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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돼지 등에 ‘피델’ 이름 새긴 그래피티 아티스트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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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돼지 등에 ‘피델’ 이름 새긴 그래피티 아티스트 석방

익명 (미확인) | 수, 2015/10/21- 16:51
다닐로 말도나도 마차도(Danilo Maldonado Machado)가 돼지 등에 '피델'이라는 글자를 그리고 있다 ©Private

다닐로 말도나도 마차도(Danilo Maldonado Machado)가 돼지 등에 ‘피델’이라는 글자를 그리고 있다 ©Private

돼지의 등에 “라울”과 “피델”의 이름을 그렸다는 죄로 1년 가까이 수감됐던 쿠바의 그래피티 아티스트 다닐로 말도나도 마차도(Danilo Maldonado Machado)가 하바나 외곽에 위치한 발레 그란데 교소도에서 20일 풀려났다. “El Sexto(엘 섹스토, 여섯번째)”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아바나의 정치범 치안대원에 의해 지난 2014년 12월 25일 택시로 이동 중 체포됐으며, ‘혁명 지도자에 대한 결례’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석방될 때까지 단 한 차례의 재판도 열리지 않았다. 다닐로는 성탄절 예술축제에서 선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19일 쿠바를 방문한 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를 세계에 공개할 기회가 왔다”며, 쿠바의 젊은이들에게 열린 생각과 마음을 지니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대화를 나눌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쿠바 국민들과는 달리, 정부는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이 쿠바를 떠난 이후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독립적 단체인 쿠바 국가화해 인권위원회는 2014년 평균적으로 매달 741건의 자의적 구금이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교황이 쿠바를 방문했던 지난 9월에는 심지어 더 늘어난 882건의 자의적 구금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반정부단체 쿠바애국연합(UNPACU) 소속 활동가 자케오 바에스 게레로(Zaqueo Baez Guerrero), 이스마엘 보네트 레네(Ismael Bonet Rene), 마리아 호세파 아콘 사르디나스(María Josefa Acón Sardinas)는 지난 9월 20일 아바나에서 교황에게 대화를 시도하려다 안전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체포돼 지금까지 교도소에 수감돼있다.

이들 3명에게 적용된 혐의는 ▲불경 ▲저항 ▲공무원에 대한 폭행 또는 위협 ▲공공 무질서 등이다. 유죄가 선고될 경우 최소 3년에서 최대 8년까지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지난 10월 11일, ‘흰옷 입은 여성(Damas de Blanco)’과 쿠바애국연합 소속 회원들을 비롯한 인권활동가와 반정부 시위대 수백 명이 전국 각지에서 구금된 활동가들과 양심수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를 준비하던 도중 임의 체포 및 구금됐다. 사람들은 이들이 평화적인 행진을 시작한 지 채 10분도 되기 전에 구타를 당했고, 회원 60명은 수 시간 동안 구금됐다고 전했다. ‘흰옷 입은 여성’의 대표 베르타 솔라르(Berta Solar)는 “오후 1시 30분에 시작된 행진이 1시 40분에 저지당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흰옷 입은 여성’  소속 회원들이 집회도중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다  ©Globovision

지난 2003년 ‘흰옷 입은 여성’ 소속 회원들이 집회도중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고 있다 ©Globovision

그래피티 아티스트 다닐로 말도나도 마차도의 어머니와 할머니 역시 ‘흰옷 입은 여성’의 행진에 함께 참여했다. 다닐로의 어머니는 “수많은 경찰들이 ‘흰옷 입은 여성’ 회원들을 버스에 태워서 아무도 이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했으며 경찰이 여성들을 끌고 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호세 다니엘 페레르(José Daniel Ferrer) 쿠바애국연합 총서기는 최근 사회적 지도자 4명의 자택이 강도를 당하거나 훼손당했다고 밝혔다.

