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난민의 미래, 세계의 미래
특집 쫓겨나는 사람들
난민의 미래,
세계의 미래
글. 장은교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메르켈이 터키에 더러운 거래dirty deal를 제안했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2015년 10월 1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터키 방문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메르켈은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터키 대통령을 만나 “난민들이 유럽으로 넘어오는 것을 터키가 막아준다면,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이 빨리 진행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EU가입은 터키의 숙원사업이다.
2005년 10월부터 끈질기게 EU의 문을 두드렸지만 EU는 터키의 인권수준을 문제 삼아 가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터키의 EU 가입을 가장 반대한 사람이 메르켈Angela Merkel과 장-클로드 융커Jean Claude Juncker EU 집행위원장이었다. 메르켈은 10월 8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인터넷 시대에 국경 장벽을 봉쇄하겠다는 것은 환상”이라며 “유럽이 인도주의적 책임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상은 못 했지만, 최근 노벨평화상 발표 직전까지 메르켈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마더 메르켈(난민들이 메르켈에게 고마움을 담아 부르는 이름)’은 왜 변한 것일까. 지금 유럽에선 아니 세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시리아 내전에서 시작된 난민위기
유엔난민기구는 올해 들어 10월 중순까지 유럽으로 건너간 난민 수가 63만 5,498명이라고 발표했다. 올해가 다 가려면 아직 두 달이 남았지만 이미 지난해 기록(21만 6,054명)을 넘어섰다. 역사상 가장 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난민의 절반 이상(53%)은 시리아 출신이다. 2011년 3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아랍의 봄’이라 불린 민주화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시위가 격화됐고, 정부군은 공포정치를 내세웠다. 민간인 주거지까지 정부군의 ‘청소 대상’이 됐다. 내전은 4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내전으로 허약해진 시리아 영토를 파고들었다. 시리아는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됐고, 2,300만 명 국민 중 절반 이상이 집을 떠났다. 시리아인들은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서다 결국 국경을 넘었다. 10월 15일 기준으로 418만 명이 시리아 국경을 떠나 세계를 떠돌고 있다.
시리아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터키,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들이었다. 실제 시리아 난민의 95%는 주변국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의 난민캠프도 포화상태가 되면서 난민들은 다시 먼 길을 떠나게 됐다. 그렇게 선택된 경로가 ‘발칸루트’다. 터키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 프랑스, 영국까지 갔다. 최근에는 북유럽 국가에까지 난민들이 유입되고 있다.
지난 4월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인근에서 난민선이 전복돼 70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작은 배, 정원의 몇 배를 초과한 인원, 풍랑이 심한 밤바다…. 난민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배에 올랐다. 유럽 땅으로 가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지중해를 건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만 3,135명이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난민 대책에 갈팡질팡하는 유럽
사람이 죽자 유럽 정부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독일과 프랑스가 앞장섰다. 두 나라는 지난 5월 난민 4만 명을 분산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사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통하는 유로터널에 난민들이 몰리면서 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오스트리아 고속도로에선 버러진 냉동트럭에서 난민 시신 71구가 발생했다. 이들은 ‘난민장사꾼’에 속아 냉동트럭에 숨어 국경을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난민 수가 급증하고 사고가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메르켈은 “유럽의 책임”을 강조하며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올해까지 예상되는 난민 신청자 80만 명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밝히고,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난민쿼터제’를 적용해 분산수용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난민쿼터제 주장은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 국가들이 이끄는 난민정책에 반발했다. “내정간섭”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26년 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철의 장벽’을 허물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을 이끈 헝가리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국경에 레이저 철조망을 둘렀다. 불가리아도 그리스도 ‘난민 장벽’을 세웠다.
난민문제를 두고 폭발한 동·서유럽의 갈등은 유럽연합의 결속력 자체를 흔들었다.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너무 다른 경제사정과 정치현실, 문화 등 고여 있던 문제들이 터졌다. 서유럽 국가와 유럽연합 집행위는 “우리에겐 더 많은 유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당신들이 말하는 유럽은 어디냐”고 반박했다.
