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다함께 만들어 온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원정대]

지역

다함께 만들어 온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원정대]

익명 (미확인) | 금, 2015/12/04- 14:53

2012년 7월부터 서울KYC에서 상근하고 있는 조인숙 활동가입니다.
상근활동을 시작하자 마자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 이 한양도성원정대 프로그램이었어요.
꼬맹이들은 오로지 우리 첫조카 주원이녀석밖에 모르는 저인데,,,아이들이랑 어른들이랑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라닛~!!
아마도 뭐라도 조금 알고 시작했더라면 쉽게 맡아서 하지 못했을것 같아요.
아무것도 몰랐기에 뭣모르고 시작한 한양도성 원정대 프로그램이 어느덧 4년째입니다.

한양도성원정대는 말은 어마무시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참으로 아기자기 합니다.
서울KYC가 만들어질때 시작했던 역사도 유구한 '좋은친구 만들기'의 핵심~~멘토링 프로그램...
한양도성과 멘토링 프로그램을 접목해서 매년 한뼘씩 성장해온 프로그램입니다.
멘토링과 한양도성...너무 어려웠는데,
이제 4년 해보니, 정서적 지지, 유대감 형성, 그리고 서로의 사회적 성장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4년을 진행한 한양도성원정대가 이번주 토요일 마지막 회차를 남겨두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한양도성원정대에 참여하고 있는 도성길라잡이선생님들 모습도 소개하고 싶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토요일 아침잠을 포기하고 나온 원정대 선생님들...
사무국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간식 70인분과 그날그날 필요한 교구들을 챙겨서 흥인지문 앞으로 갑니다.
과일, 생수와 같은 간식과 필요한 교구등을 아침에 운반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작년까지는 차있으신 선생님이 직접 운반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는데,
올해는 택시를 이용해서 운반을 합니다. 근데, 택시잡기 너무 어려워요.
짐이 너무 많다며 휙휙 지나는 택시가 원망스러울때까 많았죠.
그래도 요즘엔 카카오택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장소에 도착하면,
선생님들께 운영메뉴얼(잘 아시죠? 순성놀이때마다 사전답사때 손에 들고 다니던 그 메뉴얼)을 브리핑 합니다.

전체 프로그램과 동선은 제가 총괄을 하죠..
저 혼자는 절대 아니고, 사무국에서 여러의견을 받아서 1차 정리를 하고
그 다음 원정대 선생님들과 평가활동을 통해서 동선과 프로그램 조율을 합니다.
매번 같은 포맷이지만, 내용은 매회 다르게 진행합니다.
그래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모이기도 하고, 흥인지문앞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그리고선 팀을 나누고 장소를 확인하면, 신한은행 봉사자들이 오기 시작합니다.


봉사자들을 모아서 오리엔테이션을 합니다.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소개, 주의사항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주의사항은 휴대폰 주지말기, 내 자식은 때릴수도 있으니, 내 조카나 친구네 아이처럼 대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해서는 어른도 상처받을수 있다. 미리 예방주사 한대 뙇 놔드립니다.
그리고 따끔하게 주의를 주라고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반드시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이 전부일수 있으니, 더 넓은 세상도 알려달라는 부탁도 함께 하죠.
이야기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때문에, 대화가 훨씬 잘 풀립니다.  



아이들과 첫만남...설레기도 하겠지만, 성인입장에서도 긴장될 것예요..
특히나 결혼을 하지 않은 봉사자들은 더더욱 어려울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어렵겠지요..처음보는 형, 언니와 몇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데...


그래서 만나자 마자, 아이스브레이킹을 합니다.
명찰로 짝꿍 찾아 멘토-멘티 맺기는 정말 힘듭니다.
여자아이들은 여자짝꿍 아니면 안하겠다고 저~뒤에서 삐쳐있으면
우리샘들이 달려가서 달래고 얼르고 하여 프로그램에 참여시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명찰에 미리 표시를 해서 여자봉사자의 명찰과 고학년 여자아이들이 짝꿍이 될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성별이 딱 안맞을수도 있지만, 확실히 그런 불만은 줄어들어 처음부터 엇나가는 일은 확실히 줄어들었습니다.
이것도 다 우리 선생님들의 아이디어~~

서먹한 인사를 마치면, 퐁당퐁당노래에 맞춰 손등치기로 이어집니다. 마지막 가위바위보에서 이긴사람이
아동이든 성인이든 진사람을 지켜줘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문열기 놀이를 합니다.





