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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만 키워주는 한국 교육… ‘꿈’까지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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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만 키워주는 한국 교육… ‘꿈’까지 갈랐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11/19- 20:21

연간 2500만 원 내는 영어유치원

서울 대치동 학원가. 아침 9시가 좀 넘자 노란 버스들이 하나 둘 한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버스에서는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줄지어 내린다. 특이한 점이라면 아이들을 맞이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는 것.

이 건물에는 대치동 엄마들이 선망한다는 G 영어유치원이 있다. 영재시험을 통해 상위 5%로 인증된 아이들만이 G 영어유치원의 입학 시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잠시 각 층의 교실을 둘러봤다. 아침 시간이지만 이미 곳곳에서 외국인 강사와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5세 아이를 둔 부모라며 기자가 직접 입학 상담을 받아봤다. 먼저 궁금했던 것은 학원비였다. 학원 상담사는 기본 원비가 월 178만 원이고 기타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표를 구해보니 기본 원비는 월 166만 원이었고 급식비 12만 원과 재료비 36만 원이 추가로 들어갔다. 연간 한 번씩 부담하는 여름, 겨울철 원복과 체육복 비용을 더하면 학부모의 연간 부담액은 2500만 원을 넘어선다. 비싸면 더 잘 팔린다는 상술이 통하는 것일까?

강남 지역 학부모들은 줄지어 입학을 기다린다. G 영어유치원 압구정점 상담사는 영재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열 명 가량의 대기자가 있어 당장 입학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G 영어유치원의 가격표

▲ G 영어유치원의 가격표

영어유치원에서 시작된 강남 지역의 ‘금수저’ 교육은 값비싼 선행학습을 통해 이후의 교육과정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초중고반을 모두 두고있는 대치동 S 학원의 상담실장은 “초등학교 6학년 즈음 되면 고등학교 ‘수학의 정석’을 시작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괴로워 한다”며, “그 전까지 영어를 어느 정도 끝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입시반을 운영하는 M 학원의 상담사는 “여기는 고등학교 수학을 중3까지 끝내는 시스템”이라며 기본 횟수 8회를 기준으로 학원비는 과목당 월 52만 원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대치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둔 한 학부모를 만나 대치동 ‘금수저’ 교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들어봤다.

김미라(37, 가명) 씨 인터뷰

김미라 씨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학부모였다. 김 씨는 아이를 사고력 위주 수학 학원, 교과과정 위주 수학학원, 스케이트 학원, 미술 학원, 영어 학원 등 다섯 곳의 학원에 보내고 있었다. 기자와 만났을 때에도 아이를 직접 학원에 데려가는 길이었다.

기자 : 총액으로 봤을 때 월 학원비가 어느 정도 들어가나요?

김 : 평균적으로 120만 원 정도 들어가는데, 방학 때는 200만 원이 넘을 때도 있어요.

기자 : 아이 학년이 올라가면 앞으로 비용이 더 올라갈 수도 있나요?

김 : 올라갈 수 있죠. 아직 저학년이니까 특정한 목표는 없지만, 만약에 경시대회 준비를 한다든가 영재원 준비를 한다고 하면 더 늘어나겠죠. 2학년부터는 논술도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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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자신이 대치동 엄마들 치고는 “최하”에 불과하다며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을 채워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 : 학원이 어쩌면 얘네들 사회에요. 1학년인데도 그게 크더라고요. 그냥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애들은 없으니까.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반 이상은 다 영유(영어유치원) 출신이고 영어 실력들도 굉장히 좋아요. 이런 데 안 다니면 친구도 없고, 사실 바빠서 모여 놀지도 못 해요.

기자 : 비용이 비싸서 이런 사교육이 약간 부담이 되기도 할 것 같은데?

김 : 효과가 있어요. 아이러니하지만, 확실히 있어요. 레벨 테스트를 받아보면 등급이 올라가고 시험을 봐도 점수가 달라지는 게 보여요. 영어인증시험을 봐도 급수를 따니까 안 받을 수 없죠. 저는 아이 1등 시키려고 보내는 건 아니에요. 이 동네 사니까 여기서 아이가 중간은 가려면… 안 할 수가 없죠.

금수저, 은수저 교육은 세대를 건너 반복되고 있었다. 김 씨는 초등학교 때 처음 대치동에 이사와 쭉 이 지역에서 살았다. 자식이 흙수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다. 주변의 학부모들 가운데서도 어릴 때부터 이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출신 대학이나 사회적 지위는 별 차이가 없다보니까 여기는 고등학교 어디 나왔는지가 더 중요하다”면서 지역에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학부모끼리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강남 3구 출신이 서울대 합격자의 13.2%

강남 지역에서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평균 사교육비는 122만 원 선이다. (2013년 강남구 사회조사 결과) 이는 전국 평균 사교육비 23만9천 원의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강남 지역의 실제 사교육비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액수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말한다.

영재고 대비 특별반 5~6명 모집을 한다, 이거를 공식 프로그램으로 하는 게 아니라 소위 돼지엄마 같은 엄마들한테 홍보하는 거죠. 5~6명 모아라, 그리고 강사 페이 3천만 원 채워줘야 하니까 맞춰오라고. 그리고 계좌이체 안 된다, 현금으로만 내라, 이렇게 은밀한 반들이 운영되고 있어요. 이렇게 비밀리에 오고 간 수업이나 오피스형 과외의 경우 규모도 안 잡히고 단속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통계에 잡힌 월평균 사교육비와 실제 사이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됩니다.

