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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쿠트 툰작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관한 UN 인권 특별보고관의 방한결과 정리 기자회견

바스쿠트 툰작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관한 UN 인권 특별보고관의 방한결과 정리 기자회견
(방한 일정: 2015년 10월 12 ~ 23일)
■ 머리말 저는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따른 인권 영향을 조사하는 UN 특별보고관의 자격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2015년 10월 12일부터 23일까지 공식 방한 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유해물질과 폐기물 라이프사이클 전반에 걸친 관리가 인권에 미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방한 일정을 시작하면서 저는 이번 방문이 예비 조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인권 측면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의 유해물질 및 폐기물 관리 실태에 관한 포괄적인 분석과 권고사항을 담은 최종보고서를 작성하여 2016년 9월 UN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것입니다. 먼저 대한민국정부에 방한 초청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저는 외교부, 국방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의 여러 부서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를 면담했습니다. 또한 원자력환경공단의 협조를 얻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도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기업들, 시민사회단체들, 여러 지역의 주민들과 피해자분 들께도 유해물질과 폐기물의 관리에 따른 영향으로부터 모든 측면의 인권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각자의 바램과 어려움들을 말씀해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방한 기간 중 저는 김포, 단양, 월성, 보령을 방문해 주물공장, 시멘트 공장, 원자력 발전소, 군부대 인근의 주민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또한 삼성전자와 옥시 레킷벤키저의 임원들도 만났고, 삼성전자의 생산 시설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 관찰내용 제가 방한 결정을 내리게 된 주요 동기 중 하나는 불과 수십 년 만에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어 여타 신흥국들에게 경제발전의 모델이 된 대한민국의 인권실태를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단기간의 산업화 과정과 더불어 가속화된 화학물질의 생산과 그 사용실태,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살펴 보는데 관심이 컸습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에서는 몇 가지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음을 확인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방한 기간 중에 저의 주목을 끌었던 몇 가지 사례들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 사안들을 공식 보고서 발표 이전에 먼저 말씀 드리는 것은, 이들이 비단 대한민국의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다른 나라들에도 교훈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유해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 사용했던 소비자들 중에서 140여 명이 사망하고 500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여성과 아이들로, 호흡기 질환을 포함해 다양한 질병들로 고통 받았습니다. 옥시 레킷벤키저는 당시 취약했던 법적 보호기준에 따라 사실상 그 유해성에 대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습기를 통해 살포되는 화학물질의 흡입에 따른 건강상의 위험을 전혀 조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 레킷벤키저는 대한민국의 가습기 살균제 시장을 80%를 점유했고 여타 제조사들이 나머지 지분을 나누었습니다. 레킷벤키저는 회사에 법적책임이 있음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전에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과 그로 인한 건강 영향 간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해당 기업은 물론 정부도 피해자들에게 의미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고, 양측 모두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정부와 기업들이 취한 후속 조치들이 유사한 비극의 재발을 방지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부는 피해자들의 증상과 살균제 성분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체 피해자 중 약55%에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이번 방한 기간 중 유해물질에 대해 작업자들이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 눈에 띄게 드러났습니다. 전자업계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사례가 논의 중 여러 차례 언급되었습니다. 전자업계 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비단 그 업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조 공정에서 유해 물질을 사용하는 다양한 산업계의 근로자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안타깝게도 삼성전자의 많은 근로자들이 인권보다 우선시되는 이윤 추구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피해자와, 사망한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로부터 백혈병, 림프종, 뇌종양, 유방암, 갑상선암, 유산, 호르몬 합병증 등 위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질병들에 걸렸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이 피해자들은 매일 같이, 어떤 날은 하루 12시간을 한 달에 고작 하루, 이틀 쉬면서 유해물질을 사용하였거나, 그러한 물질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제가 들은 많은 증언들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생산 목표 달성에 대한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렸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유해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를 거의 받은 바 없고,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을 방지하는 충분한 안전 조치들도 없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아들이 기형아로 태어났을 것이라며 자신을 자책한 한 어머니의 증언을 들으며 저도 좌절감과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피해자들과 노조,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정부 모두 직업병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으며, 작업자들, 특히, 하청업체 작업자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양과 보호조치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정보의 격차가 얼마나 크던 간에, 본인이 겪고 있는 고통이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유해물질의 결과임을 증명해야 할 부담은 피해자들이 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입증책임을 지워 67명의 산재 신청자 중 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성공한 3명 (4.5%)만이 유해한 작업환경에 따른 피해에 대하여 정부의 “산재보험”을 통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피해자 수는 적게는 90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전자 산업계 전반의 피해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유해한 환경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방문했던 내용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서울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김포시에는 경제활성화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덕분에 과거 조용했던 마을에 영세공장들을 우후죽순 들어서 있습니다. 