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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토론회]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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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토론회]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익명 (미확인) | 월, 2014/12/22- 10:46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와 사법감시센터는 12/22(월) 오후 1시,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결정 비판 토론회, “민주화의 산물 헌법재판소, 민주주의를 삼키다”를 개최했습니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토론회는 한상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의 사회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재정 변호사의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적 판단이기보다 재판관 8인의 정치적 판단, 헌법재판소 구성 다양화해야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법리를 적용한 사법적 판단이라기보다 재판관 8인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정치적 판단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결정문 전반부에 헌법 제8조 제4항, 정당해산 조항이 해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렵게 함으로써 정당의 존속을 보호하려는 것임을 밝히면서도, 이를 확대해석했다. 오히려 중요한 쟁점들에서 구체적 증거 제시없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강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 숨은 목적이라고 단정했다. 북한 추종세력인 자주파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강령에 도입했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것은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의 등식을 성립시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없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이석기 의원 등의 활동을 정당 전체의 활동이라고 판단하여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는데, 그 근거로 이석기 의원 등이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고 이들이 당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주도세력'이나 '장악'은 법률용어가 아닐 뿐더러, 그들의 활동을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의 활동과 등치시킬 수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와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을 주문한 것이다. 어느 법규에도 해산 결정시에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없다.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 없이 월권을 한 것이다.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거꾸로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사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막으려면 재판부의 구성을 획기적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헌법재판관은 민형사상 재판 경험이 많은 걸 요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성향의 인사들이 필요하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부의 삼권분립 몰이해, 국민 기본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사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당사자 뿐 아니라 5천만 국민들이 자기검열을 상시화해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몰이해와 감정동원에 기인한다. 집권 2년 동안 검찰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수사 결과와 재판 결과가 법리적으로 내려졌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사법적 결정을 존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입법부의 심의과정에서도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집권당의 재량적 여지가 없어지고 여야 간 협상의 여지도 없어졌다. 입법권이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합의적 대안을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집권 이후, 시민들의 결사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여왔다. 민간 결사에 관한 헌법권리와 법률적 규정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통치행위의 유불리 측면에서 억압해왔다. 

 

감정적 동원에만 의존한 통치스타일도 문제다. 대통령마다 각기 다른 정책목표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하는 보편적 제도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이분법적 정치언어, 격한 감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합리적 논리나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고, 감정적 동의 혹은 반대만을 강요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3년동안 이와 같은 권력행사를 계속한다면, 적대적 저항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리적 한계를 스스로 노출한 헌법재판소, 1인의 소수의견이 기억되고 다수의견이 수치스러운 결정으로 남을 것  


헌법재판소 결정은 무모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지침이나 유럽인권재판소의 정당해산요건의 핵심요소를 애써 배제했다. 실질적 위해의 경우도 구체성 외에 '충분한 현존성'이 필요한데, 다수의견은 이를 무시하였다. 현존성은 강령만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이를 구체적으로 정책으로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요구한다. 더구나 정당해산의 극단성에 비추어 '긴절한(pressing)' 필요성이어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군소정당에서 4년만에 제1당이 되었던 선례를 통합진보당에도 적용하는 것은 논리비약의 극치다.  

다수의견은 무모함을 넘어 비겁하기까지 하다. 다수의견은 보편적 법원칙은 엄격하게 선언하면서 그 적용은 자의적으로 완화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정당활동의 자유에 극단적인 제약을 가하면서, 오히려 이러한 결정이 소위 진보진영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임을 명분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무책임하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정신을 철저히 지켜서 헌법분쟁을 종결시켜야 그 존재의의가 있다. 그러나 정치적 소수파를 그 일부의 정치적 오류만을 이유로 반체제 세력으로 단정함으로써 종북논쟁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이번 결정에서 그나마 1인의 소수의견이 있었기에 다수의견의 문제점이 선명하게 대비될 수 있었다. 1인의 소수의견이 헌법재판소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곳임을 보여준다. 헌법재판관 구성을 개편해야 한다. 법관 자격을 확대하고, 청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국회와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 3인씩 추천하는 것이 권력분립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그렇지 않다. 국회가 재판관을 추천할 때 가중정족수(재적 2/3의 동의)를 거치거나, 대법원장이 재판관 추천시 판사회의에서 제청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겠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제2의 민주화운동에 어떤 가치와 내용을 담을지 고민해야 할 때 


박근혜 정부가 정당해산이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택한 것은 이념적 시비, 소모적 이념갈등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결정은 전반적으로 정당정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협소하게 만들고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떻게 대응해가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진보정당이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러한 결과가 나도록 여지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반유신, 유신으로의 회귀 등의 정치적 수사가 국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미시적 대응과 거시적으로 제2의 민주화운동도 필요하다. 어떤 내용과 가치로 만들것인지, 언어의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20141222_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긴급토론회

이재정 (변호사) 

많은 증거를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기대면서도 최종심 보지 않고 해산 결정 


헌법재판소가 독일 공산당 해산을 사례로 들고 있는데, 독일의 공산당 해산결정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이념적으로 매도해도 충분할 상황에서도 5년이나 숙고해 내린 결정이다. 변론기일이 종결되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이 당연할텐데, 11월 25일 최종 변론 이후 12월 19일 결정까지 짧은 시간 동안 1년 여간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제출한 17만 여 페이지의 자료를 모두 재검토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해산심판청구도 다급하게 이루어졌고, 왜 대통령이 없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헌재는 민사소송 절차를 준용했는데, 민사소송 절차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다행이지만 증거에 의한 재판이라고 보기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증거에서 배치되는 것이 있는데도 그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상당히 많은 증거를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기대고 있는데, 이 사건의 최종심을 보지도 않고 해산을 결정했다. 독일 공산당의 경우 해산 이후 12만명이 넘게 수사를 받았고 6,7천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벌써부터 그 징조가 보여 우려스럽다.  

