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성형수술 통일 후 사회문제 대비 위한 실험”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1979년 이후 탈북한 관료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인물이다. 태 전 공사는 최근 워싱턴DC를 방문해 이틀간 머무르며 김정은 정권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정보 전쟁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태 전 공사는 트럼프 행정부 인사 등 여러 미국 관료들의 군사 옵션 선호 경향이 한국인들에개 위험요소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를 초청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와 미 의회가 채택한 북한 정권 교체 정책에는 동의했다. 그는 북한의 억압적인 정치 시스템이 “과거 나치가 저지른 범죄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10월 31일 열린 CSIS 주최 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출처: 팀 셔록)
태 전 공사는 지난 10월 31일 CSIS 주최 강연에서 “어딜 가든 나는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선제 대응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설치한 대량의 대포와 로켓으로 즉각 반격할 경우 발생할 ‘인명 피해’ 때문이라고 했다.
200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강연에서 태 전 공사는 “[미국과 한국이 고려하는 대로 북한에] 최대한 압력을 가하는 정책을 지지하지만, 그 최대한의 압력이 최대한의 개입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떠한 군사 행동을 취하기 앞서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는 방법”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정은 정권의 이른바 ‘공포정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정책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지만, 북한 내부에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를 널리 알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콘텐츠’ 선전전을 제안했다. 북한 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전자 메모리 장치를 밀반입해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의 지배 엘리트 계층과 김정은 정권의 민낯, 그리고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 그는 설명했다.
▲지난 10월 31일 열린 CSIS 주최 행사에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CSIS 코리아 체어프로그램의 리사 콜린스 펠로우와 대담을 가지고 있다. (출처: 팀 셔록)
태영호의 첫 미국 방문 … 대북압박 정책에 힘 실어주기
태 전 공사의 이번 첫 미국 방문은 미국 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의 재정 지원으로 이뤄졌다. NED는 미국 의회가 1980년대에 설립한 정부 기관으로, CIA를 대신해 전세계에 친미 민주주의 인사들을 지지하는 기관이다. 최근 몇 년간은 북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CSIS에서 진행된 태 전 공사의 강연은 NED와 북한인권위원회(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의 공동 후원을 받아 열렸다. 북한인권위원회는 지난 10월 말, 최근의 인공위성 촬영 이미지에 근거해 김정은 정권이 지난 4년 동안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수감시설을 크게 늘렸다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이번 태 전 공사의 워싱턴 방문은 트럼프의 방한 일정에 앞서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선 제재와 같은 강력한 조치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계획된 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설사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더라도 그 이후 정부를 이끌어나갈 탈북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NED 대표를 역임했고 냉전 시절 반공활동가로 유명했던 칼 거쉬맨은 “태 전 공사는 미국이 어떻게 북한을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의 안보 위협 대처에 있어 효과적인 정책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 NED는 홈페이지 내 북한을 중점적으로 다룬 별도 페이지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북한으로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NED가 10여개 단체를 대상으로 2백만 달러 이상 투자했다고 밝혔다.
태영호가 탈북한 이유 … “자유로운 정보의 습득과 교환”
또, 이번 CSIS 연설에서 태 전 공사는 영국 주재 공사 자리를 버리고 2016년 여름 결국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인터넷과 자유로운 정보 흐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보였다.
