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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인권 확장을 위해 일하는 장서연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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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인권 확장을 위해 일하는 장서연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11/26- 15:35

장서연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창덕궁 돌담길은 은행잎이 따스하게 흩날렸습니다. 원서동 한 모퉁이의 소극장 건물 3층에 위치한 공감 사무실에는 대부분의 변호사님들이 외근을 나간 와중에 장서연 변호사님이 웃으면서 인터뷰팀을 맞아 주셨습니다. 햇빛이 기웃하는 사무실 입구의 티테이블에서 장서연 변호사님을 모시고 출판홍보팀의 최종연 변호사와 송연주 자원활동가가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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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빠 보이십니다. 오늘 오전에는 어디를 다녀오셨는지요.

 

: 오늘 오전에는 3기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NAP)을 수립하는데 있어 연구과제를 맡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성소수자 분야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에 다녀왔어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에 관해 권고안을 제출하고, 정부는 정부차원의 국가인권기본계획 수립합니다. 여기에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립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오늘 주로 다룬 내용은 1, 2기 NAP 이행 여부와, 3기 NAP 수립에서의 검토할 내용들이었어요.

 

: 1, 2기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1, 2기때 인권위에서 굉장히 여러 분야를 권고했어요. 그런데 성소수자 분야는 굉장히 미흡하게 반영되었어요. 1기에서는 동성간 성폭력 처벌(형법개정)만 반영되었고, 2기에서는 전무했죠.

 

: 3기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에 반영시킬 중점 사항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 저는 장기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 분야, 특히 교육과 청소년 분야가 중요하다고 보아요.

 

: 그렇게 생각하시는 계기는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 저희가 지난 화요일 국가인권위 용역으로 성소수자 차별실태조사결과를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2014년 하반기에 조사했던 것인데, 뒤늦게 결과발표토론을 가졌습니다. 조사 결과 중에 청소년 성소수자 5명 중 1명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게 왜 심각하냐면 시도는 안 했지만 자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훨씬 많다는 것이거든요. 학교 안에서의 비하 또는 적대적 분위기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기에는 성소수자가 취약한 환경이고,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충분한 지지를 못 받고 있고,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 차원의 정책, 교육청 차원의 정책이 전무해요.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부는국가 차원의 성교육 표준안 만들면서 동성애, 성적 지향 내용 넣지 말라고 하고 있는 거죠.

 

: 청소년과 성소수자 분야에 대해 변호사로서, 법조인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 2011년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도록 노력했어요. 서울학생인권조례는 무상급식과 더불어 진보교육감의 주요 공약이었고,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 청소년인권운동의 염원이 담긴 정책이었어요. 정권이 바뀌면서 법률로 제정하기에는 입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민발의조례로 되었던 것인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한 차별금지와 보호의 내용도 담겨있었어요. 거기에 대해 보수진영에서 공격을 하면서, 제정이 되면 자녀들이 동성애자가 된다느니,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배운다고 피켓 들면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고, 서울시 의원들한테 매일 500통씩 반대문자가 가고 그러던 상황이었어요.

 당시 민주당이 서울시 의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들어가면 조례 자체가 부결된다는 염려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을삭제하려고 했던시도들이 있어서, 학생인권조례가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이 2011. 12. 14. 서울시의원회관을점거하고 시위에 돌입했어요, 당시에 민주당 원내대표도 찾아가고 여러 각도로 설득한 끝에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정해서 통과를 시켰습니다.

 그 이후에 곽노현 교육감이 물러나고 문용린 교육감이 들어서고, 이주호 장관이 무효소송을 제기하면서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정착이 되기 힘들었는데, 조희연 교육감 당선 이후에 학생인권옹호관도 임명하고, 조례를 학교현장에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저도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으로서 자문을 하고 있고요.

 

: 장서연 변호사님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 제가 대리했던 사건 중에서 한 고등학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집단괴롭힘끝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부모가 교육청 상대로 학교폭력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음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어요.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이 심각한 문제이고, 탈가정, 탈학교한 청소년의 상당수가 성소수자라는 실태조사도 있는데요,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예방이나 지원을 위한 캠페인 또는 정책을 외국에서는 많이 실시하고 있어요. 대만에서도 남학생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집단괴롭힘끝에 학교 안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대만사회는 이런 비극적인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성평등교육법을 10년 전에 제정, 시행중이에요.2년 전에 제가 대만의 퀴어퍼레이드에 갔을 때 청소년들이 직접 나와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도 부모가 진행하는 소송밖에 없고, 사회가 전혀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것 자체가 더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왜 한국에서는 경각심을 못 느낄까요?

 

: 한국은 청소년의 자살률이 굉장히 높잖아요. 이제는 사회가 너무 무감각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 대리하셨던 청소년 성소수자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나요.

 

: 제가 1심부터 맡았던 건아니고, 2013년에 대법원에서 피고 측 책임을 30%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 했어요. 집단괴롭힘이 빈번하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았다면서 자살에 대한 학교 측 예견가능성이 없었다고 판단한 거에요. 그게 법률신문에 나면서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고, 이 사건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집단 괴롭힘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서, 파기환송심 부터 개입하게 되었어요.

 사건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파기환송심은 법에 따라 대법원의 법률적 사실적 판단에 기속이 되는데,저희가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자의 전문가 증언이나 자살예방전문가의 심리적 부검 결과도 제출했는데, 결국 자살 부분의 학교 책임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지 않았어요.

 

: 대법원에서 결국 자살에 대해 어떤 취지였나요.

 

: 대법원은 괴롭힘이 빈번하지 않고, 물리적 신체적 폭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중대하고 심각한 괴롭힘이 아니라는 식으로 판단했는데, 저는 대법원이 집단 괴롭힘의 특성, 성소수자 학생의 취약성을 간과했다고 봐요. 또 하나의 문제는 대법원은 법률심인데, 원심에어 인정한 사실관계를 너무 간단하게 뒤집어 버린 거죠. 주심이 김신 대법관이었데, 개인의 종교관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죠.

 

: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에서 조금 주제를 바꿔서, 영화 <친구사이>에 관해 소송을 대리하셨다고 읽었습니다. 당시 변론의 중점은 무엇이었나요.

 

: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관람불가처분을 받아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어요. 영화 ‘친구사이?’의 제목은, 군복무중인 연우진을 애인인 이제훈이 면회하러 갔는데 면회신청서에 ‘관계’를 적을 때 ‘애인’이라고 적었다가 ‘친구’라고 적은데서 나온 건데요, 다른 영화제에서는 12세나 청소년 관람가로 상영되었고, 성소수자의 현실을 따뜻하고 밝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였어요.

그런데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이 영화가 동성애를 주제로 하고 있고, 여관방에서 둘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고 선정성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준거에요.

제가 왜 <친구사이> 등급 문제를 중요하다고 보았냐면,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앤드류 솔로몬이 쓴 <Far From The Tree>라는 책이 있었어요. 이 책의 내용이 far from trees, 즉 가족 또는 어떤 계보에서 떨어져 있다는 뜻인데, 장애인, 트렌스젠더, 게이, 영재의 경우 수평적 정체성이라고 해서, 수직적 정체성인 인종이나 가문 등에서 멀어져 수평적인 정체성을 가진 그룹을 만나야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거에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는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고, 그런 사회와 문화의 통념에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낙인이 뿌리깊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내면화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어요. 그래서 소수자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친구사이>의 청소년관람불가 결정이 영화사뿐만 아니라 청소년 집단에도 중요한 이슈라고 보고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청소년관람불가 취소소송은선례가 없고 후례도 없어요. 그 이유는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오면 그대로 개봉하거나 해당 장면만 삭제해서 상영하면 되는데, <친구사이>처럼 다투려면 4년이나 걸려서 대법원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흥행이나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거죠. 결국 이 소송은 김조광수 감독이 의지를 갖고 만들었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가 당시 서울행정법원의 첫 기일 분위기를 잊을 수 없는데, 처음에는 우배석 판사가 뭐 이런 사건을 법원에 가지고 왔지 이런 분위기였어요. 1심 재판장은 이광범 부장판사였는데, 영화를 검증한다면서 부장판사 사무실에서 <친구사이> 영화를 기자들과 같이 보았어요. 결국에 재판부는 청소년관람불가가 표현의 자유, 성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알 권리,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승소했어요. 그 이후에 영등위가 계속 상소했는데, 대법원에서도 승소해서 확정되었지요.

 

: 성소수자 인권문제의 경과에 있어서 작년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변호사님도 계셨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단히 들을 수 있을까요.

 

: 작년에 저희는 서울시가 인권헌장이 무산되었다는 발표를 하고, 박원순 시장이목사들에게 사과하면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시작했어요.

 

: 이제 거의 시청점거농성 1주년이 돌아오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소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 박원순 시장은 당시에 농성 대표단에게 사과를 하면서 실무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해서, 서울시 혁신기획관과 인권국 차원에서 활동가들과 현장의 인권 이슈에 관해 정례적 면담을 했었어요. 그러데 서울시 행정에서도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서울시민인권보호관에게 진정한 사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더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서울시민인권헌장에 관한 2015년 예산은 전혀 집행하지 않았고, 2016년에는 예산도 전혀 배정하지 않았어요.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 이후 도미노처럼 다른 성소수자 인권이슈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 직후인 2014. 12. 30. 성북구청에서 청소년위기지원사업 예산을 불용시켰고, 올해에는 교육부에서 성교육 표준안 문제도 그렇고, 여성가족부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것도 그렇고,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설립 신청에 대해 법무부가 거부 처분한 것도 그래요. 저는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이슈에서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반대시위자들의 기를 살려줬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한지가 벌써 15, 16년째인데, 그 전에는 반대시위자들이 축제를 방해한 적은 없었는데 2014년도에는 길에 몰려나와서 몸으로 막고, 5시간 동안 행사 진행을 방해했어요. 이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몰려다니며 성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해 반대를 하는데, 그것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니까 폭력성이 더 심해지는 것이죠.

 그래도 한편으로는,무지개농성이 있었기 때문에 2015년 퀴어문화축제를 서울시청광장에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있었고, 퀴어문화축제를 취소하라는 압박도 있었는데도. 서울시에서는 시청광장은 신청자 누구나 사용가능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죠.

 

장서연 변호사님은 시종일관 온화하고 미소짓는 표정이었지만, 그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고 거침없는 답을 해주었습니다. 녹음을 하고 있었지만 다 들을 자신도 없었고, 타자를 치면서도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가 버거웠습니다. 결국 주제를 살짝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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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만 다루었는데, 다른 많은 인터뷰들에서도 다루었지만 과거로 돌아가 볼게요. 한영외고에 다니신 후에 법대로 진학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 법대 가는 사람들은 다 성적대로 가는 것 아닌가요 (웃음) 공감의 공채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된 것은 2006년 광주지검 순천지청 근무중이었는데, 사실 저는 그동안 순응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부모님 권유대로 특목고 입시를 보았고, 법대에 진학해서 사시를 보았고, 검찰 임용이 되어서, 주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거든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짝사랑이었지만 여자 선배들을 좋아했고.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에 인터넷 통신을 접하면서 유니텔에 퀴어 동호회를 찾은 거에요, 거기서 다른 성소수자들을 처음 만난 거에요. 이쪽에서는 그걸 데뷔라고 하는데, 사람들과 신나게 잘 놀다가 4학년이 되니까 미래가 불안해지는 거에요, 학점은 너무 안 좋고. 마침 그때 친한 친구가 신림동에 고시공부하러 간다고 해서, 저도 같이 간다고 해서 사시공부를 시작했던 거에요.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 다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나왔는데,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날 때는 너무 좋았지만, 공감에 오기 전까지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커뮤니티의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에 따라 일반, 이반 이렇게 나뉘는 삶인거죠. 커뮤니티에서는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지역에서 검사로 근무하다 보니, 수도권처럼 커뮤니티도 별로 없거니와, 검사라는 신분 때문에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나고 사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예를 들면 기업인들도 함부로 만나면 안 되고… 초임 검사 시절이라 그런 경계심이 컸었고.. 그러다보니 제 인생에서 사시공부도 너무 힘들었는데, 검사생활도 너무 불행했어요.

 

: 검사 일 자체는 성격에 맞으셨나봐요(웃음)

 

: 검사 일 자체는 좋았고 검찰청 사람들도 좋았지만 제 삶이 없는 거죠. 고민하던 차에 공감 공채를 보았고, 그 전에 제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사법연수원에 강연을 왔었고, 정정훈 변호사가 제1회 무지개인권상 수상하며 이런 일을 하는 변호사단체도 있네 알았었거든요. 그래서 공감에 지원했는데, 와보니까 막상 성소수자 관련 업무를 별로 안 하고 있더라구요. 사실 공감에 와서 저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주민, 난민, HIV 감염인, 출입국단속, 외국인보호소에 대해 관심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2007년에는 성소수자 관련해서 법제도를 검토하고 소송을 진행할 사건이 별로 없었어요.

 

: 최근에 코리아헤럴드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320일 모로코인 난민신청자가 본국에 강제로 송환되던 중 인천공항에서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변호사님도 보셨는지요? 외국인 보호소나 불법체류자 인권 침해 문제가 왜 이렇게 심각한 걸까요?

