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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동 11월산행-화순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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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동 11월산행-화순으로의 초대

익명 (미확인) | 화, 2015/12/01- 06:53

화순으로의 초대

 

화순이 고향인 임정태(사회 83) 동문의 제안으로 11월 산행은 23일 간의 화순의 백아산을 등반하기로 결정하고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일정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6일 오전에 1진으로 출발한 남중현(사회 82) 동문과 조민재(사학 86) 동문은 보성차밭, 쌍봉사, 유마사를 들리고, 부용산에 올라 벌교 평야를 바라보며 남도의 숨결을 느끼고 숙소인 백아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하고 2진인 임정태, 오세제(철학 81), 정선임(화학 83) 동문은 61시경에 명동에서 만나, 여동생의 죽음이 애달파 만들어져 그 애달픔이 민중의 한으로 이어져 전라도 민중의 노래가 된 노래 부용산 을 음미 하며 긴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내장산 단풍의 화려함에 감탄하며 숙소로 합류하고, 전국이 좁다하고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마을에서 노는 언니 민양운(독문 83) 동문이 밤늦게 합류하였다.



7일 새벽 6시에 윤정인 동문(화학 78)과 최원호 동문(물리 83)이 목동에서 만나 부평에 사는 이주섭 동문(불문 83)을 데리고 화순으로 향하였는데 선발대가 카톡에 올린 술상이 빈약하여 애달픈 마음에 바리바리 싸오셨다는 윤정인 동문 덕분에 화순 가는 내내 입에 먹을 것을 달고 갔다. 장정미 동문(영문 82)과 그 아들 민서는 서울 정릉에서 윤봉구 동문(물리 83)과 그 아내 황영숙은 부여에서 화순으로 출발하였다. 선발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삿갓이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는구나.”라고 읊은 물염적벽과 물염적벽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세상 어느것에도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를 가진 정자 물염정400년된 느티나무를 둘러보고 아침으로 임정태 동문의 단골집에서 어탕을 먹고 나중에 출발한 일행들과 1시경에 운주사에서 합류하였다. 황석영이 그의 소설 장길산에서 진도와 전라도 일대의 섬들, 그리고 나주 영암 일대에서 일어난 노비들과 함께 도읍지가 바뀌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통한의 장소로 설정한 곳으로 와불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개벽하리라는 민중들의 해방의 염원이 천불천탑의 전설에 스며들어 있다. 마을이 있었을 듯한 긴 골짜기에 자리잡은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석공들의 연습장소였을까? 그들은 자신을 담은 불상을 새기며 미륵이 오시기를 기다렸지도 모르겠다. 내리는 비속에 운주사를 뒤로하고 화개에서 있는 우리밀 파종식탁 빵 워크숍에 가야할 민양운 동문을 보내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화순의 굼터생선구이집에서 점심으로 먹은 병어는 평소 보덭 병어와 달라 물어보니 이게 더 맛있는 병어로 이맘때가 아니면 먹을수 없는거란다. 점심 식사 후 일행은 조광조 유배지로 향하였다. 해설사가 설명을 마치고 사학과 출신인 조민재 동문이 추가로 해설하는데 해설사 선생님이 감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온천을 가자는 여성 동문들의 빗발치는 성화에 이후 일정을 바꿔 화순온천으로 향하고 여수에서 한의사로 살고 있는 이정우 동문(신방과 83)이 화순온천에서 합류하여 반가운 조우를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몇 십년 만에 회포를 즐기던 동문들은 오세제 동문의 부용산 노래에 한바탕 웃으며 어린날 즐겨부르던 노래도 부르며 둘쨋날 밤을 즐겼다.



8일날 아침에 일어나니 빗물에 더 선연해진 단풍이 반겨준다. 휴양림 입구까지 느긋하게 걸으며 형형색색의 단풍을 아쉬운 마음으로 진정시키고 창랑적벽을 향하였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최산두가 중국 양자강가의 적벽과 비교할 만큼 뛰어나다고 하여 적벽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상수원 보호를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다 개방되었다는데 단풍이 적벽과 어우러지고 이를 안개가 감싸 안으니 그 아름다움에 눈이 감탄하고, 물염정과 물염적벽이 마주보는 옆에 있는 식당에서 먹는 어탕은 남중현 동문이 이 번 여행의 백미라 하던 말이 이해된다. 선약이 있었던 이정우 동문을 아쉬운 마음으로 먼저 보내고 백아산으로 이동하여 백아산을 오르다 일부는 중간에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하늘다리를 돌아 내려오기로 하고 올라간다. 위로 갈수록 길은 험해지고 빗물에 젖은 낙옆은 미끄럽고 안개는 자욱하여 시야는 답답하여 나오던 아우성은 하늘다리에 이르렀을 때 모두 환호로 바뀌며 이 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코 백아산이라 하길 서슴치 않는다. 천상의 다리인 듯 구름위에 떠있는 하늘다리에 올라서니 계곡 아래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옅게 깔린 안개는 환상적인 느낌을 더하여 준다. 도당이 있었다는 마당바위에 나란히 앉으니 그 옛날 천혜의 요새였을 백아산에서의 그 치열했을 전투와 그 가운데 불리워졌을 부용산 노래의 애달픔이 더해져 남도 민중들의 염원이 환상과 함께 다가온다. 백아산 마당바위에서 오세제 동문의 부용산 노래를 들었어야 했다는 장정미 동문의 말이 새삼 되새겨진다. 백아산의 감흥을 뒤로하고 내려와 다슬기 수제비를 먹으려 했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 소쇄원 옆의 담양 떡갈비 집으로 점심을 먹으며 남도의 음식문화에 또 감탄한다. 식사후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발길을 소쇄원으로 향하니 쉬어가기에 편안한 곳이다 싶다.

