 주최 인권학교 마지막 강의를 맡아 “쫄지마 수사절차”라는 주제로 강의한 후 강의비를 몽땅 털어 뒤풀이 비용으로 썼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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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주사회를 위한 대전충청지부는 충청도의 후예답게 정문이 막히면 후문으로라도 진입할 수 있도록 의뭉스럽고도 끈질기게 저희 갈 길을 가겠다고 송년회에서 다짐하였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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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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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젊은 부산민변인들

 

무더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몹시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라고 합니다. 언젠간 시원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마음속 깊이 들어와 가을을 알리겠지만 지금은 에어컨을 틀자는 큰 딸과 전기요금 폭탄이 두려운 제가 대립각을 세우다가 결국 안방에만, 그것도 잠시만 가동하는 것으로 합의할 정도로 이번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더위에도 부산민변 소속 회원들, 특히 젊은 회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있는데, 오늘은 젊은 부산민변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변하고 있는 병역법위반 사건을 소개할까 합니다. 주심을 맡은 조애진 회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근무하던 중 뜻한 바 있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와 낮은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부산민변의 젊은 인재입니다.

지난 4. 19. 민주화혁명 기념일에 부산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이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을 하였습니다. 청년 김진만은 세월호 사태를 비롯하여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에서의 국가폭력,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의 백남기 농민에 대한 공권력의 폭주를 경험하며 국민을 지키지 않고 탄압하는 국가 권력에 더 이상 가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나아가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의 사용방법 등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간 부산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 이외에 이처럼 종교와 무관한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부 선언을 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기에, 청년 김진만 역시 지역의 시민사회가 자신의 뜻에 공감하고 함께 싸워주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이후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때 한 청년의 숭고한 선언이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묻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조애진 회원이 뛰어들었습니다.

조애진 회원은 정상규 회원, 민변본부 국제연대위와 아시아 인권팀, 베트남전쟁연구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 그리고 ‘전쟁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와 함께 형사재판을 준비하면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가 지급한 실비 100만 원도 ‘청년 김진만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후원회’에 전액 후원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는데, 지난 6. 28. 첫 공판기일에는 청년 김진만의 대학 내 인문학회 활동과 10여 년간 참여해온 시민사회운동 등을 언급하며 청년 김진만이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주의적 신념에 따른 삶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로 병역거부를 택하였다는 사실을 피력하였습니다.

그 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형사처벌로 일관하는 것은 헌법 제10조 등에 반한다는 점과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 되어온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는 것은 명백한 의무 방기에 해당하는 점 등을 들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고, 두 번째 공판기일 때는 증인신문과 피고인신문이 진행되었는데, 방청석은 청년 김진만의 후원회원들을 비롯하여 평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날 청년 김진만의 대학 동아리 선배가 증인으로 나와 청년 김진만은 학회활동을 통해 장애인, 노동자, 농민과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약자를 잔혹하게 탄압하는 국가폭력을 본 후 평화적 신념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고 증언하였고, 이어진 청년 김진만에 대한 신문에서 검사가 “집시법위반 등의 범죄전력과 그간의 활동으로 보아 피고인이 주장하는 신념은 사회적 반감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 “절대적 비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청년 김진만은 신념은 어떠한 척도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양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답변하는 등 심도 있는 공방이 오갔습니다.

청년 김진만의 두 번째 공판기일 후 변호인단과 후원회원들(맨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조애진 회원,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정상규 회원)

청년 김진만의 두 번째 공판기일 후 변호인단과 후원회원들(맨 앞줄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조애진 회원, 그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정상규 회원)

최근 일부 하급심이 병역법위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경우도 있었는데, 청년 김진만에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의문도 들고 걱정도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백하건대 한 청년의 신념을 위해 열정을 바치고 있는 젊은 부산민변인들을 보고 있자니 수년 전 병역법위반 사건을 전담하듯이 국선변호를 하면서 계속되는 법원의 미지근한 태도와 검찰의 당연시하는 모습에 그만 지쳐서 혼자서 힘만 빼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처음의 열정과 달리 그 후 건성으로 변론했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곤 합니다.

