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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역사도시걷기 시민교육 후기] 역사도시와 서촌의 근대적 변화

지역

[2015 역사도시걷기 시민교육 후기] 역사도시와 서촌의 근대적 변화

익명 (미확인) | 토, 2015/11/07- 16:05
"600년 역사도시를 걷는다"

2011년 한양경성서울 600년 역사도시를 걷는다
2012년 100년, 남산의 역사를 걷는다
2013년 낙산. 그리고 동대문의 기억
2014년 백악아래 펼쳐진 600년 수도 서울의 중심
그리고
2015년 역사도시 서울, 그리고 서촌의 근대적 변화
2011년부터 시작된  서울KYC 역사도시 걷기 시민강좌가 올해 5회째를 맞이했습니다.

한양도성 안을 걸으며, 역사도시 "서울"을 이해하는 강의와 답사로 시작해서
매년 한양도성의 남쪽, 동쪽, 북쪽을 거쳐
2015년 올해는 한양도성의 서쪽 안팎을 주제로 했습니다.



3번의 실내강의와 3번의 현장답사!
최근 "핫플레이스"가 된 상촌-웃대-서촌-세종마을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요?
작은 교육장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원들과 시민들이 신청해주셨습니다.



현대에 와서 "서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누가 살았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전우용 선생님이 첫강의를 열어주셨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서촌"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과거의 서촌과 다르고, 정확한 위치와 명칭은 아니라고 합니다.

[참고]
북산 밑을 북촌, 남산 밑을 남촌, 낙산 근처를 동촌, 서소문 내외를 서촌,
장교, 수표교 어름을 중촌, 광통교 이상을 우대, 효교동 이하를 아래대, 강변을 오강,
성밖 사면 십리 이하를 내자(字內라 함은 서울 성벽에 천지현황의 순으로 어느 점으로부터 어느 점까지의 간은 천자구역 혹은 지자구역이라 하여 그 문자와 문자의 간을 각 군영에서 분담 수비한 고이다)라 하여
동서남북의 네 촌(통칭 왈 四山밑)에는 양반이 살되 북촌에는 문반, 남촌에는 무반이 살았으며, …
西村에는 西人이 살았으며 그 후 서인이 다시 노론 소론으로 나뉘고,
동인이 다시 남인 북인 또 대북 소북으로 나뉨에 미쳐는 서촌은 소론, 북촌은 노론, 남촌은 남인이 살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실은 소론까지 잡거하되 주로 무반이 살았으며 그리고 동촌에는 小北, 중촌에는 중인,
우대는 육조 이하의 각사에 소속한 吏輩 庫直 족속이 살되 특히 茶洞, 相思洞 등지에 商賈(통칭 시정배)가 살았고
아래대는 각종의 軍屬(장교 집사등류)이 살았으며 특히 궁가를 중심으로 하여
경복궁 서편 누하동 근처는 소위 대전별감(궁가의 隸屬)파들이 살고
창덕궁 동편의 원남동 연지동 근처는 武監 족속이 살았으며
동소문안 성균관 근처는 館人(속칭 관사람)이 살고 왕십리에는 軍銃(兵村)들이 살고
오강변에는 船人商賈들이 많이 살았는데 속칭 강대사람이라 함은 강변에 사는 사람을 지칭함이었다.
(이중화, ‘京城 町洞名의 由來及今昔의 比較’ “別乾坤” 4-6, 1929.10)



조선후기, 진경산수화를 통해 인왕산아래 명소를 둘러보는 두번째 강의 "윤진영"선생님
중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사를 조직하고, 공동시집을 발간하며 "중인문학"을 꽃피우던 지역
조선의 기후에 맞게, 바위산과 소나무가 멋졌던 인왕
인왕산과 그 주변 지역을 멋진 그림으로 남겼던 겸재정선의 많은 작품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따라가보는 재미있는 시간도 이어졌습니다.
수송동 계곡은 겸재정선이 남긴 그림을 기초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옛모습을 통해, 새것을 만들어가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 원형이 복원된 멋진곳이네요.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을 지나 도시 "서울"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경복궁 서쪽 지역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펴보는 강의 "안창모 선생님"
총독부가 경복궁에 자리잡으며, 서쪽은 동척 관사를 비롯해 제법 규모있는 관사가 들어옵니다.
지금도 그 형태가 많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경무대가 청와대에 들어서면서, 북악과 인왕 아래지역은 도시 개발이 지체되고 단절도 생깁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주변 지역의 분위기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런 이유로 상대적으로 북촌에 비해 오래된 골목길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되며, 이 지역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는데. 어떻게 될까요??



