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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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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익명 (미확인) | 화, 2015/10/27- 14:58

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김소리, 오현정 회원

   

교류(交流) :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여 흐름

처음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을 때에 이 기회는 제게 ‘교류’보다는 ‘여행’의 의미가 컸습니다. 저는 푸른 바다와 빛나는 햇살, 따뜻한 공기와 순박한 사람들의 가무잡잡한 얼굴… 이런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조금은 숨가쁜 일상을 떠나 작은 섬으로 도망하는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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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고, 오키나와 – 이시카키라는 신비한 산호섬과 바다는 그동안 여행하며 보았던 세계의 많은 아름다운 바다들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과 5일을 보내고 돌아와 되새겨보니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친구에게 오키나와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할 때 저는 바다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한 9년의 시간 속에 촘촘히 쌓은 마음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공기 – 밝고 맑은 웃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취를 이루면 이루는 대로 아낌 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어 온 그 모든 시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 물결은 막연히 아름다운 여행지를 꿈꾸며 처음 오키나와를 찾은 낯선 이방인이었던 제게도 밀려왔습니다.

교류(交流)는 사귀다 그리고 흐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을,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왠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교류’가 이렇게 멋진 말이라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교류한다는 것 – 차이를 넘어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결을 확인하고, 연대한다는 것 – 이 아름다운 작업에 동행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년에 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날 – 이시카키 섬

이번 교류회에 민변 측은 21명이 참가했습니다. 대부분 민변 변호사들이지만, 너무나 훌륭한 통역사이자 교류회를 통해 사랑을 꽃피우신 김영환 선생님, 법무법인 이공에서 일하고 계신 민숙님, 김인숙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영수님, 김인숙 변호사님 지인이신 이명숙 화가님도 함께하여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회의 장소는 이시카키 섬입니다. 첫 날 우리는 나하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이시카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저도 교류회에 앞서 있었던 정영신 박사님의 강연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오키나와라고 구획된 섬들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습니다. 오키나와 섬들 전체가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과 가깝고, 심지어 본섬에서 이시카키 섬은 대만 방향으로 비행기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닿을 수 있을만큼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외양도 일본보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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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공항에서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을 처음 만나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이시카키 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은 대부분 오키나와 본섬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시카키 섬에 처음 가본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시카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이시카키 섬에서 태어나신 나카야마 센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는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큰 어른 같은 분으로, 권정호 변호사님과 함께 민변-오키나와 교류회를 만든 분이십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가 되신 대 선배이십니다만, 가무잡잡한 얼굴에 가득히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분이셔서, 첫 인상부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시카키 섬이 있는 곳을 ‘아에야마 지역’이라고 하는데, 사탕 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신을 모시는 춤이나 노래가 많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1700년대에 거대한 쓰나미로 사람들이 다 죽고, 주변에서 이주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태풍 피해로 유명(?)하기 때문에 근래에 건축한 집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집입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과 많이 교류하고, 삼국의 어민들이 공동 어장에서 어업을 하고 있습니다. 본섬과는 달리 미군기지도, 자위대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곳입니다만, 최근 일본 정부가 자위대 기지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에야마 제도는 일본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동 어장에서의 어업 분쟁 한 번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우호와 연대의 정신으로 삶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분쟁의 불씨가 자라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숙소인 미야히라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짐을 풀고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거리와 띄엄 띄엄 있는 건물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식당에서 삼삼오오 둘러 앉아 더듬 더듬한 일본말, 한국말, 영어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일동포인 백충 변호사님의 진행으로 교류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두 번째 참가한 사람들, 주니어 변호사들, 선배 변호사들, 사무원들 등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앞에 나가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교류회는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다같이 어우러지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사무원 분들의 활발한 참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참여하기 시작했다가, 미군기지와 평화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마리상의 유창한 한국어 자기소개에 교류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습니다. 더듬더듬한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서먹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 – 다케토미 섬 투어

