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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말?]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교수는 3명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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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말?]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교수는 3명 뿐

익명 (미확인) | 수, 2015/11/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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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근현대사 부분입니다. 과연 근현대사 부분의 집필은 누가 맡게 될까요?

뉴스타파 취재진이 지금까지 전국 일반대학의 역사 전공 현직 교수들의 국정 교과서에 대해 밝힌 입장을 취합해 확인한 결과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단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스타파가 국정 교과서 반대 선언을 하거나 집필 거부 선언을 한 역사 전공 현직 교수들의 명단을 바탕으로 전국 90개 일반대학의 역사 관련 128개 학과와 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교수 등 총 690명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 교과서 반대’나 ‘집필 거부’를 선언한 교수는 모두 537명으로 전체의 78%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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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연세대 사학과와 고려대 사학과, 서울대 역사교육과 등 59개 과에서는 교수 전원(301명)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 성명에 참가하지 않은 교수 가운데는 참여 의사는 있었지만 성명서를 낼 당시에 출장 중이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또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불참한 교수도 많아 실제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교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근현대사 전공 현직 교수 가운데 96%가 국정화 반대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교수 149명 가운데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교수는 모두 7명이었습니다. 7명을 모두 확인해 보았더니 이 가운데 4명(지수걸[공주대 역사교육과],박종린[한남대 역사교육과],박환[수원대 사학과],김영미[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은 출장이나 기타 이유로 성명에 참여하지 못했을 뿐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역사 전공 현직 교수 가운데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모두 73명이었습니다. 결국 근현대사 전공 현직 교수 96%(73명 가운데 70명)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이 됩니다.

남은 3명은 건국대 한상도 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정영순 교수 등 3명입니다.

이 가운데 권희영 교수와 정영순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속해있는 한국현대사학회 소속으로 그동안 국정교과서에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건국대의 한상도 교수는 독립운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MB 정부 때 국사편찬위 편집위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11월 12일 한국학중앙연구원·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한 광복70주념 기념 학술대회에서 정영순 교수와 한상도 교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국정화 반대입장을 밝히지 않은 근현대사 전공 교수 3명을 추려냈는데 그 가운데 2명이 국책기관 주최 행사에 함께 참가했다는 것은 사실 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취재진의 질문에 정영순 교수는 “집필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집필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한상도 교수도 국정 교과서 찬반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모른다”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 지난 11월 12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광복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정영순, 한상도 교수에게 뉴스타파 홍여진 기자가 국정 교과서와 집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쯤되면 왜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교과서의 집필진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지, 왜 역사 전공 학자 이외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교과서 제작에 참여시키는지 이해가 갈 만합니다. 국편이 집필진을 현직에서 은퇴한 명예교수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을 중심으로 찾는 것도 현직 교수 가운데서는 집필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또 교과서를 심의할 편찬 심의위원에 대해서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으로 보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측은 오는 20일까지 집필진 구성을 끝내겠다고 밝혔지만 “집필진 명단까지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국편 위원장도 교육부 장관도, 취재진이 만나 직접 물었지만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 지난 11월 12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광복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김정배 국편 위원장이 국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영상입니다.

아래의 표는 각 대학 역사 전공 교수들의 국정화에 대한 반대 현황입니다.

– 정원을 파악할 때 명예교수와 특수신분 교수는 제외했습니다.
– 공개적인 성명으로 입장을 표명한 교수 만을 집계했습니다.
– 여러 전공이 함께 있는 학부나 학과의 경우 역사 전공 교수의 숫자를 정원으로 잡았습니다.
– 누락되거나 수정이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연락을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외에도 서울교대 사회교육과와 상명대 교양학부, 대구한의대에도 성명에 참여한 역사 전공 교수가 있었지만 정원 파악이 불가능해 #표로 표시하고 계산에서 제외했습니다.

학교 정원 반대
가톨릭관동대 역사교육과 3 0
가톨릭대 국사학과 4 3
강릉원주대 사학과 5 5
강원대 교양학부 2 2
강원대 역사교육과 5 5
강원대 사학과 6 5
건국대 사학과 6 5
경기대 사학과 5 0
경남대 역사학과 6 1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고고학 3 2
경북대 역사교육과 7 3
경북대 사학과 9 9
경상대 역사교육과 5 5
경상대 역사교육과 5 5
경상대 사학과 8 7
경성대 사학전공 3 3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역사전공 3 3
경희대 사학과 9 9
계명대 사학과 7 4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 9 4
고려대 역사교육 4 4
고려대 사학 5 5
고려대 한국사학 9 9
공주대 역사교육과 5 0
공주대 사학과 6 2
광주교육대 사회과교육 역사담당 2 2
광주대 관광경영학과,영문학과 3 3
국민대 국사학과 9 6
군산대 사학과 5 3
단국대 외국어대 역사학과 5 5
단국대 문과대 사학과 6 6
단국대 교양학부 8 5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5 1
대구교대 사회과교육과 3 1
대구대 역사교육과 4 4
대구한의대 아동복지,호텔관광 # 2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5 5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역사전공 3 2
덕성여대 사학과 4 4
동국대 역사교육 4 4
동국대 사학과 5 4
동국대(경주) 국사학과 4 2
동국대(경주) 고고미술사학과 5 1
동덕여대 국사학과 5 5
동아대 사학과 6 4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7 0
동의대 사학과 4 4
명지대 미술사학과 4 3
명지대 사학과 7 6
목원대 역사학과 3 3
목포대 고고학과 4 0
목포대 사학과 7 7
부경대 사학과 6 5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2 2
부산대 고고학 5 5
부산대 역사교육 6 6
부산대 사학 12 11
부산외국어대 역사관광학과 4 4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6 5
상명대 교양학부 # 1
서강대 사학전공 11 8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역사전공 3 3
서울교육대 사회교육과 # 1
서울대 역사교육과 7 7
서울대 동양사학 8 7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9 7
서울대 서양사학과 9 5
서울대 국사학과 12 11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8 8
서울여대 사학과 4 4
서원대 역사교육과 5 5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4 4
성균관대 사학과 11 10
성신여대 사학과 5 5
세종대 역사학과 2 0
수원대 사학과 4 0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8 7
순천대 사학과 5 5
숭실대 사학과 6 5
신라대 역사교육 4 4
신라대 역사문화학과 4 4
아주대 사학과 6 6
안동대 사학과 6 5
연세대 사학과 13 13
연세대(원주) 역사문화학과 5 5
영남대 역사학과 5 4
우석대 역사교육 3 2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6 6
원광대 사학과 4 3
원광대 역사교육과 5 5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3 2
이화여대 사학과 7 5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5 0
인천대 역사교육과 3 3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한국사 담당 2 2
인하대 사학과 6 4
전남대 인류학과 고고학전공 3 3
전남대 고고학,전문대학원 4 4
전남대 역사교육 6 6
전남대 사학 11 9
전북대 역사교육과 3 2
전북대 사학과 8 3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9 4
제주대 사학과 6 6
조선대 역사문화학과 7 7
중앙대 역사학과 5 5
진주교육대 사회과교육 역사담당 2 2
창원대 사학과 6 6
청주대 역사문화학과 4 3
총신대 역사교육과 4 0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역사담당 2 2
충남대 국사학과 4 4
충남대 사학과 7 7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6 3
충북대 사학과 6 4
충북대 역사교육과 6 4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8 8
한국외대 사학과 7 7
한국학중앙연구원   10 8
한국해양대 유럽학과 1 1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2 2
한남대 사학과 4 4
한남대 역사교육과 6 5
한림대 사학과 8 3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9 9
한신대 국사학과 5 5
한양대 사학과 6 4
홍익대 역사교육과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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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 대한 배상판결에 대한 성명]

