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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기의 섬 이야기] 섬 속의 섬, 오키카무로지마(沖家室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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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기의 섬 이야기] 섬 속의 섬, 오키카무로지마(沖家室島)

익명 (미확인) | 수, 2015/11/25- 11:41

섬 속의 섬

대부분의 섬들은 섬의 형성과정을 거치면서 단독이 아닌 크고 작은 몇 개의 섬으로 구성한다. 그 중 면적이 큰 섬(큰섬, 작은섬의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두 섬 간의 상대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에 인구가 밀집되어 도시가 형성되는 것은 일반적인 특성이다. 큰 섬은 주변에 작은 섬들을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한다. 큰 섬에 비하면 면적은 작지만, 주변이 바다라는 환경은 큰 섬의 조건과 마찬가지이기에 해양 생물자원이 풍부하고, 때로는 독특한 생물들만의 서식처로서 역할을 한다. 특히 인간이 거주하기 어려운 무인도의 경우, 오히려 생물들에게는 중요한 서식공간으로 이용되곤 한다.

올해 9월에 일본 야마구치현(山口縣)의 큰 섬인 스오오시마(周防大島)에 다녀왔다. 일본의 저명한 민속학자인 미야모토 쯔네이치(宮本常一)씨의 고향이기도 하고, 최근 空洞化되어가는 섬 지역의 활성화를 위하여 도시의 젊은이들이 정착하는 섬이기도 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caption id="attachment_155082" align="aligncenter" width="650"]야마구치현 스오오시마의 하와이언 로드 야마구치현 스오오시마의 하와이언 로드[/caption]

그러나 막상 흥미를 끈 것은 큰 섬이 아니고 바로 인접한 오키카무로지마(沖家室島)라는 작은 섬(면적 0.95㎢, 우리나라 서울 송파구 석촌동과 동일 면적)이었다. 이 섬은 1983년 스오오시마와 다리로 연도되어 있어서 쉽게 건널 수 있다. 면적이 크기 않은 이 섬에 명치(明治)시대에는 인구가 3,000명이나 거주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야마구치현의 사회경제가 발전하여 일본내에 많은 어민, 노동자들이 야마구치현에 몰려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마침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조선강점이 시작되어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몰려들 때 이곳의 많은 주민들도 조선땅을 밟았다고 한다. 조선이외에도 하와이, 대만, 만주에 이르기까지 이민을 갔다. 대만에 이민한 사람들은 주로 어민들인데 비하여 조선에 이주한 사람들은 주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천, 원산, 군산, 남포, 부산 등 주로 항구도시를 거점으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일인들은 오키카무로지마에도 투자를 하여 숙박업, 사찰건립, 도로건설, 제방구축 등 “고향 섬 살리기”를 하였던 것이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하여 일인들 모두가 본국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하와이에는 그들의 자손들이 남아서 沖家室會를 조직, 이 섬을 꾸준하게 지원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섬인 오키카무로지마 덕분에 스오오시마를 일본의 하와이라고 부르고, 다양한 하와이안 콘텐츠가 관광상품의 얼굴이 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caption id="attachment_155083" align="aligncenter" width="650"]일제강점기 인천에서 부를 축적한 섬 주민이 사찰 건축비 기증을 기념하여 기증자 이름 남김. 오키카무로지마 일제강점기 인천에서 부를 축적한 섬 주민이 사찰 건축비 기증을 기념하여 기증자 이름 남김. 오키카무로지마[/caption]  

큰 섬만이 자원이 풍부하고, 생존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섬이라도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섬 속의 섬이며 큰 섬의 거울인 작은 섬’을 관찰하면서 알 수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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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822

2015.10.28~31 우리지역 환경연합에서는 무슨일이? 환경운동연합은 핵발전소, 4대강, 국립공원 개발 문제 대응뿐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함께사는 이땅을 만들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답니다!...   2015102822
월, 2015/11/0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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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사르데냐섬의 신비한 돌탑들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생태학)