사교육, 즉 돈이 만들어내는 합격자 수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2015년 서울대 합격자 3261명 가운데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 출신이 432명이나 된다. 전체의 13.2%다. 강남구의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1%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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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은 강남의 ‘금수저 교육’이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이현 씨는 근 20여 년 간 대입 사회탐구 유명 강사였고 강남, 송파, 신촌 등지에서 대형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주)스카이에듀 대표를 지냈다. 사교육계에서 지난해 은퇴한 뒤 현재는 계간지 <교육비평>을 발행하고 있다.

이현 <교육비평> 발행인 인터뷰

▲ 이현 전 스카이에듀 대표, <교육비평> 발행인

▲ 이현 전 스카이에듀 대표, <교육비평> 발행인

이현 씨는 강남 출신 아이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서울대가 그런 학생들이 뽑히도록 전형 방식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울대가 80% 안팎으로 뽑아 온 수시 전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세 가지가 어떻게 ‘금수저’ 아이들을 우대하는 전형으로 쓰이는지 설명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심화교과(전문교과) 이수 여부나 다양한 체험활동 기록이 담깁니다. 심화교과는 영어 심화, 스페인어 심화, 독일어 심화, 국제법, 국제경제 같은 과목들인데 일반고에서는 재원도 부족하고 학부모들의 지원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일반고에 비해 5~6배가 넘는 학비를 내는 특목고, 자사고에서나 운영할 수 있는 과정인 거죠.

서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특목고, 자사고의 천만 원대 학비는 그나마 공식적 학비인데, 비공식적인 찬조금 운영비까지 합하면 비용은 더 늘어납니다. 이런 학교에서나 운영 가능한 특별한 활동들을 서울대가 학생부 평가하면서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으니 결국 귀족학교 우대하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씨는 수시 전형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역시 값비싼 고급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층 자녀들에게 유리한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소개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강남 지역에는 고1때부터, 늦어도 고2때부터 학생부를 관리해주는 전담 컨설팅 서비스가 있습니다. 컨설턴트가 자소서에 들어갈 커리어를 쭉 관리해주다가 마지막에 세련된 자소서를 써줍니다. 아주 순박한 어떤 고등학생의 자기 이야기하고 이렇게 윤문된 세련된 자기소개서하고는 레벨이 다른 것이죠.

추천서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아이들은 추천서를 초등학교 은사님이나 동네 목사님, 이런 분들께 받아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만약에 누가 전직 장관이 써준 추천서를 들고 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재벌급 회사의 고위 임원, 현직 국회의원이 써준 추천서들이 동네 어른들이 써준 추천서와 같이 놓여있을 때 누가 이 추천서의 레벨을 동일하게 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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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천만 원 안팎의 학비가 들어가되 학교 내에서 다양한 심화교과를 배우고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교육’이 입시 제도에 특화된 값비싼 ‘특별한 사교육’을 만나 평범한 학생들이 접근할 수 없는 ‘로열 로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이 씨의 진단이었다.

“사교육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두 가지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하나가 공개적인 대중적 사교육이고 하나가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사교육입니다. 공개적 사교육이 작동하는 분야는 수능하고 학교 내신 경쟁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라면 대부분이 경험하는 종류의 사교육이죠.

이것 말고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사교육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학생부나 자소서를 관리하는 서비스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런 특별한 종류의 사교육이 특별한 공교육과 결합한 교육 체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강남 3구에 살고 있는 겁니다. 돈도 있고 정보력도 있고 지역적 접근성도 있는 사람들이죠.”

‘특별한 공교육’과 ‘특별한 사교육’이 결합해 평범한 아이들이 접근할 수 없는 ‘로열 로드’를 만들어내는 사이, 이런 특별한 교육의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일반고를 찾아가봤다.

‘금수저 교육’의 바깥

일선 교사들이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고교서열화다. 이명박 정부 이후 고등학교는 영재고,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등으로 분리됐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지만, 학업 의지를 가진 아이들이 특목고와 자사고 등으로 빠져나간 뒤 일반고의 학업 분위기는 상당히 악화됐다.

22년간 일반고에서 교사 생활을 해온 조연희 씨는 “20년 전만 해도 반에서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다거나 무기력에 빠져있는 학생이 반에서 한 명 있을까 말까였다”면서, “지금은 심한 경우 한 반의 3분의 1 정도가 수업을 포기한 느낌이 드는데 그런 게 특목고 자사고 등이 등장하면서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씨는 학교를 포기한 학생들에 대해 “내가 노력을 하면 과연 뜻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고 말한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까 과외나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일단 혼자 시도해보게 되는데, 모의고사 같은 걸 보면 시험 문제가 상당히 어렵게 나오다 보니까 지레 포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십대 때 학교에서 겪는 패배감이 아이들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서울 시내 자사고와 일반고 학생 100명씩을 상대로 희망직업을 조사했다. 성별이나 성적 수준으로 인해 희망 직업에 특정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남녀 숫자는 동수로 맞췄고 조사 대상은 자사고에 입학 성적 제한이 없어진 현재의 고교 1학년 학생들로 한정했다. 희망 직업을 조사한 뒤 ‘2015 한국직업전망’(한국고용정보원) 자료의 직업별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희망 직업의 평균 소득값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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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자사고 아이들이 희망한 직업의 평균 소득은 430만 원으로 집계 됐다. 반면 일반고 아이들이 희망한 직업의 평균 소득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284만 원 정도로 나타났다. 자사고 아이들이 희망 직업으로 많이 써낸 직종은 검사, 의사, 고위공무원 등이었고, 일반고 아이들이 많이 써낸 직업은 요리사, 일반 회사원, 간호사, 제빵사 등이었다.