민변 회칙 제3조(목적)는 “모임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부산민변은 그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 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지난 민변 총회때 선물로 받은 에코백에 쓰여진 민변의 초성을 단박에 맞춘 큰 딸에게 오늘도 민변의 아저씨, 아줌마들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준 젊은 부산민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무척 덥습니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습니까? 민변 회원여러분 강녕하십시오.

 

 

 

2016. 8. 25.

간사 윤 재 철 올림

 

목, 2016/08/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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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위원회 활동소식

1. 뮤지컬 ‘화순’ 단체관람

 통일위에서는 지난 11월 4일,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과거사청산위원회와 함께 뮤지컬 ‘화순’ 단체관람을 진행했습니다.

1. 11월 화순 관람1

 

뮤지컬 ‘화순’은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가 미군정에 의해 토끼몰이식 진압을 당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죽었던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왜 이 뮤지컬이 왜 한국판 레미제라블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완성도 높고 웅장한 작품이었습니다. 1월에 앵콜공연을 또 한다고 하니, 회원 여러분들도 꼭 ‘화순’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1. 11월 화순관람2

1. 11월 화순관람3

 

 2. 2015 통일위원회 워크샵

 가을이 깊어가던 11월 6일~7일 통일위원회가 양평으로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통일위원회의 새내기 이재화, 서중희 변호사님을 중심으로 김용민, 설창일, 심재환, 양승봉, 이광철, 이석범, 천낙붕, 채희준 변호사님, 그리고 사무처 이유진 간사님도 동행을 했는데요,

토닥 토닥 내려앉는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통일위원회의 미래를 이야기 하던 그날 밤은 무척 은은한 밤이었다지요?^^

2. 11월 통일위 워크샵 (2) 2. 11월 통일위 워크샵 (3) 2. 11월 통일위 워크샵 (4) 2. 11월 통일위 워크샵 (5)

 

 3.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님 초청강연

 지난 11월 13일 저녁, 통일위원회에서는 미군문제연구위원회와 함께 남북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미동포 최재영 목사님[NK(New Korea)2020 대표] 초청강연을 진행했습니다.

3. 11월 최재영 목사 (1)

3. 11월 최재영 목사 (2)

 

최재영 목사님은 현재 북한전문통신 ‘NK 투데이’에 생생한 방북기를 연재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번 강연에서는 2015년 북한의 종교와 북한의 법원 풍경,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우리사회에서 북한이 점점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라 이번 강연이 더 의미깊게 다가왔답니다.

3. 11월 최재영 목사 (3)

 

 4. 안녕 2015!! 통일위원회-미군문제연구위원회 합동송년회

 12월 22일 절기상 동지(冬至)날,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동지(同志),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합동 송년회를 진행했습니다.^^

4. 2015 미통위 송년회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는 매년 연말, 합동송년회를 통해 뜨거웠던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의 소망과 의지를 나눠왔는데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은 바로 함께하는 ‘우리’가 있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송년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었는데요, 바로 내년 여름휴정기인 7월말 8월초에 통일위원회와 미군문제연구위원회 공동으로 “독일통일기행”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1월에 바로 준비단을 구성하고 전체 참가단을 모집할 계획이니 회원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과 참여를 요청드립니다.^

수, 2015/12/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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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인터뷰이 중에 가장 긴장한 모습의 박민제 변호사였습니다. 편하게 수다 떨 듯이 이야기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간간이 떨리는 손과 목소리, 수줍어하며 빨개진 얼굴 때문에 나도 긴장하며 좀 더 진지하게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분이 국회와 청와대를 주름 잡고, 지금의 아내와 만난지 한 달 만에 프로포즈를 했다니 역시 사람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되나봅니다^^

 

박민제

 

김지미 우리 인터뷰의 첫 공식질문이죠, 저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민제 저는 다른 변호사님하고 다르게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인터뷰를 하면 나중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부담이 덜하실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에 좀 컨셉을 바꾸시지 않으셨나(웃음). 저는 사법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박민제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국민의 정부 때 국회에 입법비서관으로 있다가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국회 쪽 업무를 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 티오로 해서 참여정부 행정관으로 들어가서 대통령 임기 끝까지 있다가 순장을 했습니다. 순장 아시나요? 대통령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같이 묻혀버렸죠(웃음).