태 전 공사는 런던에서 공사 재임 당시 아들들과 인터넷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북한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학습 뿐만 아니라 재미, 모든 면을 추구하기에 인터넷은 너무 멋진 시스템인데 왜 북한 정권은 이런 걸 허락하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같은 질문들은 자신을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만들어, 마침내 “아들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바로 자유”일 것이란 생각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서 자유란 온라인을 통해 습득하는 정보와 검색, 그리고 온라인 대화를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도 널리 제공되는 자유를 일컫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들들을 영국에서 교육시킬 수 있어 행운이었다며, 아이들이 영국에 온지 얼마 안돼 여러가지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접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가 이 강연자리에서 인용한 사례 중 다수는 북한 관련 상황을 꾸준히 접한 이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였다. 그는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고위급 지도자’들이 젊은이가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해 불편해 했다는 것을 김정은이 알고 크게 분노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이들 원로 지도자들이 김정은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사진조차 한 번 찍어본 적 없는 ‘스위스에 숨겨둔 아이’라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고위급 인사들은 그들의 불만을 주로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노동당 또는 정부 내부 회의에 참석해 그들이 김정일 생전에 보였던 존경과는 ‘매우 다른’ 게으른 ‘바디랭귀지[태도]’를 보이는 등의 방식이었다. 이어, 태 전 공사는 그 이후에 김정은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 시작한 숙청 작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태 전 공사는 “그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고위급 인사들의 ‘바디랭귀지’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랍의 봄’, 그리고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을 몰아낸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활동이 김정은의 핵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나토의 폭격과 카다피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이 “김정은에게는 (핵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소였다”고 태 전 공사는 설명했다. 그는 “당시 김정은은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을 하면 그런 사례에서 나타난 ‘인도주의적 개입’이 일어나는 걸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해외 생활 오래한 태영호 … 북한 내부 사정에 밝지 못해
그러나, 태 전 공사 또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집권 초기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 확실하다. 예를 들어, 지난 2013년 핵 개발 프로그램과 경제를 병행해서 발전시키겠다는 기조의 북한의 ‘병진’노선 또한 그는 사전에 들은 바 없이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은 시점에 알게 됐다.
그는 “병진정책 도입이 이 같이 비밀스럽게 진행된 과정에 대해 북한 외무성 내부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갑자기 신문을 읽었는데, 노동당이 중요한 회의를 소집해서 이런 정책을 발표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태 전 공사는 경력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집권 하에서 벌어진 책략들에 대해선 어두웠다. 그는 중국에서 주로 교육을 받았고, 런던 부임 전에는덴마크와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과 북한 외무성 유럽과에서 일했다. 지난 2001년 그는 유럽연합(EU)과 공동으로 인권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북한인권위원회 회장인 로베르타 코헨은 이번 태 전 공사의 CSIS 강연에서 “우리 위원회와 하는 일이 밀접한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기자가 접촉한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 2016년 태 전 공사가 탈북 후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미국 정보당국이 거절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그가 ‘내부 사정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그가 북한 내부 사정에 밝지 못한 모습은 지난 11월 1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동안에도 드러났다. 의원들의 질의에 상대적으로 고립된 모습이 역력했다. 증언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그는 준비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예를 들면, 한 의원이 태 전 공사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해 서울에 발사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이버 공격 측면에서는 북한의 역량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른 의원이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협조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북한이 이란과 핵과 잠수함 기술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 질의했다. 이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북한이 미사일을 운반하는데 중국산 트럭을 이용하고, 북한 핵 실험장에 이란 과학자들이 방문한 사실이 있다는 등 주로 언론 보도에 나온 내용을 활용해 대답했다. 그는 그 이외에는 “확실한 정보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서로 다른 메시지로 비슷한 시기 미국 방문한 태영호와 홍준표
태 전 공사의 솔직한 접근법과 북핵 사태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일주일 앞서 워싱턴을 방문한 사례와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예를 들어, 태 전 공사는 CSIS, NED와 같은 싱크탱크와 만나서 심지어 북미간 직접적인 대화에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결국 목표는 북한을 설득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대신 “김정은이 경제를 발전시켜 북한이 번영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군사적 행동에 앞서 적어도 한번은 김정은을 만나 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북한이 미국 또는 동맹국을 공격할 경우) 결국 자신이 파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반대로 홍 대표는 더욱 무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그는 방미 기간 동안 CIA 산하 한국임무센터(Korea Missions Center)를 방문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일이 ‘자유 핵동맹’을 결성하고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한과] 동등한 전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핵무장 해제를 위한 조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북한은 핵 야심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취재: 팀 셔록
번역: 김지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1979년 이후 탈북한 관료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던 인물이다. 태 전 공사는 최근 워싱턴DC를 방문해 이틀간 머무르며 김정은 정권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정보 전쟁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태 전 공사는 트럼프 행정부 인사 등 여러 미국 관료들의 군사 옵션 선호 경향이 한국인들에개 위험요소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를 초청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CSIS)와 미 의회가 채택한 북한 정권 교체 정책에는 동의했다. 그는 북한의 억압적인 정치 시스템이 “과거 나치가 저지른 범죄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지난 10월 31일 열린 CSIS 주최 행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출처: 팀 셔록)
태 전 공사는 지난 10월 31일 CSIS 주최 강연에서 “어딜 가든 나는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선제 대응에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설치한 대량의 대포와 로켓으로 즉각 반격할 경우 발생할 ‘인명 피해’ 때문이라고 했다.