 

 

>> 토론 요지문은 첨부파일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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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 - 지금이 바로 그때다

 

강우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들어가며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3당(정의당, 평화민주당, 바른미래당)과 주요 시민단체는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라는 구호아래 연합하여 현행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로 변경할 것을 강력히 요구 중이다. 한편,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과 자유한국당의 지지기반이었던 영남지역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 간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또한 같은 당 내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같은 선거제도 개편은 정부형태를 포괄하는 개헌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집권 2년차를 마무리하고 있는 집권 여당의 속내는 복잡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구도의 해소를 위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공약하였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집권 여당의 안정적인 의석 확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 중인 듯 보인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선거제도 개혁은 언제 해야 하는가? 역설적으로 지금이 바로 그때다. 먼저, 한국 민주주의는 촛불혁명과 제19대 대선을 통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권력의 교체 방식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제도화에 집중했었고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내용을 채우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비교적으로 평가할 때 한국 민주주의는 제삼의 물결을 통해서 민주화를 이룬 나라들 중에서 매우 성공적인 민주화 사례로 꼽힌다. 또한 제도적인 안정성과 함께 지난 촛불혁명이 보여주듯이 역동성을 함께 가진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갈등해결 기제로서 한국 민주주의는 대단히 취약했다. 한국의 사회통합 수준은 지난 20여 년 동안 OECD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 성공적인 민주주의라는 한국이 사회갈등 해결에 취약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제대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촛불혁명과 대선을 거치면서 선거제도를 포함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다. 제19대 대선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을 약속했다. 혼합형 선거제도이면서도 사실상 다수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선거제도를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바꾸어야 한다는 데 다수의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1)

 

한국 선거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두루 알듯이 한국 선거제도는 총 300명의 국회의원을 단순다수대표제를 통해서 지역구에서 253명을 선출하고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통해서 47석을 선출하는 혼합형 선거제도이다(mixed electoral system). 유권자가 한 표는 지역구에서 후보자를 선출하기 위해서 행사하고 다른 한 표는 정당에게 투표하는 1인 2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혼합형 선거제도는 학자들에 의해서 다수제의 장점과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결합한 이상적인 선거제도로 거론되어 오곤 했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선거제도 개혁을 이룬 상당히 많은 나라들이 혼합형 선거제도를 채택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혼합형임에도 불구하고 단순다수 소선거구를 통해서 선출하는 지역구 의원의 전체 의석의 84.3%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상 승자독식의 다수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지역에서 지역구 전체 표(108만여 표)중에서 새누리당은 50%에 못 미치는 52만여 표를 얻었다. 하지만 전체 12석 중에서 8석을 확보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득표 중에서 20%에 약간 못 미치는 20만여 표를 얻었지만 의석수는 1석에 불과했다.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표성에 강점이 있다. 하지만 다수제의 선거제도가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수제 선거제도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보다 명확한 책임성을 보장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수제적 선거제도는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 간에 불일치가 큰, 즉 불비례성이 큰 제도로서 많은 사표를 발생시켜왔다. 예를 들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표 비율이 49.99%,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7.09%,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46.44%에 달했다. 가장 최근 선거인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그 비율이 오히려 상승하여 50.32%에 달했다. 지난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균 1000만 표에 달하는 사표가 발생한 것이다.

 