최근 한 활동가는 자신을 비롯해 30명의 승객을 태우고 산티아고 데 쿠바로 향하던 버스가 경찰관 40명에게 불시에 검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이 활동가는 “경찰관들이 버스에서 한 사람씩 내리게 하더니, 사람들을 구타하고 교도소에 보내겠다고 위협했다”며 “지프에 태워 어느 외딴 곳에 버려두고 떠나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 마일을 걸어가야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활동가는 체포된 이후 폭행을 당했다며, “어떤 경찰관은 우리에게 모두 조용히 하지 않으면 이를 모두 뽑아 버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들은 출혈이 심한 것을 보고서야 구타를 멈췄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 방문으로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를 기대했지만 쿠바정부는 반대파의 목소리를 막기 위해 여전히 구시대와 똑같은 방식을 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에리카 게바라 로사스(Erika Guevara-Rosas) 국제앰네스티 미주국장은 “다닐로의 석방은 주목할 일이지만 애초에 체포돼서는 안됐다”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이 범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쿠바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쿠바 정부는 오래 전부터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증진하겠다고 밝혀 왔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인터섹스(LGBTI)의 권리 보장에 대해서는 일부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평화적으로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엄격히 통제하고 독립적인 감시단의 입국을 막는 한, 쿠바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쿠바 국민들이 정부에 통제된 공간에서만 반대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면, 쿠바에서 인권에 대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지기란 실현되기 힘든 꿈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루이스 틸롯슨(Louise Tillotson) 국제앰네스티 쿠바 조사관의 논평을 바탕으로 편집, 재가공한 글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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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ta la victoria simple, Fidel!”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지난달 26일 90세로 영면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피델!”이라는 말을 영전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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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의 아이콘 피델 카스트로. 지금의 쿠바를 만든 장본인이지만, 독재자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사진 출처: http://www.dailymail.co.uk/)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동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투신하기 전 남긴 이 문구만큼 카스트로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을 듯하다.

“혁명을 뭔가 섹시한 것으로 만든 사람”

외신들에 따르면 무상 교육ㆍ의료로 대표되는 쿠바식 사회주의를 체험한 쿠바 시민들에게는 “카스트로가 곧 쿠바이자 혁명”이었다. 아흐레 동안 진행된 추모 기간 동안 “내가 피델이다”를 외치며 작별인사를 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매웠다고 한다.

반면 카스트로를 바라보는 서구 언론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8일자 조간 1면에 “무수한 면을 가진 카스트로”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내고, 카스트로가 쿠바를 50년 넘게 통치하며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퇴색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7일자에 실은 국제담당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티스달의 칼럼을 통해 카스트로를 “게릴라 지도자, 독재자 그리고 완고한 혁명가”라고 평가했다. 티스달은 그러면서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섹시한 무엇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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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쿠바 하바나에서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들은 대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왼쪽 사진). 그러나 같은날, 미국 마이애미주 쿠바 망명객 밀집 지역에서는 쿠바인들이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카스트로가 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의 지도자에 불과했지만 169㎞ 거리에 이웃한 세계 최강 미국의 역대 대통령 11명을 상대하며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투옥된 게릴라… 체 게바라와 쿠바 상륙작전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쿠바 동부 오리엔테주 비란의 스페인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 법학을 전공하며 좌파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다.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들어가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글을 읽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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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는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을 가진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시절 카톨릭학교를 다니며 유복하게 자랐다(왼쪽).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한 대학시절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trinity.edu/)

운명의 날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쿠데타로 친미 군사독재정권이 세워진 1952년 그는 반독재 투쟁 선두에 선다. 이듬해 7월 26일 산티아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면서 바티스타 정권 전복을 꾀했지만 실패하고 15년 형을 선고 받고 투옥된다.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7월 26일 운동’일의 유래다.

직접 변론에 나선 카스트로가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라고 밝힌 당시 법정진술은 역사를 바꾼 명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운명적 만남도 곧장 이어진다.

정권이 안정됐다고 판단한 바티스타는 1955년 카스트로를 특별사면 한다. 카스트로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하고, 이곳에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의사 체 게바라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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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무장게릴라 투쟁은 20세기 혁명사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이같은 수많은 사진은 그들의 무장투쟁을 더욱 로맨틱한 것으로 이미지화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 11월 상업용 요트 ‘그란마’호에 몸을 싣고 82명의 ‘카스트로 혁명군’의 일원으로 쿠바로 잠입한다. 하지만 상륙 과정에서 교전으로 대부분이 희생되고, 피델 카스트로와 동생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생존한 10명은 내륙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2년 여에 걸친 무장투쟁 후 이들은 1959년 1월 1일 수도 아바나를 접수했다. 카스트로를 특별사면 했던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한다.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완고한 혁명가… 교육 개혁과 의료 보험 국영화

카스트로는 농지개혁, 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혁명조치를 내걸었다. 1959년 5월 농장 주가 가지고 있던 농지는 농민들에게 무상 배분됐다. 카스트로의 아버지 안젤 카스트로가 평생 일군 비란의 농장도 당시 몰수 대상이 됐다.