지금은 주택과 자급농장, 논들이 금속공장과 여타 공장들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이며, 이들 공장으로부터 날라온 위험한 수준의 중금속과 기타 유해 물질들이 집과 농경지를 뒤덮고 있습니다. 불과 몇 명 안 되는 공무원들이 이 지역에 산재한 약 10,000여 산업시설들의 오염을 감시하는 거의 불가능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의 책임이 있는 회사를 찾아내야 할 입증 책임이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증거 정보의 제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와 유해물질 노출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할 필요 때문에 위험한 지역으로부터 이주할 할 수도 없고, 또 자력으로는 이주할 능력도 없다는 비슷한 우려들을 토로한 다른 지역의 주민들과도 많이 만났습니다. 예를 들어, 원전 지역914미터 제한구역 바로 밖에서 사시는 주민들은 이주를 요구하고 있으나 갑상선 암 등의 다양한 질병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에 의한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수립될 때가지 수년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좌절해 있는 지역주민들은 월성 원자력 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단양과 당진의 시멘트 공장과 철강 공장, 보령 군기지 인근 주민들이 포함됩니다. 일례로, 보령은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지만 연구조사 결과 다양한 독성 화학물질들이 안전기준의 세 배를 초과해 검출되었으며, 주민들은 일부 자연사한 분들을 제외한 모든 사망자들이 암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방문한 곳들은 위험에 처한 지역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들 주민들의 상당수가 연로한 사회경제적 약자이며 효과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우려됩니다. 또한, 개인과 주민 대표들에게 살해 위협을 포함한 위협이 있었다는 것도 우려되는 바입니다. ■ 결론 방한 실태 조사 기간 내내, 지역 주민들과 마을들은 정부와 기업들이 유해물질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고 위험을 줄여주기를 바란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위험에 처해 있는 주민들은 무력감과 믿었던 기업과 기관들에 대한 배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과 건강 영향에 대한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피해자들이 직면한 상당한 장애요인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인권조약들과 안전하고 건전한 환경에 대한 대한민국 헌법 조항에 따라, 정부는 유해물질과 폐기물의 영향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고 실현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에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는 물론 정보권과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 등, 시민적, 정치적 권리들도 포함됩니다. 저는 대한민국 정부에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의 선택의정서를 즉시 비준할 것을 촉구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은 최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평법)” 을 제정하여 유해물질의 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해왔습니다. 비록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필요한 조치들이 취해졌어야 했고, 피해자들은 목숨을 잃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에 대하여 여전히 그 해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화평법의 제정은 긍정적인 발전이며 정부가 개선 조치들을 취해온 것을 치하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질병의 원인으로 인정된 일부 피해자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일부 소비자 화학 제품의 안전성과 관련하여 취한 조치들이 있지만, 저는 향후 소비자 제품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비극의 방지를 위해 정부가 취한 재발방지 조치들이 충분한가에 대해서 여전히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학사고에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2012년 구미 화학사고 이후 (화학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와 부상자 수가 감소했다고 합니다만, 구미 사고 이후 크고 작은 화학사고 건수들은 오히려 증가했을 수도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저는 상당량의 화학 물질들이 존재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산업계에서 이러한 화학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방이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평법)” 과 “화학물질 관리법 (화관법)”의 제정 및 이행 등 환경적으로 건전한 화학물질 관리를 위한 새로운 제도적, 법적 근거들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유해 영향을 발현되기 전에 위험을 탐지하는데 필요한 정보시스템과 거버넌스 체계의 수립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정부와 기업들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전에 위험을 탐지하기 위해 현재 수립되어 있는 정보시스템과 거버넌스 체계의 적정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를 고대합니다. 모든 사람들, 특히 어린이 등 가장 취약한 사람들, 비정규직 및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한 근로자들, 최근 산업화된 농촌지역의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유해물질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제와 시행 규정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방한 기간 중 저는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국내 법률 체계에 따라 (질병/피해와 유해물질/폐기물 노출환경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부당한 입증 책임을 짊어지고 있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부당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결국 효과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러한 문제의 해결을 돕기 위해, 저는 2016년 발효될 예정인 “환경오염 피해 배상 및 구제에 관한 법 (환경구제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습니다. 이 법의 정신은 인권 원칙들, 특히 효과적인 구제에 대한 권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법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며, 적절하게 이행될 경우, 피해자들의 입증책임을 완화할 수가 있습니다. 