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에 엄청난 국민적 저항 불러 일으켜
도진순 교수 “이승만·김구 주장 왜곡 전복돼 개탄… 1919년 임시정부 법통 이어받았다는 이승만의 기억”
지난 15일 광복절 73주년을 앞두고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과 보수진영에선 ‘건국 70주년’을 주장하며 또 해묵은 이념 논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토록 치켜세우는 이승만 전 대통령마저 ‘1919년 건국’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는 역사학계 발표가 계속 나오면서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제정 요구는 더욱 무색해졌다.
지난 22일 한국근현대사학회에서 주최로 동국대 서울캠퍼스 법학관에서 열린 ‘독립운동, 그 기록과 기념의 역사’ 학술회의에선 최근 언론 보도로 주목을 받았던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60)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도 교수는 이날 발표문에서 “나는 국정교과서도 반대했고, 1948년 8월15일 건국절 지정에도 전혀 지지한 바 없다”면서 “그간의 ‘건국절’ 등 논쟁에 일절 참여하지 않은 것은 논쟁이 이념적 단죄에 치우쳐 있었고, 이승만과 김구의 주장이 왜곡·전복되는 개탄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이날 도 교수 주제발표의 요지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야말로 ‘1919년 건국, 1948년 정부수립’이라는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는 데 있다.
1948년 당시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행로는 적대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하는데 이승만은 5·10 총선을 주도하고 5월31일 국회의장으로서 국회 개회 식사를 발표했다. 이 개회 식사에서 이승만 의장은 “1919년 3월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가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다”고 말한다.
“이승만이야말로 1919년 건국론 창시자이자 주도자”
이승만의 이런 입장은 그가 주도한 제헌헌법 전문에 그대로 반영됐다.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나온다.
도 교수는 “이승만은 1919년 수립된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니고 ‘대한민국’이며, 그래서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은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 것으로 표현했다”며 “‘1919년 건국론’은 기나긴 논쟁에서 오해돼 온 것처럼 김구와 임시정부가 주도하고 이승만도 그렇게 따라간 것이 결코 아니라, 이승만이야말로 이러한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고 강조했다.

▲ 지난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 포스터
도 교수에 따르면 외려 김구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1년 11월28일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 전국적으로 보통선거가 실시돼 정식 정부가 수립되는 2단계를 건국의 핵심 기준으로 봤다. 이러한 건국론을 ‘임정법통론’이라고 불렀다. 김구는 1945년 귀국 이후 신탁 정국을 맞아 임정의 직접 정권 장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건국강령’의 원칙에 따라 비상국민회의 등을 통한 과도정권 수립도 이뤄내지 못했다.
도 교수는 “김구와 임시정부는 해방 이후 임정법통론에 의한 ‘건국강령’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1948년 5·10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5월 말 국회는 개회했고 이승만 주도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는 전문이 헌법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 교수는 “결국 이승만이 주도한 ‘1919년 건국론’은 김구와 임정의 참여 없이도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기억 방식이고, 현재의 미국과 미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민주주의를 시행했다는 기억 방식”이라며 “대한민국이 단독정부나 분단국가가 아니라 한반도 유일의 중앙정부라는 기억 방식이며 남한에 의해 통일돼야 한다는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새로 제정하자는 문제는 기억·기념의 문제이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1948년 8월15일 건국됐다는 사실과 그 건국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기억·기념하는가는 이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 교수는 “이제 우리의 역사 기억 방식도 단순히 친일과 반일, 우익과 좌익, 남과 북의 대립 구조로는 지난간 역사도 반쪽의 기억이 되기 쉬우며 다가오는 역사적 변화를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이제 남과 북이 소통하는 더 확대되고 열린 시야에서 100년 전의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1948년 건국절 되면 친일 반민족 세력이 ‘건국유공자’로 면죄부”
최근 건국절 논란은 심재철 한국당 의원을 주축으로 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위원회’가 지난 15일 국회에서 건국 70주년 기념식을 열면서 다시 시작됐다. 이들은 “8월15일은 광복절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의 의미로만 기념됐을 뿐, 건국에 대한 기념은 지금까지 외면돼 왔다”며 “이에 국회에서 개최되는 건국 70주년 기념식은 8월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일로서 당위성을 갖게 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역사학계에선 한국당이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또 건국절 논란을 제기하며 이념적 논쟁을 촉발해 보수 세 결집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실제 김문수 한국당 전 의원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전쟁으로 인한 위기가 극도로 악화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전 의원은 “역사전쟁에서 청와대는 권력을 이용해 모든 언론을 다 자기편으로 만들어 정통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애국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완전히 잘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우리 정치는 여전히 분열의 정치, 정쟁만 일삼는 비생산적 정치가 기승부리고 있다”며 “한국당은 여전히 ‘48년 건국론’을 들먹이며 해묵은 이념 논쟁을 시도하고 있다. 광복절을 갈등의 장으로 만들어 보수 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수 진영이) 계속 건국일을 강조하는 배경엔 결국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과거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들이 제출했던 법률안만 보더라도 “1945년 8월15일부터 1948년 8월14일까지 신탁통치를 반대하거나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해 활동한 건국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해 서훈과 응분의 예우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렇게 되면 1945년 이후 1948년 정부수립을 주도한 반공 세력들이 ‘건국유공자’가 되면서 역사적 단죄를 받아야 할 친일 반민족 세력 상당수가 면죄부를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건국이라는 건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역사적 과정으로 봐야 하고 1948년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남북이 언젠가 하나로 통일되면 그 전체를 건국의 과정으로 부를 것인지도 논의가 될 것”이라며 “결국 이는 실천적으로 해소할 부분이지 논쟁을 통해 해소될 부분은 아니다. 분단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8-08-25> 민중의소리
삼가고인의 임실호국원으로 이사가심을 위로 드림니다.