 

: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IS의 테러가 있고, 이러한 테러의 예방 명목 차원에서 이주민 또는 난민 등을 강제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예전에 이명박 정부에서 G20 정상회의한다고 이주민들에 대한 불심검문, 단속강화를 하겠다고 이야기했었어요. 사실은 그것이 인종차별적인 거죠.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 봤을 때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비국민으로서의) 외국인들인데, 제가 사실 외국인보호소나 단속문제에 관심갖게 되었던 이유는 이곳이 정말 무법지대라는 것이었어요. 적법절차라는게 전혀 없고, 구속 및 추방인데도 법원 영장도 없고, 집행기관과 조사기간 역할을 모두 출입국관리소가 담당하는 거고, 인권침해가 굉장히 심각했어요. 합법체류자였는데 부당하게 구금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인인데도 외국인으로 오인을 받아서 단속되는경우도 있었거든요.

 

: 외국인 인권 문제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당시보다 진보한 분야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 외국인보호소에 외국인을 수용할 때는 3개월마다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는 것으로 출입국관리법이 2010년에 개정되었어요. 예전에 베트남이주노동자들이 인천항 건설현장 파업으로 인해 구속된 사건이 있었어요. 그것도 경기도경 외사부에서 기획수사로 부풀린 사건이었는데, 업무방해 무죄를 받고 석방되었어요. 당시 인천지역 건설노조연맹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고 석방 이후에도 일자리를 알아봐주었고, 한국에서 베트남공동체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기억나는 사건은 한 중국동포가 고용허가제로 신체검사시 HIV 양성이 나와 출국명령이 떨어졌는데, 당시 생모가 한국에서 귀화해서 살던 상태였어요. 과거에만 해도 감염인은 출입국관리법상 강제퇴거, 입국금지대상이었는데, 단지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강제퇴거를 시키는 것은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전혀 근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출국명령취소소송을 했고, 국가인권위가 당시에만 해도 중요한 인권침해사건의 경우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었는데 이 사건에서도 의견을 법원에 제출해서 1심에서 승소를 하여 출국명령이 취소되었어요. UN에서도 한국 정부에 HIV 감염인에 대한 출입국통제를 폐지하라고 권고를 많이 했었고, 지금은 정책적으로 HIV 감염인이라고 강제추방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UN의 권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최근의 자유권 규약 이행실태에 관한 권고도 있고, 국제인권 메커니즘에 의해 국제기구가 권고를 하면 우리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나요?

 

: (파안대소하며) 그렇지는 않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인권 메커니즘으로 문제제기를 시도하는 이유는요?

 

: (변화를 요구할) 근거가 되니까. 정부가 너무 무시하는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법무부와 외교부도 국제사회에 나가서는 말이 다릅니다. 외국에 나가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노력,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러나 2007년 차별금지법 무산 이후 정부는 한 번도 발의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말이 다르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입장에서 신경을 쓰고는 있다는 것이거든요. 저도 <공감>에 오기 전에는 국제인권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몰랐어요. 정기적으로 한국에 대해 심의하는 것도 몰랐고, 의견을 내는 것도 몰랐죠. 2012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NGO 리포트를 내고 심의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제기구의 권고가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법을 만드는 국회는 결국 원내다수석과 다수결의 원리가 작용하는데, 인권이라는 것은 다수결의 원리에서 배제되거나 권리에서 침해되는 이슈들이 많아서, 국제사회의 인권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 수단이라고 봐요.

 

: 실제 소송에서 국제인권규약이 판결 근거가 된 경우도 있나요?

 

: 2013년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트렌스젠더 성별정정사건에 대해 판단하면서, 결정이유에서 외국 입법례도 많이 담고 있어요. SOGI(Sexual Orientation & Gender Identity)법정책연구회라고 있어요.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류민희 변호사도 있고 다른 LGBTI 활동가들과 연구자로 구성된 정책연구회인데, 2011년에 제가 제안하여 결성되었는데, 장애법연구회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거에요. 여기서 성별정정에 있어서 외부성기수술을 요구하는 것을 문제제기하기로 하고, 그래서 성기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이 상태에서 성별정정을 해달라는 소송하기로 했어요. 왜냐면 대법원 예규 지침에 보면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전환될 성별의 것과 유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하지만 외국에서는 예를 들면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는 그러한 생식능력제거나 외부성기수술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신체완전성의 침해라서 위헌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시대가 변하면 그런 부당함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하겠지만, 성전환자는 현대 사회에서 강제불임을 강요받는 유일한 집단인거에요. 트랜스젠더라고 모두 성전환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위화감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의료적 처우도 각각 다르게 해야한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거든요. 호르몬만 맞더라도, 그걸 transition이라고 하는데 성전환이 이미 많이 된 상태인데, 신분증의 표시와 실제 외관이 달라서, 심지어 투표소에도 못 가고, 채용과정에서 불이익도 당하고, 은행, 병원 같은 데에서도 본인 맞냐고 물어보는 등 차별이 심각해서, 성별정정요건을 완화하는 공익소송을 한거에요. 저희는 대법원까지 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당시 서울서부지법원장이었던 강영호 법원장이심문기일에서 진지하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용결정을 하였어요. 그 이후 기사화가 되면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트렌스젠더분들이 정말 4-50명이 모이고, 법원에 성별정정신청을 많이 했어요.

 

: 이후에 다른 법원에서는 외부성기수술 없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신청이 어떻게 되었나요?

 

: 지금 다른 곳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인천지법 부천지원, 서울가정법원에서도 인용되는 경우가 있고요. 그런데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도 법원장이 바뀐 이후로 기각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인터뷰 도중에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와서 인터뷰와 녹음은 잠시 멈추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화가 온 순간부터 녹음은 중지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빼는 동안 동성결혼에 대해 송연주 활동가가 열심히 인터뷰를 나누었지만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전적인 인터뷰어의 과실으로, 나중에 장서연 변호사님이 다른 기회에 더욱 상세히 밝히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이제 민변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민변 소수자인권위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활동을 자평한다면 어떠신가요?

 

답 : 민변 소수자인권위가 출범한지가 이제 5년인데요, 앞으로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가 더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입위원들이 민변에 가입할 때 관심 있는 위원회로서 지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망법도 민변 소수자위에서 만나서 결성이 되었고, 소수자위는 젊은 위원회고 앞으로 활동이 점점 더 확대되고 강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민변의 위원회 중심적인 활동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 있을까요?

 

: 위원회 회의만으로는 실질적인 업무를 함께하기가 힘들고, 예를 들면, 동성결혼소송 변호인단처럼 팀을 구성해서 같이 일할 수 있죠. 신입변호사님들 중에서는 근무시간에는 시간을 내기 어렵고 근무 외 시간을 별도로 내야하고, 보통 보면 3년차까지 제일 바빠서 다른 활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수자위 활동도 그런 어려움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봐요.

 

: 이제 공감에 들어오신지 8년이 다 되어가시는데요, 보통 인권변호사를 지망하는 경우 공통적인 특징이 있나요? 또는 인권변호사로서 가장 오래 남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까?

 

 : 공감 변호사나 민변 변호사나 다 꾸준히 하지 않나요(웃음). 제가 보았을 때는, 민변에 가입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갖고 법조생활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민변에 일단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싶고. 저는 사실 민변이 되게 좋은 울타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변호사 시작할 초창기에 2008년 미국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연행된 모든 사람들에게 민변 변호사들이 접견을 갔다는 것과 몇 년 후까지 사건을 지원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2009년 용산참사나 동성결혼 소송을 민변 선배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신입 또는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일단 나오시라는 거에요. 처음에는 민변 활동을 하기에 좀 어색하죠. 저도 민변 송년회 나가면 어색해요(웃음). 하지만 자주 나오다 보면 소속감도 느끼고 친근함도 느끼는 것 같아요.

 

: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민변에 계시는 동료 및 선·후배 동기 분들에게 결합 요청을 하시고 싶으시거나, 또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2007년 민변에 처음 입회할 당시와 지금은 성소수자 이슈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서울시청 무지개 농성 당시 (민변 결성을 주도한) 박원순 시장을 상대로 농성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변에서 적극적으로 연대와 지지결정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외부적이고 정책적인 변화보다 민변 내부의 문화가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성애 중심적인 문화라든가… 민변 안에서도 처음만나면 결혼했는지 물어봐서 불편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민변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 민변 집행위원회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정례화한다고 해서, 제가 ‘성희롱’의 개념에 대해 여성에 대한 성적 괴롭힘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괴롭힘 등 인권감수성을 포괄적으로 담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런 작은 변화들처럼, 민변도 성소수자 및 소수자의 인권 감수성에 관해 점점 변화하고 있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점심시간을 포함한 인터뷰 시간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뒤늦은 점심식사를 제안했지만 장서연 변호사님은 오후 재판일정 때문에 점심식사도 못 하고 바로 일어났습니다. 돌아오는 서울 시내의 풍경은 마냥 바쁘고 평온했지만, 장서연 변호사님의 말씀과 고민들이 계속해서 묵직하게 남아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말 없는 동물들과 말 못할 외국인들, 말없는 듯하지만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자들의 대변을 위한 장서연 변호사님의 열정에 많은 이들이 영감을 얻고 함께했으면 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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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탄핵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 탄핵을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어떤 것의 실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탄핵 이후 우리는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모두가 평등한 그야말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또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함께 만들어낸 일들은 ‘한국 사회가 적어도 비정상적이었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다시금 환한 민주주의의 빛을 밝힐 역량이 있었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사실의 증거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탄핵 과정에서 민변이 했던 수많은 활동에 수많은 회원이 함께 하며 지난겨울을 보냈다. 분홍빛 벚꽃 피는 봄을 목전에 둔 3월, 추운 겨울과 함께 했던 수많은 회원 중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세 사람의 회원에게 지난 ‘겨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 ‘2017 민변 탄핵버스킹과 광화문 본무대 발언에 참여했던 김도희 변호사

민변 박근혜 정권 퇴진과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퇴진특위’) 특검대응팀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법률팀에 참여했던 김도희 변호사. 퇴진특위 활동과 회사 일을 병행하다 보니 점점 바빠져서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두세 시간 바짝 퇴진특위 논평이나 성명을 쓰고 업무를 시작”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김도희 변호사는 그래도 지난겨울이 재미있었던 것 같은 얼굴이었다. 김도희 변호사는 민변이 지속적으로 성명과 논평을 발표하고, 때로 특검에 고발하기도 하는 일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과 특검이 헌정유린의 주범과 비리 재벌을 수사하는 과정에 대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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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김도희 변호사는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겨울 김도희 변호사는 방송 출연, 팟캐스트 출연, 길거리 버스킹, 광화문 본무대 발언 등 유난히 시민들 앞에 서서 몸을 드러내고 입을 벌려 말해야 할 일이 많았다.

두 차례 광화문 본무대에 올라갔던 일을 두고 김도희 변호사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제가 사실 앞에 나서서 이슈를 만들고 사진을 찍고 그러는 걸 정말 싫어하고, 잘 못해요.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말이 안 나오는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김도희 변호사가 처음 광화문 본무대에 올라갔을 때는 ‘반올림’에서 활동 중인 삼성반도체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와 그 어머니, 현대자동차 노조원까지 네 사람이었다. 김도희 변호사는 “너무 떨려서 겨우 1분 이야기하는 건데, 원고 볼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계속 다른 사람 앞에 나설 일이 생겼다. 민변 탄핵 정국 특별 팟캐스트 ‘탄캐스트’에도 출연했고, ‘김어준의 파파이스’에도 출연했다. 라디오 인터뷰도 있었고, 눈이 펑펑 내리던 1월의 어느 토요일 ‘2017 민변 탄핵 버스킹’의 두 번째 버스커로 시민들 앞에서 길거리 버스킹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탄핵 전날에는 두 번째로 광화문 본무대에 올랐다.

 

“두 번째 올라갔을 때는 혼자 올라가서 5-6분 정도 발언했어요. 정말 달달달달 외워서 올라갔죠. 그래도 그 때는 좀 흥분하긴 했지만 틀리지는 않았어요. 잠깐 얼어서 말을 못 하는 순간도 있었는데, 보시는 시민 분들이 환호를 해주시면서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광화문 촛불집회 본무대만큼 거대한 객석을 마주보는 무대도 없을 텐데, 신기하게도 격려해주고 호응해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다 들렸다. 그날 김도희 변호사는 “내일 탄핵 인용이 결정되면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검찰 앞까지 데려다주고 싶다”고 말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대면 의사소통에서 언어의 뜻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7%밖에 되지 않는대요. 나머지는 전부 눈빛, 표정, 제스쳐, 목소리, 억양 같은 비언어적 정보라는 거예요. 제가 전달하는 정보의 93%가 ‘난 지금 당황했다, 난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렸다’는 메시지를 ‘뿜뿜’ 내뿜고 있는데, 보시는 분들이 모를 수가 없죠.” 이 이야기를 하면서 김도희 변호사는 광화문 본무대에 섰던 자신의 모습이 다시 생각해보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적성에 안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모두가 탄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뛰는데 ‘저랑 안 맞아서 못 하겠어요’라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말했다. 상황에 떠밀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김도희 변호사 스스로의 의지인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경험이 저의 내성적인 성향도 극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요?”

