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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말?]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교수는 3명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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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말?]국정화 반대하지 않는 근현대사 전공교수는 3명 뿐

익명 (미확인) | 수, 2015/11/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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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근현대사 부분입니다. 과연 근현대사 부분의 집필은 누가 맡게 될까요?

뉴스타파 취재진이 지금까지 전국 일반대학의 역사 전공 현직 교수들의 국정 교과서에 대해 밝힌 입장을 취합해 확인한 결과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단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스타파가 국정 교과서 반대 선언을 하거나 집필 거부 선언을 한 역사 전공 현직 교수들의 명단을 바탕으로 전국 90개 일반대학의 역사 관련 128개 학과와 교육부 산하 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교수 등 총 690명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 교과서 반대’나 ‘집필 거부’를 선언한 교수는 모두 537명으로 전체의 78%에 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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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연세대 사학과와 고려대 사학과, 서울대 역사교육과 등 59개 과에서는 교수 전원(301명)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 성명에 참가하지 않은 교수 가운데는 참여 의사는 있었지만 성명서를 낼 당시에 출장 중이거나 연락이 닿지 않아, 또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불참한 교수도 많아 실제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교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근현대사 전공 현직 교수 가운데 96%가 국정화 반대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교수 149명 가운데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교수는 모두 7명이었습니다. 7명을 모두 확인해 보았더니 이 가운데 4명(지수걸[공주대 역사교육과],박종린[한남대 역사교육과],박환[수원대 사학과],김영미[국민대 국사학과] 교수)은 출장이나 기타 이유로 성명에 참여하지 못했을 뿐 국정교과서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역사 전공 현직 교수 가운데 근현대사 전공 교수는 모두 73명이었습니다. 결국 근현대사 전공 현직 교수 96%(73명 가운데 70명)가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이 됩니다.

남은 3명은 건국대 한상도 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정영순 교수 등 3명입니다.

이 가운데 권희영 교수와 정영순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속해있는 한국현대사학회 소속으로 그동안 국정교과서에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건국대의 한상도 교수는 독립운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 MB 정부 때 국사편찬위 편집위원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11월 12일 한국학중앙연구원·국사편찬위원회·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한 광복70주념 기념 학술대회에서 정영순 교수와 한상도 교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국정화 반대입장을 밝히지 않은 근현대사 전공 교수 3명을 추려냈는데 그 가운데 2명이 국책기관 주최 행사에 함께 참가했다는 것은 사실 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취재진의 질문에 정영순 교수는 “집필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집필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한상도 교수도 국정 교과서 찬반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모른다”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 지난 11월 12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광복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정영순, 한상도 교수에게 뉴스타파 홍여진 기자가 국정 교과서와 집필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쯤되면 왜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교과서의 집필진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지, 왜 역사 전공 학자 이외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교과서 제작에 참여시키는지 이해가 갈 만합니다. 국편이 집필진을 현직에서 은퇴한 명예교수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을 중심으로 찾는 것도 현직 교수 가운데서는 집필자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또 교과서를 심의할 편찬 심의위원에 대해서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으로 보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측은 오는 20일까지 집필진 구성을 끝내겠다고 밝혔지만 “집필진 명단까지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국편 위원장도 교육부 장관도, 취재진이 만나 직접 물었지만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 지난 11월 12일 서울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광복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김정배 국편 위원장이 국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영상입니다.

아래의 표는 각 대학 역사 전공 교수들의 국정화에 대한 반대 현황입니다.

– 정원을 파악할 때 명예교수와 특수신분 교수는 제외했습니다.
– 공개적인 성명으로 입장을 표명한 교수 만을 집계했습니다.
– 여러 전공이 함께 있는 학부나 학과의 경우 역사 전공 교수의 숫자를 정원으로 잡았습니다.
– 누락되거나 수정이 필요한 항목에 대해서는 연락을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외에도 서울교대 사회교육과와 상명대 교양학부, 대구한의대에도 성명에 참여한 역사 전공 교수가 있었지만 정원 파악이 불가능해 #표로 표시하고 계산에서 제외했습니다.

