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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201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분석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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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201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분석총론

익명 (미확인) | 화, 2015/11/10- 15:11

2016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안 분석총론 : 잔여주의적 체제를 공고화하는 반복지적 예산안

 

이찬진 l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변호사

 

박근혜 정부 4년차 보건복지예산(안)의 기조

 

정부의 보건복지예산(안)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을 포기하고 공공부조 현상만 유지하는 것임. 보육 및 제반 돌봄 서비스 등 사회서비스 전반의 축소 기조이며 잔여적 복지체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표1-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근혜 정부 4년차인 2016년도 사회부문(보건・복지・고용) 예산은 기금 포함 122조 원으로 편성되었다. 이는 2015년도 대비 6.4% 증가한 규모이나 2010년에서 2015년까지 평균 증가율 8.4%보다 2%p 낮다. 보건복지예산안 중 사회보험 기금을 제외한 일반회계 예산은 ‘15년 추경대비 △3.0%(△1조 230억 원) 감소한 32조 9,160억 원이다<표1-2>. 기초생활보장의 개별급여 항목인 주거급여 및 교육급여 예산 1조1546억 원(주거급여 1,009,960백만 원+교육급여 144,646백만 원)을 합산하여도 전년대비 증가율은 0.4%(1,316억 원)에 불과하여 교육 및 주거급여 예산을 포함한 기초보장분야 예산 증가율 6.4%와 사회보험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절대적 감액 또는 실질적 감액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기초연금이나 의료급여 등 의무지출예산의 자연증가분에도 턱없이 부족한 실질적인 복지축소 예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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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예산안은 지난 8년 동안 보수정부 하에서 진행된 한국 복지체제의 잔여주의화의 핵심인 (1) 선별적 소득보장체제의 공고화를 통한 시장의 역할 확대, (2)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및 공공책임성 방기, (3) 가족의 역할 강화로의 기조를 더욱 강화한 예산안이다.

 

선별적 소득보장체제의 공고화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욕구별 맞춤형 개별급여 체제로 전환한지 2년차가 됨에도 2016년 예산안은 2015년 9조2,649억 원보다 5,525억 원 감액된 8조 7,124억 원으로 편성되어 비수급 빈곤 사각지대 해소는 요원한 실정이다.

 

생계급여기준선이나 의료급여기준선이 모두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하여 종전 최저생계비보다 높게 설정되었는데도 2016년도 예산안에서도 수급자 수가 정체되는 것을 기초로 예산 편성을 하고 있다. 결국 2016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으로는 ‘세모녀 자살 사건’과 같은 공공부조의 핵심적 문제인 비수급빈곤층 문제를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초연금 예산은 3.8% 증가하였으나 기초연금 수급 노인 16만 7천 명 증가(수급자수 3.6% 증가)에 기준연금액 증가(1.1%)조차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65세 이상의 노인의 70%를 하회하는 대상자들에게 국한하여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현실을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및 기초연금 예산은 취약계층만을 대상으로 포괄하고, 중간계층 이상의 시민들의 노후보장은 공적 사회보장에서 배제하는 선별적 복지의 기조를 분명히 하는 예산이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책임성의 악화 및 시장화 지속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의료시장화(상업화)와 민간 중심의 돌봄서비스 정책이 있다.

 

아동 돌봄으로 대표되는 보육예산에서 가정양육지원사업 및 시간제 보육이 확대되는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또한 노인예산 중에서 공공노인요양시설확충 예산의 감축을 통하여 민간 중심의 사회서비스 강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회보장위원회의 지방자치단체 사회보장 제도 폐지·축소 심의 조정을 통한 지역복지의 축소

 

올해 박근혜 정부는 중복적인 복지제도의 정비와 지역 간의 복지 형평성 및 지방재정 절감 등을 명분으로 사회보장기본법상의 보건복지부장관의 지역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협의권과 사회보장위원회의 심의・조정권을 적극 행사하고 있다. 지난 8월 11일 사회보장위원회의 의결로 전국 지자체의 자체 사회보장사업 5,891개 중 중앙정부 사업과 유사・중복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1,496개 사업, 9,997억 원 규모의 지역별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을 전국적으로 하달한 것이다.

 

또한 올해 9월 30일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 사회보장위원회의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에 따르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하여 해당 자체사업에 소요된 예산만큼 교부금을 감액하는 내용의 조문을 신설하여 지역복지 제도의 폐지・축소 강제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서 실시하는 미흡한 사회서비스 제도를 지역 특성에 맞게 보완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을 정부가 강제로 축소・폐지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2016년도 사회보장위원회 분야 예산은 전년도 대비 110%로 크게 인상되었다<표1-3>. 이는 박근혜 정부가 사회보장위원회를 내세워 2015년도 하반기부터 추진하고 있는 중앙정부 강제하의 ‘지역복지 폐지・축소 및 전국적 하향 평준화’의 정책적 기조는 더욱 확대되고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 우려된다. 따라서 반복지적 기능 확대에 투입되는 사회보장위원회 관련 예산은 대폭 삭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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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 예산(안)을 통해 본 한국 복지체제

 

한국 복지체제는 공적역할을 제한하고,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잔여주의적 성격의 복지가 강화되고 있다. 현 정부는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할 기회를 차단하고, 각자 도생하는 길을 재촉하는 것으로 보인다. 취약계층 중 일부에게만 선별적인 공적복지를 제공하고, 비취약계층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위험에 대한 대비를 시장을 통해 담보하는 체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보수정권의 의도는 보편적 복지체제를 위한 사회적 연대의 근간을 불가역적으로 해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2016년도 사회보장기본법상의 지자체에 대한 사회보장사업 관련 보건복지부의 협의권 및 사회보장위원회의 심의・조정권행사와 불이행시의 지방교부금 삭감이라는 재정적 강제수단을 통하여 지자체 차원의 사회보장제도를 대폭 폐지・축소하는 정책 기조가 더욱 강화되어 전반적인 복지축소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이는 보편적 복지의 강화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한국 복지체제의 잔여주의 체제가 공고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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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불이행, 포용적 복지국가에서 가난한 이들이 죽어간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떠나간 사람들

2010년 10월, 서울에서 한 장애아동의 아버지가 목을 맸다. 그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라며, “내가 떠나고 나면 동사무소 분들께 잘 부탁드린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는 아들의 장애 판정 후 재활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동주민센터를 찾았지만 근로능력이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신청을 거절당했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의 돌봄을 가족들에게 떠넘기고, 최종적 위기에서는 다시 가족 때문에 수급자조차 될 수 없는 제도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2010년 겨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은 조계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진행했다. 그해 12월 마지막 날에는 강북에 살던 노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그들은 이혼으로 위장한 뒤 1인 가구 수급비로 두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었다. “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 5개월이 넘도록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자식 있느냐”라는 물음을 유서에 남겼다.