일반고 아이들 중에는 꿈이 없다고 답한 학생도 100명 가운데 13명이나 있었다. 반면 꿈이 없다고 답한 자사고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직접적으로 자식의 소득 수준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건국대 최필선 교수는 2004년 고3이었던 학생 1,300여 명을 10년 간 추적해 부모의 소득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최 교수가 올해 9월 발표한 논문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가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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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무학, 유전유학

유일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는 교육조차 경제적 계층에 따라 분리된 상황이지만 정부는 해결 의지가 없다. 고교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울시교육청에 들어가 정책 연구를 하고 있는 교사 김학윤 씨는 답답함을 토로한다.

자사고 문제나 특목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진보교육감만 느끼는 게 아니에요. 정부도 느끼고 있고 그 문제를 정비하려고 하다가 해결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진보교육감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걸 정부가 도와주기는커녕 초등교육 시행령까지 바꿔서 교육청이 지정취소라든가 재지정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중앙정부가 딴지걸기를 하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교육현장의 불평등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인다. 금수저만 주로 키워주는 한국 교육이 점점 아이들의 꿈마저 갈라놓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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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처참하게 무너진 공영방송의 잔혹사를 다룬 영화 ‘공범자들’(감독 최승호, 제작 뉴스타파)을 상대로 MBC 법인과 전현직 임원 5명이 낸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이 기각됐다.

서울중앙행정법원 제50민사부(김정만 수석부장판사)는 14일 “영화가 MBC 법인의 명예권은 물론, 김장겸 MBC 사장 등 신청인 5명의 명예권과 초상권,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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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공범자들 상영금지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열린 8월 11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최승호 감독(좌에서 두번째)과 신인수 변호사(우에서 두번째) 등 4명이 가처분신청 철회를 요구중.

재판부는 특히 신청인들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권 침해’ 주장에 대해 “MBC의 전현직 임원인 신청인들에 대한 ‘공범자들’의 표현 내용은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못박은 뒤, “영화는 사실에 기초하여 공적 인물인 신청자들에 대한 비판과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며, 신청인들은 MBC의 전현직 임원으로서 이같은 비판과 의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할 지위에 있음에도 그러한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자신들의 명예권이 침해되었다고만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범자들’ 측 법률대리인 신인수 변호사는 “영화 ‘공범자들’은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든 영화인데, 이같은 제작 목적과 취지를 재판부가 충분히 이해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가처분 신청인 가운데 한 명인 김장겸 MBC 사장은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에 대한 입장과 항소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현재까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공범자들’에 등장하는 전 MBC 사장 김재철과 안광한, 그리고 현직 임원인 김장겸 사장, 백종문 부사장, 박상후 시사제작 부국장 등 5명은 지난달 31일 “영화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초상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상영을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이에 맞서 1만 6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가처분 기각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썼고 영화단체들도 ‘기각’을 요청하는 연대 성명을 낸 바 있다.

법원의 오늘 결정에 따라 ‘공범자들’은 오는 17일부터 서울 사당동 아트나인과 메가박스 등 200여 개 상영관에서 예정대로 개봉하게 됐다.

월, 2017/08/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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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MB정권의 낙하산 사장 선임에 맞서 싸우다 해고됐던 YTN 기자들이 해직 3천일을 맞았습니다. YTN과 MBC 등 해직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진혁 감독의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은 1월 12일 개봉합니다.

금, 2016/12/2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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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해수부 공무원들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 일부가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류재형 해수부 감사관은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해수부 기자실에서 긴급브리핑을 열어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자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 문건 (자료 출처: 머니투데이 the300)

▲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 문건 (자료 출처: 머니투데이 the300)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 문건’, 해수부 내부 작성 확인

해수부는 먼저, 2015년 11월 19일 <머니투데이>에 보도된 ‘세월호 특조위 현안 대응방안’ 문건이 해수부 내부에서 작성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세월호 인양추진단 직원들이 사용하던 업무용 메일에서 이 문건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관련 공무원 조사 과정에서 “상부 지시로 이 문건을 작성했으며, 작성 과정에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과 해양수산비서관실 등과 협의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이 문건 작성과 관련된 공무원이 윤학배 당시 차관을 포함해 10명 안팎이라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문건 작성에 관련됐다고 지목된 이들 중 현재 퇴직 등으로 해수부를 떠난 이들에 대해서는 해수부 감사관실이 직접 조사할 권한이 없어 교차 검증까지는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해수부는 이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이미 2005년 12월 17일, 이 문건이 해수부 내부에서 작성된 것은 물론이고 작성과 실행 과정에서 해수부 고위공무원과 청와대,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모했음을 확정적으로 보여주는 진술을 확보해 보도했던 바 있다. 당시 국회 농해수위 소속의 한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이 문건은 해수부 연영진 해양정책실장이 직속 과장을 통해 우리 의원실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청와대가 해수부에 함구령을 내려, 문건의 출처를 절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향후 유사 문건을 생산하지도 소지하지도 말 것을 지시했다”고 폭로연했다. 취재진은 당시 김영석 해수부장관을 직접 만나 이 문건의 출처 확인을 요구했지만 김 장관은 “해수부 내무 문건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결국 이 문건과 관련해 해수부 감사관실이 언급한 윤학배 당시 차관과 뉴스타파가 보도한 연영진 실장은 물론 김영석 전 장관까지도 향후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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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 활동 시작일 ‘1월 1일’, 법적 검토와 달리 임의 결정

