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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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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익명 (미확인) | 화, 2015/10/27- 14:58

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김소리, 오현정 회원

   

교류(交流) :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여 흐름

처음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을 때에 이 기회는 제게 ‘교류’보다는 ‘여행’의 의미가 컸습니다. 저는 푸른 바다와 빛나는 햇살, 따뜻한 공기와 순박한 사람들의 가무잡잡한 얼굴… 이런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조금은 숨가쁜 일상을 떠나 작은 섬으로 도망하는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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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고, 오키나와 – 이시카키라는 신비한 산호섬과 바다는 그동안 여행하며 보았던 세계의 많은 아름다운 바다들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과 5일을 보내고 돌아와 되새겨보니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친구에게 오키나와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할 때 저는 바다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한 9년의 시간 속에 촘촘히 쌓은 마음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공기 – 밝고 맑은 웃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취를 이루면 이루는 대로 아낌 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어 온 그 모든 시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 물결은 막연히 아름다운 여행지를 꿈꾸며 처음 오키나와를 찾은 낯선 이방인이었던 제게도 밀려왔습니다.

교류(交流)는 사귀다 그리고 흐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을,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왠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교류’가 이렇게 멋진 말이라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교류한다는 것 – 차이를 넘어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결을 확인하고, 연대한다는 것 – 이 아름다운 작업에 동행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년에 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날 – 이시카키 섬

이번 교류회에 민변 측은 21명이 참가했습니다. 대부분 민변 변호사들이지만, 너무나 훌륭한 통역사이자 교류회를 통해 사랑을 꽃피우신 김영환 선생님, 법무법인 이공에서 일하고 계신 민숙님, 김인숙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영수님, 김인숙 변호사님 지인이신 이명숙 화가님도 함께하여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회의 장소는 이시카키 섬입니다. 첫 날 우리는 나하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이시카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저도 교류회에 앞서 있었던 정영신 박사님의 강연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오키나와라고 구획된 섬들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습니다. 오키나와 섬들 전체가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과 가깝고, 심지어 본섬에서 이시카키 섬은 대만 방향으로 비행기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닿을 수 있을만큼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외양도 일본보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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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공항에서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을 처음 만나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이시카키 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은 대부분 오키나와 본섬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시카키 섬에 처음 가본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시카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이시카키 섬에서 태어나신 나카야마 센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는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큰 어른 같은 분으로, 권정호 변호사님과 함께 민변-오키나와 교류회를 만든 분이십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가 되신 대 선배이십니다만, 가무잡잡한 얼굴에 가득히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분이셔서, 첫 인상부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시카키 섬이 있는 곳을 ‘아에야마 지역’이라고 하는데, 사탕 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신을 모시는 춤이나 노래가 많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1700년대에 거대한 쓰나미로 사람들이 다 죽고, 주변에서 이주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태풍 피해로 유명(?)하기 때문에 근래에 건축한 집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집입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과 많이 교류하고, 삼국의 어민들이 공동 어장에서 어업을 하고 있습니다. 본섬과는 달리 미군기지도, 자위대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곳입니다만, 최근 일본 정부가 자위대 기지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에야마 제도는 일본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동 어장에서의 어업 분쟁 한 번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우호와 연대의 정신으로 삶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분쟁의 불씨가 자라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숙소인 미야히라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짐을 풀고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거리와 띄엄 띄엄 있는 건물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식당에서 삼삼오오 둘러 앉아 더듬 더듬한 일본말, 한국말, 영어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일동포인 백충 변호사님의 진행으로 교류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두 번째 참가한 사람들, 주니어 변호사들, 선배 변호사들, 사무원들 등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앞에 나가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교류회는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다같이 어우러지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사무원 분들의 활발한 참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참여하기 시작했다가, 미군기지와 평화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마리상의 유창한 한국어 자기소개에 교류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습니다. 더듬더듬한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서먹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 – 다케토미 섬 투어