200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강연에서 태 전 공사는 “[미국과 한국이 고려하는 대로 북한에] 최대한 압력을 가하는 정책을 지지하지만, 그 최대한의 압력이 최대한의 개입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하게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떠한 군사 행동을 취하기 앞서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는 방법”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정은 정권의 이른바 ‘공포정치’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핵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정책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지만, 북한 내부에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를 널리 알릴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콘텐츠’ 선전전을 제안했다. 북한 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전자 메모리 장치를 밀반입해 북한 주민들에게 그들의 지배 엘리트 계층과 김정은 정권의 민낯, 그리고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 그는 설명했다.
▲지난 10월 31일 열린 CSIS 주최 행사에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CSIS 코리아 체어프로그램의 리사 콜린스 펠로우와 대담을 가지고 있다. (출처: 팀 셔록)
태영호의 첫 미국 방문 … 대북압박 정책에 힘 실어주기
태 전 공사의 이번 첫 미국 방문은 미국 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의 재정 지원으로 이뤄졌다. NED는 미국 의회가 1980년대에 설립한 정부 기관으로, CIA를 대신해 전세계에 친미 민주주의 인사들을 지지하는 기관이다. 최근 몇 년간은 북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CSIS에서 진행된 태 전 공사의 강연은 NED와 북한인권위원회(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의 공동 후원을 받아 열렸다. 북한인권위원회는 지난 10월 말, 최근의 인공위성 촬영 이미지에 근거해 김정은 정권이 지난 4년 동안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수감시설을 크게 늘렸다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이번 태 전 공사의 워싱턴 방문은 트럼프의 방한 일정에 앞서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선 제재와 같은 강력한 조치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계획된 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설사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더라도 그 이후 정부를 이끌어나갈 탈북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NED 대표를 역임했고 냉전 시절 반공활동가로 유명했던 칼 거쉬맨은 “태 전 공사는 미국이 어떻게 북한을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의 안보 위협 대처에 있어 효과적인 정책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 NED는 홈페이지 내 북한을 중점적으로 다룬 별도 페이지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북한으로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들어 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NED가 10여개 단체를 대상으로 2백만 달러 이상 투자했다고 밝혔다.
태영호가 탈북한 이유 … “자유로운 정보의 습득과 교환”
또, 이번 CSIS 연설에서 태 전 공사는 영국 주재 공사 자리를 버리고 2016년 여름 결국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인터넷과 자유로운 정보 흐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미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으로 보였다.
태 전 공사는 런던에서 공사 재임 당시 아들들과 인터넷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북한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학습 뿐만 아니라 재미, 모든 면을 추구하기에 인터넷은 너무 멋진 시스템인데 왜 북한 정권은 이런 걸 허락하지 않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같은 질문들은 자신을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만들어, 마침내 “아들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바로 자유”일 것이란 생각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서 자유란 온라인을 통해 습득하는 정보와 검색, 그리고 온라인 대화를 통해 보통 사람들에게도 널리 제공되는 자유를 일컫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들들을 영국에서 교육시킬 수 있어 행운이었다며, 아이들이 영국에 온지 얼마 안돼 여러가지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접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됐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가 이 강연자리에서 인용한 사례 중 다수는 북한 관련 상황을 꾸준히 접한 이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였다. 그는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고위급 지도자’들이 젊은이가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해 불편해 했다는 것을 김정은이 알고 크게 분노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의 이들 원로 지도자들이 김정은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은 할아버지인 김일성과 사진조차 한 번 찍어본 적 없는 ‘스위스에 숨겨둔 아이’라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고위급 인사들은 그들의 불만을 주로 간접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노동당 또는 정부 내부 회의에 참석해 그들이 김정일 생전에 보였던 존경과는 ‘매우 다른’ 게으른 ‘바디랭귀지[태도]’를 보이는 등의 방식이었다. 이어, 태 전 공사는 그 이후에 김정은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 시작한 숙청 작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13년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태 전 공사는 “그 시점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고위급 인사들의 ‘바디랭귀지’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랍의 봄’, 그리고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을 몰아낸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활동이 김정은의 핵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나토의 폭격과 카다피 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이 “김정은에게는 (핵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소였다”고 태 전 공사는 설명했다. 그는 “당시 김정은은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을 하면 그런 사례에서 나타난 ‘인도주의적 개입’이 일어나는 걸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해외 생활 오래한 태영호 … 북한 내부 사정에 밝지 못해
그러나, 태 전 공사 또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집권 초기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 확실하다. 예를 들어, 지난 2013년 핵 개발 프로그램과 경제를 병행해서 발전시키겠다는 기조의 북한의 ‘병진’노선 또한 그는 사전에 들은 바 없이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은 시점에 알게 됐다.