당시 해수부가 특조위 활동을 조기 종료시키기 위해 법적 검토와 무관하게 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을 임의로 판단해 확정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수부는 2015년 2월부터 5월 사이 법률회사 6곳에 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에 대한 자문을 의뢰했다. 이 가운데 3곳은 특조위원 임명일인 2월 26일을, 1곳은 사무처가 구성되는 시점(8월 4일)을 활동 시작일로 봐야 한다고 회신했고, 2곳은 회신 결과를 보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해수부는 1월 1일을 활동 시작일로 자의적 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2015년 5월 14일과 6월 25일, 두 차례의 관계차관회의에서는 법제처가 특조위 활동 시작일을 대통령 재가일인 2월 17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해수부는 반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2015년 11월 23일 특조위가 청와대에 대한 참사 대응 관련 업무 적정성 등에 관한 조사를 결정하자 당시 해수부는 활동 시점에 대한 법적 검토를 완전히 중단하고 1월 1일로 임의 확정했고, 이에 따라 특조위 활동은 2016년 6월 30일까지로 축소되어 결국 사실상 강제 종료되는 결과가 초래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타파는 해수부의 석연치 않은 특조위 활동 시한 확정 과정과 이에 관계된 내부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이미 2016년 10월 4일 보도했던 바 있다. 해수부가 세월호 특조위 활동 시작일에 대한 법제처 해석을 의뢰했다가 돌연 철회하는 과정에서 역시 연영진 해양정책실장과 함께 김남규 서기관의 이름이 등장한다. 김남규 서기관은 특조위 초기 해수부에서 파견됐다가 새누리당 추천의 조대환 당시 부위원장을 통해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에게 특조위 내부 자료를 유출시켜 이른바 ‘세금도둑론’을 퍼뜨리는 데에도 일조했던 인물이다. 해수부는 특조위 활동 기간에 대한 임의적 해석에 관계된 당시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 세월호 특조위 활동 시작일 임의 판단 과정에 관여한 김남규 서기관(위)과 연영진 실장

▲ 세월호 특조위 활동 시작일 임의 판단 과정에 관여한 김남규 서기관(위)과 연영진 실장

이에 앞서 해수부는 국회 농해수위 등을 통해 해수부 인양추진단과 특조위 파견 공무원들 다수가 특조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김영춘 장관 지시로 지난 9월부터 자체 감사를 벌여왔다.


취재 : 김성수
영상편집 : 박종화

화, 2017/12/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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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외삼촌 강진석,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 받아

북한 김일성 전 주석의 외삼촌 강진석이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진석은 김일성의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훈장을 준 첫 사례로 파악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2012년 광복 67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강진석’은 김일성의 큰외삼촌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훈장은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의 추천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수여했다. 훈장이 수여된 사유는 “평남 평양의 청년회와 백산무사단 제 2부 외무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로 돼 있다.

▲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김일성의 큰외삼촌 강진석

▲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김일성의 큰외삼촌 강진석

30년 간 김일성을 연구한 이명영의 <김일성 열전>에 따르면 김일성의 외할아버지 강돈욱에게는 아들로 ‘진석’ ‘용석’, ‘창석’이 있었고 막내 딸로 김일성의 어머니 ‘반석’이 있었다. 이 중 강진석은 큰아들, 즉 김일성의 큰외삼촌이다. 일본 내 지한파 연구자인 와다 하루끼의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에도 강진석은 김일성의 외삼촌으로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1992년 북한 조선노동당이 발간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도 강진석이 외삼촌이며, 백산무사단원으로 군자금을 모금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있다 보석으로 풀려난 것으로 나온다.

▲김일성 가계도. 출처 <김일성 열정>

▲김일성 가계도. 출처 <김일성 열정>

강진석이 3.1운동 직후 백산무사단(‘백산’은 백두산의 줄임말)의 단원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은 당시 일본 경찰의 체포 기록과 국내 독립운동사 연구 등을 통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다. 김일성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독립운동을 했을 경우 대한민국 정부가 건국훈장을 수여하는 게 맞는지 여부는 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명박- 박승춘, 김일성 외삼촌 사실 모르고 수여

문제는 보훈처가 훈장 수여를 위한 공적심사 과정에서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는 포상 대상자에게 흠결은 없는지, 훈격은 적절한지 등을 심사하는 기구로, 후보자들의 친일 행적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과의 관련 여부 등도 검증해야 한다.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있다하더라도 이후에 친일로 변절하지 않았거나 북한 정권 수립에 간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훈처는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을 걸러내지 못했고, 그의 사망연도도 확인하지 못했다. 보훈처 공적심사위원을 역임한 전문가들은 보훈처가 강진석의 신원을 제대로 파악했어야 했고, 또한 그가 사망한 시점까지의 행적을 철저히 조사해 훈장 수여가 적절한지 여부를 검증했어야 했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내놨다. 김일성의 회고록에는 강진석이 “1942년에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아직 검증된 바는 없다.

특히 강진석은 북한 내에서 김일성 3대를 포함해 ‘선생님’ 칭호가 붙여진 5명 가운데 한 명이다. 김일성 대학 초빙교수였던 이서행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북한에서 ‘선생’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최고 존엄의 포현을 ‘선생’이라고 해요. 김일성 아버지한테도 김형직 선생이라고 하니까요. 외삼촌 강진석도 선생이라고 해요. 동상같은 곳에 김형직 선생 동상, 강진석 선생으로 돼 있습니다.

