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자] 모차르트가 '바보 로이트겝'을 위해 쓴 호른 협주곡
모차르트가 ‘바보 로이트겝’을 위해 쓴
호른 협주곡
글. 이채훈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등.
호른. 곱창처럼 생겼다. 관 길이가 3.7미터(F 호른) 또는 2.3미터(Bb 호른), 이렇게 길고 구불구불한 관에 숨을 불어넣어서 연주하는 게 가능하다니 놀랍다. 호른 연주자는 연습을 많이 하면 입술이 부르터서 피가 난다고 한다. 좁은 리드에 바람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오보에와 더불어 호른은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꿈꾸는 듯한 소리’가 나는 호른을 좋아했다. 그는 호른을 당당한 독주악기로 격상해 4곡의 근사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여기에는 부드러운 노래, 신나는 사냥 뿔피리 소리, 오케스트라와의 익살스러운 대화가 있다.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1번 D장조 K.412를 들어보자. 느린 악장 없이 알레그로와 론도의 두 악장으로 되어 있고, 전체 연주시간 9분 정도로 짧아서 부담이 없다. 호른과 오케스트라는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정답게 달려간다. 호른 연주자는 체코 출신의 ‘바보르작’. 위대한 작곡가 드보르작의 철자가 Dvorak이니, 호른 독주자 Baborak은 필시 ‘바보르작’으로 읽을 듯. 이름이 좀 우습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호른 연주자로 세계 정상급의 실력이다.
모차르트 호른협주곡 1번 D장조 K.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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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utu.be/SEtsnSWgcZ8 (호른 라덱 바보르작, 바렌보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출신의 호른 연주자 요제프 로이트겝(1735~1811)을 위해 4곡의 호른 협주곡을 작곡했다. 로이트겝이 21살 위였지만 두 사람은 허물없는 우정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모차르트는 1번 D장조 K.412의 자필 악보에 ‘바보 로이트겝’, ‘잠깐 쉬어’, ‘아이고, 이제 끝이군’ 같은 농담을 써 놓았다. 2번 Eb장조 K.417에는 “당나귀, 황소, 바보 로이트겝을 긍휼히 여기며, 1783년 5월 27일”이라고 써 넣었다.
사람 좋은 로이트겝은 한참 어린 모차르트가 ‘바보’라고 놀려도 그저 히죽히죽 웃기만 했나보다. 모차르트도 이 순박한 호른 연주자 아저씨를 좋아했기에 이렇게 토닥토닥 장난을 친 게 분명하다. 로이트겝이 악보를 받으러 찾아왔을 때, 완성된 악보들이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고 한다. 로이트겝이 난처해하자 모차르트는 “알아서 정리할 수 있나 한번 보자”며 놀렸다고 한다.
로이트겝은 1777년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이사한 뒤 ‘달팽이 껍질처럼 작은’ 치즈 가게를 운영했는데,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꾼 돈을 끝내 갚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금전 관계는 모차르트와 로이트겝 사이의 우정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 로이트겝은 장사를 하면서도 호른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로이트겝을 변명한 적도 있다. “그의 처지를 아신다면, 그가 얼마나 힘겹게 지내는지 생각하신다면 가여워 하실 거예요.” (1782년 5월 8일, 빈에서)
두 사람의 우정은 모차르트가 11살 때부터 35살, 마지막 해까지 지속됐다. 모차르트가 마지막 해에 쓴 편지에는 로이트겝이 세 번, 아주 짧게 나온다. 1791년 여름,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는 바덴에서 요양 중이었다. 작곡에 집중을 못 하는 밤이면 모차르트는 로이트겝의 집에서 묵기도 했다. 콘스탄체에게 보낸 1791년 6월 5일자 편지에 “오늘은 로이트겝의 집에서 잘 거”라고 썼다. 6월 25일자 편지에서는 “로이트겝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편지를 급히 마무리한다”고 썼다. 그해 10월 8일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마술피리> 공연장에 로이트겝을 두 번 태우고 갔다”라는 언급이 있다. 그러나 단편적인 언급을 아무리 모아도 로이트겝의 전모를 그려내기 어렵다.
모차르트는 4번 Eb장조 K.495의 악보를 빨강, 파랑, 검정, 녹색 잉크로 그려서 미술작품처럼 만들어 놓았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형편없는 연주자를 헷갈리게 만들기 위해 장난을 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고도의 연주 기량이 필요한 이 협주곡을 초연한 로이트겝이 실제로 ‘형편없는 연주자’였을 리는 없다. 모차르트 당시의 호른은 밸브와 키가 없는 자연 호른이었는데, 자연 호른으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은 요즘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로이트겝은 뛰어난 연주자였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연주 기법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로이트겝은 노래하듯 연주하는 ‘칸타빌레’가 탁월했다고 한다. 그가 연주한 느린 악장들은 특히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마지막 악장의 경쾌한 사냥 뿔피리 소리를 ‘로이트겝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모차르트는 이 협주곡들을 가리켜 ‘로이트겝스러운 것Das Leutgebische’이라 했다. 단순 소박하고 유쾌한 것, 이 협주곡들이 바로 로이트겝의 모습이 아닐까? 이 곡을 연주한 로이트겝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바보 로이트겝’의 연주를 들으며 모차르트는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두 사람의 즐거운 만남이 지금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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