그는 “병진정책 도입이 이 같이 비밀스럽게 진행된 과정에 대해 북한 외무성 내부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갑자기 신문을 읽었는데, 노동당이 중요한 회의를 소집해서 이런 정책을 발표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태 전 공사는 경력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집권 하에서 벌어진 책략들에 대해선 어두웠다. 그는 중국에서 주로 교육을 받았고, 런던 부임 전에는덴마크와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관과 북한 외무성 유럽과에서 일했다. 지난 2001년 그는 유럽연합(EU)과 공동으로 인권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북한인권위원회 회장인 로베르타 코헨은 이번 태 전 공사의 CSIS 강연에서 “우리 위원회와 하는 일이 밀접한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기자가 접촉한 복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 2016년 태 전 공사가 탈북 후 미국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미국 정보당국이 거절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그가 ‘내부 사정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그가 북한 내부 사정에 밝지 못한 모습은 지난 11월 1일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동안에도 드러났다. 의원들의 질의에 상대적으로 고립된 모습이 역력했다. 증언하는 동안 그는 몇 번이나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그는 준비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예를 들면, 한 의원이 태 전 공사에게 북한이 핵무기를 미사일에 장착해 서울에 발사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이버 공격 측면에서는 북한의 역량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고 대답했다.
다른 의원이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협조했을 가능성이 있는지, 북한이 이란과 핵과 잠수함 기술을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 질의했다. 이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북한이 미사일을 운반하는데 중국산 트럭을 이용하고, 북한 핵 실험장에 이란 과학자들이 방문한 사실이 있다는 등 주로 언론 보도에 나온 내용을 활용해 대답했다. 그는 그 이외에는 “확실한 정보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서로 다른 메시지로 비슷한 시기 미국 방문한 태영호와 홍준표
태 전 공사의 솔직한 접근법과 북핵 사태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일주일 앞서 워싱턴을 방문한 사례와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예를 들어, 태 전 공사는 CSIS, NED와 같은 싱크탱크와 만나서 심지어 북미간 직접적인 대화에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미 하원 청문회에서 결국 목표는 북한을 설득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대신 “김정은이 경제를 발전시켜 북한이 번영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군사적 행동에 앞서 적어도 한번은 김정은을 만나 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북한이 미국 또는 동맹국을 공격할 경우) 결국 자신이 파멸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반대로 홍 대표는 더욱 무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그는 방미 기간 동안 CIA 산하 한국임무센터(Korea Missions Center)를 방문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일이 ‘자유 핵동맹’을 결성하고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한과] 동등한 전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핵무장 해제를 위한 조약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북한은 핵 야심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취재: 팀 셔록
번역: 김지윤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핵심 관련자로 조작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인물인 원 씨의 여동생 김희영(가명) 씨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 2013년 탈북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김 씨는 베트남을 거쳐 지난해 10월 경 한국에 들어 왔으며, 일반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을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김씨는 현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다.
▲ 원정화 여동생 김희영
김 씨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원 씨의 수사 기록과 판결문에는 김 씨가 원 씨 보다 높은 지위의 북한 보위부 간부로 등장한다. 원 씨가 한국으로 탈북한 후 3번에 걸쳐 북한으로 잠입해 지령과 공작금을 받을 때마다 동행한 인물로 되어 있고, 원 씨에게 보위부 지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 인물이다. 김 씨의 역할을 빼면 원 씨의 간첩 행위가 설명이 안 될 정도다.