보훈처, ‘사고 발생’ 뒤늦게 발견하고 명단 삭제, 은폐

더 심각한 문제는 보훈처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도 잘못을 바로잡기 보다는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보훈처는 지난해 강진석이 김일성의 외삼촌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월 현재, 보훈처의 공식적인 독립유공자 포상 현황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전체 포상은 318명으로 이 중 애국장은 50명으로 돼 있다. 그러나 현재 보훈처 홈페이지에는 2012년도 전체 포상 인원이 317명, 그리고 애국장은 49명으로 수정돼 있다. 강진석이 통계에서 빠진 것이다. 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강진석 관련 정보가 일제히 사라진 것도 2015년 3월 이후다. 보훈처는 이때까지만 해도 훈장을 전달하기 위해 강진석의 후손을 찾고 있었지만 지금은 훈장 미전수자 명단에서도 강진석을 삭제한 상태다.

▲ 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강진석 관련 정보는 2015년 3월 이후 일제히 사라졌다.

▲ 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강진석 관련 정보는 2015년 3월 이후 일제히 사라졌다.

박승춘 취임 후 공적심사위원 대거 교체, “부실심사 예견”

김일성 외삼촌에게 건국훈장이 수여된 사실은 뉴스타파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최장수 보훈처장(2011.2~)인 박승춘의 취임 이후 수여된 건국훈장이나 포장 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박 처장은 2011년 2월 취임 후 보훈처 공적심사위원회 위원 50명 중 23명을 한꺼번에 교체해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선례가 없던 일로 부실 심사 가능성은 물론, 뉴라이트나 친정부 인물을 심사위원회에 포함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취재 최문호, 김강민, 연다혜
촬영 최형석, 정형민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월, 2016/06/27-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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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총리, 질문을 회피했지만 대답은 계속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그는 아이슬란드 은행이 발행한 수백만 개의 채권을 역외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긴 채 금융 붕괴 이후 총리가 되었다.

기사 : 라이언 치툼(Ryan Chittum), 요하네스 Kr 크리스탠슨( Jóhannes Kr. Kristjánsson), 배스티안 오버메이어(Bastian Obermayer), 프레드릭 오베르마이어(Frederik Obermaier)

레이캬비크 – 2014년 5월 15일, 아이슬란드 총리는 의회에서 정부가 비밀 역외 회사를 이용하는 사기꾼들과 탈세를 찾아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과연 아이슬란드도 독일처럼 역외 탈세 지역의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폭로 데이터를 구매할 것인가?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릭손 총리는 이에 대해 모호하게 말을 흐렸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유용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당시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은, 아이슬란드가 구매를 검토했던 역외 탈세 지역 데이터들에는 귄릭손 총리 자신과 최소한 2명의 현정부 고위급 인사와 연계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국제 탐사보도언론인 협회, 독일신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 그리고 그 외 여러 제휴 언론사들이 입수한 수백만 개의 비밀 파일들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천 백만 개 이상의 문서들(1977년부터 2015년 12월까지의 이메일, 현금 지급, 회사 설립 정보 등)을 통해서 우리는 역외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페이퍼 컴퍼니 등록 에이전트 가운데 하나인 파나마의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파일들은 2007년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윈트리스’라고 불리는 회사를 포함, 200개 이상의 국가와 지역에서 개인과 회사로 등록된 약 214,488개 법인에 관한 비밀 정보를 밝혀주고 있다.

귄릭손 총리의 역외 활동

귄릭손 총리는 2008년 10월에 총리가 되었다.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지난 수 년간 행했던 투기와 사적 금융거래의 결과 불과 며칠 만에 붕괴되었던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은행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TV 방송인(그는 2004년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이었던 귄릭손은 인디펜스(InDifence)라고 불린 그룹을 이끌었는데, 이 그룹은 금융 붕괴 이후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수십억 달러를 국제 채권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 이후 두 차례의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인디펜스 그룹을 지지했고 성공적인 선거운동으로 귄릭손과 그의 당이 정권을 차지했다.

2009년 1월, 진보당은 민족주의자인 귄릭손(그는 한 때 아이슬란드 음식만으로 구성된 식사를 하기도 했다)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아이슬란드의 과거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38살이었던 2013년, 그는 해외 채권자들에 단호히 맞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 보유자들의 채무를 구제해주며 긴축 프로그램을 끝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되었다. 2015년 귄릭손 정부는 채권자들과 합의를 도출했으나 그의 그룹인 인디펜스는 이 합의가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했다.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의 가족이 (당시 합의에 따라) 채권자들이 얻게 되는 결과 덕분에 상당한 이권을 얻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유한 아이슬란드 도요다 대리점주의 딸인 귄릭손 총리의 부인이 2015년에 서명한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과 그의 부인은 2007년 12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3개의 은행 중 하나인 Landsbanki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모색 폰세카로부터 ‘윈트리스’(Wintris)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인수했다. 이들은 이 회사를 이용해 상속받은 돈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룩셈부르크와 영국에서 지점을 설립했으며 이곳에서 이들이 한 일은 고객들이 여러 자산들을 보관할 수 있는 역외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역외 회사들은 탈세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아마도 몇몇 사람들이 이러한 기회를 이용했을 것입니다.” 금융위기로 붕괴된 한 소규모 은행에 대한 청산을 주도했던 레이캬비크의 변호사, Rob Jonatansson은 윈트리스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모색 폰세카 파일에는 ‘윈트리스’가 이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안 나오지만, 법원 기록에 의하면 ‘윈트리스’는 3개의 주요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법원 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는, 은행들이 파산할 때 수백만 달러를 청구한 채권자였다.

