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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규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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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규직입니까?

익명 (미확인) | 수, 2015/12/02- 15:35

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얼마 전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직원’이라는 용어를 들었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신 ‘정직원’과 ‘정직원이 아닌 사람들’로 나눈 표현입니다.
‘정직원’은 그 회사의 주인, 또는 주인에 버금가는 구성원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사람, 딸린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표현이겠지요.
이런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서늘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정규직이란 무엇일까요?
법적으로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개념만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정규직이란 ‘고용안전이 보장되고, 연공주의에 따른 임금인상, 승급, 승진 및 기업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근로자’라는 통념이라고 말합니다.
대체로 ‘안정되어 있고 성장하는 일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이고, 비정규직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요?
사실 이런 생각은 이미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장에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정규직 직원도 40대 중반이 지나면 퇴직 이후를 걱정해야 합니다. 45세 이후 재취업자의 처우는 이전 직장에서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현실이 어깨를 짓누릅니다.
정규직 신입사원은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며 일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작은 회사에서는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분 없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무기계약직’ 입사자는 해고 위험은 적지만 여전한 차별에 서럽습니다.
불안하고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사실상 비정규직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우리 사회의 ‘정직원’이 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그러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일’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월급을 많이 주면 좋은 일인가요?
월급보다는 ‘칼퇴근’이 보장되는 게 중요한가요?
성과에 따라 공정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나은가요?
보상은 엇비슷해도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게 먼저인가요?

기준이 있어야 요구와 대안 마련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희망제작소가 ‘좋은 일’의 기준을 찾고자 나섰습니다.
‘좋은 일, 공정한 노동’ 기획을 연재하며 설문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사다리포럼’을 통해 ‘막다른 일자리’ 해법을 연구한 데 이어, 희망제작소가 두 번째로 진행하는 일자리 관련 프로젝트입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셔서 글을 살펴보시고, 설문에 응답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 ‘일자리’와 ‘좋은 일’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데 힘을 보태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 공정한 노동’ 연재글 보기)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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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여의도발 정치 뉴스가 어지럽습니다.
국회의원 공천 기준과 선거구 획정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네요.
오픈 프라이머리니 국민공천제니 안심번호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용어들이 뉴스에 난무합니다.
안심번호 도입과 국민공천제 때문에 탈당하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신당 만들겠다는 사람들도 있나 봅니다. 국민이고 안심이고 모두 좋은 말인데 왜들 이럴까요?

물갈이도 해봤다고요!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한 국회의원은 도덕성과 직무능력은 별개라고 주장합니다.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항변입니다.
19대 국회에서 형사 처분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은 17명이나 됩니다.
현재 재판 중인 의원도 17명이고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입법 로비, 성폭행, 자식의 취업 청탁 등 비리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이런 의원들을 확! 물갈이하면 좀 나아질까요?
사실 물갈이를 안 해본 것도 아닙니다.
지금 재임 중인 19대 국회도 상당히 물갈이된 편이지요.
초선 의원이 절반이 넘으니까요.
정당은 계속 새로운 인물들, 비정치권 인사들을 공천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국회로 들어옵니다.

2012년, 새누리당은 지역구 공천자 231명 중 외부인사를 50명(22%) 공천했습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도 지역구 207명 중 40명(20%)을 비정치권 외부 인사로 채웠지요.
그래도 부정부패와 특권의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더 처참하게 떨어졌습니다.

열심히 일한다고 공천 받나요?

국회의원의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지, 누가 좋은 대표자인지 제대로 된 기준 없이 뽑히기 때문이지요.

국회의원의 지상과제는 당선입니다.
정책과 국가전략,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뛰는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불이익을 받습니다.
언론의 외면을 받고 지역에서는 ‘동네에 코빼기도 안 비친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니까요.

합리적인 토론으로 입법과 정책결정을 이끌려는 국회의원들도 불이익을 받습니다.
언론과 SNS에서는, 막말하는 국회의원들이 더 크게 보도되고 회자되니까요.
국가 전략은 제쳐두고 지역의 민원성 예산을 따오는 데 혈안인 국회의원, 입법 활동은 하지 않으면서 파벌싸움에 막말과 호통에만 몰두하는 국회의원이 활개 치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시민이 답하고 제안합니다.

