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2011년 시작했던 순성놀이가 벌써 5회를 맞이합니다.
순성놀이는 매년, 서울KYC 회원들이 직접 준비하고 답사하고 회의하고 다시 답사하고!! 이 과정을 통해 순성놀이 매뉴얼을 만들어갑니다. 순성놀이 홍보를 위해 집 근처, 회사 근처에도 포스터를 붙이고 시민들에게 나갈 간식도 회원들이 직접 포장하며 준비한다는 사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올해 순성놀이를 어떻게 할지 회의하고 직접 답사를 다니며 매뉴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9월 12일 1차 일주답사를 진행했고 10월 3일에는 2차 답사를 진행했는데요.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인왕부터 오르는 한양도성코스와 반대로 목멱부터 올라가는 서울도성코스, 두 팀으로 나누어 답사를 했습니다.
출발점인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준비 운동을 통해 몸을 쫘악 풀어준 뒤 한양도성코스와 서울도성코스 팀끼리 손모으고 화이팅도 하고!! 단체사진도 찍고, 한 손에 매뉴얼을 든채 인왕과 목멱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양도성을 따라 쭉쭉 올라갑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과 멋진 한양도성이 조화를 이루어 올라가는 내내 우와~!!
풍경도 멋있지만 우린 답사를 왔으니까!! 손에서 매뉴얼을 놓지 못하고, 계속 시간과 자신의 역할을 확인, 또 확인합니다.
답사 하는동안 함께 진행했던 순성놀이 포스터 붙이기~ 많은 시민분들이 한양도성을 찾고, 한양도성과 서울의 매력에 퐁당 빠질 수 있도록 잘 보이는곳에 꼭꼭 붙여놓고 왔어요. 순성놀이 신청자 중에는 길거리 포스터를 보고 신청하신 분들도 꽤 있으시다는 사실!!
한양도성 곳곳에는 순성놀이 Y배너도 만날 수 있습니다!! Y배너를 만날때마다 다 같이 사진 한장 찰칵~
낙산에는 순성놀이 현수막이 2개 걸려있는데 현수막을 지날때에도 사진을 찍으며 지나갔습니다. 생각보다 Y배너, 현수막, 포스터를 보고 순성놀이에 참여 신청을 해주시는 분이 많으세요!!
새롭게 추가한 동선도 직접 답사때 가봅니다. 여긴 소나무가 울창한, 시원하기도 한데 멋지기까지 한! 길이에요~ 어느 구간을 가면 만날 수 있는곳인지 궁금하시죠? 순성놀이 당일에! 확인해보세요^^
순성놀이때는 한양도성도 많이 보지만, 또 많이 보는것 중 하나가 아름다운 서울 모습이죠!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왕에서 찰칵~ 멋진 서울의 모습, 17일에 함께! 직접 눈으로 봐요!!
한양도성 한바퀴를 빙~ 걸어서 다시 출발지였던 서울역사박물관에 도착!!! 도착해서는 다시 몸을 한번 풀어줍니다. 확실히 도착해서도 운동을 간단히 해주니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순성놀이 당일에도 출발 전에 한번, 도착해서 한번 몸풀기 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는 한양도성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서울KYC 회원분들이 기획, 준비, 답사, 매뉴얼 작성, 당일 시민 안내와 진행, 부스 자원봉사까지...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걸 함께 준비합니다. 수십명의 서울KYC 회원이 함께 준비하는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
올해에도 참여한 시민분들에게 600년 역사도시 서울과 한양도성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잘 알릴 수 있도록, 힘들었지만 다음에 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워서 남주자"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서울KYC 회원들을 믿고!! 순성놀이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주세요~^^
마지막으로는, 답사때 찍은 멋있는 서울과 한양도성의 모습 보여드립니다! 순성놀이에서 서울의 새로운 매력도 느껴보시고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 아름다움도 마음껏 느껴보세요!!
순성놀이는 언제? 10월 17일 토요일입니다!! 신청은 12일 월요일까지이니, 아직 못하셨다면 서두르세요~
6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한국 근현대사 "광장 민주주의" 시작이라고 하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했습니다.
이이화 선생님과 함께했던 실내교육 120여년전, 그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민중들의 항거! "농민들"이 들고일어나, 과거의 폐습을 없애고 부정부패 척결로 사회를 바로잡고,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등 그야말로 아래로부터 시작된 "혁명"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1894년에 동학농민군의 함성과 투쟁은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 동학난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농민군의 봉기, 그 중에서도 우리는, 혁명의 시작을 알린 "정읍"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동학역사문화연구소 조광환 소장님과 함께 동학농민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마을 언덕 위, 사발통문 서명자 후손자들이 건립한 동학혁명기념탑! 죽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 등 20여명이 모여 고부 농민 항쟁을 계획하고 그 결의 내용을 적은 후,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20여명 참가자들이 서명하여 각리의 집강에게 돌렸다하여 일명 사발통문이라 합니다. 농민들의 봉기는 사발통문으로 작성된 것처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거사 계획은 고부군수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발령되어 보류되었으나, 이듬해 1월 10일 고부 봉기로 점화되었습니다.