1. 판결의 경과와 ‘사법농단’

이번 판결은 1997년 12월 24일 이번 사건의 원고 가운데 고 신천수씨와 고 여운택씨가 일본의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다음, 일본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에서 2003년 10월 9일 패소한 후, 2005년 2월 28일 서울지방법에 제기한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다. 일본 소송이 있은 지 21년, 한국 소송이 있은 지 13년 만에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또한 해방이 되어 강제노동에서 풀려난 지 74년 만에 법적 판단을 받아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 동안 원고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오늘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이 판결은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이에 따라 2013년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이 원고들에게 일부 승소 판결한 것에 대하여 피고 회사인 신일철주금주식회사(新日鐵住金주식회사, 이하 ‘신일철주금’으로 약칭한다)가 상고한 것에 대하여 5년 여 만에 선고를 한 것이다. 이 판결은 이렇게 수년 간 재상고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된 동안 최근 전 박근혜대통령, 청와대 비서실, 외교부를 한편으로 하고 대법원장과 대법원 행정처를 다른 편으로 하여 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한, 이른바 ‘사법농단’, ‘불법 재판거래’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2. 이번 판결의 의미와 미해결된 강제동원 문제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여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게 되어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청구권협정에 의해 소멸된 청구권 가운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11:2의 다수의견으로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로 피해자들이 갖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의 권리가 인정된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이에 대한 일본정부와의 협상과 추가협정의 여지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2012년 판결에서와 같이 피고인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최초로 일본기업의 일제하 침략전쟁중의 책임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인정된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1998년 이래 국제노동기구(ILO)의 전문가위원회가 취하고 있는 견해, 즉 전쟁시기의 강제노동자 문제는 일본에 의한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 협약) 위반이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판결은 이러한 관련 국제법이나 국제인권법상 피해자들이 가지는 권리에 관하여 구체적인 검토를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미흡하다.

<참고사항>

[전쟁시기의 강제노동자 문제는 일본군‘위안부’문제와 함께 1990년대 중반부터 국제노동기구(ILO)에 제기되었다. ILO의 전문가위원회(정식 명칭은 협약과 권고의 적용에 관한 전문가 위원회, CEACR)는 1998년 ILO의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 협약)에 대하여 “일본에 의한 협약 위반이 있었음이 명백”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전문가위원회는 사건에 대하여 구체적인 구제조치를 명령할 권한이 없지만 2000년에 “피해자들의 연령과 급속한 시간의 경과를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과 정부에 모두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이들의 청구들에 대응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명하였고, 2012년에는 일본정부가 “사건의 심각성과 장기에 걸쳐있다는 성격을 감안하여 피해자들과 화해를 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계속할 것과, 지체 없이 산업강제노동과 군대에 의한 성노예제로 인한 고령의 생존 피해자들이 제기한 청구에 응답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요망하는 확고한 희망”을 피력한 바 있다. 이후에도 전문가위원회는 일본정부에게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너무도 오래 끌고, 뒤늦은 것이기는 하지만 원고들에게 조금이나마 배상을 하고, 그 동안의 고통과 피해를 치유하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과거 피고회사에 강제동원 된 피해자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국외동원 피해자와 연인원 500만 명이 넘는 국내동원 피해자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2004년 한국의 특별법에 따라 진행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조사로 피해자 인정과 그에 대한 지원금 지급 등 보상이 한국정부에 의해 실시되었지만 여전히 강제동원 피해문제는 한일 간에 해결되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자리한다. 현재 미쓰비시중공업과 후지코시 등 일본의 기업들에 대한 다수의 소송이 한국법원에 제기되어있는 상태이다.

1030-13. 판결의 이행 문제

이번 판결로 원고들이 승소하였다고 하여 이들이 곧바로 배상금을 받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피고 신일철주금이 이 판결에 승복하고 판결이 명하는 대로 원고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원고들은 또다시 피고회사의 재산을 찾아서 판결을 강제집행하여야 하는 지난한 길을 걸어야한다. 벌써부터 일본에서는 이 사건을 가지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느니 재판과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협박성 발언들도 들린다.

또한 이번 판결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금전의 지급만으로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배상의 권리가 충족된다고도 할 수 없다. 국제인권법에 따르면 강제동원과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은 진상규명, 책임자의 공식 사죄, 피해배상, 피해자의 추모와 기념, 역사교육, 재발방지 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원고들은 그 동안 피고회사 측의 선의를 기대하며 판결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가압류절차를 밟지 않았다. 피고회사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성실히 이행해야할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의 차원에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사죄 등 필요한 조치들을 다하여 강제동원문제의 해결을 위한 훌륭한 본보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는 비단 이번 사건의 피고인 신일철주금만이 아니라 원고들의 강제동원에 관여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따져 물을 것이 필요하고, 한국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4.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제들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단초를 연 이번 판결을 충실하게 집행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남은 강제동원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필요한 국내적, 국제적 조치들이 뒤따라야한다는 점이다.