 

김지미 변호사님이 변시 3회시죠. 변호사로서는 2년차이지만 연식은 좀 되셔서(웃음) 변호사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이거는 차차 물어보기로 하구요. 39살에 로스쿨에 들어가신 건데 뒤늦게 로스쿨을 들어가신 계기가 있을까요?

 

박민제 대통령 임기 끝나고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다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하룻밤을 꼬박 세면서 의원실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응원을 해 주셔서 로스쿨을 들어가게 됐습니다.

 

김지미 학부가 고대 법대이잖아요. 법대를 갔을 때는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을 것 같은데 사회 첫발을 국회 입법비서관으로 내딛게 된 이유가 있나요?

 

박민제 고시에 대한 생각도 있었습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몇 번 시험을 봤는데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는 분을 통해서 입법비서관 제의를 받았는데 입법이라는 게 정책을 제도화 하는 것이잖아요. 입법을 통해서 국민들한테 체감도 높은 정책이 구현될 수 있는 거니까.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박민제 의원입법 관련해서 의원님 보좌하고 그러는 거죠. 제가 환경노동위원회와 국방위원회였었는데요, 거기에 환경노동위원회 관련 단체나 국방위원회 관련 단체 의견 수렴을 해서 입법이나 의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김지미 입법비서관 시절에 변호사님이 관여했던 입법안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박민제 고용보험법이나 모성보호법, 군인연금법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김지미 국회에는 몇 년 동안 계셨던 거에요?

 

박민제 2001년부터 2003까지 있다가 2004년에 청와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죠?

 

박민제 청와대에 있을 때는 4개 부서에 있었습니다. 총무비서관실하고요, 시민사회비서관실, 정책조정비서관실, 그리고 정무비서관실에 있었습니다.

 

김지미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는데 원래 이렇게 순환 보직을 맡게 되는 건가요?

 

박민제 전보제도가 1년 단위로 있었던 것 같아요. 국회에 대통령 비서실 대응하는 상임위가 운영위가 있어요. 처음엔 국회 운영위·예결위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서 총무비서관에서 그 업무를 했습니다.

 

김지미 국회 경험이 있어서 총무비서관에서 시작을 하셨고 그럼 시민사회비서관실은 어떤가요?

 

박민제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는 시민단체 현안 이슈 같은 거 모니터링하고 점검하고요, 그 다음에 현안보고서도 쓰고, 그 다음에 자원봉사단체 지원하고 그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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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저희 회원들 중에 다양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청와대에 있으셨던 분은 처음 인터뷰하는 거라 궁금한 게 많거든요. 참여정부 시절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구요. 청와대 행정관의 하루는 어땠나요?

 

박민제 보통 아침 8시쯤에 비서실장 주재 회의가 있어요. 그러면 그 전에 행정관들이 돌아가면서 회의에서 논의될 안건 같은 것을 미리 확인을 해요. 회의가 끝나면 지시가 내려집니다. 현안보고를 해라, 부처를 통해서 상세하게 알아봐라. 그런 현안들은 실시간으로 바로 보고가돼야 하구요, 대통령 공약 같은 장기과제는 시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 내에 과제에 대한 보고를 완료해야 됐었고, 그 보고가 시한 내에 완료 안됐을 때는 국정상황실에서 빨리 그것을 마련하라고 하는 그런 것도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특별했던 것은 국가주요정책과 관련한 법안이나 예산이 좀 많이 소요되는 법안 이런 것들을 중점 관리 법안으로 선정을 먼저 했어요. 비서실하고 관련부처하고 같이 선정을 한 다음에 그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 여러 부처와 같이 유기적으로 추진 체계를 구축하고 대통령님 주재 회의나 비서실장 주재 수석 비서관 회의 때 계속 보고를 했습니다. 아주 숨 가쁘게 진행이 됐었죠.

 

김지미 변호사님이 근무하실 때 주력했던 법안인데, 그게 결국은 법률이 돼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법안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로스쿨 법안(웃음).

 

김지미 직접 수혜를 받으셨군요.