똑같은 일들이 20대 총선에서 되풀이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기준을 갖고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국회의원이 필요한지, 어떤 정치가 필요한지 토론과 성찰을 통해 함께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정당에 들이대어 그에 맞춰 공천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시민이 바라는 좋은 정치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를 찾아내고, 그 기준에 맞춰 투표해야 합니다.
정치인들로 하여금 국민을 두렵게 알고,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희망제작소가 ‘좋은 국회의원’의 조건과 기준을 시민분들과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시민 100인이 함께하는 노란테이블 시즌2 참가신청하기 ☞클릭)

시민 100인과 함께하는 원탁토론을 열고, 시민이 원하는 대표자와 좋은 국회의원의 기준을 찾아보는 자리입니다. 지난 해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 스스로 변화를 위한 약속과 제안을 만들기 위해 진행한 ‘노란테이블’ 토론툴킷이 이번 토론을 위해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나이, 성별, 정치성향 상관없이 다양한 시민이 참여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가 원하는 국회의원의 기준을 만들고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정치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세미나도 진행됩니다.

시민의 힘으로 정치를 변화시키는 과정에 여러분이 주인공이 되어주십시오.

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수, 2015/10/0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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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에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최소 132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이 행한 테러라고 선언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IS의 점령지를 폭격했습니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즉각 모든 난민 수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민전선은 무슬림 국민을 범죄의 원흉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범을 잡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1985년 유럽 26개국 사이 국경을 개방하기로 한 솅겐조약이 흔들립니다.
대다수 무슬림은 폭력에 반대하지만, 인터넷에는 무슬림에 대한 욕설이 난무합니다.
국경의 벽을 더 높이 올리고 사회 다양성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시리아 소년의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터키 해변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전 세계가 난민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유럽 각국이 앞 다퉈 난민에 대한 관용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관용’(톨레랑스)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서 무장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 시민을 대상으로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테러는 ‘소프트 타깃’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정부기관이나 공적 기관 등과 같은 ‘하드 타깃’을 목표로 하던 테러와는 달라진 형태입니다. 일상적 평화와 안전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의 테러입니다.

이번 프랑스 테러 사건은 휴머니즘의 불안정성을 보여줍니다.
인류는 이성의 힘으로 문명과 휴머니즘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약한 나라라고 무작정 공격하거나 약한 사람이라고 마구 죽이고 잡아 가두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제국주의와 파시즘, 전쟁으로 얼룩져 있던 유럽연합도,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식민과 살육의 역사를 겪은 동아시아도, 이성의 힘 위에 합의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은 사실 매우 불안한 균형 위에 있나 봅니다.
파리에서 벌어진 대낮의 테러가 그 불안을 보여줍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에 슬퍼하던 인류애도,
우리가 다 이뤘다고 생각하던 민주주의도,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도,
어쩌면 자그마한 촛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훅 불면 꺼질지도 모릅니다.

