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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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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익명 (미확인) | 화, 2015/10/27- 14:58

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김소리, 오현정 회원

   

교류(交流) :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여 흐름

처음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을 때에 이 기회는 제게 ‘교류’보다는 ‘여행’의 의미가 컸습니다. 저는 푸른 바다와 빛나는 햇살, 따뜻한 공기와 순박한 사람들의 가무잡잡한 얼굴… 이런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조금은 숨가쁜 일상을 떠나 작은 섬으로 도망하는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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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고, 오키나와 – 이시카키라는 신비한 산호섬과 바다는 그동안 여행하며 보았던 세계의 많은 아름다운 바다들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과 5일을 보내고 돌아와 되새겨보니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친구에게 오키나와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할 때 저는 바다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한 9년의 시간 속에 촘촘히 쌓은 마음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공기 – 밝고 맑은 웃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취를 이루면 이루는 대로 아낌 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어 온 그 모든 시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 물결은 막연히 아름다운 여행지를 꿈꾸며 처음 오키나와를 찾은 낯선 이방인이었던 제게도 밀려왔습니다.

교류(交流)는 사귀다 그리고 흐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을,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왠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교류’가 이렇게 멋진 말이라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교류한다는 것 – 차이를 넘어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결을 확인하고, 연대한다는 것 – 이 아름다운 작업에 동행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년에 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날 – 이시카키 섬

이번 교류회에 민변 측은 21명이 참가했습니다. 대부분 민변 변호사들이지만, 너무나 훌륭한 통역사이자 교류회를 통해 사랑을 꽃피우신 김영환 선생님, 법무법인 이공에서 일하고 계신 민숙님, 김인숙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영수님, 김인숙 변호사님 지인이신 이명숙 화가님도 함께하여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회의 장소는 이시카키 섬입니다. 첫 날 우리는 나하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이시카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저도 교류회에 앞서 있었던 정영신 박사님의 강연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오키나와라고 구획된 섬들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습니다. 오키나와 섬들 전체가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과 가깝고, 심지어 본섬에서 이시카키 섬은 대만 방향으로 비행기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닿을 수 있을만큼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외양도 일본보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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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공항에서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을 처음 만나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이시카키 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은 대부분 오키나와 본섬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시카키 섬에 처음 가본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시카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이시카키 섬에서 태어나신 나카야마 센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는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큰 어른 같은 분으로, 권정호 변호사님과 함께 민변-오키나와 교류회를 만든 분이십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가 되신 대 선배이십니다만, 가무잡잡한 얼굴에 가득히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분이셔서, 첫 인상부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시카키 섬이 있는 곳을 ‘아에야마 지역’이라고 하는데, 사탕 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신을 모시는 춤이나 노래가 많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1700년대에 거대한 쓰나미로 사람들이 다 죽고, 주변에서 이주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태풍 피해로 유명(?)하기 때문에 근래에 건축한 집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집입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과 많이 교류하고, 삼국의 어민들이 공동 어장에서 어업을 하고 있습니다. 본섬과는 달리 미군기지도, 자위대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곳입니다만, 최근 일본 정부가 자위대 기지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에야마 제도는 일본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동 어장에서의 어업 분쟁 한 번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우호와 연대의 정신으로 삶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분쟁의 불씨가 자라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숙소인 미야히라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짐을 풀고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거리와 띄엄 띄엄 있는 건물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식당에서 삼삼오오 둘러 앉아 더듬 더듬한 일본말, 한국말, 영어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일동포인 백충 변호사님의 진행으로 교류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두 번째 참가한 사람들, 주니어 변호사들, 선배 변호사들, 사무원들 등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앞에 나가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교류회는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다같이 어우러지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사무원 분들의 활발한 참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참여하기 시작했다가, 미군기지와 평화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마리상의 유창한 한국어 자기소개에 교류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습니다. 더듬더듬한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서먹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 – 다케토미 섬 투어