둘째 날 아침에는 호텔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의 다케토미 섬으로 향했습니다. 다케토미 섬은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섬마을입니다. 선착장에서 작은 버스를 타고 5분을 달려 마을로 들어서자 나카야마 센세가 어릴 적에 몰았다는 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소가 끄는 차를 타는 것으로 다케토미 섬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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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가 이끄는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물소를 모는 할아버지가 다케토미 섬에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주셨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농경용으로 사용하던 물소를 가지고 오면서 물소가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도 어릴 적에는 물소를 매일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태워준 물소는 피이스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에 네 번씩 사람들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은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집집마다 전통식 지붕을 설치하고 부엌을 따로 짓고 있습니다. 집에 차를 들여 놓으려면 국가에 허가를 받아서 마당을 넓혀야 한다고 하는 등 불편함이 많지만 전통 보존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은 없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에는 우타키라는 자연신을 믿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일본식 신사와 도리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살던 아름다운 아사도야를 도시의 한 관리가 첩으로 들이려고 유혹하였으나 섬 사람으로 살겠다며 지조를 지켰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아사도야노 우타’라는 노래가 전하여져 오는데, 할아버지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모두 함께 불러보았습니다. 이쪽 지방 사람들은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11월에는 이틀 밤을 새워서 춤을 추는 축제도 열린답니다. 그 동안 마시는 술은 모두 공짜라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마을을 둘러 본 뒤에는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슬아슬한 좁은 계단 끝 전망대에서 마을 조망도 내려다보고, 한적한 골목 골목을 걷다가 쉬기도 하다가 식사 장소로 갔는데, 근처 해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 내서 저와 소리, 민숙씨는 점심을 포장하기로 하고 15분간 열심히 걸어 해변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이시카키의 바다였는데, 투명하리만치 맑은 민트색 물빛과 희고 보드라운 모래가 이루는 신비로운 바다 풍경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2일차 오후 –세미나

한적하고 여유롭던 다케토미 섬의 잔상에 푹 빠져 있는 상태에서 세미나 장소로 향했습니다. 학교 교실 같은 아담한 공간에서 제9회 평화교류회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세미나가 잘 될까 싶기도 했는데, 김영환 선생님의 동시 통역이 너무나 훌륭해서 무리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양국의 치열한 현안들 때문인지 세미나는 상당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일 신 가이드라인과 안보법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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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세션은 하야시 치카코상 변호사님이 <미일 신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안보법제>에 대해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일본 젊은 층들의 활발한 집회 시위 참여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의 법적인 성격을 검토하고 그 동안의 개정의 흐름에 비추어 2015년 가이드라인의 기본 전제와 주요 내용, 당시 국회 심의를 통과했던 안전보장 법제와의 관련성 및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심재환 변호사님이 2015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안보법제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안보법제 반대 운동에 대한 논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움직임, 변호사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나라의 상황과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일본은 전후 군대가 아니라 경제번영에 방점을 찍는 요시다 시게루의 비무장 노선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면 키시노 고스케는 전쟁 전의 모습을 회복하여 무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 군대를 주장하여 왔습니다. 아베는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평화 헌법을 ‘미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일미간의 공동 군사 대응력을 강화하고 군사 대국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익 교과서 장려 활동을 통해 전쟁에 찬성하는 국민의식을 만드는 ‘국가 만들기’ 작업에 한창입니다.

이에 반대하며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집회 시위와 관련하여, 오키나와 변호사들은 주부나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SEALs의 운동의 성격과, 정부 친화적 헌법학자조차도 입헌주의 위반을 지적하는 등 학계의 적극적인 반발이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1960년대의 안보 투쟁은 조직된 사람들이 위주였던 것에 반하여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 국가에서 군사 국가로 전환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평화 헌법이 상당히 뿌리 내렸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시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8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지만, 일본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의 대규모 공동 행동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무적이지만, SEALs에 대해 우익 미디어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시민들을 개인 개인으로 분열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어 법률가의 문제제기가 중요하다고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연대 활동을 계속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SOFA 민사청구권

한국의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한미SOFA의 민사청구권에 대해 발제를 해주셨고 이어 오키나와의 기타지넨 변호사님께서 미일지위협정의 민사청구권에 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민사청구권의 내용의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한국/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간의 배상금 분담비율이 불공평하다는 점(미군 단독 책임인 경우에도 한일 정부는 25%를 부담), 비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거나 미군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미군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공무중 행위에 대하여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하는 경우 “배상금이 청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배상신청 결정 동의서”를 제출해야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보고(한국)

하주희 변호사님께서 지난 5. 28. 오산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이 반입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주한미군 측은 폐기확인서를 질병관리본부로 제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를 규율할 수 있도록 한미SOFA를 개정하는 등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김종귀 변호사님께서는 ‘미군기지 잔류 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보고해주셨습니다. 2014. 10. 23. 미국 워싱턴 D.C 펜타콘에서 한미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CM)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서울 용산 소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본부 및 경기도 동두천에 위치한 210화력여단을 잔류하기로 하는 내용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하였고, 이에 민변 대리인단은 미군기지 잔류를 승인하고 공표한 국방부장관의 행위를 행정법상 처분으로 보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법원은 국방부장관의 행위가 통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걱정되지만,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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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본 변호사님께서는 지난 해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께서 여론은 어땠는지 물어보셨고, 이에 한국측 변호사님들은 ‘종북’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일반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으나, 지식인층에서는 잘못됐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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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변호사님께서는 김인숙, 장경욱 변호사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징계개시신청과 법무부가 권한 없이 변협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징계개시신청 기각결정을 취소하고 징계개시결정을 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가토 변호사님께서는 일본에서는 법무성에 변호사 징계에 관한 권한이 일절 없다고 하며, 한국 법무부에 변호사 징계와 관련하여 권한이 있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민변은 곧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꼭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소송보고 (일본)