퇴진특위는 해단식을 치렀지만, 김도희 변호사의 활동은 끝나지 않는다. 특검대응팀은 앞으로도 박근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할 경우 논평과 의견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퇴진특위 활동을 계기로 재벌개혁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재벌을 포함한 국정농단 세력이 얻은 그 재물들을 뺏어 와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고,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유신 세력이 권력과 돈의 힘으로 뭐든 해결하려는 행태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상 지난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돈으로 흥한 자는 돈으로 응징해줘야” 하고, 범죄수익이 환수되어 “그들이 빼돌린 돈까지 탈탈 털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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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변호사는 “탄핵이 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 수익을 환수하고 재벌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도 언젠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탄핵 직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집요하게 ‘탄핵이 몇 대 몇으로 인용될 것 같냐’고 묻자 “8:0, 최소 7:1”이라고 말했던 김도희 변호사다. 주변에서 “다들 입 조심하는데 8:0을 이렇게 질렀다”고 놀렸지만, 그게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그러니까 재벌과 유신 세력의 범죄수익환수도 언젠가 반드시 될 것이라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제 세대에서는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믿고 가는 거죠. 되어야 하니까.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믿고 시작하지 않으면…….”

두 번째 이야기: 국회 탄핵 소추위원 대리인단 전종민, 탁경국 변호사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단에 합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떠오른 생각 세 가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재판에 참여하게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처음 생각은 ‘역사 앞에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재판이니 책임이 무겁구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야, 이거 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은, “민변 회원으로서 탄핵 심판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정말 잘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전종민 변호사와 탁경국 변호사가 탄핵소추 대리인단에 합류한 것은 12월 중순이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민주당과 합의하지 않은 채 대리인단을 선임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민변 회원인 두 사람이 9개의 소추 사유 중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을 맡아 합류하게 됐다.IMG_9017

겨울에 시작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석 달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재판이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사실관계를 두고 다툰 바는 많지 않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사실관계를 대통령측이 치열하게 다투어서 사실관계를 어떠한 증거조사 방식으로 인정할 것인지, 증인신문, 사실조회, 서증제출을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지에 대하여 대통령 측 대리인단과 치열한 다툼을 벌여야 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들도 사실 처음 재판을 시작할 때는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고 전했다. “쉽게 얘기하면 증거를 채택할 때 형사재판에 준하여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민사재판에 준하여 채택할 것이냐가 문제였거든요, 형사는 굉장히 엄격한 조사방식을 거쳐 증거채택을 하잖아요. 그래서 국회에서는 ‘민사처럼 진행해달라’고 요청했어요,” 형사재판처럼 엄격한 증거 채택 절차를 거친다면 제출된 증거에 대한 피고인의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원 진술자가 재판에 출석하여 진술의 진위를 확인해야 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재판부는 절충적인 방식을 기준으로 세웠어요, 형사법상 전문법칙을 적용하는 쪽으로 원칙을 세우되, 다만 검찰 기록 중 변호인이 입회하여 진술한 조서는 원진술자가 심판정에 나오지 않더라도 증거로 채택한다는 것 등이지요.” 증거 채택 절차부터 매 순간이 고비였다.

두 번째 고비는 안종범과 정호성의 증인신문이었다. 최순실이 사실대로 증언할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다행이 안종범, 정호성이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안종범은 ‘업무수첩 내용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작성된 것이 맞다’고 인정했고, 정호성 역시 ‘청와대 내부 문건을 최순실에게 보낸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안종범이 수첩을 인정하는 순간 ‘5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고, 정호성을 신문하면서 ‘7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겪은 마지막 고비는 태극기 집회가 가열되기 시작한 이후였다. 김평우 변호사 등 원로 변호사들이 대거 대통령 측 대리인단으로 선임되었고, 재판은 전종민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법리논쟁보다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탁경국 변호사에게 가장 인상적인 증인은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증인신문에 출석한 유진룡 전 장관은 “2014년 1월 초까지만 해도 ‘장관 소신대로 하라’던 박근혜 대통령이 어느 순간 좌파 척결을 주창하는 김기춘 측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도대체 어느 시점에 박대통령이 태도가 변한 것 같냐”고 묻자 유 전 장관은 “아마 세월호 참사 이후로 태도가 변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고 답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언론 자유 침해, 뇌물죄 부분에 대해 좀 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와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 탄압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 자료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뇌물죄 역시 국회가 탄핵 사유를 작성할 당시 검찰 공소장에 근거해 박근혜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직권남용’과 ‘강요’라고 제시한 상태였다. 특검이 박 대통령을 뇌물죄로 입건했다 한들 재판부에 특검 수사 결과를 증거로 제출하는 그 순간부터 대통령 측에 반박할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했다. 두 사람은 “안종범이 5부 능선, 정호성이 7부 능선이었다. 조기에 승부를 보자는 대리인단의 전략이 주효했다”면서도 “그러한 전략으로 인해 언론 탄압과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로 인용되게 할 수가 없었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부터 “탄핵이 인용되지 않을 거란 의심은 없었다”고 했지만, 탄핵 전날 전종민 변호사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라의 운명을 헌법재판관 8명한테 맡기다니 가혹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말로는 동네방네 8:0이라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됐다”며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렇게 내기라도 해야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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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탄핵 선고를 지켜봤던 사람들 입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아마도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무슨 생각,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닐까. 역사적인 재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탄핵소추 대리인단이 그 순간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했다. 전종민 변호사는 “사실 처음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표 받은 것도 배척하고,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의 자유 침해도 배척하고, 세월호까지 배척하는 걸 보면서 ‘아 이거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까지 탄핵 사유에서 배척되자 불안감도 느꼈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탄핵 사유에서 배척할 때는 좀 불안했죠. 저희는 문체부 1급 공무원들 사표 받은 것까지 두 개는 인정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국정농단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한 부분만 인정했으니까요.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게다가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그날 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전종민 변호사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채명성 변호사가 날 보면서 씩 웃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떠올렸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을 마주보고 앉는 국회 소추위원들이 “저쪽은 우리보다 정보가 훨씬 많을 텐데 뭔가 불길한 일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는 이야기가 방송에까지 회자됐다.

그러나 탁경국 변호사는 “원래 소추사유는 첫 번째가 국정농단이고, 세계일보 언론 탄압과 세월호 참사는 세 번째, 네 번째였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소추 사유가 먼저 등장하는 것을 듣고 선고 도중에 ‘아, 인용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탄핵이 인용되어 “주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문장이 낭독되자 전종민 변호사를 바라보며 웃던 채명성 변호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이동흡 변호사 역시 급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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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선고 직전, 탄핵 소추 대리인단 단체 톡방에서는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웃으면 안 된다는 말이 오갔다. 탁경국 변호사는 “기각되면 웃어도 되죠?”라고 되받았다. “뭐, 저는 워낙에 자신 있었으니까.” 라면서도, “막상 ‘파면한다’는 주문을 듣고 나니까 좀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탄핵을 믿었고, 믿음 그대로의 결과를 만들었지만 감격이 없을 순 없었을 테다. 탄핵 소추 대리인단 중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 뒤 서로 치하했고, 탄핵 소추 대리인단에 함께 참여했던 이용구 변호사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울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따로 회포를 풀 만한 여유는 없었다. 전종민 변호사는 “사실 도망간 거죠. 그날 안국역 일대 어땠는지 아시잖아요”라고 웃었다.

인터뷰 말미 전종민 변호사는 “민변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헌신하는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92년 윤종현, 김선수, 김한주 변호사를 도와 故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사법시험 직후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 준비를 돕다가 시험 합격 후 판사가 되었던 전종민 변호사가 법원을 그만 두고 나왔을 때, 10년 만에 다시 마주친 김선수 변호사가 “법원 왜 나왔어? 법원에 좀 더 있지, 밖에 나와서 뭐하려고.” 하시던 게 그렇게 서운했다고. “그 후에 민변 활동을 대의원회 참석하는 정도밖에 못 했어요. 변호사 생활이 바쁘더라고요. 민변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한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어요. 처음 탄핵 심판에 참여하게 됐을 때 그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민변에서 법조 첫 출발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변호사님들에게 존경과 격려를 보낸다고, 꼭 적어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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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을 찍는 동안, 탁경국 변호사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며 부끄러워 했다. 육아 및 가사 분담에 철저한 가정적인 남편과 아버지로 유명한 탁경국 변호사 얼굴에 웃는 주름이 선명했다. 탁경국 변호사는 지난 2015년 <계란찜 아빠, 꼬막 남편>이라는 에세이집도 냈다. 탁경국 변호사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정”이라며 “어려운 이론 말고,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찍었을 때 예쁘게 나오는 얼굴은 따로 있다. 탁 변호사님은 얼굴에 웃는 주름이 잡혀있어서 사진 찍었을 때 근사하다”고 말하자, 탁경국 변호사의 답이 이랬다. “아내한테 사랑받아서 그래요.”

수, 2017/03/2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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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자기 소개부터 시작할까요?

 

오윤식 저는 연수원 34기로 12년차 변호사로 법무법이 공간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권리구제의 공간, 사회기여의 공간’이라는 법무법인 공간 명함을 파서 다니고 있는데요, 변호사로서 저의 지향점이 그 말에 녹아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변호사들이 권리구제를 통해서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그런 명함 파가가지고 다니니까 ‘사회기여’라는 말을 빼고 돈 많이 벌어라고 핀잔 주던 후배도 있었는데, 생활의 기반이 되는 물적 토대도 매우 중요하죠. 성현(聖賢)이신 맹자도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런 물적 토대가 튼실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변호사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받은 재능을 공동체에 돌려줌으로써 사회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늘 부족하지만,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김지미 처음부터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뭣하지만(웃음) 73년생이라고 하기엔 중후한 외양의 소유자시잖아요. 그런 말씀 많이 들으셨죠?

 

오윤식 머리만 흰데..저는 제가 동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김지미 조금 더 지나서 이덕우 변호사님처럼 완전 백발이 되면 더 멋있으실 거 같아요.

 

오윤식 그럴 수도 있죠. 지금 이거는 아주 자연스럽게 된 상태니까.

 

김지미 몇 년 안에 더 멋있어진 오변호사님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제 오변호사님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볼까요?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네요.

 

오윤식 네. 고향은 전북 남원이고 지금도 부모님은 남원에 계세요. 고등학교는 유학을 간 거죠.

 

김지미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역시 법조인의 꿈을 가지고 진학을 하신 거겠죠?

 

오윤식 네. 어렸을 때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김지미 어떤 면에서 판사가 멋있어 보였을까요?

 

오윤식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어떤 사안에 대해 판정을 해주는 것이 멋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장래희망을 판사로 쓴 기억이 있고, 국민학교 때는 미술시간에 그림으로 그린 적도 있어요.

 

김지미 그래서 연수원 34기로 합격을 하셨잖아요. 고향에 플랭카드 좀 붙었겠는데요(웃음)

 

오윤식 시골이라서 붙었어요. 잔치도 했습니다.(웃음)

 

김지미 보통 변호사가 된 첫 해에 민변에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변호사님은 그런 케이스는 아니죠? 언제 가입을 하셨나요?

 

오윤식 제 기억으로 2008년, 그때 정도에 입회를 했어요. 변호사 생활을 한 게 2005년부터인데 바로 입회한 건 아니고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입회를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제가 변호사를 안산에서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 고양시에서 하다가 서울로 들어왔거든요.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촛불집회 보고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입회를 했습니다.

 

김지미 그럼 2008년 당시 민변 신입회원이셨는데 촛불집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2009년에 용산사건진상조사단 활동도 하셨고, 그것 때문에 모범회원상도 받으셨죠?

 

오윤식 그 때가 정권 교체된 직후라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열심히 해야 될 시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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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모범회원상을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오윤식 제가 입회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아서 영광이었죠(웃음).

 

김지미 제가 오변호사님을 처음 뵌 것도 촛불 집회 한창일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오윤식 목동 쪽에서 봤잖아요. 그 때 집회 방송 차량을 김종웅 변호사랑 제가 인천에서부터 타고 왔어요. 근데 목동부터 제지를 당한 거죠. 방송 차량이 집회 현장으로 가지 못하게 경찰이 막은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도와달라고 지원요청을 했었는데 김변호사님이 가까이 있어서 왔던 것으로 기억이 나요. 경찰하고 한창 실랑이를 해서 결국 가져갔죠.

 

김지미 네. 집이 목동이어서 주말에 쉬고 있는데 갑자기 불려 나갔었죠.(웃음) 그 당시에 제가 오변호사님이 굉장히 지적이어서 멋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었어요~모르셨죠?

 

오윤식 한때 지적으로 보였나보죠?(웃음).

 

김지미 보니까 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시고, 글 쓰는 걸 잘 하시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2008년, 2009년 그 즈음에는 프레시안이나 민중의 소리에 기고를 좀 했는데 요새는 많이 안하는 편이에요.