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김 씨는 원정화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심문센터에서 3개월간 조사를 받았지만 원 씨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 씨의 의붓아버지이자 원 씨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동순 씨는 “나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에서 원정화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동순 씨는 김희영(가명) 씨의 친아버지다.
뉴스타파가 김 씨의 서울 거주 사실을 확인한 후 접촉을 시도했지만 당시 김 씨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중국에 들어간 상태였다. 김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 한국 여권을 발급 받아 정상적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2014년 중국 연길에서 김희영(가명) 씨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는 원 씨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김 씨의 주장을 담고 있는 유일한 증언 자료다. 당시 취재진은 원 씨의 판결문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김 씨는 자신은 보위부 요원이 아니며 원정화 사건은 완전히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원 씨와 함께 북한으로 잠입, 지령과 공작금을 받았다는 장소로 지목돼 있는 중국 도문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나오는 원 씨의 출입국 기록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뉴스타파는 원정화 사건의 조작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인 여동생 김희영(가명) 씨와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한다.
취재 : 한상진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핵심 관련자로 조작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인물인 원 씨의 여동생 김희영(가명) 씨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 2013년 탈북해 중국에 머물고 있던 김 씨는 베트남을 거쳐 지난해 10월 경 한국에 들어 왔으며, 일반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을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김씨는 현재 한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다.

▲ 원정화 여동생 김희영
김 씨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원 씨의 수사 기록과 판결문에는 김 씨가 원 씨 보다 높은 지위의 북한 보위부 간부로 등장한다. 원 씨가 한국으로 탈북한 후 3번에 걸쳐 북한으로 잠입해 지령과 공작금을 받을 때마다 동행한 인물로 되어 있고, 원 씨에게 보위부 지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 인물이다. 김 씨의 역할을 빼면 원 씨의 간첩 행위가 설명이 안 될 정도다.
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을 거쳐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김 씨는 원정화 사건과 관련해 별다른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합동심문센터에서 3개월간 조사를 받았지만 원 씨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 씨의 의붓아버지이자 원 씨 사건으로 구속됐던 김동순 씨는 “나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합동심문센터와 하나원에서 원정화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동순 씨는 김희영(가명) 씨의 친아버지다.
뉴스타파가 김 씨의 서울 거주 사실을 확인한 후 접촉을 시도했지만 당시 김 씨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중국에 들어간 상태였다. 김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 한국 여권을 발급 받아 정상적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2014년 중국 연길에서 김희영(가명) 씨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는 원 씨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김 씨의 주장을 담고 있는 유일한 증언 자료다. 당시 취재진은 원 씨의 판결문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 김 씨는 자신은 보위부 요원이 아니며 원정화 사건은 완전히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원 씨와 함께 북한으로 잠입, 지령과 공작금을 받았다는 장소로 지목돼 있는 중국 도문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나오는 원 씨의 출입국 기록이 조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뉴스타파는 원정화 사건의 조작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인 여동생 김희영(가명) 씨와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한다.
취재 : 한상진
지난 20여년간 이른바 ‘먼저 온 통일’라고 불리워온 북한출신 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선행 통일경험은 오늘날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야반도주하다시피 떠났던 탈북민들의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16년 통일연구원 탈북민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16.2%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하였다.