다카기 기치로 변호사님이 헤노코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매립승인처분을 취소하였으니 오키나와의 현재 가장 뜨거운 현안입니다. 나하로 돌아온 뒤에 일부는 헤노코 투쟁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 과정에서 섬전체회의 발족, 헤노코기금의 창설, 35,000명이 참가한 현민대회, 손에 손을 잡고 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운동 등 ‘All-Okinawa’라는 구호 하에 연대한 현민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오키나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강조가 이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보다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에하라 토모코 변호사님은 기지소음소송 중 아쓰기 4차 판결을 중심으로 발표해주셨습니다. 특히 자위대기의 비행금지 청구를 기지가 이전하는 2016. 12. 31.까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어쩔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 인용하였는데, 수면방해 등으로 인한 인격적 이익 손상을 강조하는 판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군기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행정처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각하하였습니다. 토모코 상은 소음 소송의 추세에 비추어 상당히 높은 기준의 배상을 받아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비결(?)에 대해 묻자, 조용한 환경에서 사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정밀한 생활에 관한 인격적 평가가 높아졌다는 점이 설득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변호인단은 2,30년 전에 비하여 정신적 손해의 위자료가 상승한 반면 폭음소송은 30년 전에 인용되었던 위자료 액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폭음소송만 금액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점을 부각하였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2일차 저녁 – 공식만찬

열띤 세미나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식 만찬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오키나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엄청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는데, 저는 돼지 귀 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해파리냉채인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요리사님께서 돼지 귀 요리라고 하셔서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ㅠㅠ).

이 날은 먼저 아키후미 마츠자키 변호사님, 하야시 치카코 변호사님 등 전날 환영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분들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양측의 선물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측에서는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 모두 디자인이 너무 귀여웠고,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라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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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에서는 공식 선물로 한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심재환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이명숙 선생님은 따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심재환 변호사님은 아내인 이정희 변호사님이 만드신 쿠키를, 장경욱 변호사님은 아내가 만드신 비누를, 이명숙 선생님은 자신의 북아트 작품을 오키나와측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식사 때는 일부러 한국, 오키나와 사람들을 섞어 앉았습니다. 저는 처음 참여하는 거였기 때문에 사실 오키나와 분들이 매우 어색해서 자꾸만 저와 친한 사람들과 앉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이한본 변호사님께서 제재하셨습니다.ㅋㅋ 덕분에 오키나와 분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이시가키 섬이 고향이신 나까야마 변호사님, 마리상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는데,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일본어만 가능하셔서 소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상이 한국어를 조금 하고 저도 일본어를 아주 조금 해서 어찌어찌 소통은 되더군요. 중간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소통에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됐는데, 끝까지 저와 함께 식사를 해주셔서 감동받았다는..ㅋㅋ

중간에 식당 측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해주어 다같이 춤추며 이야기하는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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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간 곳은 노래 공연도 해주고 손님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아저씨 두분이 오키나와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나중에 아리랑을 불러주시기도 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님과 김자연 변호사님께서 오키나와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한국 변호사들의 공연에 감동을 받은(?) 옆 자리 손님들이 저희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았던 술자리였고, 오키나와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일차

셋째날에는 이시가키 섬의 북쪽을 둘러봤습니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들은 주로 남쪽에 많이 살고 북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세계 평화의 종이 있는 시네이 공원이었습니다. 세계 평화의 종은 유엔 본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있는데요, 평화와 비폭력을 염원하며 매년 유엔 총회 개최일인 국제 평화의 날에 울린다고 합니다.

세계 평화의 종 옆에는 평화헌법 9조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를 새긴 비석이 있었습니다. 뒤에 비둘기가 바치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비둘기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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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이 공원을 떠나 말라리아 희생자비에 갔습니다. 이시가키 북쪽은 오키나와 전쟁때 크게 공습을 당한 지역은 아니지만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전쟁 말라리아’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당시 일본군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주민들을 유병지역인 산으로 강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에 대한 보상운동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비 앞에서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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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반나 공원 전망대에 가서 이시가키 섬을 내려다 봤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식당과 붙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도 조금 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한국 변호사님들에게 별도로 또 선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야이마무라라는 이시가키 전통마을을 구경하고 산호초를 볼 수 있는 글래스 보트를 타러갔습니다. 화려한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니모 찾기에 열심이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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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유 일정을 가졌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바닷가에서 수영이나 스노쿨링을 했습니다. 저는 김인숙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등과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았습니다. 여기서 세월호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해변에서 노래와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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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류회의 마지막 만찬은 소고기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특별히 저희를 위해 소고기 집으로 고르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만찬인 만큼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사이토 변호사님과 기타 지넨 변호사님은 한국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까야마 변호사님과 심재환 변호사님의 발언(? 아니면 연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이시가키섬에서 자라면서 부모님께서는 사람이 성공하면 고향을 버리기 때문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너무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변 분들과 고향을 찾아 고향에 대한 짐을 내려놓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ㅠㅠ그리고 이어서 평화교류회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같이 계속 노력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하셨습니다(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전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만찬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호텔로 돌아가 쉬었지만, 2차까지 가신 분들도 많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넷째 날 – 세월호 플래시몹과 헤어짐