둘째, 혼합제이지만 비례대표의 비율이 15.7%에 그치기 때문에 청년, 여성, 노동자, 농민, 장애자와 같은 소수자의 대표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여성대표를 살펴보면 민주화 이후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해왔다. 제16대 국회에서는 단지 2.2%에 지나지 않았으나 제18대 국회에서는 13.7%로 증가했다. 제20대 국회에서는 17%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2018년 기준 한국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의 순위(국제의원연맹 자료 기준)는 여전히 116위에 그쳤다. 또한 청년의 정치적 대표 또한 심각하다. 제20대 국회에 진출한 30세 미만의 국회의원은 비례대표에서 한명에 그쳤다. 40세 이하로 그 기준을 완화하더라도 국회의원 수는 두 명(지역구 1명 비례대표 1명)에 그쳤다. 또한 20대 국회에서 장애인 비례대표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소수자 과소 대표의 자연스런 결과로서 법조인·관료·정당인 집단이 과대 대표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직업을 살펴보면 전체 300명 중에서 상위 3개 집단인 정당인, 법조계, 관료가 각각 50명. 47명, 42명으로 나타나 과반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실을 생각할 때 승자독식의 다수제의 성격이 강한 현행 한국의 선거제도는 진입 장벽을 낮추어 비례성이 높으며 소수자가 더 많이 대표될 수 있는 선거제도로 개혁해야 한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가 다양한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이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권의 각 당의 이해가 걸린 이슈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원칙을 세우고 현실 가능한 실행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승자독식의 경향이 강한 현행 선거제도의 다수제적 성격을 완화할 수 있는 비례성(proportionality)을 높이는 것이다. 두루 알듯이 비례성이 가장 높은 선거제도는 완전 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이다. 완전 비례대표제를 제외하고 높은 비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Mixed Member Proportional System). 이른바 독일식 선거제도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제도는 각 정당이 얻은 정당 득표를 의석수로 연동하여 보장해주는 선거제도이다. 이 제도가 원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례대표 의석의 확보가 전제조건이다. 이에 따라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2:1로 조정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바 있다(2015년 2월).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와 같이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분리되어 선출되는 경우(병립형) 비례성이 보완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례대표 의석이 필요하다. 원래 혼합형의 취지에 맞도록 승자독식의 성격을 가진 다수제의 불비례성을 충분히 완화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다. 요컨대, 완전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는 급격한 개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한 비례성을 높이는 쪽으로 모아져야 한다. 비례대표제 배분 방식을 연동형으로 할지 병립형으로 할지 여부는 그 다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비례대표제를 확대할 수 있는 방향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한다. 첫째, 현 300석을 유지한다면 지역구를 상당히 줄여서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지역구 53석 감소(지역구 200석 대 비례대표 100석)를 제안한 선관위 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안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 둘째, 지역구 의석은 현행 253석으로 고정하고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충분히 늘리는 것이다. 이 안의 문제는 국회의원 정수 증가에 국민들의 불신이 너무 크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선거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비례성 향상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정수를 확대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현실적인 방안이다. 국회의 총예산 동결과 보좌관 공유제와 같은 특권 내려놓기를 통해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던져야 하는 질문은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개혁인가 아니면 특권의 확대인가? 현시점에서 국회의원 정수의 확대는 특권의 확대가 아니라 개혁이다. 먼저, 국회의원 정수의 확대를 통해서 의원들의 특권을 줄일 수 있다. 국회의원 정수가 늘면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시민들의 수가 준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국민 수는 17만 2천여 명으로 OECD의 다른 국가들 보다 많다. 또한, 의원 정수가 200명이었던 제헌의회의 10만여 명 보다 훨씬 많다. 국회의원 수가 늘면 국회의원 한 사람의 당선에 미치는 국민들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둘째, 국회의원 수가 늘면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아진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 그동안 대표되지 못했던 소수자가 더 많이 대표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고 새로운 인사의 수혈도 가능할 것이다. 국회의원 수의 증가와 함께 입법기능의 확대와 행정부 견제 등 국회 본연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해서 비례대표 의원 수 증가가 이루어진다면 같이 고민해야할 것이 비례대표 선출과정을 어떻게 민주화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지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와 같이 주요 정당 모두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파동을 겪었다. 비례대표 공천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소수자와 약자를 대변하는 제도적 통로의 확장이라는 비례대표 의원 수 확대의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비례성 강화가 필요한 이유는 그동안 대표되지 않았던 소수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제도적인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대통령제 정부형태가 유지된다면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두루 알듯이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혹은 법률로 정한 투표율을 달성한 후보자가 없을 경우에 최다 득표를 한 1·2위 후보자만을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제도이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 제18대 대통령선거를 통해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느 대통령도 과반 득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나가며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모든 제도는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려를 충분히 하지 않은 특정한 선거제도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은 기획했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선거제도 개혁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거제도는 정부형태와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한다. 한국이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대통령제와 정합성을 가지고 대통령제의 통치가능성(governability)을 심각하게 훼손시키지 않는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선거제도 개혁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입구에 해당하는 대표의 선출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이 이루어지더라도 시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정책으로 반영되지 위해서는 시민들의 의사에 조응하는 정당의 출현이 필수적이다.

 


 

1)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리터의 조사에 따르면 ‘비례성 확대’ 방향으로의 선거제도 개혁에 58.2%가 공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반대하는 비율은 21.8%로 찬성 비율의 3분의 1에 그쳤다(프레시안 2018.11.8).

 

참고문헌

정해식, 김미곤, 여유진, 김문길, 우선희, 김성아(2016),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 방안(Ⅲ).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화, 2019/01/0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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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의 식사나마 대접하고 싶었다. 로힝야 난민캠프에서의 일이다. 그런데 식사하는 모든 분들의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 우리의 식비를 아껴 바나나 하나씩을 함께 먹는 것으로 대신했다. 투명성이 높아진 민주정부에서의 회계처리에 이제는 익숙해져서 일부는 체념하고 일부는 민망하지만 사인을 하고 식사를 하는 관행이 어색하게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사인을 하고 식사하는 것이 우리끼리는 이제 자리 잡고 있는데 특히 공동체의 풍습이 남아있는 아시아 지역과 관계 될 때는 좀 어색하다. 그간 믿어준 신뢰를 배반하고 공공기금을 사유화한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런 절차적 번거로움은 당연히 감수하고자 한다.