갈등이 계속 심해지면, 국수주의가 발호해 세계전쟁으로 치달았던 유럽발 세계대전의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은 어떤가요?
‘일자리 빼앗아가는 외국인 다 쫓아내야 한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다 처벌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 간혹 듣지 않으시나요?
다양성과 관용,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가 이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갑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습니다.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관용의 힘과 이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사회 일각의 모습처럼 말이지요.
(관련기사 보기 : “아이들이 무슬림 친구를 탓하지 않길 바란다”)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럴 때일수록 이성과 관용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양성을 지키고 관용을 유지하며,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를 분명히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목, 2015/11/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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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투표하러 가라는 이야기가 차고 넘칩니다.
어떤 때는 매혹적인 광고로, 어떤 때는 껄끄러운 훈계로, 어떤 때는 분노에 찬 웅변으로, 다들 투표하러 가라고 외칩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꼭 투표하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좋은 대표 좋은 정치’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이관후 연구자문위원, 이은경 연구위원, 황현숙 연구원은 최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작정 투표하러 가자고 말하는 대신,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토론의 장을 펼쳤습니다.
희망제작소에서 개발한 ‘노란테이블’ 토론툴킷을 사용해 대학생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황현숙 연구원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봄꽃이 피기 시작한 3월의 어느 날,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경희대학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 수강생의 대부분인 시민교육 강의에서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라는 주제로 노란테이블보를 펼쳤습니다.
처음으로 투표권을 가진 20대 초반의 학생 중에는 투표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힘주어 말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아직 어색하거나 어렵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모의투표를 위한 시간에서는, 공보물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가며 가상후보의 경력과 공약을 비교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노란테이블은 예상했던 것보다 진지하게 진행됐습니다.
토론 도중,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중국 유학생들이 투표해본 적이 없고, 중국은 선거가 실시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사실과 다릅니다. 중국은 공산당 중심의 정치체제이지만, 지역 대표자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등 선거제도가 분명 존재합니다. 다만, 우리와 다른 체제로 인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한정적입니다. 유학생들의 발언에 한국 학생들은 당황하면서도, 우리의 선거제도와 투표가 갖는 의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투표하라는 이야기를 건넨 일이 있으신가요?
그 이야기에 ‘누가 좋은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말을 덧붙여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집으로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가족 혹은 이웃과 함께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으신가요?
좋은 정치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정책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희망제작소가 개발한 토론툴킷, ‘노란테이블’이 위 질문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투표하러 가기 전에 가까운 이들과 꼭 한 번 토론해보시길 바랍니다.

투표,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지만 투표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깨어 있는 투표가 필요합니다.
토론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찾아봐야 합니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 선거 뒤에도 민주주의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된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힘이 그 토론으로부터 나올 겁니다.
중요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국회의원을 찾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그 토론으로부터 나올 겁니다.

민주주의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끈질긴 대화와 토론의 긴 여정입니다.
투표하러 가라고만 하지 마세요.
누구를 위해 왜 투표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눠 보세요.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는 길을 고민하며 쓴 ‘이원재의 희망편지’는 2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발송됩니다.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이원재의 희망편지’에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수, 2016/04/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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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몇 명의 40대 창업자를 만났습니다.

한 분은 대기업을 뛰쳐나와 IT기업을 차렸습니다. 처음 자신만의 사무실을 차리던 때의 눈빛은 의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만난 그의 눈빛은 세상 근심으로 한풀 수그러들었더군요. 광야에 서서 겪은 고단한 세월의 흔적에 불안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40대 사회적기업가였습니다. 그는 대화 도중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어려운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경제적 고통으로 이어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40대는 충만한 시절입니다.
생활인으로서도 그렇지만 기업가로서, 경영자로서도 그렇습니다.

우선 능력으로 충만합니다. 필사 리포트로 시작해 도트프린터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거쳐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적응하는 데 성공합니다. 저녁 없는 삶을 보내며 기울인 수많은 술잔으로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네트워크도 있습니다.

맷집도 세졌습니다. 여러 해 궂은 일 겪어가며 여기저기서 굴러 봤습니다. 충성도 해보고 배신도 당해보면서 조직 내 정치의 쓴 맛을 보기도 했고, 맨손으로 창업해 거리에서 물건과 함께 영혼까지 팔아본 경험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려는 뚝심을 충분히 부려볼 만합니다.

사회에 대한 사명감도 충만합니다. 월급이 오르는 기쁨과 함께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액수를 늘려가는 기쁨도 알게 됩니다. 신문 기사를 들여다보며 분노하고, 언젠가 신문 지면에 나타난 그 많은 사회문제들 중 하나라도 해결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다짐도 종종 합니다.

하지만 지금 40대 기업가는 외롭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더 이상 청년 대접을 해주지 않습니다. 지원도 스포트라이트도 없습니다. 창조경제 정책으로 창업지원이 쏟아진다지만, 30대까지가 청년이고 청년만 창업지원대상이라고 합니다. 꼭 지원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든 기업가’라는 꼬리표가 기운 빠지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홀로 거래처를 만나면 여전히 어린아이 취급입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 20대 직원들은 벌써 꼰대 취급입니다. 어설프게도 멘토와 심사위원 요청만 옵니다. 20대에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가 ‘45세가 되면 지적으로 죽는다’고 했다는 말에 좌절이 더 커집니다.