[caption id="attachment_194096" align="aligncenter" width="640"] 사르데냐섬 사사리시 인근의 해변ⓒ홍선기[/caption] <섬의 날> 제정을 기념하여 목포MBC에서 주관한 글로벌 토론회에 저명한 섬 연구자를 초빙하여 강연을 들었다. 그 중 한분은 영국 캠브리지대학(Cambridge University) 교수이면서 이태리 사사리대학(University of Sasari)의 교수인 글로리아 풍게티(Gloria Pungetti)교수. 풍게티교수는 유럽 국가의 주요 섬에 대한 자연경관, 사회경제, 역사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공동연구를 통하여 미래 지속가능한 섬 발전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프로젝트인 ESLAND(European Culture expressed in Island Landscapes)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태리의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사르데냐(Sardegna)섬이 포함되어 있다. 사사리대학은 사르데냐에 있으며, 필자는 2012년 10월 ESLAND 심포지엄의 발표자로 초청을 받아 사르데냐섬에 간 적이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7" align="aligncenter" width="640"] 사르데냐의 누라게 유적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f/Foto_aere_del_Nurag…)[/caption] 사르데냐섬은 이태리 반도 서부 지중해에 위치하는 두 번째로 큰 섬(2만4000㎢)으로서 150여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섬이다. 지중해는 유럽 고대사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교통 교역로의 역할을 하였고, 시실리섬을 비롯하여 사르데냐섬은 지중해를 지키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이 바로 위에는 나폴레옹과 관련된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이 있다. 사르데냐는 대체로 대지상(臺地狀)의 산지가 많고, 저지대에는 평지가 많아서, 고대로부터 정주하는 부족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의 기원을 알 수 없는 원형의 거대 돌탑과 돌 유적들이 섬 전체에 산재하여 분포하고 있다. ‘누라게(Nuraghe)’라고 명명하는 이 거대 돌탑들은 BC 2,000~730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르데냐 섬에만 7천여개 정도가 분포하고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여러 흔적의 조사를 통하여 1만여개의 누라게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사르데냐는 고유한 누라게 문명(Nuragic civilization)의 발생지로 유명하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8" align="aligncenter" width="640"] 누라게 유적인 돌탑의 외부 전경. 출입구는 매우 작다.ⓒ홍선기[/caption] 돌탑은 천정이 막혀있고, 여러 곳에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으며, 내부에는 수십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다. 여러 가지 특이한 구조로 봐서 신당(sacred place, 神堂)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구릉지나 평지에 많은 것으로 봐서 주거지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부족장의 주택, 군사 요충지, 회의실, 종교 사원, 거주지 등 조합된 기능을 갖추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일부 누라게의 경우,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방어용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또한 부의 상징일 수도 있고, 주변 토지의 소유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르데냐의 누라게와 지중해 동부에서 유입된 메소포타미아 돌탑과 유사함을 주장하면서 문화 유입에 의한 결과로 보는 경향이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9" align="aligncenter" width="640"] 누라게 돌탑의 내부에는 생활수를 공급할 수 있는 우물이 있다. ⓒ홍선기[/caption] 사르데냐섬 전체에 분포하는 돌탑과 출토된 기타 유적들을 분석하면 이 누라게 문명을 일으킨 부족은 단일 부족이 아니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세 가지 다른 부족이 지역에 따라서 북쪽의 코르시카를 통한 중부 유럽의 문명,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서쪽의 이집트를 비롯한 해양민족의 영향으로 나눠질 수 있다. 이처럼 기원을 달리는 고대문명이 종합적으로 한 섬에서 뭉쳐져서 나타나는 경향도 드물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5" align="aligncenter" width="640"] 사르데냐의 누라게 유적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f/Foto_aere_del_Nurag…)[/caption] 사르데냐섬은 현재 이태리의 영토이지만, 누라게 문명의 발생지이고, 이후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였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사라센 제국의 영향권에도 있었다. 18세기 이탈리아 국가가 생기면서,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사르데냐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문화 정체성은 이태리나 유럽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고유문명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사르데냐는 이태리에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사사리 시내를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벽보에 독립을 주장하는 격문과 그림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르데냐의 힘든 역사는 사사리시의 부속 섬인 아시나라(Asinara Island)에서도 엿볼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94100" align="aligncenter" width="640"] 아시나라섬에 있는 마피아 수용소 정원. 당시 마피아들이 노동을 하면서 만들었다는 정원인데, 나름 조직의 심볼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이곳 감옥은 개방되어 생태관광 체험프로그램에서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홍선기[/caption] 아시나라섬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질병 격리소가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섬(Isola del Diavolo, Devil's Island)’으로 불렸고, 이후 1970년대에는 마피아 소탕으로 잡힌 폭력단들을 수용하는 교도소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악명 높은 아시나라섬은 1997년 10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숨겨진 자연경관과 독특한 생물자원을 활용한 생태관광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고, 마피아를 수용했던 감방은 생태관광 프로그램에서 숙박 체험이 가능하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바로 이런 곳에 있는 것 같다.
화, 2018/09/0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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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높이 15m넘는 댐은 무려 1,206개
317개의 댐이 지은 지 30년 넘어 노후화 심각

높이 2m이하의 작은 댐은 18,000개
해마다 50~150개가 폐기되어 하천에 방치

더이상 쓸모없어진 댐의 졸업 캠페인이
지금 시작됩니다

목, 2016/03/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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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기후기금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친구가된다구?