촛불 정부가 들어섰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받는 그릇은 작동하고 있나? 현실에 느껴지는 민주화는 수많은 절차적 합리성으로 되돌아온다. 정부 프로젝트는 다 공개되고 절차상의 합리성을 거쳐 일정한 심사를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민주화의 과정은 길지만 성과가 체감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칼럼_181119

다중적 이해관계의 표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멀미 이외에도 민주정부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 숫자에 의한 정당성 확보 유혹이다. 숫자는 편리하다. 글로 풀어내어 설명하려고 하면 한참이나 걸려야 하는 일을 그래프 하나, 도표 하나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그 설득력에 대한 힘도 강력하다. 그것은 마치 가치 판단이 배제된 자연법칙과도 같은 무결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사람의 신념을 움직일만한 문장을 써 낸다는 것은 그 어떤 대문호 정도에게나 가능한 일인 것에 반해 숫자는 수치가 그러하다는 말 자체만으로 반박하는 자들을 입 다물게 할 수 있다. 즉각적이고 자체 완성적이다. 그래서일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숫자로 설명된다. 선거의 유효 득표수, 출산율, 기업의 시가총액, 학생의 대학입시 성적에서 sns의 팔로워 숫자까지. 이처럼 수치 자료는 일응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하에 가치판단의 대상에서조차 벗어날 때도 있다.

절차적 민주화가 수치로 환산되는 것으로 정치적 신뢰와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만 같다. 민주주의의 합리성은 수치로서만 평가되는 것인가? 매주 대통령의 지지율, 정당의 지지율이 발표된다.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 투표 결과도 공개된다. 숫자가 발표되면 많은 질문이 생략된 채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의 도구로 공론조사가 활용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문제, 대학입시안 등이 공론 조사 결과에 따라 정책 결정의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과정을 살펴보면 전문가 의존도가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공론 조사위원회 구성은 각 학회 추천으로 구성된다, 심사위원장은 전직 법관이 맡게 된다. 관리의 정당성을 전문가주의에 의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론 조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사회조사의 표본 추출의 공정성이다.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일반 시민의 의견을 대변한다. 그들의 응답 결과가 정책을 좌우한다. 그들은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층화 표집을 거쳐 선정되었다. 신고리 건설 재개의 찬반양론의 온라인 강의도 듣고 2박 3일의 합숙도 거쳐 일반 시민보다 그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알고 투표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인지(?) 공론조사 결과는 건설 재개, 건설 반대 사이의 견해차가 10%이상 차이가 나서 건설 찬성 안을 선택하는데 무리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처음에 내용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의견을 표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건설 찬성으로 의견을 바꾼 것을 알 수 있다. 공론 결과 자신의 최초 의견을 바꾼 사람들의 숫자는 적었다.

대학 입시조사에 대해서는 ‘수능성적’과 ‘학생부 종합’의 비율을 선택하는 방식이 공론 조사대상 의제로 설정되었다. 그런데 조사 결과 ‘수능중심’안과 ‘학생부 종합 중심’안의 선택에 견해차가 크지 않아 정책 결정을 특정 방향으로 결정하기 어렵게 되었다. 정책 선택의 참고가 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높았다. 공론 구성이 정책 결정의 도구로 되었기 때문에 해당 도구로 유용할 때는 수용되고 의견이 팽팽하여 정책 선택의 도구가 되기 어려울 때는 비판을 받게 된다. 공론 구성은 그 자체가 민주시민교육 효과를 내는 것이다. 그것이 정책 결정의 수단이 될 때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공론조사가 정책 결정을 위해서 해당 정책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정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공론을 구성하는 전문 지식의 대중화라는 점에서는 보완해야할 점이 여전히 많다. 공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은 정책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데 반해 그야말로 공공성 차원에서 공론을 구성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출발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론조사는 ‘조사’에 초점이 있지 않고 공론의 구성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데 조사 결과가 견해차를 넓혀 정책 결정에 편의를 주는 도구로 작동하느냐의 여부로 평가될 위험을 안고 있다.

외국에서 공론조사는 기후변화라든가 사회적 장기적 공공재의 가치에 관련된 것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로 목적을 두고 사용된다. 한국에서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안에 대한 갈등관리의 편리한 도구로서 공론조사가 활용되게 되면 민주화의 정당성 구성을 수치화하는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또 한 가지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다른 방식은 모니터링, 즉 감시 체계의 작동이다. 일찍이 에밀 뒤르껭은 감시를 통해 작동되는 사회는 기계적 유대에 의한 전근대사회에서나 가능하다고 보았다. 현대사회는 분업을 통해 각 부분의 도덕적 정당성을 스스로 수용함으로써 유기적 연대를 만들어 낼 때 통합력을 갖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도덕성이 전제되지 않는 현대사회의 위험을 지적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민주화에 대한 응답이 숫자와 감시로 모아지고 있다. 민주화의 결과가 신뢰, 합의, 합의에 기초한 정당성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가지 못하면 민주화에 대한 피로를 야기할 수가 있다. 대학도 교육의 내용보다는 취업자수, 자격증 취득에 의미를 둔다. 이미 자격증 취업, 단기적인 취업에 유용하지 않은 과목 또는 학문 전공체계는 외면을 받고 있다. 결과로서의 점수에 대한 연연함이 숙명여고 사태까지도 초래했다고 본다.