현장답사도 세번 이뤄졌습니다.
그 첫번째는, 안창모선생님과 함께
대한제국의 꿈을 꾸었고 근대 이후 정치외교의 중심지였던 정동일대를 둘러봤습니다.
대한문에서 시작해서, 성공회대성당, 서울시청서소문별관 전망대, 정동,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사직동에서 마무리 했습니다.
경운궁과 대한문이 대한제국의 중심으로, 어떻게 새로운 도심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살피고
경운궁에 외국공사관이 들어서며, 맞이한 변화들.
학교, 병원, 교회 등 근대의 모습을 어떻게 지켜고 보존할 것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 답사는 돈의문 밖, 물길(만초천)을 따라걷는 답사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시작으로 독립문공원, 영천시장, 서지西池 터,
경기감영터(적십자병원)를 지나 만초천 위에 지어 구부러진 서소문아파트,
서소문공원까지 갔습니다.
조선후기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 지역의 변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최초의 일본 공사관이 있던 지역이고, 근대적 시설도 많이 들어섭니다.
사대외교의 상징 영은문을 헐고 자주독립의 의미로 만들어진 독립문
일본에 의해 교묘하게 이용당한 '독립'의 진정한 의미와는 좀 멀기도 했습니다.
경인철도와 종로선 전차의 두선로가 교차하던 지점이라 호텔등도 생겨나고 번성했던 이곳.
만초천이 복개되면서 많은 도시의 변화들이 생겨나고 이젠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물길 위에 지어져 휘어진 모습으로 남아있는 서소문아파트가 옛지형을 상상하게 합니다.



세번째 답사는, 경복궁 서쪽의 큰 물길인 백운동천과 옥인동천 물길따라 걷는 답사입니다.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시작하면서, 내사산을 중심으로 경복궁과 종묘,사직, 육조, 종로와 운종가!
600년 계획도시 "한성"의 도시 구조를 이해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치만, 경복궁으로 흘러들어가는 대은암천 길을 따라
동척 관사 지역이었던 통의동으로 들어갑니다.
이 지역은 비교적 오래된 건물과 골목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물길이 복개되면서, 도로가 생기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길이 또 넓어지고
골목이 나뉘어지고 하는 등, 지형적 변화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옥인동은 오전인데도, 찾아오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칩니다.
서울 도심에서, 오래된 과거의 풍경을 간직하며 시간의 층위들이 쌓여가고있는 지역.
또하나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오래된 풍경과 함께 그 풍경을 만들고, 지속시켜온 시간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기억해서, 역사도시 서울의 또하나의 상징으로 남는 지역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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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015년 역사도시 걷기 시민강좌에 관심갖고 참여해주신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새로운 주제로 도시를 걸으며
역사를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준비하겠습니다.

다시한번, 함께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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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11월02일부터 도성길라잡이 8기라는 이름으로 20명의 예비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이
도성길라잡이가 되기 위한 첫 단계인, 기본교육중에 있습니다.
실내강의와 현장답사로 이루어진 장장 8주간의 교육이 어느덧 7부능선에 다다랐습니다.

7부 능선까지 어떻게 교육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시쥬?

첫 수업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권력이 우리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고대역사부터 조선의 역사까지
다방면으로 살펴보는 시간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한양도성의 구성과 변천과정을 통해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가 된 배경, 공간구조의 의미,
한양도성의 위상과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내사산과 내수,그리고 궁궐과 종묘사직,성곽을 애니어그램으로 그려도 보고,

