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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 박근혜 정권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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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 박근혜 정권 당혹

익명 (미확인) | 일, 2015/10/25- 21:27
View the story “The plan using only government-issued history textbooks has been met with fierce criticism” on Storify       photo credit  (서울의 소리) @am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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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我國某名詩人之詩後

 

美人眞若此(미인진약차)

素面却佳容(소면각가용)

麗句雖盈滿(여구수영만)

全無動我胸(전무동아흉)

 

우리나라의 어떤 이름난 詩人의 詩를 읽고 나서

 

미인이란 참으로 이와도 같느니

민낯이 되레 아름다운 모습이라

고운 글귀들로 비록 가득하지만

내 가슴 動搖 따위, 전혀 없구나.

 

<時調로 改譯>

 

미인 이와 같느니 민낯 되레 佳容이라

곱게 꾸민 글귀 따위 비록 가득하지만

어쩌랴! 나의 가슴은 動搖함이 없구나.

 

*我國: 아방(我邦). 우리나라 *若此: 이러함 *素面: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佳容: 아름다운 용모(容貌)  *麗句: 아름답게  꾸민  글귀  *盈滿: 가득하게

*全無: 전혀 없음.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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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잘 사는 친일 후손들…‘환수율 겨우 3%’

11월17일은 ‘순국선열에 날’이다. 이날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대한민국의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한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등의 순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존경을 표하는 날이자 그들의 독립정신 및 호국정신을 기리는 법정 기념일이다. 또한 이날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치욕적인 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순국선열의 날’ 지정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투사들을 추모하는 날로 기념하고, ‘을사조약’ 체결의 역사적인 치욕을 새기기 위해서 지정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이같이 국권을 뺏겼던 날을 잊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순국선열들을 기리기에는 아직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친일파’, 그중에서도 ‘재산환수’ 문제는 우리나라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법률 개정으로 친일행위에 대한 유연한 법률적용 가능
친일재산환수 대한 법률적 증거 있음에도 미진한 환수

승소율은 매우 높지만 재판성립요건 자체가 쉽지 않아

이완용 ‘0.09%’ 환수…되팔거나 법인명의라면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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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에 날’을 맞아 친일파 재산환수 이슈가 다시금 제기된 상황이다. <사진=YTN 뉴스 캡처>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국내에서 ‘친일파’란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동조했던 자로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굉장히 치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당시 적극적으로 동조한 협력한 인물들과 함께,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과거에 대한 반성’은 커녕 이들의 만행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며 옹호하는 자들도 친일파로 불린다. 결국 ‘친일파’는 ‘매국노’와 동급으로 사용되는 말이됐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이같은 친일파는 1800년대 말 일본이 ‘군국주의’로 우리나라를 위협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 덴노가 즉위한 후 근대 서양의 시스템으로 국가를 개조했다. 중국이 정점에 서는 수천 년 간의 조공 제도로 고착된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깨고 천황의 이름으로 대등하게 청나라와 조선에 외교 문서를 보냈다.

특히 이듬해인 1868년 조선을 향해 자신들이 ‘왕정 복고’를 이뤘음을 국서로 통보했는데, 그동안 형님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던 조선 조정에 황제를 참칭하는 민감한 언어 선택으로 큰 충격을 줬다. 자연히 ‘왕’인 조선은 일본에 격이 한 등급 내려간다. 당연히 조선은 국서 접수를 거부하고 일본도 1872년 외교 사절단이 철수하는 등 갈등은 점점 고조됐다.

그러나 1876년 운요호 사건 때 이양선으로 일본이 무력 시위를 하자 조선 조정은 격론 끝에 문호를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당연히 일본과 통상은 텄다고 해도 조선 조정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국론 역시 ‘존왕양이’의 외세 배척 여론은 더욱 강해졌고, 흥선대원군과 위정척사파는 이런 여론을 잘 이용했다. 이 때만 해도 우의정 박규수와 영의정 이유원 정도가 외세를 이용하자는 의견이었는데 실상 그마저도 동도서기론, 즉 “서양 문명은 기술면에서 앞서 있을지는 모르나 동양의 정신 문화를 존중하고 배울 점이 있다”는 식의 이상론이었지 일본을 좋아한다는 커녕 최소한 일본에게 뭘 배운다거나 가까이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880년 대, 우의정 박규수의 제자들인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이 일본 책과 문물을 접하고 일본의 발전상을 흠모하게 된다. 물론 김옥균의 ‘일본은 동양의 영국을 자처하니, 우리는 프랑스 같은 문화 군사 강국을 이루자’는 언급을 볼 때, 일본과 동급으로 조선을 생각했지, 결코 ‘신하’가 된다는 생각은 그들 역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당시 청나라의 도움으로 대원군을 숙청하고 정권을 잡은 명성황후와 민씨들이 청나라식 근대화, 양무운동을 개화 모델로 삼고 국정을 장악하면서, 상대적으로 일본식 급진 개혁을 바랐던 김옥균의 개화당은 친일파란 누명을 쓰고 권좌에서 밀려났다.