23일의 화순 여행은 곳곳에 스며있는 남도 민중의 삶과 한을 가슴에 안고 노래부르고 남도의 음식을 맛보며 가을 단풍으로 절정에 다다른 화순의 절경을 눈에 담고 온천물로 세속의 때를 씻으며 오랜 벗들과 함께한 날들이었다. 안치환의 노랫말 이제 우리 몇 번이나 볼수 있을까?’가 저절로 되뇌여지는 여행이었다. 이 모든 여행을 할수 있게 해준 임정태 동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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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주동우회 회비 안내





1년회비 10만원 / 평생회비 100만원 / 후원금

우리은행(오세제/서강민주동우회) 1002-553-610205

농협은행(오세제) 302-0958-9274-01

감사합니다.^^


<2015년 회비 및 후원금을 내주신 동문: 감사합니다~~>

 

학번

명단

72

신영환

73

유재현, 이종수

74 

김선택, 최종덕

77

장영란

78

박종부, 윤종화, 윤정인,이영욱, 이지호, 장근주,    정광일, 한석희

79

고규홍, 배선희

80

백영민

81

고원태, 곽동연김경인, 김경수, 김기준, 김동택,     김수길, 김학원, 금명철, 박만수, 변익상, 

신윤석, 심관섭,   안철환, 오세제, 윤주원, 이건호, 이근호, 이병하, 이정수, 이승용, 이승욱, 

조소강, 진우삼, 차응선, 최성욱, 최원경,   최영민, 한상선

82

강창욱, 남중현, 이문수

83

김기식, 김주상, 공동길, 박주필,이제학, 이태희,    이현일, 임정태, 정선임

84

김병창, 이창섭, 최재형

85

최윤식

86

김종기

90

오세용

98

김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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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1/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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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들에 대한 긴급제언



12 5일에 만나요!

요즘 토요일이면 광화문광장 또는 청계광장에 나간다. 나가지 않은 주말엔 뭔가 찝찝한 느낌이며 다녀온 사람들이나 거기 있는 분들에 대해 죄책감 마저 든다. 지난 11 14일에는 민중총궐기에 나갔는데 누군가의 말이 들렸다.
“이 나이에까지 나오리라는 걸 예전 학생 때는 생각도 못했네.
주위를 둘러보니 나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또래들도 많지가 않다. 대부분 누나, 형들이다.

‘그 때 그 친구들은 다 어디 갔을까?

캠퍼스 안에서 사전 집회 후 교문 앞에서 최루탄에 콜록대던 기억. 한양대, 고려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동국대, 그리고 멀리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도 순회공연을 다녔지. 어렵게 신나를 구해 휘발유 섞어 현수막 천 / 화장지 뭉쳐 손 아프게 화염병 만들고 다음날엔 두려운 마음으로 운반했지. 종로와 을지로에서 흰 장갑 끼고 동을 떠 도로를 점거할 때는 곧 일어날 싸움에 대한 긴장에 앞서 잠시 쾌감도 들었던 건 젊은 날의 패기였을까?

X세대를 기억하십니까?

90년대 초·중반 학번은 동구권의 몰락 후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이다. 많은 이들이 구 공산권의 붕괴에 실망하여 떠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현실사회주의’의 한계를 넘어 진정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가능하리라 믿었다. 어찌 보면 80년대 투쟁의 성과 위에서의 낭만주의적 실험이었다고도 하겠다. 96년 여름의 연대항쟁을 끝으로 폭투는 점차 사그라들었고, 00년대 들어는 데모 자체가 없어졌다.

나도 졸업 후에는 거리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메이데이 말고는 집회, 시위가 있는지도 몰랐다. 나에게도 ‘민주정권 10년’이었던 것이다. 1야당 아닌 진보정당을 지지했지만, 민주정권에 그나마 ‘비판적 지지’로써 호사를 누린 것 같다.