문화유산을 해설하는 사람은 정확한 근거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뼈있는 말씀까지,
홍순민 교수님의 애정넘치는 강의는 10시를 넘어 2교시(?)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도성길라잡이의 해설에서 빼놓을수 없는것이 지도입니다.
수선전도부터 일제강점기의 지적도까지 한양도성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지도입니다.
지도는 단순히 위치와 방향에 대한 정보를 담은것이 아닌,
당시의 세계관과 철학 그리고 과학과 기술력 등을 담아놓은 그 시대를 나타내는 총체적 산물임을
양보경 교수님과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됩니다.
더욱 감동인 것은 책속에서만 보던 대동여지도의 실사판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동여지도를 다 펼치면 4층 정도의 높이여서 다 펴보지는 못했지만, 작은 책 속의 지도가
4층높이의 지도라는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저런 지도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경외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변천과정도 살펴보았습니다.
서울은 자연을 품에 안고 유교이데올로기를 건축과 도시공간을 으로 상징화한 계획도시이며,
청계천을 품고 있는 인구 십만의 도시에서 현재는 한강을 품고 있는 인구 천만의 도시로 성장해 온 과정을
살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매번 강사선생님들의 강의는 10시쯤에 마칩니다. (원래는 저녁9시 30분인데 말이죠)
늦게까지 강의를 해주시는 강사선생님께 감사한 마음도 들고,
또 길어지는 강의시간에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들어주는 도성길라잡이 8기 선생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실내강의를 통해 한양도성을 만났다면, 이젠 직접 한양도성을 만나러도 갑니다.
현장답사가 함께 이루어지면 확실히 실내강의의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현장답사가 시작되면, 일주일에 2번의 실내강의와 1번의 현장답사가 있으니,
생활인으로써는 제법 힘든 일정이 시작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첫번째 현장답사는 인왕구간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한양도성의 정문 숭례문에서 시작해서 성곽이 사라진 정동구간을 거쳐,
인왕산을 넘어 윤동주시인의 언덕까지 오는 동선입니다.

한양도성을 쌓았던 백성들의 고단했던 삶에 대해,
그리고 지금 우리의 현재모습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메세지를 던져주는 쌍방향 현장강의입니다.


이맘때면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서둘러 인왕산을 오르기시작했지만, 내려올때는 어둑어둑해졌습니다.
다행이 날씨가 좋아서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산에 올라가면 제법 추운데, 해설 하나하나
열심히 메모하고, 질문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현장답사를 진행하다보면, 중간에 당이 떨어져서 집중도가 약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사무국에서는 영양갱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8기 선생님중 한분이 사과즙과 초코렛을 하나하나 정성껏 팩킹을 해서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2리터짜리 보온병에 코코아를 타오셔서 함께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아휴~손도 크신 우리 8기 선생님입니다.


4주간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현장답사는 인왕구간에 이어,
백악구간을 답사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후 남북 대치상황속에서 1968년 1.21 사태와 서울의 변화, 지금의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의견등등 ... 

현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백악구간은 현재 탐방로 정비공사로 인해,
시민안내동선이 아닌, 백사실 계곡을 지나는 우회동선으로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한양도성을 외곽에서 바라볼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지요.
신분증을 내고 출입증을 받아야 입장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못해본 아쉬움은 남지만,
도성길라잡이 하려면 이곳을 수두룩뺵빽하게 올 수 밖에 없으니
아쉬움은 다음 기회에 달래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내강의와 현장답사가 함께 이루어지니, 확실히 강의의 이해도가 높아지기도 하고
한양도성에 대한 관심의 폭도 더 넓어지는것 같습니다.
심지어 길바닥의 돌무늬만 봐도 저건 무슨 의미일까 하는 돌증독증세까지 보인다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이제까지는 한양도성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보았다면,
앞으로 남은 3주동안은
현재의 한양도성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규정하고,
문화유산으로서 지속적인 관리보존을 어떻게 할것인지..
한양도성의 미래에 대해 만나 볼 것입니다.


1년중 가장 바쁜 시기를 이곳 도성길라잡이와 함께 보내고 있는
도성길라잡이 8기 선생님들이 마지막까지 지금의 열정적인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서울KYC 도성길라잡이 8기 하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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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12/0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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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

◯ 본 연구의 목표는 미래 한국사회 핵심의제인 다문화사회로의 전환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과 방향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문화정책 실행현장에서 활동해 온 전문가와 활동가들의 평가와 성과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현재 다문화정책의 문제점과 방향을 정리했다. 또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요구와 새로운 문제의식을 담아 앞으로 10년의 다문화정책 방향을 위한 제언을 도출하고자 했다.

◯ 본 연구는 문헌분석과 심층인터뷰에 기초하여 다문화정책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현재 한국사회의 이주민 현황, 관련 정책의 성과와 문제점을 정리하고, 이주민 지원기관 및 관련 단체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문화정책 10년, 현황과 점검

◯ 2015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190만 명으로, 2014년 대비 5.7% 증가했고 최근 5년간 매년 8.6%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인구 대비 체류 외국인 비율은 3.69%에 이른다.

