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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조지훈 변호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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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조지훈 변호사를 만나다.

익명 (미확인) | 목, 2015/11/1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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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조지훈 변호사님인데요.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조지훈 저는 연수원 38기이고 현재 법무법인 다산에서 일하고 있는 조지훈입니다.

 

김지미 조변호사님에 대해서 찾아봤더니 처음엔 전자계산학과를 다니시다가 다시 법대를 들어가셨더라구요.

 

조지훈 네. 처음엔 수원에 있는 경기대 전자계산학과에 들어갔었는데요, 들어가고 나서 학과공부는 전혀 안하고 동아리 생활만 하다가 3학년 때 동아리연합회 부회장, 4학년인 96년도에 총학생회 부회장을 하면서 연세대 투쟁, 그것 때문에 구속이 됐었어요. 1996년 8월에 구속이 돼서 99년 2월에.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나왔어요. 6개월 정도 있었죠. 민변 다른 선배님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었죠.

 

김지미 1심에서는 실형을 받으셨던 거죠?

 

조지훈 네. 실형 1년 받았었어요. 그때 변호해주셨던 분이 해마루에 계신 박세경 변호사님이에요.

 

김지미 우리 회원 중에 그런 분들이 있어요. 민변의 변론을 받다가 민변 회원이 되신(웃음).

 

조지훈 그런 인연이 있었죠. 출소하고 났더니 제적이 되어 있어서 군대를 공익근무요원으로 다니면서 수능 공부를 했어요.

 

김지미 법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직접 재판의 과정도 겪어보고 그러면서 필요성을 느끼셨던 거에요?

 

조지훈 공대 출신이고 한겨레 신문 정도만 보던 때인데, 형사절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전혀 예견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내가 어떤 지위인지도 전혀 몰랐고. 그게 좀 컸었던 것 같아요.

김지미 되게 답답했을 것 같아요.

 

조지훈 네. 그때는 경찰한테 엄청 맞았어요. 끌려갈 때도 맞고, 경찰서에서도 엄청 맞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계속 맞고 있었나(웃음). 저는 연대 안이 아니고 밖에 있었는데 밖에서 들어가다가 연행됐던 거죠. 신촌 지하철역에서 연행돼서 교차로까지 맞으면서 왔었어요.

 

김지미 가담 정도에 비해서 형이 많이 나온 것 같네요(웃음). 1심에서 1년이 나왔으면.

 

조지훈 그때는 모든 걸 직책으로 판단해서 총학생회 부회장이라는 게 컸죠.

 

김지미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동아리였어요?

 

조지훈 민속연구회라고. 탈패였는데요. 탈춤이나 장구나 이런 것들은 전혀 못치고(웃음) 그래서 형들이 이상한 거 쥐어주면서 그냥 너는 앞에 나가라, 그러면서 인생이 어떻게 보면 꼬인거죠.

 

김지미 그러다가 한양대 법대는 언제 들어가신 거에요?

 

조지훈 00학번이요. 27살에 들어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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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군대까지 다녀오고.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시 가게 됐는데 특히나 이과생이 법학이라는 학문에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조지훈 저는 적응하는 데만 1년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대규모 강의도 경험이 없고, 1년 반 정도는 내가 왜 여기에 왔나하는 생각을 했죠.

 

김지미 늦은 나이에 법대를 가신 건 당연히 고시를 염두에 둔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한양대에 가서는 학생운동이나 이런 쪽에는 관여 안하셨어요?

 

조지훈 그 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어요. 학생회 활동을 하던 친구들하고 같이 고시공부를 했죠.

 

김지미 적응이 너무 어려웠다 라고 하는 것 치고는 2004년에 졸업을 하시고, 2006년에 합격을 하신 거니까 비교적 단기간에 붙었다고 볼 수 있는데, 공부 열심히 하셨나봐요.

 

조지훈 운이 좋았어요. 04년에 졸업하고 그 다음해에 1차, 그 다음해에 2차를 붙었으니까요.

 

김지미 조변호사님이 38기 노동법학회장이잖아요. 제가 37기 노동법학회였는데, 38기 노동법학회장이 굉장히 훈남이다 라는 소문이 있었어요(웃음).

 

조지훈 그런 잘못된 소문이.(웃음)

 

김지미 학생 때 가지고 있었던 지향을 이어가는 의미에서 학회활동을 하신 거겠네요.

 

조지훈 연수원 가서 다들 그렇겠지만 연수원 공부가 많이 안 맞았어요. 연수원 공부에 매달리기에는 나이도 많았고. 그리고 저희 학회에 좋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김지미 노동법학회가 맥이 끊겼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회원 중에도 예전부터 열심히 활동하시던 분들은 다 노동법학회 말씀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노동법학회 맥이 끊긴 게 참 안타까워요. 연수원 수료 후에 바로 다산으로 들어가신 거죠?

 

조지훈 네. 제가 다니던 경기대가 수원에 있었고 그래서 그때 사건이 터지면 대부분 다산에서 변론을 해 주셨어요. 우연찮게 저희 노동법학회 지도교수님이셨던 노정희 교수님이 또 다산 출신이세요.

 

김지미 변호사님이 활동하시는 걸 보니 ‘인권재단 사람’ 감사도 하시고 약간 특색있는 게 성남에 있는 ‘이로운재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시고 지금까지 이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계시던데 이로운 재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조지훈 아름다운 재단이 전국단위의 재단이라면 이로운 재단은 지역 재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 같은 경우에는 그런 재단이 각 카운티마다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데요, 그런 걸 모태삼아서 지역에서 기부와 나눔을, 아름다운 재단의 지역판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된 거죠.

 

김지미 여기에는 어떻게 처음부터 참여를 하시게 된 거에요?

 

조지훈 저희 집이 성남이에요. 거기에서 지역 시민사회단체 분들을 만나면서 같이 하게 됐죠.

 

김지미 ‘이로운재단’은 지금 잘 운영이 되고 있는가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이런 모토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가 어쨌든 기부문화가 굉장히 취약하잖아요. 그리고 지역에서만 기반해서 활동을 하면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조지훈 아직 성공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단 성남에 기업들이 많잖아요. 판교테크노밸리나 이런 곳에 있는 기업들한테 기부를 받고 있고 그 다음에 성남시와 같이 거버넌스를 형성해서 만들어 가려고 하는 단계예요. 그래서 지금은 청년 문제를 지역재단 차원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공모사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지미 얼마 전에 성남시에서 청년수당 주겠다는 얘기도 한참 이슈가 됐었고, 성남에서 청년문제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네요,

 

조지훈 네. 이런 사업들이 자리를 잡아서 시장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김지미 변호사님 예전 이력도 있고 수혜를 받았던 입장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시국사건, 집시, 노동 쪽으로 변론을 많이 하시게 되겠네요.