학교 정원 반대
가톨릭관동대 역사교육과 3 0
가톨릭대 국사학과 4 3
강릉원주대 사학과 5 5
강원대 교양학부 2 2
강원대 역사교육과 5 5
강원대 사학과 6 5
건국대 사학과 6 5
경기대 사학과 5 0
경남대 역사학과 6 1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고고학 3 2
경북대 역사교육과 7 3
경북대 사학과 9 9
경상대 역사교육과 5 5
경상대 역사교육과 5 5
경상대 사학과 8 7
경성대 사학전공 3 3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역사전공 3 3
경희대 사학과 9 9
계명대 사학과 7 4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 9 4
고려대 역사교육 4 4
고려대 사학 5 5
고려대 한국사학 9 9
공주대 역사교육과 5 0
공주대 사학과 6 2
광주교육대 사회과교육 역사담당 2 2
광주대 관광경영학과,영문학과 3 3
국민대 국사학과 9 6
군산대 사학과 5 3
단국대 외국어대 역사학과 5 5
단국대 문과대 사학과 6 6
단국대 교양학부 8 5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5 1
대구교대 사회과교육과 3 1
대구대 역사교육과 4 4
대구한의대 아동복지,호텔관광 # 2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5 5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부 역사전공 3 2
덕성여대 사학과 4 4
동국대 역사교육 4 4
동국대 사학과 5 4
동국대(경주) 국사학과 4 2
동국대(경주) 고고미술사학과 5 1
동덕여대 국사학과 5 5
동아대 사학과 6 4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7 0
동의대 사학과 4 4
명지대 미술사학과 4 3
명지대 사학과 7 6
목원대 역사학과 3 3
목포대 고고학과 4 0
목포대 사학과 7 7
부경대 사학과 6 5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2 2
부산대 고고학 5 5
부산대 역사교육 6 6
부산대 사학 12 11
부산외국어대 역사관광학과 4 4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6 5
상명대 교양학부 # 1
서강대 사학전공 11 8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역사전공 3 3
서울교육대 사회교육과 # 1
서울대 역사교육과 7 7
서울대 동양사학 8 7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9 7
서울대 서양사학과 9 5
서울대 국사학과 12 11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8 8
서울여대 사학과 4 4
서원대 역사교육과 5 5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4 4
성균관대 사학과 11 10
성신여대 사학과 5 5
세종대 역사학과 2 0
수원대 사학과 4 0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8 7
순천대 사학과 5 5
숭실대 사학과 6 5
신라대 역사교육 4 4
신라대 역사문화학과 4 4
아주대 사학과 6 6
안동대 사학과 6 5
연세대 사학과 13 13
연세대(원주) 역사문화학과 5 5
영남대 역사학과 5 4
우석대 역사교육 3 2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6 6
원광대 사학과 4 3
원광대 역사교육과 5 5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3 2
이화여대 사학과 7 5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5 0
인천대 역사교육과 3 3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한국사 담당 2 2
인하대 사학과 6 4
전남대 인류학과 고고학전공 3 3
전남대 고고학,전문대학원 4 4
전남대 역사교육 6 6
전남대 사학 11 9
전북대 역사교육과 3 2
전북대 사학과 8 3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9 4
제주대 사학과 6 6
조선대 역사문화학과 7 7
중앙대 역사학과 5 5
진주교육대 사회과교육 역사담당 2 2
창원대 사학과 6 6
청주대 역사문화학과 4 3
총신대 역사교육과 4 0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역사담당 2 2
충남대 국사학과 4 4
충남대 사학과 7 7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6 3
충북대 사학과 6 4
충북대 역사교육과 6 4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8 8
한국외대 사학과 7 7
한국학중앙연구원   10 8
한국해양대 유럽학과 1 1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2 2
한남대 사학과 4 4
한남대 역사교육과 6 5
한림대 사학과 8 3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9 9
한신대 국사학과 5 5
한양대 사학과 6 4
홍익대 역사교육과 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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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네~외세는 물러가라~

화, 2018/02/13- 13:42
53
0

5000년 우리민족 역사에 우리가 이렇게 강대한적이 있었던가!!
북한에서 온갖 모진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핵무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게 사용된다는 것을 평창올림픽을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북한에서 핵무력은 남한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진정성 있게 생각된다.

실제 아베와 펜스가 평창에서 꼼짝을 못하는 모습에서
주권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지만 정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남과북이 하나로 뭉치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대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만들어낸 핵무력이 우리민족의 핵으로 될 수 있게
남과 북이 계속해서 힘을 합치길 소원해본다.