둘째 날 아침에는 호텔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의 다케토미 섬으로 향했습니다. 다케토미 섬은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섬마을입니다. 선착장에서 작은 버스를 타고 5분을 달려 마을로 들어서자 나카야마 센세가 어릴 적에 몰았다는 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소가 끄는 차를 타는 것으로 다케토미 섬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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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가 이끄는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물소를 모는 할아버지가 다케토미 섬에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주셨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농경용으로 사용하던 물소를 가지고 오면서 물소가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도 어릴 적에는 물소를 매일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태워준 물소는 피이스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에 네 번씩 사람들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은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집집마다 전통식 지붕을 설치하고 부엌을 따로 짓고 있습니다. 집에 차를 들여 놓으려면 국가에 허가를 받아서 마당을 넓혀야 한다고 하는 등 불편함이 많지만 전통 보존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은 없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에는 우타키라는 자연신을 믿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일본식 신사와 도리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살던 아름다운 아사도야를 도시의 한 관리가 첩으로 들이려고 유혹하였으나 섬 사람으로 살겠다며 지조를 지켰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아사도야노 우타’라는 노래가 전하여져 오는데, 할아버지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모두 함께 불러보았습니다. 이쪽 지방 사람들은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11월에는 이틀 밤을 새워서 춤을 추는 축제도 열린답니다. 그 동안 마시는 술은 모두 공짜라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마을을 둘러 본 뒤에는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슬아슬한 좁은 계단 끝 전망대에서 마을 조망도 내려다보고, 한적한 골목 골목을 걷다가 쉬기도 하다가 식사 장소로 갔는데, 근처 해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 내서 저와 소리, 민숙씨는 점심을 포장하기로 하고 15분간 열심히 걸어 해변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이시카키의 바다였는데, 투명하리만치 맑은 민트색 물빛과 희고 보드라운 모래가 이루는 신비로운 바다 풍경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2일차 오후 –세미나

한적하고 여유롭던 다케토미 섬의 잔상에 푹 빠져 있는 상태에서 세미나 장소로 향했습니다. 학교 교실 같은 아담한 공간에서 제9회 평화교류회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세미나가 잘 될까 싶기도 했는데, 김영환 선생님의 동시 통역이 너무나 훌륭해서 무리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양국의 치열한 현안들 때문인지 세미나는 상당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일 신 가이드라인과 안보법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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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세션은 하야시 치카코상 변호사님이 <미일 신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안보법제>에 대해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일본 젊은 층들의 활발한 집회 시위 참여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의 법적인 성격을 검토하고 그 동안의 개정의 흐름에 비추어 2015년 가이드라인의 기본 전제와 주요 내용, 당시 국회 심의를 통과했던 안전보장 법제와의 관련성 및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심재환 변호사님이 2015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안보법제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안보법제 반대 운동에 대한 논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움직임, 변호사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나라의 상황과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일본은 전후 군대가 아니라 경제번영에 방점을 찍는 요시다 시게루의 비무장 노선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면 키시노 고스케는 전쟁 전의 모습을 회복하여 무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 군대를 주장하여 왔습니다. 아베는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평화 헌법을 ‘미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일미간의 공동 군사 대응력을 강화하고 군사 대국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익 교과서 장려 활동을 통해 전쟁에 찬성하는 국민의식을 만드는 ‘국가 만들기’ 작업에 한창입니다.

이에 반대하며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집회 시위와 관련하여, 오키나와 변호사들은 주부나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SEALs의 운동의 성격과, 정부 친화적 헌법학자조차도 입헌주의 위반을 지적하는 등 학계의 적극적인 반발이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1960년대의 안보 투쟁은 조직된 사람들이 위주였던 것에 반하여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 국가에서 군사 국가로 전환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평화 헌법이 상당히 뿌리 내렸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시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8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지만, 일본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의 대규모 공동 행동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무적이지만, SEALs에 대해 우익 미디어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시민들을 개인 개인으로 분열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어 법률가의 문제제기가 중요하다고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연대 활동을 계속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SOFA 민사청구권