 

조지훈 네. 그런데 아시겠지만 노동사건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주로 담당을 하셔서. 아무래도 국가보안법 사건, 집시법 사건을 많이 하죠.

 

김지미 국가보안법 사건은 조금 후에 애기를 하기로 하고, 보니까 집단소송을 꽤 하신 것 같더라고요. 비료담합 관련해서 농업인들 대리해서 2만 8천명 규모의 집단소송을 하신 것도 있고, LPG 담합과 관련해서 개인택시 운전자 만 명을 대리해서 집단소송 하신 것도 있고. 집단소송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활성화가 되어 있지 않잖아요. 인용되는 경우도 잘 없고.

 

조지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 집단소송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되게 어려운거죠. 원고 2만 8천명 개별로 입증을 해야 되는 거니까요. 비료담합이면 2만 8천명의 비료 구매량, 손해액 이런 것들이 다 특정이 되어야 해서, LPG 담합도 마찬가지고. 그런 게 너무 어렵고 담합행위에 대해서는 손해액추정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해야 되는데 아직 법원이 다른 민사사건이랑 동일하게 취급을 해요.

 

김지미 담합이 있었다는 결정이 나오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손해입증은 또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조지훈 네. 그냥 일반 민사와 거의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을 하고 있어서 그런 점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그리고 담합 같은 경우는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을 하냐면,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무조건 끌어요. 행정소송에서 담합이 맞냐, 안 맞냐 이거 판단 받는 것만도 몇 년이 걸리는 거에요. 그렇게 결정이 되면 다시 민사가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말씀하신 사건들이 2010년. 2011년 사건들인데 아직까지 진행 중이에요.

 

김지미 길고 어려운 싸움을 하고 계시네요. 변호사님 하면 피해갈 수 없는 게 국가보안법 사건일 텐데 특히 내란음모 사건 정말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 중에서도 조지훈 변호사님이 제일 고생 많이 했다라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어요. 간사를 맡으셔서 실무를 거의 도맡아 하셨잖아요. 민주변론에 박치현 변호사님이 변론기도 쓰셨는데 그 내용도 굉장히 흥미진진했거든요.

 

조지훈 제가 실무담당을 하게 된 이유가 사건이 수원 남부서라서(웃음). 제 사무실과 되게 가깝고 영장실질심사를 수원지법에서 하고, 그래서 피해갈 수 없었던 거죠. 제 담당 직원은 다음부터 이런 사건 또 오면 회사 나가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웃음). 내란음모사건은 진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간사변호사 실무를 제가 하게 됐는데 모두 다 열심히 하셨어요. 김칠준 변호사님도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변호인단이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인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고 하셨으니까요. 저는 이런 대규모 변호인단으로 한 사건은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그게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여론이 안 좋았고 저도 처음에는 워낙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아서 언론의 얘기가 맞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증거기록을 다 분석하면서 이게 진짜 아니구나 하는 걸 계속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른바 제보자라고 하는 사람에 대한 증인신문. 그 분은 저도 아는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기위원장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당기위원이었어요, 김칠준 변호사님은 더 잘 알고. 그래서 그때 신문과정이 뭐랄까 같은 사람인데 완전 다른 사람을 보는..기분이 이상했어요.

그 사람이 김칠준 변호사님하고 저한테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대놓고 그래서 김칠준 변호사님께서 정말 화가 나셔서 큰 소리 치고 그랬었죠. 인간이 저렇게 될 수 있나하는 철학적인 고민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김지미 저랑 같이 사는 사람도 그랬지만 조변호사님도 거의 이혼당할 뻔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집에 들어오지를 않으니까(웃음).

 

조지훈 설변호사님이 저한테 한 번 그러던데요. 자기는 그래도 자주 들어가는 거라고, 조변호사는 더 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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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말씀하신 것처럼 사건을 직접 하는 사람은 기록을 보면 볼수록 이거 진짜 아니구나 하면서 점점 사건에 빠져들고 어떤 사명감도 생기고 그렇지만 어쨌든 집에 있는 사람은 모르잖아요. 이게 큰 사건이고 언론에도 나오고는 하지만 이해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해를 시키셨어요?

 

조지훈 끝날 때까지 이 재판의 역사적 의미와 무게에 대해서(웃음). 와이프가 경기대에서 학생회 활동 같이 했던 동기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해는 좀 하죠.

 

김지미 이해 안 되던데요(웃음).

 

조지훈 이해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참는 거죠. 분노를 관리하고 참는 거죠.(웃음)

 

김지미 처음에는 다산에서 쪽잠을 자다가 나중에는 아예 숙소를 잡았잖아요. 그리고 조변호사님하고 설변호사하고 몇 분은 거의 상주하다시피 거기서 지내셨잖아요. 그런 식의 작업을 하는 사건은 저도 처음 봤거든요. 또 변론기를 읽어보면,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더라도 이름만 올려놓은 사람들이 많고 실질적으로 수행을 하는 사람은 소수인데 이 변호인단은 참여한 사람이 모두가 다 역할을 갖고 일을 했던 유일한 변호단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어떻게 해서 변호인단이 그렇게 잘 운영이 됐을까요?

 

조지훈 일단 변호인단 구조를 김칠준 변호사님, 천낙붕 변호사님, 심재환 변호사님 이 세 분을 대표단 그룹으로 하고, 저랑 설변호사님이랑 박치현 변호사님이랑 하주희 변호사님 포함해서 5-6명이 실무단 변호사, 그리고 나머지 변호사님들은 각자 역할을 나눠서 그런 체계가 잘 잡혀있었어요. 그리고 대표단 세 분이 잘 이끌어 주셨던 것 같아요.

 

김지미 제가 들은 것 중엔 구글드라이브를 통해서 여러 명이 하나의 서면을 동시에 작업을 했다라고 하던데 이건 윤영태 변호사님의 공이었던 거죠?

 

조지훈 네. 윤영태 변호사님의 역할이 아주 컸어요. 윤변호사님이 IT 쪽으로 아주 해박하셔서 디지털 증거와 관련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김지미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 관련해서 최근에 저도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디지털 증거는 사실 왕재산 사건이나 일심회 사건 같은 국가보안법 사건을 통해서 이론이 정립된 측면이 있거든요. 이번에 내란음모 사건도 녹음파일과 관련해서 치열하게 다투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과 관련해서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을 다투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얘기해 주신다면요?