 

김지미 당시 기고하셨던 글들을 보면 ‘방패로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은 위법이다.’, ‘권력검찰을 혁파해야 된다’, 미네르바 구속이나 신영철대법관 사퇴해야 되는 이유 등등 현안에 대해 법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글들을 많이 쓰셨던 것 같아요.

 

오윤식 네. 검찰 권력을 혁파해야된다는 글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에 쓴 글이예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한때는 신영철 징계해야 한다 이런 주장도 하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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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2009년에는 용산철거민사망사건진상조사단이 민변 안에 꾸려지게 되는데 당시 조사단장이 장주영변호사님이셨고, 오변호사님이 법률지원팀장을 하셨어요. 갓 입회한 신입회원이나 다름없는 입장에서 중책을 맡으셨는데, 이때 활동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그때 용산 사건에서 발화가 어떻게 됐는지, 사망자들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주로 그 부분을 중점으로 원인 규명을 하려고 했고 보고서를 발간했어요.

 

김지미 그 당시 검찰이 수사기록을 끝까지 내놓지 않았잖아요. 진상조사를 한다고는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오윤식 유가족 인터뷰를 하고 그랬는데 사실 자료가 많지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김지미 이외에도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 관련 소송도 하셨는데 이 사안도 촛불집회 와 연관이 있고 그러고보면 오변호사님은 민변 차원의 활동엔 적극적으로 결합하시는데 비해 의외로 위원회 활동은 잘 안하시는 거 같아요.

 

오윤식 노동위 소속이긴 한데 제가 촛불 때 즈음해서 민변 활동을 하다보니까 그런 사건 위주로 활동을 한 거죠

 

김지미 검찰혁파 얘기도 하셨고, 신영철대법관 얘기도 하시는 것 보니까 사법위원회가 제격일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이건 순전히 사심을 채우려는 의도로 질문 드리는 겁니다.(웃음)

 

오윤식 저도 그런 생각은 있습니다.

 

김지미 네. 매월 3번째 목요일 회의입니다(웃음).

 

오윤식 당장 하겠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사실 언론위 활동을 해볼까 이런 생각이 있어요. 책 쓰는 것하고 연결이 돼서.

 

김지미 표현의 자유 쪽에 관심이 있으신 거죠?

 

오윤식 네. 선거법이 말과 글을 통제하는 시스템이거든요. 표현의 자유 측면 또는 국민의 선거의 자유, 선거 참여의 자유를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언론위 활동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김지미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후보자와 정당을 위한 공직선거법 해설’이라는 책을 내셨어요. 책이 굉장히 두꺼워요.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데, 이걸 변호사님이 혼자서 쓰셨잖아요, 이게 몇 년 동안 작업을 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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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식 몇 년은 아니고요, 재작년이죠. 2014년 11월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김지미 1년이 안 걸린 거네요.

 

오윤식 작년 10월 초반에 최종 탈고를 했어요. 그런데 선거법이 12월에 두 번인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고치고 해서 제가 최종 넘긴 것은 12월 20일 정도에 넘겼거든요. 그런 것까지 하면은 1년은 넘게 걸렸죠.

 

김지미 이 책을 저술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가 2014년 지방선거 때 박원순시장님 캠프 법률팀에서 일을 했었죠. 선거자문을 주로 했어요. 캠프에 들어가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때 서류로 써 놓은 것이 있었어요. 선거 끝나고 6월 말 정도에 생산한 문서를 보니까 300장정도 됐거든요. 그게 책에 반영은 많이 안 되었지만 이 책에 보면 선거운동 할 때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전팁이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은 참고가 많이 됐습니다.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처음엔 300쪽 되는 문서를 묵혀 놓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거를 활용해볼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조금 쓰다보니까 선거법이 워낙 조문이 많거든요. 그래서 쉽게 책 쓰는 거는 초중반에 쓰다가 포기하고 전문서적으로 나가게 된 거예요. 제가 사실은 처음에는 책 쓰는 기간을 3개월 정도 예상했었어요. 저도 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거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3개월 정도 예상을 했었는데, 쓰다보니까 엄청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시간이 늘어지면서 양이 많아지고 그리고 기록화 되는 거니까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쓰다보면 욕심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수정도 하고 이것저것 논문도 많이 보고 독일 선거법 참고 하면서 그러다보니까 점점 늦어지다 10월 달에 탈고를 했죠.

 

김지미 말씀하신 것처럼 생업을 유지하면서 틈틈이 쓰신 거잖아요.

 

오윤식 대충 시간 계산을 해봤어요. 1주일에 토·일요일 쉬는 날 빼고 한 2-3일정도를 쓴 것 같아요. 사실은 힘들었어요. 일주일에 2-3일을 9시에 나와서 9시에 퇴근했거든요. 고시공부하듯이 책을 썼어요. 그래서 나중에 힘들다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김지미 이 책 머리말에도 쓰셨지만 선거법이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정도로 많은 조문을 담고 있다. 이게 사실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책의 장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신다면? 책에는 실전지침서와 이론서를 다 지향했다 이렇게 쓰셨는데, 내 책은 깊이 있는 이론도 담고 있으면서, 실전에도 강하다 이런 건가요?(웃음)

 

오윤식 실전팁, 그러니까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지침으로 삼을 만한 부분을 뽑아서 실전팁이라고 해서 30개 정도 들어가 있거든요. 그 부분을 따로 목차를 잡아 놓을까 이런 생각도 있었는데, 그걸 얘기하니까 누가 그것만 카피한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서 목차를 안 잡았어요. 그런 부분은 선거 관계자들, 후보나 선거운동원이나 이런 분들한테 실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거법 전문서로는 가장 최근법에 맞는, 충실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아까 독일법 얘기 잠깐 하셨는데 저희 정치관계법TF 방에도 변호사님이 독일법 올리신 게 있었잖아요. 직접 번역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제가 직접 했습니다.

 

김지미 독일어는 언제 또 공부를 하신 거예요?

 

오윤식 독일어는 사시 준비할 때부터 했고요, 잘하는 수준은 아니에요. 그런데 독일어 번역할 때 법조문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독일연방선거법은 2009년도에 중앙선관위에서 번역을 해놓은 것이 있어요. 그래서 많이 참고를 하기는 했는데, 번역이 잘못된 것이 더러 좀 있어요. 독일연방선거법 부속법령 중에 선거심사절차법이 있는데, 그건 번역본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다 번역을 한 건데, 그래서 번역노트도 100페이지가 넘게 있어요. 일일이 찾아가면서 했기 때문에 그것도 대단히 힘들게 했습니다.

 

김지미 사시의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다고 해도 누구나 이렇게 번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오윤식 제가 번역만 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거든요. 독일에서만 쓰는 전문적 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독일법령용어집이 있고, 사전 같은 게 2권 있는데 그런 책도 많이 참고해가면서 한 거죠.

 

김지미 내가 직접 번역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 같아요.

 

오윤식 독일 논문을 읽고 논문을 써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지금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전에 논문을 한 10편 정도 썼는데 그거는 독일 논문은 참고 못하고 법조문 정도는 참고 했는데, 저도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해석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이 걸려요.

 

김지미 논문을 많이 쓰셨네요. 보면 분야를 넘나들고 있어요. 공직선거법 관련된 것도 있지만, 노동법에 관련 된 것도 있고.

 

오윤식 지금 쓰고 있는 논문은 선거구획정에 관한 것이에요.

 

김지미 역시 지적이시군요. 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요(웃음).

 

오윤식 지적인 것보다 제가 스스로 학자변호사를 지향하고 있어요. 꼭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변호사는 원래 사건을 많이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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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 변호사다 라는 말이 있는데 관련해서 보면 변호사님이 민변에 발전전략TF에서도 정책연구소 얘기를 많이 하셨잖아요.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요?

 

오윤식 그렇죠. 저는 우리가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적 영역 또는 정책적 영역으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사회에 영향 미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민변 기존의 활동 흐름을 보면 그게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TF할 때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민변 내부에 연구센터라든지 아니면 별도로 연구소를 차리게 되면 기존 위원회 중심의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거든요. 그래서 공익변론센터가 우선 설립되게 된 걸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연구소 형태의 정책연구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좀 하죠.

 

김지미 당장의 현안들이 너무 많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쭉 밀고 나가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기에는 민변이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잖아요. 변호사님이 생각하기에 민변에서 이런 것들은 공부를 해봤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나 분야가 있을까요?

 

오윤식 제 책과도 조금 관련이 되어 있는데, 제가 독일선거법보면서 깜짝 놀란 것이 독일에서는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래서 선거운동 자체를 규제를 안 하는 거예요. 선거 비용 자체도 규제를 안 해요. 선거비용은 금권선거 이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법에서 규제를 안 하고 정당간의 자율협약으로 규제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법에 없어요.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선진적인 선거법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반면에 우리 선거법에는 선거운동에 관한 규제조항이 많아요. 우리 선거법은 일본 시스템이거든요. 이게 일제시대에 성립한 억압적인 선거법 체계거든요. 그게 1958년 정도에 참의원이 선거법 개정하면서 그런 시스템이 들어온 거예요. 그 전까지는 우리 법도 강하게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체계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거법 자체가 일본 잔재인 측면이 있죠. 그런데 계속 가져가잖아요. 지금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규제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선거법을 연구할 때 비교법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김지미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우리가 선거운동이라든지 선거방법에 대해서 규제를 해 온 것이 50년, 60년 넘었단 말이죠. 그런데도 계속 선거비리, 금권·관권선거 그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규제를 하는데도 이런데, 규제를 풀면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거 아니냐. 독일하고 비교를 해보면 독일은 규제를 하지 않음에도 선거과정에서의 부작용이랄까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보다 덜하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세요?

 

오윤식 우리의 정치문화나 국민의 의식 수준의 차이,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미 오히려 시민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덜 발달됐다라고 보시는 건가요?

 

오윤식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학자들 중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 60년 동안 우리가 억압적으로 포괄적으로 강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비리, 부정선거 이런 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규제하는 시스템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국민의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 도입을 할 필요가 있다. 저도 그런 생각에 공감을 하는 거지요. 우리 선거법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건 관권선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3·15부정선거라든지 최근 2012년 대선도 광범위한 부정 관권선거 의혹이 있는데, 그런 것은 규제 안 할 수가 없죠. 저도 전면적으로 선거법 규제를 풀자 그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공무원의 선거관여 이런 것은 현행 수준 아니면 거기보다 강하게 할 수도 있겠죠. 다만 일반 국민들의, 유권자들의 선거운동의 자유라든지국민의 선거 참여의 자유를 너무 강하게 규제를 하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선거가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과정인데 국민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측면이 있죠.

 

김지미 기존의 규제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건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에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앞으로 총선·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위축될 것이다 라는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같은 연장선상에서 언론위 활동을 하고 싶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죠?

 

오윤식 그런 측면도 있죠. 3월 정도 즈음에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면 표현의 자유라든지 국민의 선거운동 확대라든지 그런 측면에서 민변이 역할을 일정부분 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제가 역할을 좀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김지미 총선이 끝났다고 해서 그런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마무리 되면 사법위 오시는 걸로(웃음). 변호사님 책상에도 이게 있지만, 따로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이 사건인데요, 종교인 소득세 납부자료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일부 승소를 하셨고 이 사건을 맡으셨는데 이게 보니까 원래는 한겨레 21이 국세청에 성직자의 소득세 납부 현황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결정이 났고 이 기사를 보고 변호사님이 먼저 한겨레 21에 연락을 하신 거죠?

 

오윤식 네. 고나무 기자인데 기사를 읽고 나서 “제가 공감을 해서 무보수 대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먼저 연락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같은 국민이기 때문에 종교인도 과세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국가 운영의 근본이되는 것이 세금이거든요. 종교인들이 하늘나라에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 내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있었어요. 그래서 기사보고 제가 메일을 보냈죠. 제가 1심 중간부터 같이 했는데 2심에서 이겼어요.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공개거부처분이 옳다고 해서 졌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져서 아쉬운 측면이 있죠.

 

김지미 성격이 보기보다 적극적이신 거 같아요. 최근에는 민중총궐기 대응 변호인단에 참여를 하고 계시잖아요. 저희가 당시 살수차 영상에 대해서 증거보전신청을 해서 그건 홍성지원에서 기일을 진행했었고 내일 다른 살수차 영상에 대한 증거보전 관련해서 광주를 가시죠?

 

오윤식 백남기 선생님은 분명한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시죠, 국가 공권력의 발동, 특히 형사 사법절차에서는 염결성이라고 하잖아요. 적법절차를 준수하면서 공권력이 발동되어야 하는데 그런 걸 준수하지 않는 공권력은 사실은 흉기와 같다고 생각을 해요. 백남기 선생님 같은 케이스가 그런 사례잖아요. 기본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참여를 하게 됐죠.

 

김지미 내일 검증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주세요.