난민 문제를 두고 갈등하던 유럽은 3살 시리아 난민 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 앞에 잠시 숙연해졌다. 시리아를 떠나 터키에 머물던 쿠르디 가족은 그리스로 가는 난민선을 탔다 사고를 당했고, 3살 쿠르디는 9월 2일 새벽 터키의 보드룸 해변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모습으로 발견됐다.
1주일 뒤 열린 유럽의회 회의에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부유한 땅이 됐다”며 “유럽이 난민들의 희망이 됐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융커는 유럽인들도 원래는 난민들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사상 최대로 급증한 난민을 “두 팔로 안자”고 말했다. 이어진 회의에서 EU는 22개국이 12만 명의 난민을 각국의 경제력 등을 따져 분산 수용하는 ‘난민쿼터제’가 통과됐다.
난민의 미래는 세계의 미래
진통 끝에 통과됐지만 억지로 난민을 배당해 떠안기는 방법은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하루에도 수천 명 이상씩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서유럽 국가에서도 반反난민정서가 퍼지기 시작했다. “난민을 다 받아들이면 나라 망한다”는 주장과 함께 “난민들은 범죄자, 사회불안 요인”이라는 주장이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극우 정치인들은 반反난민정서를 활용해 정치브랜드화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에선 지난 6월 반反이민정책을 내세운 덴마크국민당이 승리했고, 폴란드에서는 5월 ‘반反EU’를 강조한 극우성향의 대통령이 당선됐다. 10월 25일 총선을 앞둔 폴란드 집권당 대표는 “난민들은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말을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전 유럽이 난민문제로 들썩이는 동안, 난민수용정책을 강조하던 EU위원회도 슬그머니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나온 방법이 시리아 난민 최다보호국인 터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터키는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것을 막는 대신 30억 유로의 지원금과 함께 터키 국민들이 무비자로 유럽국가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여기에 EU가입 승인까지 요구했다. EU는 돈을 주고, 10년 동안 막았던 EU의 문을 개방해서라도 터키에게 부담을 넘기고 싶어한다. EU 가입국들이 분산수용을 해도 해결하기 힘든 난민의 흐름을 터키가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터키가 생존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난민들을 가둬둘 권리가 있을까. 난민들은 터키에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앰네스티는 “EU가 자국의 국경선을 지키기 위해 난민들의 인권을 내팽겨쳤다”고 비판했다.
지난 9월 30일 러시아가 시리아 공습에 나서면서 시리아와 중동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더욱 복잡해졌다. 러시아는 IS를 물리치려 나섰다고 했지만, 아사드 정권을 비호하고 있다. 아사드 정권의 퇴각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은 러시아 공습을 비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막을 명분은 없다. 이란, 시리아, 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국가들의 팽창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수니파 아랍국가들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럽도 아사드 정권을 살인정권이라 비판하며 규탄했지만, 유럽엔 당장 아사드가 실각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든 난민이 줄어드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이끄는 국제연합군은 1년 넘게 IS격퇴에 나섰지만 큰 소득이 없다. 미국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고 유럽이 턱을 괸 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사이, 시리아는 더욱더 죽음의 땅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IS주둔지와 시리아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주둔지를 무차별 폭격하고 있다. 민간인 사망자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유럽 언론들은 난민위기를 2차 대전 이후 유럽이 당면한 최고의 난제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늘 시리아 난민 사태를 보고 있는 세계인들의 질문은 난민의 행렬을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가, 난민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멈춰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역사는 다른 질문으로 오늘의 세계를 평가할 것이다. 전쟁으로 국경을 넘은 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들을 2015년의 세계는 어떻게 보호했고, 어떻게 존중했는가. 난민의 미래에 세계의 미래가 달려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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