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자원봉사자들과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이 함께하는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2015 한양도성원정대"는 8월 말부터 지금까지 4회 진행되었습니다.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과 함께 준비하고, 평가하면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신한은행 봉사자와 아동들이 만나 어색함이 흐르는 것도 잠시, 멘토와 멘티라는 이름으로 서로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고 손을 잡아보고 다같이 서로서로 꼬인손을 풀어보기도 하고, 노래에 맞춰 멘토와 멘티가 서로를 잡고 열심히 놀이를 하다보면 어느새 이전부터 알던 사이인 듯, 들썩들썩 아이들의 조잘거림이 여기저기 들려옵니다.
어색함을 푼 뒤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오늘 직접 보고 함께 걸어볼 서울과 한양도성의 옛 모습을 보며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옛날 서울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디에 살았는지 스티커도 붙여보고 수선전도가 그려진 에코백에 색칠하며 어디에 강이 있었고 산이 있었는지 펜으로 따라가봅니다. 옛 서울의 모습을 확실히 알지 못해도, 자신이 색칠한 에코백을 들고 멘토와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한양도성이 엮인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갑니다.
한양도성원정대는 회차에 따라 낙산을 걷기도 하고, 이간수문을 지나 장충동을 걷기도 하고, 백악 팔각정을 보기도 합니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걷다가 각자도 찾아봅니다. 한양도성을 돌아보고 나면 내내 곁을 함께 했던 멘토와 멘티는 서로에게 메시지를 적어 교환합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늘 하루 어땠는지 소감을 함께 들어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멘토와 멘티 서로에게 어떤 것을 느꼈는지 나누다 보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헤어질 때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해서 즐거웠다, 고맙다는 말을 서로 전합니다.
아동청소년이 성인과 멘티 멘티가 되어 관계를 형성하고 친밀감을 느끼며, 하루동안 친구가 되어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해줍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서울의 역사를, 한양도성을 걸어보면서 다양한 게임과 교구를 통해 재미있게 배웁니다.
일방적으로 베풀기만 했던 봉사활동을 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참여활동 "서울KYC 한양도성원정대"
2015년 한양도성원정대는 이제 11월 21일과 12일 5일, 총 2회 남았습니다. 앞으로 남은 2회 동안 한양도성원정대가 신한은행 자원봉사자들과 아동센터 친구들 모두에게, 그리고 함께 하는 서울KYC 도성길라잡이에게도 한양도성에서 만들어진 재밌는 기억, 의미있는 만남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한양도성원정대에서 함께 해주실 분들께서는 서울KYC 사무국(02-2273-2276)으로 연락주세요!
*다같이 돌자 서울 한바퀴! 한양도성원정대는 서울KYC와 신한은행이 함께하는 자원활동 프로그램입니다.
6월 18일 근현대사아카데미 실내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 김승은 실장님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재조명"이 주제였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일협정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맺어졌고, 일본은 그 당시 배상을 모두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일협정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내용으로 맺어진 협정인지는 대부분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 근현대사아카데미 강의에서는 한일협정에 대해 쉽게,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강의였을지 궁금하시죠?
우선 한일협정이란 무엇일까요? 한일협정은 한국과 일본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협정입니다.