◯ 한국에 체류하는 이민자 중 규모가 가장 큰 집단은 이주노동자로, 2015년 말 법무부의 취업자격 체류 외국인 통계기준으로 62만5천 명이고, 그중 56만 명은 단순기능인력이다. 여기에는 방문취업 자격으로 이주한 재외동포 28만5천여 명이 포함된 것이다.

◯ 다문화정책의 주요 대상인 결혼이민자는 귀화자를 포함 30만5천 명이다. 다문화가족은 결혼이민자와 그 배우자를 포함하여 2015년 7월 기준 82만 명이며,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0년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정책은 국제결혼 및 외국인근로자 유입 증가에 대한 대응방안 차원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외국인력의 관리를 위해 외국인 산업연수생(1991년) 제도가 시행된 이래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관리 및 보호를 위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2003년 제정되었다.

◯ 1999년에는 「재외동포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을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외국국적동포를 대상으로 출입국과 체류, 취업의 자유 등 여러 특례를 규정하였다. 2004년에는 법 개정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강제이주한 재중동포, 재러동포 등도 외국동포의 범위에 포함되게 되었다. 재외동포 대상 취업관리제(2002년), 방문취업 자격 신설(2007년)도 이루어졌다.

◯ 본격적으로 다문화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이후이다. 2006년 4월,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대책”이 발표되었고, 2007년 이민자와 국민의 공존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2008년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인권문제 등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국제결혼 건전화를 목적으로 한 조치와 법률 제정도 이루어졌다.

◯ 지난 10여 년은 여러 법률과 정책 수립을 통해 다문화정책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는 성과가 있다. 특히 소극적인 차원의 통제와 관리를 벗어나 적극적인 노동인력과 인재 유치, 사회통합과 국가안전시스템 구축을 위한 공존의 방향 모색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여기에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에서 이주민의 한국사회 정착과 적응, 역량강화를 위한 각종 사업을 전개하면서 다문화사회의 인프라를 확장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문화정책은 여전히 결혼이민자를 주요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자민족 중심주의적 통합모델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다문화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미흡하며, 가족결합권이 없는 이주노동자 가정은 아예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위한 정책으로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부처간 중복지원 및 이벤트성 지원 정책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의 개념 및 범주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부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다문화정책, 미래사회를 위한 전환과 준비

◯ 비전과 전략의 부재: 전문가와 현장 활동가들은 다문화정책이 국가의 미래발전전략이라는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사회 정책의제에서 다문화정책이 차지하는 낮은 위상, 국민의 낮은 다문화 수용성이 적극적인 비전 수립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 결혼이주여성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다문화정책이 자민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어, 다문화주의적 통합의 관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그렇지만 최근 양성평등과 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정책 목표점을 수정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 전문가와 담론의 부재: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이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력에 비해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고, 다문화정책의 추진방향이나 내용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2006년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다문화정책과 관련 예산은 사회적, 문화적 차원에서 다문화에 대한 논의가 성숙되기 이전에 정부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관리와 통제 지원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전문가가 많지 않고, 정치권 또한 다문화정책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나 입장 차이를 관찰하기 어렵다.

◯ 시민인식: 다문화에 대한 시민인식의 개선은 다문화사회로의 전환과 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인식 개선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만큼 관련 사업의 추진도 쉽지 않지만, 그만큼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이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결혼이주민,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편견이 있지만, 적극적인 인식개선 요구와 교육활동을 통해 인식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현장 활동가들의 기대도 확인할 수 있었다.

◯ 한국인의 세계시민으로서의 인식 수준이나 다문화수용성은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5년 우리나라 성인의 다문화수용성 지수는 53.95점, 청소년은 67.63점이었고 젊은 연령대일수록 다문화 수용성이 높고, 다문화 교육이나 자원봉사 등 관련 활동 참여경험이 긍정적인 인식 제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주민과의 자연스러운 접촉과 다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 현장의 요구: 다문화정책 현장 활동가 인터뷰를 통해 이주민의 역량강화 지원, 이를 위한 상담과 성장의 기회 제공,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한 정책 등 다문화정책의 내실화 및 실효성 강화, 곧 닥쳐올 미래에 대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먼저, 이주민의 역량강화를 위한 지원 및 정책실행 과정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혼이주여성 대상 정책의 경우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생애주기별 지원 정책도 필요하지만, 정착 기간에 따른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초기정착 이후에 이주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주체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이루어지고, 그에 맞춰 정책과 사업의 내용이 개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역량강화와 실효성 측정은 상담 지원과도 연결된다. 이주 이후 삶의 문제 해결 및 갈등의 극복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상담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 경우가 많아 상담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꾸준한 검토가 필요하다.