이 법이 더 많은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지만, 동시에 과도한 입증책임에 떠안고 있는 훨씬 더 많은 피해자들이 이 법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UN 기업과 인권에 관한 지도원칙”에도 명시된 바, 기업들은 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주의(due diligence)를 기울여야 할 책임과 효과적인 구제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할 책임도 포함됩니다. 대한민국은 “기업의 인권보호 책임에 관한 국가행동계획 (National Action Plan on the responsibility of businesses to respect human rights)”을 작성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NAP가 유해물질과 폐기물로 야기된 이슈들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주기를 바랍니다. 효과적인 구제의 실현은 피해에 대한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모두 요구합니다. 삼성전자 근로자들의 사례나 가습기 살균제 소비자들의 사례 모두, 피해자들은 보상과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업들은 재발방지대책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를 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필수 의료 서비스 및 기타 비용에 대해 당장 도움이 절실한 피해자들이, 기업들이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지, 그리고 보다 안전한 화학물질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가하는 요구와 관심을 회피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최근 근로자들과 삼성전자 간에 이루어진 조정 과정의 내용은 상당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삼성전자가 재발방지라는 측면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는 시사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자체 “보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결정은 그다지 좋은 결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피해자들이 선임한 3명의 조정위원들은 피해자 보상만을 염두에 둔 내부조직의 설립을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정위원들은 재발방지와 보상을 모두 다루는 독립적인 외부조직의 설립을 권고했습니다. 보상위원회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UN 지도 원칙” 과 분쟁조정에 관한 여타 국제 우수관행에 비추어 결코 “고충처리제도 (Grievance Mechanism)”로 볼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보상은 타당하고, 투명하며 지속적인 학습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보상위원회”가 국제인권기준에 어떻게 부합하는지에 대한 추가 정보를 기다리겠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불과 몇 십 년 만에 전세계 기술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에는 더 큰 책임과 도전만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한 가정, 더 깨끗한 작업장, 더 건강한 커뮤니티로의 전환을 실현할 수 있는 더 큰 혁신 역량도 함께합니다. 저는 한국 기업들이 이러한 전환과정의 리더로서 부상하기를 바라며 이것이 더 잘 실현될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노력해주기를 고대합니다. 보다 자세한 분석 결과, 실태 평가 및 권고사항을 담은 보고서를 2016년 9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다시 한번 방한 초청을 해 주신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 드리고 지난 2주 동안 열린 마음으로 솔직한 말씀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기자회견 연설문(원본) 링크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6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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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룬 현대 문명의 혜택을 받아온 개개인 모두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에너지 체제를 결정한 정치 권력과 기업에 그 화살이 향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원과 공급방식이 이미 설계된 매트릭스에서 개인이 벗어나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기업과 정부는 에너지 전환이 전혀 불가능해 현재의 ‘더러운 에너지’ 체제를 계속 유지해 왔는가? 그렇지 않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전 세계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동의하고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고안해 왔다. 그러나 기업이 사업방식을 “자발적”으로 바꾸기를 기다리는 동안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한 피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더는 참을 수 없는 시민들이 모여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네덜란드 환경단체 우루헨다(Urgenda)는 9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네덜란드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대응을 소홀히 해 국민들의 건강과 인권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두 달 뒤 법원은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엄중한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며 정부가 기존에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량은 불충분하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은 사법부가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강력한 파급력을 미쳤다.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소송도 줄을 이었다. 뉴욕시는 지난 1월 세계 5대 석유 기업(BP, 쉐브론,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로얄더치쉘)이 오랜 기간 화석연료를 판매하며 지구온난화를 야기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빌 드 블라시오(Bill de Blasio) 뉴욕 시장은 “기업은 화석연료 사용이 가져올 결과와 그 문제점에 대해 오래전부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제품을 판매했다는 점에서 기후변화를 악화시켰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제 기업이 그 책임을 져야 할 때이다”고 밝혔다. 한편 페루의 고산마을에 사는 한 농민은 독일 에너지 대기업 RWE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빙하가 녹아 마을이 침수 위기에 처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독일 법원은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인정해 증거조사에 착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법에 맞게 행동한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초래한 손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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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4월,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Friend of the Earth)’이 초국적 석유 기업 쉘(Shell)을 상대로 대대적인 기후 소송을 예고했다. 