비단 이번 소송의 원고들에 국한되지 않는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제하 모집, 관알선, 징용 등의 명목으로 사기와 기타 강제적인 방법에 의하여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고향을 떠나 해외인 일본으로 끌려가 일방적으로 노동을 강요당하고 가혹한 대우를 수년 간 견뎌와야했다. 강제노동 또는 노예적 노동의 피해자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들은 애타게 그리던 조국으로, 고향으로 서둘러 돌아가려던 한편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또한 주목하고자 한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들이 일본에 진주하기 전과 후는 물론 지금까지도 일본정부와 전쟁기업들은 이들 피해자들의 피와 땀에 대한 사죄나 배상은커녕 명목적인 임금과 강제저축 등 주어야 할 돈마저 주지 않고 자료를 소각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였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피와 땀으로 침략전쟁을 계속했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돈으로 전후부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더욱이 최근 일본정부는 군함도 등 피해자들이 일했던 강제노동의 현장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성공하고, 피해자들이 일본의 전쟁노력에 ‘지원’한 것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지경이다.

우리는 또한 1945년부터 70년이 넘는 지금까지 계속된 이들의 정당한 요구가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태는 이번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강제동원재판에 대한 청와대와 외교부 및 사법부의 불법한 개입이 상징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 2012년과 오늘 대법원은 개인의 청구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없어진 게 아니라고 확인하였다. 이로써 이제라도 한국정부는 수백 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하여 외교적 보호에 나서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2011년 8월 30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원폭피해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하여 일정한 외교행위에 나서야 할 헌법상의 의무를 진다고 하였다. 한국정부가 지금에라도 피해자들을 위한 외교적 보호에 나서지 않으면 이들의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국익과 경제발전을 명분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짓밟은 가운데 청구권협정을 체결하고 피해자들의 모든 권리가 소멸되었다는 일본정부의 논리를 받아들였던 과거의 잘못이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사건을 통하여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이번 판결을 시작으로 일제의 불법한 지배와 강제동원의 피해자들 역시 진정한 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정의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은 요구를 하고자 한다.

요 구 사 항

신일본제철은 이번 판결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사죄와 추모 등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을 수립하라!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사법농단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함은 물론 그 동안 재판의 지연과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원고들에게 사죄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라!

일본정부는 이번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보여주고 있듯이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 규명, 유해와 유골 반환, 공식 사죄, 피해배상, 추모와 기념, 역사교육, 재발방지 등 피해구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즉각 나서라!

한국정부는 그 동안 강제동원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이번 사건과 현재 법원에 계류된 사건들뿐만 아니라 모든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태와 일본정부와 관련 기업들의 책임을 묻고, 아직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하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사망한 피해자들의 유해와 유골의 수색과 봉환,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영혼조차 귀환하지 못한 식민지병사로써 전쟁터에서 죽음을 강제 당했던 피해자들의 문제와 해방 후 피해자들의 요구가 어떻게 좌절되었는지의 과정에 관한 조사를 포함하여 일제하 인권피해자들을 전면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외교적 보호에 나서고 필요한 국내외적인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조속히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라!

2018.10.30.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평택원폭피해자2세회・평화디딤돌・포럼 진실과 정의・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합천 평화의집・흥사단・1923한일재일시민연대・KIN지구촌동포연대


다운로드   [판결문: 대법원 2018.10.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수, 2018/10/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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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p><br></p>

<p>그동안 꽁떡 어플이랑 채팅사이트 여러개 쓰면서..</p>

<p>나름 어디가 꽁떡하기 좋았는지 정리해 볼겸 끄적거려봄.</p>

<p>&nbsp;</p>

<p>&nbsp;</p>

<p>1. 달*한**</p>

<p>&nbsp;</p>

<p>실시간 다수 매칭이라서 경쟁 타야함 막판에 긴장감 오짐&nbsp;</p>

<p>처음이 어렵고 살아남으면 이후로는 수월함</p>

<p>요즘은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새로운 남여 유입이 없어보임</p>

<p>&nbsp;</p>

<p><br></p>

<p>2. ㄷ단*</p>

<p>&nbsp;</p>

<p>한창 랜덤채팅 인기탈때 흥했던 곳으로 홈런후기도 많았고</p>

<p>나같은 평민들도 이곳에서 꿀 많이 빨았음 최근에 다시 깔아봤는데&nbsp;</p>

<p>사람도 없고 조건글로 넘쳐난다. 쪽지 보내고 기다리다 보면 간혹&nbsp;</p>

<p>월척이 뜨기는 하는데 여유 시간 많을때 해야함 강태공들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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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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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꽁떡 어플이랑 채팅사이트 여러개 쓰면서..

나름 어디가 꽁떡하기 좋았는지 정리해 볼겸 끄적거려봄.

 

 

1. 달*한**

 

실시간 다수 매칭이라서 경쟁 타야함 막판에 긴장감 오짐

처음이 어렵고 살아남으면 이후로는 수월함

요즘은 심사가 까다로워져서 새로운 남여 유입이 없어보임

 

 

2. ㄷ단*

 

한창 랜덤채팅 인기탈때 흥했던 곳으로 홈런후기도 많았고

나같은 평민들도 이곳에서 꿀 많이 빨았음 최근에 다시 깔아봤는데

사람도 없고 조건글로 넘쳐난다. 쪽지 보내고 기다리다 보면 간혹

월척이 뜨기는 하는데 여유 시간 많을때 해야함 강태공들이

많으니 월척 톡아이디 받으면 곧바로 다른쪽으로 이어가야함

 

 

3. 슈**ㅌ

 

여긴 작년에 핫 했음 이메일로만 가입하고 먼저 접속한 사람을

밀어주는 매칭 방식이라서 일반 랜덤 방식이랑 확실히 틀려 가끔

재미 보는데 기다리기 짜증나면 기본 택시비 정도로 만날 수 있음

 