◯ 현재의 다문화가족자녀정책은 학령기 이전 사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다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다문화가족의 자녀들의 교육과 진학, 취업, 그리고 성인으로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문화가정의 부모-자녀 관계 형성도 중요한 문제로, 자녀훈육법의 문화적 차이와 적응, 한국 교육 환경과의 거리감 및 정보력 부족 등의 문제를 고려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새로운 시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 변화하는 지형들: 지금까지 이주민들은 집단적으로 가시화되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개개의 시민, 지역주민, 이웃으로서 우리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을 지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숙하는 것과 이주민 문화공동체의 성장이 동시에 추구되어져야 한다. 또한 정착 이후의 생애주기 변화, 이주민들 내 세대 변화, 본국으로부터 받는 영향과 같은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잠재적 시민주체로서 가장 주목받는 정책대상이다. 다문화청소년의 종단연구(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1~2015) 결과는 대체적으로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언어적 제한으로 인해 가정에서 충분한 심리, 정서 및 학습을 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이는 학업성취에도 반영된다.

◯ 지역과 다문화정책: 지역은 노동, 거주, 생활의 장으로써 직접적인 다문화공간이 된다. 지원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민간단체들과 갈등 또는 협업하거나 파트너가 되는 등 다양한 관계를 맺고, 중앙정부의 다문화정책을 지역의 수요와 특성에 맞추어 시행해야 하는 점에서 지자체의 역할은 크다.

◯ 참여와 관계맺기: 지원과 복지사업 중심의 다문화사업은 ‘참여’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주민참여 및 주민자치에 이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식, 관계맺기를 통한 성장, 지속적인 교육과 멘토링 등에 대한 모색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 다문화인식교육과 시민교육: 이주민들이 학교, 직장,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관계와 참여의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문화인식교육과 생활 · 시민교육이 중요하다. 각 사회기관에 걸쳐 교육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매뉴얼을 갖추고, 다양성, 인권, 양성평등의 내용이 반영된 지침과 가이드 마련이 필요하다.

결론 및 제언

◯ 결론: 현 정부 들어서 다문화정책에 관한 논의는 거의 사라졌다. 과거 쏟아져 나오던 다문화정책에 비해 현재는 관심 갖는 이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각종 지원사업들도 중단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은 자라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다문화인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저성장 · 불평등사회가 되어가는 이런 때일수록 제대로 된 다문화와 이주정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다문화주의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 가치들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논쟁하고 합의해야 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 또한 다문화 논의가 국가의제 정책담론의 영역에서만 이뤄지는 데 그쳐서는 안되며,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 실천을 이뤄야 한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다문화 2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될 때쯤에는 완만해진 정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 10년의 다문화사회를 준비해가야 할 것이다.

◯ 제언: 시민들과 함께 사회혁신을 위한 우리 사회 대안을 모색하는 ‘싱크앤두(Think&Do)탱크’ 희망제작소는 다문화정책 담론 형성을 위한 논의의 장 마련이 시급하다고 판단, 다문화인식교육의 다양한 툴과 방식에 대한 연구를 제안한다. 또한, 시민들의 문화다양성에 대한 의식을 높여 우리 사회가 인종적 우월의식이나 차별, 소수자에 대한 억압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문제의식을 발견해야 함을 상기시켜야 한다. 또한, 시민들과 함께 찾아가는 다문화 시민의식 개선 프로젝트,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경계 없이 이웃과 주민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방식의 커뮤니티 실험 기획을 제안한다.

화, 2016/12/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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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근현대사 아카데미 실내강의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코리아연구원 김창수 원장님과 함께했습니다.

"통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생기시나요?
지금 통일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번 시간을 통해 수강생들의 가슴을 뛰게 해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강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통일은 왜 필요할까요?
통일이 필요한 이유는 다섯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전쟁 위협 제거와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과반수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고, '전쟁 위협 제거'와 같은 응답이 늘었습니다.