한국의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한미SOFA의 민사청구권에 대해 발제를 해주셨고 이어 오키나와의 기타지넨 변호사님께서 미일지위협정의 민사청구권에 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민사청구권의 내용의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한국/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간의 배상금 분담비율이 불공평하다는 점(미군 단독 책임인 경우에도 한일 정부는 25%를 부담), 비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거나 미군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미군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공무중 행위에 대하여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하는 경우 “배상금이 청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배상신청 결정 동의서”를 제출해야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보고(한국)

하주희 변호사님께서 지난 5. 28. 오산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이 반입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주한미군 측은 폐기확인서를 질병관리본부로 제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를 규율할 수 있도록 한미SOFA를 개정하는 등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김종귀 변호사님께서는 ‘미군기지 잔류 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보고해주셨습니다. 2014. 10. 23. 미국 워싱턴 D.C 펜타콘에서 한미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CM)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서울 용산 소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본부 및 경기도 동두천에 위치한 210화력여단을 잔류하기로 하는 내용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하였고, 이에 민변 대리인단은 미군기지 잔류를 승인하고 공표한 국방부장관의 행위를 행정법상 처분으로 보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법원은 국방부장관의 행위가 통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걱정되지만,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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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본 변호사님께서는 지난 해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께서 여론은 어땠는지 물어보셨고, 이에 한국측 변호사님들은 ‘종북’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일반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으나, 지식인층에서는 잘못됐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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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변호사님께서는 김인숙, 장경욱 변호사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징계개시신청과 법무부가 권한 없이 변협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징계개시신청 기각결정을 취소하고 징계개시결정을 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가토 변호사님께서는 일본에서는 법무성에 변호사 징계에 관한 권한이 일절 없다고 하며, 한국 법무부에 변호사 징계와 관련하여 권한이 있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민변은 곧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꼭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소송보고 (일본)

다카기 기치로 변호사님이 헤노코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매립승인처분을 취소하였으니 오키나와의 현재 가장 뜨거운 현안입니다. 나하로 돌아온 뒤에 일부는 헤노코 투쟁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 과정에서 섬전체회의 발족, 헤노코기금의 창설, 35,000명이 참가한 현민대회, 손에 손을 잡고 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운동 등 ‘All-Okinawa’라는 구호 하에 연대한 현민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오키나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강조가 이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보다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에하라 토모코 변호사님은 기지소음소송 중 아쓰기 4차 판결을 중심으로 발표해주셨습니다. 특히 자위대기의 비행금지 청구를 기지가 이전하는 2016. 12. 31.까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어쩔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 인용하였는데, 수면방해 등으로 인한 인격적 이익 손상을 강조하는 판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군기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행정처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각하하였습니다. 토모코 상은 소음 소송의 추세에 비추어 상당히 높은 기준의 배상을 받아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비결(?)에 대해 묻자, 조용한 환경에서 사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정밀한 생활에 관한 인격적 평가가 높아졌다는 점이 설득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변호인단은 2,30년 전에 비하여 정신적 손해의 위자료가 상승한 반면 폭음소송은 30년 전에 인용되었던 위자료 액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폭음소송만 금액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점을 부각하였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2일차 저녁 – 공식만찬

열띤 세미나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식 만찬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오키나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엄청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는데, 저는 돼지 귀 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해파리냉채인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요리사님께서 돼지 귀 요리라고 하셔서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ㅠㅠ).

이 날은 먼저 아키후미 마츠자키 변호사님, 하야시 치카코 변호사님 등 전날 환영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분들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양측의 선물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측에서는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 모두 디자인이 너무 귀여웠고,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라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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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에서는 공식 선물로 한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심재환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이명숙 선생님은 따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심재환 변호사님은 아내인 이정희 변호사님이 만드신 쿠키를, 장경욱 변호사님은 아내가 만드신 비누를, 이명숙 선생님은 자신의 북아트 작품을 오키나와측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식사 때는 일부러 한국, 오키나와 사람들을 섞어 앉았습니다. 저는 처음 참여하는 거였기 때문에 사실 오키나와 분들이 매우 어색해서 자꾸만 저와 친한 사람들과 앉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이한본 변호사님께서 제재하셨습니다.ㅋㅋ 덕분에 오키나와 분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이시가키 섬이 고향이신 나까야마 변호사님, 마리상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는데,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일본어만 가능하셔서 소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상이 한국어를 조금 하고 저도 일본어를 아주 조금 해서 어찌어찌 소통은 되더군요. 중간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소통에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됐는데, 끝까지 저와 함께 식사를 해주셔서 감동받았다는..ㅋㅋ