교육 개혁과 의료보험 국유화 등의 정책을 펼치며 무상교육·무상의료 시스템도 만들어나갔다. 쿠바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사를 해외에 파견하는 나라다.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4.7명으로 미국보다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수립 직후 미국을 방문하는 등 국제관계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대중 연설을 통해 “새로운 쿠바는 문명적이고 민주적 정부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1961년 3월 미국이 쿠바 내 반란군을 지원한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냉전 상황에서 쿠바는 소비에트연방(구 소련)과 급속히 가까워진다. 카스트로는 그 해 4월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했고, 12월에는 자신은 마르크스ㆍ레닌 주의자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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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모스크바 크레믈린에서 당시 후르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주 앉은 카스트로. 당시 카스트로는 왼쪽 손목에 두 개의 로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이 중 하나는 쿠바 현지 시간을 표시했다. 자신이 항상 쿠바 현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제스추어였다.

1962년 핵탄두를 쿠바에 배치할 것을 소련에 요청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카스트로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맞서면서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1960년대 쿠바 아바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성지였다. 전 세계 좌파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성지 순례하듯 하바나를 찾았다. 프랑스의 지식인 부부 장 폴 샤르트르와 시몬느 보브와르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찾아 1960년 쿠바를 방문했다.

이들은 전세계 사회주의자가 고대하는 혁명을 이뤄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실험에도 성공하길 기원했다. 카스트로는 “쿠바에서 불의와 불평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며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대부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특히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좌파의 맏형 노릇을 했다.

2014년 1월 쿠바에서 중남미카리브해국가연합(CELAC)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각국 정상들은 앞다퉈 그를 찾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이어갔다.

독재자… 항구 개방이 쇄락 신호탄

카스트로는 하지만 쿠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강화하며 장기 집권에 나선다.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언론ㆍ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1959년부터 1976년까지 내각책임제 하의 총리를, 1976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내며 반세기 가까이 최고 통치권을 행사했다. 권력을 동생 라울에게 이양한 뒤에도 ‘헤페 막시모(jefe maximo•최고지도자)’로 남아 있었다.

경제도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했다. 1962년 시작된 미국의 금수조치로 무너진 경제는 끝내 다시 세우지 못했다. 쿠바 경제는 냉전 시기 소련의 원조에 의존했고, 이후에는 중국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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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미국 마이애미주의 한 해변에서 이민수속을 기다리는 쿠바 난민들.

불만을 품은 쿠바인들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카스트로 정부도 항구 개방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전과자 등 12만5,000여명을 미국으로 방출한 ‘마리엘 보트리프트’ 사건은 쿠바 쇄락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쿠바 혁명 후 지금까지 쿠바를 떠난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카스트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2008년 은퇴한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 4월 19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죽음을 예견한 듯 “곧 90세가 된다. 아마 이번이 내가 이 홀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다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카스트로는 지난 4일 자신의 고향이자 혁명의 발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서 영면했다. 19세기 쿠바 독립영웅이자 그가 평생 존경했던 호세 미르티의 무덤 앞에 묻혔다. 묘지 옆에는 1953년 7ㆍ26운동 당시 그와 함께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숨진 반군 병사들의 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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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쿠바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과 면담하는 카스트로. 그가 생전에 즐겨 입었던 삼선의 파란색 아디다스 점퍼가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AP)

카스트로는 생전에“쿠바의 정체성은 단지 공산주의 이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호세 마르티의 사상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마르티는 독립 투쟁을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국민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소외된 약자를 챙겼다. 카스트로는 마르티의 철학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각종 정책을 통해 실현하려 애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60년간 어긋났던 미국과 쿠바의 관계에 화해의 다리를 놓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역사는 한 인물이 그의 주변 사람들과 전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목, 2016/12/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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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왜 이 주제를 선택했나요?
– 중미 국가에서 이뤄지는 지속가능발전 실험과 경험의 의미를 공유하기 위해
* Who! 어떤 분이 읽으면 좋을까요?
– 쿠바와 코스타리카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
– 도시농업에 관심이 있는 분
– 생태관광, 지속가능관광이 궁금하신 분
– 다양한 지속가능발전 모델이 알고 싶은 분
* When! 언제 읽으면 좋을까요?
– 지속가능발전, 지속가능목표 개념을 막 접했을 때
– 쿠바와 코스타리카행 항공권을 예약한 후
* What! 읽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 쿠바 도시농업의 배경과 가치, 의미
– 코스타리카 지속가능관광의 의미, 지속가능관광 인증제도의 내용
– 사회-생태-경제 패러다임 전환 탐색