 

2011년 4월, 78세의 김선순 할머니가 시립병원 입구에서 객사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조차 받지 못했던 할머니의 사인은 폐결핵과 영양실조. 의료급여 수급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평생 가난한 삶과 씨름했을 그녀의 삶은 2평 월세 15만 원 여인숙을 마지막 보금자리로 내주었고, 치료를 구걸하기 위해 찾은 병원 입구에서 스러졌다. 2012년 7월에는 사위의 소득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거제에서 이씨 할머니가 사망했다. 그녀는 차례 시청을 찾아 읍소했지만 수급권은 회복되지 않았고,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법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냐”라는 유서를 남겼다. 바로 그 법은 가난에도 불구하고 가족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라는 부양의무자기준이다.

 

1,842일의 광화문농성

수많은 죽음을 기억하며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우리의 농성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고자 하는 노력인 동시에, 그저 죽음으로 들려오는 가난의 증언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전쟁 50년 만에 이룩한 성장을 자랑하는 사회에서 가난에 쫓겨 죽음에 내몰리는 삶이 공존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죽음에 너무나 무심했다.

 

미담이나 동정으로 소비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꿔야 했다. 우리의 농성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이루기 위한 곳이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지 않은 세상이 잘못된 것이지 당신의 탓이 아니니, 죽지 말고 같이 살아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신호를 보내는 ‘벙커’가 광화문역 지하에 마련됐다. 1,842일의 싸움 끝에 우리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대선후보들의 공약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의 약속으로 받아냈다. 그러나 가난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너무나 아슬아슬한 것으로 만들며, 지금도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간다.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1호 과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대통령의 약속 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대선과 문재인 정부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진행 정도

2017년 대선에서 대부분의 후보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다. 문재인후보는 2017년 3월 22일, 참여연대가 주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인 <개발국가, 재벌독식을 넘어 돌봄사회, 노동존중, 평등사회로>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발언했다. 당시 대선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은 각 정당과 후보들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약속과 당론채택 여부, 법안 발의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표1-1>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2017년 대선 당시 각 후보들의 입장https://lh3.googleusercontent.com/Up9qD780cO3BoUBt5Rw-whuGf2B2CR1O8Jq0tp... />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 100대 국정과제에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2018년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생계 의료급여는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 중증가구에 대해서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단계별로 수행할 수 있으되, 완전 폐지를 전제로 한 급여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순서를 밟을 것을 요구했다. 다시 인구학적 기준으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순서를 정한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이룩한 근로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수급권을 보장한 법 제정의 취지에서 후퇴하며, 사각지대 해소 효과 역시 적기 때문이다. 더불어 임기 내 완전 폐지에 대한 계획을 요구했다. 당시 국가기획위원회(대통령 인수위원회)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행동>과의 면담에서 100대 국정과제는 당면한 계획만을 담은 것이며, 이후 추가 계획을 제출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후퇴

2017년 8월,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 1차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이 계획을 후퇴시켰다. 2018년 폐지한다는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은 2018년 10월로 시행시기를 미뤘고, 2019년 중증장애인과 노인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소득하위 70%로 기준을 완화한다는 계획은 각각 2019년과 2022년으로 미뤄졌다.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농성장 영정들에 조의를 표하고,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다. 박장관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우리 사회 복지가 가야 할 길’이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속히 폐지를 이행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민관협의체’를 만들 것, 그리고 제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넣을 것을 약속했다.

 

<표1-2> 맞춤형 급여로의 개편 이후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과정 및 계획https://lh4.googleusercontent.com/PZjwrUWFr3520MstbskrYiBmsK66f035jOVO5F... />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생계 의료급여에서의 부양의무자기준 일부 완화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지만,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된 주거급여를 제외하고 기초생활수급자수의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2022년까지 계획되어 있던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이 포함된 경우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을 미적용하는 완화안은 3년을 당겨 2019년 시행되었지만 수급자 숫자에 큰 차이는 없다.

 

현재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187만 명이다. 지난해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전 수급자 숫자가 158만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마치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 된 주거급여와, 일부 완화에 그친 생계의료급여의 수급자 증감 차이를 보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완화의 서로 다른 효과에 대해서 볼 수 있다. 부양의무자가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인 경우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을, 중증장애인인 경우 의료급여까지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했다지만 그 증감은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에 불과하거나 도리어 하락했다.

 

<표1-3> 주거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전(2018년 9월)과 후(2019년 11월) 급여별 수급자 수https://lh5.googleusercontent.com/MGpWBxMuWdK0e-SNppA76egOH1RUoy0GV5appi... />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왜 효과가 없는가?

왜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가? 우선 현재 정부의 완화안은 극히 일부 인구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 가구가 수급을 신청할 때 부양의무자기준을 완화하는 2020년의 완화안은 1만 8천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모델 중 가장 적은 인구를 수급으로 진입시키는 방식이다.

 

더불어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부양의무자기준 완화안은 상당히 여러 사람들을 제외하고 있다. 중증장애가 아닌 경증의 장애로 판정받은 모든 사람은 여기에서 제안하는 완화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득중단과 노인성 질환으로 65세 이상의 노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 신체, 생활을 가진 장년 빈곤층 역시 해당하지 않는다. ‘만 30세 미만 한부모가구와 보호종료아동’의 경우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한다지만 30세 이후에는 다시 부양의무자기준이 생긴다는 기상천외함을 가질 뿐 아니라, 보호종료아동 본인이 수급을 신청할 때는 해당하지만, 부양의무자가 될 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세부적 운영 방침도 있다. 가정위탁이나 시설에서 자란 아동이 보호종료 후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 수급자인 1촌의 혈족이 있으면 부양의무자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모호한 경계는 사람들의 복잡한 삶을 담아내는 합리적 기준이 결코 되지 않는다. 부양의무자기준이 완화됐다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시 제외된다.