중간에 식당 측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해주어 다같이 춤추며 이야기하는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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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간 곳은 노래 공연도 해주고 손님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아저씨 두분이 오키나와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나중에 아리랑을 불러주시기도 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님과 김자연 변호사님께서 오키나와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한국 변호사들의 공연에 감동을 받은(?) 옆 자리 손님들이 저희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았던 술자리였고, 오키나와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일차

셋째날에는 이시가키 섬의 북쪽을 둘러봤습니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들은 주로 남쪽에 많이 살고 북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세계 평화의 종이 있는 시네이 공원이었습니다. 세계 평화의 종은 유엔 본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있는데요, 평화와 비폭력을 염원하며 매년 유엔 총회 개최일인 국제 평화의 날에 울린다고 합니다.

세계 평화의 종 옆에는 평화헌법 9조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를 새긴 비석이 있었습니다. 뒤에 비둘기가 바치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비둘기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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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이 공원을 떠나 말라리아 희생자비에 갔습니다. 이시가키 북쪽은 오키나와 전쟁때 크게 공습을 당한 지역은 아니지만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전쟁 말라리아’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당시 일본군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주민들을 유병지역인 산으로 강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에 대한 보상운동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비 앞에서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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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반나 공원 전망대에 가서 이시가키 섬을 내려다 봤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식당과 붙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도 조금 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한국 변호사님들에게 별도로 또 선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야이마무라라는 이시가키 전통마을을 구경하고 산호초를 볼 수 있는 글래스 보트를 타러갔습니다. 화려한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니모 찾기에 열심이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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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유 일정을 가졌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바닷가에서 수영이나 스노쿨링을 했습니다. 저는 김인숙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등과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았습니다. 여기서 세월호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해변에서 노래와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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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류회의 마지막 만찬은 소고기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특별히 저희를 위해 소고기 집으로 고르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만찬인 만큼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사이토 변호사님과 기타 지넨 변호사님은 한국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까야마 변호사님과 심재환 변호사님의 발언(? 아니면 연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이시가키섬에서 자라면서 부모님께서는 사람이 성공하면 고향을 버리기 때문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너무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변 분들과 고향을 찾아 고향에 대한 짐을 내려놓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ㅠㅠ그리고 이어서 평화교류회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같이 계속 노력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하셨습니다(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전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만찬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호텔로 돌아가 쉬었지만, 2차까지 가신 분들도 많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넷째 날 – 세월호 플래시몹과 헤어짐

이시카키를 떠나는 날입니다. 전날 해변에 갔던 몇몇이 배웠던 세월호 율동을 마지막날 아침 호텔 앞 잔디밭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결국 나하 공항에서 세월호 플래시몹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거나 율동의 의미와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항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플래시몹을 지켜보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을 텐데, 조금도 빼지 않고 동참해 준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항에서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요 ^^ 오키나와 분들은 바로 일터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항에서 각자 선택한 대로 갈라져 일부는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투쟁 현장으로, 일부는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일부는 자유여행을 택하여 각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츄라우미 수족관 팀에 합류했는데,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차 렌트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주셔서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나하로 돌아와서 박진석 변호사님이 항상 가신다는 재키스 스테이크에서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와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하는 간소한 뒷풀이에 참여했습니다. 나카니시상과 케이타상과는 처음 인사했는데,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작은 펍에서 다트 게임도 하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도란 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 한국에서 봐요’하는 인사로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5일차

다섯째날 오전은 그야말로 자유일정이었습니다. 자녀 장난감 선물을 사러 가는 엄마팀, 츄리성 관광팀, 국제거리 관광팀 등 다양하게 무리지어 오키나와를 관광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변호사님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소감