20여년동안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고 있었다가 한일협정때부터 국교가 정상화되었습니다. 실제로 한일협정을 맺기위해 1952년 한일회담을 했고 협정을 맺기까지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일협정하면 많이 이야기하는것이 일본에서 주장하는 '배상금'인데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차관 3억달러였지만 실제로 '돈'을 받은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상 3억달러의 경우 이에 해당하는 생산품, 시설, 기자재 등을 받았고 유상과 차관은 배상이라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일본에서는 배상이었다고 말하지만 간접적으로는 "수출"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이에 대해서 배상금이 아닌 독립축하금이라는 명목을 달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세계를 상대로 한일협정때 돈을 다 줬음에도 피해자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떼쓰고 있다며 이들을 떼쟁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전쟁은 '돈'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은 막대한 배상금을 받았고 청일전쟁 배상금 역시 예산의 4년치에 해당할만큼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때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해 대공황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패전국과 승전국 모두 어려운 경제상황을 겪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줄 곳이 일본뿐이라 생각했던 미국은 만약 일본 역시 막대한 배상금으로 인해 어려운 경제상황을 겪을 경우 공산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고 일본의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책임을 강하게 추궁하는 대신 대소반공체제 구축을 위해 일본을 파트너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일회담을 조속히 마무리짓기 위해 미국이 한일회담 과정에 깊게 관여하여 정치적 타결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한일협정을 위해 나섰던 한국 정부 역시 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과거사 청산, 피해자에 대한 사과 및 보상에 대한 부분은 뒷전으로 둔 채 경제발전과 안보에만 집중하여 금액 조정에만 신경썼습니다. 이는 일본이 바라던 바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만, 조선인을 모집하여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패망후 사로잡혀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200여명, 사형을 당한 사람도 수십명이었습니다. A급 전범으로 사형을 받은 일본인이 7명임을 감안한다면 이는 과연 옳은 판결과 형 집행이었을까요?
당시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조선인들은 동진회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그때의 억울함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때그때의 작은 보상을 할뿐 일본은 여전히 그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포로감시원으로 활동했던 사람들, 강제징용되어 끌려갔던 사람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로 처절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 일본에 있으면서 원폭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까지.
너무나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한일협정에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한일협정은 언뜻 보기에도 우리에게 유리한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 협정입니다. 침략에 대한 사과도,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전해진 사과와 보상도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실제로 한일협정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을 진압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민들의 목소리를 억눌렀습니다.
피해자들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할때마다 일본은 한일협정때 다 정리가 됐다라는 입장이었고 그러다보니 한일협정 내용을 알기 위해 정보 공개 소송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한일협정 정보가 공개되었고, 일본에서도 정보 공개 소송이 진행되어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우리나라가 가진 정보에는 간략한 내용들만이 담겨있었지만 실제 일본에서 공개된 정보는 그 양도 엄청났고 세세한 이야기들까지 다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서 원본을 볼 수 있으니 직접 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었던 하지마 지역 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단 소식이 자꾸 들려옵니다. 그 중 한곳은 요시다 쇼인의 개인 서당인데 이곳이 대체 산업화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걸까요? 요시대 쇼인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하며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이토 히로부미 등 이 서당 출신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봤을때 일본의 산업화는 침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쟁에 대한 반성이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에게 진실된 사과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일협정에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는 일본, 산업화라는 말로 침략을 대신하려는 일본. 그리고 그런 일본에게 제대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는 한국까지.
이러한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우리 세대가 성숙해야 과거 청산 역시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이를 세계인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 강의를 들으며 한일간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 마찰의 시발점이 된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협정에 대해 다시 배우고,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쉽지 않은 내용인 한일협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신 김승은 실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1월 19일(화) 공동대표 선거 공고 -
2월 2일(화) 후보 등록 마감 / 미등록 - 선관위와 운영위원 논의를 통해 2월 14일(일)까지 등록기간 연장 - 2월 14일(일)
후보 등록 마감/ 미등록
2. 결과 - 한차례 후보등록 기간을 연장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미등록 - 후보 미등록으로
인해 선거 무산 - 2016년 정기 총회 안건 상정 불가능
정기 총회 총회 후, 임시운영위원회를 통해 2016~2017
서울KYC 공동대표 재선거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함.
[참고] KYC 선거에 관한 규정 KYC "선거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투표권은 아래 회당하는 회원들에게 주어집니다. (1) 선거공고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정회원 (2) 선거공고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후원회원 중 투표의사가 있는 회원 단, 투표에 참여한 자를 투표의사를 밝힌 것으로 간주하여 투표 정족수에 포함 시킨다.