 

오윤식 홍성지원에서는 충남청 소속 살수차에 달린 영상에 대해서 어떻게 물포를 쏘고 백남기 선생님이 그때 당시에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떻게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검증을 했어요. 이번에 광주지법에서 하는 검증은 백남기 선생님을 피격한 살수차 말고 다른 살수차에 대한 것인데 당시 조준 살수를 했는지,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김지미 민변의 열혈 회원으로서 앞으로 민변이 나아갈 방향, 민변의 발전을 위해서 평소에 생각하신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오윤식 초반에 말씀드린 부분이기도 한데, 민변이 장기적으로 연구소를 설립해서 정책 역량·연구역량을 강화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대의원회 자료집을 보니까 공익변론센터에서 위원회에서 포섭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연구에 대한 지원 같은 내용이 있던데 그런 계획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지미 기승전 정책연구소네요(웃음). 정책연구소 필요하죠. 예를 들면 저희가 정치관계법 TF를 만들기는 했지만 평소에 이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되어 있으면 정치관계법 개혁 논의가 있을 때 민변이 선도적으로 연구 성과물도 내놓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전문가 단체로서의 성격을 확실히 하려면 그런 쪽에 역량이 좀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어요.

 

오윤식 제가 책 쓰면서도 느낀 건데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미완의 불완전한 개혁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가 법률가인데 가끔 잊어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게 정치하는 사람들이민주주의 구현 수단인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그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통해서 법을 만들어 내잖아요. 정치인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국회에 들어가서 법을 만들면 그 법에 우리 사회의국민·모든 기관이 지배를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민주주의하고 법치주의가 결합이 될 수밖에 없고 저는 그걸 ‘민주법치주의’ 이렇게 표현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회원이 정치권에 적극 나가서 세력을 형성해서 법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이죠. 그래서 입후보 하신 분들이 제 책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웃음)

 

김지미 정말 좋은 말이네요. 올바른 정치개혁 없이는 어떤 사회개혁의 성취도, 어떤 경제개혁의 완성도 어렵고, 가능하더라도 불완전한 미완의 개혁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정치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오윤식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독일의 사민당 정도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고 했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됐었죠. 그런 것이 좀 아쉽다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정치혁명, 민주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정치세력 형성의 중요하다. 그 세력 형성에 민변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저도 미약하게라도 그런 역할에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지미 혁명이나 개혁 이런 말로 회원 인터뷰를 끝맺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변호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민변 회원으로서 시대적인 소명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오변호사님을 자주 뵐 것 같다는 예감도 들구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월, 2016/03/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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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 광주전남지부 총회 그리고 ‘의미가 되고 싶은’ 광주의 공익변호사 활동 들여다보기

글 정리 : 이혜정 변호사

 

  • 이야기 하나 : 광주전남지부 총회

2017. 2. 8. 쌀쌀한 저녁. 민변 광주전남지부에서 정기총회가 열렸다. 총회에는 대략 30여명의 회원이 참석하였고, 이 날 두 명의 신입회원이 가입하여 총 53명의 성원보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되었다. 최근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된 최병근 변호사님과 정연순 회장님의 인사말에 이어 2016년 주요 안건과 사업에 대한 보고와 결산 및 세세한 평가가 이어졌다. 광주전남지부 총회를 위해 본부에서는 7명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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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입회원에 대한 가입 승인과정이 본부와 달리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이 날 승인된 두 명의 신입회원은 가입신청서 제출 후 40여분에 이르는 집행부의 심층 압박 면접을 견뎌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입회원에 대한 보증 절차를 거쳐야 했고, 승인 전 표결을 위한 질의를 받은 다음, 6인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그제서야 비로소 광주전남지부의 정식회원이 되는 것이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회원임을 인증하는 커다란 벽시계를 선물로 증정한다. 그 시계에는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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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당일 험난한 과정을 거쳐 신입회원 승인을 받고, 인증 시계를 수여받은 길탁균, 김춘호 변호사님

총회자료집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각종의 활동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지부가 얼마나 분주하게 공익을 위해 헌신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각종 사업보고에 이어지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는 아주 세심하고 날카로웠다. 가령 2016. 공익소송기획에 대한 정량평가의 경우 5점 만점을 기준으로 공익소송 활동은 4점, 배당은 2점, 사건발굴은 4점을 부여받았는데, 양질의 사건을 발굴한 것이 높게 평가되었다. 회원사업의 보고는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의 경우 배점은 7점이나 그 평가에 있어서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자평. 또한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이 자연스레 만나는 과정에서 인생의 동반자가 됐거나, 회원과 지부에 관심이 많은 비회원 간에 곧 결혼할 커플이 있었는데, 이러한 인연 뒤에는 회원사업단이 의미 있는 인과관계를 끼쳤다며 회원사업단의 업적으로 자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자찬을 의식해서인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인과관계가 없다는 측의 항의를 우려해 각주처리를 하면서, 막연하나마 인과관계에 대한 근거를 곁들이며 설명한 것은 마치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하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어느새 수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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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면서도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총회자료집만 봐도 광주전남지부의 활동과 분위기가 얼마나 가족적이고 화목한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절로 훈훈함이 느껴졌다. 6시가 넘어 시작된 총회는 8시로 넘어가자 식사를 위해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숨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정도로 근엄했던 총회와 달리 뒷풀이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지부 사회는 총회며, 뒷풀이며 정인기 변호사님 전담으로 보였는데, 진행이 깔끔하고 착착 진행되는 느낌에 감탄스러웠다. 김상훈 지부장님은 귀여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하는 덧니가 매력적이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삐져나오곤 했는데, 그 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부장님의 그 덧니 뒤에는 또 다른 이가 숨어있는 게 아니라 익살스러움과 유머스러움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음을. 특히 본부에서도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건배사 전의 지부장님의 호명 3창은 분위기를 흥겹게 달아오르게 하면서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짧게나마 건배사 멘트 준비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친구따라 조건 없는 기부를 거침없이 하시고, 자그마한 얼굴에 우병우와 유재석, 최근 대한변협 회장으로 당선된 그 분의 얼굴까지 두루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그맨보다 더 웃겼던 강성두 변호사님, 지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선한 아우라를 가진 임태호 변호사님, 소고기도 아닌데 겉만 익었다 싶으면 마구 먹어치우는 제 앞에서 연신 고기 굽느라 바빴던 박인동 변호사님, 가장 지부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부족했다며 활동이 뜸한 회원을 위축시키게 한 송창운 변호사님, 너무도 아름다우신 임선숙 변호사님, 광주지부 여성회원들은 어찌 다 그리 고우신지요. 이름만 접했을 때는 원로변호사님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는 최강 동안인 이상갑 변호사님. 그가 있어 광주가 낯설지 않은 동기 김정우 변호사님. 지부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두상이 잘생긴 전직 락커 박상희 간사님 등 한분 한분이 그렇게 정겹고 그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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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 세 번째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 여기저기 빵빵 터트리는 놀랍고 신비로운 일”(박상희 간사)을 일으킨다는 강성두 회원. 광주지부 제공

광주에서 발견한 것은 지부 회원들의 따뜻함만이 아니었다. 그 날 식당은 낙지마을로 예정돼 있었는데 실제는 낙지가 아닌 메뉴에도 없는 생뚱맞은 삼겹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낙지전문점인 그 식당에서 맛본 삼겹살은 그 동안 먹어 본 삼겹살 중 가히 최고라 말할 수 있었다. 역시 맛과 멋의 고장 광주는 남달랐다. 전공이나 전문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광주지부의 변호사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전문영역뿐 아니라 때로는 낯설고 막막한 공익사건을 마주할 때도 최고의 실력과 헌신으로 준비한다는. 광주는 이런 전통과 습관이 모든 곳에서 자연스레 베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불의 앞에 당당했던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지부 회원의 면면 속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따듯한 추억 한아름을 선물해 주신 광주전남지부 회원여러분, 정말 감사드리고, 5월 총회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이야기 둘 : 광주전남 지부 속 공익전담 이소아 변호사의 사는 이야기

이혜정 : 오랜만입니다. 모르는 회원들도 있으니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소아 : 안녕하세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입니다. 저희 단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특히 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공익인권 전업으로 법률지원을 하는 비영리단체이구요.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 곁에서 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들어 법의 목소리로 세상에 전달하고자“하는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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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서울에서 활동하다 광주로 가셨는데 광주에서의 근황은 어떤가요.

이소아 : 2013년 광주에 내려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지냈어요. 친정 부모님 두 분이 모두 편찮으셔서 간병을 해야 했고, 지난 가을에는 아빠가 돌아가셨구요. 아이를 낳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생활에 있어 변수는 더 많아지는 것이니까요.그래도 뭐 어찌어찌 다~ 어떻게 지내왔어요. 주변 분들의 도움도 컸고, 신랑의 도움도 컸구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오히려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줄어들었어요.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두더지와 같은 근시안으로 살기로 했어요. 닥친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걸로. 일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동행’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으니까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많았어요. 광주는 도시 자체가 생산 도시가 아닐뿐더러 후원에 대한 시민의 인식도 상당히 박하거든요. 또 변호사가 왜 굳이 비영리단체의 상근변호사로 일하냐, 그냥 지금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좋은 일하면서 지내면 되지 하는…. 그런데 사실 저는(이런 말 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잘될 것 같은, 잘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광주에 내려와서 계속하여 접촉했던 인권단체들은 법률전문가의 결합에 매우 목말라 하고 있었고, 지역에도 지역 고유의 여러 가지 인권 이슈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서울에서 계속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일을 했었기에 이를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고, 이를 잘 엮어낸다면 시민들에게도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약 170명 정도의 후원회원들이 계시고 월 약 300만원 정도의 정기 후원금이 들어오는 단체로 성장했어요. (지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도 규모로 성장한 비영리단체는 없답니다)

이혜정 : 와 대단하시네요. 광주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하게 된 과정과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소아 : 제가 올해 9년차 변호사인데, 해마루 광주분사무에서 근무했던 1년 반 동안만 로펌에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있었어요. 그러니 해마루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을 했다기 보다는, 공익전담으로 다시 복귀를 했다고 보시면 되어요. 저는 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성매매피해여성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에서 일을 했고 아파서 잠깐 쉬다가 2011년 5월에 민변에 상근변호사로 들어갔었지요. 왜 공익전담으로 일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저한테 재미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에 제가 2004년도에 적었던 일기장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는 제가 사법시험 1차에 여러 번 떨어지고 마음속으로 굉장히 지쳐있던 상황이었는데, 1년 후, 5년 후, 10년 후, 30년 후, 계획을 써놨더라구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하고 싶은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순으로….5년 후 계획이 단체 상근변호사로 일한다, 10년 후 계획이 뭐더라… 이거랑 비슷한 거였는데… 아무튼 그때 왜 하고 싶은가를 적는 칸에 “의미가 되고 싶어서”라고 써있더라구요. 당시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라 인정욕구가 정말 강해서… 그런데 지금은 이유를 바꾸고 싶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광주에서 변호사가 상근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유는 간단해요.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광주에 내려와서 1-2년 동안은 앞에서 말했던 개인사 때문에 돈이 좀 많이 필요해서 로펌에 잠시 있었지만, 광주에 내려오면서부터 제 마음 속에 광주의 공감 같은 단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광주지역 인권단체 현황을 계속 알아봤었어요. 그냥 먼저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저를 알리고 함께 일할 부분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1년 반 이상 네트워킹을 쌓아갔어요. 그러던 중 마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공익전업변호사 자립지원사업 공모전을 하는 거에요. 2년간 변호사의 급여를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 거에요. 기회다 싶어서 바로 단체를 만드는 것을 실행에 옮겼지요. 실질적으로 단체를 만드는 부분은 ‘희망법’이나 ‘감사와 동행’, 법률사무소 ‘보다’, 이주민센터 ‘친구’등에 의견을 구하면서 진행했구요. 결국 저 혼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혜정 : 그러면 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나, 현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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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 어려움은, 제가 광주에서 공익전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신랑이 약간 당황했었어요. 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엄마 간병비 등 계속 고정적인 목돈이 들어가거든요. 그래도 결국 흔쾌히 받아들여줬고, 이제 시아버님과 시누이도 저희 단체의 든든한 후원자세요.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법원에서 실무자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해서 변호사를 찾을 때, 제가 변호사라고 했더니 목소리 톤이 바뀐다거나… 하는. 단체의 실무자가 없어서 모든 실무를 제가 직접 하는데, 제가 숫자에 어두워서 홈택스 등 세무 신고에서 오류가 날 때. 뭐 그럴 때.

이혜정 : 현재 주로 진행하는 공익 사건은 어떤 사건들인가요.

이소아 : 장애인권 관련해서 근육병 환자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보조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사건들 중 특히 태국 여성들이 한국에 데려와져서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당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데 그 여성들에 대한 지원, 뇌전증 환자 장애등급변경취소소송, 결혼이주여성의 이혼사건, 이주노동자의 난민불인정처분취소소송,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 국가보안법 형사변론, 세월호 현장에서 70일간 근무하다가 자살하신 진도경찰분 유족의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등…. 뭐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입니다. 올해에는 주로 장애인권분야와 이주노동분야에 집중하려고 해요. 농업법률분야도 신경 쓰고 싶은데 아직 여력이 없네요.