동동동대문을 열어라~ 남남남대문을 열어라...12시가 되며는 문을 닫는다~
문지기에 걸린 짝꿍은 문옆 좌우의 성벽이 됩니다.
놀이가 진행될수록 성벽이 좌우로 길어지고, 그러면 문을 통과하는것이 쉽지 않아지죠..
마무리는 성곽도 설명하고, 문의 의미도 설명하면서 마무리..
이렇게 한바탕 놀고나면, 멘토-멘티들이 확실히 친해집니다.



이렇게 마음의 벽을 살짝 낮추어가면서, 원정대는 다음 장소로 출발합니다.
지난번에는 동대문 역사관으로 갔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만들어놓은 지도를 통해 [한양도성에는 누가 살았을까?] 하는 문제를 던져줍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도 설명합니다. 조선은 어떤 나라니? 라고 물으니
한친구가 3.8선이 없는 나라요..라는 뭉클한 답변도 합니다.
그리고선 캐릭터 스티커를 통해 한양도성의 동서남북에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이들도 성인들도 재밌어합니다. 저학년 친구들도 쉽게 집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나선 나만의 에코백 만들기를 합니다. 수선전도를 색칠하면서 한껏 개성을 뽑내지요.
보현봉에 화산이 터진 모습을 표현하는 친구도 있고, 그림 옆으로 만화캐릭터를 그리는 친구 등등 ...
기발한 그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인기프로그램, 풀피리 배우기도 있습니다.
정신없이 뛰놀던 아이들도 김완식샘의 풀피리 한곡이면 모두 초집중...
그리고 다들 풍선조각을 들고 소리내기 삼매경에 빠집니다.
다들 어지러울 정도로 풀피리에 도전을 하지요.
이때 필수 준비물은 상품입니다. 상품을 걸고 60명의 멘토-멘티가 도전을 하는데,,,
대체로 소리내는것만으로 만족할 때 즈음, 풀피리 신동 탄생~ 비행기 노래를 풀피리로 불렀습니다.
소리내기도 힘든데..노래까지...풀피리 신동~인정~!!





이렇게 집중의 시간을 이어서, 본격적인 한양도성 탐방에 나섭니다.
성곽구조는 무엇이고, 그리고 여긴 어디고..등등...
그러나, 집에 갈때쯤엔..다들 한양도성에 다녀갔다..정도만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만 남습니다.^^*



한양도성탐방을 마치고 마무리 프로그램으로는 마음나누기를 합니다.
서로 즉석사진도 찍어 나누어 갖고, 서로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
예쁜 그림을 그려주는 친구도 있고,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는 친구, 또 만나자는 친구
꿈을 이루라고 응원해주는 큰짝꿍의 마음...
요시간이 제일 뭉클합니다.





서로의 마음도 나누고 나서는 점심까지 먹습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미리 지역아동센터에 확인을 하고 메뉴를 정합니다.
대체로 돈까스와 불고기를 먹습니다. 불고기는 꼭 한우로~
사실 자장면에 탕수육 한번 먹이고 싶은데, 60~7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만한 중국집을 찾기가 어렵네요.  
뭐가 제일 재밌었니 ? 물어보면, 제각기 가방색칠하기, 스티커 붙이기, 문열기 놀이, 풀피리 등등...개성강한 아이들 개성있는 답변





이렇게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시 아이들은 센터로 돌아갑니다.
헤어질땐 역시 늘 아쉽습니다. 식당앞에서 짧지만 인상깊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짧은 시간동안 이런 관계맺음이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생뚱맞게도 우리 모두가 외로웠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정말 쌩뚱맞죠?)

서로 아쉬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번 프로그램도 잘했구나 할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지속적인 만남이 될수 있도록 하면 더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큽니다.