2016년 1월 19일 정기총회 공고일 기준으로 -2015년 7월 19일~2016년 1월 19일 기간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정회원 누구나 -2015년 7월 19일~2016년 1월 19일 기간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후원회원중 투표의사가 있는 회원
신한은행과 고 성완종의원·경남기업 유착 및 불법 대출 의혹 문제에 대한 항고이유서 발표·제출(2/24)
한동우, 서진원, 최수현, 조영제, 주인종 등 5인의 직권남용죄, 배임죄 등의 무혐의 처리를 비판하고 이에 대해 반박
작년 국정감사, 최근 농협직원의 법정 진술 등을 종합하면 금감원 최고위층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고, 신한은행 경영진 역시 압력 여부와 상관없이 경남기업과 고 성완종 의원에게 위험한 대출을 해준 배임과 특혜 제공 혐의 짙어
서울고검이 꼭 재수사해야!!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가, 신한은행의 경남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문제와 관련하여 5월 13일(수) 오전 10시 10분, 경남기업에는 큰 특혜를 주고 신한은행에는 큰 손해를 끼친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 신한은행 서진원 전 행장, 신한은행 주인종 전 부행장(당시 신용위원장)과 신한은행 등에 직권을 남용하여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금융감독원의 최수현 전 원장, 조영제 전 부원장, 김진수 전 부원장보(당시 기업금융개선국장)에 대해 고발했지만, 검찰은 김진수 전 부원장보를 제외한 5인 모두를 무혐의 처분한 바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지난 1월 7일 법정 기한에 맞게 이 사건에 대한 항고장을 검찰에 제출하였고, 이번엔 항고이유서를 추가로 서울고검에 제출하고 신속하고 제대로 된 재수사를 촉구하였습니다[항고이유서 별첨]
항고 취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검찰(서울중앙지검)은 금감원 전 간부였던 김진수에 대해서는 금감원 간부로서 부당한 압력과 개입을 자행했다는 이유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으면서도, 그러한 금감원 측의 압력 및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의 로비 등에 의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남기업에 거액의 대출과 특혜를 제공한 신한은행 최고 책임자들과 김진수의 금감원 상사들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는데, 이는 검찰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진 것으로 이를 결코 납득할 수 없어서, 항고하게 됐습니다. 검찰이 김진수만 기소를 하고, 나머지 관련자들, 특히 신한은행 측의 부당하고 위험한 대출 책임자들을 무혐의 처분해버림에 따라, 결국은 김진수 역시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인데, 이는 검찰 스스로 야기한 상황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검찰 차원에서의 재수사가 시급합니다. 특히, 작년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때의 관련자 진술과, 최근 농협 직원의 법정 진술 등을 종합하면, 당시 금감원 최고위층으로부터 농협, 신한은행 등에 대한 불법·부당한 압력이 있었고, 또 압력으로 인한 것인지의 인과관계 성립여부를 떠나 농협, 신한은행 등에서 경남기업과 고 성완종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실제로 해줘서는 안 될 거액의 대출과 특혜 제공이 있었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사실로 확인되었다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신한금융지주 한동우 회장, 서진원 당시 은행장 등 신한은행의 최고위층들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끝까지 발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정도의 대규모 대출과 국회 정무위 의원 및 권력층이 연관된 대출 건이 한동우 회장에게 보고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형식적인 결정 라인이 아니라 한동우 회장과 서진원 전 은행장이 최종적으로, 또 주도적으로 결정했을 것이라는 점도 아주 쉽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우 회장, 서진원 전 은행장이 그동안 신한금융그룹이 대출과 관련해 직원 개개인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온 것과는 달리, 자신과 당시 신한은행 최고위층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변명과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이 반드시 제대로 재수사를 해야할 것입니다.
검찰과 금감원, 왜 신한지주․신한은행의 신한사태 관련 각종 불법행위를 방조하고 비호만 하고 있나?