이시카키를 떠나는 날입니다. 전날 해변에 갔던 몇몇이 배웠던 세월호 율동을 마지막날 아침 호텔 앞 잔디밭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결국 나하 공항에서 세월호 플래시몹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거나 율동의 의미와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항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플래시몹을 지켜보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을 텐데, 조금도 빼지 않고 동참해 준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항에서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요 ^^ 오키나와 분들은 바로 일터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항에서 각자 선택한 대로 갈라져 일부는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투쟁 현장으로, 일부는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일부는 자유여행을 택하여 각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츄라우미 수족관 팀에 합류했는데,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차 렌트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주셔서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나하로 돌아와서 박진석 변호사님이 항상 가신다는 재키스 스테이크에서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와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하는 간소한 뒷풀이에 참여했습니다. 나카니시상과 케이타상과는 처음 인사했는데,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작은 펍에서 다트 게임도 하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도란 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 한국에서 봐요’하는 인사로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5일차

다섯째날 오전은 그야말로 자유일정이었습니다. 자녀 장난감 선물을 사러 가는 엄마팀, 츄리성 관광팀, 국제거리 관광팀 등 다양하게 무리지어 오키나와를 관광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변호사님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소감

평화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다기 보다 그냥 오키나와라는 도시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참여했는데, 세미나도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류회를 통해 한국과 오키나와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한다는 점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과 오키나와 분들이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교류회에서는 오키나와 분들과 더 많이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렇게 의미 있는 모임에 함께 하게 돼서 매우 기쁘고, 교류회에 함께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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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비례대표 확대·강화

- 오윤식 위원

 

■ 들어가며

20대 국회의원총선과 관련한 선거구획정 논의가 한창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에서는 비례대표 확대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 새누리당에서는 오히려 비례대표의원수를 축소하고 지역구의원수를 늘리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힐 수 있는 선거제도를 크게 손질하는 문제라 각 당이 계산기 두드리기 바쁜 양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당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관점이고, 각 당의 당리당략적 기득권 고수가 아닌 진정으로 선거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구현하도록 이를 개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 양식 있는 정치학자나 전문가는 비례대표의 확대 강화야말로 민의에 부합하는 선거제도의 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보고 있다. ‘바보야 문제는 비례대표 확대야!’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사표가 많이 발생하지 않고 민의의 부합하게 의석수배분을 하는 선거제도의 모범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의 비례대표제를 살펴보고, 그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지난 19대 총선에 도입하는 경우 일어나는 의석수 변화를 통하여 현재의 우리나라 국회의원선거제도가 어떻게 민의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비례대표의 확대·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로 한다.

 

■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개요

독일의 연방의회 선거제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인물선거가 가미된 비례대표선거제’(die mit der Personenwahl verbundenen Verhältniswahl; 인물선거는 소선거구 상대다수제에 의해 의원을 선출하는 지역구의원선거를 말함)이다. 즉, 독일 연방의회(Bundestag)은 초과의석(Überhangmandat)과 보정의석(보정의석은 초과의석이 발생했을 때 이를 상쇄되게 하기 위하여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은 정당에 분배되는 의석이다. 독일 연방선거법 제6조 제7항 참조)이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총 598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절반인 299명은 소선거구 상대다수제에 의한 지역구의원선거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의석수 절반은 연방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되 주(Land별)로 작성되는 폐쇄형비례대표후보자명부(Landesliste)에 의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에 의하여 선출된다. 유권자들은 우리 나라처럼 2개의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제1투표는 지역구의원후보자(Wahlkreisabgeordnete)에게, 제2투표는 주비례대표후보자명부(Landesliste)상의 정당에 각각 행사한다(동법 제1조, 제4조, 제5조).