평화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다기 보다 그냥 오키나와라는 도시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참여했는데, 세미나도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류회를 통해 한국과 오키나와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한다는 점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과 오키나와 분들이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교류회에서는 오키나와 분들과 더 많이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렇게 의미 있는 모임에 함께 하게 돼서 매우 기쁘고, 교류회에 함께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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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회원이 전하는 민변 광주전남지부의 근황

– 류리 (변시 4회, 광주전남지부)

∙ 2018. 10. 21. 퀴어문화축제

민변 광주전남지부 부스가 설치된다는 말을 듣고 아는 변호사님 한 명은 있겠지 하며 집에서 가까운 현장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민변 회원들은 ‘인권감시단’이라는 조끼를 입고 충돌이 예상되는 지점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당시 민변에 가입하지 않았었지만 ‘혹시 모르니 너도 입어라’라는 말을 듣고 냉큼 조끼를 받아 입고 민변 부스를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행히 큰 충돌 없이 퍼레이드까지 진행 되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축제의 참가자들 중 상당수가 20대 초반의 아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소수자집단의 구성원들은 불편함과 차별(을 넘어서는 혐오)을 참다못해 맞서기 위해 광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아이들(?)은 나 자신을 위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기 위해 광장으로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광장에 나옴으로 인해 앞으로 불편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나온 것입니다. ‘정체성’에 대해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2018. 11. 8. 11월 월례회, 민변 소개마당&변론경험 나누기

민변 회원이 되기 전 민변 소개마당과 변론경험 나누기 행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매년 새로 등록한 신입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행사인데, 어쩐지 저는 신입변호사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종종 참석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화들까지도 선배들이 겪었던 모든 것들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2019년부터 광주전남지부는 민변소개마당&변론경험 나누기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지만 다른 활동들로 광주전남지역의 변호사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2018. 12. 14. 임시총회 &송년회

저의 2018년도 목표 중 하나는 민변에 가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왠지 민변활동을 매우 고귀한 그 무엇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좀 더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쌓고 법적 지식이 많아지면 가입하리라는 핑계를 대며 가입을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드디어 2018년의 끝자락에서 무려 임시총회를 통하여 광주전남지부에 가입하게 되었고, 가입과 동시에 송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송년회 즈음인 2018. 11. 29.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소송의 승소판결이 확정되어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에서 감사패를 전달해주시고자 송년회를 찾아주시어 조금 더 즐겁고 뜻깊은 송년회가 되었습니다.

 

∙2019. 1. 30. 정기총회

광주전남지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정기총회였습니다. 광주전남지부의 특징은 회원 변호사님들이 광주지방변호사회 내부적으로도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다양한 주제들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함께 충분히 논의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년 한 해 수행하였던 민변활동을 되짚어보며, 회원 변호사님들이 본인의 사무실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꾸준하게 민변활동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는 것 자체가 고귀한 것임을 깨닫고 뒷풀이 자리에서는 소맥을 진탕 마시며 하하호호 즐겼습니다.

 

∙ 2019년 20세를 맞이한 광주전남지부

올해로 광주전남지부는 탄생 20주년이 됩니다. 광주전남지부에서는 20주년을 더욱 알차게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계획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을 버팀목으로 앞으로의 20년 또한 즐겁고 멋진 민변 광주전남지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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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2/2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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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위원회 활동소식

 

 1. 사법부도 인정한 경제민주화! – 대법원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지정·영업시간제한처분 적법’ 판결

 