 

4. 쎄**

 

최근에 누가 기혼녀 만난 후기썰 올려 유명세 탄 곳으로

짧은 거리순으로 먼저 매칭돼서 경쟁타며 시간뺏길 염려가 적음

요즘 유행하는 채팅이고 만나서 꽁떡하기까지는 여기가 가장 쉽다

조건거는 일부 생계형 여성들 차단하고 대충 쪽지만 몇개 날려도

바로바로 답장옴 의외로 오전에도 많고 여자들도 찾기 귀찮으면

가까운 거리순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기다리면 쪽지도 먼저 온다

 

(좌표: http://bit.ly/2MGyBQ5 (PC 가능))

 

 

지금 대학생들 공강 많아서 사람도 많고 나는 4번 같은 경우가

귀찮게 설치 안해서 좋고 목적이 확실한 애들로 걸러져 있어서 쉽다

간혹 근거리에 30대 후반이 보이기는 하는데 지금은 들어가서 근거리

접속자만 봐도 20대 여자가 더 많다는걸 확실히 알 수 있다

 

목, 2018/11/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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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 2018/11/01- 09:01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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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和華之證人之兵役拒否

 

無邦無百姓(무방무백성)

此理忽皆忘(차리홀개망)

背族焉容忍(배족언용인)

刑懲亦至當(형징역지당)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 거부

 

나라가 없으면 백성도 없는 것을

이러한 이치를 문득 다 잊었구나

민족 배신함 어찌 참고 용서하랴

형벌로 징계함 또한 썩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나라 없는 백성 있냐 이 이치를 잊었구나

민족 향한 배신 행위 어찌 참고 용서하랴

형벌로 징계하는 것 그 또한 썩 마땅하다.

 

*耶華: ‘여호와’의 음역어(音譯語) *背族: 자기 민족을 등지고 배반함 *容忍:

참고  용서함  *刑懲: 형벌을  주어서  징계함  *至當: 이치에  맞고  지극히  당연함.

 

<이우식 지음>

목, 2018/11/01- 12:2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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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役拒否及大法院之無罪判決

 

最優先義務(최우선의무)

拒否此誰何(거부차수하)

大法云無罪(대법운무죄)

愚氓歎息歌(우맹탄식가)

 

병역 거부와 대법원의 무죄 판결

 

가장 앞서 이행할 의무이거늘

병역을 거부하니 이 누구인가

대법원에서 죄 없다 운운하니

愚民은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時調로 改譯>

 

최우선 의무이거늘 거부하니 누구인가

이 나라 최고 법원이 죄 없다 운운하니

오호라! 못난 백성은 탄식 노래 부른다.

 

*最優先: 어떤 일이나  대상을 특별히 다른  것에 비하여 가장 앞서서 문제로

삼거나  다룸  *誰何: 누구  *大法: 대법원  *愚氓: 우민(愚民).  어리석은  백성.

 

<2018.11.2, 이우식 지음>

금, 2018/11/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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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동북아역사재단서 개최…”일본 전역 활동가들 모여”

1102-1

▲ [70년 만의 귀향] 안장되는 유골
(파주=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일본 홋카이도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추모 및 유골 귀향 추진위원회’ 봉환단이 2015년 9월 2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서울시립묘지에서 115위 유골을 안장하고 있다. 2015.9.20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실태를 짚고 봉환 등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국제심포지엄이 6일 오후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에서 열린다.


재단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이러한 내용의 심포지엄을 연다고 1일 밝혔다.


심포지엄에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홋카이도, 오키나와, 야마구치, 오사카, 이와테 지역 시민단체 등에서 조선인 유골 실태조사와 봉환을 위해 노력하는 인사들이 참석한다.


재단은 “일본에서 조선인 유골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지역 거의 모든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부 개회식에 이은 2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현황’을 살펴보는 자리다.


남상구 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하수광 사무국장·니시자와 기요시, 이와부치 노부테루 태평양전사관 관장이 발표에 나선다.


남 소장은 “유골문제는 식민지 피해가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북한과 일본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유골을 전부 봉환하지 못하더라도 사망 경위와 유골 실태를 유족에게 설명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밝힐 예정이다.


3부는 시민 활동가들이 조선인 유골 실태를 조사·발굴하고 봉환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구시켄 다카마쓰(가마후야), 오바타 다이사쿠(물비상(水非常)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 우에다 게이시(전몰자 유골을 가족 품으로 연락회)가 발표한다.


4부에서는 종합토론을 통해 남북한과 일본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시민단체(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강제동원문제해결과대일과거청산을위한공동행동)와 종교 단체(통국사, 유골봉환종교인시민연락회의), 동북아역사재단,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email protected]

<2018-11-01>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 유골문제 해결 논하는 심포지엄 열린다

금, 2018/11/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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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모집 응한 것…’징용공’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
“식민지 압제下 日정부 주도로 모집…강제동원 부인은 ‘본질 흐리기'”

1102-20

▲ 일제 강제징용 13년만에 결론(CG) [연합뉴스TV 제공]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징용 피해자를 지칭하며 사용했던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꿔 부르며 징용의 ‘강제성’을 희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강제노동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동원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국회에서 기존의 ‘징용공’이라는 단어 대신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의 국가총동원령법의 국가징용령에는 모집과 관(官)알선, 징용이 있었는데, 이번 재판의 원고는 모집에 응했다고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전날 관련 부처들에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일본어로 ‘징용’을 의미하는 ‘조요'(徵用·ちょうよう)는 한국어 ‘징용’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일정한 일을 시키는 것(쇼가쿠칸<小學館> 사전)을 뜻한다

1102-21

▲ 아베 “징용소송 韓판결,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판단”
(도쿄 AFP/지지통신=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0일(현지시간)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판결 직후 도쿄 총리 관저에서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한 데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email protected]

아베 총리의 발언은 대법원 판결의 원고 4명이 형식상 ‘징용’이 아닌 ‘모집’에 의해 일본에 건너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징용 피해자들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고인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은 가운데 모집을 했고, 당시가 군국주의 일제의 압제가 극에 치닫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 동원임을 부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원고 이춘식 씨는 대전 시장의 추천을 받아 보국대로 동원돼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사실상 감금 당한 상태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처음 6개월간은 외출도 하지 못했고 임금은 저금해준다는 말만 듣고 구경도 못했다. 헌병들은 보름에 한번 노역장에 와서 인원을 점검했다.