 

박민제 그 로스쿨 법이 되게 어려웠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것을 사학법 하고 연결을 시켜서 끝까지 통과가 안 되다가 2007년도에 아마 통과가 됐을 거에요. 그런 법안도 있었고. 그리고 국가재정의 기반을 혁신하기 위한 국가재정법과 자원활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기 위한 자원봉사활동기본법 등이 있었어요.

 

김지미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입법이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라 중요하다는 부분이 굉장히 와 닿는데 최근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로펌들도 그 분야에 집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공익입법운동을 시작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일반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결국은 제도로 구현이 되어야 하고 그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법률이기 때문에 입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깨닫고 있거든요. 어떤 제도가 법률로 규정이 됨으로서 실생활에는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있다. 그런 리딩케이스 같은 게 있을까요.

 

박민제 그것보다는 역사적 과제나 시대적 과제를 안고 살아야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짧지 않은 인생이니까 과제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기존에는 시민들이 권력의 객체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서는 주체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민들이 주체적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입법과정에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기위해서 입법과정에 제도적으로 시민참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실질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이고, 그런 부분에서 앞으로 과제를 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입법 과정에서 시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를 할 수 있을까요?

 

박민제 시민들의 입법제안 같은 것들이 형식화 되지 말고, 공청회 제도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부여되어야 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겠죠. 또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연결되잖아요. 민주주의가 지역의 삶의 제 영역으로 실현되는 것이 지방자치인데, 사실상 아직 자치입법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와 맥락이 닿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비한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자치입법 과정에서 특히 주민참여가 강화 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이와 관련해서 ‘지방의회 입법활동의 현황분석과 개선방안 연구’ 라는 논문도 쓰셨죠? 이쪽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박민제 네. 청와대에 있을 때에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썼었던 논문입니다.

 

김지미 대통령 비서실장 모범 표창도 받으셨어요? 이건 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면 다 받는 건가요?(웃음)

 

박민제 그건 아닌데, 대부분이 받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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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그럼 청와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을 있으셨죠?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접해보신 분으로서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가 옆에서 보니까 이 부분이 너무 훌륭하더라. 혹시 이런 점들이 있을까요?

 

박민제 단적인 것은 대통령이 참모들보다 더 뛰어나셨습니다. 항상 의제를 먼저 제시하고 그리고 참모들이 보고를 했을 때 문제점들을 파악하셨던 것 같아요. 보완할 부분까지도 지적을 해주시고 그래서 항상 참모들을 끌고 가셨던 것 같아요.

 

김지미 모든 의제에 대한 현안들을 다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한 거잖아요.

 

박민제 네. 기억력과 정보 습득력이 엄청나셨죠. 가장 뛰어나셨어요. 그래서 참모들이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저번에 보고했던 것을 그 많은 보고서를 보시면서도 금방금방 기억을 해내셨으니까.

 

김지미 청와대 근무 마치고 나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있을까요? 이것만큼은 꼭 해놓고 나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거나.

 

박민제 민생현장에서 직접 접하면서 의제를 발굴하는 활동을 좀 더 강화했으면 좋았을걸. 그냥 부처 보고로 해서 너무 거기에 급급하지 않았나. 시민들과 직접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이 필요한 의제와 입법들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나.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김지미 그렇게 일을 그만 두고, 다시금 예전에 꾸었던 법조인의 꿈에 다시 도전을 하셨잖아요. 가족들의 지지도 있었다고 했지만, 일단 로스쿨에 가볼까? 라는 생각은 변호사님이 먼저 하셨을 것 같은데 다시금 내가 법조인을 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있을 것 같아요.

 

박민제 학부 때는 시험을 통한 탈출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참여정부 임기 끝나고 나서는 탈출의 개념이 아니라 뭔가 사회구조에 대해서 법조인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는데 그 양극화를 조금 해소할 수 있는 역할을 법조인이면 좀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김지미 입법 분야의 일을 해 보니까 내가 법률가가 되면 좀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박민제 네. 그리고 또 로스쿨 제도 취지가 기존에 법조인들이 안가는 직역에 많이 진출하는 의미가 있었어요. 그게 뭐 국회도 있겠지만 자치단체도 있었거든요. 지방자치단체 법치행정을 위해서 법률가가 할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했었죠.