의석분배와 관련하여 보면, 헤어/ 니마이어(Hare/ Niemeyer) 방식에 따라 각 정당이 제2투표에서 얻은 연방차원의 득표비율(= 특정 정당의 제2투표 총득표수/각 정당의 제2투표 총득표수의 합계)과 각 주가 연방전체에서 차지하는 인구수비율(Bevölkerungsanteil)에 따라 598의 의석 전체를 각 정당별 및 주별로 배분하는 제1차 의석배분과, 각 주별로 정해진 의석수에 대하여 다시 각 정당이 제2투표에서 얻은 연방차원의 득표비율에 따라 각 정당의 주비례대표후보자명부(Landesliste)에 의한 의석분배 및 당선자결정을 하는 제2차 의석배분이 있다(동법 제6조). 이와 같이 2단계에 걸쳐 의석배분과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은 독일이 연방제 국가로 주(州)단위로 비례대표후보자명부가 작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 정당이 지역구선거에서 얻은 의석수는 위와 같이 배분될 각 정당의 의석수에서 공제되고, 지역구선거에서 각 정당이 얻은 의석은, 그것이 위와 같이 배분될 각 정당의 의석수를 넘는 경우에도, 그 정당에게 모두 귀속된다. 이처럼 각 정당에게 배분될 의석수를 넘는 지역구의석을 초과의석이라고 한다(동법 제6조 제4항, 제5항). 이러한 초과의석은 각 정당에게 배분될 의석수를 각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산정하고, 지역구선거에서 선출된 후보자의 당선은 우선적으로 보장하는 구조에서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정당투표에 따라 갑정당에게 배분될 을주(州)의 전체의석수는 20석인데 지역구선거에서 당선된 의석수 22석이면, 갑정당의 을주의 의석으로는 20석이 배분되어야 함에도 지역구선거에서 당선된 22석이 갑정당의 을주의 총의석수로 인정되고 비례대표의석수는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데, 여기서 20석을 넘은 의석인 2석을 초과의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에 비춰본 비례대표 확대·강화의 필요성

한편, 19대 총선(유효투표총수: 21,332,061)에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자유선진당이 각각 9,130,651표(42.80%)(새누리당), 7,777,123표(36.45%)(민주통합당), 2,198,405표(10.30%)(통합진보당), 690,754표(3.23%)(자유선진당)를 득표했고 그 이외의 정당은 3% 미만을 득표했다. 또 지역구국회의원선거에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자유선진당이 각각 127석(새누리당), 106석(민주통합당), 7석(통합진보당), 3석(자유선진당)을 얻었고, 그 이외 정당은 지역구의석을 얻지 못했다.

위와 같은 독일의 ‘인물선거가 가미된 비례대표선거제’를 우리나라에서 도입하는 것을 가정하고 이를 19대 총선에서 각 정당이 얻은 득표비율에 따른 의석수배분을 19대 총선 당시의 의석수배분 결과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즉,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지역구의석 150석, 비례대표의석 150석으로 조정된 것을 기준으로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보자. 여기서 또 주목할 것은 현재 많이 주장되고 있는 지역구의석 대 비례대표의석 2:1 구조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역구의석 200석, 비례대표의석 100석으로 하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초과의석이 많이 생겨날 우려가 있어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한 정당이 정당투표에서 30%를 득표하였다면, 전체 90석(300× 0.3)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 정당이 지역구 의석 200석 중 120석을 차지한 경우라면, 무려 30석(120석- 90석)의 초과의석이 생겨날 수 있고, 이는 돌발적으로 전체 의원정수의 확대로 귀결되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역구의석 150석, 비례대표의석 150석으로 조정된 것을 기준으로 그 변화 양상을 본다. 이 경우 각 정당 득표율을 기준으로 한 각 정당에 대한 전체 의석수(300석)는 다음과 같이 배분된다.

정당명 득표비율 의석 배분 계산 배분된 의석수
새누리당 9,130,651/ 19,796,933×100

= 46.12%

150명×46.12%

= 138.36

138석
민주통합당 7,777,123/ 19,796,933×100

= 39.28%

150명×39.28%

= 117.84

117석+1석= 118석
통합진보당 2,198,405/ 19,796,933×100

= 11.10%

명×11.10%

= 33.3

33석
자유선진당 690,754/ 19,796,933×100

= 3.48%

150명×3.48%

= 10.44

10석+1석= 11석

 

19대 총선에서 각 정당은 다음과 같이 지역구의석을 차지하였는데, 그 지역구의석과 다음표에서 계산된 비례대표의석을 합산한 전체 의석은 아래와 같다. 다만, 지역구의석수가 19대 총석에서는 246석인데, 이 246석이 150석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가정한 다음, 이 150석을 기준으로 비례적으로 지역구의석수를 획득한 것으로 가정하여 계산한다. 다만, 무소속으로 3명이 당선된 것으로 하고, 그 계산 결과 정수까지 의석수를 각 정당에 인정하고 다만 단수가 가장 큰 정당인 자유선진당에 대해서 의석을 1석을 추가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가정해서 의석을 계산하였다[새누리당: 77.43= 127×150/ 246, 자유선진당: 2{1.8(=3×150/ 246)+1}].