서양에 쓰러지기 직전인 청나라 모델로는 미래가 없다는 건 확실했던 개화파는 초조했다.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국 완공 축하연에 난을 일으켰다. 고종의 신병도 확보하고 서울 요지를 선점한 그들의 난은 성공하는 듯 했으나 압록강 근처에 주둔했던 청나라 군대가 삽시간에 반격을 가하면서 실패한다. 갑신정변이다. 역적이 된 개화파는 일본으로 탈출했고, 조선에 일본식 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친일파가 처음 매국노의 멍에를 쓴 건 한일강제합병이 아닌 이 때가 최초다.

그러다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에,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한일합병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 전만 해도 친일 세력을 발본색원 할 것같이 굴었던 수구파(개화당을 제외한 민씨 쪽 친청파+이완용)들은 얼굴을 싹 바꿨다. 1905년 외교권을 뺏긴 을사늑약을 시작으로 정미 7조약 등등 대한제국을 해체할 치명적인 조약들마다 수구파들은 누구보다 일본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며, 이완용, 송병준 등은 각기 무리를 짓고 친일 충성 경쟁을 벌일 정도였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맨 앞에서 길안내를 맡은 것은 친일파들이 심어놓은 헌병보조원, 즉 조선인 조센징 앞잡이들이었다. 1910년 강제병합이 완성되자 이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각종 은사금과 부동산 등은 물론 조선귀족 지위까지 나눠 받았다.

과거 대한제국이 부족한 재정에도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주미공사관은 단돈 5달러에 일본에 넘어갔고, 개화파의 거두이자 왕실 종친 박영효는 28만원, 이완용은 15만원, 박제순은 10만원의 은사금을 받고 아주 떵떵거렸다. 구한말 끝날 때까지 그동안 친일을 했든 친청·친러였든 상관없이 합병 때까지 조선 조정에서 버틴 자들은 모두 친일파라고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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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용 일가가 옥인동 집에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이완용 본인이다. 친일파의 거두로 불리는 이완용은 여의도 면적 두 배에 가까운 토지를 소유했지만 국고로 돌아온 것은 0.09%에 불과하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그 후로도 일본 제국이 35년 간 한반도를 강점하면서 제국주의의 양상도 같은 듯 같지 않게 계속 변모했는데, 친일파들의 친일 부역 행위 역시 변모해 갔다. 조선이 점점 제국주의 일본에 동화되고 식민 지배의 정도도 깊어지고 점차 더 많은 조선인들이 시스템에 편입되면서, 일부 권세를 가진 집안들이 저질렀던 친일 부역 행위 역시 그 범위를 넓히고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시대를 시각적으로 리얼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 옛 MBC 대하드라마인 ‘여명의 눈동자’다. 친일파의 출신 성분은 조선 귀족들에서 점차 일반 서민 출신들까지 확대되면서 광범위하게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친일파의 정의

이같은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정의는 법률로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지난 2021년 10월12일에 공포되고 시행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2조 정의 부분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라 함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지난 1945년 8월15일까지 행한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 법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20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나온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한 행위

2.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강제해산시키거나 감금·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단체 또는 개인의 활동을 방해한 행위

3.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4. 독립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그 단체의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활동을 주도한 행위

5.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이나 항일운동을 저해한 행위

6. 을사조약·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 또는 조인하거나 이를 모의한 행위

7.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 다만,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작위를 거부·반납하거나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 등으로 제3조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

8.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의원 또는 중의원으로 활동한 행위

9.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

10.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1.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宣傳)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12. 일본군을 위안할 목적으로 주도적으로 부녀자를 강제동원한 행위

13.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4.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수행을 돕기 위하여 군수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행위

15. 판사·검사 또는 사법관리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6.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헌병 또는 경찰로서 무고한 우리민족 구성원을 감금·고문·학대하는 등 탄압에 적극 앞장선 행위

17. 일본제국주의의 통치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 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18. 동양척식회사 또는 식산은행 등의 중앙 및 지방조직 간부로서 우리민족의 재산을 수탈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중심적으로 수행하거나 그 집행을 주도한 행위

19.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포상 또는 훈공을 받은 자로서 일본제국주의에 현저히 협력한 행위

20. 일본제국주의와 일본인에 의한 민족문화의 파괴·말살과 문화유산의 훼손·반출에 적극 협력한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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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친일파 단죄문’ 등 반민족행위자들을 색출하려는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다. <사진=YTN 뉴스 캡처>

이같은 20가지의 친일행위의 법률적 정의로 인해, 그동안 애매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지목이 가능해졌다. 또한 친일파의 청산 및 친일재산 환수의 법률적 증거가 생긴 것으로 평가된다.