 

김지미 그런데 지금은 개업변호사로 살고 계시잖아요. 애초에 생각했던 길하고 조금 다른 건 아닌가요?

 

박민제 그래서 고문변호사 활동도 하고 있고요, 교육청 일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김지미 서울특별시 교육청 행정심판위원 이거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김지미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 대법원, 서울 북부, 남부, 동부 지방법원 국선변호인도 있어요(웃음). 코리아 부동산 아카데미 강사로 활동하고.(웃음)

 

박민제 이거 어떻게 아셨어요? 정보력이 무섭네요(웃음). 부동산 아카데미는 고등학교 선배가 저 몰래 올렸습니다. 지금 내려달라고 하려고요.

 

김지미 사법위원회 활동이 결국은 변호사님 예전에 했던 활동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민변 가입은 변호사 되시고 바로 하신건가요? 애초에 사법위를 딱 찍고 들어왔을 것 같은데.

 

박민제 네.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제가 해야 할 시대적 소명 내지는 역사적 과제로 잡고 있는 것이 3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시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고요, 둘째는 패자가 부활할 수 있는 이런 걸 좀 마련하는 거에요. 기존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회에서 기다려주지 않고 내치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일어설 수 있게 기다려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이런 부분이 필요하고. 세 번째는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좀 방지하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사법위원회는 세 번째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자는 거하고 닿아있는데, 저희 대통령님도 사실상 권력에 의한 희생을 당하신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대통령이 이렇게 희생을 당할 정도면 다른 국민들은 더 불안해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법위원회에 들어왔습니다.

 

김지미 그러면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를 방지하는 데 변호사님이 구상하는 어떤 방안 같은 것이 있을까요?

 

박민제 가장 먼저 검찰 개혁하고 국정원 개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제가 먼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검찰개혁입니다. 참여정부 때도 검찰개혁을 하려고 했었는데 사실상 했다는 게 내버려 두는 이런 것이었죠. 그러니까 좀 독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검찰권력이 정치권력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세력입니다.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하고도 관련되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냥 내버려 둔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이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그래서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구에는 검찰의 입김이 작용되지 않게 차단된 상태에서 우선 개혁기구를 마련한 다음에 그 기구를 발판으로 해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도 공직자부패수사처 이런 법안도 내고 했지만 사실상 그 당시에도 검찰 흔들기가 많았어요. 또 국회에도 로비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다음 정부에서는 검찰에 흔들리지 않는 이런 개혁기구를 마련해서 그 기구에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내고 법안을 마련해 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검찰개혁이라는 것은 사법개혁 분야에서 약간 해묵은 주제라고 생각될 정도로 검찰개혁 하자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실질적으로 잘 안 되고 있잖아요. 검찰개혁에 대해서 공감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세요?

 

박민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청와대의 검사 파견을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자기들 승진이 청와대에서 낙점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청와대 파견이 금지되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에 정치권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공안부나 이런 것들이 폐지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다음에 2원화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공직자부패수사처처럼 공직자 비리 같은 경우나 정치사건 같은 경우에는 검찰과 독립적인 기구에서 담당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그 다음에 자치경찰제가 사실상 약간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그게 수사권하고 기소권 분리 문제가 사실상 조직 간의 다툼으로 변질된 것 같아요.사실상 그 취지가 아닌데 그게 좀 국민들에게 잘 못 알려진 게 있는데 사실상 그런 수사권·기소권 분리부분도 검찰개혁의 한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미 이러한 검찰개혁 과제가 산재해 있는데 하나도 된 게 없는, 검찰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뭔가요?

 

박민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외부세력이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작은 부분이긴 한데 기소독점주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신청제도 같은 것을 개선을 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점을 찾아야 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지미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들도 상당히 있고 나름대로의 어떤 대안도 생각하고 계신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지금 민변 사법위 활동은 좀 약하다 싶은 감이 있어요.