사실 현재는 통일 운동이 많이 어려운 사정입니다.
정치적으로 남북관계는 멈춘지 오래되었고,
남북 화해와 협력를 위한 민간교류도 거의 없습니다.

군부독재는 공안정국을 만들어 유지되었고, 반공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했기때문에
"통일"은 거의 금기시되었습니다.
통일 운동은 4.19혁명 이후 그리고 6월 항쟁 이후
민주화된 공간이 만들어지고나서야  활발해졌습니다.

지금을 어떤 모습일까요?
김대중, 노무현 시절의 두차례 남북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었던
금강산과 개성 관광은 닫혔고, 개성공단은 멈췄습니다.
지금도 남북한의 정치적 협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사회는 '종북몰이'가 유행이 되었고,
이해할 수 없는 북한의 행태는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로인해 북한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졌고,
통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니, "통일"에 대한 공감대는 더욱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통일담론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말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한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북한을 통해 중국, 러시아와 대륙으로 연결되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측면으로 본다면 이는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통일은 과정이기 때문에, 준비와 실행이 필요합니다.

우선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은 안보와 경제, 즉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져야 안보와 경제 사이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중국을 만들기 위해 2013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일대일로 구상처럼,
한국판 일대일로 구상이 필요합니다.
환황해권, 환동해권을 형성해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연결하는
아시아 물류, 에너지 공동체를 이룰 것을 제안합니다.
북한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 가는 철도가 연결되면 물류비용이 절감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북한을 통해 들어온다면 에너지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습니다.

북한을 통해 대륙과 연결된다면
일제강점기 손기정, 나혜석이 그랬듯, 기차를 타고 유럽에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기차를 타고 유럽에 간다면, 그들의 상상력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화려가 수사를 가득담은 비전은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실현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지금 정부는 단지 "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남북을 빌미로 동북아시아에서 표출되는 현재 상황에서,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가져야 합니다.
우선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이룬다는, 경제를 통한 공감대와 협력을 모으고,
거기에서 반전과 평화의 가치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얼마전 전경련은 남북경제교류 신5대 원칙을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주요 2개국(G2) 부상, 북·중·러 접경지역 개발, 북한의 시장화 흐름 등
상황이 변했기 때문에, 남북 경제협력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인 것입니다.

남북경제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진다면,
남북간의 불필요한 군사적.정치적 긴장을 낮추고
반전평화의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진다면, 2045년 광복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이 세계 5강 국가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에 관계없이 지속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꿈과 비전을 가지고
문제점 또한 비판할 수 있는 열린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열린 토론이 풍성해질때,
통일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펼쳐질때,
사람들과 통일을 이야기하면  "다시" 가슴이 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김창수 원장님의 강의를 통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좀더 넓은 범위에서 한반도를 바라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언젠가 기차를 타고 육로를 따라 유럽 여행을 가게 될 날을 상상해보게 됩니다.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신 김창수 원장님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8월 근현대사 아카데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8월 근현대사 아카데미(실내강의 2회)
8월 20일(목) 해방70년! 고통은 계속된다(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8월 27일(목) 동아사이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밑그림(성균관대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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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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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무국에는 여성활동가만 4명 있습니다.
3명의 활동가는....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찌는 체질이고,
오로지 한명의 활동가만 이세돌처럼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빠지는 체질입니다.
그 세명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사는지, 살이...점점..찌기 시작하여..
뭘하든 입고갈 옷이 없어서 걱정이 한가득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덧 본격적인 현장활동의 시기를 맞이하였고,
점점 노쇠해지는 무릎과 어깨 그리고 허리를 이대로 두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이어트 결심....
다이어트 시작전에 먹고싶은 것들을 마지막으로 먹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만찬을 사무국 활동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마지막 만찬답게 쉐프를 한명 모셨습니다.
만찬 메뉴는 쓰끼야끼, 1643년에 간행된 일본 요리서에도 나온다는 그 쓰끼야끼입니다.
우리가 모신 쉐프는 우 ! 미 ! 정! 쉐프.
재료는 손질 후 전골냄비에 가지런히 담고,
그 안에 소고기를 넣어 간장과 설탕으로 간을 맞추는 것이라며,
두팔 걷어부치고 우쉐프가 요리를 시작...
바글바글 끓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시식의 시간


우쉐프는 정말 쉐프다웠습니다.
요리라는게 어렵게 하면 한없이 어려운데,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를 활용.
절대 위험한 칼따위로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요리철학을 갖고 있는 우리 우쉐프....