다큐멘터리영화 ‘북도 남도 아닌’ 탈남하여 유럽으로 간 탈북인들이 본 한국사회에 대해 담담하지만 솔직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그들은 단지 ‘부적응’하거나, ‘선진국 복지를 찾아’, 단순히 ‘차별 때문에’ 대한민국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지속적인 감시, 탈북자라는 낙인과 배제 등으로 한국사회에 희망이 없기에 떠났다고 말한다. 2017년 현재 한국에서 거주하는 탈북인들 역시 탈북자라는 낙인 그리고 배제로 마치 유리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최중호 감독에게 썼다는 쪽지,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예요?‘라는 질문은 곧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평화이행기를 앞둔 우리에게 되물어지고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2016과 2017년에 잇달아 개봉된 두 개의 다큐영화는 탈북민 연구를 십 수년간 해온 나로서는 부끄럽고 놀랍도록 우리 사회 탈북민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잡아낸 영화이다. 뉴스타파 최승호감독의 ‘자백’과 최중호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는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워왔던 탈북민들이 경험한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뒷모습과 한국사회의 민낯을 담은 영화이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에게 국가권력은 야누스와 같은 존재였다. 탈북인들에게 국가는 국내취약계층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의 물질적 보상을 제공하였지만 그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었다. 입국시에는 6개월까지(현재는 3개월로 줄임) 구금이 허용되는 국정원에서 전쟁포로보다 열악한 ‘간첩 골라내기’ 실험장에 놓여 북한 내부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간첩으로 조작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지난 10여년간 국가권력에 의해 국정원 댓글사건, 반 세월호집회 알바시위 등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행위를 수행하도록 그들은 동원되었으며, 집단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숙박교육을 거쳐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신변보호’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감시상황에 놓였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시 북한을 떠났던 식량난민의 일부가 한국에 입국하면서 국내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주민의 대한민국 입국이 연 1,000명을 넘어서기 시작한 시기는 2001년부터이다. 그 이후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수는 2008년에 2,91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점점 감소하여 2018년 9월 말 현재 입국자 수는 808명에 불과하다. 향후에도 이 정도의 감소세가 지속된다면 북한이탈주민 입국은 10년 내아니 5년 내로라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된다.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의 감소 원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 개선, 김정은정권이 탈북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는 점은 북한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주된 요인이 된다. 그러나, 한국의 척박한 정착여건 역시 북한출신주민 입국자 수 감소의 중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주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불리우면서 이질적인 탈북주민들과 남한주민과 어울려 사는 과정 그 자체가 일종의 ‘통일실험’이자 ‘사람의 통일’이라고 미화되었지만 그들이 겪은 현실은 아름답지도 녹록하지도 않았다. ‘먼저 온 통일’이 대한민국에서 겪은 선행 통일경험은 무엇이며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한국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되짚어보자.
‘북도 남도 아닌’ 세상을 찾아 나선 이명준의 후예들
김일성수행 기자출신의 엘리트 이수근은 귀순직후 1967년 4월 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는 ‘사색의 자유’마저 없다”고 말했다. 북한 탈출직후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한이 바로 지옥이다” 라고 말했던 이수근은 다시 한국을 탈출하려다 공항에서 잡혀 위장귀순으로 몰리게 된다. 그는 “남쪽도 틀렸다. 자유도 없고, 독재이고 해서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살려고 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최인훈이 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이수근이 꿈꾸었던 세상은 “북도 남도 아닌” 세상이었다.
그러면, 49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북한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온 탈북인들이 오늘날 겪는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신예 최중호 감독은 북도 남도 아닌 유럽으로 떠난 오늘날 이명준들이나 이수근들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갓 설흔의 싱싱한 감성으로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북도 남도 아닌’에서 비추어주는 탈북민 인권현실은 49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럽 현지에서 탈남한 탈북인을 만나 가진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에 정착했던 탈북민들이 겪었던 삶과 그들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육성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국에 5년간 정착했다 영국으로 떠나 살고 있는 새동네지 편집인 최승철 씨 등 한국에 정착했다 해외로 나간 이들과 2018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민 김 씨 등이 지적하는 탈북인의 현실은 다음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정치적 동원, 공안기관의 감시, 사회의 낙인과 차별, 분리와 배제,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
탈남한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라고 말하는가?
한국을 떠난 탈북민들이 보는 한국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국가권력이 입맛에 따라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이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탈북민을 가두어 놓는 사회이고 낙인을 찍어서 감시하는 사회이다. 한성무역 사기피해사건에서 보듯이 국가권력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감시를 하지만 막상 위험에 부딪히면 정작 보호받지 못한다. 모든 탈북민들이 잠재간첩으로 의심받고 때로 간첩으로 조작되며 궁극적으로 간첩을 필요로 하는 사회이다.