 

박민제 제가 반성해야죠.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런데 앞으로는 그 논의가 활성화 될 것 같아요. 대한변협 차원에서도 사법제도개혁특위가 꾸려졌더라고요. 그 다음에 아마 대선국면이 가까워오면서 공약부분에서 제시할 부분이 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법 분야 공약이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거든요.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느냐 체크해야하는데 아예 공약이 없으니(웃음).

 

김지미 외부에서 볼 때는 사법개혁과 관련된 역할을 할 주체가 결국엔 민변 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기대가 있는 것 같은데 사법개혁과 관련해서 민변이 이런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신 게 있나요?

 

박민제 저는 처음에 사법위 하면서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진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고요. 그거라도 있으니까 한 달 동안이라도 뭔가 방향을 알고 준비할 수 있거든요. 제가 사법위에서 입법감시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국회에 제출됐지만 잠자고 있는 사법개혁 법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법안들을 좀 깨워서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에 통과될 수 있도록 저희가 여론도 조성을 하고 국회에 요구도 하고 그런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김지미 좋은 제안 같은데요. 저희가 입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실 적극 반대하는 법안들 위주로 의견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통과가 되어야 하는 법안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죠?

 

박민제 네. 제가 참여정부 때도 이렇게 했었거든요. 항상 중점관리법안에 대해서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체크를 했습니다. 단계별로 어느 단계에 있느냐를 체크를 한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그것에 대해서 국회에 찾아가서 국회의원 면담을 해서 관심을 가지고 통과시켜달라고 하실 수 있게 메모카드 같은 걸 만들었어요. 그 법안의 주요내용과 통과될 필요성 같은 것을 이렇게 조그만 메모카드로 만들어서 그걸 보시면서 국회의원한테 그 메시지를 전달하게 해드리고 그 다음에 장·차관님들이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매주 단위로 부처별로 보고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하니까 그래도 임기 말에 열심히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사법위 선배변호사님들이 토론할 수 있는 토론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드리자는 생각이 컸는데 아직은 너무 부족해서 배우는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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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이제 변호사가 되신지 만 1년 정도 되었는데 어떠신가요? 변호사 되기 잘했다, 이런 생각 드시나요?

 

박민제 민변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첨병이면서도 마지막 보루잖아요. 거기에서 제가 몸 담으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잊지 않게 해주고 거기에서 저 자신을 독려할 수 있게 해주는 점에 있어서 저한테 계속 채찍질이 되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혹시 사법위 말고 관심 두고 있는 다른 위원회가 있나요?

 

박민제 지금 사법위도 벅차서(웃음). 사법위원회만 해도 할 것이 많아서.

 

김지미 사법위에 뼈를 묻겠다.

 

박민제 예에(웃음). 그렇습니다.

 

김지미 이제 개인사를 좀 물어볼게요. 변호사님이 워낙 말수가 없으시고 그래서 개인사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어요. 우선 결혼은 하셨죠?

 

박민제 네. 했습니다. 2005년에 해서 10주년 됐습니다. 딸아이가 7살인데요, 로스쿨 입학시험 볼 때 태어났어요.

 

김지미 변호사님은 어떤 아빠신가요?

 

박민제 집사람이 엄하기 때문에 저까지 엄하게 하면 딸아이가 더 서럽게 울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구나. 나는 엄하게 하면 안 되겠다. 나라도 부드럽게 해야 되겠다. 딸이 짜증을 부릴 때 제가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딸이 짜증을 부린다고 이야기했더니 고자질했다고 울더라고요(웃음).

 

김지미 척 봐도 엄하게 못하실 것 같아요. ‘아빠한테 그러면 안 돼’ 이렇게 혼내시는 게 아니라 사모님한테 ‘딸이 나한테 짜증 부려~’ 이렇게(웃음).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박민제 사모님이요? 아, 집사람이요?(웃음) 친척분이 장인·장모님 사는 아파트 라인에 같이 사셨어요. 그래서 소개를 시켜주셨어요. 재미없죠?

 

김지미 변호사님 굉장히 수줍음이 많고 그러시잖아요. 어떻게 결혼까지 이어지게 됐는지가 궁금하네요.

 

박민제 저는 만난 지 딱 4개월 만에 결혼했는데요. 그런데 잘한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복 받은 것 같아요.