왜적을 목숨으로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지켜냈던 수많은 선조들과 이름난 이순신장군 을지문덕장군 강감찬 장군들도 하늘에서나마 크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화, 2018/02/13- 15:34
39
0

일제말 징병 찬양 글 쓰고 징병제 감사대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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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 김성수. [사진 위키피디아]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지 56년만이다.

이는 대법원이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위가 인정되면서, 정부는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취소해야 하는 상훈법에 따라 국가보훈처 요청으로 서훈 취소 절차를 밟아 이날 서훈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인촌의 서훈이 취소되면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은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하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김재호 사장과 인촌기념회 등은 2010년 “인촌의 활동에 관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일제가 조직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강제 동원된 것일 뿐”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1, 2심은 “오로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친일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2018-02-13> 뷰스앤뉴스

기사원문: ‘친일’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서훈 박탈

※관련기사

☞한겨레: ‘친일행위’ 동아일보 김성수, 건국공로훈장 서훈 박탈

☞뉴스1: ‘친일행위’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훈장 박탈

☞경향신문: 인촌 김성수, 서훈 56년 만에 박탈

☞한국일보: 인촌 김성수 훈장 56년 만에 박탈

☞서울경제: ‘친일 행위 인정’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

※참고기사

한겨레21: 김성수 서훈은 치탈될 것인가 (2005.07.01)

화, 2018/02/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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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화성=연합뉴스) 경기 화성시는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만든 독립운동 자료집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자료집. 2018.2.12 [화성시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28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집은 화성시가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콘텐츠발굴 사업에 의해 만든 것으로, , 시로부터 위탁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3년부터 3년간 화성지역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11명을 인터뷰해 4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송산 지역 3.1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홍면옥 선생의 후손 고(故) 홍진후씨, 오산노농학원 적화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른 변기재 선생의 후손 변주현·변순용씨, 장안·우정지역 3.1운동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파괴와 가와바다 순사 처단에 앞장섰던 차경규 선생의 후손 차진모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홍면옥 선생의 출옥기념 사진, 변기재 선생의 친필엽서 등 독립운동 자료 사진도 다수 발굴됐다.

화성시는 자료집을 전국 국공립대학의 도서관·박물관·연구소, 화성시 관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화성지역 독립운동 인물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인터뷰 자료로 2권의 자료집을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날 접견실에서 자료집에 참여한 후손들과 안소헌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노고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그분들의 공훈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 자료집 발간

※관련기사

☞세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신문: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아시아투데이: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 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뉴스통신: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아시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화, 2018/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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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수원시

연화장

측백실

전달자호영

총무국장 심재욱

수원시 영통구 하동 25

자료사진은 경남민언련

사랑의하모니!

수, 2018/02/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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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에 위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출마자들이 친일세력 후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데…

알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목, 2018/02/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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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임실호국원으로 이사가심을   위로 드림니다.

이수미!

김인순!

명곡을  생각하며,

총동문화체육대회에서는

ㄴㅓ의 입상  볼수 익게째.

(너거한테신세만지고   마산의료원의  그국장동상 오마이 한테도  몬디다 바따.)

 

 

일, 2018/02/18-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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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어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2일 간에는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제2학살지에 대한 4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8명의 유해와 안경, 탄두, 버클 등 3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네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산86-1번지에서 제5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5차 발굴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발굴조사 예정지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폐금광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인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최소 3명의 유해와 M1탄피 1점, 단추 등 유품을 발견하였다.

이번 5차 발굴조사지역인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없이 희생되었고, 특히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한 2014년경부터 많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의 위령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되어 왔다. 특히 이번 5차 발굴조사 예정지인 아산시 역시 2015년에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아산시 예산으로 진행되어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2016년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20대 국회는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심사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

【붙임】제5차 유해발굴조사(충남 아산시 배방읍) 자료집. 끝.

월, 2018/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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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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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2/1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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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youtu.be/UaxKw9Ndq34

화, 2018/0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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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hfv…

화, 2018/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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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R5OEl…

화, 2018/02/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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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아지매가  젊은아지매가…떡나오는기라…. 울매나 ,,,,놀래떤지,,(경상고5기밴드 나르는 동까스)

낮여기신인지,,,,67777먼지

망구내생각인데, 그쟈

성춘행 성하행 성추행 성동행 이 무언지,?