2015년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원정대
어느덧 마지막 회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에는 목멱 회현자락 발굴현장과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에 가려고 합니다.
얼마나 활발한 친구들을 만날까? 어떻게 좋은추억거리를 만들어줄까?
여전히 어려운 고민입니다.

마지막까지 즐겁고 신나게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 원정대] 꼬꼬꼬우~하겠습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2017년 올해로 여섯번째를 맞이합니다.

다음달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한양도성문화제 기간 중
10월 15일 토요일에 만날 수 있는 순성놀이!
백악, 낙산, 목멱, 인왕으로 이어지는 18.6km 한양도성길을 걸으며
역사도시 서울의 새로운 매력을 느껴볼까요?

그리고 한양도성이 세계유산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도 함께합니다.



순성놀이에 보다 많은 시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어느것이 제일 맘에 드나요?
매년 디자인은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컨셉은 "도심에서, 우리 일상과 함께하는 한양도성"입니다.
그게 느껴지시나요? ㅎㅎ

포스터가 제작되면, 발송과 부착 작업을 합니다.



관련 지자체, 각종 단체와 기관들 그리고 회원여러분들께 발송을 했습니다.
포스터를 딱 잡아서, 봉투에 넣고, 양면테잎으로 봉하고 우체국에서 발송 끝!
포스터 접다가 지문이 닳을수도 있지만,
이순 회원님을 비롯하여, 저녁에 운영위원회에 참석하러 오신
운영위원님들까지 합세하여 뚝딱 해치웠습니다.
포스터 잘 받아보셨나요?
잘 보이는 어딘가에 꼭 부쳐주세요! 인증샷도 사무국으로 보내주시면 좋겠어요 ㅎㅎ



순성놀이 신청하게 된 동기 "길거리 포스터"
작년부터 이게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한명더 한명더 하는 마음으로!!! 일주일 단위로 작업하러 길거리로 갑니다.
올해 첫작업은, 외사산 중 하나인 북한산 주변입니다.
처음으로 이곳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백승호 회원님 덕분이었습니다^^



160번 버스 종점부터, 등산로 입구의 각종 아웃도어 가게들!
한양도성 세계유산 등재를 함께 응원한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다 붙여주셨습니다.



뚜벅이 포스터 부착러들을 위한 패션! 쨘~
추석 연휴 전날, 이영란+이순 회원님과 출동했습니다.
사무국 활동가들과 2인 1조 팀을 나눠서
북정마을과 성북동 삼선동 일대 + 계동주변과 북촌, 서촌 일대를
샤샤샥 부착하러 갑니다.



성북동은 자주가는 식당과 술집들에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북정마을 할머니도, 지나가던 주민도 관심있게 봐주시네요 ㅎㅎ



날씨는 딱 순성하기 좋은날! 하늘은 파랗고 바람도 살살 불어 좋네요.
포스터 부치기엔 살짝 더운 날씨였지만요^^



올해 순성놀이 포스터는, 가을 수채화 느낌으로 만들었습니다.
건축가 임진우님께서 서울시 한양도성도감에 스케치 재능기부를 해주신 그림을 바탕으로
가을 느낌을 살짝살짝 묻혔는데,  예쁘죠?
어디에 부쳐놔도 어울리고 딱 보기 좋더라구여 ㅎㅎ



포스터 부착 작업 함께 해주신
이순, 이영란, 백승호 회원님!! 부착의 장인으로 승격되셨습니다.
테이프와 칼의 절묘한 손놀림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벽에 딱 부치는 모습! 놀랍습니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한양도성에 오다가다, 보실 수 있도록 현수막도 달았습니다.
현수막은 서울시의 협조로 사전 승인을 받고 낙산 정상에 두개 달았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라 바람이 세네요. 바람 구멍도 잘 뚫어놨습니다.
혹시 지나가다 현수막이 늘어져있으면, 바짝 조여주세요~



현수막을 부착하지 못하는 곳에는, Y배너를 설치했습니다.
저기는 어디일까요?
흥인지문, 창의문, 말바위 쉼터입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받침대에 물을 가득 채워넣어야 하는데....
저 물을 어디서 가지고 갈까요?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펫트병에 담에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갑니다.. 엄청 무겁네요 ㅜㅜ
그래도 여럿이 힘을 합치면 짠~ 멋지게 펼쳐집니다.
누구와도 어울리는 한양도성 포스터. 현장에서 보면 더더욱 예쁩니다.  