 

<표1-4> 여전히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을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https://lh6.googleusercontent.com/pMiFFa1a5jIWmPrFMkCq-O7PLFvYTgcHDk_Xbf... /> 

 

복잡한 기준완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뿐만 아니라 지난여름 관악구에서 아사한 한씨 모자의 경우처럼 사회보장제도의 신청 단계에 ‘보증인’을 요구하거나, 부양의무자의 임대차계약서나 월급명세서처럼 구하기 어려운 서류들을 일방적으로 요구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나 관련 서류를 준비하지 못해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조사나 계측조차 되지 않지만 여전히 많다. 정부는 실제 부양 받지 못하는 경우 지방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보장을 실시하고 있다지만 지방생활보장위원회에 판정을 의뢰한다고 수급신청을 접수해도 ‘지생보위 판정은 본인이 원한다고 의뢰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고 판정의뢰를 거절하거나,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고 동주민센터의 초기상담을 통해 구두로 수급신청을 거절, 탈락시키는 일은 지금도 빈번하다.

 

성북 네 모녀, 그리고 인천에서 모녀와 친구가 사망하고, 강서구에서 부양의무자에 의한 가족 살해가 일어났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대책은 오히려 반대로 향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보건복지부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차 종합계획안에 싣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느린 속도와 뿌연 계획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단체와 당사자들이 믿고 기다린 것은 오로지 2020년 발표되는 2차 기초생활보장제도 종합계획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9월 이 2차 종합계획에 대한 언급이 수정됐다. ‘생계급여’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논의를 한정시켰다.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이에 대해 ‘생계급여 등’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억지를 부리지만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일뿐이다. 약속에 대해 계획으로 답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는 교묘히 일정과 약속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저버리고 있다.

 

지난 10월 17일,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공약 이행 의지에 대해 대통령에게 다시 물으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던 이유는 바로 보건복지부의 계획 후퇴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공약 당사자인 대통령에게 질의를 했으나 돌아온 것은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농성 64일 만인 12월 19일, 청와대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가난으로 인한 죽음과 빈곤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당황스러운 것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가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는 점이다. 공약하고 선출된 대통령이 공약 이행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올해 11월 CBS의 의뢰로 진행된 리얼미터의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55.5%의 찬성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보다 높은데,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국민의 가장 마지막에 변화하겠다는 정치는 누구도 대표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가장 가난한 국민들의 요구에 어떤 의지나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청와대 농성단은 청와대에 총 4차례 공개서한을 보냈다. 두 달 여간 아무런 답변이 없어, 지난 12월 5일 열린 <제5차 포용복지포럼>1) 입구에서 보건복지부장관과 청와대 김연명 사회수석에게 서한을 전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경찰의 봉쇄 속에 진행됐고, 서한문 전달을 위해 이동하는 길은 경찰 방패에 가로막혔다. 결국 서한은 전달했지만 이렇게 전달된 서한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적인 답변은 없었다.

 

“아버지와 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린 49세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조기현씨는 아빠의 발병과 간병에 대한 기록,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책으로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아버지와 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있”을 것인지 묻는다. 어린 시절 이혼한 뒤 아버지의 형제라야 남 같은 사이인 이들 부자에게 법적 권한을 비롯한 최종적 ‘보호자’는 서로가 된다. 일용직 노동과 대체복무를 위한 공장일에 매진하면서도 치매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던 그의 삶은 전장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박능후 장관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약속했고, 곧 ‘나를 괴롭힌’ 제도가 사라질 것이라 전망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증도의 치매라 할지라도 이는 중증장애가 아니고, 치매를 앓고 있지만 그는 노인도 아니다. 조기현씨 역시 중증장애인이나 노인이 아니기 때문에 조기현씨에게 기준 이상의, 그러니까 그의 상황을 기준으로 2019년 기준 월 170만 원 이상의 소득이 생기면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되며, 252만 원 이상2)의 소득이 생기는 순간 그의 아버지는 수급에서 탈락한다.

 

우리 사회는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짐 지우고 있다. 사회가 함께 해야 하는 양육을 비롯한 돌봄은 가족들, 가족 안에서도 낮은 위계의 성별이나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돌봄의 책임은 전가된다. 최종적으로 빈곤의 위기에 빠졌을 때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층이 된 사람의 소득에 대한 ‘의무’가 가족들에게 생긴다. 가난한 이들의 현실에서 보면 부양의무자기준은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되는 순간 오히려 서로의 삶이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이 된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 피켓을 들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https://lh4.googleusercontent.com/kt0KKhZp9Zf-5zew_dGR09NpTTQardRNipvIXB... />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를 요구하는 1인시위 피켓을 들고 있는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사진 = 빈곤사회연대>

 

시효만료, 정상가족 중심 복지

우리나라의 가족부양의 원칙은 가장 가난한 가족들에게 가장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부양의무자기준이 아니더라도 가장 힘든 가족들이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가장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다. 주지하듯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가장 시급한 조치다. 이조차 이행하지 못하는 정부가 빈곤문제 해결이나 포용을 운운할 자격 없다.

대통령의 선언 이후 이행되지 않은 복지제도 아래 빈곤층이 고사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에서 탈락한 뒤 친구가 자살했다며 빈곤사회연대로 전화를 건 여성은 대통령이 약속만 지켰어도 내 친구는 살았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할 수 있는가? 내년 7월 마련될 2차 종합계획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은 사회와 정치가 약속한 최소한의 목표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각별한 관심과 싸움이 필요하다.


1) 제5차 포용복지포럼: 해외석학과의 만남 – 소득분배 흐름과 혁신적 포용국가의 과제(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관, 서울 포시즌스 호텔)

 

2) 수급가구와 부양의무자가구가 각각 1인가구일 때, 더불어 수급자가구의 가구원이 전원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을 때 부양의무자의 판정소득액에 따른 수급탈락 기준선

화, 2020/01/0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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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의 시급성과 소요 예산

 

손병돈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는 언론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8월 서울 봉천동에서 발생한 ‘탈북 모자 아사 사망’ 사건, 며칠 전인 11월 2일 서울 ‘성북구 네 모녀 사망’사건이 최근에 있었던 대표적인 예이다. 탈북 모자의 집에는 쌀 한 톨 없고, 빈 간장통과 통장 3개만 남아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3,858원을 통장에서 인출하였다 한다(여현교, 2019.10.11.). 70대 노모와 40대 딸 셋이 ‘하늘나라로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성북구 네 모녀 사망 사건도 경제적 어려움이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우편함에는 채무 변제를 독촉하는 신용정보회사의 우편물이 10여 통 있었으며, 월세도 2-3개월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승환, 2019.11.4.).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빈곤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지 못한다. 그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지적된다. 소득이나 재산상으로 아무리 빈곤해도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다. 2015년 말 현재 기준 중위소득 40% 기준으로 빈곤하지만 기초보장 급여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93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김태완 외, 2017).