둘째 날 아침에는 호텔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의 다케토미 섬으로 향했습니다. 다케토미 섬은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섬마을입니다. 선착장에서 작은 버스를 타고 5분을 달려 마을로 들어서자 나카야마 센세가 어릴 적에 몰았다는 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소가 끄는 차를 타는 것으로 다케토미 섬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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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가 이끄는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물소를 모는 할아버지가 다케토미 섬에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주셨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농경용으로 사용하던 물소를 가지고 오면서 물소가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도 어릴 적에는 물소를 매일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태워준 물소는 피이스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에 네 번씩 사람들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은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집집마다 전통식 지붕을 설치하고 부엌을 따로 짓고 있습니다. 집에 차를 들여 놓으려면 국가에 허가를 받아서 마당을 넓혀야 한다고 하는 등 불편함이 많지만 전통 보존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은 없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에는 우타키라는 자연신을 믿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일본식 신사와 도리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살던 아름다운 아사도야를 도시의 한 관리가 첩으로 들이려고 유혹하였으나 섬 사람으로 살겠다며 지조를 지켰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아사도야노 우타’라는 노래가 전하여져 오는데, 할아버지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모두 함께 불러보았습니다. 이쪽 지방 사람들은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11월에는 이틀 밤을 새워서 춤을 추는 축제도 열린답니다. 그 동안 마시는 술은 모두 공짜라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마을을 둘러 본 뒤에는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슬아슬한 좁은 계단 끝 전망대에서 마을 조망도 내려다보고, 한적한 골목 골목을 걷다가 쉬기도 하다가 식사 장소로 갔는데, 근처 해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 내서 저와 소리, 민숙씨는 점심을 포장하기로 하고 15분간 열심히 걸어 해변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이시카키의 바다였는데, 투명하리만치 맑은 민트색 물빛과 희고 보드라운 모래가 이루는 신비로운 바다 풍경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2일차 오후 –세미나

한적하고 여유롭던 다케토미 섬의 잔상에 푹 빠져 있는 상태에서 세미나 장소로 향했습니다. 학교 교실 같은 아담한 공간에서 제9회 평화교류회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세미나가 잘 될까 싶기도 했는데, 김영환 선생님의 동시 통역이 너무나 훌륭해서 무리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양국의 치열한 현안들 때문인지 세미나는 상당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일 신 가이드라인과 안보법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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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세션은 하야시 치카코상 변호사님이 <미일 신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안보법제>에 대해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일본 젊은 층들의 활발한 집회 시위 참여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의 법적인 성격을 검토하고 그 동안의 개정의 흐름에 비추어 2015년 가이드라인의 기본 전제와 주요 내용, 당시 국회 심의를 통과했던 안전보장 법제와의 관련성 및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심재환 변호사님이 2015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안보법제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안보법제 반대 운동에 대한 논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움직임, 변호사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나라의 상황과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일본은 전후 군대가 아니라 경제번영에 방점을 찍는 요시다 시게루의 비무장 노선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면 키시노 고스케는 전쟁 전의 모습을 회복하여 무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 군대를 주장하여 왔습니다. 아베는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평화 헌법을 ‘미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일미간의 공동 군사 대응력을 강화하고 군사 대국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익 교과서 장려 활동을 통해 전쟁에 찬성하는 국민의식을 만드는 ‘국가 만들기’ 작업에 한창입니다.

이에 반대하며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집회 시위와 관련하여, 오키나와 변호사들은 주부나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SEALs의 운동의 성격과, 정부 친화적 헌법학자조차도 입헌주의 위반을 지적하는 등 학계의 적극적인 반발이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1960년대의 안보 투쟁은 조직된 사람들이 위주였던 것에 반하여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 국가에서 군사 국가로 전환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평화 헌법이 상당히 뿌리 내렸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시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8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지만, 일본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의 대규모 공동 행동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무적이지만, SEALs에 대해 우익 미디어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시민들을 개인 개인으로 분열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어 법률가의 문제제기가 중요하다고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연대 활동을 계속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SOFA 민사청구권

한국의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한미SOFA의 민사청구권에 대해 발제를 해주셨고 이어 오키나와의 기타지넨 변호사님께서 미일지위협정의 민사청구권에 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민사청구권의 내용의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한국/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간의 배상금 분담비율이 불공평하다는 점(미군 단독 책임인 경우에도 한일 정부는 25%를 부담), 비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거나 미군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미군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공무중 행위에 대하여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하는 경우 “배상금이 청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배상신청 결정 동의서”를 제출해야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보고(한국)