당장 내려놓고 싶은 유혹이 자주 찾아옵니다. 영광이 없고 책임만 있는 기업가의 길을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멋있는 말만 늘어놓으면 되는 멘토나 평가자의 자리에서 심사만 하고 싶기도 합니다. 자기 머리 깎기는 남의 머리 깎기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니까요. 큰 기업에 들어가 그 우산 속에서 짧더라도 단순하고 달콤한 평화를 누리고 싶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께 위로가 될 만한 연구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블룸버그 베타’가 한 ‘성공적인 창업가의 조건’에 대한 연구입니다. (연구내용 보기)

이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의 성공적인 벤처기업가 특성을 분석한 뒤, 링크드인 등에 공개된 150만 명의 프로필 가운데 그 특성에 맞는 사람들 350명을 뽑아 봤습니다. 놀랍게도 다수는 30대 후반이었고, 38%는 40세 이상이었습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라는 점도 통념과 달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당연합니다. 기업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이들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사유가 필요한데, 경험이 사유의 기회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답을 내기 위해서는 경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하던 대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답을 구상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놓지 않은 이들만이 성공하겠지요. 국내 최고의 스타트업 전문가인 문규학 소프트뱅크코리아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내놓았습니다.
(관련기사 : 기업가 K께 바치는 헌사)

한국은 세습자본주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거나 시험에 합격해 권력을 갖는 것 이외에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단단한 벽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생깁니다.

경험, 열정, 사회적 사명감을 갖춘 기업가들이 없다면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누다 한숨 쉬고 눈물을 보이던 40대 기업가에게, 함께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는 길을 고민하며 쓴 ‘이원재의 희망편지’는 2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발송됩니다.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이원재의 희망편지’에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수, 2015/09/0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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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돌연변이. 우연히 태어난 아주 다른 존재입니다.
퍼실리테이터. 서로 다른 존재들이 대화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어쩌면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두 종류의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진행 중인 ‘시대정신을 묻는다’ 연구과제를 수행하다 떠오른 생각입니다.

‘시대정신을 묻는다’는 한국사회 전체를 긴 호흡으로 전망하는 연구과제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오랫동안 한국사회 전체를 조망하며 대안을 모색해 온 분들을 연달아 인터뷰한 뒤, 한국사회 공통의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희망제작소의 야심찬 기획입니다.

이 기획을 진행하느라, 운 좋게도 다양한 분야의 석학을 두루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보수적인 이도, 진보적인 이도 있습니다. 관료 출신도, 학자도, 사회운동가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같은 문제의식과 같은 대안을 내놓기 어려운 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한국사회에 대한 공통의 문제의식이 느껴졌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둘러앉아 이야기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새로운 실험’입니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합의구조가 깨어져 있다는 데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이라도 서로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차이를 인정하고 합의할 수 있는 대목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됩니다.
하지만 이런 대화가 어려워지고 갈등과 증오가 난무하는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사회가 지나친 독점으로 경직성이 너무 커졌다는 공감대도 있었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실험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어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과정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혜로운 이들’에게 아무리 물어도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옳다’라는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것들이 튀어 오르는 가운데 대안이 발견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시도를 저지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바로 돌연변이입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 사이와 행동이 다른 돌연변이들 사이에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 바로 퍼실리테이터입니다.
대화와 타협이 부족한 사회일수록 능력 있는 퍼실리테이터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들이 필요한가요?

‘시대정신을 묻는다’ 내용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보기)
6회까지의 인터뷰가 실려 있고,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우리 사회의 희망을 찾는 길을 고민하며 쓴 ‘이원재의 희망편지’는 2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발송됩니다. 이메일로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메인에 있는 ‘희망제작소 뉴스레터/이원재의 희망편지’에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세요.

목, 2016/04/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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