‘그 때가 좋았는데….

다시 거리로 부른 건 MB였다. 그의 당선부터 시작된 허탈감은 광우병-한미FTA 정국과 4대강 강행 등으로 거리로 불려 나왔고, 문성근 선배의 백만민란 캠페인과 나꼼수 등 팟캐스트에도 관심 갖게 했다. 이후 나의 SNS는 일상에 관한 포스팅이 정치 이야기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ㅂㄱㅎ 선배가 되고 말았다!

“이럴 수가….
대부분의 우리 민주 동문들도 그렇겠지만, 나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삶의 희망이 사라졌다. 일도 안 잡히고 멍하니 보냈다. 팟캐스트만 들으면서 은둔에 가깝게 1년여를 보냈다. 박선배의 폭정은 놀라웠다. 청계광장 국정원 부정선거 집회에 혼자라도, 잠깐이라도 가보지 않으면 주말이 뒤 덜 닦은 느낌이기 시작한 게 이 때부터이다.
그러던 중 이건 또 뭔가? 작년 4.16 세월호가 터진 것이다.

아니, 이건 사고가 아니잖아?’

다시 한 번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점점 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고, 거의 모든 사람과의 자리는 이런 문제를 빼고는 대화가 불가능해졌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이 주제가 아닌 다른 소재나 일상생활을 논할 수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무지막지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의 문제부터 풀기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
노동개악, 역사 되돌리기 등 끝없이 치닫는 박정권의 퇴행에 대해 김갑수 선생은 얼마 전 노유진의 정치카페 테라스 51(2015. 11. 5)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망해 가고 있습니다. 저들은 모든 힘을 가지고 날뛰고 있는데 이를 막아낼 세력이 없잖아요.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나 학계, 어디에든 예전만큼 힘이 있습니까? 망하지 않을 거라는 어떠한 낙관적 근거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거에요. 그러면 필리핀이나 멕시코, 아르헨티나 꼴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다시 민중이다!

요즘 민중이란 단어가 지양되고 있다. 전에 하도 많이 쓰여 식상해졌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되돌아가지 않았는가? 대체 얼만큼 후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민중의 궐기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더한 폭력으로 무력화시켰다. 닭장차와 물대포가 최루탄과 백골단 보다 세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이번 주말에는 종교계, 야당이 나서 평화시위를 한다니까 불허한단다.
그렇겠지, 지들 주도의 폭력시위가 원안이고, 원천적으로 집회/시위를 봉쇄하는 건 차선책일 테니까.
이번 2차 민중총궐기에 지난 달 보다 많이 나서지 않으면 저 놈들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승리하지 않으면 철저히 유린당하는 것, 이것이 계급 간의 투쟁이다.

‘서강 민동의 깃발은 크다.

대략 1.5m×1m는 됨직하다. 전국민동 뿐 아니라 웬만한 단체보다 크다. 작게 새로 만드시라고 권했다, ‘사람도 적은데 들기만 힘들다. 그런데, 이번 주말은 지나고 나서 줄여 만들든 하시기 바란다. 이번 한 번만은 제발 서강민동기 아래를 채워줬으면 바래 본다.

옛날에도 시위 나가기는 귀찮았다. 덥거나 춥고 다리 아팠다. 느지막이 나가 폭투 안하고 얌전히 일찍 끝나기를 바랬다. 흠냐, 이런 생각을 또 할 줄이야. ~ 하지만, 당시에도 뺀질대던 선·후배, 동기들, 또 나 자신에게 다시금 말해야 할 것 같다.

귀찮아도 좀 나갑시다~’

우리가 20년 전 집회·시위에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X세대 혹은 문화 시대는 80년대 민주화 시대와 그 세대에 빚졌다고 보지 않는가? 당시에도 그런 생각에 싸웠듯,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나간단 말인가?

옆에 있는 동지들을 믿기에

그 학우들과 다시 나가면 백골단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화염병과 파이프를 주면 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시 한 번 정권 타도를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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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1/2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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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민주동위회 신년회 및 총회 공고!!


                  일시: 2016년 1월 14일 늦은 7시~

                  장소: 서강대학교 마태오관 9층 리셉션홀

                  내용: 2015년 사업 및 결산보고

                         2016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

                         * 맛난 식사와 더불어 진행합니다.


2016년 첫 번째 사업 계획안으로 오세제 회장이 20,30대 후배들이 기초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풀뿌리 정치>제안서를 정리하여 설명하였으며 운영위에서는 사업의 의미와 현실적 역량, 재정여부 등을 고려하면서 12월 운영위에서 더 논의하여 검토하기로 함.

참석자: 오세제, 이정수, 박영숙, 김용희, 정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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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1/2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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