하주희 변호사님께서 지난 5. 28. 오산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이 반입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주한미군 측은 폐기확인서를 질병관리본부로 제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를 규율할 수 있도록 한미SOFA를 개정하는 등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김종귀 변호사님께서는 ‘미군기지 잔류 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보고해주셨습니다. 2014. 10. 23. 미국 워싱턴 D.C 펜타콘에서 한미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CM)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서울 용산 소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본부 및 경기도 동두천에 위치한 210화력여단을 잔류하기로 하는 내용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하였고, 이에 민변 대리인단은 미군기지 잔류를 승인하고 공표한 국방부장관의 행위를 행정법상 처분으로 보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법원은 국방부장관의 행위가 통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걱정되지만,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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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본 변호사님께서는 지난 해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께서 여론은 어땠는지 물어보셨고, 이에 한국측 변호사님들은 ‘종북’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일반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으나, 지식인층에서는 잘못됐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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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변호사님께서는 김인숙, 장경욱 변호사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징계개시신청과 법무부가 권한 없이 변협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징계개시신청 기각결정을 취소하고 징계개시결정을 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가토 변호사님께서는 일본에서는 법무성에 변호사 징계에 관한 권한이 일절 없다고 하며, 한국 법무부에 변호사 징계와 관련하여 권한이 있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민변은 곧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꼭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소송보고 (일본)

다카기 기치로 변호사님이 헤노코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매립승인처분을 취소하였으니 오키나와의 현재 가장 뜨거운 현안입니다. 나하로 돌아온 뒤에 일부는 헤노코 투쟁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 과정에서 섬전체회의 발족, 헤노코기금의 창설, 35,000명이 참가한 현민대회, 손에 손을 잡고 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운동 등 ‘All-Okinawa’라는 구호 하에 연대한 현민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오키나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강조가 이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보다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에하라 토모코 변호사님은 기지소음소송 중 아쓰기 4차 판결을 중심으로 발표해주셨습니다. 특히 자위대기의 비행금지 청구를 기지가 이전하는 2016. 12. 31.까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어쩔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 인용하였는데, 수면방해 등으로 인한 인격적 이익 손상을 강조하는 판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군기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행정처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각하하였습니다. 토모코 상은 소음 소송의 추세에 비추어 상당히 높은 기준의 배상을 받아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비결(?)에 대해 묻자, 조용한 환경에서 사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정밀한 생활에 관한 인격적 평가가 높아졌다는 점이 설득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변호인단은 2,30년 전에 비하여 정신적 손해의 위자료가 상승한 반면 폭음소송은 30년 전에 인용되었던 위자료 액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폭음소송만 금액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점을 부각하였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2일차 저녁 – 공식만찬

열띤 세미나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식 만찬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오키나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엄청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는데, 저는 돼지 귀 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해파리냉채인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요리사님께서 돼지 귀 요리라고 하셔서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ㅠㅠ).

이 날은 먼저 아키후미 마츠자키 변호사님, 하야시 치카코 변호사님 등 전날 환영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분들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양측의 선물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측에서는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 모두 디자인이 너무 귀여웠고,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라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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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에서는 공식 선물로 한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심재환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이명숙 선생님은 따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심재환 변호사님은 아내인 이정희 변호사님이 만드신 쿠키를, 장경욱 변호사님은 아내가 만드신 비누를, 이명숙 선생님은 자신의 북아트 작품을 오키나와측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식사 때는 일부러 한국, 오키나와 사람들을 섞어 앉았습니다. 저는 처음 참여하는 거였기 때문에 사실 오키나와 분들이 매우 어색해서 자꾸만 저와 친한 사람들과 앉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이한본 변호사님께서 제재하셨습니다.ㅋㅋ 덕분에 오키나와 분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이시가키 섬이 고향이신 나까야마 변호사님, 마리상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는데,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일본어만 가능하셔서 소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상이 한국어를 조금 하고 저도 일본어를 아주 조금 해서 어찌어찌 소통은 되더군요. 중간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소통에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됐는데, 끝까지 저와 함께 식사를 해주셔서 감동받았다는..ㅋㅋ

중간에 식당 측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해주어 다같이 춤추며 이야기하는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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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간 곳은 노래 공연도 해주고 손님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아저씨 두분이 오키나와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나중에 아리랑을 불러주시기도 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님과 김자연 변호사님께서 오키나와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한국 변호사들의 공연에 감동을 받은(?) 옆 자리 손님들이 저희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았던 술자리였고, 오키나와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일차

셋째날에는 이시가키 섬의 북쪽을 둘러봤습니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들은 주로 남쪽에 많이 살고 북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세계 평화의 종이 있는 시네이 공원이었습니다. 세계 평화의 종은 유엔 본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있는데요, 평화와 비폭력을 염원하며 매년 유엔 총회 개최일인 국제 평화의 날에 울린다고 합니다.