* 요약

○ 지속가능목표(SDGs) 달성을 위해서 각국 정부 및 지방정부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은 쿠바와 코스타리카에서는 ‘지속가능발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실험들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 특히 쿠바의 도시농업과 코스타리카의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의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 쿠바의 지속가능발전은 ‘인간 잠재성의 확대’를 중심으로 한 발전 전략, 즉 생산과 소비에서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팽창을 중시하는 전략, 사회정의에 기반을 두고 ‘인간 가치’를 추구하는 발전 전략이다. 그 대표적인 정책이 무상의료, 무상교육 그리고 도시농업이다.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미국의 경제봉쇄 강화로 맞이한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유기농업ㆍ도시농업이다. 쿠바 도시농업은 지역 생산-지역 소비, 작물재배와 동물사육의 통합, 유기농업을 통한 토양 비옥화, 1인당 과일채소 권장량 460그램 확보 등을 특징으로 한다. 도시농업의 효과는 화학비료사용 감소와 식량생산성 증가, 식량주권 강화, 고용창출 및 소득증대, 로컬푸드 실현과 시민영양상태 개선, 종자와 생물다양성 확대, 토질개선로 나타났다.

○ 지속가능관광ㆍ생태관광은 환경보호와 지역주민의 복지향상을 염두에 두고 자연지역으로 떠나는 책임 있는 여행,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양식에 기초한 관광이다. 평화와 생태친화적인 국가 발전전략을 추구해온 코스타리카는 지구 온난화가 본격화되면서, 1985년 관광 산업의 차별화 전략으로 지속가능관광을 채택했다. 지속가능관광은 경제, 사회문화, 환경 세 가지 요소를 축으로 구성된다. 지속가능관광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하고, 환경을 지속적으로 보전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문화적으로는 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코스타리카 지속가능관광 정책이 추구하는 가치는 지속가능성, 혁신성, 포괄성(비배제성)이다. 코스타리카는 지속가능관광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속가능관광 인증제도(Certification for Sustainable Tourism)’를 개발했는데, 이를 통해 각각의 관광 사업자(기업)들이 지속가능한 모델을 얼마나 따르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인증한다.

○ 쿠바와 코스타리카의 지속가능발전을 둘러싼 평가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도시농업과 지속가능관광의 긍정적인 효과는 분명하지만, 다른 사회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안정적인 지속가능발전 모델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두 나라의 실험에서는 공히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가치들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쿠바의 도시농업과 코스타리카의 지속가능관광 정책이 지속가능발전 목표들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우리 인간들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새로운 사회-생태-경제적 변화에 대한 탐색에 있어서 유의미한 경험과 지표로 기능할 수 있다.

수, 2017/07/0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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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쿠바. 여러분은 ‘쿠바’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사회주의? 체 게바라? 시가와 럼? 아니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 이외에도 쿠바에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는데요. 카드뉴스로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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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쿠바. 여러분은 ‘쿠바’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사회주의? 체 게바라? 시가와 럼? 아니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 이외에도 쿠바에는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하나 더 있다는데요. 카드뉴스로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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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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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도시농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작물을 기른다는 의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쿠바를 지탱하는 새로운 생산 시스템으로 정착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정창기 희망제작소 목민관클럼팀 연구위원이 최근 ‘지속가능발전의 또 다른 실험’이란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쿠바의 도시농업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보고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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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7/0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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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와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위한 적십자 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숀 스파이서 미 백악관 대변인은 그러한 대화를 위한 분위기는 현 시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제안에 찬물을 끼얹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상황에 바로 달려들어 양국 간 의견 차이를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 간 “첫 가시적인 불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양국 간 균열이 실제로 얼마나 깊은지, 아니면 이를 언론에서 과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지난 달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로 이루어진 정상회담의 결과로 양국 정부는 남북 양자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긴장상태를 완화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 자신도 지난 7월 19일 여야 4당 대표와 가진 회동에서 모든 대북대화의 초기 단계에서 인도적 대화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됐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회동에 참석했던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올바른 여건 조성이 조건”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의 오찬회동

▲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의 오찬회동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존재한다는 이 같은 언론보도는 트럼프 정부가 평양과 직접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과거 미 국무부에서 근무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 국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협상을 해왔다는 것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트랙 투 대화’로 알려진 미-북 비공식대화를 위해 북한 당국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 온 미국 전직 관료 및 전문가 그룹에 속해 있다.