2009년 11월 Landsbanki 은행을 청산할 당시 이사진은, 윈트리스를 1억7천4백만 크로나(16억 원)를 청구한 채권자로 등록했다. 또한 윈트리스는 2010년 1월에 Kaupthing 은행의 청구 목록에도 세 차례 언급되었으며 액면가로 2억2천1백만 크로나(20억 원)에 해당되는 채권을 보유했다. 그리고 윈트리스는 1억1천4백만 크로나(10억 6천만 원) 에 달하는 Glitnir 채권을 보유했다.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윈트리스는 금융 붕괴 이후 이 채권을 한 아이슬란드 투자자에게 매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귄릭손은 “벌처”와 같이 이러한 채권을 매입하는 해외 펀드들을 비판했다). 결국 윈트리스는 현재의 환율로 은행에 있는 자산 4백만 달러(금융 붕괴 이전 환율로는 8백만 달러)를 청구했다.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은행들의 파산 기록에 등장하는 채권 외에도 주식과 같은 다른 자산들을 보유했을 수도 있다.

ICIJ가 입수한 파일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4월 의회에 입성했을 때 부인과 함께 윈트리스를 공동 소유했으며 그가 총리가 되었을 때 이 회사의 존재를 계속 숨겨왔다. 귄릭손 총리는 오직 상업적 활동을 하는 회사들에 대해서만 보고 의무가 있다며 아이슬란드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의회 사무 총장은 모든 회사에 대해 보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윈트리스의 채권은 여전히 액면가의 15%에서 30% 정도에 해당되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귄릭손은 2009년 12월 31일 윈트리스 지분의 절반을 1달러에 자신의 부인에게 매각했다.

2016년 3월 15일에 총리 부인 Pálsdóttir는 처음으로 이 조세 도피처 회사를 공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그녀는 “이 회사의 존재는 절대로 비밀이 아니었다”라고 언급했다. Pálsdóttir는 지난 2007년 귄릭손과 그녀가 해외에서 거주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때 자신이 윈트리스를 설립했으며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받은 자금을 투자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명했다.

이 글에 게시된 것은, ICIJ 제휴사인 레이캬비크 미디어와 SVT(스웨덴 공영 텔레비전)가 카메라 인터뷰에서 귄릭손 총리에게 윈트리스에 대해 질문하고 난 지 4일 뒤의 일이었다. 이 인터뷰에서 SVT는 귄릭손에게 조세 도피처 회사를 소유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가요? 없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아이슬란드 회사들은 조세 도피처 회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노동조합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제가 가진 모든 자산과 제 가족의 자산에 대한 모든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따라서 어디에도 숨겨진 자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슬란드 정치가가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뭔가에 대해서 비난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절대로 숨겨진 자산이 없다는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윈트리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귄릭손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회사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제가 이사로 활동했던 여러 회사들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으며 제가 언급했듯 이 회사는 설립 이래 계속해서 세금 계정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들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제 세금 신고서에 있는 회사에 대해 저에게 질문을 할 때 마치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저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귄릭손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터뷰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로부터 4일 후에 Pálsdóttir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윈트리스에 있는 자산이 오로지 자신의 것이며 귄릭손이 공동 소유자로 등록된 것은 은행의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9년 이 실수를 확인한 뒤 실수를 바로잡아 그녀가 이 회사의 단독 소유자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 문서는 귄릭손이 자신의 지분을 Pálsdóttir에게 매각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Pálsdóttir는 이 자산이 그녀의 집안 사업체를 매각해서 얻은 자금 중 일부이며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항상 납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귄릭손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공개적으로 설명된 것처럼 귄릭손 총리와 그의 부인은 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자산과 증권, 2008년 이후의 세금 환급 등에 대해 모두 신고하는 등 아이슬란드 법을 준수했습니다.

귄릭손의 정치적 입장이 이 채권의 가치를 높여주었는지 혹은 손상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이슬란드 대학교의 경제학자인 Þórólfur Matthíasson은 이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며 총리 그 자신 이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외 회사를 운영하는 정치가들

이 문서는 다른 아이슬란드 정치가들의 자산 운용에 대해서도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기업가들과 똑같은 형태로 자산을 운용해서 이득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귄릭손 총리의 정치적 동료이자 아이슬란드 금융경제 장관인 Bjarni Benediktsson은 2015년 2월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인터뷰에서 “저는 조세 도피처 같은 곳에 자산을 보관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Benediktsson은 지난 2005년, 다른 2명의 아이슬란드 사업가들과 함께 인도양의 악명 높은 비밀 조세 도피처인 세이셸에 모색 폰세카가 설립한 ‘팰슨’(Falson & Co)이라는 이름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위임권”이라고 알려진 권한을 함께 소유했다. 위임권은 이 3명이 회사의 거래를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팰슨’은 무기명 주식을 발행했다. 무기명 주식은 누구든 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해주는 주식이다. 누군가의 이름으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기밀 보안에 더 유리하다. 무기명 주식은 사기와 탈세에 널리 이용되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서 불법이 되었다. 모색 폰세카 문서에 따르면 팰슨은 2012년 세이셸의 기업등록부에서 삭제될 때까지 페이퍼 컴퍼니로 이용되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회나 일반 대중에 공개하지 않았다.