구분 전체

의석수(①)

지역구의석수(②) 비례대표의석수(③: ①-②) 합계
새누리당 138석 77석 71석 138석
민주통합당 118석 64석 54석 118석
통합진보당 33석 4석 29석 33석
자유선진당 11석 2석 9석 11석
무소속 0석 3석 -3석 3석

 

위와 같은 방식에 따라 각 정당이 얻는 의석수와 실제 위 각 정당이 19대 총선에 얻은 의석수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에서 14석이, 민주통합당에서 9석이 각각 감소하고, 통합진보당에서 20석, 자유선진당에서 6석이 각각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경우에 비하여 지금의 선거제도하에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은 그만큼 ‘과대대표’(overrepresentation)되고 있고,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은 그만큼 ‘과소대표(underrepresentation)’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이는 현행 국회의원선거제도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주는 것이다.

정당명 19대 총선 당시 각 정당의 의석수(총 300석)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시 예상 각 정당의 의석수(총 300석) 증감
새누리당 152석 138석 -14
민주통합당 127석 118석 -9
통합진보당 13석 33석 +20
자유선진당 5석 11석 +6
무소속 3석 3석 0

 

이처럼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경우 강력한 제3당이 출현할 수 있고, 이로 인한 긍정적 효과, 즉 강력한 제3당의 존재에 의한 제1당 및 제2당의 견제와 이로 인한 제1당 및 제2당의 건강성 회복, 제3당의 역할에 따른 타협의 정치 복원, 정치에서의 다양한 가치의 추구·실현과 이로 인한 우리 사회의 다양성 구현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결과는 통합진보당지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다만, 필자는 강력한 제3당의 존재가 제1당과 제2당의 분발을 촉구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내려놓게 할 강력한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곧 ‘민의(民意)의 따른 대의제(representation)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혁해야 민의에 부합하는지가 명확해졌다고 본다. 부디, 양당이 국민의 의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비례대표를 확대·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기를 촉구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목, 2015/09/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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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참석 후기

손영실 변호사

201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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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원회는 8월 월례회의를 2016. 8. 10.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이날 수요시위는 제1234차 수요시위이기도 했구요, 무엇보다 제2차 ‘위안부’ 기림일 맞이 세계연대 집회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위안부’ 기림일이란 故 김옥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에 첫 피해증언을 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2013년부터 매년 8월 14일을 기림일로 제정했다고 합니다. 저도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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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간사님이 예약해주신 인사동 맛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시간에 맞추어 갔으나 이미 사람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무대가 보이지도 않는 구석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2.28. 한일합의 무효를 외치고, 일본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을 할 것과 한국정부는 화해와치유재단 강행을 중단 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하고, 공연도 하고, ‘위안부’ 피해 김복동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을 듣는 등 아스팔트를 녹이는 더위에도 2시간이 신나게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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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집회에 참가한 군중들의 대부분이 중·고등학생이란 점입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와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조차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정부와 일본의 해결방법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인데 왜 저 위에 계신 분들은 모르시는 것인지 참 신기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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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참석자들끼리 시원한 것을 마시고 가자는 의견이 나오자 시원한 막걸리부터 시작하여 시원한 맥주, 시원한 소주를 권하시던 위원장님의 손을 얼른 부여잡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집회였습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요.

월, 2016/09/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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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한일외교장관회담의 국제법적 문제와 위헌성 토론회 후기

 

 - 안현영 15기 자원활동가

 

 2015 한일외교장관회담의 국제법적 문제와 위헌성 토론회가 2016년 3월 18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회담과 공동기자회견이 헌법과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살펴본 자리였다. 프로그램은 이상희 변호사의 진행으로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시현 민주법연 회원, 전종익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의 발제와 장완익 변호사, 김기남 변호사, 오동석 민주법연 회장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이상희 변호사가 지적했듯, 위안부 문제가 시민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하듯 언론과 시민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으며, ‘위안부’ 피해자들도 자리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5년 한일외교장관 ‘합의’의 실체“라는 제목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흐름을 짚고, 2015년 ‘합의’를 과거의 외교담화들과 비교해 강제성의 측면이 후퇴하고, 진상규명 및 역사교육이 후퇴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김창록 교수는 2015합의가 되로 받고 말로 준 한국 외교의 실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한국 정부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조시현 민주법연 회원은 “2015 한일 ‘위안부’합의와 국제법상 피해자의 권리”라는 제목으로 2016년 2월 16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보고서와 1999년 10월 6일 채택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선택의정서를 통해 국제법상 피해자의 권리에 대하여 논하였다.