미-북 간 대화의 존재는 17개월 간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사망하기 직전인 지난 6월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6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들은 북한의 고위 핵협상 담당자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평양 및 유럽 등지에서 비밀리에 ‘트랙 투’ 회담을 가져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부터 “미국과 북한 간의 공식, 비공식 접촉이 통합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트랙 투’ 회담의 미국 측 참여자들의 주선으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최 국장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북한에 구금된 미국인 네 명의 처리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최 국장은 노르웨이를 떠난 뒤 기자들에게 “여건이 무르익으면” 북한 당국이 미국 관계자들과 만나 북핵 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윤 특별대표는 지난 6월 뉴욕에서 유엔 주재 북한 대사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특별대표는 당시 송환대상자로 고려되던 웜비어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 특별대표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웜비어를 데려오기 위해 평양으로 향했다. 며칠 뒤 웜비어가 사망하자, 트럼프 정부가 숙고에 들어감에 따라 북-미 간 새로운 회담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시걸 국장은 “이것을 대화 중단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트럼프가 이 절차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트럼프 정부의 최근 발표를 토대로 볼 때, 양자 간 직접 대화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예를 들어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고, 오히려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월 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대사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자, 매티스 국방장관은 기자들을 자신의 펜타곤 사무실로 불러모은 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에 미국과 북한 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커진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그는 위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계획은 “전적으로 외교적”이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이를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매티스 장관이 다른 사람들이 계속 그리려고 하는 금지선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미국 내에서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의 강경파는 모두 북한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북한 정권 교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안보 관련 핵심 관계자들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 외에는 핵무장과 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열망을 해결할 만한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여러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목소리 중 일부는 냉전 시기에 경력을 쌓은 전직 미국 정보부 고위관료들로부터 나왔다. 그 중 하나는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부장으로, 2014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송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수차례에 걸쳐 미국과 북한이 상대방 수도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해 왔다. 이는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하기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군사정보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클래퍼는 북한에 “대화와 평화 협정 체결 대가로” 미사일 실험을 ‘자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외교다. 북한과의 대화가 최선이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서울의 한 포럼에서 2014년 자신의 평양 방문 일화를 소개하며 당시 자신과 같은 차에 탑승한 북한 정보부 고위관료로부터 분단의 아픔을 전해들은 사실을 애석해하며 말하기도 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 역시 협상을 통한 평화를 지지한다. 1991년부터 1993년 사이 CIA 국장을 지낸 그는 CIA에서 거의 27년간 근무했다. 그는 최근에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보유하는 대신 미사일에 대한 엄격한 제한에 동의하게 하자는 포괄적 제안을 공개했다. 그가 7월 10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 계획에 따르면, 미국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피델 카스트로와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권 교체 정책을 포기”하고, 김정은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의 구조에 대해 “부분적인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게이츠의 계획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전적으로 중국의 중재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게이츠의 제안에 따르면, 북한이 합의사항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무기시설에 대한 엄격한 검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게이츠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그것이 당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면, 우리는 당신들이 싫어할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밝혔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이 같이 “중국이 하게 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전략국제연구센터)에서 한국석좌를 맡고 있는 빅터 차 선임고문이다. 그는 부시 정부에서 북한과의 6자 회담에 미국 측 차석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과장을 지낸 제이크 설리번과 최근 공동으로 작성한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 “중국에 북한을 압박하여 미-북 간 협상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썼다. 이들은 “중국 또한 협상의 중요한 대상”이라며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축소하도록 하는 비용을 미국보다는 중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지만, 많은 한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 것이라는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중국 및 구소련에 대한 북한의 외교정책에 정통한 역사가인 제임스 퍼슨은 “북한은 자신들을 비핵화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강요 행위라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가장 분개할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북정책을 중국에 위탁해서는 안 된다”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퍼슨은 7월 10일 워싱턴 소재 정부 싱크탱크인 우드로 윌슨 국제센터에서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러한 실용주의적인 관점은 최근 몇 달 사이 전직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 중 하나인 윌리엄 페리는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북한과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협상을 했다. 페리는 지난 6월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전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 어떠한 조건도 없는 협상을 시작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문에 서명한 전직 고위 관료 중 하나였다. 페리는 지난주에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북한은 미치광이 국가가 아닙니다.