녹색기후기금은 저개발국가의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을 위해 지원하고

그들의 저탄소발전과 기후회복력을 향상시킈는 목적의 기금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은 인천 송도에 위치해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녹색기후기금에 '이행기구' 승인을 요청해놓은 상태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한국수출입은행은 저개발국가에 삭탄화력발전 수출 지원에 앞장서왔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이 그동안 꾸준히 지적해온 문제입니다.

한국기업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저개발국가 지역주민들은 심각한 환경 및 건강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행기구가 되기전, 기후변화의 주범인 석탄 사업 지원부터 중단해야 합니다.

월, 2016/06/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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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기의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섬의 새로운 삶: U-turn과 I-turn현상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귀향운동으로 유턴(U-turn)을 들 수 있다. 농촌에서 태어나 공부를 위해 도시로 진출한 섬 유학파들. 예전 본인의 고향인 인천에도 주변 영흥도, 대부도 등 섬에서 유학 온 친구들이 많았다. 도시 학생들 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여 대학 진학률도 높았고, 또한 사회 적응력도 높았다.     이들은 도시에서 성공하여 나라 경제가 고도성장궤도에 진입하는데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성장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심지어 IMF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섬 유학파들의 세대가 몰락하는 시기가 왔었다. 이 때 많은 40대들이 직장에서 물러나 제3의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바로 귀농생활이다.     고향인 섬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또한 연고가 없는 사람들은 아애 타지로 떠나게 된다. 일본에서도 70-8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촌과 섬을 떠나서 도시로 집중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들면서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고, 장기 침체된 일본 경제는 큰 변동 없이 저성장이 될 것으로 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되돌아 가고 있다. 마침 인구 도시 집중화 현상으로 공동화되어가고 있는 농어촌에서는 “다시 고향으로“라는 캠페인으로 떠난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제도개선과 지원을 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에 들면서 상당수 인구가 농촌으로 유입되는 유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이턴(I-turn) 현상이다. 이것은 도시에서 바로 농촌이나 섬에 들어와서 정주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섬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I-turn을 Island turn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아이턴은 도시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섬이나 농촌으로 들어가서 사는 경우이다. 따라서 이전의 유턴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정부에서는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일부 섬을 선정하여, 2년간 매달 15만엔씩의 정주금을 지원하면서 젊은 세대들을 유치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턴 프로젝트는 대도시에서 황량하게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들이나 농어촌 활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삶의 대안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책인 『우리는 섬에서 미래를 보았다』의 저자 아베 히로시도 대도시에서 바로 섬으로 아이턴을 한 당사자이다. 이들은 정부 지원금을 받지만, 각 지자체로부터 활동금과 정착금 등을 받으면서 섬의 지역활성화와 관광산업 활성화 등에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원래의 자기 고향을 찾는 유턴과 달리 초면의 도시 청년이 유입되는 아이턴의  경우, 전통 사회를 유지해 온 섬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도시 젊은이들이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나 섬의 기본 산업인 어업이 아닌 관광이나 농업 등 다른 사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원주민들과의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더욱이 2년간의 정부 지원금이나 지자체 정착금만을 위하여 무턱대로 달려드는 도시 젊은이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나름 면밀한 콘테스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화, 인구감소 현상이 매우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일본의 섬이다. 산업의 둔화, 마을 공동화, 자연 황폐화 등 환경적인 파장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회복은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러나 I-turn현상과 같이 의외로 도시 젊은이들이 섬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한 정주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하는 상황에서 섬은 다시 활기를 찾고 젊어지고 있다. 일본 매스컴에서 섬에서의 생활과 관광, 자연, 그리고 정착에 대한 프로그램을 많이 방송하고 있는 것도 섬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분위기 조성일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I-turn현상은 언제쯤 올 것인지.(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홍선기 교수)    
목, 2015/10/0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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