ICIJ와 제휴 언론사인 쥬트도이체 차이퉁 (Süddeutsche Zeitung)이’팰슨’에 대해 물었을 때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두바이에서 건설 중인 4개의 아파트를 보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자신이 회사의 지분 3분의 1을 소유했었다고 대답했다. “모든 문제를 하나의 법인을 통해서 처리할 수 있는 편의성을 위해서 지주회사를 설립합니다. ‘팰슨’의 소유자들이 2008년 이 회사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아파트가 완공되기도 전에 이 자산이 매각되었고 결국 이 자산은 손실을 안고서 매각되었습니다. 이 자산의 처분에 제가 관여했다는 점은 지난 수년 동안 공개된 정보였습니다.”

이 두바이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난 2010년 아이슬란드 신문사인 DV가 입수한 이메일을 근거로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Benediktsso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소유권을 숨기고자 하는 의도나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대한 소유권을 아이슬란드의 세무 당국에 신고했습니다.” ‘팰슨’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의회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Benediktsson은 “(공개) 규정은 2009년 5월에 시행되었으며 당시에 저는 운영 중인 사업체나 신고해야 할 부동산을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뒤 Benediktsson은 Falson의 제휴자 중 1명으로부터 이 회사의 사업이 2009년 9월까지 청산되지 않았음을 언급한 서신을 받아 이를 ICIJ에 제출했다. Benediktsson은 이 회사가 2008년 11월에 인수 합의를 취소한 이후에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 이후부터 ‘팰슨’은 이 재산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소유자가 확인될 때까지 이 회사의 유일한 목적은 상환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세 도피처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던 지난해의 인터뷰와 관련해 Benediktsson은 “저는 조세 도피인는 세이셸에 이 회사가 등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룩셈부르크 회사로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또 다른 내각 구성원인 Ólöf Nordal 내무부 장관 역시 2006년 11월에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설립된 비밀 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둘리 시큐어리티 SA’라는 회사를,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 모색 폰세카로부터 사들였다. ‘윈트리스’나 ‘팰슨’과 마찬가지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Nordal은 그녀의 남편 Tomas Mar Sigurdsson(미국의 거대 알루미늄 업체인 ‘알코아’의 글로벌 고급 제품 사업부의 최고 운영 책임자다.)과 함께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위임권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회사의 주식은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2007년 8월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의 담보로서 둘리의 주식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은행은 1년 후에 붕괴되었다.

ICIJ로부터 ‘둘리 시큐어리티’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Sigurdsson은 Landsbanki 은행이 알코아 스톡 옵션 매도와 관련한 과정에 대비해 이 회사를 설립하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 함의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실제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옵션을 실행하지 않았고 이 회사로 전혀 자금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명확하게 저와 제 아내 모두 이 당시에(혹은 그 이후에도) 둘리 시큐어리티의 지분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어떠한 조세 도피처 회사도 갖고 있지 않으며 가진 적도 없습니다.

유출된 문서에는, 귄릭손 총리가 속해있는 진보당의 이사이자 총리의 고문을 맡고 있는 Hrólfur Ölvisson이 이 데이터에 언급된 2개의 회사(‘셀코 파이낸스’와 ‘카밀레 마케팅 SA’)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 있다. 2005년, Ölvisson은 진보당의 간부를 지냈던 Finnur Ingólfsson에게 셀코 파이낸스에 대한 지배권을 양도했다. Finnur Ingólfsson은 Kaupthing 은행이 민영화되었을 때 이 은행의 인수를 지휘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Ölvisson은 이 회사가 보험이나 다른 상품들을 아이슬란드에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회사들이 수년간 운영되지 않았다고 언급한 Ölvisson은 “저와 관련된 모든 일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일은 회계사가 모두 처리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Ingólfsson은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셀코’를 인수했으며 그 과정에 어떤 조세상의 이득도 없었다고 말했다.

바이킹 침입자

아이슬란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금융 분야에서 매우 뒤처져 있었다. 아이슬란드에는 1985년까지 주식시장이 없었고 이곳의 거대 은행들은 국가 소유였다. 아이슬란드는 1990년대에 국가소유로 인한 왜곡을 없앰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경제 자유화를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 정부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은행들을 민영화했고 밀려드는 해외자본은 아이슬란드 금융산업의 급속한 확장을 부추겼다. 2008년에 3개의 주요 은행인 aupthing 은행, Landsbanki 은행, Glitnir 은행의 자산은 국가 경제 규모보다 11배 더 큰 1천8백억 달러까지 팽창했으며 이것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금융 버블 중 하나였다.

언론은 아이슬란드의 거대 기업과 은행들을 새로운 바이킹 침입자라고 칭찬했다. 아이슬란드의 경제 엘리트들은 수십 억 달러 규모의 해외 사업을 유치했고 개인 파티에 엘튼 존이나 50센트와 같은 뮤지션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의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가 되었다.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800% 상승했다.

그리고 2008년 10월, 불과 3일만에 이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거대 은행 3개가 붕괴됨으로써 국가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주식시장은 97% 폭락했고 아이슬란드 통화인 크로나 가치는 절반으로 하락했다.

아이슬란드는 거대 은행들을 국유화했고 해외 투자자들의 예치된 자금에 대해 지급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영국 및 네덜란드와의 외교적 마찰이 발생했다. 수천 명이 의회 앞에서 시위를 했고 건물에 돌과 폭죽을 집어 던졌다. 결국 이로 인해 아이슬란드 정부도 붕괴되었다. 의회는 당시의 총리였던 Geir Haarde를 과실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상징적인 조치로서 자신의 내각에 위기 상황을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총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혼란 속에서, 아이슬란드의 고위급 은행가들 중 상당수는 조세 도피처 회사를 통해 가까운 동료들에게 돈을 보냈고 실제보다 은행이 더 건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시장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은행 내부자들은 서로 간에, 그리고 은행 소유자들과 주요 관계자들에게 수백억 크로나(몇 억 달러)를 융자해 줌으로써 아무런 위험 없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로 인해 투자자들과 규제 기관들은 아이슬란드 은행 지분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오인하게 되었다.