세계 평화의 종 옆에는 평화헌법 9조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를 새긴 비석이 있었습니다. 뒤에 비둘기가 바치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비둘기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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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이 공원을 떠나 말라리아 희생자비에 갔습니다. 이시가키 북쪽은 오키나와 전쟁때 크게 공습을 당한 지역은 아니지만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전쟁 말라리아’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당시 일본군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주민들을 유병지역인 산으로 강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에 대한 보상운동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비 앞에서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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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반나 공원 전망대에 가서 이시가키 섬을 내려다 봤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식당과 붙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도 조금 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한국 변호사님들에게 별도로 또 선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야이마무라라는 이시가키 전통마을을 구경하고 산호초를 볼 수 있는 글래스 보트를 타러갔습니다. 화려한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니모 찾기에 열심이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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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유 일정을 가졌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바닷가에서 수영이나 스노쿨링을 했습니다. 저는 김인숙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등과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았습니다. 여기서 세월호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해변에서 노래와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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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류회의 마지막 만찬은 소고기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특별히 저희를 위해 소고기 집으로 고르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만찬인 만큼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사이토 변호사님과 기타 지넨 변호사님은 한국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까야마 변호사님과 심재환 변호사님의 발언(? 아니면 연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이시가키섬에서 자라면서 부모님께서는 사람이 성공하면 고향을 버리기 때문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너무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변 분들과 고향을 찾아 고향에 대한 짐을 내려놓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ㅠㅠ그리고 이어서 평화교류회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같이 계속 노력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하셨습니다(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전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만찬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호텔로 돌아가 쉬었지만, 2차까지 가신 분들도 많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넷째 날 – 세월호 플래시몹과 헤어짐

이시카키를 떠나는 날입니다. 전날 해변에 갔던 몇몇이 배웠던 세월호 율동을 마지막날 아침 호텔 앞 잔디밭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결국 나하 공항에서 세월호 플래시몹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거나 율동의 의미와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항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플래시몹을 지켜보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을 텐데, 조금도 빼지 않고 동참해 준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항에서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요 ^^ 오키나와 분들은 바로 일터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항에서 각자 선택한 대로 갈라져 일부는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투쟁 현장으로, 일부는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일부는 자유여행을 택하여 각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츄라우미 수족관 팀에 합류했는데,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차 렌트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주셔서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나하로 돌아와서 박진석 변호사님이 항상 가신다는 재키스 스테이크에서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와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하는 간소한 뒷풀이에 참여했습니다. 나카니시상과 케이타상과는 처음 인사했는데,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작은 펍에서 다트 게임도 하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도란 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 한국에서 봐요’하는 인사로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5일차

다섯째날 오전은 그야말로 자유일정이었습니다. 자녀 장난감 선물을 사러 가는 엄마팀, 츄리성 관광팀, 국제거리 관광팀 등 다양하게 무리지어 오키나와를 관광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변호사님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소감

평화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다기 보다 그냥 오키나와라는 도시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참여했는데, 세미나도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류회를 통해 한국과 오키나와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한다는 점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과 오키나와 분들이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교류회에서는 오키나와 분들과 더 많이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렇게 의미 있는 모임에 함께 하게 돼서 매우 기쁘고, 교류회에 함께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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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활동 소식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하여 재판거래와 사법농단으로 헌정을 유린하였습니다. ‘과거 왜곡의 광정(匡正)’이라는 명목으로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판결로서 ‘제2의 국가폭력’을 자행하였습니다. 누구보다 공정하여야 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재판하여야 할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고 자평하면서, 스스로 사법부 독립을 내팽겨 쳤고, 판결을 정부와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농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의 선두에는 ‘과거사 사건의 피해자들’이 있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사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국가폭력을 가하였습니다.