신한사태 벌써 5년, 라응찬 전 신한지주회장의 차명계좌운용 및 자본시장법 위반 등 각종 불법행위와 신한사태 전후부터 최근까지 자행되었던 수많은 고객계좌 불법 조회․사찰 범죄에 대해 엄벌 조치해야
9.3(목) 오전 10:30 대검찰청 현관 기자브리핑 : 고객계좌 불법조회 피해자도 직접 참여해 신한은행 3차 고발 (최근에도 최소 4인 이상의 고객계좌 불법조회 확인), 대검에 서울지검공정거래조세조사부 감찰요청서도 제출
9월 2일이면 이른바 ‘신한사태’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고, 관련해서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 측의 여러 불법행위가 사실로 확인되었음에도 검찰과 금융감독 당국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검사 한동훈, 이 사건 담당검사 배문기)는 대형 경제범죄와 기업비리를 전담하는 매우 능력 있는 수사부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한사태 관련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도, 신한사태를 전후해서 드러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각종 비리에 대한 수사도 이 곳이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능력 있다는 공정거래조세조사부(구 금융조세조사3부)가 신한사태 관련 및 신한사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신한은행의 여러 불법행위와 라응찬 전 회장의 각종 불법행위는 왜 제대로 된 수사도, 기소도 진행하지 않고 있는지 공개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0년 9월 불거진 신한사태는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사건입니다. 단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금융회사 경영진이 개입된 불법과 비리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금융의 공공성과 금융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고, 자칫 금융기관의 일탈로 인해 상당한 수준으로 국민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가 이 문제에 끈질기게 대응하고 있고 직접 고발을 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의 비호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 때문인지 검찰의 신한사태 및 라응찬 전 회장 관련 수사는 장기간 오리무중에 빠져있습니다. 시작은 그럴듯했습니다. 2014년 11월 말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는 신한사태 관련 고발단체인 참여연대를 두 차례나 불러 아주 자세하게 고발인 조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다른 참고인들도 여러 차례 불러 역시 강도 높게 조사한 것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신한사태의 책임자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나 기소 소식은 지금까지도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신한사태가 발생한 것이 2010년 9월 2일의 일이니 그때로부터 치면 5년이 되도록, 그리고 경제․금융관련 전문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이상득 전 의원 등을 고발한 것이 2013년 2월의 일이니 그때로부터 치면 2년 반이 지나도록 검찰에서 내놓은 것이 없습니다.
또, 신한사태 당시 라응찬 전 회장․이백순 전 신한은행장과 그 측근들의 내부 공작과 고객정보 불법 조회 사실을 보여주는, ‘신한은행 비대위’ 문건을 새정치민주연합 정무위 간사인 김기식 의원과 참여연대가 공개하고, 이일을 검찰에 고발(2014년 10월 14일)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가지만, 들려온 소식이라고는 라응찬 전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에게 3억 원을 전달한 사건에 대해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소식이 전부입니다.
검찰은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 진실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무혐의 처분부터 한 것입니다. 라응찬 전 회장의 지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쪽에 3억 원이 전달됐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널려 있습니다. 줬다는 사람도 있고 봤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연루된 당사자들의 휴대전화 통화기록만 살펴보더라도 사실 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라응찬 전 회장의 온갖 불법 비리 의혹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중증 치매환자라고 소환조차 하지 않다가 라응찬 전 회장이 농심 사외이사로 선임돼 큰 파문이 일자 부랴부랴 소환조사를 진행하는(2015년 2월 6일) 아주 민망한 모습까지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신한사태 당시 신한은행 내부의 공작과 불법 행위는 지금까지 언론 보도와 정치권의 문제 제기를 통해서도 여러 차례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당시 라응찬 전 회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등이 주도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그 측근들을 몰아내기 위해 기획 고소를 강행하면서,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 쪽은 억지 증거 수집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조회하고 계좌추적까지 자행한 것도 모두 사실로 확인됐습니다(금감원 2013년 7월 조사 결과 등)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까지도 신한은행에서 고객들에 대한 계좌를 불법적으로 조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로 2015년에만 최소한 4인의 피해자가 이 같은 사실을 공익 제보해주었습니다. 금융기관의 해서는 안 되는 이 같은 범죄 행위가 신한사태 전후해서부터 지금까지 자행되고 있음에도 금융감독 기관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고(금감원이 2013년 7월에 신한금융지주와 신한은행의 불법행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솜방망이 징계를 한 후인 2013년 가을에도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한은행의 대규모 고객계좌 불법 조회행위에 대한 공개적인 폭로가 있었고, 2014년 10월에는 ‘신한은행 비대위’ 문건까지 공개됐고, 새로운 피해자들의 경우 최근까지도 금감원에 지속적으로 진정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은 지금까지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음), 검찰은 사실상 봐주기 수사와 비호 행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 기관과 사법 당국의 이와 같은 대응은 이미 발생한 수없이 많은 국민들의 피해뿐만 아니라 수천만에 이르는 신한금융 거래 고객의 잠재적 피해를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라응찬 전 회장이 20여개가 넘는 차명계좌로 거액의 비자금을 운용해왔고, 또 이 돈의 일부로 자기회사 주식을 거래한 증거까지 나왔지만, 검찰은 이 부분의 수사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내부자 제보 등으로 확보한 관련 자료들을 모두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가 신한은행과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 간의 불법․특혜 대출 혐의에 대해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전혀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2015.5.13.일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 최수현 전 금감원장,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 등 고발)
지금이라도 금융감독 기관과 사법당국이 신한사태를 전후해서 드러난 라응찬 전 회장의 불법행위와 신한사태 관련 신한금융지주․신한은행 측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이를 위해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9월 3일(목) 오전 10시 30분,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하여, 서울중앙지검 담당 조사부에 대해 대검 감찰을 요청할 예정이며, 최근까지도 발생한 신한은행의 고객에 대한 계좌 불법조회의 피해자 4인을 대신해 3차 고발을 진행했습니다.