2015년 11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방자치단체의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2015두295). 특히 대법원은 “대형마트 등이 소규모 지역상권에까지 무차별 진출해 시장을 잠식함으로써 전통시장의 위축과 대형마트 소속 근로자의 일상적인 야간근무 등 부정적인 효과가 일어났다”며 “이런 현상에 대한 대책으로 만들어진 유통법은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정한 헌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등 사회적 합의로 탄생한 대형마트 규제의 ‘공익성’이 대기업의 영업 자유권과 소비자 선택권 침해보다 우선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재 유통 재벌대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대규모의 복합쇼핑몰·아울렛의 공격적 출점을 통한 유통시장의 완전장악시도를 막고 중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법 개정안 입법 취지를 보장한 것으로, 헌법적 가치에 기반한 경제민주화 입법의 정당성을 확인한 판결입니다. 2015년 9월 18일 대법원 공개변론이 진행되기도 한 이번 사건은 민생경제위원회 양창영 회원이 대리인으로 참여하였으며, 한겨레21 선정 ‘2015년 최고의 판결’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2. 민생위 2월 집행부 워크샵, 부동산·금융팀 합병·팀별 스터디 등 안내

 

2016년에도 경제민주화를 향한 민생경제위원회의 활동은 계속됩니다! 민생경제위원회는 1월 월례회에서 2016년 위원회 활동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활동방안을 좀 더 구체화하고 위원회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집행부 워크샵을 2월 4일 목요일 저녁 6시부터 서울 유스호스텔(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4번출구)에서 개최합니다. 민생경제위 2016년 활동방향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될 이번 워크샵에 관심 있는 위원분들의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부동산팀과 금융팀이 뜻을 모아 ‘금융부동산팀’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금융팀을 이끌던 백주선 회원이 팀장으로, 김태근·박현근·이유나 회원이 간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금융부동산팀은 팀 편제 개편 사업의 일환으로 2월 2일부터 격주 화요일 저녁에 금융판례스터디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공정경제팀도 1월 25일부터 격주 월요일 저녁에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률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있으신 회원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민생경제위원회와 관련된 각종 문의사항은 사무처 송아람 상근변호사(02-522-7284)로 연락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상 민생경제위원회 소식이었습니다^^

목, 2016/01/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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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위원회 활동소식

1. ‘성매매위헌제청’ 워크숍 개최

 여성인권위는 지난 9월 월례회에서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오정진 교수님을 모시고 성매매위헌제청과 관련하여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자리를 가졌습니다. 오 교수님은 여성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이자 디딤돌이었던 ‘성적 자기결정권’이 최근에 성매매를 옹호하는 근거로 주장되는 원인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그간의 이해와 작동이 다분히 사사화(私事化)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현재 법적 권리로서 논의되는 ‘성적자기결정권’은 단순한 교환체계를 넘어서는 특이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와 친밀성을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때부터 반성매매 활동에 함께해온 여성인권위에게 이번 워크숍은 그간의 관련 활동을 진단하고 ‘성적 자기결정권’ 재구성을 위한 열띤 토론과 깊은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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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공동주최

 최근 여성가족부의 보수화된 성평등 행정에 항의하고 우리사회 성평등의 확장을 요구하는 문화제로 기획된 여성성소수자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궐기대회가 2015. 10. 10. 오후 6시 대한문 앞에서 열렸으며, 여성인권위는 민변 소수자위와 위 대회에 한국여성단체연합, 행동하는 성소수자연대 등과 공동주최로 함께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2015. 10. 7. 오전 9시 20분 광화문 정보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성소수자-여성단체와의 면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공동주최하였고, 여성인권위 조숙현 위원장이 발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성평등에서 성소수자 배제한 여가부 규탄한다!'

 

3. 2015년 정기국회 대응을 위한 여성인권분야 법률안 의견서

2015. 11. 중에 예정하고 있는 민변 법률안 의견서 발표를 앞두고, 여성인권위는 10월 월례회에서 여성인권분야 법률안에 관하여 각 팀별로 작성한 검토의견서 초안을 점검하고 여성인권위의 검토의견서를 논의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가족법 분야의 2개 법안(가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및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하여는 ‘입법촉구’ 의견을, 빈곤과 여성노동 분야의 2개 법안인 ‘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감정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들에 관해서는 ‘입법촉구’, ‘보안 후 입법촉구’ 의견을 각 확정하였습니다. 그 외 법률안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4. 차기 월례회