과거사위원회는 이와 관련하여 5월 28일,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하며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은 사법부의 만행을 규탄하며, 검찰의 즉각적인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6월 11일 오전 11시경 대법원 동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과거사 피해자들 약 500명을 고발인으로 하여 양승태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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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과거사위원회는 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에 합류하여,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다각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특히 과거사 관련 판결에 대한 재판거래 내지는 재판개입 의혹을 규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6월 27일 오전 11시에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모임인 ‘긴조사람들’이 주관하는 “민보상법 18조 2항 헌법소원에 대한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등 과거사 피해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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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월 15일에는 과거사위원회의 신입 회원들을 환영하는 “신선한 모임”을 가졌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과거사위원장을 역임하셨던 장완익 변호사님(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장)을 모시고, 과거사위원회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신입회원으로 서채완, 이주희, 정현석, 천지륜 변호사님이 함께 해주셨답니다. 앞으로 신입 회원 변호사님들의 많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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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과거사위원회는 6월 27일 저녁 7시 30분, 일본군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6년여에 걸쳐 진행된 ‘관부(關釜)재판’ 과정을 담은 영화 ‘허스토리’를 함께 관람할 예정이구요, 8월에는 울릉도로 떠나는 대망의 워크샵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곳. 언제나 즐겁고 유쾌한 술자리와 대화가 있는 곳. 과거사위원회는 언제나 신입 회원 여러분들을 격하게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과거사위원회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목, 2018/06/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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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부터 1박 2일 동안 파주에서 민변 통일위원회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워크샵 주제는 “통일위 화합과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여 통일위의 새로운 비전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상은 워크샵을 통한 통일위 단합이 우선이었지요

남한의 최북단 파주에 위치한 ‘착한 펜션’에 저녁 6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4시부터 한 분씩 출발을 알려왔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천낙붕 변호사님팀이 펜션의 정확한 위치와 그곳의 현황을 알리면서 출발을 독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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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도착해 동심으로 즐거운 천낙붕 변호사님❯

 

펜션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어서 번잡한 서울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짐을 풀고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동네 잔치가 열렸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끊이지 않고 약간은 소음이라고 생각될 정도여서 음악소리의 근원을 파악해보니 그 음악소리는 휴전선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에게 보내는 선전선동을 동반한 소음?이었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 대신 음악을 쏘아대는 “음악교전”이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네요. 씁쓸한 현실이었습니다.

6시를 전후하여 한분씩 도착하였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방이 공교롭게도 ‘백두산’과 ‘묘향산’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곧바로 식사준비. 풍성한 밥상과 다양한 주류를 맛나게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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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저녁식사와 반주로 단합을 다집니다.❯

 

준비성 좋은 채희준 위원장님이 막걸리만 해도 4종류를 준비해오셔서 밤 깊은 줄 모르고 맛나게 마시며 재미난 얘기와 향후 통일위 활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오영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현장 월례회가 제안되어 즉석에서 강화도 교동도에서의 월례회가 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워크샵의 묘미는 여유있는 식사와 반주, 그리고 주제를 정하지 않고 나누는 대화입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중간중간 기념촬영도 해가가면서 재미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중간에 일어나야하는 변호사님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는 분들을 그냥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 각자 노래를 하나씩 불러야 이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앵콜송까지 하나씩 더 부르고 3분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3분이 자리를 뜨는 중간에 휴식과 자리 정돈을 하고 다시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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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자동차 불빛을 이용하여 한 컷❯

 

다음 날은 반구정과 임진각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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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입구에서 ❯

반구정은 잘 알다시피 황희정승이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임진강 바로 옆에 위치해있어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임진강 주변을 따라 설치된 철책에 본래의 운치가 변질?된 듯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구질구질한 철책을 두르고 있어야하는지 답답했습니다. 반구정에서 내려다본 임진강은 평화롭게 흐르는데 어찌 우리 민족은 7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 통일위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구정 바로 아래 철책이 설치되어 있고 임진강 건너 편 강둑에도 철책이 설치되어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강건너가 바로 북한 땅이라는 착각 속에 재미난 얘기가 오갔습니다.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 상상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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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바로 아래 설치되어 있는 철책❯

 

반구정을 구경하고 임진각과 평화누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임진각은 이른 시간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망향의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실향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인데 외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습니다. 임진각 곳곳에 분단과 전쟁 때의 광경을 담은 사진이 있었고 북을 향해 달리고 싶은 녹슨 기차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를 확인하였습니다.