상황은 야하타 제철소에서 노역한 다른 원고 김규수 씨도 마찬가지였다. 군산부(지금의 군산시)의 지시를 받고 모집돼 일본에 온 그는 일체의 휴가나 개인 행동을 허락받지 못한 채 임금도 못받고 노역을 했다. 그는 도주하다 발각돼 7일간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1102-22

▲ 대법, 13년 만에 일본기업 강제징용 배상책임 확정
(서울=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2014년 사망한 여운택 씨 등 일제 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후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사진은 일본 탄광 징용 피해자 조선인들. 2018.10.30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자료사진] [email protected]

오사카 제철소에서 일한 여운택 씨와 신천식 씨는 ‘한반도의 제철소에서 기술자로 취직할 수 있다’고 기재된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했지만 실제로는 죽도록 노역만 해야 했다.

한달에 1~2회 외출만 허용됐고 2~3엔의 용돈만 지급받고 월급은 받지 못했다.

원고들의 재판을 지원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아베 총리의 발언이 대내외적으로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징용 피해자들이 실제 노역 현장에서 겪은 일은 공고 내용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며 일본 정부가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팀장은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 총독부 지시에 따라 모집이 행해졌다”며 “아베 총리가 본질을 흐리게 하려고 새로운 논란거리를 끄집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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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강제징용 전시관인 ‘단바망간기념관'(丹波 マンガン 記念館)의 전시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email protected]

<2018-11-01> 연합뉴스

☞기사원문: 돈도 못받고 맞으면서 일했는데…’징용 강제성’ 없다는 日아베

금, 2018/11/0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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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재단서 국제심포지엄…”공동 조사·발굴·감식 이뤄져야”

1106-3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 2018.1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해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 실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대규모 학술 행사가 6일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는 근대사 연구자와 유골 송환을 위해 노력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가했다.

재단에 따르면 해외에서 사망한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은 약 2만2천명에 달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정부를 통해 들어온 유골은 2천여 위에 불과하다.

강제동원으로 한국을 떠났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외국에 남은 노동자 유골 수는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 4월 한국에 제공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일본 전역에 산재한 시설 339곳이 조선인 유골 2천798위를 보관 중이지만, 신원이 명확하게 확인된 유골은 167위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은 2004년 한일 정상이 합의해 2008년부터 2년간 423위가 조국으로 돌아와 국립 망향의동산에 안치됐으나, 이후 큰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민화협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해 8월 조선인 유골 송환을 위한 남북일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북 민화협은 지난 3∼4일 금강산에서 만나 유골 송환 공동추진위원회를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추진위원회로 확대하는 안을 논의하고,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룰 공동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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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 위한 국제심포지엄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일본측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2018.11.6

심포지엄에서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이 인권과 존엄의 문제이자 식민지배 청산을 위한 과제이며, 남·북·일 정부와 민간단체가 힘을 합쳐 풀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 특히 강조됐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은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인 유골의 행방에 대한 조사와 봉환 책무를 방기한 것은 비인도적 처사”라며 “유골 문제는 식민지 피해가 아직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원됐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남 소장은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유골을 봉환하지 못해도 사망 경위와 유골 실태에 대해 유족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도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이 적지 않고, 여러 유골이 합해진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북이 이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남북 정부와 남북 민화협, 일본 시민단체로 구성된 위원회가 단일 창구를 이뤄 일본 정부와 교섭하고, 사망자 명부와 유골 실태 자료는 남·북·일이 공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해외 유골 조사와 봉환에 남과 북이 참여하도록 일본 측에 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유골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에 의해 보장되는 인권과 관련된다”며 “같은 일본인이라며 동원했다가 패전으로 방치하는 이율배반적 권리 침해 상태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골 문제를 다루면서 일관해야 할 원칙은 사망자에 대한 존중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은 그들의 죽음을 성찰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연락회’ 활동가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씨는 동아시아 국가와 미국 정상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전쟁 피해자 유골에 대한 공동 조사와 발굴, 감식을 추진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동북아 공동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사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유골 문제는 해결이 더디고 어렵겠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11-06>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유골송환은 존엄 문제…남북일 협력 필요”

화, 2018/11/0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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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단체 및 졸업생 등 총장후보자 토론회 앞서 기자회견… “3.8민주의거 정신 훼손 말라”

1107-10

4.19혁명의 불씨를 당겼던 ‘3.8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에 맞춰,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배재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과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대전충남4월혁명동지회’ 등은 7일 오후 대전 서구 배재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배재대학교는 하루 빨리 이승만 동상을 자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는 우리 대전지역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인 ‘3.8 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며 “이는 우리 지역이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하여 정면으로 맞서 싸운 4.19 혁명의 선봉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자유당독재와 부정부패에 저항했던 대전지역 학생시위다. 3월 8일 대전고학생 1000여 명과 10일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 등 총 1600여 명의 학생들이 자유와 민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대전지역 대표적인 민주의거다.

그동안 대전시에서는 3.8 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지정 위해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결성, 대전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전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된 것.

그럼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배재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것은 대전시민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4.19 혁명에 의해 독재자라는 역사적 평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자 일부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대학교로서는 유일하게 배재대학교에 이승만 동상이 서 있다”며 “심지어 두 번이나 철거되었던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웠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배재대는 즉각 자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승만 동상 철거는 대학 구성원은 물론, 대전시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것이 독재정권에 의롭게 맞서 싸웠던 3.8 민주의거의 대전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 그리하여 이 땅에 정의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도록 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규탄발언에 나선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은 “이승만은 친일파를 앞세워 부정부패를 저지르다 온 국민의 저항으로 쫒겨 난 ‘독재자’다. 4.19혁명으로 그는 이미 역사적 단죄를 받았다”며 “배재대는 더 이상 대전지역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을 욕보이는 짓을 그만 두어야 한다. 즉각 이승만 동상을 철거하라”고 밝혔다.