 

조지훈 저도 이전에는 큰 고민 없었는데 국가보안법 사건은 디지털 증거가 많이 나오거든요. 일반사건에서는 파일 같은 디지털 증거 관련해서 다투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다퉈보면 약점이 나오더라고요. 내란음모사건에서도 녹음을 디지털 녹음기로 했는데, 그 중에 2개는 해쉬값 자체가 틀렸어요. 해시값의 동일성이 인정이 안된 거에요. 우리가 동의했으면 그냥 넘어갈 문제인데, 부동의 하니까 해쉬값을 다 맞춰보는 거죠. 그런데 기재된 해시값 자체가 다른 거에요. 그렇게 해서 2개는 증거능력이 인정이 안 되었어요.

 

김지미 해쉬값이 다르다는 건 증거로 낸 파일이 원본과 동일한 파일이라고 볼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검찰에서 그걸 그냥 증거로 냈다는 거죠.

 

조지훈 네. 그런데 기술적인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쉬값 자체가 다른 것은 심각한 결함이잖아요. 이런 것을 발견하려면 디지털 증거는 정말 꼼꼼히 봐야 한다. 많이 문제 됐던 것은 암호를 푸는 복호화 과정인데, 복호화 과정 자체를 통제 안 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김지미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보자면 국가보안법 같은 시국사건을 통해서 디지털 증거의 증거능력에 대해서 문제점을 인식하신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최근 카톡이나 국정원 해킹 등 정보인권 관련해서 굵직한 사건들도 생겨서 지금 민변에서 정보인권위원회 준비모임을 하고 있고, 조변호사님도 참여를 하고 계시죠. 그래서 형사사건에서 동영상이나 녹음 파일, 디지털 사진 같은 것들이 증거로 나왔을 때 첫 대응을 이렇게 해야한다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조지훈 처음에 디지털 증거, 녹음파일이나 디지털 사진 이런 거에 대해서 부동의 의견을 밝히면 많은 판사들이 그래요. 그럼 이게 그 현장을 찍지 않았다는 얘기냐. 이게 조작됐다는, 위변조 됐다는 얘기냐. 위변조 되지 않았으면 왜 부동의 하느냐 이렇게 물어보는 거에요. 그럴 때는 디지털 증거는 본질적으로 조작이나 변개에 아주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변조가 되지 않은 증거능력 있는 증거라는 입증을 먼저 검사가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부동의 하는 거다 그렇게 해야 되는 거에요. 동영상을 찍었으면 촬영한 사람, 파일을 저장하고 복사한 사람을 다 불러서 증거의 연속성, 무결성이 지켜졌는지 봐야 하는 거고. 동영상 파일이 해당 캠코더에 저장된 원본이 아니라고 하면 해쉬값에 따라서 연속성이나 동일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거고. 이런 것들을 법정에서 다 밝혀야 되는 거거든요. 그걸 요구해야 해요.

 

김지미 그러면 어떻게 하랴는 얘기냐, 국과수에 보내서 감정이라도 하라는 말이냐, 감정 비용을 피고인에게 부담하게 하겠다는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판사도 있거든요. 그때는 어떤 식의 답변을 해야 할까요?

 

조지훈 만약 녹음파일이라고 한다면 녹음자를 출석시켜야 하고 그것을 다른 디지털 저장 장치에 넘길 때 있었던 사람들이 다 나와야 하는 거죠. 저희 내란음모사건 때 그래서 녹음자들이 다 나왔거든요.

김지미 저도 처음에 디지털 증거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해쉬값이 뭐지? 무결성이 뭐지? 어떻게 하라는 거지? 되게 막연했거든요. 디지털 증거가 증거능력을 가지기 위한 요건에 관해서 짧게 얘기해주시면.

 

조지훈 과정상의 자료의 동일성 인정되어야 되는 것이죠. 수집절차, 복제하는 절차, 그리고 증거로 제출되는 절차. 디지털 파일이라는 것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0101, 이렇게 이진법으로 되어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위변조가 너무 용이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봉쇄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졌느냐 그게 요건의 가장 기본 뼈대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어요.

가장 간편한 게 해쉬값을 추츨해서 원본하고 사본의 해쉬값이 같으면 동일성이 인정이 되는데,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녹음자 아니면 경찰이 채증한 거면 채증한 사람, 이걸 또 저장한 사람 각각 다 불러서 이게 무결하게 계속 원본 동일성이 유지되는지가 입증이 되어야지만 증거능력이 있다라는 거죠.

 

김지미 사실 이건 민변 변호사들 아니면 싸울 수가 없는 부분이고, 최근에는 우리 회원들 사이에서도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물어보시는 분들이 꽤 계시거든요.

 

조지훈 왕재산 사건 이후에 천낙붕, 이광철 변호사님 위주로 이런 문제의식이 있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디지털정보위원회 준비모임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이 오시면 많이 배우고 굉장히 유익할거예요. 그리고 지금시기에 굉장히 필요한 작업인 것 같아요. 증거능력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정보인권 관련해서 카톡도 있고 해킹도 있고 사실 산재해 있는데, 민변에 대응할 만한 단위가 없어서 내년에 정식 위원회 발족을 목표로 하고 있고 선배들의 노하우도 배울 수 있는 좋은 모임입니다. 많이 참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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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내란음모 사건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기록을 보면서 진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셨는데 1심에서는 모두 유죄가 나왔잖아요. 몇 달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엄청 고생을 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왔을 때 상실감이 굉장히 컸을 것 같아요.

 

조지훈 네. 멘붕상태였죠. 아직도 생생해요. 1심 판결을 법정에 가서 들었고, 김칠준 변호사님이 선고 후에 바로 나와서 그 자리에서 즉흥연설을, 거의 절규를 하셨죠. 그래서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한데, 한쪽에서는 우리가 너무 쉽게 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식으로 판단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거죠. 또 한편으로 항소심에서 더 크게 칼을 갈아서 붙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김지미 1심에서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항소심 가서 특별히 더 할 것이 있을까 생각이 언뜻 드는데, 항소심에서 뭔가를 할 만한 게 더 있었나요?

 

조지훈 역사적인 무게도 있지만 기록도 방대하고 증인신문도 저희가 조금 부족했던 게 주5일 재판이었잖아요. 그래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논리체계나 변론의 실질적인 내용이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짜임새 있게 탁 다가가지 못했던 그 부분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항소심에서는 거기에 좀 더 집중을 했던 거였죠.

 

 

김지미 언뜻 생각해 봐도 변호인단은 그렇게 많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주5일 재판을 하다보니까 정리가 안 되는데, 재판부는 당연히 정리가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이 판결을 그래도 조금 뒤집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더 들었을 것 같아요.

 

조지훈 1심 판결문 자체가 비약이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충분히 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내란음모를 인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래서 항소심에서는 음모를 깨는데 있어서, 윤영태 변호사님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음모에 관한 하급심 판결을 다 뒤졌어요. ‘음모’자 들어가는 모든 하급심 판결을 다 뽑아서 그거를 의견서로 제출했죠. 그게 음모부분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깨는 근거가 됐고, 또 하나는 일본에 이른바 삼무판결, 예전 오키나와 투쟁 때 했던 음모와 관련한 아주 중요한 판결들이 많아서 그걸 조사해서 제출했어요. 그게 법리적으로 큰 근거가 됐었죠.