이혜정 : 다양한 사건들을 두루 하시네요. 광주에서의 공익사건 현황이나 루트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소아 : 주로 단체들을 통해서 진행돼요. 성매매피해여성상담소, 성폭력 상담소, 장애인권센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달장애지원센터, 이주노동자 상담소 등. 저희 단체가 상담소처럼 붙박이로 상담하는 인력이 배치될 수는 없는 구조여서 개인이 직접 찾아오시는 경우는 아직은 잘 없어요.

이혜정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이소아 : 2014년 겨울 여수의 한 유흥주점에서 여성종업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은 원래 조용히 묻힐 뻔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 여성 9명이 업소를 나와 광주에 있는 언니네 상담소에 제보를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보통 다른 성매매 관련 사건의 경우 동료들이 이렇게 증언해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의 생계가 달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9명의 여성 모두가 업주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일관되게 증언해 주었어요. 9명의 여성은 수사과정에서만도 각 2-3회 조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업주가 혐의를 부인해 모두 법정에서 2-3시간씩 증언을 했었거든요. 그 과정이 언니들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증언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업주들도 상당한 처벌을 받았구요.

여수 여성 사망 사건 언니들의 손

‘여수 여성 사망사건’에서 흔들림 없이 증언했던 ‘언니들’의 손. 이소아 변호사 제공

이 사건은 제가 일을 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성들이 용감하게 증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진도 경찰분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을 때, 1심만 거의 2년이 걸렸는데요.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부검이라는 입증방법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자료도 많이 찾아보았던 사건이라 보람이 되는 사건이었어요. 아직 2심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요.

이혜정 : 활동가와 변호사 그 경계선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소아 :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활동가는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활동가로서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저와 맞아요. 반면 변호사로써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야지 나의 전문성이 인정받고, 내가 제출하는 서면에 힘이 실리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럼에도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아요.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거든요. 저는 ‘내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다하는 것일 뿐이지, 그 결과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혜정 : 광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소아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든든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혜정 : 저희 단체가 광주에 있긴 하지만 저희가 다루는 인권 이슈들이 단지 광주에만 한정되는 문제들이 아니에요. 장애인권, 이주노동자 인권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다루는 문제들이 결국 관련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일들이더라, 그래서 인권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게 돼요. 광주전남지역에 사는 분이 아니더라도 저희 단체가 다루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해주시길 바래요. 여러분의 후원이 작지만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낼 원동력이 될 것이거든요. 후원신청은 www.companion-lfpi.org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7/02/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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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1일 오전, 대림에 위치한 공공운수노조 건물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원장으로 임하고 계신 권두섭 변호사님을 만나기 위해 모여든 인파 때문인데요. 이 날 인터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민변 자원활동가 14기 다섯 분이 오셨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할 저와 간사님들까지, 총 8명의 눈과 귀가 권두섭 변호사님을 향하게 된 것이죠.

민주노총 법률원 10주년에 맞춰 출간되었던 「노동자의 변호사들:대한민국을 뒤흔든 노동사건 10장면」에도 잘 소개되어 있듯이 법률원은 한국사회 굵직한 노동사건을 도맡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권두섭 변호사님은 초대 구성원으로써 법률원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함께 해 오신 분이십니다.

마치 노동법 강의와도 같았던 이번 회원 인터뷰. 한 번 들여다보실까요?

 

노동변호사로서의 삶

 

조영신 : 먼저 법률원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두섭 : 법률원이 생긴 건 2002년 2월 1일입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법률원은 민주노총의 정책연구원처럼 부설기관으로 되어 있는데요, 현재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에 개별 법률원이 있고, 지역에는 광주에도 법률원이 있습니다. 금속노조의 지역사무소로 창원에 경남사무소가 있고, 올해부터는 충남에도 법률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교조에는 강영구 변호사님이 가 계시고, 사무금융노조에는 차승현 변호사님이 가 계십니다. 이 분들 또한 법률원 소속이에요.

이렇게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재정은 하나로 통합이 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변호사 수만 21명 정도이고, 전체 구성원은 45명입니다.

 

조영신 : 「노동자의변호사들」에 보면 변호사님을 인터뷰하며 당황하는 최규석작가의 모습이 나오기도 해요.

 

권두섭 :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래요(일동 웃음). 미국영화에 나오는 것 같이 드라마틱하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들고, 말을 재미있게 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조영신 : 한 편으로 ‘노동변호사’라는 표현에는 어느 정도 과격하기도 하고, 목소리에 힘을 넣어 발언을 하는 사람이 떠오르는데 변호사님은 그런 부분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조용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점은 없나요.

 

권두섭 : 그건 편견이에요.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경험해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붉은 머리띠에 조끼를 입고 주먹을 쥔 팔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요. 투쟁하는 모습만을 떠올려요.

실제로 한국처럼 노조를 하기 어려운 곳의 경우, 독립운동을 한다는 마음으로 노조활동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반노조 인식이 강해서 그런 것이죠. 그러다보니 ‘과격’과 같은 편견을 갖게 된 것이죠. 노조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저도 제 조용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었고요.

 

노사정 ‘대’타협? 그 속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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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 2015. 9. 15.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죠. 그 이후 전반적인 노동계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권두섭 :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에 민원을 넣은 적이 있었어요. 그 민원사항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노사정 야합에서 합의됐던 내용들이 다 전경련의 요구사항들이에요. 그 요구사항을 그대로 관철시키는 내용이었던 것이죠.

야합이 있은 후 며칠 뒤에 새누리당이 그 내용을 골자로 노동법개정안을 발의했어요. 그대로 통과된다면 노동법이 무력화되고 노조가 무력화되는 한국사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조조직률은 10%밖에 안돼요. 것도 노조가 강력해서 미조직노동자에게까지 단체협약이 적용될 여지가 있는 상황도 아니죠(프랑스의 경우 노조와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지자체의 결정으로 지역에 확대적용이 가능하다). 즉, 노조조직률이 낮은데다가, 노조가 단체협약을 맺는다 하더라고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미조직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될 여지가 없는 거예요. 결국 노사정야합의 내용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할 뿐이고 노동법과 노조가 무력화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겠죠.

 

조영신 : 노사정 합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점점 궁금해지는데요, 먼저 그러한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권두섭 : 2014년 12월에 고용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놓았습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노동기본권 보장, 간접고용의 경우 사용자의 책임이나 차별적인 임금 등 비정규직과 관련한 문제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정부에서 내놓은 종합대책이라는 것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내용들만 가득했어요.

그리고 2015년 상반기에 단체협약시정지침이라는 것이 노동현장에서 공공연하게 돌았어요. 그게 갑자기 왜 나오게 됐냐하면, 그 기사 기억나실지 모르겠네요. ‘고용세습조항’이 단협에 들어있다는 내용으로 연일 신문에 보도됐던 적이 있죠.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런 단협을 가지고 있는 노조가 없어요. 정년퇴직한 노동자들의 자녀에 대해서는 그 회사에 지원했을 때 가산점을 준다? 그런 조항은 없어요. ‘산재로 사망한 유족에 대해 일자리를 알선해준다’는 내용이 주로 있을 뿐이죠. 이 조항은 대법원에서도 효력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어요. 적법한 단협조항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노동부가 교묘하게도 ‘위법은 아니나 경영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불합리한 조항’이라는 식으로 지침을 만들고, 현장에 이러한 단협이 있는지 조사하고 개선하도록 지도하라고 한 거예요.

속된 말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지침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주먹을 휘두르는 것과 같아요. 그 부당성을 다퉈 법원으로 가더라고 판단받는 데에는 수년이 걸리니까 법은 멀기만 하죠. 그런 ‘주먹’같은 지침을 내려서 관련 단협 조항들이 현장에서 유지되는 것을 막고, 이미 체결된 경우에는 그 조항을 없애도록 하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5일, 노사정 야합이 있었고, 그 이틀 뒤에 새누리당이 법안을 발의했죠. 이렇게 일련의 움직임을 가지고 나온 결과인 것입니다.

 

조영신 : 이미 이전부터 노사정 합의를 위한 준비과정이 있었던 거네요. 도대체 그 합의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권두섭 :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역시 ‘해고’부분입니다. 노동법 교수님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노동법을 보면 근로기준법부터 시작해서 몇 천 개의 조항들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에서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근기법 제23조,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는 것이죠.

 해고제한조항이 없는 노동법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조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15년 전부터 엄청난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조직률이 늘지 않아요. 1.5%~2% 정도밖에 안됩니다. 기사를 봐도 현재 투쟁하고 있는 노조는 대부분 비정규직 노조인 것 같지요? 그런데도 그 정도밖에 안됩니다. 생겼다가 깨지고, 또 생겼다가 또 깨지기를 반복해서 그래요. 쉬운 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번의 야합은 정규직노동자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예요. ‘저성과자해고’라는 이름으로, 공정한 평가기준을 만들겠다고 말하죠. 노동현실을 모르는 판사나 일반국민들은 ’그래, 사용자가 꼭 저성과자들을 다 안고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들을 보면, ‘리더십, 업무적극성, 원만한 소통, 창의적인 마인드’ 같은 것들이에요. ‘물건을 몇 개 팔았냐’와 같이 실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극소수죠. 대부분은 주관적인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이러한 평가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다 보니, 결국 공정한 평가기준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게다가 모든 평가라는 것은 언제든지 하위권자를 발생시켜요. 예를 들어 사측이 100명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60점 이하인 사람을 100명 만들어낼 수 있어요. 6개월 정도 교정기회를 주겠다(연수와 같은 식으로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는데, 재평가를 했을 때 또 그 점수를 받으면 근기법 23조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버리는 것이죠. 평가기준이 공정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노동사건을 15년간 해 왔지만, 평가가 부당한 것을 다퉈서 이건 적은 거의 없습니다. 평가한 사람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기 때문이죠.

 

조영신 : 그런 경우 법원에서는 어떻게 판단을 하나요.

 

권두섭 : 법원은 대량관찰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노조 간부들을 승진시키지 않아서 부당노동행위가 문제됐던 사건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승진에서 누락된 사람 100명 중 노조간부나 조합원이 60명이고, 그 회사의 노조 조직률을 보니 1000명 중 600명이 가입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법원은 승진누락률이 노조조직률에 비해 높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봐요.

반대로 조직률은 20%(1000명중 200명)인데, 승진누락자는 60명이다. 그러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노동행위라고 보는 것이죠.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법원이 말하는 ‘균형점’에 해당하는 인원에 조합원들을 적절히 섞기만 하면 돼요. 법원이 취하는 대량관찰방식에 따르면, 균형만 이뤘다면 공정한 평가에 의한 것인지 불공정한 평가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조영신 : 하지만 이러한 합의의 내용은 근기법 23조에 위반되는 불법적인 지침일 뿐이지 않나요.

 

권두섭 : 해고된 노동자 100명이 있다면 그 중 몇 명이나 소제기를 할까요. 아주 극소수의 노동자들만 가능합니다. 비용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니까요.

부당하게 평가가 이뤄져서 해고됐다고 해도 그 사건이 법원에서 다뤄질 가능성은 굉장히 낮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노동부가 지침을 만들어서 법보다 가까운 주먹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그냥 당할 수밖에 없어요.

9월 13일에 합의하고 15일에 도장을 찍었는데, 야합 직후 사용자들이 모인 간담회 자료를 보니, 이미 저성과자해고제도 가능해졌다고 교육을 하고 있더라고요. 노동자들에게는 이러한 지침이 법처럼 강제돼요. 그래서 우려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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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 그렇군요. 노사정합의의 다른 내용들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두섭 : 해고 다음으로 문제되는 부분은 취업규칙에 대한 내용이에요.

취업규칙이 중요한 이유를 쉽게 설명하자면, 노조가 있으면 단협이 있죠. 그런데 노조조직률은 10%밖에 안되니 나머지 90%는 모두 취업규칙의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어요. 설사 노조가 있어서 단협을 체결했다 해도 단협조항은 보통 100개 정도밖에 안되니까, 노동조건의 상당수는 취업규칙이 규정하게 되는 것이죠.

이번 야합에서는 이러한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데에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어요.

근기법 제94조에서는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 집단적 동의를 받게 되어 있죠. 과반수노조가 있으면 노조의 동의, 없으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해요. 그것도 노동자들이 전체 모인 상태에서 사용자가 취업규칙 개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후 사용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찬반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고치지 않은 불이익변경은 무효에요.

물론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법입니다. 이에 대해 판례는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해석해요. 일례로, 한 공기업에서 수년간 적자가 누적되자 정부가 지침을 바꾸라고 요구해서 공기업이 취업규칙을 개정했어요.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수년간 적자가 누적되었다 하더라도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개정의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판례의 태도를 확대해석해서 마치 이러이러한 경우에는 합리성이 있으니까 이러한 요건을 갖추면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사측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불이익변경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 안돼요. 그러면 90%의 미조직노동자, 특히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근기법 제94조는 노동자들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절차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이번 야합의 골자로 들어가 있으니 반대할 수밖에 없죠.

 

조영신 : 그렇군요. 취업규칙과 해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그 밖에도 이번 노사정 합의 내용 중 알아야 할 부분들이 있을까요.

 

권두섭 : 임금피크제와 비정규직 연한 연장, 파견도급구분 기준 정도의 내용이 더 있습니다.