올해는 "드디어" 낙산구간의 끝이며, 목멱구간 시작지점!!! 광희문 앞에도 설치를 했습니다!

많이 봐주시고, 사진도 찍어가서 널리널리 알려주세요~




가열찬 홍보가 이뤄진 기간이 마침 추석 연휴 전날 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붙여줄테니, 이걸 써달라고 하셔서 ㅎㅎㅎㅎ
오랜만에 손글씨를 썼네요~
힘들었지만, 하루종일 순성놀이 예쁜 포스터와 함께해서 그래도 뿌듯했습니다.

순성놀이를 기획하고, 사전답사를 다니고, 회의를 열고, 각종 물품을 준비하고!!
이와 함께, 더 많은 시민들과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를 느끼고자!!
더 많이 시민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양도성 안팎으로 우리 서울KYC 회원들이 뛰어다닙니다!
웃음가득한 얼굴로 포스터 부착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지문이 닳도록 테이프를 뜯고, 착착 붙이고 ㅎㅎ
즐겁게, 좋아서 사서 하는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 순성놀이 많이 와주세요. 함께해주세요^^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에 참가하면
새로운 서울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의 매력에 빠지게 될겁니다.
함께 할까요?

2016 순성놀이 신청하러가기 >> http://kyc.or.kr/sunseong/


**포스터 수량 문제로, 모든 회원들에게 발송하지 못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많이 즐겨주세요^^

#모두함께하는_순성놀이 홍보   다음은 어디로가서, 무엇으로 할까요?

#순성놀이_준비하는_사람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6/09/20- 18:28
385
0

[체인지리더 소개]

- KYC 체인지리더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를 상상하고 창조합니다.
- 2009년부터 시작된 체인지리더 활동 : 청년정책 FGI(Focus Group Interview), 서울시장공개채용프로젝트,
커피파티, 20‘s 정책 Choice, 정부 청년정책 모니터링 및 기사 작성
- 2016 체인지리더 6기는 청년문제들을 살펴보는 학습과 청년문제 해결을 상상하는 테이블 토크를 진행합니다.
- 2016 체인지리더 6기는 기본교육 수료 후 내년 4월 20대 총선에서 유권자운동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 2016 체인지리더 6기는 더 나은 청년들의 삶을 만들기 위해 학습하고 행동하는 청년활동가입니다.

헬조선의 다른 이름은 불안한 미래, 불평등·불공정한 사회입니다.
체인지리더를 통해 청년들의 현실을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은 청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체인지리더가 되어주세요!



[체인지리더 6기 활동과정]





☑ 기본교육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이야기하며,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신을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가 헬조선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배워서일까요?
그보다는 우리의 현실이 불평등, 불공정, 불안으로 둘러싸여 있어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포기해야 할까요? 개인의 노오력으로 내 살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포기하지 말고, 함께 청년 중심의 경제, 청년정책, 정치를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청년활동가들의 이야기도 듣고,우리의 생각을 모아 해결 방법을 상상해보는 테이블 토크도 함께 진행합니다.

기본교육은 테이블 토크 1시간+강연 2시간으로 구성됩니다.

☑ 청년참여 캠페인

선거는 청년들에게 기회의 공간입니다.
체인지리더 6기는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맞아 다양한 청년 유권자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합니다.
헬조선이라는 자조를 넘어 힘겨운 현실의 변화를 만드는 유쾌한 활동을 기획합니다.
더 많은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위한 테이블 토크를 기획·운영하는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합니다.
   
☑ 체리 활동 수료식

기본교육 8강을 수강하고 체인지리더로서 청년세대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활동한 청년들을 위한 축하자리입니다.
4개월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우리가 가져온 변화가 무엇인지를 함께 보며 희망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체인지리더 6기 수료증 및 자원봉사 확인서 등이 발급됩니다.