 

김지미 그런데 항소심에서 내란음모는 무죄가 됐지만 내란선동은 유죄가 됐단 말이죠. 모르는 사람이 듣더라도 내란음모는 무죄고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게 결국에는 대법원까지 확정이 돼서 그 사건은 종결이 됐는데, 그런 엄청난 큰 사건을 끝내고 났을 때의 감회랄까 이제는 정리가 좀 되셨나요?

 

조지훈 개인적으로 쭉 정리해 볼 시간은 없었는데, 그 이후에 계속 재판을 하다보면 문득문득 내가 많이 좀 성장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건을 겪으면서 재판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 그 다음에 변론기술이라면 기술 이런 것들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데 문득문득 이런 큰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가졌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김지미 변호사라는 직업이 혼자서 하는 직업이잖아요. 보통은 내가 혼자 서면 쓰고 혼자 재판 나가고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를 알기가 쉽지 않은데 변호인단 활동을 하면 배우는 것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변론 스타일이나 증인신문 할 때 태도 이런 것들 보면서도 굉장히 많은 공부가 될 것 같거든요.

 

조지훈 설변호사님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증인신문을 능숙하게 잘 하시더라고요.

 

김지미 마치 제가 이 대답을 유도한 것 같네요.(웃음). 그럼 이쯤에서 피해갈 수 없는 개인사를 또 여쭤보면. 아까 살짝 사모님하고 학생시절에 만났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조지훈 네. 알게 된 건 94,5년도부터 알게 됐는데, 결혼은 2006년도에 했지요.

 

김지미 2006년이요? 2차 시험을 본 해이신 것 같은데요.

 

조지훈 2차 시험 보기 1달 전에 결혼을 했어요.

 

김지미 시험보기 한 달 전에요? 시험을 포기하셨나요(웃음)?

 

조지훈 많은 사람들이 제 청첩장을 보고 얘는 포기했구나 이렇게 봤죠.

 

김지미 2차 시험을 끝내고 했어도 됐을 텐데..아무래도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겠네요.(웃음)

 

조지훈 우리 첫째요.(웃음) 첫째 딸 생일이 2006년 10월 11일인데, 그 다음날 2차 발표가 있었어요. 복덩이죠. 산부인과에서 와이프랑 있어서 저는 합격자 명단도 못 봤어요. 신림동에 있는 후배가 됐다고 알려줘서 알았죠.

 

김지미 출산과 합격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을 졸이셨어요? 예정일이 거의 같았을 텐데.

 

조지훈 제 와이프가 출산 전에 너무 아팠어요. 저희가 참 무식해서 자연분만 좋다고 그래서 늙은 거는 생각지도 않고 그거 한다고 고집을 부렸던 거에요. 그래서 아프다고 하는데 산부인과 가면 안 좋다고 해서. 엄청 고생했어요. 출산하기 몇 주 전부터 일어나지 못했어요. 출산하고도 6개월 동안 못 일어났어요 골반 쪽에 문제가 있어서. 그래서 출산하러 갈 때도 친구들 불러서 들고 이동하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2차 발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김지미 그렇게 무사히 아이도 태어나고 다음날 바로 합격도 하고 진짜 복덩이네요. 아이가.

 

조지훈 요즘 말을 참 안 들어서(웃음).

 

김지미 2006년이면 지금 10살 됐겠네요. 그럼 아이는 1명이신가요?

 

조지훈 저희 사무실 이름이 다산이기 때문에 거기에 부응하느라 2010년에 둘째를 낳았지요. 저희 사무실은 변호사님들도 다 다산이에요(웃음).

 

김지미 사모님은 학교 때 알고는 지냈지만 본격적으로 사귄 건 그때는 아니었나 봐요?

 

조지훈 제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때쯤부터 해서 연애를 10년 정도 했어요. 제 공부 뒷바라지를 지금의 와이프가 해 줬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제가 꼼짝을 못해요. 뒷바라지 다 해줬더니 당신이 지금은 뭐라도 된 줄 아냐? 부터 해서 나없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야 막 이래요(웃음).

 

김지미 변호사님들 인터뷰 하다보면 사모님들 훌륭하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오세범 변호사님은 사모님을 가리켜서 ‘장비’같다고 표현하셨어요.(웃음) 그러면 사모님은 변호사님의 성인 이후의 거의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네요.

 

조지훈 네. 그래서 제가 사람들에게 잘 공개하지 않아요(웃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입 뻥끗하면 너는 끝난다 이러고 있어요(웃음).

IMG_6007

 

김지미 저희 회원행사에 한 번 같이 오시죠(웃음). 변호사님은 지금 정보인권모임 말고는 위원회 활동을 특별히 하시진 않으시죠?

 

조지훈 네. 수료하고 노동법학회장 출신이라서 노동위원회 해야 된다 이런 얘기 들었었는데 사무실이 수원이라 모임에 참석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디지털정보인권위에 주력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김지미 어느덧 7년차 중견변호사가 되셨는데 요즘 정세가 참 암울하잖아요. 이럴 때 민변이 이런 역할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게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조지훈 7년차 중견변호사인데, 저희 다산에서는 아직도 막내에요. 제 후임이 오세범 변호사님이라(웃음). 제 주위에 지인들이 제가 민변 회원이라고 하면 그것 자체로 되게 높이, 아 정말 고생 많다 이렇게 해주는 분들이 많거든요. 시민들이 민변에 바라는 요구는 되게 높은 것 같아요. 특히 지금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민변이 한 발 더 치고나가는 역할을 해야 되지 않나.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더 뭔가 시민들의 쌓인 분노를 어떤 지식인의 목소리, 전문가의 호소 이런 것을 모아서 반 발짝씩이라도 더 치고 나갈 필요가 있지 않나.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내란음모, 정당해산을 쭉 다 겪었잖아요. 내란음모 할 때 어떤 변호사님이 내란음모까지 터졌으면 재네들 다 한 거다, 이보다 더 할 게 있겠나 했는데 정당해산까지 갔잖아요. 지금 정권은 로드맵이 있는데 저도 그렇지만 지식인들이 대부분이 김대중, 노무현 10년의 역사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거다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한홍구 교수님이 하신 얘기 중에 예전에 국정원 과거사위 할 때 자기 밑에서 열심히 도와준 담당자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유우성 사건에서 증거 위조한 과장이라는 거에요. 정말 우리가 잘못한 게 이 정도 하면 청산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정말 환상이었다. 인적 청산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무지했거나 너무 방관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냉철한 진단인 것 같아요.