1년 전인 2016년 6월 통일위는 “독일통일기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독일의 시골마을인 뫼들라로이트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한때는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동서독 분단을 기억하는 국경박물관으로 남아있었는데 많이 부러웠습니다. 참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부러웠지만 이제는 분단을 과거로 기념하며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것이라 더 부러웠습니다. 임진각 역시 아름다운 곳이지만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의 임진각이 하루빨리 통일의 기념관으로, 분단을 과거로 기념하는 곳으로 남기를 가슴깊이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일위 회원들은 임진각 3층에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2017년도 통일위 워크샵을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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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통일위가 방문한 독일 국경박물관이 있는 뫼들라로이트의 철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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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임진각에서 북쪽을 바라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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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3층에서❯

월, 2017/07/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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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변 사법위원회(위원장 성창익)에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위한 사법위원회의 노력

사법위원회는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청와대 및 검찰 고위직의 부정부패로 인한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검찰 외에도 검찰 고위직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여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매달 열리는 사법위원회 회의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대한 사법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는 월례 회의에서뿐만이 아니라 지난 8월 30일 국회의원회관 208호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입법토론회’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법위원회 장주영 변호사님이 좌장을, 사법위원회 김선수 변호사님이 발제를 맡으셨으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도입 필요성, 권한 배분 및 운영 등의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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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사법위원회 성창익 위원장님, 김지미 변호사님이 참석하여 참여연대 등의 단체와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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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발의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관한 법안은 노회찬의원 등 11인이 2016. 7. 21.에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2001057)’과, 박범계의원, 이용주의원이 2016. 8. 8.에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2001461)으로 총2개이며, 각 법안은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계류되어 있습니다. 위 법안들이 통과되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설치될 수 있도록 사법위원회는 앞으로도 더 많이 연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법위원회 회원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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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원회는 지난 10월 21일(금)부터 22일(토)까지 부암동 G하우스에서 회원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워크숍에는 15여명의 변호사 회원이 참석하여 검찰 개혁 등의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법정책 전문가인 선배님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사법위원회 선후배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수, 2016/10/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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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여성인권위원회 간다!

 

이예리 변호사

어느 해보다도 희망어린 정유년, 신입회원 이예리 변호사입니다. 지난 2017. 1. 19. 친구 유원정 변호사를 만나던 날 마침 인연이 닿아 여성인권위원회 1월 월례회의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미가입자가, 월례회에 참석해도 되는지 세미나가 있다하니 무엇인가 준비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긴장감에 손톱 밑을 뜯자 유원정 변호사는 “준비물은 몸과 마음”이라 하였고, 이에 용기 내어 미뤘던 민변 가입을 행하고자 친구를 따라 나섰습니다.

살짝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후다닥 유인물을 집어 들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위원장님을 시작으로 자기소개가 시작되었고, 제 차례가 되어 친구 따라 여성위 온 사연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인사가 끝이 난 후 본격적인 월례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위원회 활동 보고가 있었습니다. 여성인권위원회에서는 가족법연구팀, 빈곤과 여성노동팀, 여성폭력방지팀과 이주여성법률지원단 등 각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변호사님들을 뵈면서 적극적이고 온화한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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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세미나 주제는 ‘디지털 성폭력’이었습니다. D.S.O.(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의 하예나 대표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설명해나갔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인지된 사건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 및 그에 대한 수사당국의 안일함 등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작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술이나 약에 취한 여성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듯 강간을 하고 여성의 몸에 이를 인증하던 소라넷에 대해 방영되었던 내용들이 떠올랐습니다. 세미나를 들으면서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끔찍함과 당혹감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 개씩 성범죄 영상이 올라오고, 그 속에는 실제 강간 영상이나 아동 청소년 영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발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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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참여하며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시선에 노출되는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모르는 여성도 강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타인과 돌려보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시각은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더욱 끔찍한 문제는 이러한 영상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오지만 수사당국에서는 어떠한 예방책이나 적극적인 수사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가벼운 어감이 들었지만,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딸이고 누나이며 동생인 화면 속의 여성이 2차, 3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이러한 영상을 찍고 유포하는 이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성범죄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다는 생각이 든 세미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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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O.는 수사당국에서 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D.S.O. 회원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수많은 동영상을 보고 추려 신고 및 민원을 제기하고 있었고, 그 존재만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일하고 있는 D.S.O.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친구 따라 갔던 여성위 월례회의에서 따뜻한 변호사님들도 뵐 수 있었고, 사회문제 및 그에 대한 다양한 법적 대응도 공부 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지방근무로 인하여 매달 열리는 월례회를 찾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 2017/02/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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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원회] 위기는 기회를 싣고
부제 : 한미 FTA 개정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지현영 위원(변시 6회)

 안녕하세요, 회원 여러분.