[기본교육 세부내용]

- 일정 : 1월 21일 ~ 2월 18일
[참가신청]
- 참가대상 : 함께 공부하고 행동하고 싶은 모든 청년!
             청년이 모여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은 청춘남녀 누구나
             대학생, 취업준비생, 직장인(사회초년생)
- 신청 방법 : 구글 양식으로 신청(신청하기) 또는 한글/워드 양식 작성 후 이메일 신청([email protected])
 신청서 파일(한글/워드)

- 모집 기한 : 2015년 12월 22일(화) ~ 2016년 1월 19일(화)
- 등록 절차 : 신청서 접수 -> 수강료 입금 -> 확인 문자 -> 등록완료
              * 수강료를 입금하셔야 등록이 완료됩니다.
- 수강료 : 5만원(서울KYC회원 40% 할인, 3만원)
           [신한은행] 100-014-292108  예금주 : (사)KYC한국청년연합
           교육시작 후에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 교육 수료 조건 : 기본 교육 7강 중 5강 이상 참여

[특전]

* 기본 교육 수료시 : 체인지리더 기본 교육 수료증 발급
* 체인지리더 활동 참여시 : 체인지리더 활동 증명서 발급, 자원봉사확인서 발급,
우수활동자 NGO 및 국회 인턴 지원시 추천서 발급 가능(요청시), 모임공간 지원(KYC 성북동 사무국)

[문의]

- 주최 및 주관 : KYC(한국청년연합)
- 문의 : KYC 사무국 / 02-2273-2205, [email protected],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84-5 5층
- 교육장소 : 서울시NPO지원센터(을지로입구역 1-1번 출구, 도보 5분 이내)




*체인지리더 6기 신청하기(클릭!)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화, 2015/12/22- 17:53
383
0
역사의 현장을 평화와 인권의 관점으로 해설하는 평화길라잡이 회원들의 조금은 특별한 여행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주!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제주4.3 평화여행.
눈물겹게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정 : 11월12일(토)-13일(일) 1박 2일
-1일차 : 4.3평화기념관. 낙선동 4.3성터. 반못굴. 북촌너분숭이 기념관. 순이삼춘비
-2일차 : 큰넓궤. 잃어버린마을(무동이왓). 헛묘. 섯알오름 학살터. 알뜨르비행장. 백조일손지묘.



제주 4.3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사람이 죽었고,
이에 대해 사과와 책임 요구를 묵살!
3월 10일 경찰, 법원, 행정 조직 등 도민의 95%가 참여한 총파업
이때부터 레드아일랜드 '빨갱이섬'으로 낙인찍혀 대대적인 구금 검거 작전이 일어난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350명의 무장봉기!
5.10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촉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 중지!
무장대는 이렇게 주장하며 경찰지서,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하며 봉기를 시작했다.
5월10일 단독선거! 제주도의 세개 선거구 가운데 두개 선거구에서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면서,
남한에서 제주도가  유일하게 5.10선거를 거부한 지역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제주 사태를 인식하고
'해안선으로부터 5㎞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총살하겠다'는
포고문 발표, 그 후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졌다.  
11월 게엄령을 선포하면서 중산간마을에 이른바 '초토화작전'을 벌인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해안마을 주민들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1949년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피신해있던 주민들에게 사면정책을 발표해 산을 내려오게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1954년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무장대와 토벌대사이의 무장충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 마감되었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13,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고,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여전하다.
왜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누가 죽었을까..? 어디에서 죽었지...? 왜 죽어야 했을까..?
4.3은 왜 그토록 오랜시간 잠들어있었을까..?
제주는 이 모진 세월을 어떻게 버티고, 견디고 있었을까...?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던 제주.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제주.
어딜가더라도 붉은피로 물들었던 고통스러운 제주
제주가 기억하고 있는 4.3의 현장.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가로세로 500m 크기의 선흘리 낙선동 성터.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폐허가 된 마을을 복원하면서 쌓은 성으로
주민들과 무장대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전략촌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성을 쌓고, 보초를 서는것은 노약자와 여성들의 몫이 되었다.
낙선동성에서 천여명의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좁은 곳에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니 짐승우리같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수많은 성터는 모두 허물어지고, 이곳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초소도, 통시(화장실)도, 함바집도  깨끗하게 단장했다. 그래서 살만한 곳인가?
고통스러웠던 현장이 새돌로 다시 만들어져 말끔해졌다. 그래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을이 초토화되자 일부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피난했지만,
기르던 가축과 수확한 곡식을 두고갈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임시 피난처를 찾았다.
'며칠만 숨어 있으면 사태가 끝나겠지'하는 생각으로 찾아든 곳이 숲이 우거진 천연동굴이었다.
선흘곶 지역의 반못굴(도틀굴), 주변의 목시물굴, 다랑쉬굴 등등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토벌대를 피해 조마조마 숨죽이며 지내던 동굴들이 여기저기 그대로다.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이 은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 이곳은 영화 '지슬'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낮은 자세로 기어서 입구를 들어가면 갑자기 넓고 높은 공간이 나온다.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
청년들은 물론,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토벌대를 피해 이곳에서 숨어살아야했다.