엉킨 실 풀기

서구 국가들 중 오직 아이슬란드 정부만이 은행 간부들을 엄격하게 기소했고 최소 20여 명이 구속됐다. 최상위 은행 임원 7명 중 4명, 3개 거대 은행들의 주요 주주들이 모색 폰세카를 통해서 등록된 조세 도피처 회사들을 지배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와 그 외 다른 중개인들로 인해서 이러한 거래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금융 붕괴 이후 7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 행위와 보상 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금융 붕괴 이후에 구성된 특별검사 팀을 지휘했던 Olafur Hauksson은 ICIJ와 쥬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이 입수한 정보가 공개되기 이전에 이루어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틀림 없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뭔가가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Hauksson은 특별 검사로 임명되기 전에는 인구 6,600여명의 어촌 마을인 아크라네스의 건장한 경찰서장이었다. 당시에 그는 특별 검사직을 원했던 유일한 아이슬란드인이었다.

핵심 인사들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Hauksson은 조세 도피처 회사 때문에 숨겨진 기밀로 인해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먼이나 토르톨라 등과 같은 곳에 있는 회사 그리고 룩셈부르크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이슬란드에 위치해 있는 은행들을 보십시오. 이로 인해서 사건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러 군데에 분산돼 있는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찾아야 할 것인지 파악하려면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은행 부채

ICIJ가 입수한 문서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사업 거래를 은폐하고 돈을 더 많이 보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다른 납세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하는 글로벌 비밀 장치에서 모색 폰세카가 수행하는 상당히 폭넓은 역할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이 문서들은 인구 329,000명의 작은 섬에서 형성된 엘리트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밝혀주고 있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패스트-앤-루스 관행에 대해 가장 먼저 경고했던 학자이자 국회의원인 Vilhálmur Bjarnason은 “아이슬란드는 매우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그 가족들까지도 알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총리의 자산 운용 시점을 보면 그 중의 일부는 논란을 일으킨 아이슬란드 사업가들이 지배하는 기업들의 일정과 일치하는 것이 발견된다.

‘윈트리스’와 다른 두 개의 무기명 회사(이 회사들도 아이슬란드인들이 통제한다.)는 2008년 3월 같은 날에 런던의 크레딧 스위스에서 별도의 은행 계좌를 개설했다. 이 3개의 회사들은 각각 동일한 지명 이사들을 두고 있었다(이들은 모색 폰세카가 여러 결정들을 승인하고 소유자들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제공한 허수아비다). 이 3개의 회사(윈트리스, 잘 유니버설 SA,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 모두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지점을 통해서 인수되고 운영되었다.

이중에서 ‘제이드 트레이딩’과 ‘잘 유니버설’은 평범한 회사가 아니다. 이 두 회사는 아이슬란드를 혼란에 빠뜨렸던 시장 조작 스캔들에서 조사(기소되지는 않았지만)를 받은 막강한 Landsbanki 은행 임원들을 통해서 지배되고 운영되었다.

제이드 트레이딩 서비스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Andri Sveinsson이 지배했는데, 이 인물은 Landsbanki 은행의 회장인 Björgólfur Guðmundsson과 아이슬란드에서 최고 부자인 Guðmundsson의 아들인 Björgólfur Thor Björgólfsson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2008년 1월 ‘제이드 트레이딩’은 아이슬란드 투자자인 Sigurdur Bollason에게 위임장을 발급해 주었다. Sigurdur Bollason은 2008년 여름 동안에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Landsbanki 은행, Kaupthing 은행, Glitnir 은행으로부터 무담보 대출로 1억4천4백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회사들을 이용했던 인물이다. 그 뒤 Bollason은 집단 소송에서 공동 피고로 지목되었고 시장조작 스캔들에 대해서 룩셈부르크의 Hauksson 특별검사 팀의 타깃이 되었다. Bollason은 기소되지 않았다.

‘잘 유니버설’ 역시 Bollason이 지배했다. ‘잘 유니버설’은 그가 지배했던 다른 회사들과 연계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는 Landsbanki 은행이 정부에 넘어가기 4일 전, Landsbanki 은행의 룩셈부르크 계좌로 622,000달러의 배당금을 보낸 회사도 포함되어 있다.

모색 폰세카 파일을 통해서 공개된 정보조차도 이 회사들이 정확히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이 파나마 법률 회사는 아이슬란드 은행 제도에서 사용된 기밀 체인의 핵심적인 고리이다. 이에 대한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은행, 투자 자문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와 연계된 다른 법률 회사의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Hauksson 특별검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일부 사례들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실제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가 어렵습니다. 과연 이것의 배후 실세는 누구일까요? 앞으로 수사관들과 자금을 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간에 전투가 펼쳐질 것입니다.

아이슬란드 세무 당국은 탈세자들을 찾아 미납된 세금을 회복하기 위해서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모색 폰세카와 관련된 문서들 중 일부를 구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문서들에는 현재 귄릭손의 부인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인 ‘윈트리스’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현재까지 당국은 알아낸 사실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월, 2016/04/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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