 

이러한 비수급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는 그 이유와 예상되는 소요액을 추산해 보고자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는 왜 필요한가

첫째,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부양의무자가 빈곤한 피부양자에게 잠재적으로 사적 부양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그들을 기초보장제도의 급여 수급에서 배제한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는 잠재적 부양가능성이 실질 소득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가 타당성을 가지려면, 부양의무가 도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이행된다고 가정해야 한다. 하지만 도덕적 규범으로서의 부양의무가 실제 이행된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으며, 법적으로도 민법상의 부양 받을 권리가 실제 소득으로 전환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불확정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점에서 타당성이 떨어진다(김지혜, 2016). 그런 점에서 잠재적 부양 가능성을 근거로 부양의무를 강제화하는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적 부양 및 공적 부양의 공백을 야기함으로써 헌법 34조 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헌법상의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하여, 국가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어떤 집단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김지혜, 2016). 그런데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부양의무자라는 가족이 있다’라는 이유만으로 수급자 선정에 차별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하여 빈곤하다는 점은 동일한데, 실제 부양을 받지 못하지만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양의무자가 있는 수급권자는 기초보장 급여 수급에서 탈락하고, 반면 그러한 부양의무자가 없는 수급권자는 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헌법상의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 기준은 헌법상의 기본 원리와 몇몇 측면에서 충돌한다. 이는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가 사적 부양의 축소, 잠재적 수급자의 재산처분과 같은 도덕적 해이의 확산, 수급자의 증대에 따른 예산 증가 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기준이 헌법에 위배된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에 따른 여러 역기능이나 부담은 다른 수단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그것이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서는 안되는 정당한 근거는 아니라 하겠다.

 

둘째, 공공부조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보편적이지 않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공공부조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적 부양을 강제화하는 법적 조치이다. 그렇다면, 부양의무자 기준은 공공부조제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주요 선진 국가들의 공공부조제도와 우리나라의 공공부조제도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부양의무자 기준 관련 조항이 공공부조제도에 있던 대표적인 국가는 독일과 일본이다. 이들 국가들의 공공부조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여유진 외, 2017). 먼저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 공공부조의 법적 근거는 사회법전 12권인데, 그것의 2조(2)에는 부양의무자가 있거나 서비스와 급여를 제공할 국가 외의 다른 주체가 존재할 경우, 그들의 의무를 우선하도록 하고 있었다. 여기서 부양의무자는 부모-자녀, 조부모-손자녀, 증조부모-손자녀 등과 같은 직계 가족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양의무자가 있어 그들이 서비스나 급여를 제공할 수 있을 경우 국가는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독일은 2003년도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사실상 폐지하는 방향으로 공공부조법을 개편하였다.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대폭 올림으로서 사실상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였다. 그러한 조치가 노인빈곤 해소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Becker, 2007). 이처럼 독일 공공부조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있었으나, 2003년도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실질적으로 폐지하여, 현재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다.

 

일본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오랫동안 공공부조제도에 포함하여 운용해온 국가로 알려져 있다. 1929년 제정된 구호법 및 1946년에 제정된 생활보호법은 부양의무자가 있어 이들이 실제 부양을 제공하지 않아도, 부양의무자의 존재만으로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제외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1950년에 제정된 현행 생활보호법부터는 실제 부양을 하지 않는데, 단지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생활보호 수급 대상자에서 제외하는 조항이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일본의 생활보호제도는 우리나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이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의 존재에 따른 잠재적 부양 가능성을 이유로 빈곤한 수급권자를 공공부조제도 급여 수급에서 강제로 제외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생활보호제도도 생활보호제도에 의한 보호에 우선하여 부양의무자에 의한 부양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은 명목상의 원칙이지, 그러한 원칙이 생활보호제도의 급여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오늘날 공공부조제도에서 사적 부양을 법적으로 강제하여, 부양능력 있는 부양의무자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공공부조 급여 수급에서 제외하는 선진 국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의 공공부조제도 중 어떤 제도들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수급 자격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산조사를 통해 대상자를 선별하는 공공부조 성격을 갖는 제도들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장애아동수당, 차상위 의료비 본인부담 경감 지원제도, 한부모 가족지원사업 등을 들 수 있다. 이 제도들 중 부양의무자 기준을 자격기준으로 활용하는 제도들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장애수당, 장애아동수당,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지원제도이다. 장애수당, 장애아동수당,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제도들은 모두 기초보장제도와 밀접히 연관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존하는 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 교육급여와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한부모 가족지원사업 등은 대상자 선정 자격기준으로 소득인정액 기준만 사용할 뿐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공공부조 제도들 중 자격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적용하는 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공부조제도에서도 자격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활용하는 것은 보편적이지 않으며, 기초보장제도의 생계, 의료급여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사적 부양은 보편적이지 않다.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사적 부양이 보편적이고,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적 부양은 인류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이고,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

 

<표 2-1>은 세계 25개 국가를 대상으로 노인 가구주 가구 소득에서 사적 부양을 의미하는 사적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하여 살펴본 것이다. 노인 가구주 가구는 가구주의 연령이 65세 이상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노동능력이 떨어지므로, 다른 사람이나 또는 사회에 의존하여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라는 점에서 사적 부양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표 2-1>을 보면, 노인가구주 가구 소득에서 사적 이전소득이 시장소득의 30%를 넘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뿐이고, 사적 이전소득이 시장소득의 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도 25개 국가 중 대만, 한국, 페루, 파나마, 폴란드 등 5개 국가뿐이다. 사적 이전소득이 노인가구주 가구 가처분 소득의 10%를 넘는 국가도 대만, 한국, 페루, 콜롬비아, 파나마 등 5개 국가 뿐이다. 가구소득에서 사적 이전소득의 비중이 높은 국가 중 한국과 대만만 1인당 GDP가 2만 달러(2019년 기준)를 넘는 비교적 발달한 국가이고, 파나마와 폴란드의 1인당 GDP는 1만 5천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페루와 콜롬비아의 1인당 GDP는 약 7천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오늘날 사적 이전소득은 노인가구주 가구소득에서도 의미 있는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는 한국, 대만 등 몇몇 국가에 불과하며,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국가들의 경우 경제수준이 낮은 국가들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GDP는 산업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된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선진국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아래 <표 1>에서 2019년 현재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는 국가의 노인 가구주 가구 가처분 소득 중 사적 이전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2%를 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나머지 국가들 대부분에서 사적 이전 소득은 노인 가구주 가구소득(가처분 소득 기준)의 1%도 안된다. 일본과 같이 아시아 국가도 노인 가구주 가구소득에서 사적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안된다. 이처럼 오늘날 발전된 사회에서 사적 부양은 보편적이지 않다. 사회복지의 발전 과정 내지 사회의 발전과정을 보면 사적 부양이 축소되고, 공적 부양이 확대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동아시아 국가와 같이 문화적 특수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또한 보편적인 사회변화의 경향하에서 존재하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표 2-1> 노인가구주 가구의 특정 가구소득별 대비 사적 이전소득 비중 국가 간 비교https://lh6.googleusercontent.com/f1InYBnLoF4zoQJVFSCLGutV3SQ4hsxUlv_JfM... />