 

김지미 첫눈에 보고 반하셨어요?

 

박민제 집사람은 계속 만날수록 좋았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해서 만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프로포즈를 했는데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집사람이 받아줘서.

 

김지미 의외로 추진력이 상당하시네요.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나요?

 

박민제 평범한 답변인데요, 이해심도 많고 배려심도 있고 대화도 통하고 그래서. 제가 집사람 얘기를 잘 안하는데. 팔불출 같아서 보기가 안 좋더라고요.

 

김지미 사모님 이야기를 하면 자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이야기하기 힘들어 하시니 그럼 개인사는 이만 패스할게요. 오늘 자원활동가 두 분이 함께 했는데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기회를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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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자원활동가) 늦은 나이에 로스쿨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민제 뒤늦게 공부하니까 그건 있더라고요. 이런 공부를 하면 나중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이런 게 느껴지니까 공부가 더 재미있고 흥미 있고 지겹지 않게 했었던 것 같아요. 의미부여가 되고 합격이후를 생각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재홍 변호사님 동안의 비결이 뭐에요?

 

박민제 거의 듣지 못하는 질문입니다(웃음). 나이에 비해서 더 많이 보는 분들이 더 많으신데 굳이 얘기하자면 생각이 없어서일까요. 실은 고등학교 때의 얼굴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웃음)

 

김지미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지금 하고 있는 뉴스레터 인터뷰는 우리 회원 아니신 분들도 많이 보시더라구요. 그런 취지에서 우리 박재홍씨도 뒤늦게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늦게 공부를 결심한 분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이라고 할까요, 한 말씀 부탁드려요.

 

박민제 로스쿨 제도 취지가 사회의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을 받아들여서 다양한 법률분쟁에 대응하게 만드는 이런 부분도 있잖아요. 저는 좀 뒤늦게 공부를 하고 다시 또 사회에 진출을 하게 됐지만 오히려 기존에 로스쿨 입학 전에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고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사회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변호사가 되기 전에 내가 만약에 변호사였으면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던 것들을 변호사가 돼서 실현할 수 있게 돼서 좋았습니다. 모든 만학도 여러분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목, 2015/09/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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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신입회원 간담회 후기 (2017. 3. 23.)

– 와인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정답다

권호현 변호사

간담회(懇談會) :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간담회가 이렇게 친근하고 부드러운 뜻을 가진 단어임을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정책간담회, 기자간담회가 입에 착착 붙는 걸 보면, 간담회란 단어는 다소 공식적이고 엄숙한 느낌이지 않은가. “와인과 함께하는”, “신입회원”, “간담회”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소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을 애써 조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변 신입회원 환영의 밤”, “민변, 나의 동료가 되라”, “하늘과 바람과 민변과 신입”, “젊은 민변, 잠 깨어오라”등 무난한 행사명이 가득한데 “신입회원 간담회”라니 으으… 와인을 붙이면 엄숙한 것이 부드러워질거라 생각한걸까.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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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부드러웠고, 간담회는 정다웠다.

20병을 쾌척하신 변호사님의 “와인 병을 따야한다”는 책임감 덕분에 주최 측의 의도와는 달리 미처 간담회 개회도 전에 병을 붉게 채우던 와인들은 사람들 면면으로 스민다. 와인은 과연 “신의 물방울”이다. 언제 어디서나 어색할 수밖에 없는 첫 만남의 공기를 부드럽게 덥혀준 건 달콤 쌉싸름한 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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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의 환영사, 회원팀장님의 민변사를 지나 위원장님들의 신입회원들에 대한 위원회 가입 구애의 시간. 사법위가 신입회원들에게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아쉬웠던 것만 기억난다.

“신입회원” 간담회인만큼 제일 중요한 “신입회원”들의 자기소개 시간. 단이아빠님의 단호하고 유쾌한 진행이 자기소개 사이사이의 어색함을 웃음으로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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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현 변호사가 신입회원 간담회에서 세 단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노동법 덕후, 마라톤, 어디서 많이 본 얼굴, 대박, 경찰, 검찰”

키워드 세 개를 쓰게 하고 그 중 임의로 하나를 선정해 자기를 소개하게 하는 방식은 짧은 시간임에도 웃고 떠들며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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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40여명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지라, 단 세 시간만으로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기는 어려웠을 테다. 다만, 그 자리에 있었던 신입회원들, 또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변을 밀고 끄는 간사님들, 변호사님들은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을 테다.