토벌대의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기도 하고 식량이나 물을 나르기도 했다.
아직도 동굴에는 항아리 파편 등 당시 생활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50일이 넘도록 동굴생활을 했다고한다.
굴이 발각되면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총살당하거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다.
큰넓궤에서 생포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정방폭포에서 대부분 학살되었다.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숲풀을 헤치며, 겨우 도착해야 만날 수 있는 곳.

그 당시는 아마도 더 찾기가 어려웠을 그런 곳에 위치해있다.
혼자 오면 과연 찾아갈 수 있을까?
큰넓궤, 도엣궤가 있는 땅은 이제 사유지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살았던 동굴.
우리는 그 동굴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역사의 현장이 방치된채 있는 것이 지금의 4.3의 현실인것인가?



순이삼춘의 무대가 된 북촌리 마을.
북촌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살인. 집단학살.
이곳은 한때 무남촌이라 불릴 정도로 '무장대가 될지도 모를 남자들'이 모조리 희생된 곳이다.
평생 순이삼촌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오누이를 잃었던 옴팡밭의 기억.
지금 그 옴팡밭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있다.
붉은 피로 상장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밤에는 무장대가 출몰하고, 낮에는 순경이 출몰하여
“폭도에 쫓기고 군경에 쫓겨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조천읍 북촌리,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
4.3의 참혹함과 고통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순이삼촌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산간마을 초토화작전으로,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타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동광리에서 가장 큰 마을에 속하는 무동이왓마을도 잃어버린 마을이다.  
모든것들이 사라져서, 마을 자체가 무너져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무동이왓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서 큰넓궤로 피신했다.
제주 곳곳에 300여개 정도 '잃어버린 마을'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방으로, 부엌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에 돌탑이 쌓여있다.
마을이 있던 흔적을 알려주는 대나무와 연자방아터, 학살터..
땅은 그대로인데, 이곳에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4.3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있어 살 수 없는 땅이라서 그런 것인가...



무등이왓에서 가까운 곳에 지슬밭을 지나가다보면 헛묘가 나온다.
헛묘는 가짜묘다.  봉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시신이 없다.
정방폭포에서 사살된 사람들. 시신 수습을 하지 못해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칠성판위에 입던 옷을 넣어서 묘를 세웠다고 한다.
봉분은 7기인데, 9분이 모셔져 있다고 하니 합장묘인 것도 있다.
시신을 못찾아 행방불명된 억울한 죽음. 유가족들의 피맺은 한이 만들어낸 헛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다.
제주에서도 4.3때 체포된 사람들, 이른바'불순분자'를 검속한 후
섯알오름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계엄군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한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정되었다. 섯알오름은 유일하게 남은 학살터이다.
섯알오름은 일본군이 1944년 말부터 대정읍 ‘알뜨르’ 지역을 군사요새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 창고 터였다.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시설, 송악산 해안동굴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패망후  미군에 의해 오름이 폭파되면서, 절반이 함몰되어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구덩이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진다.

전쟁이 끝나고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았는데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함께 모아 묘를 만들어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 백조일손지묘이다.
"조상이 다른 132명이 죽어, 뼈가 엉퀴어 하나되었다 "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구분할 수 없어 합동제사를 지내기 위한 유족들의 마음이었다.
5.16쿠데타 당시에는,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이유로 묘비가 훼손되기도 했다.