 여성인권위 11월 월례회는 2015. 11. 19. 목요일 늦은 7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립니다. 송년회를 제외하면 올해의 마지막 월례회 자리인 만큼,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올 한해 여성인권위 활동을 짚어보고 의견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재밌고 알차기로 유명한^^ 여성위 송년회는 12월 17일 저녁에 있을 예정이며, 언제든 열려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화, 2015/10/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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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를 통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평화를 마주하다

 

이 윤 주

 

 

두 개의 풍경, 아름다운 풍광과 내면의 죄책감이 교차하는 곳

    오키나와, 교류회에 참여하기 이전 이곳은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세계일주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편하게 하는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마음을 안고 오키나와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바라본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대로’였습니다. 탁 트인 넓은 바다, 청량한 바람,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볕. 그런데 이곳에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속 깊이 느껴지던 고통과 더 이상 이 풍경을 마음 놓고 아름답다고만 말하지 못하겠던 저의 죄책감은 어디서 시작된 것이었을까요. 풍경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며 말을 내뱉던 저의 입은 이제 머뭇거리기 시작하였고, 마음에는 죄책감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후텐마 비행장, 일상을 위협하는 군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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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차 오키나와 교류회 평화기행의 첫 일정으로 ‘후텐마 비행장’으로 향했습니다. 후텐마 비행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해병대 전용 비행장이라고 합니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 본 군용비행장과 일반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마을 간의 거리는 말 그대로 ‘지척’이었습니다. 이 물리적 거리는 무시로 우리의 일상에 쏟아지는 군용비행기의 소음과 상공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등으로부터 부산물 등의 낙하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군국주의로부터 위협받는 위태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바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로 다시 내려오자 그곳에서는 공을 차며 놀고 있는 어린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가득 퍼졌습니다. 이율배반적이라고 느낄 만큼 상반된 두 풍경 사이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관통하는 군국주의를 보았습니다.

 

동굴 진지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참상과 마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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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교류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래도 동굴진지를 체험했던 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물리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깊은 어둠을 만났습니다. 전쟁 시기, 이곳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이 있던 공간, 동굴 곳곳에 보존되어 있던 그 시절의 잔해들을 보며 그 시간 이곳에서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사람들의 절박함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라는 야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선택했던 곳, 반세기라는 시간적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저는 이곳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공포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생각해보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불빛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곳에서 그 긴 시간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공포감으로 버텼던 것일까요? 발끝에 느껴지던 울퉁불퉁한 바닥과 손끝에 느껴지던 습기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둠을 여전히 저의 온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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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전투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쪽 바다 끝 절벽 가까이에 위치한 이 평화기념공원을 둘러싼 풍경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 바다 끝 기자절벽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끝에 자결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비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평화의 초석”이 길에 길게 세워진 공원을 걸으며 기록된 이들의 희생과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희생을 생각했습니다. 총 24만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길게 서있는 초석들 중 발걸음을 유난히 붙잡았던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분리되어 각인된 초석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이 이들의 이름조차 강제로 나누어 기록해 놓은 모습을 보며, “분단은 어디에나 있다”는 어떤 변호사님의 말귀가 와서 박혔습니다.

 

히메유리 기록관 –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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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기록을 시민들의 힘으로 남긴 기록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록관에서 본 그들의 앳된 얼굴에서 저의 평범했던 여고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가늠해보려 노력했습니다. 히메유리 여고생들의 죽음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름다운 영웅들로 포장해내는 일본 정권의 민낯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은폐하려는 야만적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처절한 죽음에 대한 인간적 애도는 사라지고 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상찬하기에 급급한 것은 지금을 사는 자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것이 아닐는지요. 비극적 죽음 앞에서도 반성과 성찰은 사라진 이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에도, 그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무례와 야만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곳 관장님께서 우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던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말씀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기록관을 나섰습니다.

 

이번 오키나와 교류회를 통해 “전쟁은 인간이 일으키는 최대의 잘못이다.”라는 이 한 문장을 손에 단단히 쥐고, 가슴에는 평화라는 구체적인 가치를 담고 저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통해 일본 오키나와 자유법조단께서 보여주신 극진한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내년에 이곳 한국에서 서로 좋은 소식을 가득 안고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목, 2018/03/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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