이 익힌 채소와 고리를 날달걀에 묻혀서 먹으니...
햐~~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하고 그리고 채소와 고기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그런 요리였습니다.
호호호 불려 먹다보니, 어느덧 다 먹어갔고 마지막 우동코스가 남아 있었습니다.



남은 육수에 우동을 넣어주었고, 우동까지 먹고나니 세상이 참 아름답더군요.
저 쫄깃한 우동까지 먹고나니 설겆이가 한가득입니다.
그러나...우리 쉐프는 쉬지 않고. 이왕하는것 쉐프는 마무리도 잘해야 한다며...
직접 설겆이를 했습니다. 우와~ 멋지죠?



물론 뒷설겆이는 다른 활동가들이 나눠서 했습니다.
앗..그런데 우리 우쉐프 마지막 실수 한가지...장보기를 너무 간만에 하다보니....



쑥갓사러 가더니 치커리 사왔길레, 우리 샐러드까지 해먹는거냐 했더니,
쑥갓아니냐며...앟하하하하...귀엽...

여하튼 사무국은 오늘 점심 마지막 만찬을 끝으로 다음주부터 다이어트 돌입합니다.
물론 건강해지기 위해 하는 다이어트입니다.

더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서울KYC 너른마당에서 만나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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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3/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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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KYC의 소중한 분들과 함께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분 또한 서울KYC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계신 분입니다.
도성길라잡이로 활동하고 계시고, 올해는 목멱구간 팀장을 맡고 계신
김창섭 회원님을 만나봅니다.

김창섭 회원님,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창섭입니다. 경주 시골에서 티없이 맑고 철없던 아이로 자란 진짜 촌놈입니다.
20대에 서울로 유학와서 대학시절 4년 내내 우리 문화와 민주화에 대한 고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 이후 직장생활하다가 3년 동안 영국에 유학을 갔다 온 후
최소한의 의미 있는 활동을 하려고 하던 차에 KYC활동에 겨우 참여하는 정도로 지내왔습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느지막이 결혼하여 아들딸 두명의 자녀를 가진 평범한 가장이며 김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제 별명은 중학교 땐 권투선수 장정구, 서울오기 직전에는 번데기, 대학교때는 하회탈이었습니다.
모두가 이마에 있는 주름살과 관련되어 있지요.



10년 넘게 서울KYC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서울KYC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영국에서 지내면서 가끔 영국 주변과 유럽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드신 분들이 자기 주변의 문화재(대부분 성당이나 성)에 자긍심을 가지며 설명을 하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난 우리 문화에 대해서 뭘 알까 라는 의구심을 가졌고
귀국과 동시에 궁궐길라잡이라는 것을 모집하게 되는 것을 보고 신청하여 KYC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서울KYC 활동을 돌아보았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끄럽지만 사실 지금까지 KYC 활동을 그다지 열심히 하지 못하고
그저 길라잡이 활동에 참여하는 수준이어서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도 서울KYC의 가장 좋은 점은 활동가 중심의 조직이 아니라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는 나눔의 실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후원회원이 아니라 거의 모든 회원들이 활동하는 그런 조직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궁궐길라잡이 했을 때 많이 챙겨주었던 선배, 동기들..
그때의 끈끈했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후 도성길라잡이가 되고 난 뒤 또한 그런 모습이었구요. 순성놀이는 또하나의 큰 기억을 주고 있습니다.



도성길라잡이 6기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신데요,
회원님이 느끼시는 도성길라잡이 활동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도성길라잡이를 통해 도성을 알게 해줘서 기뻤고, 그걸 통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같이 함께하고 있는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이 옆에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저 가기만 해도 좋은 도성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정말로 좋은 길라잡이 선생님들과 도성의 모든 것을 시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회원님께 도성은 어떤 의미이고, 도성에서 시민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도성은 과연 서울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줍니다.
환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이렇게 좋은 곳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성은 보고 걷고 순성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감탄을 줍니다.
더 나아가 도성속에 담겨 있는 역사를 돌아보게 해주고 그 속에 있는 나의 모습 또한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미래속의 도성, 그리고 도성과 함께 할 나의 모습 또한 그려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에게 도성은 역사속의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와 함께 숨을 쉬며 미래 또한 우리와 함께 할 문화유산입니다.
많은 시민들도 도성의 과거 현재의 모습을 거울삼아
좀더 살기좋고 행복한 미래의 도시와, 그 속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꿈꿨으면 합니다.