또한 김영진 독립유공자유족회 대전지회 간사는 “이승만은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는 물론, 자신과 생각이 다를 것이라는 판단 하나로 보도연맹원 등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을 그 어떤 법적절차도 없이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간사는 “이런자의 동상이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교에 세워둔다는 것은 배재대 학생과 졸업생은 물론, 대전시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처사”라고 배재대의 자진철거를 촉구했다.

배재대 졸업생도 규탄에 나섰다. 2001년 배재대를 졸업한 김인재씨는 “독재자의 동상을 세워놓고 대체 학생들에게 무엇을 배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의 독재를 본받으라는 것인지, 그의 반헌법적 범죄행위를 존경하라는 것인지, 대체 그 의도를 모르겠다”며 “배재대학교는 대전시민과 학생, 졸업생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진리의 동산을 더 이상 더럽히지 말라”고 말했다.

한편, 배재대학교는 이날 오후 새로운 총장 선출을 위해 후보자 6명이 참여,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총장후보자 초청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2018-11-0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여전히 이승만 동상 남아 있는 배재대… “자진 철거해야”

수, 2018/11/0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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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지원단체 “공동대리인단 꾸려 내년 3차 소송 진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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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승소 판결이 내려진 10월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슬찬 기자

지난달 30일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고가 원고들에게 1억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을 확정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피해자들이 일본에 첫 소송을 제기한 건 1995년, 한국에 첫 소송을 제기한 건 2005년이다. 그때로부터 무려 13년이 지났다. 시민단체들은 “이 재판의 싸움엔 긴 역사가 있다”고 강조하며, 이 재판 결과로 피해자들이 겪어온 일생의 고통이 해소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보도하며 ‘배상금’만 부각하는 일부 언론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1억’을 강조하며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에게 소송을 제안하는 ‘소송 브로커’가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주최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소송 변호단 및 한·일 사무국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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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10월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날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강제징용 판결 의미를 왜곡하는 일부 인사들의 발언, 언론 보도의 행태를 지적하며 “함부로 말씀하시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공동대표는 30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을 도와왔다. 그는 “이 소송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제가 그 현장에 있어 잘 안다. 그런데 승소 판결 뒤 언론에 나오는 말들이 모두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했단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수십 년간 소송을 진행했는지 아픔, 슬픔 등의 마음은 알아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또, 이 공동대표는 20년간 진행해 온 소송을 두고, ‘해당 재판 결과로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처럼,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에서 일한 모든 사람들이 배상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일각의 주장을 비판했다.

이날 그는 일제강점기 신일철주금에서 강제 노역을 한 피해자들의 이름이 담긴 두터운 파일 13개를 보여주었다. 지난 20년간 소송을 진행하며 강원도, 충청도 등 전국에서 만난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료였다. 이 대표가 한 명, 한 명 만난 피해자들은 총 20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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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신일철주금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파일ⓒ민중의소리

공동대리인단이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를 위한 소송 이어간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소송을 지원하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에는 대법원 판결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이날 간담회에서, 피해자를 대리해 온 변호인단과 단체들은 향후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보장할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우선, 이들은 전국을 다니며 올해 안에 피해자 유족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해 이번 대법원 판결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알리고,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지원할 계획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에서 조사한 피해자 실태 자료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지역별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 소송에 대한 의사를 확인해, 소송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향후 소송은 변호사 개인이나 단독 법무법인이 아니라 ‘공동 대리인단’을 꾸려 진행한다. 앞으로 진행될 소송은 2005년 1차 소송, 2012년 2차 소송에 이어 ‘3차 소송’으로 명명된다. 3차 소송 소장 접수는 내년 4월 이전에 이루어질 계획이다.

임 변호사는 “지난주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 브로커’들이 1억 원이라는 점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며 ‘가족 중에 강제징용 피해자가 있다면 소송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적절하지 않은 소송 형태로, 피해자들을 또다시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며 “충분한 정보 제공, 공동대리인단 구성을 통해 안정적으로 피해자의 법에 대한 접근권을 실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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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주최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소송 변호단 및 한·일 사무국 기자간담회’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민중의소리

지원단체-대리인단, 가까운 시일 내 신일철주금 본사 방문 예정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 단체와 변호인단은 가까운 시일 내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해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할 예정이다.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야노 히데키 사무차장은 신일철주금이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기업행동 규범’ 중 ‘규칙을 준수하고 높은 윤리관을 갖고 행동하겠다’(제1항목),‘각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각종 국제 규범·문화·관습 등을 존중하며 사업을 하겠다’(제8항목)는 부분을 언급했다. 그는 “이런 행동 규범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면, 일반적 상식에서 봤을 때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시현 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은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했다. 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노예와 같이 생활하며 몸이 망가지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들에겐 육체적 손해, 정신적 피해가 있다”며 “가해자가 져야 할 책임 중 배상은 일부에 불과하다. 사죄, 책임 인정 등에 대한 부분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가 아닌 특정 기업에 책임을 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신일철주금을 포함한 다른 광역 기업들이 어떻게 과거사 문제와 대면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다할 것인지 이제서야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8-11-07>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강제징용 피해자의 수십 년 고통보다 ‘배상금 1억’에 집중한 사람들

※관련방송

☞KBS: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소송 브로커 우려…“정식 대리인단 구성할 것”


☞YTN: “강제 징용 피해자 모집…추가 소송 예정”


※관련기사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소송, 한일 공동 대리인단 구성한다

수, 2018/11/0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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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보도자료]

제12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언론부문 원희복 경향신문 출판국 부국장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친일인명사전』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2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14 사회·언론 부문 5 등 19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10월 12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 소장을, 언론부문에는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를 제12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였다.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 김동명 국민대 교수,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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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