정책의 의도를 이해시키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 집행에만 몰입하게 되면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정책결정이 갈등 회피적인 차원으로 단순화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강사법 시행이 2019년 1월로 예고되어 있는데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의 짐을 개별 대학에 떠안기는 방식이 되어있다. 각 대학이 강사법 시행의 취지에 동의하지 않게 되면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시간강사에게 주는 강의를 줄이는 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 실제 각 대학은 강사법 시행에 대비하여 시간강사 의존도를 줄이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는 일찍이 최저임금 인상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가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부담을 영세 자영업주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실행되었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고용기피로 이어지고 있는 악순환을 목도하고 있다.

정책시행을 위해서는 신뢰구성의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정책 시행을 숫자에 의한 정당성 확보 그리고 갈등관리라는 차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도약이 필요하다. 신뢰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뢰를 전제로 한 정책을 실행하게 되면 일정한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신뢰 자본을 구성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월, 2018/11/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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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누가, 왜 여성과 소수자를 두려워하며 배제하는가?
어떻게 근대 공론장의 한계를 넘어 부대끼는 몸들의 공통장을 구성해 나갈 것인가?



지은이  권명아  |  정가  24,000원  |  쪽수  464쪽  |  출판일  2019년 2월 11일
판형  사륙판 (130*188)  |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총서명  아프꼼총서 5  |  ISBN  978-89-6195-198-2 03300   |  CIP제어번호  CIP2019000620
도서분류  1. 페미니즘 2. 여성학 3. 문학 4. 문학비평 5. 사회학 6. 철학 7. 정치학



근대 공론장의 주체에게 젠더화된 타자들은 ‘벌레, 홍수, 떼거리’로, 위협적이며 제압하고 다스려야만 하는 존재로 인지되었다. ‘벌레, 홍수, 떼거리’라는 표상은 문화와 지역을 막론하고 근대 체제에서 정동의 힘이 ‘이성적 주체’와 ‘다스림의 주체’에게 인지되고 포획되는 방식이었다. 이광수나 염상섭 같은 근대 공론장 주체에게 근대 도시를 무너뜨리며 범람하는 ‘홍수’는 식민지 토목 권력의 힘을 통해서 혹은 문명개화를 통해서 반드시 다스려져야 하는 ‘미개’와 ‘야만’의 상징이었다.

미투 운동의 도래는 이러한 의식주체의 정신혁명과 대결해온 페미니즘 정치사상과 발본적 유물론의 궤적 속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정신혁명의 상속과 계승이 ‘혁명’의 자리를 독식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 봉기한 미투 운동이야말로 지금까지 한 번도 도래하지 않은 신체의 유물론 정치, 그 발본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간략한 소개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는 정동과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정치의 정동 효과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이자, 온 힘을 다해 무언가 ‘다른 삶’을 만들어보기 위해 부대낀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어펙트에 대한 이론적 탐색과 실천적 개입은 하나의 몸과 다른 하나의 몸이 부대껴 만들어내는 힘·마찰·갈등에서부터, 개별 존재의 몸과 사회, 정치의 몸들이 만나 부대끼는 여러 지점들까지, 그리고 이런 현존하는 갈등 너머를 지향하는 ‘대안 공동체’에서도 발생하는 ‘꼬뮌의 질병’을 관통하면서 진행된다.

여성, 소수자로서의 신체적 경험은 페미니즘 사상이 출발하고 나아간 가장 큰 기반이었다. 정동 이론이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동 이론은 신체에 대한 새로운 유물론이자, 신체들과 신체들의 연결과 부대낌 즉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다. 그리고 신체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와 실천에 거의 유일한 지적 원천은 바로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이다. 또한 젠더 연구는 경험을 신체의 유물론의 차원에서 고찰하는 연구 방법을 축적해왔고, 정동 이론은 젠더 연구의 이러한 경험 연구 역시 이어받고 있다. 정동 연구는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긴 투쟁의 산물이다.

이 책은 정동에 대한 논의의 역사를 따라 18세기까지도 올라가지만, 주요 연구 대상은 박근혜 정권이 성립되던 시점에서 시작해서 
세월호 사건, 백남기 님 살해 사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최종적 불가역적인’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페미니즘 운동의 부상, 문화계와 문단 등 <○○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의 부상, 시사인 절독 운동메갈리아 파동, 촛불집회탄핵, 대통령 선거, 정권 교체, ‘촛불 혁명’ 이후, 그리고 미투 운동을 경유하는 시기의 한국 사회의 여러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상세한 소개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속담이 여성차별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런 
여성차별적인 표현을 뒤집어 보면 단순한 표현 이면에는 ‘여성의 불가해한 힘’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남자 셋이 모이면 시국과 정치를 논하기는 하지만, 접시를 깰 수는 없다. 시국과 정치에 비해 ‘접시’는 사소한 가정사를 비유하는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여자들은 단지 모이는 것만으로도 접시를 깰 수 있고, 울기만 해도 집안을 망하게 한다.

여성은 모이면 힘이 세지고, 그 힘은 ‘파괴적’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여성은 모이면 힘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단히 모여서 힘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그 힘은 항상 ‘파괴적’인 것으로 매도되고, 이런 매도와 가치의 전도를 통해 여성의 힘은 평가절하되거나 뿌리 뽑혔다. 이 책은 이렇게 여성의 힘이 ‘파괴적인 것’으로 매도되어온 역사가 현재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공격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한다.