쉘이 8주 안에 화석연료 개발에 집중한 자신의 사업 및 투자 방침을 파리협정 목표(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감축)에 맞춰 바꾸지 않는다면 소송을 피할 수 없다. 카린 난센(Karin Nansen) 지구의 벗 국제본부 의장은 “반드시 승소하여 기후변화에 책임 있는 여러 기업에 법적 책임을 묻는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소송은 기업에 보상을 청구하는 기존 사례들과 달리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구체적인 사업 방침 변경을 요구하는 첫 번째 소송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상장기업의 환경 경영을 평가하는 영국 소재 비영리기관 ‘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CDP)’는 지난해 7월 보고서를 발간해 쉘을 세계 10대 ‘기후 오염자(climate polluters)’ 중 하나로 선정했다. 지구의 벗은 해당 연구 결과를 근거로 쉘이 1854년에서 2010년 사이에 발생한 역사적 온실가스 배출에 약 2%가량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도널드 폴스(Donald Pols) 지구의 벗 네덜란드 국장은 “쉘은 지난 30년간 기후 변화에 미치는 악영향을 충분히 알면서도 석유와 가스 추출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화석 연료를 개발하는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왔다.”며 “쉘은 파리협정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현재 사업방침으로는 파리협정에서 세운 목표를 훼손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쉘은 향후 약 5% 만을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나머지 95%는 기존의 화석연료 사업에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초국적 석유 기업 쉘(Shell)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시민들과 함께 집단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caption]
인류가 대규모 화석연료 사업을 계속하는 이상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땅속에 매장 돼 있는 석유와 석탄, 가스를 더 이상 채굴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지난 2015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게재된 논문(“Combustion of available fossil fuel resources sufficient to eliminate the Antarctic Ice Sheet.”)에 따르면 현재 매장되어있는 화석연료를 모두 소비할 경우 남극 빙하가 모두 녹아 해수면이 약 50m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즉 뉴욕, 런던, 상하이, 시드니 등 전 세계 대부분의 해안 도시가 모두 침수된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저지른 환경파괴 및 인권침해에 대해 책임을 물을 때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사업 방식이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을 지키다 결국 기업이, 혹은 경제가 죽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지속가능성’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시작한 이때에 환경‧사회적인 가치를 무시한 채 이윤만 좇는 기업 활동은 시대적 가치에 역행할 뿐더러 시장에서도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업의 사업 정책은 변해야 한다.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 환경파괴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며, 환경을 지키는 것이 곧 기업을 포함한 모두를 지속 가능하게 한다. 미흡한 법과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경제를 핑계로 기업이 변화하지 않는 것도, 정부가 이를 방조하는 것도 시민들은 더 이상 묵과하지 않는다.











지구의 벗 스코틀랜드 활동가들이 지난해 열린 '기후변화 행동의 날(Day of Action)'에 참가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취하고 있다. ⓒColin Hattersley[/caption]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아직 기후난민은 국제법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도,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난민을 규정하는 초석이 되는 1951년에 체결된 ‘난민 지위에 관한 유엔협약’에서는 난민을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에서 소속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 있는 공포 때문에 자국 국적 밖에 있는 자 및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라고 정의한다. 즉, 해수면 상승, 물 부족, 가뭄, 폭풍 해일 등 극단적인 기후변화의 결과로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혹은 이로 인한 피해에 대해 자국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을 수 없는 기후난민은 일반적인 난민의 범주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우리 사회에 던진 파장이 크다. 난민을 둘러싼 여러 논쟁이 현재까지 뜨겁게 이어지는 가운데, ‘진짜 난민’과 ‘가짜 난민’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은 1992년 국회 비준을 거쳐 난민 협약에 가입했고, 2012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하며 국제사회로부터 선도적인 난민 정책을 펼칠 것이라 주목받던 나라다. 그러나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4%대로, 소위 ‘진짜 난민’도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상황이 이런데 법률적으로는 개념 자체도 없는 기후난민이 우리나라에 대거 유입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기후난민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몇몇 나라에서는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뉴질랜드는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주변 국가들에게 특별 비자를 발급하는 등 기후난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에도 기후난민이란 개념이 아예 생소해 보이지는 않는다. 포털에 ‘기후난민’이란 키워드를 검색하면 정부 기관과 기업체의 관련 사회공헌 활동 기사가 줄을 잇는다. 우리나라의 무상 원조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은 지난 6월 8일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함께 개도국 기후변화대응 지원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코이카[/caption]
기후난민 문제의 핵심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데 있다.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은 응당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인 국가다. 국제사회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에 무책임한 ‘기후 악당 국가’로도 유명하다. 결국 기후난민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에 있어서는 온실가스 감축이 알파와 오메가가 될 것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공론화 과정 역시 빠져서는 안 된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양극단의 생각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기후난민이 현실이 됐을 때도 진짜, 가짜 난민 논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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