학술부문 수상자인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은, 1990년대 초부터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참여해온 활동가이자 2004년부터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관으로 과거사 청산에 참여한 연구자이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미결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해산된 뒤에는,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산하 인권평화연구소 소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의 전모를 밝히는 지난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수상저서인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은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1백만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의 실태를 총체적으로 조명한 노작이다. 이 책은 민간인학살의 양상을 유형화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실화해위원회가 미처 수습하지 못한 피해상황도 정리해 담았다. 신기철 소장은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외에도 국가폭력과 전쟁범죄를 줄기차게 추적하여 무려 7권에 이르는 역저를 내놓았다. 심사가 시작될 무렵 출간된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는 비록 심사과정에서는 거론된 바 없지만, 금정굴 학살을 시대적 배경에서부터 사건의 전개와 은폐과정, 기억하기와 해법에 이르기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한 방대한 저작이다. 이 모든 성과들이 저자가 말하듯 ‘죽은 자들을 위한 산 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거둔 놀라운 결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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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복 경향신문 선임기자

언론부문 수상자인 원희복 경향신문 출판부국장은, 오랜 기간 경향신문에 재직하면서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과거사 청산을 위해 헌신해온 중진 언론인이자 저술가이다. 그는 독특하게도 역사 전문 기자를 자임해왔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뭇 기자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즐비하건만 역사 그중에서도 과거사 분야와 시민운동이 그의 주 관심사다. 그는 역사와 진실에 대한 망각이 오늘의 부조리한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이 원희복 기자가 한국현대사의 사건들을 추적 조명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작업은 인물탐구와 역사르포로 대별되는데, 인물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고 역사를 조명하여 인물을 드러내는 형태로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이루어져 왔다. 2014년부터 〈주간경향〉에 연재하고 있는 ‘원희복의 인물탐구’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을 통해 역사정의 민주화 평화통일 등 시대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는 데 비해,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한·중 항일혁명가 부부 김찬·도개손 평전』은 아직 그늘에 가려져 있는 역사의 사각지대를 추적 복원하고 있다.

2015년 주간경향에 연재한 ‘광복 70년 역사르포’는 서대문형무소에서부터 진도 팽목항까지 한국현대사의 주요 현장 40여 곳을 발품을 팔아 답사하고 사료를 발굴하여 재구성한 탐사보도이다. 이 기획은 해방에서 4·16참사에 이르는 70년간에 일어난 주요 역사적 사건들의 의미를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출간한 『촛불민중혁명사』는 촛불항쟁의 연원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그 역사적 성격을 정리 분석한 주목해야 할 역작이다. 특히 항쟁 발생의 주원인으로 박근혜 정권의 무리한 역사전쟁 도발을 꼽고 있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시상식은 11월 9일(금) 오후 7시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제12회 임종국상 시상식
때 : 2017년 11월 9일(금) 오후 7시
곳 : 한국언론회관(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문의 :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 / www.minjok.or.kr


※수상자 약력

신기철

주요경력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남
1983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입학
1985년 인천에서 노동운동
1989년 영등포 산업선교회 노동자학교 교사
1990년 서울남부금속 노동조합
1995년 ~ 1998년 공단서점 대표
1998년 ~ 2003년 고양시민회 사무국장
2004년 1월~12월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팀장(전문위원)
2006년 4월 ~ 2010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별정직 사무관)
2013년 5월 ~ 2018년 현재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저서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 인권평화연구소, 2018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인권평화연구소, 2017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인권평화연구소, 2016
《멈춘시간 1950》, 인권평화연구소, 2016
《전쟁범죄》, 인권평화연구소, 2015
《국민은 적이 아니다》, 헤르츠나인, 2014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 자리, 2011

원희복

주요경력
1990년∼현 : 경향신문 기자-차장-부장(전국부장, 편집장)-선임기자/부국장
1999년∼현 : 민족일보진상규명위원회 홍보위원장-민족일보기념사업회 이사
2006년 : 청와대 국가안전보장자문회의(NSC) 자문위원
2006년 : 민주언론시민상 본상 수상(민족일보 사건 명예회복)
2012년 : 대통령 표창(재난보도 공헌)
2012년 :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2018년 ~ 현 : 인사혁신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자문위원
2018년 ~ 현 :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
2018년 ~ 현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족화해〉 편집인

저서
《촛불민중혁명사》, 말, 2018
《르포히스토리아-서대문형무소에서 팽목항까지》, 한울아카데미, 2016
《사랑할 때와 죽을 때-한·중 항일혁명가부부 김찬·도개손 평전》, 공명, 2015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1994

※역대수상자 1108-20

목, 2018/11/0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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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 “우발적 광기가 아닌 이승만의 조직적 대량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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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인권평화연구소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있는 고봉로에서 가장 높은 곳인 개미고개엔 야트막한 황룡산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주민들이 자주 오르는 산책 코스다. 험하지 않은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깊이가 18m가량 되는 수직굴이 나온다. 이곳은 일제시대 금을 캐기 위해 만들어진 금광이지만 지금은 폐광이 된 곳이다. 원래 깊이는 50m가량이었지만 무너지면서 얕아졌다. 이곳을 사람들은 황금을 뜻하는 금(金)과 우물을 뜻하는 정(井)을 써서 ‘금정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곳 ‘금정굴’에선 지난 1995년 9월 집단으로 파묻힌 유골이 다리뼈와 머리뼈 등이 마구 뒤엉킨 모습으로 발굴됐다. 유골 주변에선 시체들을 묶은 통신선과 탄피도 쏟아져 나왔다. 발굴된 유해는 153구였다.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민간인들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 후퇴했던 이승만 정권이 그해 9월 서울과 고양 일대를 수복했다. 국민을 버린 채 자신만 피난에 나섰던 이승만 정권은 경찰과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인민군부역자를 처단하겠다면서 민간인들을 부역자로 몰아 재판도 없이 학살했다. 그 과정에서 고양 일대의 수많은 민간인, 나이 어린 중학생은 물론, 항일독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부역자 혹은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뒤 금정굴에 암매장됐다. 유가족들은 자신들도 빨갱이로 몰릴까 두려워 학살의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숨죽여 지내왔다. 그러다 용기를 내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45년간 잠들어있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 비롯된 
우발적 광기가 아니라 
이승만 독재 세력 공범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대량학살”