 

넷째, 비수급 빈곤층은 기초보장 수급자보다 더 어려운 생활을 한다.

<표 2-2>는 기초보장 수급가구와 소득인정액 기준 비수급 빈곤 가구 간 생활곤란을 경험했던 비율을 비교한 것이다. <표 2-2>를 보면, 기초보장 수급가구와 비교하여 소득인정액 기준 비수급 빈곤 가구가 생활곤란을 경험한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29%이하인 비수급 빈곤층은 기초보장 수급가구와 비교하여, 생활곤란을 경험한 비율이 2-4배 가량 더 높다. 이러한 사실은 기초보장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빈곤 가구들이 기초보장 수급 가구들보다 더 열악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표 2-2> 수급ㆍ비수급빈곤층 집단별 생활곤란 경험 여부https://lh4.googleusercontent.com/u0_BpiF0Mb_TtLsC-iW_dj8G8vgS1QvP2buEJX... />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는 감당하기 힘든 정도로 많은 예산이 필요한가?1)

현재 기초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크게 완화되어, 완전한 폐지의 기로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교육급여와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고, 현재 부양의무자 기준이 자격조건으로 남아있는 기초보장 급여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뿐이다. 제1차 기초보장 종합계획에 의하면(관계부처 합동, 2017.8.10), 노인 및 중증장애인의 일부에 대해서는 2021년까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0년에 폐지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개선과 관련한 대안은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이며, 단지 완성 시기를 언제로 할 것이며, 그 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만이 쟁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를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2015년 말 기준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여, 비수급 빈곤층이 100% 기초보장 수급자로 전환될 경우, 추가 재정소요가 약 7조 3천억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손병돈 외, 2016).2)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 주거급여의 경험을 볼 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때 비수급 빈곤층이 신규 기초보장 수급자로 전환되는 비율은 채 50%가 안 될 것으로 예상된다.3) 그런 점을 고려하면,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에 소요되는 앞의 재정 추정치는 최대치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는 이보다 크게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시에 폐지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이 이제까지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된 논거 중 하나였다(손병돈 외, 2013).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급여별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다.

 

기초보장제도에서 생계급여보다 의료급여의 예산이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예산 규모가 증가해온 폭도 훨씬 크다. 그런 점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급여별로 순차적으로 폐지한다면, 먼저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다음으로 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경우, 그에 따른 예상 소요액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규모는 아닐 것으로 추산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때, 소요되는 1년 예산액은 약 1조 3천2백5십억 원으로 추정된다(손병돈, 이원진, 한경훈, 2018). 이 추정치도 생계급여 비수급 빈곤층이 100%로 신규 수급자로 전환된다는 가정하에 추정된 것이다.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경험을 본다면,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된다 해도 비수급 빈곤층 전부가 신규 수급자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국 공공부조의 경험을 봐도 빈곤층의 공공부조 수급률은 많아야 70% 내외 수준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기초보장제도의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에 따른 추가 예산 소요액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그와 관련한 정책들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근로장려세제를 크게 확대하였으며, 한국형 실업부조를 2019년부터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보편적인 아동수당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빈곤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비수급 빈곤층을 줄이기 위한 조치인 기초보장제도의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른 추가 소요 예산도 앞의 근로장려세제의 확대, 아동수당의 실시 등과 비교하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도 아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기초보장제도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는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도 충분하다.


 

참고문헌

여현교(2019.10.11.). 봉천동 탈북모자 아사 사건. 한국기자협회보.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6708" rel="nofollow">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46708)

김승환(2019.11.4.). ‘성북구 네 모녀 사망’ 거센 후폭풍...사회안전망 재정비 목소리 잇따라.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91104512996?OutUrl=daum" rel="nofollow">http://www.segye.com/newsView/20191104512996?OutUrl=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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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진 김미곤 황도경 김명중 정용문 정재훈 이주미(2017).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른 정책과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Becker, Irene(2007). Verdeckte Armut in Deutschland. Ausmuß und Ursachen, Fachforum-Analysen & Kommentare, N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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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 김윤민, 한경훈(2019). 저소득계층 소득지원정책의 주요 쟁점과 과제. 순천향대학교 산학협력단.

손병돈. 이소정. 이승호. 변금선. 전영호(2013).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건복지부 평택대학교 산학협력단.

손병돈. 구인회. 노법래. 한경훈(2016). 맞춤형 급여체계 도입에 따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방안. 보건복지부 평택대학교 산학협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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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부처합동(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2017. 8. 10.).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20)(안).

손병돈, 이원진, 한경훈. (2018). 노인빈곤 해소를 위한 소득보장제도 개편 방안 연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1) 손병돈(2019)의 참조하여, 수정 보완하였다.

2) 2015년 말 기준으로 추정한 것으로서 2015년 이후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화된 사항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며,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 등 기초보장제도의 모든 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는 것을 가정하여 추정한 것이다. 또한 2015년 말 기준 모든 비수급 빈곤층이 100% 기초보장 수급자로 전환된다는 가정하에 추정한 것이다.

 

3)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경우, 신규 수급 가구가 약 58만 가구로 예상되었으나(손병돈 외, 2016), 주거급여에서 의무자 기준이 폐지된 후, 약 9개월이 지난 2019년 6월 기준으로 주거급여 수급가구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이전보다 약 24만 천가구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 주거급여 수급가구에는 주거급여 선정 소득인정액 기준을 기준 중위소득 43%에서 44%로 인상한 효과도 포함되어 있다.