한두번도 아니고  유명문화예술인들과  일부 언론인들과

ㅇㅣㄹ부 저울사들과  피해여성들

성사회학이  모언지,,,,

칼마안들모  망구니생각일까?

아이구 콘센트 엄시모 몬사나

자작하나는 홀아비

자작하는 우리동네 노총각들

안타치는 지도층일부인사들

ㅈㅓ울사들과 민중의지팡이는 우째 해슥하는지.

오시! 언론에  대단한  빅슈!

미투와성 폭행 어는정도 며때며친지…

과연  성폭행자는 벡푸론지….

동창회때  보세!(참고사진은 경남민언련)

화, 2018/02/2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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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915년 데라우치 총독에 요청… “병력 청원 기록물 일반에 알려진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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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단설치 청원서 첫 장.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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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단설치 청원서 두 번째 장. 일본인들의 연명 뒤로 오른쪽부터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의 이름이 보인다. ⓒ 신상미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일본군 사단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거물 친일파들의 연명 청원서가 발굴됐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파가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고 전투기 등을 헌납하거나, 징병·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연설·기고문 등이 발굴된 사례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켜 줄 것을 청원하는 친일 기록물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당시에 이런 청원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연구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개인의 친일행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1910년대의 청원서라는 데 의미가 크다”라고 역사적 가치를 평가했다.

해당 문건은 친일 문제에 관심 있는 한 인사가 제공한 것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친일파 4명이 데라우치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사단 설치 청원서다. 한일강제병합 5년 후인 1915년 6월 11일에 작성됐다.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이 당시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 지주·부호들과 나란히 연명하고 날인했다.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다. 이일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민족시인 이상화의 큰아버지인데,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청원서가 그의 친일 행적에 또 하나의 근거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병영설치 은택 입으면 부지기부, 편의도모”… 적극적 유치 의사

청원서에는 “대구는 남선(조선의 남쪽)의 중간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이고, 지금 사령부와 연대본부가 설치돼 있습니다”라며 “대구의 물자 조달이 자유롭고 날씨도 비교적 좋은 데다 상수도도 완성돼 5만 명이 먹을 수 있는 물이 나오니, 대구에 병영을 설치함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다행히 우리 대구가 병영 설치의 은택을 입게 되면 부지 전부를 기부해드리는 것은 물론 부민은 전적으로 모든 편의를 도모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병영만 설치되면 토지와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적극적인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당시 대구에는 이미 임시 조선파견대사령부가 설치돼 제2연대 본부와 제3연대 2대대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 경찰력과 헌병대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들 친일파는 일본인들과 결탁해 부대 증설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데라우치 총독 앞으로 보냈다.

일제강점기에 ‘병영 유치 운동’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에서 다양하게 확인된다. 충남 대전 사단설치 청원운동, 전북 전주 여단설치 청원서(국가기록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기록물), 황해도 사리원 사단설치 청원운동(<동아일보> 기사 1933년 7월 28일자) 등이 현재까지 확인되고 있어 지역별로 ‘유치 경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단 설치 갈망” 이름 올린 친일파는 이일우,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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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에 여단 설치를 건의하는 청원서. 일본인의 이름 사이에 부회장 이일우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신상미

유력자들의 청원 덕분인지 다음해(1916년) 5월 대구 대봉동에 20사단 제80연대가 설치됐다. 해방 후 이 자리엔 미군부대 캠프 헨리가 들어왔다. 사단은 19, 20사단이 각각 함북 나남과 경성 용산에 설치됐다. 대전에도 청원 뒤인 1916년 4월, 80연대의 제3대대가 설치됐다. 대전에선 사단이 설치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친일파 주도 시위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구의 대표적인 토호였던 이일우는 ‘사단’ 설치가 어려우면 ‘여단’이라도 설치해달라는 청원서에 다시 서명했다(아래 문서 이미지 참고). 해당 청원서는 ‘대구 여단설치 기성회’가 작성·제출한 것으로, 한국인은 부회장 이일우가 유일하고 나머지는 전원 일본인이다.

이일우는 3.1 만세운동 후 친일파 박중양이 조직한 ‘대구자제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자제단은 3.1운동에 참여한 인사들을 전향시키는 단체로, 전국 각지에서 조직됐다. 자제단은 전향에 실패하거나 수상한 거동이 발견되면 일제 관헌에 고발했다. 이일우는 67인의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자제단 경비까지 댔다. 하지만 이일우기념사업회는 친일 행적 의혹이 일 때마다 ‘사실이 아니며 오해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펴왔다. 기념사업회는 ‘이일우 선생은 근대산업화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입장이다.