이수미!
김인순!
명곡을 생각하며,
총동문화체육대회에서는
ㄴㅓ의 입상 볼수 익게째.
(너거한테신세만지고 마산의료원의 그국장동상 오마이 한테도 몬디다 바따.)
[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역사교육위원회’의 조속한 신설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에 부쳐-
1. 오늘(8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 및 백서 발간에 맞추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의 횡포’이자 ‘교육의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역사교육 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화 추진이 “교육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교육부장관으로서 “정부 과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새로이 되새기며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2. 지난 3월 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발표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 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국정화 사건’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국정화 사건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작당하여 자행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쿠데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발표문을 접하고, 교육부가 과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을 헌법을 유린한 중차대한 사안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 가장 심각한 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고·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 의뢰 대상에서 배제하였다는 사실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한 다음, 여당(새누리당),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총동원하여 추진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가)편찬기준 수정요구, (나)편찬심의위원 선정 개입 (다)집필진 선정 등 교과서 편찬과 내용 수정과 같은 세부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 박근혜 전 대통령임이 명약관화한데도 교육부는 그를 수사의뢰 대상에서 제외하는 납득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였다.
4. 다음 국정농단에 동조한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처벌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교육부가 청와대의 지시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가)국정화 추진과 실행 계획을 수립‧추진하였으며, (다)청와대의 국정화 논리를 홍보하고, (다)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관을 동원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하였다’고 하였다. 교육부는 청와대의 국정농단에 자발적‧적극적‧반복적으로 동조한 ‘공동정범’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화 방침을 결정할 당시 교육부 수장이었던 황우여 장관이 수사의뢰 대상에서 빠졌다. 게다가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 등 산하기관을 총동원하여 국정농단에 부역하였는데, 겨우 여섯 명의 고위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5. 교육부의 과장급 이하 중·하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면죄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국정화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삼아 견마지로를 다한 적폐세력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들이 (가)국정화 논리를 적극 개발하고 홍보하였으며 (나)검정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거짓 선동하였으며 (다)여론 조사를 빙자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정권의 ‘충견(忠犬)’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함부로 팔아넘겨도 된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6. 교육부는 <보도 자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 발표(‘18.3.28) 당시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하여 추진”하겠다면서, 구체적으로 (가)역사교육지원체제 구축 (나)역사교과서 발행관련 제도와 법규 개선 (다)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 정립 (라)역사교육 공론화 장 및 기구 마련 등을 제시하였다.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제작에 올인한 교육부가 역사교육과 관련된 이와 같은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지를 선언하고 1년이 넘었는데도, 교육부는 아직까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대신할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자유한국당이 적반하장으로 근거 없는 색깔론 공세를 퍼붓는데도 교육부는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역한 수구-냉전 세력인 교육부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어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을 정립’한다고 하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7. 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작년 4월 28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역사교육의 정치성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정책 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그 가운데 3항이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차후 신설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기구(전담 위원회 등)를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진상조사위원회도 재발방지책으로 ‘역사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역사교육 거버넌스 주관기구로 역할을 부여할 것’을 권고하였다. 교육부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면피용 재발 방지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학계와 체결한 대통령 공약이 조속히 이행되도록 노력하여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끝>
2018년 6월 8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하는 내역사 시즌2
055-253-5251
호반식당의
유뤌이십일
사대강물요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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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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