여자떼의 무한한 힘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가치 정립하기

이 책의 목적은 역사적 분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역사적 분석은 바로 
여성의 연결과 연결을 통해 발생하는 힘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가치 정립하기 위한 실천적 시도이기도 하다. 여성이 모이면 힘이 세지고, 그 힘이 무언가를 파괴한다고 인류 역사를 통해 반복해서 인식했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여성에게 잠재된 힘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어도, 그 가치가 매도되고 평가절하되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면, 그 누구도 스스로의 힘을 긍정할 수 없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바로 여성의 힘을 파괴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평가하는 그 가치부여의 체계 그 자체를 전복해야만 한다. 이 책은 여성의 힘을 파괴적으로 매도해온 과정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통해 여성의 힘을 평가하고 가치부여하는 이론적인 전복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소수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타진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페미니즘이 다시 부상한 시대라고 하지만, 
‘미투운동’은 음모론, ‘꽃뱀론’으로 여전히 매도된다. 기존 권력 구조의 지배적 카리스마를 비판하는 성폭력 고발운동은 ‘진보 진영’을 파괴하려는 음험한 힘으로 모욕당한다. 여성차별적인 담론 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군중 검열’이나 무지몽매한 ‘메뚜기 떼’가 자행하는 ‘지식 테러’라고까지 공격받는다. 평생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고 전시성폭력을 비판해온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유사한 공격이 반복된다. 이 책은 현재 진행 중인 페미니즘 운동, 차별 반대 운동과 이에 대한 공격과 매도를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가 축적된 역사의 지평에서 해석한다.

여성의 잠재적 힘에 대한 공포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딜레마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는 인류 역사상 반복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마르크스까지 인간이 함께 모여서(사회적) 힘을 만드는(정치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성은 모이면 ‘파괴적’이 된다.

근대 민주주의 정치사상은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그리고 민주주의의 의미를 재구성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사상 그 자체를 통해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를 합리화했다. 여성이 참정권에 제한을 받고, 여성들의 집합적 행동이 파괴적인 것으로 가치 절하되는 것은 이런 맥락과 관련이 깊다.

근대 체제에 이르러 이런 여성의 잠재적 힘에 대한 공포는 ‘민주주의’의 근원적 딜레마로도 자리 잡는다. 여성이 근대 시민적 이성과 합리성에 미달하는 ‘감정적’ 존재라는 점에서 참정권에 제한을 받았지만 이는 단지 이성과 감성의 대립의 산물만은 아니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여성이 지닌 불가해한 힘과 지식, 열정에 대한 공포의 전형적 산물이고 이를 정당화한 것은 종교와 봉건제였다. 반면 
근대 민주주의에서 이 공포는 여성의 힘을 ‘광기’(정신의학), ‘범죄’(법학, 사회학, 범죄학, 행동심리학 등)로 규정하는 근대 지식과 ‘문란’을 외치는 근대적 윤리에 의해 합리화되었다.

성찰적인 공론장 주체 vs. 파괴적인 군중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는 역사적으로 소수집단의 힘을 억압하는 패러다임으로 확산되었다. 부르주아 남성은 모여서 ‘민주주의’를 만들지만, 하층 남성은 모이면 ‘사회질서를 파괴한다’고 매도되었고, 서구의 백인 주류 집단이 모인 광경은 민주주의의 ‘장관’으로 보이지만, 비서구 비백인 집단이 모인 장면은 ‘난장판’이나 잠재적 테러집단의 떼거리로 공포를 자아내는 우려스러운 문제적 현장이 된다.

근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론장은 모여서 힘을 만드는 것이 정당화된 집단에 의해서만 구성 가능한 것이었다. 이성과 성찰의 주체는 모여서 민주주의를 만들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떼거리들은 모여서 파괴적인 ‘군중심리’를 형성할 뿐이다. 성찰적인 공론장 주체와 파괴적인 군중이라는 범주의 차별적 구성은 여성, 하층 남성, 비백인 인종 집단 등 소수 집단의 집합적 힘을 가치 절하하고 근절하는 ‘합리적 근거’가 되었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공론장’을 파괴하는 폭도나 ‘극단주의’, 잠재적 범죄자라고 공격하는 논리는 그런 점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역사의 반복이다.



지은이 소개


권명아 (Kwon Myoung A)

“삶-연구-글쓰기의 인터페이스” 아프꼼의 래인커머(來人comer)이다.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에 재직 중이며 젠더 어펙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파시즘과 젠더 정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와 문화, 문학을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90년대 페미니즘 정치를 다룬 『맞장뜨는 여자들』(2001)은 단독자로서의 여성 주체가 부상하는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단독자로서 여성 주체가 부상했던 짧은 정치적 순간은 외환위기로 인해 급격하게 진부한 삶의 양태로 회귀했다. 『가족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2000)는 이 퇴행과 반복의 한국사를 다룬 책이다. 이후 젠더 정치로 본 한국 근현대사 3부작인 『역사적 파시즘 :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정치』(2005), 『식민지 이후를 사유하다』(2009),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2013)을 냈다. 파시즘과 젠더 정치 연구는 매혹, 열광 등 파시즘과 정념의 특별한 관계를 해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음란과 혁명 : 풍기문란의 계보와 정념의 정치학』이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 한국 사회의 정동을 묻다』(2012)와 짝을 이루는 연구서인 이유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는 이런 필자의 연구 여정의 결과이자, 다른 삶을 향한 발명과 실패의 개인적이고도 집단적인 실험의 결과이다.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는 헤이트 스피치(혐오발화)와 젠더 정치에 대한 후속작과 나란히 읽혀지면 더 좋겠다.