그는 샌더스 의원에게 말했다.

그들이 무모하고 무자비하긴 해도 미치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논리와 이성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바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정권을 유지할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윌슨 센터 기자회견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이 기자회견은 제인 하먼 전 캘리포니아주 연방 하원의원이 진행했다. 지난 가을, 그녀는 퍼슨과 함께 워싱턴포스트에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제안하는 기고문을 보냈다. 그는 “[북한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정당화시키는 실존적 위협으로 알려진 미국만이 안보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 썼다. 윌슨 센터 기자회견에서 퍼슨이 이 제안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많은 분석가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최근에 발생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판도를 바꿀 만한 ‘변수’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믿을 만한 방어전략”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북한이 더 큰 사정거리를 가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역량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대화의 문이 열렸을 때 자신들의 영향력을 최대화시킬 때까지 미사일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최대한의 역량을 확실히 갖도록 하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북한 간 직접적인 협상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과 한국의 연례 군사훈련을 줄이라는 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윌슨 센터 브리핑에서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 기자는 한미 군사훈련을 봄에 하기 때문에 미국이 그러한 제안을 할 ‘절호의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면 “지금부터 다음 봄까지 우리는 별로 잃을 게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20년 넘게 상대해 온 시걸 국장은 어떤 합의라도 미국 측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는 현행 프로그램 동결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생산뿐만 아니라, 핵 실험과 미사일 실험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이 수십 년간 요구해 온 것처럼 ‘적대적인 정책’을 끝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분열 가능 물질의 생산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지만, 돈이 아니라 적대적인 정책으로부터 멀어지는 의미에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일부는 군사훈련, 일부는 제재 해제, 그리고 일부는 평화 정착 절차와 관련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현실성있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 팀 셔록
한국취재 및 번역: 임보영
촬영: 신영철
편집: 박서영

화, 2017/07/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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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와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위한 적십자 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그러나 숀 스파이서 미 백악관 대변인은 그러한 대화를 위한 분위기는 현 시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제안에 찬물을 끼얹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상황에 바로 달려들어 양국 간 의견 차이를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 간 “첫 가시적인 불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양국 간 균열이 실제로 얼마나 깊은지, 아니면 이를 언론에서 과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지난 달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로 이루어진 정상회담의 결과로 양국 정부는 남북 양자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긴장상태를 완화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 자신도 지난 7월 19일 여야 4당 대표와 가진 회동에서 모든 대북대화의 초기 단계에서 인도적 대화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한-미 간 이견이 노출됐다는 우려를 일축했다. 회동에 참석했던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올바른 여건 조성이 조건”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의 오찬회동

▲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의 오찬회동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존재한다는 이 같은 언론보도는 트럼프 정부가 평양과 직접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과거 미 국무부에서 근무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 국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협상을 해왔다는 것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트랙 투 대화’로 알려진 미-북 비공식대화를 위해 북한 당국 관계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 온 미국 전직 관료 및 전문가 그룹에 속해 있다.