 

김지미 민변의 역할이 커질수록 어쨌든 회원들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조변호사님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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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활동가들이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DHR)이 채택됐다. 세계인권선언은 인종과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성 또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만을 이유로 170만명이 학살당했던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마련되었으며, 국적과 성별, 피부색 또는 종교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을 인류 역사 최초로 제시한 문서다.

총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에는 고문 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 비호를 신청할 권리 등을 비롯해 생명권, 자유권, 사생활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와 같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까지 모든 인권 기준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인권 문서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역사적인 순간으로부터 70년째를 맞는 올해, 국제앰네스티는 1948년 전후 태어난 활동가 4인을 만났다. 이들에게 세계인권선언이란 무엇인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물었다.

아르헨티나의 도라 바란코스(Dora Barrancos, 78)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운동, 특히 여성인권운동에 참여해왔다. 지칠 줄 모르는 도라는 앞으로도 인권을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항상 인권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활동가로 살아왔어요. 특히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가 되면서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인권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죠.”

도라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권리 등 새로운 영역까지 인권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까지, 세계인권선언이 그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에게 세계인권선언은 평등과 정의를 요구하는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줬어요. 이 모든 난관에 맞서기 위한 신념과 힘, 저항과 위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케냐의 기투 와 카헨게리(Gitu wa Kahengeri)는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제 93세가 된 기투는 영국 식민지배 하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끔찍한 인권침해를 직접 목격했다.

기투는 17세에 일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수용소를 전전하고, 고문과 노역을 견디면서도 그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후, 선언에 명시된 권리에 따라 자주권과 존엄, 자유를 요구하던 케냐인들의 모습을 기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케냐는 마침내 1963년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기투는 희생 없이는 아무런 진전도 이룰 수 없음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들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 국가를 이룩할 수 있으려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만 해요. 가치 있는 행동은 결코 쉽게 해낼 수 없죠.


헬렌 토마스(Helen Thomas)는 세계인권선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영국인으로서 오랜 시간을 인권활동에 헌신한 그는 196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 그리고 인도 마하라시트라의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의 인권이 부정당했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헬렌이 태어난 것은 세계인권선언 최종본이 채택되던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지금 헬렌에게 세계인권선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근간이지만, 처음부터 세계인권선언을 잘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전혀 모르는 쪽에 가까웠다. 헬렌은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이야기와 그 기원, 중요성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저는 제가 태어나던 그날 밤,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존재조차 배우지 않았어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유를 보호할 수 있겠어요?”

헬렌은 또한 장기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교육의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보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인권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인권선언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내가 가진 인권이 무엇인지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사회정의 활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윌 브라이언트(Will Bryant)에게 국제앰네스티는 언제나 내 집 같은 곳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던 날 윌은 이제 태어난 지 10주가 막 지난 아기였다.

“저는 불의라면 정말 질색이에요! 국제앰네스티에는 1973년 가입했는데, 캐나다지부가 창립된 지 불과 수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던 존 험프리(John Humphrey)가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죠. 개인이 정부에 직접 의견을 전하고, 정의와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어요.”

“살아 있는 동안에 어디서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찾아오고, 칠레에서 인권에 대한 존중이 회복되는 모습을 목격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이나 미얀마 같은 곳에서도 인권이 존중받고, 미국의 인권 퇴보가 끝나는 날을 보고 싶어요. 난민이 더 환영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젊은 세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끊임없이 참여하고, 헌신하고, 앞으로 나서기를 멈추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현재이자 미래인 여러분이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싸울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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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알아보기

수, 2018/12/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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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p><img alt="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모집"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223/578/001/e4…; /></p> <p> </p> <h1>참여연대 2019년 2차 자원활동가 정기 모집 안내 </h1> <h2><strong>공통</strong></h2> <p>- 신청기간 : 2019. 2. 20(수) ~ 2019. 3. 03(일)</p> <p>- O.T 일시 및 장소 :  2019. 3. 5(화) 오후 4시, 참여연대 4층 회의실</p> <p> </p> <hr /><h1>모집 영역</h1> <h2><strong>아카데미 느티나무 강좌 지원</strong></h2> <p>* 강좌는 무료 수강이며, 신청자가 많은 경우 20대 청년/학생에게 우선 배정합니다.</p> <p> </p> <p>① 강의명 :  한국사회 이슈 따라잡기 공부모임</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8SWEd</p&gt; <p>- 활동 기간 : 3/28, 4/25, 5/30, 7/4 | 목요일 저녁5시50분~9시50분, 4회</p> <p> </p> <p>② 강의명 : 경제학 고전 읽기 : 국부론</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lII3o</p&gt; <p>- 활동 기간 : 6/4, 6/11, 6/18, 6/25, 7/2 | 화요일 저녁5시50분~9시50분, 5회</p> <p> </p> <p>③ 강의명 : 저자특강 3.1운동 100주년 - 오늘과 마주한 3.1운동</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5BEYm</p&gt; <p>- 활동 기간 : 3/5, 3/12 | 월요일 저녁5시50분~9시50분, 2회</p> <p> </p> <p>④ 강의명 : 페미니즘, 한국 남자를 말하다</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dtgpK</p&gt; <p>- 활동 기간 : 3/13, 3/20 | 수요일 저녁 5시50분~9시50분, 2회</p> <p> </p> <p>⑤ 강의명 : 키워드로 이해하는 재벌 중심 한국 경제</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bVUrn</p&gt; <p>- 활동 기간 : 4/2, 4/9, 4/16, 4/23 | 화요일, 저녁 5시50분~9시50분, 4회</p> <p> </p> <p>⑥ 강의명 : [김만권의 두통시리즈] <전체주의의 기원> 함께 읽기</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a2UVG</p&gt; <p>- 활동 기간 : 5/13, 5/20, 5/27, 6/3, 6/10, 6/17 | 월요일, 저녁 5시50분~9시50분, 6회 </p> <p> </p> <p>⑦ 강의명 : 권리는 어떻게 권리가 되었나</p> <p>- 활동 업무 : 강좌 준비 및 정리, 후기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강좌소개 : http://bit.ly/2XewU2D</p&gt; <p>- 활동 기간 : 5/15, 5/22, 5/29 | 수요일, 저녁 5시50분~9시50분, 3회</p> <p> </p> <h2><strong>국제연대 업무 지원</strong></h2> <p>⑧ 참여연대 문서 번역</p> <p>- 활동 업무 : 영한, 한영 번역</p> <p>- 모집 인원 : 0명</p> <p>- 활동 기간 : 필요시 부정기 업무 요청(재택근무 가능)</p> <p> </p> <p>⑨ 아시아팟 녹취</p> <p>- 활동 업무 : 팟캐스트 녹취 서술</p> <p>- 모집 인원 : 0명</p> <p>- 활동기간 : 필요시 부정기 업무 요청(재택근무 가능)</p> <div> </div> <p> </p> <h2><strong>시민참여팀 업무 지원</strong></h2> <p>⑩ 자원활동가 후기 인터뷰</p> <p>- 활동 업무 : 자원활동가 후기 인터뷰 작성</p> <p>- 모집 인원 : 0명</p> <p>- 활동 기간 : 3월~6월 중 선택 / 약 4시간</p> <p> </p> <p>⑪ 세월호 노란리본 발송 지원</p> <p>- 활동업무 : 세월호 노란리본 우편 발송 지원</p> <p>- 모집 인원 : 0명</p> <p>- 활동기간 : 3월~4월 / 주 2회</p> <p> </p> <p> </p> <p> </p> <p style="text-align:center;"><a href="http://bit.ly/2Xdna8N&quot; target="_blank" rel="nofollow"><span style="font-size:22px;"><strong><span style="color:#8e44ad;"><자원활동 신청하기(클릭)></span></strong></span></a></p> <p> </p> <h2><strong>기타 안내</strong></h2> <ul><li>참여연대 자원활동은 무급 활동입니다.  </li> <li>활동 종료 뒤 요청하시면 활동증명서를 발급해 드립니다. </li> <li>신청하신 분야에 지원자가 많을 경우, 활동 부서 및 업무가 조정될 수 있습니다. </li> <li>자원활동가 분들은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해 주셔야 하며, 부득이할 경우 개별 연락 부탁드립니다. </li> </ul><p> </p> <p>문의 :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02-723-4251  [email protected] </p></div>
수, 2019/02/2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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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만들어내는 인권교육의 힘(Transformative Power of Human Rights Education)’ 시리즈는 자신의 인권을 알고 인권의 문화를 확산하는 전 세계 활동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이 시리즈를 통해 국제앰네스티 인권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인권옹호자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인권교육이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그리고 활동가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칠레의 인권교육 활동가, 카린 왓슨이 국제앰네스티 2018년 국제총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카린 왓슨은 칠레의 인권교육 활동가다.
카린 왓슨이 국제앰네스티 2018년 국제총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어떻게 인권교육 활동가가 되었나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액티비즘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지불해야 할 임대료다.” 이 말이 좀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나라 출신이지만, 그 나라에서도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이다. 내가 가진 이 특권을 더욱더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변화를 만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권교육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17세 때 국제앰네스티에서 주최한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날의 경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교육과 원동력은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특히 안전한 공간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사람이 모여 매우 사적인 수준의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이전까지는 이런 주제에 대해 이렇게 자유롭게 말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인권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알려주세요.