집단 학살의 현장이 드러난 뒤에도 유족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지난한 투쟁은 계속됐다. 모두가 외면하고, 모두가 침묵하며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 묵묵히 싸워온 이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온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고양 지역의 금정굴 사건을 접한 이후 금정굴 사건 진상규명과 나아가 전국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일해 온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 신기철 소장이다. 신 소장은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했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위원으로 일했다.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마친 지금도 금정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금정굴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고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의 시간을 기록한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를 출간했다. 그는 그동안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멈춘 시간 1950’, ‘전쟁범죄’, 국민은 적이 아니다’, ‘진실, 국가범죄를 말한다’,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을 출간하며 한국전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민간인들의 진실을 다뤘다. 한국전쟁 전후로 학살당한 민간인 1만4천343명의 명단을 수록한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시상하는 제12회 임종국상 학술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 소장은 책 ‘황금무덤 금정굴 거짓에 맞서다’에서 금정굴 학살에 대해 “전쟁 상황에서 비롯된 우발적 광기가 아니라 이승만 독재 세력 공범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대량학살”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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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10월 금정굴 학살 현장에서 발굴된 유골들ⓒ인권평화연구소

“그동안 좌우 갈등이라고 
정리해온 개념 역시 국가범죄를

은폐하는 또 다른 거짓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확인했다”

이 책 1부 학살에선 해방과 식민 과거 청산의 실패, 분단과 독재 체제의 고착, 전쟁 그리고 금정굴 학살을 통해 고양지역에서 살아가던 민중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소개하고 있다. 1950년 고양경찰서가 수복되고 치안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이 연행됐다. 끌려간 사람 대부분은 부역 의심을 받는 사람들의 가족이었다. 이후 20일 동안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 의용경찰대, 태극단원 등 60여 명이 번갈아 가며 학살을 저질렀다. 고양 금정굴 사건의 마지막 날인 10월 25일 20명이 학살당하는 현장에는 고양경찰서장까지 직접 가담했다. 금정굴은 고양경찰서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야산에 위치에 있었으므로 30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처음에는 가장 빠른 길인 일산시장 관통로를 지나갔는데, 이를 목격한 주민들이 많아지자 그다음부터는 목격자가 적은 철길로 우회했다. 나중에는 트럭을 이용하여 금정굴 현장으로 이송하기도 했다. 총살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는 경찰관은 이무영 서장을 비롯해 12명이며, 의용경찰대원은 이진 등 26명, 태극단은 단장 이장복 등 20여 명이었다. 학살당한 이들의 구체적인 사례와 국가 기관의 개입과 활동은 이 학살이 단순히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국가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진실을 은폐했다. 학살이 일어난 1950년에 민간인 학살 문제가 제기돼 관련한 재판이 있었다. 의용경찰대원 25명, 시국대책위원 2명, 경찰관 여러 명이 조사를 받았고 11월8일에는 금정굴 현장검증까지 이루어졌다. 이중 25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며 11월 20일 8명에 대해서만 공판청구서를 작성하고 나머지 17명을 석방했다. 이들 8명에 대한 재판은 12월 22일 열렸다. 재판 결과 사형 2명, 징역 15년 2명, 징역 10년 1명, 형 면제 3명이었다. 이 재판을 통해 금정굴 학살은 은폐되고 전쟁범죄자였던 이승만 정부는 법의 수호자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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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 일산서구 금정굴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신기철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소장ⓒ권종술 기자

이런 과정은 “그동안 좌우 갈등이라고 정리해온 개념 역시 국가범죄를 은폐하는 또 다른 거짓 이데올로기에 불과했음을 확인”하게 하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 기록을 통해 그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금정굴 학살의 진실, 즉 국가 권력이 어떻게 이를 저질렀고, 왜곡, 은폐 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안에서
적으로 취급되었던 항일운동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민주주의자,
민중혁명가에 대한 억압의 시대도
절반은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남은 절반은 민중 스스로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때 완성될 것이다.
거짓의 시대를 끝내자.”

2부 진실에선 무려 43년이 지나서야 시작된 진실 규명 활동과 유해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삭살 사실을 부인하는 국가와 지역 사회의 거짓 그리고 이에 대한 끝없는 투쟁의 과정을 소개했으며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진실규명 활동과 중단, 그리고 후속조치 등 남은 과제를 위한 현재의 투쟁을 정리해 담고 있다. 금정굴 사건에 대한 은폐 시도와 학살에 가담한 태극단 활동에 대한 미화 조작은 전두환의 집권 이후 강화됐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태극단의 활동이 반공 교재의 소재가 되어 경기도 내 각 학생들에게 보급됐고, 태극단원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1983년 ‘태극단 투쟁사’를 발간했다. 1984년에는 국방부 영화제작소에서 ‘태극단’ 활동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1994년 전쟁기념관 2층에는 수복 전후 태극단원들이 활동한 흔적들이 전시돼 있다.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각종 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금정굴 학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사업에 맞서 아직도 “학살이 아닌 처형”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등 학살의 가해자들은 여전히 학살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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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지역 보훈단체 회원들은 지난 8월 고양시의회 의원 사무실 복도에서 ‘고양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반대하며 농성을 벌였다. 보훈단체의 반대에도 8월31일 고양시 의회 본회의에선 조례안이 시 의원 33명 가운데 찬성 24명, 반대 8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조례안이 만들어진지 8년 만이었다.ⓒ금정굴인권평화재단

신 소장은 말한다. “금정굴 사건은 부역혐의 사건이 개인들 사이의 감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체계적인 공격 때문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금정굴 사건의 진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좌우 대립, 또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남과 북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대립의 진짜 원인은 우리 사회 안의 거짓, 즉 국가범죄의 진실을 숨기는 것에 있었다.”

이 책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산 자들의 활동 기록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은 왜 자기 국민들을 학살했을까? 부모라는 이유로, 형이나 동생이라는 이유로 죽여야 했을까?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여야 했을까? 이 ‘평범한 악(evil)’을 숨겨 온 대한민국은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찾아 떠난 28년의 여정은 우리 사회에 던져진 여러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신 소장은 진실을 찾기 위해 떠났던 여정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한민국 안에서 적으로 취급되었던 항일운동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민주주의자, 민중혁명가에 대한 억압의 시대도 절반은 끝나가고 있는 듯하다. 남은 절반은 민중 스스로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갈 때 완성될 것이다. 거짓의 시대를 끝내자.”

<2018-11-05>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새책]“대한민국은 왜 자기 국민들을 학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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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1/0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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