세 번째 발제를 맡은 전종익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는 “2015.12.28. 한일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과 헌법소원”이라는 제목으로 15.12.28 구두와 보도자료로 이루어졌던 공동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이 과연 합의라는 법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논의하고 합의의 내용의 쟁점 중 기본권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법적인 관점에서 논하고, 헌법소원심판청구시 유의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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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세션인 토론 시간 첫 토론을 맡은 장완익 변호사는 2015 합의와 일본군 ‘위안부’ 재단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한일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과 피해자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제네바 행 비행기에 홀로 올랐었던 김기남 변호사는 한일 ‘위안부’합의와 피해자 권리에 대해 역설하였고, 마지막 토론을 맡은 민주법연 회장 오동석 교수는 2015 한일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과 헌법소원에 대한 토론문을 발표해, ‘합의’에 대해 헌법적으로 검토하고 헌법소원가능성에 대해 토론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법을 전공하고 공부하고 연구하신 분들로 법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었지만, 그 중심에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고민한 진정한 사회지도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토론회였다.

월, 2016/04/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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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수산물 수입금지조치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소송

-김정선 회원

 

국제통상위에서 진행 중인 정보공개청구소송

국제통상위에서는 위원회 사업으로 국제통상관련 현안에 대해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쌀 관세율 513%로 수입된 물량 정보공개청구소송, 한미 FTA 투자조항 관련 정보비공개처분취소에 대한 행정소송, 론스타 과세 부분 청구 관련 비공개처분취소소송 등 국제통상 현안에 대하여,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통해 여론을 환기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감시를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원전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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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지난 2011년 10월 후쿠시마를 방문했을 때 촬영된 후쿠시마 원전의 모습. ⓒ국제원자력기구(IAEA)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발생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3호기가 긴급정지 되었고, 송전선로와 변전시설 등이 무너져 내리면서 외부 전력이 차단되자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가동되었으나 지진 해일이 발전소를 덮치면서 비상용 디젤 발전기도 침수로 정지, 발전소 내 모든 전기시설이 손상되어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원자로 냉각을 위한 냉각수 펌프 가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냉각수가 급속히 증발, 원자로 내부 온도 및 압력이 상승하게 되었고, 노심 온도가 섭씨 1200도까지 상승, 방호벽 펠렛과 피복관이 고온으로 인해 녹아 내려 구멍이 뚫리고, 이로 인해 핵연료가 공기 중에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핵연료에 있는 질코늄이 1,200도를 넘으면 반응해 수소를 내놓는데, 이 수소가 격납용기내 수증기와 함께 수소폭발을 일으켜 방사능의 대기 유출이 시작되는 후쿠시마 원전 누출이 발생하였습니다.

일본 방사능에 대한 전 세계적 불안감

원전사고로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전 세계로 확산됨에 따라 일본의 농수산물 수입 금지에 대해 고려하기 시작하였고, 중국의 경우 10개 현의 모든 식품과 사료의 수입금지, 러시아의 경우 8개현의 수산물 및 수산가공식품의 수입금지, 대만의 경우 5개현에서의 모든 식품 수입금지, 뉴칼레도니아도 12개현의 모든 식품과 사료 수입금지, 홍콩, 마카오 등에서는 취약계층이 많이 섭취하는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우유·유제품 수입금지, 미국·필리핀·EU·볼리비아·브라질 등은 일부 제품은 수입금지를 하고 그 외에는 정부가 작성한 품질 보증서 및 생산가공지 기록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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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 김승희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인천항수입식품검사소를 방문해 수입식품 안전관리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내의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 8개 도도부현의 일부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2013년 9월 6일부터 8개 도도부현 전체 농수산물의 수입을 방사능 검출 여부와 상관없이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시켰고, 다른 현의 경우에도 검사를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해당되는 현은 후쿠시마 현, 이바라키 현, 군마 현, 도치기 현, 이와테 현, 미야기 현, 아오모리 현, 지바 현입니다. 이는 해류의 영향을 고려해서 북쪽에 있는 현의 수입도 금지시켰으며, 다른 현의 경우에도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될 경우 스토론튬이나 플로토늄 등에 대한 검사증명서를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세슘에 대한 기준치도 기존의 370베크렐에서 100베크렐로 강화시킨 바 있습니다.

일본 수산물 1차 정보공개청구소송 서울행정법원 2015구합66158

식품의약안전처 산하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는 2014. 12. 14.~ 18. 일본 후쿠시마 등을, 2015. 1. 12.~ 17. 일본 홋카이도 등을, 2015. 2. 1.~ 5. 일본 후쿠시마 등을 3차에 걸쳐 출장을 다녀왔고, 이에 통상위에서는 ‘후쿠시마 방사능 지역산 수산물 검역 현지 조사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청구하였으나, 식품의약안전처에서는 정보가 존재하지 않아 조사보고서가 작성되면 공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통상위에서는 조사 지역의 해수(표층수와 심층수) 및 해저퇴적물의 방사능 오염 정도에 관한 정보공개청구소송을 2015. 7.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였습니다.