미-북 간 대화의 존재는 17개월 간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사망하기 직전인 지난 6월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6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외교관들은 북한의 고위 핵협상 담당자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평양 및 유럽 등지에서 비밀리에 ‘트랙 투’ 회담을 가져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부터 “미국과 북한 간의 공식, 비공식 접촉이 통합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트랙 투’ 회담의 미국 측 참여자들의 주선으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최 국장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북한에 구금된 미국인 네 명의 처리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최 국장은 노르웨이를 떠난 뒤 기자들에게 “여건이 무르익으면” 북한 당국이 미국 관계자들과 만나 북핵 회담을 가질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윤 특별대표는 지난 6월 뉴욕에서 유엔 주재 북한 대사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특별대표는 당시 송환대상자로 고려되던 웜비어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 특별대표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웜비어를 데려오기 위해 평양으로 향했다. 며칠 뒤 웜비어가 사망하자, 트럼프 정부가 숙고에 들어감에 따라 북-미 간 새로운 회담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시걸 국장은 “이것을 대화 중단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트럼프가 이 절차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트럼프 정부의 최근 발표를 토대로 볼 때, 양자 간 직접 대화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예를 들어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밝혔고, 오히려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월 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대사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무력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자, 매티스 국방장관은 기자들을 자신의 펜타곤 사무실로 불러모은 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에 미국과 북한 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커진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 짐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그는 위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계획은 “전적으로 외교적”이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이를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시걸 국장은 “매티스 장관이 다른 사람들이 계속 그리려고 하는 금지선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미국 내에서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의 강경파는 모두 북한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북한 정권 교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안보 관련 핵심 관계자들이 북한과의 직접 대화 외에는 핵무장과 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열망을 해결할 만한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여러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목소리 중 일부는 냉전 시기에 경력을 쌓은 전직 미국 정보부 고위관료들로부터 나왔다. 그 중 하나는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부장으로, 2014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송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수차례에 걸쳐 미국과 북한이 상대방 수도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해 왔다. 이는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하기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군사정보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클래퍼는 북한에 “대화와 평화 협정 체결 대가로” 미사일 실험을 ‘자제’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외교다. 북한과의 대화가 최선이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서울의 한 포럼에서 2014년 자신의 평양 방문 일화를 소개하며 당시 자신과 같은 차에 탑승한 북한 정보부 고위관료로부터 분단의 아픔을 전해들은 사실을 애석해하며 말하기도 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국 국방장관 역시 협상을 통한 평화를 지지한다. 1991년부터 1993년 사이 CIA 국장을 지낸 그는 CIA에서 거의 27년간 근무했다. 그는 최근에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보유하는 대신 미사일에 대한 엄격한 제한에 동의하게 하자는 포괄적 제안을 공개했다. 그가 7월 10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이 계획에 따르면, 미국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피델 카스트로와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정권 교체 정책을 포기”하고, 김정은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의 구조에 대해 “부분적인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게이츠의 계획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전적으로 중국의 중재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게이츠의 제안에 따르면, 북한이 합의사항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무기시설에 대한 엄격한 검사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게이츠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그것이 당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가 아니라면, 우리는 당신들이 싫어할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밝혔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이 같이 “중국이 하게 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CSIS(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전략국제연구센터)에서 한국석좌를 맡고 있는 빅터 차 선임고문이다. 그는 부시 정부에서 북한과의 6자 회담에 미국 측 차석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과장을 지낸 제이크 설리번과 최근 공동으로 작성한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 “중국에 북한을 압박하여 미-북 간 협상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썼다. 이들은 “중국 또한 협상의 중요한 대상”이라며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축소하도록 하는 비용을 미국보다는 중국이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있지만, 많은 한국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 것이라는 주장에 코웃음을 친다.

중국 및 구소련에 대한 북한의 외교정책에 정통한 역사가인 제임스 퍼슨은 “북한은 자신들을 비핵화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는 강요 행위라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가장 분개할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북정책을 중국에 위탁해서는 안 된다”며 “궁극적으로 우리는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퍼슨은 7월 10일 워싱턴 소재 정부 싱크탱크인 우드로 윌슨 국제센터에서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러한 실용주의적인 관점은 최근 몇 달 사이 전직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 중 하나인 윌리엄 페리는 클린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내며 북한과 미사일 프로그램 관련 협상을 했다. 페리는 지난 6월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전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 어떠한 조건도 없는 협상을 시작할 것을 요청하는 서한문에 서명한 전직 고위 관료 중 하나였다. 페리는 지난주에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

북한은 미치광이 국가가 아닙니다.

그는 샌더스 의원에게 말했다.

그들이 무모하고 무자비하긴 해도 미치진 않았습니다. 그들은 논리와 이성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바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정권을 유지할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윌슨 센터 기자회견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다. 이 기자회견은 제인 하먼 전 캘리포니아주 연방 하원의원이 진행했다. 지난 가을, 그녀는 퍼슨과 함께 워싱턴포스트에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제안하는 기고문을 보냈다. 그는 “[북한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정당화시키는 실존적 위협으로 알려진 미국만이 안보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다”고 썼다. 윌슨 센터 기자회견에서 퍼슨이 이 제안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많은 분석가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최근에 발생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판도를 바꿀 만한 ‘변수’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믿을 만한 방어전략”의 일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북한이 더 큰 사정거리를 가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역량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대화의 문이 열렸을 때 자신들의 영향력을 최대화시킬 때까지 미사일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최대한의 역량을 확실히 갖도록 하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미국과 북한 간 직접적인 협상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북한이 핵 실험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과 한국의 연례 군사훈련을 줄이라는 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윌슨 센터 브리핑에서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 기자는 한미 군사훈련을 봄에 하기 때문에 미국이 그러한 제안을 할 ‘절호의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면 “지금부터 다음 봄까지 우리는 별로 잃을 게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을 20년 넘게 상대해 온 시걸 국장은 어떤 합의라도 미국 측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하는 현행 프로그램 동결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생산뿐만 아니라, 핵 실험과 미사일 실험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이 수십 년간 요구해 온 것처럼 ‘적대적인 정책’을 끝내겠다는 약속을 해야 할 것이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분열 가능 물질의 생산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지만, 돈이 아니라 적대적인 정책으로부터 멀어지는 의미에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중 일부는 군사훈련, 일부는 제재 해제, 그리고 일부는 평화 정착 절차와 관련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해결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현실성있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 팀 셔록
한국취재 및 번역: 임보영
촬영: 신영철
편집: 박서영