□ 별첨 목록
1. 라응찬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조사 관련 경과
2. 라응찬․이백순에 대한 추가 고발장(1차 고발장)
3. 서진원 전 신한은행장 등에 대한 고발장(2차 고발장)
4. 라응찬 등의 범법행위 확인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보도자료(2013년 7월)
2011년 한양경성서울 600년 역사도시를 걷는다 2012년 100년, 남산의 역사를 걷는다 2013년 낙산. 그리고 동대문의 기억 2014년 백악아래 펼쳐진 600년 수도 서울의 중심 그리고 2015년 역사도시 서울, 그리고 서촌의 근대적 변화 2011년부터 시작된 서울KYC 역사도시 걷기 시민강좌가 올해 5회째를 맞이했습니다.
한양도성 안을 걸으며, 역사도시 "서울"을 이해하는 강의와 답사로 시작해서 매년 한양도성의 남쪽, 동쪽, 북쪽을 거쳐 2015년 올해는 한양도성의 서쪽 안팎을 주제로 했습니다.
3번의 실내강의와 3번의 현장답사! 최근 "핫플레이스"가 된 상촌-웃대-서촌-세종마을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요? 작은 교육장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원들과 시민들이 신청해주셨습니다.
현대에 와서 "서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누가 살았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전우용 선생님이 첫강의를 열어주셨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서촌"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과거의 서촌과 다르고, 정확한 위치와 명칭은 아니라고 합니다.
[참고] 북산 밑을 북촌, 남산 밑을 남촌, 낙산 근처를 동촌, 서소문 내외를 서촌, 장교, 수표교 어름을 중촌, 광통교 이상을 우대, 효교동 이하를 아래대, 강변을 오강, 성밖 사면 십리 이하를 내자(字內라 함은 서울 성벽에 천지현황의 순으로 어느 점으로부터 어느 점까지의 간은 천자구역 혹은 지자구역이라 하여 그 문자와 문자의 간을 각 군영에서 분담 수비한 고이다)라 하여 동서남북의 네 촌(통칭 왈 四山밑)에는 양반이 살되 북촌에는 문반, 남촌에는 무반이 살았으며, … 西村에는 西人이 살았으며 그 후 서인이 다시 노론 소론으로 나뉘고, 동인이 다시 남인 북인 또 대북 소북으로 나뉨에 미쳐는 서촌은 소론, 북촌은 노론, 남촌은 남인이 살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실은 소론까지 잡거하되 주로 무반이 살았으며 그리고 동촌에는 小北, 중촌에는 중인, 우대는 육조 이하의 각사에 소속한 吏輩 庫直 족속이 살되 특히 茶洞, 相思洞 등지에 商賈(통칭 시정배)가 살았고 아래대는 각종의 軍屬(장교 집사등류)이 살았으며 특히 궁가를 중심으로 하여 경복궁 서편 누하동 근처는 소위 대전별감(궁가의 隸屬)파들이 살고 창덕궁 동편의 원남동 연지동 근처는 武監 족속이 살았으며 동소문안 성균관 근처는 館人(속칭 관사람)이 살고 왕십리에는 軍銃(兵村)들이 살고 오강변에는 船人商賈들이 많이 살았는데 속칭 강대사람이라 함은 강변에 사는 사람을 지칭함이었다. (이중화, ‘京城 町洞名의 由來及今昔의 比較’ “別乾坤” 4-6, 1929.10)
조선후기, 진경산수화를 통해 인왕산아래 명소를 둘러보는 두번째 강의 "윤진영"선생님 중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사를 조직하고, 공동시집을 발간하며 "중인문학"을 꽃피우던 지역 조선의 기후에 맞게, 바위산과 소나무가 멋졌던 인왕 인왕산과 그 주변 지역을 멋진 그림으로 남겼던 겸재정선의 많은 작품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따라가보는 재미있는 시간도 이어졌습니다. 수송동 계곡은 겸재정선이 남긴 그림을 기초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옛모습을 통해, 새것을 만들어가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 원형이 복원된 멋진곳이네요.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을 지나 도시 "서울"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경복궁 서쪽 지역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는 강의 "안창모 선생님" 총독부가 경복궁에 자리잡으며, 서쪽은 동척 관사를 비롯해 제법 규모있는 관사가 들어옵니다. 