먼저 임금피크제의 경우, 정부는 정년을 연장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병행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어요.

예를 들어 58세부터 정년이 2년 연장된다면 200%의 임금이 늘어야 해요. 그런데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면 계속 임금이 깎여서 결국 깎이는 임금이 200%인 상태가 되죠. 노동자 입장에서 보자면, 일을 2년 더 하는데 임금은 계속 깎여서 무료노동을 하는 셈이 되요.

그러니까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영미법의 경우 아예 정년제도를 무효라고 봅니다. 연령차별로 보기 때문이죠. 독일이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연금수급연령이하로 정년을 두면 다 무효에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의 정년은 용인해주는 셈이죠. 이 국가들의 연금수급연령은 70세 정도입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연령수급연령이 61세죠. 그런데 58세부터 60세까지가 임금피크가 적용되는 연령대에요. 사실, 58세까지 일하는 노동자도 소수죠. 대부분은 ‘사오정’이라고 해서 40대에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정리해고로 쫓겨납니다.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실상인데 이런식으로 정년을 연장해줄테니 임금피크게 하자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대책의 경우, 이번에 야합에서 내놓은 방안은 비정규직 연한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이에요. 고용부에서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80~90%의 계약직노동자들이 연장하는 정부정책에 동의했대요. 그래서 질문을 살펴보니, ‘2년하고 짤릴래요, 2년 연장해서 4년 일할래요’의 수준이더라고요. 그러면 당연히 연장을 선택하겠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해당 조항의 본래 취지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해서 2년보다 더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취지대로 잘 되지 않고 있다면 정규직전환을 강제하는 수순을 밟아야 상식적이죠. 설문의 내용도 ‘2년 후 정규직 될래요, 아니면 2년 더 연장해서 비정규직으로 4년일할래요(그런데 4년 후 짤릴 수 있어요)’라고 했어야 해요.

노동통계하는 분들의 말에 따르면, 기간제법 시행 이후 미미하긴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보통 무기계약직, 즉 ‘중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지만요. 그런데 야합의 내용대로 된다면, 이제 사측이 절대 전환시키지 않겠죠.

2년 일하다 짜르고 또 사람 뽑으려하니, 이제야 기존에 뽑았던 사람들이 일을 좀 할 만 하니까 교체하는 셈이 돼서 부담이 있었는데, 4년으로 연장되면 그런 부담이 적어지잖아요. 결국 전환률이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하죠. 결과적으로 이것은 기간제 노동자의 희망고문 기간만 늘이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파견도급구분기준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릴게요. 이 부분은 민변에서 의견서를 발표하기도 했던, 굉장히 심각한 내용을 답고 있어요. 현재 재벌회사들이 공공연하게 시행하고 있는 사내하청을 완전히 합법화시키자는 내용이거든요.

현대기아차, 삼성, 에스케이, 포스코 등 재벌회사들은 거의 다 불법파견으로 걸려있는 상황이에요. 결국 재벌들이 민원을 넣어서 만든 법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법파견을 완전 합법적 도급으로 둔갑시키는 안입니다.

 

노사정 ‘야합’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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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 : 들어보니 근기법 제 23조, 94조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있고, 기간제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내용들도 많아 보이는데요. 무효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권두섭 : 야합의 내용은 합의사항일 뿐 법적효력이 없기에 법적으로 무효화될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케이스가 있을 때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저성과자 해고를 했다고 칩시다. 해고된 노동자가 법원에 소제기를 했습니다. 이 경우 사측이 주장할 것은 뻔합니다. ‘노사정이 합의한 사항대로 한 것이다’고 주장하겠죠. 만약 법원이 ‘이러한 해고도 가능하다’고 해석해버리면, 입법화되기도 전에 판례법으로 굳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노동부에서 용역을 준 연구자료들을 보면, 근기법 개정을 요구하게 되면 모든 논의가 그 조항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드니까 지침을 통해 완화해야 한다고 나와요. 또 그 지침이 노동현장에서 정착하면 법원에서도 받아들이게 되어 판례가 나오니, 국회의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입법을 한 효과를 볼 수 있게 되니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조영신 : 법원에 이번 합의에 손을 들어주는 판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하시나요.

 

권두섭 : 그런 판례가 나오면 안되겠죠. 하지만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조영신 : 새누리당이 발의한 근기법 개정안이 이번 회기에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시나요.

 

권두섭 : 잘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민변 노동위원회 중심으로 TF팀을 꾸려서 입법의견서를 내며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도 11월 14일에 총궐기를 예정하고 있고, 법안이 상정되면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입니다.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영신 : 지난 노사정 합의 때, 한국노총 조합원이 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을 시도해서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었는데요. 노사정 합의사항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면, 왜 민주노총이 그 합의 테이블에 나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두섭 : 민주노총에서는 대의원 결정으로 노사정 합의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해 왔습니다다.

기본적으로 노사정위원회라는 것은 그 취지에 맞게 사회적 대화기구 혹은 교섭기구로서 운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조의 힘이 강력해야 하고, 합의가 됐을 때 국회에서 관철 될 수 있는 정치적 세력화가 되어 있어야 하죠. 독일의 경우,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노조의 힘이 강력합니다. 그래야만 균형성 있는 합의가 가능해지는 것이고요.

그런데 한국사회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노동자가 사실상 들러리로 이용됩니다. 논의의 내용자체를 봐도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것들이 가득한데, 그 논의 테이블 자체가 균형을 잃은 상태이니 들어가 봤자 뻔한 진행이 아니겠습니까.

민주노총이 설사 들어가 강력하게 반대를 했더라도 정부는 한국노총을 끌어당겨 합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총연맹과 총연합이 정부가 하려는 노사정 합의의 외피를 씌워줄 뿐인 것이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국회 내의 특별기구라든지 여러 통로를 이용해서 정부와 노정교섭을 하자는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노사정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위의 이유일 뿐입니다.

 

조영신 : 이렇게 노동계에 시급한 현안들이 많이 있는데요. 민변회원인 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요.

 

권두섭 : 일단 한국사회에서 노동자가 힘을 가지려면 노조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큰 이슈가 됐었죠. 그런 일이 생기기 이전에 삼성에 자주적인 노조가 있었다면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환기시설도 없는 작업공간에서 무슨 냄새인지도 모른 채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작업을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도 노조가 있었다면 환경개선을 요구하고 현장조사를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대응을 통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민변의 천 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어디 가서라도 ‘우리 사회에는 노조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고 다녀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변호사들이 말하면 설득력있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요.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서도, 무슨 모임에 가서도 노동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그래서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지 않다보니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적인 불균형 상황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천막을 치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아닐까요. 대화가 안되니까요. 일방적으로 탄압만 받으니까요.

왜 노조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투쟁만 하냐고 비판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이 모두 노조를 만들어서 길가는 사람 중 70~80%는 모두 조합원이 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뭐, 민변 노동위원회는 워낙 현장에서 발생하는 현안이나 노동개악 문제에 대응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니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계속, 지금까지처럼 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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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권두섭변호사님과의 노동법 강의와 같았던 인터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 함께 강의를 들었던 민변 14기 자원활동가 분들과 간사님들의 질문타임이 있었네요. 그럼 못 다했던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겠습니다.

 

 14기 자활 강한성 : 삼성의 경우 대외적으로 무노조경영을 천명하고 있고, 노조 결성시 불이익을 주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노조결성의 권리를 뺏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기업인 것인데,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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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섭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부당노동행위입니다. 명백한 지배개입행위이죠. 2년이하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범죄행위를 공공연하게 해도 처벌이 안된다.

예전에 삼성 모계열사에서 노조설립을 하려고 민주노총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삼성이 노조를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기 위해 저와 산별노조에서 한 명, 총연맹의 조직가 한 명, 이렇게 총 세 명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노조설립신고증 나올 때까지 공개하지 않으려고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설립신고를 딱 했는데, 바로 미행이 따라붙었습니다. 설립신고 내려면 노조위원장 이름을 써야 하는데, 그걸 보고 바로 안 것이죠.

당시 고대 총학생회의 도움을 받아 조합원 간부들이 총학생회실에 머물렀습니다. 왜냐면, 삼성에서 조합간부들을 회유하기 시작하거든요. 우리끼리는 이걸 두고 ‘납치한다’고 말해요. 중국에 데리고 가기도 하고, 그 분들은 강원도에 갔다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갈 수도 있고, 협박이 있을 수도 있고요.

설립신고를 하고 나서 3일 안에 설립신고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반려가 된 거예요. 우리는 강남구청에 접수를 했었는데, 우리가 접수하기 20분 전에 중구청에 회사 과장 몇 명이 신청한 노조설립신고가 접수돼버렸던 것이죠. 그렇게 비밀유지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시간조작 의심을 강하게 가졌고, 소송까지 준비했어요.

그런데 조합원들이 사라졌어요. 부당노동행위를 다투려면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들이 사라진 거예요. 또 지배개입증거를 찾아 입증을 해야 하는데, 주체가 사라지면 검찰이나 노동부가 맡아야 해야 하지만, 안하죠 그 사람들이.

보름쯤 지나서 조합 간부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미안하다고. 같이 못해서 미안하다고. 결국 노조설립이 와해됐어요.

14기 자활 김서영 : 국내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계신데요, 이분들에 대한 지원현황을 물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이 외국에 나가면서 인권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국내 법률가들의 활동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권두섭 : 이주노조는 몇 달 전에 설립신고를 받았죠(무려 10년 만에 받아냈다).그런데 아직은 조직화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개별 사업장에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 것이죠.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근기법이 적용이 됩니다. 법원이 판례를 통해 그렇게 말했어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그 보호를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노조가 있어야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생각만큼은 잘 조직이 되지 않고 있네요.

그리고 민변 노동위원회에는 이주노동팀이 있고 국제노동팀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 한국 기업의 외국에서의 사례나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상담과 법률지원을 하는 법률가 지원단체들도 많고, 법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진 간사 : 사법시험 보기 전부터 노동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권두섭 : 아니오~ 어떻게 하다보니까(일동 웃음).‘ 내가 그 때 그 자리에 없었다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연수원에서 노동법학회를 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거기서 총무를 하게 됐고요. 나이 때문이에요. 딱 중간나이라서요.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민주노총 부당노동행위고발센터로 상담활동을 나가게 됐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을 나갔는데, 그 당시가 99년, IMF 직후였어요. 상담을 나가보면 줄이 저 끝까지 늘어져 있어요. 끝나면 밤 9시가 넘고요. 원래는 학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갔었는데, 주로 총무들이 땜빵을 하거든요. 결국 자주 가게 된 것이죠. 그러다보니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노동변호사를 해야겠다는 어렴풋했던 생각이 자연스럽게 뚜렷해진 것 같아요.

 

이유진 간사 : 민변 공공의료팀 활동도 하셨던데, 의료쪽에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권두섭 : 민주노총의 모든 산별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의료문제에도 같이 대응을 해 왔던 거예요.

 

14기 자활 강한성 : 노동자들의 처우와 관련한 제도를 봤을 때, IMF때 정리해고가 합법화되고 이제는 저성과자 해고까지 합의가 되는 등 갈수록 사용자들에게만 유리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긍정적인 미래를 볼 수 있을까요. 밖에서 볼 때는 너무 답답하거든요.

 

권두섭 : 안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엄청난 희열을 느낄 때도 있었어요. 소송에서 이겼을 때도 그렇고, 노조가 투쟁을 통해 부당한 부분을 시정했을 때도 그랬죠. 예를 들어 재능교사노조가 설립신고 받을 때 처럼요. 그 당시에 한 달 반 정도 집회하고 투쟁을 통해 설립신고를 받아냈거든요. 그 전까지는 학습지교사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아 노조 신고가 잘 안됐었거든요. 대한항공조종사노조가 만들어졌을 때에도 굉장했어요. 당시 조종사들이 김포에 있는 모처에 모여있었는데, 새벽에 비행기가 뜨질 못하니까 노동부장관이 갑자기 노조설립을 하라고 했던 거예요. 그래서 벽두새벽에 부랴부랴 노조설립증 들고 사진찍고, 공항으로 가서 일 시작했었죠. 청원경찰법, 복수노조 등등 걸려있는 골치아픈 법리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파업 한 번에 그렇게 된거죠. 기뻤어요.

그런데 그 뒤로는 노동자들 투쟁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수 백 억의 손배가압류에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내가 노조에 가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투쟁은 끝나도 재판은 끝나지 않는다고요. 철도노조 파업의 경우에는 2002년에 파업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에요.

결국 변호사들은, 간접적이지만 그 고통을 지속적으로 느낍니다. 기일이 잡히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 옛날에 있었던 현장이 떠오르는 거죠. ‘아오 손배가압류. 아오 수 백 억!’이러면서 영원히 고통 받는 거죠.

이런 고충이 있어요. 결론적으로 내부에서도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뭐 희망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고, 법률가가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디겠어요.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소수자가 보호되지 않는 곳 아닌가요. 결국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진 거죠. 법률원의 변호사들에게도 자주 말해요. 노조가 희망도 없고 힘드니까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은 말이 안된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노동권이 보장받지 못해 고통받는 노동자가 많다는 이야기니까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더 많다고 생각하라고 말해요. 쉽게 전망이 없다거나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해 버릴 것은 아닌거죠.