친일파 재산환수

문제는 친일파 땅 환수 작업이 미진하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환수한 친일파의 땅은 전체 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자치단체는 친일파 무덤과 땅을 찾아 단죄비를 세우고 국가 환수를 촉구하기도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 관련소송 97건 중 93건이 종결됐다. 이 93건 중 91건에서 승소해 승소율은 97.8%에 이른다. 2006년 7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이완용, 송병준 등 168명을 조사해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하는 1113만9645㎡를 환수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된 친일파의 땅은 1300만㎡(전체 3%)에 불과하다.

남아있는 4건은 모두 친일파 이해승과 관련된 소송이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지난 2009년 9월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하고 그의 후손이 물려받은 서울 은평구 일대 토지 2922m²를 친일재산으로 결정했다. 이에 이해승의 손자 그랜드힐튼서울호텔의 이우영 회장은 경기 포천시 임야 등 192필지(공시지가 110억원대)에 대해 국가귀속결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내 승소 했지만,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지난 11월9일 이해승의 손자인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낸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심대로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또 이 회장이 제기한 친일 재산 확인 결정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서도 원심과 같이 “친일 재산이 맞고 환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해승은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 손으로 1910년 10월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아 광복될 때까지 유지했다. 1911년 1월에는 일제의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16만8000원의 은사공채를 받았고 이듬해엔 한국병합기념장도 받았다.

이해승은 또 1917년부터는 친일파 이완용 주도로 설립된 친일단체 불교옹호회에서 고문을 맡았다. 이후에도 그는 일제 식민 통치에 협력한 공로로 쇼와대례기념장(1928년)을 받고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서 평의원(1937년)을 지냈다.

대통령 직속으로 꾸려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5월 이해승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다. 이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도 이해승이 1913년과 1917년 취득한 서울 은평구 일대 토지를 친일 재산이라고 보고 국고 환수를 결정했다.

이에 이해승의 후손인 이 회장이 “조부는 대한제국의 황실 종친으로 후작 작위를 받았을 뿐이다. 식민 통치에 협력한 친일행위자가 아니고 재산도 환수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이해승이 식민 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를 인정한다”면서도 “한일병합에 대한 공로로 후작 작위를 받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재산 환수 불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이해승이 친일행위의 대가로 각종 이권과 특혜를 부여받은 것이 맞다”며 “당시 취득한 이해승의 재산은 친일 재산이기 때문에 국가가 환수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결국 재판 끝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이 후손에게 물려준 300억원대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게 된 것이다.

부족한 재산환수

하지만 국가에 환수되는 땅은 친일파들이 일제 강점기 보유했던 재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현행 상법 상 후손들이 물려받은 토지를 팔거나 법인 재산으로 등록하면 환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을사오적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여의도 면적 두 배에 가까운 토지를 소유했지만 국고로 돌아온 것은 이 토지의 0.09%에 불과하다. 또 친일파 송병준도 일제강점기 당시 받은 토지의 0.04%만 환수 대상이 됐다.

조사위 관계자는 “해방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토지 관련 행정자료가 사라져서 찾지 못한 것도 많다”며 “해방 이후 곧바로 친일청산 작업에 들어갔다면 친일파 재산을 모두 찾아내 국고로 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7-11-10> 사건in

☞기사원문: 후손에게 남겨진 숙제, ‘친일파 재산환수’

일, 2017/11/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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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은 없었다’는 교육부의 해명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비밀 TF팀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기 위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절차도 무시했고, 내부 문건을 수정하는 등 꼼수와 편법으로 일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우여 교육 부총리는 지난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출석, 비밀 TF팀가 없었다는 근거로 한 장짜리 역사교육지원팀의 업무분장표를 제출했다. 이 표는 TF팀을 역사교육지원팀으로 바꾸고 청와대 일일점검회의 지원’과 같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해 청와대가 깊숙이 개입돼 있거나, ‘동향 파악’, ‘기획기사, 칼럼자 섭외’, ‘패널 발굴 관리’ 등 여론 조작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민감한 단어가 제외된 것을 빼면 비밀 TF팀의 구성 운영 계획과 거의 일치했다.

▲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제출한 역사교육지원팀 업무분장표(위)와 비밀TF팀 구성 운영 계획(아래)

▲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제출한 역사교육지원팀 업무분장표(위)와 비밀TF팀 구성 운영 계획(아래)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은 “예민한 부분만 단어를 조금 바꿔 놓고 TF가 아니다”고 억지를 부린다며 “이왕에 바꾸려면 날짜까지 일찍 바꿔야지. 고작 어제인 10월 27일로 바꿨느냐”며 비꼬았다.