제주4.3사건으로 붉은색이 덧씌워진 제주도민들은
사건 이후에도 냉전과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각종 조작간첩사건이 만들어지고, 연좌제로 인해 고통이 되물림되었다.
군사독재시절 은폐, 왜곡... 강요된 침묵 속에서 4.3의 진실은 드러낼 수 없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조금씩 4.3이 세상과 만나게 되었고
민주화이후 숨죽여온 유가족들의 절규가 알려지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이 돌아오고, 억울한 죽음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직도 여전히 4.3은 진행중이라고 한다.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려온 고통의 시간. 아직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워
4.3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람들.
미신고되거나 이름대신 유해번호로 남아있는 미확인 희생자들
국가 예산이 중단되어 유해발굴을 하지 못하는 현장들...
국가가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한 4.3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감요된 침묵의 시대, 울음도 토해내지 못했던 시대.
군경 토벌대에 학살당한 사람, 무장대에 학살당한 사람....
제주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제주4.3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왜 이 비극적인 사건에 4.3이라는 무장봉기 날자를 붙이게 되었을까?
그 날짜에 가려진, 긴긴 고통의 시간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아픔의 치유와 해결을 오로지 제주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될 것이다.
비참한 4.3의 역사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동안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4.3의 흔적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보지않고, 제주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방문했던 4.3유적터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곧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4.3의 흔적이 지워지게 해서는 안되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더 자주,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가야겠다.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찾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더이상 국가폭력으로 비참하게,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4.3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려고 한다.

폭도, 산사람들, 무장대, 빨갱이라 불렸을 그들을 제대로 알아주기까지.
제주4.3의 제대로된 이름을 찾는날까지!!  우리들의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11월 12일 박근혜퇴진! 백만촛불이 타올랐던 광장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함덕해수욕장에서 우리들만의 '함성'으로 달랬습니다.


평화여행에 함께해주신 회원님들 고맙습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6/11/16- 16:00
382
0

2017 근현대사 아카데미 “광장민주주의를 찾아서"

지난 겨울, 광화문광장에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의'가 정치를 통해 구현되지 못하고 광장에서 터졌습니다.

지난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이 주인인 세상!!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큰 물길을 만들어 온 것은
언제나 백성.국민.시민들이었습니다.
폭압에 굴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서 외쳤던 함성은
미완의 혁명일지라도, 폭발적인 힘을 일으켜
시대정신이 되어 역사의 변화를 만들어왔습니다.

87년 6월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광장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민주주의, 오늘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관심있는 여러분들! 촛불시민들! 광화문의 친구들
2017 근현대사 아카데미에 함께해주세요.


<이미지는 한겨레신문에서 가져왔습니다>


2017 근현대사 아카데미 “광장 민주주의를 찾아서”

1) 모집 마감 : 5월 18일(목) 오후 6시
2) 모집 대상 : 근현대사에 관심있고, 배우고 싶은 회원, 시민, 대학생 누구나
3) 모집 인원 : 30명
4) 참가비  
-전체 참가비 14만원 / 서울KYC 회원 20% 할인 112천원    
-대학(원)생, 취준생, 열정페이 노동자 20% 할인 112천원

5) 신청서 접수 : 구글신청서  https://goo.gl/forms/9QsnlUZrCgakkti32

6) 신청 절차 및 완료
-신청을 해주신 후 아래 계좌로 참가비를 입금하시면 됩니다.
참가비 입금계좌 : 신한은행/ 100-024-876626/ 서울KYC
-접수 후 24시간 이내(주말 제외) 사무국에서 접수 확인 문자를 드립니다.
-서울KYC홈페이지(www.seoulkyc.or.kr)를 이용해 회원가입 후 신청서를 보내시면 ‘회원 할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회비납부방법은 CMS자동이체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7) 개별 답사 신청
-개별 답사신청은 해당 강좌 시작 2주 전 홈페이지를 통해 적정인원을 선착순 접수합니다.
-개별 답사 참가 시
*목포/정읍/천안/광주 참가비 35천원/  서울 참가비 1만원
*실내강의 부분 참가 1만원
*회원의 소개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우, 회원 참가비 적용이 가능합니다.