“이번 신입들은 유쾌한 녀석들이네, 기대된다”

동기들만의 시간을 갖지 못한 아쉬움은 천천히 채울 수 있을 테다. 비슷한 생각을 나누고픈 갈망을 가진 유쾌한 녀석들이 모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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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을 찍지 말자는 공감대가 산뜻했고, 자기 주변을 자기가 치우는 모습이 따뜻했다.

금, 2017/04/2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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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 한미FTA 협상문서 정보공개청구소송 최종 승소

국제통상위에서는 지난 2015. 6. 26. 한미FTA 서문 중 ‘대미 한국투자자가 한미FTA 효과를 누리는 것을 제약하는 조항을 추가하기 위하여 한미 양측이 교환한 문서’에 대해 정보공개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2016. 12. 29. 최종적으로 민변의 정보공개청구가 정당하고, 산업자원통상부의 비공개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사건번호 대법원 2016두51962】.

한미FTA 체결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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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일지 (출처 : 한미FTA공식홈페이지)

한미FTA 체결과정을 보면, 2007. 4. 2. 한미FTA가 협상 시작 약 2년 2개월만에 타결되었고, 같은 해 5. 25. 타결된 협상문 원문이 공개되었으며, 2007. 6월 추가협의가 2차례 진행된 후 같은 해 6. 30. 양국 대표단이 한미FTA에 서명을 하였는데, <2007. 5. 25. 타결된 협상문>과 <2007. 6. 30. 서명된 협정문>이 상당부분 서로 다른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단 1개월만에 협상의 결과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특히 협정문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추가되었습니다.

국내법에 따른 투자자 권리의 보호가 미합중국에 있어서와 같이 이 협정에

규정된 것과 같거나 이를 상회하는 경우, 외국 투자자는 국내법에 따른 국내

투자자보다 이로써 투자보호에 대한 더 큰 실질적인 권리를 부여받지 아니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서문에 추가된 위 조항은 미국에서의 한국 투자자 대우 조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이러한 조항이 삽입된 사실을 알리지도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해당 조항은 미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한국 기업에 미국법 이상의 FTA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이 문구는 미국 무역법 조문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이미 미국법이 충분히 미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FTA를 통해 더 큰 실질적인 권리를 부여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제통상위의 정보공개청구 과정

외교관계에서 협상이 일단락되었다가 다시 수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또한 왜 이렇게 이상한 문장이 FTA에 들어갔는지, 그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례적인 수정 과정에서 변변한 문서 하나 없이 한미 양측이 의견을 교환하고 타결된 협상문을 변경하지는 않으므로 국제통상위는 정부에 협상 과정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청구하였습니다. 2007년 변경 당시에도 정보의 공개를 청구하였으나 정부는 한미 간의 비밀유지협정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였습니다. 이후 한미FTA 발효 후 3년간의 비밀유지협정을 고려하여, 비밀해제일(2015. 3. 15)에 맞추어 30개 분야의 협상 서류 공개를 청구하였으나 정부는 다시 공개를 거부하였고 위 소송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위 소송과정에서 1심 서울행정법원과 2심 서울고등법원은 해당 정보 비공개로 인하여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이 ‘국민의 알권리 보장, 국정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정보공개로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이익보다 크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다른 나라와의 교섭 정보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외교․통상 관계에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그 근거가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2016. 12. 29.「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제4조에 해당하여 심리불속행으로 산업자원통상부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정보 비공개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는 대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즉각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측에 통보해야하며 내부적으로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 측에서 재판 과정에서 계속하여 주장하였던 내용에 불과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엄연히 사법주권을 보유하였으므로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과 별도의 협의 없이 대법원 판결을 조속히 이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금이라도 한미FTA 협상 과정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제통상분야에서 당연시해왔던 밀실행정의 관행을 타개하기를 기대합니다.

목, 2017/01/1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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