올해 목멱구간 팀장을 맡아서 활동 중이세요!
목멱구간 팀장으로서 특별히 신경 쓰고 계신 점이 있으신가요?

올해는 우리 구간 선생님들의 좀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활동의 다변화를 꾀하고 싶습니다.
이와 더불어 신입기수 선생님들이 끈끈한 동기애를 통해 오랫동안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의 다변화를 위해서는 '남산 100년 역사탐방'과 영어안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도 단계라서 성과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신입 기수들이 동기애를 다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체시연과 스터디 모임을 같이하도록 시도하였는데 성과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목멱구간에서 6월부터 ‘남산100년 역사탐방’을 월1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소개 부탁드려요.

구간 활동이 너무 시민안내에만 치우치다 보니 시민안내가 여의치 않을 때는 참여에 제한이 있을 수 있고
시민안내 자체에도 내용이 풍부해지지 않을 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참여방법도 다양화하고 이를 통해 시민안내 내용도 좀 더 풍부해지게 하려는 의도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많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남산 주변 근현대사와 관련된 내용을 준비하여 2시간 가량의 답사로 진행합니다.
(아래 프로그램 일정 참조)

지나온 활동도 길지만, 회원님과 함께할 앞으로의 활동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KYC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열심히 하고 싶지만 개인적으로 회사도 매우 바쁘고 아들딸이 너무 어려서 쉽지가 않습니다.
소박하나마 올해 팀장하면서 활동한 내용이 향후 도성길라잡이 활동에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KYC란 _______다. 한 마디로 말씀해주신다면?

"삶의 에너지"다.

마지막으로, 서울KYC에 바라는 점이나 다른 회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서울 KYC의 회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어 참 기쁘고
활동을 통해 다른 회원분들도 만나게 되어서 또한 기쁩니다.
저 또한 생업에 바쁘다보니 많은 참여를 하지 못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을 합니다.
특히 올해 팀장을 하다보니 참여가 생각만큼 원활하지 못한 데서 오는 어려움을 좀 느끼네요.
모든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시겠지만 좀만 더 시간을 내어서
각자 활동하시는 모임에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부탁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기쁘다", "좋다", "삶의 에너지"라는 말로 서울KYC 활동을 표현해주시는 김창섭 회원님!
서울KYC 또한 회원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참 기쁘고 좋습니다.
서울KYC에서 꾸준히 삶의 에너지 얻어 가실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남산 100년 역사탐방>

1) 2016년 6월 19일(일) 오전9시30분~11시30분: 일제침략의 시작 ( ~ 1905)
코스 : 한국의 집(경무총감 관저) -> 한옥마을 -> 통감관저 터

2) 2016년 7월 17일(일) 오전9시30분~11시30분: 민족정신 말살을 위한 신사건립
코스 : 대한적십자사본관(근대건물흔적) -> 애니메이션센터(통감부 터) ->
리리초등학교(노기신사) -> 숭의여전(경성신사) -> 와룡묘 -> 한양공원

3) 2016년 8월 19일(금) 저녁 7시 ~ 9시: 경제침탈의 중심지  혼마치거리
코스 :  숭례문 -> 새로나백화점(상동교회) -> 제일은행(조선저축은행본점) ->
신세계백화점 (미쓰코시백화점) -> 한국은행(조선은행) -> 서울중앙우체국(경성우체국) ->
명동길(혼마치거리) -> 외환은행본점 (동양척식주식회사) -> 롯데백화점(식산은행)

4) 2016년 9월 18일(일) 오전9시30분 ~ 11시 30분 : 조선시대 경성드림 탐방
코스 : 호국신사 -> 해방촌 -> 서울역(경성역) -> 서울역박물관 -> 세브란스 병원

5) 2016년 11월 20일(일) 오전9시30분 ~ 11시 30분 : 사상통제
코스 : 장충단 공원 -> 수표교 -> 동대입구역 주변 동상들 -> 석호정 -> 자유센터 이승만동상


-> 박문사터(영빈관) 및 민족중흥글씨

6) 2016년 12월 04일(일) 오전9시30분 ~ 11시 30분 : 남산의 이면 (안기부 옛터)
코스 : 소방관제터 -> 교통방송국 -> 유스호스텔 -> 남산터널 -> 녹천정 -> 노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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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7/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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