화, 2020/01/07-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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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노동 증가,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에 대한 정부정책 검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몇 년 전과 달리 일자리 지도가 바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버나 배달앱으로 표현되는 ‘플랫폼노동’이 사회적 이슈다. ‘타다’ 드라이버, ‘요기요’ 라이더, ‘쿠팡’ 플렉스 기사, ‘대리주부’ 가사서비스 직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미 배달업 다수는 플랫폼노동으로 이동했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기술혁신의 미명하에 증가하는 플랫폼노동

플랫폼노동 대부분은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되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곳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 국가들에서 플랫폼노동 취업자는 2% 정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기술발전으로 온라인 노동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해마다 온라인 노동은 26% 이상 성장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및 크리에이티브, 멀티미디어 직업군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부둣가’나 ‘디지털 갤리선 노예’처럼 일감 찾는 가상이민과 같은 표현도 사용한다. 유럽연합이나 미국, 영국에서 플랫폼노동 규모는 취업자의 0.5~4.0%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2019년 플랫폼노동 규모가 발표되었는데 취업자의 약 53만 명(1.5%∼2.3%)이다. IT나 물류유통이나 온라인 노동(크몽, 위시켓 등) 규모를 보면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플랫폼노동자들이 일을 선택한 이유와 노동조건은 어떤 상황이고, 플랫폼노동은 전업과 부업 중 어떤 형태가 더 많을까. 그리고 플랫폼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표 3-1> 주요 국가 및 한국 플랫폼노동자의 전체 수입 대비 플랫폼노동 통한 수입 비중

<표 3-1> 주요 국가 및 한국 플랫폼노동자의 전체 수입 대비 플랫폼노동 통한 수입 비중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8df85... style="width:964px;height:446px;" />

 

첫째, 플랫폼노동자들의 직업 선택은 일감을 찾기쉽거나 소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일거리를 구하기 쉬워서(28.9%)’와 ‘생활비 등 당장 수입이 필요해서(28%)’가 다수였다. 그러나 플랫폼노동자들은 적절한 계약을 체결하지도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계약체결이 없거나(65.4%), 표준계약(16.4%)을 체결했다. 플랫폼노동은 일과 삶의 균형이 실현되거나 소득이 높은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평균 5.1일 일하고 6일 이상의 비율도 56.9%나 되었고, 3일 이하는 13.7%에 불과했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36.9시간이었으나, 52시간 이상 비율도 23.5%나 되었고, 15시간 미만은 21.1% 정도였다(한국고용정보원,2019). 결국 삶에 직업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직업에 삶을 맞추고 있는 플랫폼노동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플랫폼노동으로 얻는 소득은 주 소득이 많았지만 일부는 부업 성격도 확인된다. 플랫폼노동이 주 소득인 비율은 65.5%였다. 이들은 일을 하면서 실적급 형태의 수수료(69.9%)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플랫폼노동 수수료는 평균 1,534원(3천 원 이상 29.4%, 5백 원 이하 45.8%)이었는데, 시장경쟁으로 수수료가 낮아진 탓에 소득 불안정에 놓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자가 아닌 이유로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서도 낮았다. 특히 고용보험 적용률은 비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며, 음식배달, 퀵서비스 직종의 고용보험 적용률은 더 낮았다.

 

<표 3-2> 국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 적용 현황 비교(2018)

<표 3-2> 국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 적용 현황 비교(2018)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801/679/001/0c2df... style="width:959px;height:362px;" />

 

셋째, 플랫폼노동은 3자 혹은 4자 체계인데, 플랫폼 제공자-대행자-수요자(고객)-공급자(독립계약자) 관계로 구성된다. 다면적 시장에서 계약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플랫폼노동은 불법파견이나 위장도급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주로 배달이나 운송서비스 및 가사서비스 플랫폼노동에서 불법파견이 논쟁되고 있다. 플랫폼노동 특성상 대부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매개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표준적인 서비스와 매뉴얼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술혁신 속에 숨겨진 플랫폼노동의 명암

플랫폼노동이 노동시장 유연화나 자율적인 근무형태 같은 유인이 있다고 하지만 여성 일자리가 남성보다 더 많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정규직을 찾을 수 없어 더 많은 시간 동안 일하기를 원하는 ‘저고용’(under-employment) 문제가 가사서비스 플랫폼노동에서 확인된다.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의 젠더격차는 IT나 전문기술 플랫폼노동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이유로 국제노동기구(ILO)는 디지털 경제시대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ILO는 플랫폼노동을 온라인 작업의 ‘웹’(web) 기반 온라인 노동 형태의 일자리와 배달운송ㆍ가사서비스 작업처럼 ‘지역 장소’(local) 기반 일자리로 구분한다. 언론에 알려진 몇몇 사례만 보더라도 플랫폼노동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소득 수단을 제공한다. 앞으로 디지털 경제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 가치 창출인데, 제조업 못지않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퀴 달린 컴퓨터’라는 표현처럼 플랫폼노동은 기존 유해 환경에서 벗어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또한 일과 삶의 균형이 자유로운 일자리도 있다. 꼼꼼히 봐야겠지만 가사 서비스 영역처럼 비공식 부문의 일이 공식부문으로 전환된 긍정성도 있다.

 

하지만 플랫폼노동 산업은 명확한 사용자가 없어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도 한다. 플랫폼노동자 다수가 근로계약이 아닌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최저임금이나 휴일 휴가, 퇴직금, 사회보험 등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플랫폼노동은 보수가 낮고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제공받고 있다. 게다가 플랫폼노동자들은 기존보다 더 심각한 정도의 시간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도 많다. 대표적으로 일감이나 콜 대기 상태의 시간 압박(being on call)이다. 일감을 찾는 시간이나 응답시간을 놓치면 소득이 상실되기에 항상 긴장 속에 놓여 있다. 재택 근무자들 중 일부는 집에서 대기시간과 노동시간을 혼재하여 지불노동과 가사노동, 일하는 시간 사이의 모호성도 확인된다.