이 소송을 통하여 우리는 전문가위원회의 위원장 이재기 교수(한양대 원자력공학과)의 증인신문청구 및 전문가위원회 회의록의 제출을 증거로 신청하여, 이재기 증인진술서 및 위원회 회의록을 확보, 이 사건 전문가 위원회가 중도에 활동을 중단하고 조사 보고서를 완성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계무역기구 협정에서 매우 중요한 재검토 절차가 파행적으로 중단되어 조사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한 데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국제통상위원회가 제기한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제출된 민간전문가위원회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① 식약처 산하 전문가위원회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지속 방출문제 등”을 논의하다가, 2015. 3. 18.회의부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였고(회의록 참조), 위원장 이재기의 증인진술서에 의하면, ②“심층수와 해저토를 요구하는 것은 과다하다는 일본 측의 이의를 받아들여 심층수와 해저토 시료 제공 연구를 철회하였습니다.”라는 등 정부의 위험 평가 절차가 객관적이고도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위 소송은 소의 적법요건이 문제되어 결국 취하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수산물 2차 정보공개청구소송 서울행정법원 2016구합 60720

일본은 대한민국의 2013년 9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잠정 수입금지조치가 SPS 협정(위생 및 식물위생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 Agreement on the Application of 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에 위반된다는 사유로 WTO에 제소한 상태입니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 협정상 잠정 수입금지조치에 대하여 합리적 기간 안에 객관적 위험 평가를 통한 재검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일본산 수산물 잠정 수입제한 조치에 대해 재검토를 하여 이를 정식 조치로 유지하거나 철회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전문가위원회의 활동 중단 여부와는 무관하게 정부 스스로 객관적 위험 평가를 진행해야 하며, 또 그렇게 진행하였을 것으로 보고, 통상위원회에서는 정부가 스스로 진행해야 하는 위험평가 자료의 제출에 대하여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식약처 측은 ①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4호의 ‘재판’에 입법취지상 국제분쟁절차도 포함되고, ② 과학적 평가가 존재한다면 WTO분쟁에서 핵심적인 증거로써 분쟁전략과 관계가 있어 비공개하여야 하고, ③ SPS협정 제5조 제7항에 의하여, 대한민국정부는 이 사건 정보를 일본과 세계무역기구에 제출할 의무가 없고, 공익상의 이유로 원고의 정보공개청구의 기각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① 재판 중인 정보를 공개대상에서 제외하는 이유는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 등 국가의 사법작용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고유한 절차에 의해 진행되는 이 사건 국제분쟁절차는 국가의 사법 작용의 훼손과 관련이 없다. 또한 대상 정보가 국민에게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WTO 절차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없다. ② 청구하는 정보는 WTO 분쟁에서 우리정부가 수입금지조치 이후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적절한 안전성 검사를 하였는지에 관한 것으로, 한국이 이러한 조사를 하지 아니하였다면, 그 자체로 대한민국정부는 수입금지제한조치 이후 과학적 근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아니한 것으로 수입금지조치에 대한 절차를 위반한 것이고, 반대로 한국이 WTO 위생검역협정(SPS) 제 5조 제1항에 따라 이러한 조사를 하였다면, 조사자료는 WTO분쟁에서 한국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WTO와 일본에 제출될 증거가 될 것이다. ③ 대한민국이 당사자가 된 분쟁절차에서 제출될 위 자료의 존재와 내용은 당연히 공개되어야 마땅한 정보”라는 이유로 다투고 있습니다.

마치며

일본 최대의 어시장으로 한국의 노량진 시장과 비슷한 쓰키지 어시장의 아침 풍경. 쓰키지 어시장에서는 후쿠시마 일대의 수산물도 ‘방사능 검사 결과 문제가 없다’며 다른 수산물과 함께 유통되고 있다. ⓒChristoph-Rupprecht, flickr

일본은 대한민국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잠정 수입금지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한 상태로,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중국·대만 등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는데, 일본은 유독 우리나라의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투명성과 과학적 근거 측면에서 SPS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이유로 제소하였고, 우리 정부의 대응은 수입금지조치를 한 다른 국가들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본 정보공개청구소송을 통해 정부가 과연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바르게 행사하고 있는지 감시·통제하고 여론을 환기함으로써, 본 소송 자체가 투명한 국정운영을 위한 문제제기로써 그 의미가 높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6년차 변호사로써 대립당사자간의 승패가 중요한 소송에 익숙했는데, 이 소송을 통해 우리 사회와 건강·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더 깊어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이 소송은 서울행정법원에 계속 중인 상태로 9월 1일 제2회 변론기일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회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화, 2016/08/2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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