 2017년 상반기에도, 국제통상위원회는 여러 외교·통상 분야 이슈에 대응하며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일본 수산물 방사능 검역 정보공개청구, 쌀관세화 양허표 수정안 정보공개청구, 국세청에 대한 론스타 정보공개청구소송의 상고심이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 1심에 이은 항소심 승소를 이끌었습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5조원대의 소송은 그 동안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었지만, 통상위원회의 문제제기로 그 실체가 서서히 들어나게 될 것이며, 적폐청산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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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초청하여 ‘트럼프의 한미 FTA와 사드 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5월부터는 Bossche 교수의 ‘Essentials of WTO Law’라는 교재로 알찬 스터디를 시작하였습니다. 부담없이 국제경제법 지식과 영어 실력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이 자리로 여러분의 합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번 소식에서는 최근 가장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 FTA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다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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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06_ROK_Protest_Against_US_Beef_Agreement_04 ⓒChongDae from wikipedia

 한미 FTA는 2006년 처음 공식화된 이후 재협상을 거쳐 2012년 3월 15일 비로소 발효되었습니다. 그 과정 동안 국내의 각계각층은 많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대통령은 2016년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협상이라며 수차례 문제시하더니,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 ‘재협상’을 거론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미 무역대표부(USTR)는 6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무역의 장벽을 제거하고 협정의 개정 필요성을 고려하고자 한미 FTA와 관련한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한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협정문에 의하면, 한 쪽 당사국이 개정 협의 요청을 하는 경우 상대국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재협상에 대해 합의한 바가 없다며 우왕좌왕하여, 사실 은폐 등의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예견되었던 일이었던 만큼, 이러한 안일한 자세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정부는 더이상 개정 국면을 막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미국과의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당초 FTA협상 과정에서 우려하였던 점과 발효 후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 되었는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번 개정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많은 통상전문가들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S) 도입으로 한국 공공정책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을 정확히 짚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제’,‘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정책’, ‘저탄소차 지원금 제도’ 등 많은 경제민주화 정책이 좌절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식품에 대한 무분별한 개방 및 약품에 대한 특허권 강화는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상도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의료, 철도 등 공공 분야가 민영화될 가능성 또한 예견대로 커지고 있습니다. 한미 FTA로 대미 흑자가 늘었다고 하나 이는 일부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채웠을 뿐, 고용과 소득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즉, 한미FTA는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한 협상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연일 한·미 FTA를 비판하며 재협상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실리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즉 한·미 FTA 개정도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강조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이 조만간 NAFTA 재협상을 기준으로 우리를 입맛대로 압박해 올 것입니다. 정부는 만반의 대비를 갖추어 이번 개정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비단 한미관계를 넘어 앞으로 다른 양자 및 다자 협정에 미칠 중대한 영향력 및 통상과정의 투명성 여부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인지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52개국과 FTA를 맺은 FTA 강대국임에도, 한국형 원칙을 세우지 못했으며 강대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데 급급해왔습니다. 또한 국민의 재산권은 물론 환경, 인권 등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임에도, 외교문제라는 핑계로 협상이 밀실에서 불통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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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한민국 청와대 facebook 페이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개정과정에 대하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당당히 임하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이를 환영하며,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기나긴 여정을 준비하는 새 정부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요구합니다.

 첫째, 경제민주주의 및 임금주도성장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경제정책을 확고히 하여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경제정책에 따른 한국형 FTA 모델을 세워야 합니다. 셋째, 국민에게 개정 과정과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넷째, 한미FTA를 반드시 사수해야 할 금과옥조로 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합니다.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와 대응은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영광스러운 과업이 될 것입니다. 위기의 우려 속에 기회가 있는 셈입니다. 국제통상위원회는 그 과정 내내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며 더 분주히 활동하겠습니다.

월, 2017/07/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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