① 값싸고 충성스럽게: 국가권력이 탈북민을 동원하는 사회
유럽에서 망명을 신청한 최승철씨는 한국에서 경험한 국가권력의 관제시위 동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탈북자들이 원해서 데모를 하는게 아니고 데모 같은 거 가면 돈 줘요. 보수단체에서 돈 줘요. 거기 가면 뭐 주니? 한국사회가 나쁜 게 뭐냐면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 있어. 관변단체, 국가에서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는 거야. 행사 동원하면 돈 주니까. 대표적인 관변단체, 그 다음에 통진당 반대한다.. 교통비로 2만원씩. 그 다음에 탈북자들 댓글 알바 잘해. 자. 이제부터 무슨 사건 생겼으니까. 부화뇌동으로 탈북자들 희동시켜 놨으니까.
이같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그간 jtbc언론보도에서 밝혀진 바와 같다.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아니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반대파를 음해하기 위해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범죄행위에 탈북민들이 연루되거나 시민적인 공감대가 큰 사안을 반대하기 위해 지난 정부에서 동원되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사건 등의 반대집회의 경우에는 5개월 동안 39회에 걸쳐 연인원 1,259명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동원시 탈북인 1인당 2~3만원의 수당이 제공되었다. 한 탈북인은 하나원에서 나온 직후에 다른 탈북자를 통해 국정원 댓글을 달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받은 돈은 한 달에 5만원이었다. 그들이 동원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국사람이라면 고액을 받고서도 꺼려했을 더러운 일들을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알고 적은 돈으로 하는 저렴하고 어리숙한 노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태의 가장 근본적이고 무거운 책임은 국가권력에게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② 유리벽에 갇히다: 분리하고 배제하는 한국사회
내가 ‘북도 남도 아닌’ 다큐멘터리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등장인물은 한국 거주 7년차의 한 탈북남성이다. 영상은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비추고, 그는 자신들이 유리벽에 갇혀 있다고 절규한다. 그는 탈북민이 유리벽에 갇혀있는 현실이야말로 10만명당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한국 사람보다 몇 배나 높은 자살율을 초래한 이유라고 주장한다.
“탈북자들은 유리벽 속에 살아. 숨 막히게 숨 못 쉬게 유리벽 속에 가둬놨거든. 유리벽이라는 차별에 우리를 유리벽 속에 탈북자들을 가둬 놨거든. 그래서 한 유리창 깨고 나가면 또 유리창이 있어.”
그가 말하는 유리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안기관의 감시에서 한국사회의 배제 나아가 분단체제까지를 포괄한다.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자살관련 데이터로도 증명되는데 사망자자가 많았던 2015년 상반기에는 사망자 대비 자살률이 한때 15.2%에 달했다(원혜영 의원실, 통일부자료).
③ 낙인찍는 사회, 감시하는 국가
탈북민들은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한다. 동정하거나 얕보거나. 혹은 양쪽 다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최승철씨는 사업실패이후 회의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친구가 “너 여기(한국) 와서 아무리 해봤자 너는 탈북자 아니냐? 거긴 진짜 다르다”는 말에 영국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 탈북여성도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내고 살아도 자신들이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동조한다.
북한사람들은 불쌍해요. 한국에서도 편견이죠. 왜 여기 와서 절망감을 느끼는가. 외형적으로 누가 죽이는 사람 없어. 이 사람들 아무리 한국 사람들을 흉내 내고 살아도. 한국에 오니까 자유스럽잖아요. 그게 다가 아니더라구요.(국내 거주, 40대 탈북여성)
사회에 나온 이후에도 계속 따라붙는 국가 공안기관들의 감시는 그들에게 말 못할 고통이다. 한 탈북민은 어느 정도 보안기간이 끝나면 그 탈북자라는 멍에를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늘 자신의 뒤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격이라는 것이다. 보안기간은 한계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탈북민들은 수년은 물론 십년이 넘어도 계속 경찰이나 기무사가 연락하고 체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한다. 유럽으로 떠난 한 군인출신의 한 탈북자는 그는 ‘감시’라고 할 정도의 관심을 받아야 했으며 결국 그가 한국을 떠나는 한 이유가 되었다.