화, 2017/07/25-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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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11월 30일 신촌 히브루스에서 ‘포스트 사회주의 –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학술 발표회를 진행하였습니다. 다른백년에서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100년의 기간 동안 진행된 사회주의 실험을 평가하고, 이를 기초로 향후 전개될 포스트 사회주의에 대한 심도 깊은 탐색을 목표로 관련 연구사업을 6개월 여의 기간 동안 진행하였습니다.

   본 발표회는 기간에 진행된 ‘포스트 사회주의’ 연구사업의 최종 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보고서의 최종점검 및 대중적 검증을 목표로 기획되었습니다. 발표회는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성공회대 교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구갑우 교수(북한대학원대학교, 다른백년 연구기획의원)의 사회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림2

 

   김동춘 다른백년 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러시아 혁명 이후 진행된 100년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간의 사회주의 실험에서 문제 삼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으며, 여전히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사회주의 실험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본 발표는 현실사회주의를 대표했던 러시아, 중국, 쿠바, 베트남, 북한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국민대 전재원 교수(국민대)는 ‘러시아혁명과 소련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체제전환’을 주제로 러시아(구 소련) 사회주의에 대해 발표하였습니다. 정재원 교수는 과거 구소련 체제의 붕괴요인을 중앙계획경제의 비효율성과 생산자 직접 민주주의의 실패에서 찾으면서, 구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사회는 급속하게 주변부 자본주의화 하면서, 신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두번째 주제인 ‘중국사회주의의 역사적 전개: 소련 모델, 현실, 제체전환’을 발표한 박철현 교수(국민대)는 중국 사회주의가 초기에 소련모델을 수용하면서 시작하였지만, 서서히 중국적 현실에 맞는 ‘중국식 사회주의로 발전해 나갔다고 한다. 중국 사회주의는 소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분권적 성격이 매우 강했는데, 이는 중국사회가 처한 역사적, 물적 조건에 의해 강제된 측면이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분권적 성격이 중국 사회주의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이야기하였다.

   세번째 발표는 ‘제3세계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소고: 쿠바사회주의를 중심으로’를 제목으로 정이나 교수(부산외대)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이나 교수는 쿠바 사회주의의 주요한 특징을 보건의료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하며서, 쿠바 사회주의가 이룩한 보건의료체제의 위대한 성과를 소개하였습니다. 쿠바 사회주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 의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운동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네번째 발표는 ‘베트남의 사회주의와 탈사회주의’를 제목으로 이한우교수(서강대)가 진행하였습니다. 이한우 교수는 현재 베트남 경제에서 국유경제부문이 GDP 대비 30%까지 쪼그라들었으며, 이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민족주의 운동과 통일과정에서 획득한 정당성에 필연적으로 위기가 도래할 것이며, 이는 엘리트 중심의 베트남 사회주의 체제에 심각한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북한 사회주의의 변화: 이데올로기와 사회사회구조’를 제목으로 정영철 교수(서강대)의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영철 교수는 발표문에서 북한의 사회주의가 ‘주체’사회주의이며, 주체사회주의는 외적으로는 주체사상을 앞세우지만, 현실에서는 실리주의적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공산주의를 먼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체제라는 인식하에 실리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향후 북한사회가 더욱 개방적인 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였습니다.

   이번 발표회에는 50여명이 플로워를 메우며 발표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면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번 발표회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여전히 의미 있는 성찰과 고찰의 주제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포스트 사회주의’ 보고서에 세미나에서 논의되었던 제안들을 반영하고 보완하여 최종적인 보고서를 제출하겠다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월, 2017/12/0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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