책 속에서 :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불법촬영은 ‘재미, 장난 또는 정신 차려야 할 일’ 정도로 합리화되고, 성적인 노예화가 사랑 혹은 동의에 의한 성관계로 정당화되기를 반복한다. 마찬가지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은 성폭력을 ‘다시 태어나야 할 일’ 정도로 정당화하고, 권력관계의 위력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넘어 애정, 헌신, 보살핌, 전심전력의 수발을 노예적으로 강요한 것을 ‘존경’에 의한 행동으로 합리화했다.

― 1부 1장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의 신체 유물론, 27쪽


페미니즘에 대한 분할 통치와 적폐에서 스스로를 면죄하면서, 국가와 자본의 힘에 편승하여 자신을 확대하는 문단 문학 주체는 종말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문단 문학이 종말을 고하는 시점마다, 문학의 정치성을 새롭게 구축하고 발명한 것은 페미니즘 운동이었다.

― 1부 3장 해시태그의 정동이 재구축한 페미니즘 문학, 85쪽


오늘날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여자떼 공포와 공론장 부재에 대한 위기감은 단지 ‘메갈’이라는 새로운 인종의 탄생에서 비롯된 것도, 그 집단의 실태 조사로 판단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오히려 최근 페미니즘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야말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역능을 문란, 퇴폐, 부적절함, 근본주의적 불순분자로 배제하면서 구축된 근대적 주체성과 공론장의 한계를 되돌아보는 ‘근본적’이고도 발본적인 이론의 재구성을 요청하는 사태이다.

― 2부 1장 여자떼 공포와 다스려질 수 없는 자들의 힘, 157쪽


이른바 혁명의 시대가 종지부를 고하고 ‘욕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어떤 선언들은 우리가 마치 갈등과 계급투쟁을 넘어서 욕망이라는 새로운 유토피아라도 발견한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욕망의 시대와 함께 도래한 것은 자유도, 유토피아도 아닌, 새로운 빈곤 사회였다.

― 2부 4장 정치경제학 너머의 빈곤, 209쪽


최근 한국 사회에 나타난 성폭력 생존자들의 해시태그 운동도 온라인 담론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거하면서, 이를 통해 기존의 물질적인 제도(문학 제도, 문화 제도 등)에 저항하는 오큐파이 운동의 한 사례로 자리매김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1992년부터 계속 진행하고 있는 수요 집회 역시 점령당한 신체를 애도하는 저항적 오큐파이 운동의 세계적인 사례이다.

― 3부 2장 증강 현실적 신체를 기반으로 한 반기념 정치 구상, 294쪽


이렇게 홀로 여럿인 주체 양태는 응답을 듣지 못한, 아니 응답에 대한 간절함에 하나이자 유일한 자신조차 상실한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으니, 스스로 자신의 삶과 폭력의 경험과 그 모든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평생 지속된 결과 김복동이라는 한 존재는 묻는 자, 응답을 찾는 자, 자신의 죄를 묻는 자, 살피는 자, 자신을 보살피는 자, 전생의 복동, 이곳저곳의 전장으로 끌려 떠도는 복동, 아이를 꿈꾸던 복동, 전생에 아이를 잃은 복동 … 등으로 여럿으로 나뉘고 자리를 바꾼다.

― 3부 3장 홀로-여럿의 몸을 서로-여럿의 몸이 되도록 하는, 시적인 것의 자리, 301쪽


마음을 놓을 수 있는 마주침에서 촉발되는 안심의 정동이란 비참에서, 불안에서 놓여남을 의미한다. 마음을 놓는다는 것은 이러한 놓여남의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마음을 놓는 과정, 불안에서 안심으로 이행되는 과정은 수동에서 능동으로 변형되는 과정이며, 낭시의 표현을 빌자면 영혼이 펼쳐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 4부 1장 마음을 놓다, 352쪽


문제는 임박한 파국, 혹은 정동적 현실이 전송하는 신호들(불안과 위기, 혹은 특정의 정념들/수동들)을 통해 또다시 소유자로서의 주체라는 위치를 다시 공고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공통적인 것을 발명할 수 있는, 다른 신체들을 사유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 구축된 신체에 더 이상 ‘인문학’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다고 해도 그리 슬퍼할 만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 4부 5장 정동적 전환과 인문의 미래, 421쪽



저자 강연회 : “여자가 모이면, 뭐라도 바꾼다!!
― 여자떼, 여성 집단행동의 역사”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출간을 기념하는 저자 강연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합니다.

◆ 강연 주제 : 여자가 모이면, 뭐라도 바꾼다!! ― 여자떼, 여성 집단행동의 역사
◆ 강연 : 권명아 (『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지은이,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일시 : 2019.2.25.(월) 저녁 7시30분
◆ 장소 :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 신청하기 : http://bit.ly/2BzfDYV



함께 보면 좋은 갈무리 도서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권명아 지음, 갈무리, 2012)

이 책은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지난 20여 년간의 변화와 낙차(落差)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저자는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더불어서 시대를 초월한 여성 문인들의 삶과 작품들을 새롭게 조명하며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적인 것’을 둘러싼 변화를 통합적이며 힘 있게 그려내고 있다.