내게 가장 획기적이었던 순간은 2015년에 시작된 칠레의 낙태금지법 개정을 위한 “칠레는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다(Chile doesn’t protect women)”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었다. 한때는 모든 상황에서 낙태를 금지했을 정도로 매우 엄격했던 페루의 낙태 관련 법을 바꾸기 위해 지금도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최소 3가지 기본적인 상황에서 낙태를 비범죄화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수많은 단체와 함께 한 기나긴 과정이었지만, 지난해 마침내 법을 개정할 수 있었다. 작은 진전이었지만, 엄청난 성과이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이제 여성들은 남몰래 낙태하다가 목숨을 잃을 일도 없고, 자신의 신체에 관한 결정으로 인해 처벌받을 일도 없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수년 동안 매진해 온 활동이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 보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러한 순간들이 있기에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

교육은 모든 사회변화의 기반이다. 동기부여 된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작은 진전이나 다름없다.

칠레의 인권교육 활동가 카린 왓슨Karin Watson

이 캠페인에서 인권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인권교육은 내가 믿고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을 동기부여 할 기회를 준다. 우리는 법을 바꾸기 위해 싸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용에 대해 알리고, 낙태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싶다.
학교에 가서 과거의 나처럼 고민하는 어린이들을 만나 ‘성인들이 아무리 무시하더라도 여러분의 의견이 중요하고 가치 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싸울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다’고 알려줄 수 있었다. 나는 워크숍이 끝난 후 그들 모두가 힘을 얻고,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은 기분을 느끼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동기 부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성과 재생산 권리에 관한 우리의 활동이 교육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청소년들이 배우고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주제가 일반적으로 다뤄지고,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으려 한다.
교육은 모든 사회변화의 기반이다. 동기부여 된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작은 진전이나 다름없다.

지역사회와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나요?

여성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모든 사람이 힘을 얻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알기를 바란다. 더 개방적이고 양심적인 사회를 바란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회, 이주민과 난민을 환영하고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지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나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 순간 한 걸음씩 내디디며 노력하고 있다!

지금, 앰네스티와 함께 인권에 대해 알아보세요.

인권 알아보기

금, 2018/12/1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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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로탐색 지원사업 ‘내-일상상프로젝트’는 청소년이 자신의 재능과 지역의 필요를 연결하여 창의적인 일을 기획(창직)하고 실천하는 프로젝트로,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총 3년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내-일상상프로젝트’는 지난달 20일 <결과공유회-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끝으로 긴 여정이 마무리됐는데요. 결과공유회의 기획단으로 참여한 청소년과 준비부터 진행까지의 과정을 짤막한 인터뷰로 전합니다.

‘내-일상상프로젝트’ 결과공유회가 끝난 뒤 아쉬움을 안고 한 번 더 기획단으로 참여한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김윤기, 신현석, 안가민, 우정헌 님(가나다순)은 기획단으로 참여해 행사 기획부터 운영, 그리고 마무리까지 대장정을 이끈 주역인데요. 참가자에서 기획단으로 역할이 바뀐 만큼 느낀 점도 많았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기획단으로 참여하게 되었는지, 하고 난 소감은 어떠한지 등 여러 주제로 한 짧은 인터뷰를 전합니다.

Q. 결과공유회 기획단으로 함께 참여한 계기가 궁금해요.

신현석(전주 참가자, 이하 ‘현석’) : 전주 YMCA에서 활동하면서 좀 더 다른 활동도 해보고 싶었어요. 처음 기획단 제의를 받았을 때 색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일찾기프로젝트도 좋았지만, 기획단 일은 제가 좀 더 주도적으로 역할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윤기(순창 참가자, 이하 ‘윤기’) :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어요. 기획단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지,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궁금했어요. 이왕 하는 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 기획단으로 함께 결과공유회를 준비해달라고 요청받았을 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획단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안가민(장수 참가자, 이하 ‘가민’) : 원래 기획단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참여하겠냐고 물어봤을 때 하고 싶어졌어요. 제가 직접 아이디어도 내고. 내일찾기프로젝트랑은 또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우정헌(진안 참가자, 이하 ‘정헌’) : 나중에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아서 기획단으로 참여하고, 사회자로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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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획단으로 활동하고 난 느낌이 궁금해요.