 

특히 플랫폼기업의 고객 서비스 평점이나 리뷰 시스템이 그렇다. 고객 평가는 소득과 일자리에 직결된다. 좋은 평가는 등급 향상으로 연결되고, 본인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부 기업은 서비스 평가가 낮은 사람들을 회원 목록에서 탈퇴시키기도 한다. 플랫폼노동자들 스스로 ‘별점 노예’라는 표현은 이를 잘 반영한다. 게다가 작업과정의 실시간 GPS(위치 추적기)나 APP(응용 소프트웨어)을 통한 전자감시기술의 IT통제도 작동되고 있다. 결국 고객에 의한 통제가 단순 통제가 아닌 일자리 상실의 신호인 것이다.

 

 

플랫폼노동, 사회적 보호 필요

이미 플랫폼노동은 국경을 초월하기에 노동법 준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어렵다. 계약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시정할 공식적인 제도도 없다. 일부 고숙련 일자리를 제외하면 중간 수준의 일자리들이 저숙련 플랫폼노동으로 대체될 개연성도 많다. 앞으로 플랫폼노동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최소한의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 이미 대안적 논의는 시작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표준적인 계약과 수수료 책정, 계약방식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는 사회안전망 적용, 데이터 및 사생활보호, 알고리즘과 정보 비대칭성 논의까지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2017) 조사자료에서는 플랫폼 소득자의 68%가 스스로를 단지 소비자 또는 고객과 연결하기 위해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는 독립적인 노동자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26%는 스스로를 피고용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플랫폼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시 조사결과(2019)를 보면 다수의 시민은 플랫폼노동자를 노동자보다 자영업자에 더 가깝다고 인식(51.3%)하고 있었다. 다만, 임금노동자나 학생은 상대적으로 자영업자나 가사ㆍ주부에 비해 플랫폼노동을 노동자에 더 가깝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맥락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시민 대부분은 플랫폼노동의 사회적 보호와 가이드라인과 같은 제도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에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에서 2년 동안 노사정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플랫폼노동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19년 1월 노사정 대응 방향과 협력을 위한 공동의 정책과제에 관한 기본 합의(2019. 2. 18.) 정도를 도출한 상황이며, 일자리위원회 내에 플랫폼노동TF가 꾸려져 운영되고 있다. 한편 지방정부에서는 서울시가 플랫폼노동을 2019년 시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조례제정 정책 수립 등을 제시(2019. 11.)하고 2020년 주요 정책을 준비 중이다. 그 밖에 경기도, 성남시 등에서도 플랫폼노동 관련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는 플랫폼노동연대를 구성(2019)하고, 조직화와 정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성노조 미디어콘텐츠창작지회(2019)와 미가맹상태인 라이더유니온(2019)이 설립되면서 플랫폼노동 조직화가 진행 중이다. 이와 맞물린 시기에 배달, 물류, 운송 등 플랫폼업체(운영, 대행사) 중심의 ‘코리아스타트업포럼’(2017)이 만들어지면서 국내 플랫폼 노사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플랫폼노동연대와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의민족‘의 우아한 형제들과 초기업형태 교섭을 신청한 상태다.

 

결국 플랫폼노동의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나 새로운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출현한 노동의 형태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자본의 성장과정에서 이윤은 플랫폼기업이 향유하지만 노동자도 영세사업자도 시민도 편리함과 사업의 확장 이외에 큰 도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 플랫폼노동 관련 정책은 일부 직종에 한해 산업재해 적용만을 검토할 뿐,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나 제도개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표 3-3> 한국 플랫폼노동 제도화 및 정책 과제 방향 검토 영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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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노동의 대안적 논의는 비고용기간의 사회적 보호 접근,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소득 안정성과 교육훈련 제공, 고용 위계구조 속 공정한 대우확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노동자 발언 및 대표 권리 확보 등이 보장 혹은 적용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세와 사회보장의 통합시스템 설계와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디지털 플랫폼 과세’를 통해 플랫폼노동자의 소득과 실업급여, 유급휴가, 교육훈련 등의 비용에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프랑스와 미국 캘리포니아(법률), 덴마크와 이탈리아(단체협약), 독일과 이탈리아(사회협약)에서는 플랫폼노동자들에게도 임금노동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사례도 있다.

 

올 한 해 정부 부처, 국책연구기관이나 학계에서 플랫폼노동 연구를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년 한 해 동안 토론회만도 10여 차례 있었다. 과잉 연구나 토론회일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대응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다만, 이론적 틀에 천착한 학계, 진정성이 결여된 성과에 기반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와 관심이 아니라, 노동과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하는 연구와 정책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과거 15년 전부터 시작된 특수고용노동 논의를 되풀이하지 않고 당사자들에게 보탬이 되는 연구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화, 2020/02/1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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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주민에게 피해만 주는 집회에도 ‘민주적 관용’이 필요할까?

이장희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영국의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세계 국가들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아시아 1위(세계 23위)의 민주국가로 기록되었다. 우리나라가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문화를 자랑하지만, 대학에서 헌법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우리가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라는 사실만큼 자랑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놀라운 성과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17년에 조소앙 선생이 기초하였던 ‘대동단결선언’이나 1919년에 제정되었던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선조들은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상황에서도 과거와 같은 왕정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보장에 기초하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꿈을 꾸었다. 특히 1919년의 3·1운동이야 말로 우리 민족이 새로운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자주독립을 향한 의지의 표출이었으며, 그 결과 바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 헌정질서인 ‘대한민국임시헌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 그래서 3·1혁명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민주혁명’인 것이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끈질긴 민주화의 역사였다. 이승만 독재를 물리친 1960년의 4·19민주혁명을 비롯하여, 박정희 독재에 저항한 1979년 부마민주항쟁, 신군부의 등장에 항거한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오랜 군부독재에 종지부를 찍은 1987년 6·10민주항쟁, 그리고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항거하여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2016년 12월의 촛불혁명까지, 반민주적 세력에 저항하여 나라다운 나라,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국민적 의지와 참여, 크고 작은 희생이 마침내 대한민국을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화의 국민적 의지와 열망을 담아 표출한 주요한 형태가 바로 ‘집회’였다는 점에 유념해 본다면, 지난 민주화의 역사는 곧 ‘집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집회는 민주화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성숙한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한다. 특히 ‘집회의 자유’는 한 나라가 얼마나 민주화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집회의 자유’가 없이는 제대로 된 민주화된 사회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어느 독재국가에서 집회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보장된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집회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비중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민주주의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그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정치질서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가지의 생각만 강요되고 그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 사상, 신념이 존중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결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진정으로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려면 일단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생각의 다양함과 갈등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공통의 의사를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란 점에서 다른 정치체제와 달리, 다소간에 좀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총화단결’이란 구호에 익숙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혼란스러워 보이는 민주주의에 다소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품는 경우도 있으리라 본다.