지금도 그 형태가 많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경무대가 청와대에 들어서면서, 북악과 인왕 아래지역은 도시 개발이 지체되고 단절도 생깁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주변 지역의 분위기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북촌에 비해 오래된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되며, 이 지역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는데. 어떻게 될까요??
현장답사도 세번 이뤄졌습니다. 그 첫번째는, 안창모선생님과 함께 대한제국의 꿈을 꾸었고 근대 이후 정치외교의 중심지였던 정동일대를 둘러봤습니다. 대한문에서 시작해서, 성공회대성당, 서울시청서소문별관 전망대, 정동,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사직동에서 마무리 했습니다. 경운궁과 대한문이 대한제국의 중심으로, 어떻게 새로운 도심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살피고 경운궁에 외국공사관이 들어서며, 맞이한 변화들. 학교, 병원, 교회 등 근대의 모습을 어떻게 지켜고 보존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 답사는 돈의문 밖, 물길(만초천)을 따라걷는 답사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시작으로 독립문공원, 영천시장, 서지西池 터, 경기감영터(적십자병원)를 지나 만초천 위에 지어 구부러진 서소문아파트, 서소문공원까지 갔습니다. 조선후기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 지역의 변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최초의 일본 공사관이 있던 지역이고, 근대적 시설도 많이 들어섭니다. 사대외교의 상징 영은문을 헐고 자주독립의 의미로 만들어진 독립문 일본에 의해 교묘하게 이용당한 '독립'의 진정한 의미와는 좀 멀기도 했습니다. 경인철도와 종로선 전차의 두선로가 교차하던 지점이라 호텔등도 생겨나고 번성했던 이곳. 만초천이 복개되면서 많은 도시의 변화들이 생겨나고 이젠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물길 위에 지어져 휘어진 모습으로 남아있는 서소문아파트가 옛지형을 상상하게 합니다.
세번째 답사는, 경복궁 서쪽의 큰 물길인 백운동천과 옥인동천 물길따라 걷는 답사입니다.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시작하면서, 내사산을 중심으로 경복궁과 종묘,사직, 육조, 종로와 운종가! 600년 계획도시 "한성"의 도시 구조를 이해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치만, 경복궁으로 흘러들어가는 대은암천 길을 따라 동척 관사 지역이었던 통의동으로 들어갑니다. 이 지역은 비교적 오래된 건물과 골목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물길이 복개되면서, 도로가 생기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길이 또 넓어지고 골목이 나뉘어지고 하는 등, 지형적 변화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옥인동은 오전인데도, 찾아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칩니다. 서울 도심에서, 오래된 과거의 풍경을 간직하며 시간의 층위들이 쌓여가고있는 지역. 또하나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오래된 풍경과 함께 그 풍경을 만들고, 지속시켜온 시간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기억해서, 역사도시 서울의 또하나의 상징으로 남는 지역이 되길 바래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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