 

 

 

 

 

화, 2015/10/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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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금), 법무법인 동화 사무실에서 서중희 변호사를 만났다. 민변에 가입한 지 만 10년 차가 다 되어가는 그는 현재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끔 평소에 수줍음 많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서글서글하고 순한 인상에 스스로를 ‘수줍음이 많다’고 소개한 서중희 변호사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과거사위가 주력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와 긴급조치 등에 관한 뼈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화 사이사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방 울리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신입 회원들에 대한 조언의 말과 과거사위 홍보 뒤에는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으라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골무를 끼고 짐짓 포즈도 취해주었다.

지금부터 ‘수줍지만 친절한 카메라 체질’ 서중희 변호사를 만나보자.

 

인터뷰/정리_자원활동가 이재임(출판소통팀)

 

백면서생서중희 변호사, 입을 열다

김서정(이하 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직업과 민변 이야기는 빼고요. 혹시 본인과 가장 닮은 소설, 희곡, 영화, 만화, 드라마 속 캐릭터가 있을까요?

서중희(이하 서): 직업과 민변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나니까 생각나는 단어가 없더라고요. 이런 데에 감이 별로 없어서. ‘백면서생’, 이 정도가 어울릴 거 같아요. 조용하고 말수가 많지도 않고 수줍음이 많아서 ‘백면서생’, 저한테 이게 딱 맞는 단어 같아요. 아내에게 저와 닮은 캐릭터를 물어봤더니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말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또, 사무실 직원 한 명한테 물어봤더니 고양이 ‘가필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 생김새가 닮으셨어요.(웃음)

서: 아무튼 저는 수줍음이 많고,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저희가 오늘 인터뷰를 위해 ‘고급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에 3초 안에 답해주세요. 첫 번째, 조영선 변호사는 나한테 술로 안 된다, 내가 민변 최고 주당이다! O, X, 하나, 둘, 셋!

: (망설임 없이)X입니다. 조변님은 날마다 술이에요. 쉬지 않고 먹어요. 새벽까지 먹어요. 그리고 다음날 눈 퉁퉁 불어서 와요. 같이 마시면 제가 힘들어요.(웃음)

: 워크숍 때 소주병을 품에 안고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 아, 물론 술 좋아합니다. 좋아하지요.(웃음) 공부할 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별다른 게 없어서 주말이면 작정하고 폭음을 했죠. 술을 마셔보니 먹을 만 한 거 같아서 계속 마시다 보니 막걸리를 마시면 취하기 전에 배가 부르고, 소주를 마셔야 적당히 취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산에 갈 때도 조그만 소주(팩 소주)를 사서 혼자라도 올라갑니다.

: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한테 조영선 변호사란? 하나, 둘, 셋!

: …아따 거시기하네.(웃음) 만난 지 오래됐어요. 사법고시 공부할 때 신림동에 ‘약수사’라는 절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조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 시커먼 양반이 호리호리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호리호리했습니다. 술도 좋아하시고 해서 친해지게 됐고. 조 변호사가 먼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저는 조 변호사보다 늦게 합격한 뒤에 둘이 사무실도 같이 하게 됐죠. 전생에 질긴 무엇이 있나, 채권채무 관계였을까?(웃음) 아무튼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까 답한 ‘거시기’에는 온갖 것이 포함된 겁니다. 예를 들면 ‘애증’이라든가.(웃음)

: 마지막입니다. 나한테 ‘마눌님’이란? 하나, 둘, 셋!

서중희-변호사

: (인터뷰 전체에 걸쳐 가장 크게 웃음)이분도 참 대단한 분이에요. (황급히)제가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분입니다. 무서워요. (웃음)

특히 애 낳고 무서워졌어요. 아들이 연년생 둘이거든요, 쌍둥이는 오히려 고만고만해서 괜찮은데, 연년생은 동생이 형한테 절대 안 지려고 해요.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들한테 순서를 잡아줘야 하고 아이들 대장 노릇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아무튼 제가 사랑하는 분으로 정리할게요. 매우 매우 사랑한다고.

과거사청산위원회, 역사를 새로 만들어나가다

김: 비교적 조용한 회원으로 활동하시다가 최근에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 위원장까지 되셨어요. 위원장으로서 과거사위를 자랑한다면?

서: 과거사위의 역사가 일단 좀 오래되었죠. 다른 위원회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사위는 2003년에 만들어져서 올해 13년 차입니다. 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해서, 특히 과거사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변호사님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긴급조치와 ‘위안부’ 이슈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죠.

과거사위 활동을 하다 보면 국가와 국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시간적 흐름을 이해하게 되고, 역사적 안목을 키우게 돼요. 과거사 문제라는 게 단순하게 “이게 아닌데요!”하고 외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고,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과거사위, ‘위안부문제 관련 소송을 제기하다

김: 이제 최근 과거사위에서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는 ‘위안부’ 이슈에 대해 여쭤볼게요. 현재 과거사위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은 정보공개청구 소송 2건, 헌법소원 1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건으로, 총 4건입니다. 이 중 헌법소원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는 12.28 한일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원인데요. 12.28 한일합의에 어떠한 헌법적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서: 일단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에 헌법재판소 판결이 하나 있죠. 일본의 기본적 입장은 ‘1969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청구권 협정 당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봤어요. 그리고 청구권협정 중 3조는 분쟁해결조항인데, 내용을 보면 ‘이 협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해결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분쟁을 통해서 해결하고, 이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청구권 협정 3조에 의해 국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다시 협상을 하고 분쟁 해결절차를 나아가야 하는 ‘작위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위안부’ 강제 동원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면서 조선 식민통치기구를 통해 위안부를 모집하고, 이들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성폭행한 국가 범죄적 행위예요. 국가는 그런 범죄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져야 하고,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리고 국가가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인한 피해 보상 협의를 하려 한다면 피해자들의 절차적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12.28 합의에서는 이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어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적 자유에 대해 회복을 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것인데, 국가와 개인은 분명히 법인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대신해서 행사할 수 있는지도 문제고요. 국가가 외교적으로 재외국민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외교적 조치를 다 했는지도 살펴봐야 해요. 기본적으로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요구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해결해야 할 작위 의무가 있음에도 12.28 한일합의를 통해 부작위를 선언해버렸던 것도 위헌적인 행위이죠.

김: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을 경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또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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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중간 질문을 메모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손.

: 이번 12.28 합의가 헌법적으로 위헌 무효라고 한다면 합의 자체가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죠. 국가는 여전히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대로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과 분쟁 절차에 나서야 할 의무를 다시 지게 됩니다. 12.28 한일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 절차에 나가지 않고 ‘해결됐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것이거든요. 민사상으로도 국가의 행위는 불법행위라는 것이고, 불법 행위라면 당연히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어쨌든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 ‘12.28 한일합의는 무효다. 국가는 다시 분쟁해결을 위한 협상에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보상을 한다는 건 이번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국가가 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 본 정부와의 협상에 성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의 일본 협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판결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헌법 재판소가 2011년에 언급해놓은 게 있어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권은 재산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신체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 회복의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배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 인권을 침해당한 소녀들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뜻이겠죠.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늦게나마 회복해준다는 의미고요. 한 많은 인생에 대한 보상입니다.

: 나의 신체가 국가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굳이 한국의 정부가 ‘나’를 멋대로 대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더라고요.

: ‘국가가 나서서 개개인의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가’하는 부분에서 견해의 차이가 있어요. 국가가 외국과 협상할 때 ‘국가 일부를 이루는 개인의 권리 일부를 처분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요. 하지만 국가와 개인의 법인격은 서로 다르거든요. 법률의 관점에서는 똑같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이상 타인의 인격,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처분할 수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부분을 합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관점이 있어요.

‘나의 신체 권리가 국가에 소유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나와 국가를 동등한 인격체에서 보는 관점 같고, 또 이게 맞겠죠. 어차피 피해는 내가 입었는데 제삼자가, 일부 관료가 나서서 나의 피해에 대해 ‘더는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나서서 결정하고 참여하는 절차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협상이나 과거의 협상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죠.

과거사위 긴급조치 변호인단’, 여기까지 왔다

: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및 성폭력 문제, 긴급조치 문제 등 다양한 과거사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사위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활동 중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활동이지만 그만큼 신입 회원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 과거사위는 특정 과거사 이슈가 마무리되지 않는 이상 그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활동하는 거니까요.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벌써 10년 동안 활동하고 있습니다. 긴급조치는 아시다시피 유신독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항거하는 민주 인사들과 유신 정부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들이죠. 형사소송법을 거의 무력화시켜버리는 초법적인 조치였어요. 국왕이 칙령으로써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정도예요.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폐지되었고 피해자들이 ‘억울하다, 무죄로 만들어달라’ 했더니 형벌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면소 판결을 내려 끝내버렸습니다.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어정쩡한 판결이 면소 판결입니다. 여전히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남아있는.

기본법 보장 규정에도 어긋나고 형사소송법 제반 법칙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고, 유신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에요. 그래서 재심을 청구하게 된 거죠.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요. 2010년 10월경 대법원에서 최초로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어요. 그때까지 법원들은 긴급조치 재심 사건에 대해 계속 면소 판결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판결이 나온 겁니다.

위헌 결정 뒤로 구금된 기간 형사 보상을 청구하고, 민사 소송으로 손해 보상 청구까지 들어갔어요. 사실 법리상으로는 대법원의 면소 판결이 형사법에 규정이 되어 있거든요.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맞게 판결했고, 형식적 법치주의만 따지면 그게 맞긴 하죠. 하지만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인가’라는 판단을 이제까지 안 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거예요. 긴급조치가 무효라는 것에 사법부의 판결을 끌어냈다, 변호사가 사회를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일조했다, 그런 흥분감으로 계속 끌고 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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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뒷편으로 긴급조치 관련 재심판결 모음집이 책장 한 칸을 채우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로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 판결을 받은 것에 대응하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과거의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긴급조치를 발령한 논리는 유효하다. 긴급조치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리고, 수감생활을 시킨 공무원이 뭘 잘못했냐.’ 이런 거죠. 그러면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내린 것은 잘못 아닌가요?’ 하니까 ‘그것은 대통령이 통치권 행사의 목적으로 한 것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질 문제이지, 개개인에게 행해진 불법행위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질 일이 아니야.’라고 주장해요. 긴급조치는 위헌무효인데, 그에 따른 법률적 행위는 정당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어요. 지금의 대법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펴고 있고. 그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예요. 성과와 아쉬움을 함께 가지고 있죠. 이 부분은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재임(이하 이): 그런 대법원의 입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대해 반박할 논리는 아직 없나요?

: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여러 변호사가 노력하고 있는데, 대법원이 아니라고 막고 있으니까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법원의 구성을 진보적으로 바꾸거나 적절하게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서울대학교를 나오시고 판사를 하신 남성분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들이 대법관이 되거든요. 대법원이 사회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을 대법원장에 앉힐 가능성도 있고요. 여러 가지 점에서 과연 우리 사법제도가 정당한 건지 의문이 있어요.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하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다

: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는 말이 있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지금의 인권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평가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00년, 200년 뒤의 누군가가 현재의 역사를 연구하고 어떤 사건의 역할과 의의를 평가할 때 과거사위 활동이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하시나요? 혹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으신가요?

: 어렵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정치를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부국강병’ 이런 건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관점인 것 같고요. 법조인으로서 ‘당대사’를 말한다면 과거의 권력행사가 정당한 이유와 절차에 따른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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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는 여러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이 정당하게 지켜졌는지,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그것이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를 따지고, 부당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침해된 인권을 회복하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자의적이고 독재화된 권력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그런 권력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정의를) 회복하려는 법률적 시도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긴급조치가 당시에는 권력에 의해서 시행되었고 검사와 판사들이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지만, 이제는 긴급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위헌 무효였다는 것이 사법적으로 밝혀진 거잖아요. 잘못을 밝혀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해보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고, 그것이 과거사청산위원회였다.’, 이런 정도의 평가를 받지 않을까요? 어떻게 평가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빨’이니 어쩌니 욕을 하더라도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직 활동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 그것을 해라

: 2006년 10월 30일에 가입하셨고, 한 달 지나면 만 10년차가 되시네요. 축하의 박수! (웃음) 10년을 활동해보니 이제 가입하는 신입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민변 가입할 때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고, 저는 이분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정도가 제가 생각한 행동반경이었어요. 그런데 민변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내일 뭘 하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도 나이는 계속 먹겠지만, 저는 익숙하던 대로만 지내면 인생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거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부조리가 드러나거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중에 내 삶을 반추해봤을 때 내 살아온 모습에 대해서 나름의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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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변호사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단은 뭔가를 해라. “네 가슴속에서 우러나와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 ‘뭔가’를 일단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왕이면 과거사위를 하면 더 좋고요. 과거사위 활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좋은 선배 변호사들도 만날 수 있고, 여러 시민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역사적 관점도 얻을 수 있고, 사서나 역사적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과거사위 선배들은 술을 사달라고 하면 분명 좋아할 겁니다.

화, 2016/09/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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