뉴스타파가 교육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녹취록을 분석한 결과, 교육부 내부에서는 비밀 TF팀을 역사교육지원팀이 아닌 ‘역사대책팀’으로 부른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8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김동원 학교정책실장은 박주선 교문위원장의 질문에 “강은희 의원실에서 우리부의 역사대책팀장에게 자료를 요구했고, 역사대책팀원들이 그 자료를 작성해서 제출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직제에는 역사대책팀이라는 조직은 없다. 독도 문제와 동북아 역사왜곡 등 역사문제와 관련된 팀은 교과서정책과 내에 있는 역사교육지원팀이 있을뿐이다.

물론 김 실장이 국감장에서 말 실수를 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발언이 나온 시점에 이미 비밀 TF가 한창 운영 중인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대책팀이란 이름은 이 TF의 실제 명칭일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 국정감사 요구자료가 많아 기존 역사교육지원팀에 인원을 보강했다는 교육부의 해명도 사실과 달랐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은 오히려 비밀 TF가 가동된 후부터 국감에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아예 담당 공무원과 연락조차 끊겼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실에 근무하는 정진경 비서관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수십차례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세종시의 교육부 사무실로 전화하면 서울로 출장갔다는 답변만 왔다”고 말했다.

게다가 교육부는 비밀 TF 운영을 감추기 위해 공적 서류를 거의 남기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비밀 TF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역사교육지원팀의 문서등록대장을 보면 지난 5일까지 TF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공문이 단 한 건도 없었다. 기록을 파기하거나 은닉했다면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이다.

교육부의 비밀 TF는 일정기간 준비작업을 거쳐 지난 1일부터 본격 추진됐다. 현재 TF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국제교육원 관계자는 “지난 1일 교육부로부터 공간을 내 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2일 사전 점검차 교육부 공무원들이 현장을 찾아왔고, 5일부터는 7~8명의 직원들이 일하기 시작해 인원이 점차 늘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TF 설치부터 운영까지 모든 게 마치 군사작전을 벌이듯 철저하게 비밀로 진행했다. 비밀 TF 출입문에 지문인식 보안키를 설치하고, 인가를 받지 않은 직원은 출입할 수 없도록 철저히 통제 했다.

이처럼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실이 입수한 112신고 녹취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 25일 야당의원들이 뉴스타파 취재진 등과 현장을 찾아가자 TF 소속 교육부 직원이 112신고 전화를 통해 경찰 출동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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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TF 소속 공무원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아닌 교육개혁 관련 일을 하고 있다며 업무를 위장했다.

교육개혁 TF라고 했다.
– 국제교육원 관계자

정진후 정의당 국회의원은 “충북대 고위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TF 단장을 맡은 오석환 사무국장은 총장에게 ‘김재춘 차관으로부터 교육개혁 관련 중요한 업무를 맡았다’며 출장 승인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실제 오 국장이 충북대 총장에게 제출한 출장신청서의 출장 목적에 ‘교육개혁추진 점검지원’으로 기재됐다. 고위직 공무원이 거짓 명목으로 출장을 간 것이다.

교육부의 해명은 더 기가 막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 국장이 교육개혁점검팀으로 갈지, 아니면 역사교육지원팀에서 일할 지 분명치 않아 그런 것”이라며 단순 실수인 듯 말했다.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진이 ‘교육개혁 점검팀이 실제 운영중인 조직인지’ 묻자 이 관계자는 “역사 교육이 크게 보면 교육개혁 범주에 들어간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취재 결과 교육부내에 교육개혁 점검팀이라는 조직은 아예 없었다. 또 오 국장이 출장기안서를 제출한 지난 7일 당일 그는 서울에 있는 비밀TF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그가 어디에서 일할지 몰랐을 수 있다는 가정도 성립하기 어려웠다.

지난 수 십년간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정남준 전 행정안전부 제1차관은 “고위직 공무원이 다른 목적으로 출장을 간 것도 문제지만 주무장관이 책임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밟았어야 하는데 비밀리에 어떤 조직을 만들어 국정화를 추진한 게 바로 꼼수”라고 말했다.

금, 2015/10/3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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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환호받는 뉴리더 이재명 시장과 외신에서도 악평 받는 박근혜 대통령 정면대결
수, 2016/06/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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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로에서 국내외 주요 외신 보도를 브리핑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The post 9월 8일 뉴스프로 금주의 외신 브리핑 appeared first on Newspro Inc..

토, 2017/09/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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