“근데 그게 다 감시거든. 어디로 이제 가고 하는거 다 보고하라는 거야. 자기는 보호차원에서 그렇게 한데, 말은 그런데 감시차원이지. 그런 것들.”
신변보호경찰관은 공식적으로 말하는 보호의 이유는 북한의 테러 등 탈북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상에서 탈북여성은 다음과 같이 신변보호의 본질을 간파한다. ‘감시’이지 보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우리 진짜 살아가면서 우리 안보에 도움이 되거나 우리 살아가는데서 이 사람들이 도움을 주거나 그런 것은 없어.”
④ 영화 ‘자백’에 나타난 국정원식 정치: 간첩이 필요한 대한민국
2017년 12월 박주민 의원실 주최로 열린 합동신문시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법률 개정안 설명회에 참석한 한 탈북민은 ‘국정원 앞의 탈북민은 마치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은 운명이다’ 라고 말했다. 필요에 따라 국가기관이 횟감으로도 매운탕꺼리로도 골라 쓰는 게 탈북자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 ‘자백’에서 유우성의 여동생 유가려가 합동신문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손으로 오빠를 간첩으로 고발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심리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녀는 170일동안이나 고립된채 독방에서 수감된 채 합동신문을 거치면서 오빠인 유우성을 간첩이라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간첩이나 위장탈북인을 가려낸다는 명분으로 행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탈북인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폭력과 감시를 당하게 되며, 심리적으로 수사관에게 순응하고 굴복하며 심지어 감사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영화감독 최중호는 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청소년에게 이같은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명확하다. 현행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률에 의하면 북한이탈주민의 지위는 입국후 5년간으로 한정되어 있어 2013년도 입국자부터 2017년까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수는 6,731명이다. 탈북자는 5년까지만 탈북자이다. 그러나 법은 국가의 안보라는 현실 앞에 언제나 가볍게 무시된다. 통일부는 탈북민 3만2천명을 호명하여 이들을 별도의 분리된 정착지원체계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나는 이 두 개의 영화가 그려낸 탈북민의 현실에 깊이 공감한다. 이같은 현실은 가장 앞섰다는 탈북민 정착지원정책의 뒤에 숨어 가려졌던 대한민국의 민낯이라고 본다. 분단체제 국가권력이 언제까지 탈북민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일반사회에서 격리하여 별도로 관리할 것인가? 국정원 합동신문 6개월(2018년부터 3개월로 단축), 통일부 하나원 3개월 이어지는 각종 적응교육과 제2 하나원으로 불러들여 행하는 직업훈련 등. 별도의 교육, 별도의 행정체계, 별도의 취업지원체계. 분리는 통합을 역행한다. 새로운 전달체계는 별도의 조직과 인력을 필요로 한다. 별도의 분리체계가 과연 누구를 위해 필요한 지도 근본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단지 두 개의 국가의 통합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체제의 희생자들을 사회로 통합시켜 내는 일이며 남한 내의 통합과 평화에서 시작되어야(김동춘, 2013)”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단체제의 경계인들에게 어느 편인지 더 이상 묻지도 말고 분리하지도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아닌 평화로운 세상. 탈북자라는 이유로 낙인찍거나 배제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감시하지 않으며 간첩으로 만들지도 않는 사회, 노동에 대한 존중이 있는 사회. 평화체제는 일부 주류사회에 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을 인정하고 통합하는 포용국가의 건설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한 탈북청소년이 물었던 “탈북자는 언제까지 탈북자인가요? ” 이 질문은 “탈북민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얼마나 정상국가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 사회를 끌어가는 어른들에게 다시 되물어져야 한다. 이 질문은 탈북민을 위해서만 필요한 질문이 아니라 평화체제 이행을 앞둔 시민 모두를 위한 질문이다. 우리 안의 국정원식 정치와 분단체제의 뒤틀린 모습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이 정상국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도정에서 꼭 풀어가야 할 질문일 것이다.
최승호 감독의 ‘자백(Spy Nation)’. 뉴스타파. (정재홍 극본. 2016. 106분 다큐멘터리)
최중호 감독의 ‘북도 남도 아닌(Why I Left Koreas)’ (최중호 극본. 2017. 90분 다큐멘터리)
시민들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