『정동 이론』(멜리사 그레그, 그레고리 J. 시그워스 엮음, 최성희, 김지영, 박혜정 옮김, 갈무리, 2015)

아프 꼼 총서 2권. 정동 연구라는 이제 막 발아하는 분야를 정의하는 시도이자, 이 분야를 집대성하고 그 힘을 다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정동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정동이란 의식적인 앎의 아래와 곁에 있거나 그것과는 전반적으로 다른 내장[몸]의 힘으로서, 우리를 운동과 사유, 그리고 언제나 변하는 관계의 형태들로 인도한다.


『캘리번과 마녀』(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자본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남성이 임금 노동자로 탈바꿈된 것 만큼 여성이 가사노동자이자 노동력 재생산기계로 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는 페미니즘 역사서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닦았던 이 폭력적인 시초축적 과정에서 마녀사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공식적인 역사서나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쓰인 역사책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산파 여성들·점쟁이 여성들·식민지의 원주민 여성 노예들·여성 마술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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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2/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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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시대와 민주주의

 

포퓰리즘 시대와 민주주의: 정치의 실패인가 전환인가?

 

포퓰리즘은 더 이상 불편한 낙인으로 봉인할 수 있는 과거의 유령이 아닙니다.

포퓰리즘은 현대 정치와 사회질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현재의 떨림이자, 비극과 희극 사이 우리가 선택해야할 미래로 가는 서막일 수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가 함께 준비하는 이번 토론회는 국내외에서 확산되는 포퓰리즘 현상들의 원인과 흐름, 그리고 이 현상과 얽혀있는 ‘위기’의 의미를 진단하고, 이미 확산되는 포퓰리즘에 대해 시민사회운동, 정당, 연구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실천적으로 논의하는 작은 출발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8년 11월 30일(금) 오후 2시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사회

김윤철 / 참여사회연구소, 경희대

 

패널

진태원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손희정 / 문화평론가

장석준 /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장선화 / 한국외대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승원 /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

 

문의

참여사회연구소 02-6712-5248, [email protected]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 [email protected]

 

화, 2018/11/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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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샹탈 무페는 이 책을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내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좌파가 시급하게 이해’하고, 지금이 좌파가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독점을 깨고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알리려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무페는 왜 이토록 시급한 주장을 좌파를 향해 펼칠까? 무페에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해 온 지난 40여 년간 (무페는 자신의 분석을 서유럽으로 제한한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치적 무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이 무능력한 정당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신자유주의 아래 금융 자본주의의 강제적 명령을 수용하면서, 정치를 우파와 좌파 엘리트 집단 사이 ‘중도적 합의’로 축소해 버렸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19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쓸 때만 하더라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무페의 생각은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해체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갇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 추구를 포기하고,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촉진했을 때, 무페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 한겨레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변질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좌파의 새로운 과제를 주장한다. 이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무능력한 기존 좌파의 회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통제불능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확산, 부채 증가, 나쁜 노동의 확산,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등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점점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약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사회적 약자 차별 등 반인권적이고 배타적인 가치를 내세워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주적 가치를 복원하는 대안 헤게모니 세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전통적 좌파처럼 노동자 계급을 절대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노동자 계급’ 정체성은 다양한 가치와 어떻게 접합되는가에 따라 민주적 가치와 부딪힐 수도,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세계시민의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거나, ‘국민’과 결합하여 가장 폐쇄적인 정체성이 되는, 즉 좌·우파 포퓰리즘 어느 특성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전 지구적 신조와 헤게모니가 유기적 위기에 처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도전받는 ‘포퓰리즘 계기’에 좌파가 전통적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정치전략을 통해 시급히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전략은 곧 좌파 포퓰리즘 정치이다. 우선 무페는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는 라클라우의 정의를 따른다. ‘국민’, ‘민족’, ‘인종’처럼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정체성과 결합한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사회적 배제와 차별화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시도라면, 좌파 포퓰리즘은 이에 맞서는 전략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한가지 정체성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대중주권을 내세운다. 이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로 끊임없이 확산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 구성된다. 따라서 좌파 포퓰리즘은 전체주의적 경향의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절대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반본질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추진한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이름’이 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그리고 이 특수한 좌파 포퓰리즘의 이름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대중’은 소유적 개인주의 및 대의제의 자유주의와 끊임없이 경합하며 탈정치와 과두제의 포스트 민주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유럽을 먼저 장악해가는 우파 포퓰리즘이 대중을 사로잡은 공감 방식이다. 이것은 좌파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좌파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그 지지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우파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은 방식에서 교훈을 얻기를 꺼려했다. 무페는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물론, 혐오와 차별이 보편 가치가 될 수 없기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수사적 표현은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파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대중과 정서적 공감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포퓰리즘의 이론적 논쟁은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논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훈고학적 논쟁보다 어떤 이름으로 드러나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 포퓰리즘 정치의 출발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의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분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모든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2019년 3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이승원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월, 2019/03/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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