현석 : 내일찾기프로젝트는 선배들과 같이 한 활동이라면, 기획단은 다른 지역에서 온 청소년들이 있다는 점이요. 9명이라 인원은 좀 많았지만, 여러 지역의 친구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게 색달랐어요. 날짜를 정해서 한 공간에 모이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한다는 점도. 기획단 활동은 제 기대를 충족했고, 같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가민 :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얘기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 그런 게 신기했고요. 학교에선 만들면 그냥 내가 가서 참여하는 방식이었는데 여기선 저희가 정해서 직접 하니까요. 어떤 직업을 정하는 건 아니지만, 살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느낌이에요. 혼자 헤쳐나갈 힘을 기른 것 같아요.

윤기 :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을 많이 처음에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준비도 적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요. 실수만큼은 꼭 피하고 싶었죠. 걱정한 거에 비해 큰 실수 없이 진행되어서 안도감도 들고 기분도 좋았어요. 기획단으로 참여하고, 토크쇼의 패널로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헌 : 저는 기획단 안에서 사회자 역할도 맡았으니까 이왕 하는 김에 잘해보자 마음을 먹고 혼자 거울 보면서 대본 연습을 했던 게 생각나요. 너무 긴장했는지 행사 준비부터 1부 사회까지 마치고 나니까 어제 연습했던 피로들이 갑자기 몰려오더라고요. 그래도 참여하길 잘한 것 같아요.

Q. 다음에도 제의가 들어온다면 하실 의향이 있는지 궁금해요.

현석 : 네. 만약에 한다면 다음엔 우리가 했던 내일찾기프로젝트의 특성을 살려서 조형물로 만들어 전시해보고 싶어요. 우리가 이런 프로젝트를 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가민 : 평소 다양한 공연에 관심이 많은데요. 만약 다음번에 기획단으로 또 활동한다면 우리가 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형태로 공연을 기획해서 진행해보고 싶어요.

정헌 : 결과공유회에서 사회자로 참여하고 평소 친하게 지냈던 선생님들이 칭찬해주셨어요. 모르는 선생님들도 나중에 레크레이션 강사를 해보라고 하실 정도로요. 제가 준비하고 진행한 일이 헛된 게 아니구나 생각했고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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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으로 기획단이니까 물어보는 질문! 당신에게 기획이란…?

가민 : 너무 질문이 어려운 것 같지만..뭔가를 주최하는 것? 저희가 했던 프로젝트나 아니면 다른 활동들을 주최하는 것. 여하튼 새로운 걸 경험해서 좋았어요.

현석 : 처음에 기획할 때는 멀고 어려운 단어였는데 사람들 만나면서 해보니까 새롭게 알게 된 것이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목적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 뭔가를 더 해볼 수 있어서 설렜어요.

2019년 1월 20일, 결과공유회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마지막으로 2016년 여름에 시작해 3년간 달려왔던 ‘내-일상상프로젝트’는 막을 내렸습니다. 함께 마무리를 준비하고 이끌어 준 청소년 기획단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하지만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 다음 활동이 기대됩니다. 3월의 어느 날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는 또 다른 곳에서 ‘내-일상상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기약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즐겁고 반가운 소식이 많이 들려오기를 바라며, 다음 노래 한 구절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그날 알았지 이럴 줄
이렇게 될 줄
두고두고 생각날 거란 걸
바로 알았지
까만 하늘 귀뚜라미
울음소리
힘을 주어 잡고 있던 작은 손

너는 조용히 내려
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
나는 한참을 서서
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 아이유, 푸르던

– 글 : 김수영 | 일상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 일상센터

[결과공유회①] 내-일상상프로젝트,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자세히 보기

수, 2019/02/2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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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 12일은 세계 청소년의 날International Youth Day입니다. 1999년, 8월 12일을 세계 청소년의 날로 지정하라는 세계청소년장관회의World Conference of Ministers Responsible for Youth의 권고를 유엔 총회가 승인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사회 문제와 미래의 모습을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제정된 이날은 매년 전 세계 청소년과 관련된 이슈를 주제로 설정합니다. 각국에서는 그해의 주제에 맞는 행사, 학술대회, 축제 등을 통해 기념하고 있으며, 2021년은 Transforming Food Systems: Youth Innovation for Human and Planetary Health>이 주제로 지정되었습니다.

21번째 세계 청소년의 날을 맞이하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유스 위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위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회 산하 회원관계위원회 소속으로, 유스 운영회원의 거버넌스 참여 확대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안녕하세요 유스 위원님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경: 안녕하세요, 앰네스티 유스 위원 임현경입니다. 현재 환경 단체의 인턴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인권을 지키고 싶다는 결심에서 시작된 관심이 기후위기 문제로 귀결되어,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사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지구 평균 기온 상승에 따른 재난과 불평등한 대처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정의롭게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나: 안녕하세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대표이자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나입니다. 여성, 성소수자, 기후위기, 장애, 청소년, 군축 등 다양한 인권 아젠다에 관심이 많고, 고양이 두 친구의 집사입니다.

소진: 안녕하세요, 인권에 관심이 많은 정소진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정치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노동자 인권을 비롯해 성소수자 인권, 이주민 인권 분야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입니다.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든 유스 위원 현경이 서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위원 현경

Q.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앰네스티 유스 위원분들과 세계 청소년의 날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라 더욱 뜻깊은데요, 올해 주제인 은 접하시는 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것 같아요. 인류와 지구의 건강을 위한 혁신은 그 무엇도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저는 채식 급식권이나 실생활에서의 비건 실천 혹은 생츄어리Sanctuary[1]에 대한 관심,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고민 등이 떠올랐는데, 유스 위원분들은 어떠셨나요?

먹을 것만 바꿨는데, 나로 인해 누군가 더이상 고통받지 않고, 기후위기가 멈추고, 내 자신의 건강이 좋아진다? 생각만 해도 멋진 미래예요.