8) 기타
- 강좌가 시작되면 참가비 환불이 되지 않습니다.

*근현대사 아카데미 일정


신청하기 > https://goo.gl/forms/9QsnlUZrCgakkti32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수, 2017/04/26- 20:53
380
0
6월 18일 근현대사아카데미 실내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 김승은 실장님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재조명"이 주제였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일협정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맺어졌고,
일본은 그 당시 배상을 모두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협정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내용으로 맺어진 협정인지는 대부분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근현대사아카데미 강의에서는 한일협정에 대해 쉽게,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강의였을지 궁금하시죠?



우선 한일협정이란 무엇일까요?
한일협정은 한국과 일본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정입니다.

20여년동안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고 있었다가 한일협정때부터 국교가 정상화되었습니다.
실제로 한일협정을 맺기위해 1952년 한일회담을 했고
협정을 맺기까지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일협정하면 많이 이야기하는것이 일본에서 주장하는 '배상금'인데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차관 3억달러였지만
실제로 '돈'을 받은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상 3억달러의 경우 이에 해당하는 생산품, 시설, 기자재 등을 받았고
유상과 차관은 배상이라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에서는 배상이었다고 말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수출"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이에 대해서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이라는 명목을 달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한일협정때 돈을 다 줬음에도
피해자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떼쓰고 있다며 이들을 떼쟁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전쟁은 '돈'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은 막대한 배상금을 받았고
청일전쟁 배상금 역시 예산의 4년치에 해당할만큼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때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해
대공황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패전국과 승전국 모두 어려운 경제상황을 겪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줄 곳이 일본뿐이라 생각했던 미국은
만약 일본 역시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해 어려운 경제상황을 겪을 경우
공산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고
일본의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책임을 강하게 추궁하는 대신
대소반공체제 구축을 위해 일본을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일회담을 조속히 마무리짓기 위해 미국이 한일회담 과정에
깊게 관여하여 정치적 타결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한일협정을 위해 나섰던 한국 정부 역시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과거사 청산, 피해자에 대한 사과 및 보상에 대한 부분은 뒷전으로 둔 채
경제발전과 안보에만 집중하여 금액 조정에만 신경썼습니다.
이는 일본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만, 조선인을 모집하여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패망후 사로잡혀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200여명,
사형을 당한 사람도 수십명이었습니다.
A급 전범으로 사형을 받은 일본인이 7명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과연 옳은 판결과 형 집행이었을까요?

당시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조선인들은
동진회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그때의 억울함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때그때의 작은 보상을 할뿐 일본은 여전히 그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강제징용되어 끌려갔던 사람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로 처절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
일본에 있으면서 원폭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까지.

너무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한일협정에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한일협정은 언뜻 보기에도 우리에게 유리한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 협정입니다.
침략에 대한 사과도,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전해진 사과와 보상도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실제로 한일협정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을 진압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민들의 목소리를 억눌렀습니다.

피해자들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할때마다 일본은 한일협정때 다 정리가 됐다라는 입장이었고
그러다보니 한일협정 내용을 알기 위해 정보 공개 소송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한일협정 정보가 공개되었고, 일본에서도 정보 공개 소송이 진행되어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정보에는 간략한 내용들만이 담겨있었지만 실제 일본에서 공개된 정보는
그 양도 엄청났고 세세한 이야기들까지 다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서 원본을 볼 수 있으니 직접 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었던
하지마 지역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단 소식이 자꾸 들려옵니다.
그 중 한곳은 요시다 쇼인의 개인 서당인데 이곳이 대체 산업화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걸까요?
요시대 쇼인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하며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등 이 서당 출신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봤을때 일본의 산업화는 침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쟁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에게 진실된 사과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일협정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는 일본,
산업화라는 말로 침략을 대신하려는 일본.
그리고 그런 일본에게 제대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는 한국까지.

이러한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우리 세대가 성숙해야 과거 청산 역시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이를 세계인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 강의를 들으며 한일간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 마찰의 시발점이 된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대해 다시 배우고,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쉽지 않은 내용인 한일협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 김승은 실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댓글 쓰기

월, 2015/06/29- 18:57
37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