물론 생각이나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에 꼭 집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여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 글을 올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아주 쉬워졌다. 물론 아직도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보통신망을 통제하는 국가도 적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나라를 민주국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회는 나름의 고유한 특징을 가진 표현방법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선호되고 있으며, 특히나 정보통신수단의 활용 덕분에 집회의 개최나 참여가 더 편리해진 환경도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SNS로 함께 의견을 나누던 사람들은 좀 더 효과적인 항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집회를 계획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렇게 모인 참가자들끼리 서로 확신을 공유하거나 서로에게 의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 집회는 사회 내 힘없는 ‘소수자’에게 특히 중요한 의사표현 수단이 된다. 주류 언론에 접근이 어려운 사회 내 소수자들로서는 거리에서의 집회를 통해 단합된 힘을 과시하면서 효과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회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항의(抗議)하는 방식이란 점에서, 그 밖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람들이 통행하는 거리에서 교통 소통에 불편을 야기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또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항의하다보면 흥분이 고조되기도 하여 자칫 폭력 등의 불법적 행동이 발생할 우려도 큰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최고법인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집회가 안전하고 질서 있게 개최될 수 있도록 법적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법률이 바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집회 장소의 인근 주민들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특정 장소에서 집회가 반복적 또는 계속적으로 개최될 뿐만 아니라, 확성기 등을 이용하여 과도한 소음을 발생시켜 인근 주민들의 평온한 주거생활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인근 주민들이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확성기 소음으로 인해 주거생활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고, 심지어 그 인근 서울맹학교 장애학생들의 학습권까지 심각하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집회가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 무인도나 산속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아닌 한, 어떤 집회든 인근 주민의 삶에 다소 간의 피해나 불편을 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다시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집회란 것이 언제나 일정 정도의 소음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그런 집회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인근 주민에게 주거 생활의 불편함을 다소 감수해 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집회 소음을 유발하거나 특정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집회를 개최하여 그 인근의 주민들에게 과도한 불편이나 피해를 계속적으로 유발하는 상황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두 번째 상황일 것이다. 이 경우 과연 어떤 장소에서 또 어느 정도로 소음이 발생해야 인근 주민에게 과도한 소음 피해가 생겼다고 할 수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기준을 잠시 접어두면, 원론적으로 볼 때 타인에게 과도한 피해를 야기한다는 것은 ‘자유’의 정당한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누구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를 부정하면서까지 보장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도한 소음 피해로 인해 그 인근의 주민들이 전혀 주거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러한 집회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지난 2016년에 국정농단사태를 경험하면서 거국적인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촛불을 들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흔히 말해서 “그 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속칭 ‘내로담불’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바로 ‘비례성’이라는 법원칙이다. 말하자면 그 목적이 공적으로 중요한 사안일 경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으로부터 야기되는 피해가 좀 크더라도 그 수단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 목적이 공적으로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수단으로 인해 야기되는 피해 역시 그에 상응하여 작아져야 할 것이다. 지난 날 민주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집회가 공권력과 충돌하면서 거리가 폐쇄되고 가게가 문을 닫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그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의 불편쯤은 다들 감수해주었고 심지어 그런 집회를 응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청와대 인근의 주민의 평온한 주거생활의 방해, 특히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까지 있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런 집회가 얼마나 중요한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 집회가 정말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중요한 공익적 목적을 가졌다면 아마도 지난 2016년의 촛불집회 때처럼, 그 인근 주민들이라도 집회에 공감하고 함께 동참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의 그 집회는 인근 주민들에게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그 집회 참가자들 자신에게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집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그렇다고 피해를 끼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집회라고 하여 함부로 강제 해산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집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집회의 자유’라는 가치 자체가 축소되거나 경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주주의 하에서 또 소수자들에게 ‘집회’는 소중한 의사표현의 수단이기 때문이며, 또 그렇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 역시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어떤 면에서는 또 하나의 ‘소수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또 남에게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불순한 집회이더라도 우리가 함부로 그 자유를 부정하거나 해산하려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집회라도 근본적으로는 민주국가가 건강하게 유지·발전할 수 있는 근본적 기초이기 때문이며, 상황에 따라서는 거꾸로 우리 자신이 그런 집회에 참가하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회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을 함부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헌법질서의 ‘근본적 가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집회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자유롭게 표출되고 또 그를 통해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발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사회구성원들의 건강한 민주시민의 정신, 특히 민주적 관용과 공감의 자세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우리 사회에 그런 민주적 관용과 공감의 노력이 사라진다면 결국 어떠한 집회도 불가능하고 민주주의도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비록 지금은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의 집회가 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개최되면서 나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으로 위법하다고 평가되어 당국의 처분을 받는지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민주시민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더 큰 대의(大義)라 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더 튼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나와 생각이 다른 집회를 존중하고 용인하는 자세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소의 뿔이 비뚤어졌다고 하여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고 말았던 ‘교각살우(矯角殺牛)’의 교훈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집회 개최자나 참여자들은 인근 주민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오직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관철하려는 사람들이 거꾸로 남에게는 관심과 이해, 민주적 관용까지 바라는 것이야 말로 독선적이고 자기 모순적 태도가 아닐까.

 

월, 2020/03/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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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글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64&... rel="nofollow">복지동향 제257호 | 남기철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획주제: 부동산 자산격차, 멀어지는 주거권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61&... rel="nofollow">[기획1]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61&... rel="nofollow">자산불평등의 심화의 문제와 해소대책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위원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45&... rel="nofollow">[기획2]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45&... rel="nofollow">청년 주거권 문제의 본질 : 정상성, 가족주의, 공동체 │홍혜은 민달팽이유니온 운영위원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21&... rel="nofollow">[기획3] 취약계층 대상의 공공임대주택 공약이 없는 이상한 21대 총선 │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90003&... rel="nofollow">[기획4] 주거권. 국가의 책임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 │ 송아영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동향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89970&... rel="nofollow">[동향1] 인근 주민에게 피해만 주는 집회에도 ‘민주적 관용’이 필요할까? | 이장희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89989&... rel="nofollow">[동향2] 반복되는 일가족의 죽음,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 오진방 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

 

복지톡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document_srl=1689947&... rel="nofollow">[복지톡] 붙잡은 손의 힘을 믿으며,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월, 2020/03/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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