현경: 먹거리 전환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의제가 이번 청소년의 날 주제라니 정말 반갑습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음식에 대한 우리의 생산과 소비 전반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기후변화를 중심으로 말하고 싶어요. 많이들 들어보셨겠지만,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입니다. 지구 가열화Global Heating가 심해질수록 가뭄이나 장마, 홍수, 돌발해충 등의 재해 상황으로 농업 생산량이 줄어듭니다. 이때 채솟값만 뛴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인간이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농작물이 인간이 먹을 가축들의 사료로 쓰입니다. 고온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가축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보다 쉽게 질병을 얻고, 인수공통 감염병을 피하고 싶은 인간의 살상으로 그 수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고기 가격도 상승하죠. 가뭄과 담수의 염분화로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식수마저 줄어들게 됩니다. 안 그래도 전 세계 기아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음식의 물가가 상승하게 되면 그 수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더 못 먹고, 노동 효율도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되겠죠. 상대적으로 사회의 약자에 해당하는 사람들 또한 삶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우리는 기후행동이라는 것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소수의 노력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가 없습니다. 개인들이 모이고, 대중의 힘으로 정부와 기업을 움직여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일입니다. 식생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기후행동은 바로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공장식 축산업과 트롤 어업심해 저인망 어업에서 초래되는 온실가스 배출이 상당하고, 이 밖의 환경 파괴와 그 파괴된 환경으로 인한 또 다른 생태계 사슬 파괴까지의 연계성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속 가능한 식생활을 생각했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식량을 분배하기 위해서는 가축을 점점 늘려가며 비정상적으로 먹일 사료, 대두와 같은 채소류를 인간이 섭취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아 수 증가를 막을 수 있다면 비건을 지향하는 일은 더더욱 필요합니다. 한국처럼 식량 자급률이 낮은 국가들은 특히나 더, 다가올 식량 불평등에 주의해야 합니다. 비거니즘의 또 다른 의의인 동물 권리 보호 역시 우리가 기후행동으로써 지향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포용적인 사회로 가는 일은 인간 뿐 아니라 생물 모두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인간을 전염병 사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임과 동시에(이것도 인간중심주의 사고겠지만, 더 폭넓은 이해를 확산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구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인간 활동이 멈추어도 지속될 지구 가열화를 그나마 늦출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해요.

지나: 기후위기를 일상에서 누구나 뚜렷하게 느끼고 있는 요즘, 한국에서도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다양한 영역 중 국내에서 큰 장벽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다행히 군대 내 채식식사권 보장, 비건 식당 증가 등 변화가 더디지만 묵직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2년 째 비건을 지향하는 채식인으로서 정말 기쁜 흐름입니다. 비거니즘에 거대하고 결연한 동기나 이유가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저 나와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어요. 먹을 것만 바꿨는데, 나로 인해 누군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기후위기가 멈추고, 내 자신의 건강이 좋아진다? 생각만 해도 멋진 미래에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푸드시스템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소진: 푸드시스템 전환에 대한 유스들의 혁신에 적극적으로 지지하되, 유스의 참여를 넘어서 대기업의 이윤 추구와 그에 따른 환경 오염에도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유스 개개인은 채식 급식권 도입을 위해 학교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실생활에서의 식물성 식단 실천을 추구하고,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일상에서 실현하려 꾸준히 노력할 수 있겠지요.

“HUMAN RIGHTS ARE MY PRIDE”가 적힌 깃발과 빨란 풍선을 든 유스 위원 지나가 Feminist라고 적힌 뱃지를 상의에 달고 서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위원 지나

Q. 말씀을 들어 보니 모두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오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주의를 간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 유스로서의 사회 참여나 정치적 행동에 여러 어려움도 따랐을 것 같은데요, 을 맞아 한국 사회에 한 마디 전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청소년이 한 발 넘어서려는 것을 막고 기회를 차단하는 것보단 부디 한국사회가 유스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연대하면 좋겠습니다.

현경: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활발한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청소년 주축의 시민 단체, 청소년기후행동의 행보를 응원하며 늘 지켜보는 입장에서, 한국 사회에 꼭 말하고 싶은 점은 민주 사회면 민주 사회답게,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으로 연대하라는 것입니다. 결석시위를 나온 청소년들의 “행실이 불량하다”며 비난하거나, “기특하다” 혹은 “미안하다”라는 말(동등한 시민이자 현재 세대로 보지 않음이 드러나는 말들) 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이들의 ‘기후행동’을 퇴색시키는 일입니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적용되는 편견이자 외면입니다. 유스가 아닌 사람들도 결국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또 다른 당사자이거나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 있습니다. 그저 어리다는 것을 이유로, 어른들의 정치, 경제 힘 겨루기가 더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주장을 근거로 청소년이 한 발 넘어서려는 것을 막고 기회를 차단하는 것보단 부디 유스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연대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지나: 역사 속에서도 유스들이 많은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영역에서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실을 아직 모른다고 무시당하거나 기특하다고 여겨지죠. 유스는 공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나이를 이유로 ‘아랫 사람’이 됩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것. 이 순간부터 두 개인 간의 관계에서 위계가 뚜렷해지고, 동등한 관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위계가 사회에 만연하고 개개인에게 깊게 내면화되어 있어 유스에게 큰 어려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정치를 비롯한 사회 참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어요. 더 많은 유스들이 의사 결정권을 가지는 자리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나이 제한 등의 물리적 장벽부터 언어와 같은 문화적 장벽까지 허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진: 우선 한국 사회에서는 “학생의 본분을 공부다”라는 인식이 팽배한 나머지 유스의 정치적 행동 참여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세계 각국의 사회나 인권 문제, 정치적 이슈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편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한국의 많은 유스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자세히 모른 채 대학에 진학합니다. 더불어, 대학에 입학하고 우수한 학업성취도를 유지하는 데에 너무나 많은 관심이 쏠린 나머지 사회 참여를 원하는 유스도 그럴 시간과 여유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유스가 사회에 참여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기회와 양질의 교육 환경을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스 위원 소진이 카페에 앉아 웃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위원 소진

Q.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을 기념하며 앰네스티의 유스 회원과 지지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말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현경: 세계 청소년의 날! 우리 같이 파격적인 목소리를 내봅시다. 지금은 공부하고 의견은 나중에 표출하라는 사회를 향해, 어려서 경험이 부족하고 쉽게 선동 당한다는 사회에! 단호한 변화의 의지로, 같이 연대해요!

지나: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 상황과 끝없는 혐오와 차별의 사건으로 무기력함이 짙어지는 시기입니다. 특히 인권 운동에 관심있는 유스분들께 더 힘든 시기일 것 같아요. 요즘 ‘존버’라는 말이 유행이고 저도 자주 사용하곤 하지만, 너무 힘들면 버티지 말고 때론 내려놓고 포기해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힘들 땐, 꼭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가끔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칭얼거리는 것으로도 해소가 됩니다. 연약함을 드러내고 함께 이야기할 때 단단하게 되는 것 같아요.

더불어, 앰네스티 거버넌스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앰네스티는 유스의 의사 결정 참여를 보장하고, 지원하고 있어요. 더 많은 유스 이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진: 학업을 병행하며 흥미를 찾는 일은 정말 어렵지만, 관심 가는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다 보면 우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 변화가 멈추는 그날까지 우리 다같이 힘내보아요~


1. 자연 서식지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에서 동물을 보호하는 공간. 공장식 축산의 확산을 막고 농장동물들의 안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목, 2021/08/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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