청원서에 함께 이름을 올린 정재학은 1913년 대구은행을 설립한 금융가로,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서병조는 국채보상운동을 했던 유학자 서상돈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19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제와 결탁해 일찌감치 친일로 돌아섰다. 1924년에 중추원 참의로 임명됐고, 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 공로자 명감>에도 수록돼 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됐다.

이병학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설립위원, 대구은행 이사,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기업인·금융가로,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연호) 대례 기념장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대구자제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경비를 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일우를 제외하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권 확대 위해 일본군 끌어들이는 행위… 민족관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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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남 이일우를 기리는 조형물. ⓒ 계대욱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친일파 연명 청원서를 ‘경제적 결탁’과 ‘생명·재산 보호’의 두 가지 측면으로 분석했다.

김민철 교수는 “친일 토호세력이 이권을 확대하기 위해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들과 결탁하고 일본군을 끌어들이는 행위다. 민족이라는 관념이 그들에겐 없다”라면서 “친일파들이 거의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받고 개발권을 취득하도록 조선총독부가 이권을 주는 예가 많았다. 일제권력과 결탁해 재산을 증식하려고 한 전형적인 친일행위이자 경제적 결탁”이라고 분석했다.

또 김 교수는 “1915년 즈음이면 의열 활동이 줄어드는 시기다. 다시 1920년대에 활발해진다. 의병 세력이 ‘삼남 대토벌 작전’으로 위축됐고, 국외로 빠져나갔다. 1913년까지 의병활동 기록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습격당할까봐 불안할 수 있다”라면서 “그걸 명분으로 사단급 규모의 증설을 요구하는 것은 잘 안 맞지만, 그만큼 불안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친일파들의 기업활동을 연구해온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석좌교수도 친일파들이 일제강점기 내내 ‘경제적 이익’을 위해 기꺼이 일본인들과 협력했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의 자본가가 민족보다 계급을 중요시 했고, 따라서 민족을 넘어 계급적 이익을 공유했다고 본 것이다.

에커트 교수는 <제국의 후예>(1991)에서 “계급적 이익에 기초를 둔 일본인과 한국인의 협력은 이중으로 유용했다”라면서 “토착인의 도움을 받아서 일본제국의 목표에 부합하는 경제를 건설할 수 있었다. 또 조선사회 내의 계급 분화와 계급 갈등을 조장해 가공할 민족운동(3.1운동)의 단결을 깨뜨릴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아래는 청원서 한글 해석 전문이다.


[사단 설치 청원서]

삼가 일서를 써서 대구부민을 대표해 각하께 청원드립니다.

오랫동안 의회의 중심 문제가 된 제국민 다수의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조선 2개 사단 증설의 논의가 점차 이번 임시의회의 협찬을 거쳐서 장차 설치에 착수될 것이라는 기운을 맞아 우리나라를 위하여 경하를 드릴 일입니다.

유래 우리 대구 지역은 남선 중투의 요지로 현재 임시 조선파견대 사령부가 있고 연대본부도 있어 교통이 편리해 물자의 공급이 지극히 자유롭습니다.

기후가 비교적 순조롭고 그러므로 위생지역이라는 점에 더해 대정3년(1914년)부터 계획된 대구 수도(상수도)는 대정6년(1917년)에 완성이 되면 그 배수량은 가히 5만 명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다행히 우리 대구가 병영 설치의 은택을 입게 되면 지정에 따라 부지 전부를 기부해 드리는 것은 물론 부민은 전적으로 모든 편의를 도모해 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열성적인 부민의 간절함을 헤아려 병영설치 사항을 허용해 주실 것을 돈수재배 삼가 청원드립니다.

대정 4년(1915년) 6월 11일

[여단 설치 청원서]

구장(이장) 등 내선인 공직자 전부 망라하여 단 그외 같은 지역의 유력자, 자산가 대부분을 포용하는 것으로 해서 그에 중하는 이름은 왼쪽과 같습니다.

여단 설치 기성회 임원
회장 중강오랑평
부회장 계 만차랑, 이일우
간사 내지인 이등길태랑, 백판압길, 소야원태, 목촌죽태랑

<2018-02-21>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수, 2018/02/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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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2/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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