19세기 세도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중앙정치 기강이 문란해지고 탐관오리가 득세하였습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며 과거제도는 유명무실해지고, 민심이 동요하며 삼정 즉 전정(토지세), 군정(성인나자들이 군대 안가는 대신 내는 세금), 환곡(춘궁기때 관곡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도록 한 제도)이 문란해져 농촌사회의 파탄을 가져왔고, 봉건사회의 모순과 수탈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불만은 커져만갔습니다.
한편 개항이후, 청일 양국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조선은 일본 식량공급지이자, 일본쌀 수입이 늘어나면서 민중들은 물가고와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됩니다. 이런한 상황에서, 전국 각지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고부지역은, 호남제일의 쌀 생산지이며 농산물 집결지로, 봉건적 수탈과 일제의 경제적 침략이 극심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이 심각해, 전봉준을 중심으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결의 드디어, 고부봉기가 일어납니다. 고부봉기는, 이전의 농민봉기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으로 전라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진격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지역봉기를 넘어, 전국적 혁명을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사람이 하늘이고, 밥이 하늘인 세상" 을 만들고자 한 반봉건항쟁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보국안민을 이루고자 했던 반외세 항쟁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의 고택은, 찾는이 없이 쓸쓸하게, 뜨거운 해를 맞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부 농민 봉기가 일어나기 수년전에 전봉준이 살던 곳으로 훈장생활을 하면서, 고부봉기 전까지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전봉준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전봉준은 동학조직을 이용하여, 농민봉기를 전국적으로 확산해가려고 합니다. 고부 동학교도들과 농민군들이 무장하고, 1894년 1월10일 말목장터에 집결합니다. 고부관아를 점령, 감옥을 부수고 무고한 백성들을 석방하였으며, 창고문을 열어 곡식을 주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백산으로 진을 옮기며 부대로서의 대오를 정비하고 장기전에 돌입하였고, 각지의 창의격문을 발송하는 등 혁명의 전국화를 준비해갑니다.
고부관아 습격후, 농민군들은 바로 다음날 만석보를 허물어 버립니다. 만석보는 태인천과 정읍천이 만나는 곳에 쌓았던 수리시설로, 고부군수 조병갑이 강제로 농민들을 동원하여 쌓아놓고, 물세를 받아 원성을 자아낸 곳입니다. 태인천과 정읍천 가까이 이평이라 불리는 넓은 평야가 보입니다. 그 비옥한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못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없는 착취가 벌어집니다. 사람들의 분노와 한이 서린 이곳에 오늘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갑니다.
혁명의 지속과 확대를 모색하던 전봉준은, 손화중과 의기투합하여 무장에서 포고문을 공포한 후 북상하여 고부관아 재점령, 김개남 등 지도자들과 함께 백산에 총집결합니다. 당시 농민군 숫자가 8천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백산에서 농민군의 지휘체계와 조직 정비를 통해 황토현과 황룡촌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전라감영과 서울에서 파견된 관군을 격파한 후 파죽지세로 전주성까지 함락시켰습니다. 전주성 함락에 놀란 정부는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이에 일본도 조선에 출병을 합니다. 동학농민군은 외국 군대 철병을 위해, 폐정개혁27개조를 보고한다는 것과 해산할때 신변보장을 약속받고 전주화약을 체결, 전주성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조선을 대륙침략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일본은, 전쟁을 도발하여 조선반도에서 청일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터로 변한 조선의 치안과 행정 공백을 메꾸기 위해 동학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합니다. 집강소는 농민스스로 자치하는, 최초의 주체적인 농민통치 기구로서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폐정개혁을 실천에 옮겨갑니다.
정읍 곳곳에는, 동학농민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탑과 동상이 들어서있습니다. 정치권력은 입맛에 맞게 "동학농민혁명 혹은 운동, 난리"로 해석하였고 민중들의 힘과 승리를 자신의 치적으로 비유하곤 했습니다. 기념탑이나 동상에 그 시대의 특징, 모양, 글귀가 들어있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봉준과 농민군을 친일 작가 김경승이 만드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황토현을 비롯한 동학농민유적지는 전두환 정권에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집니다. 군부독재정권의 정당성을 "호국유적지" 정화 사업으로 유지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한많은 전라도에서 전두환의 이름은 수없이 지워지고 덧칠해지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동학농민기념관입니다.
일본군이 철수하지 않고, 경복궁을 무단점련하고 친일내각을 수립하자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을 내쫓고자 반일항쟁을 기치로 2차 봉기를 단행,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서울을 향해 진군해갑니다. 여러 전투를 벌이면서, 농민군의 숫자는 줄어들고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갑니다. 일본군과 마지막 전투. 우금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계속 돌진하는 농민군 내 목숨만큼 가치있는 것이 없을텐데... 근대적인 신무기에 맞서, 옛날 총들고 죽창들고 산으로 산으로... 결국엔 관군과 일본 연합군에 맞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나 패하게 됩니다.
이 무모한 전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왜그랬을까요? 농민군들이 목숨걸고 싸웠던 이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간절함이 아니었을까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노비로 천대받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처럼 천대받지 않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꿈. 그것이 20-30만명이 죽어간 이유일 것입니다. 억압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과 소망이 모여 분출될 것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신분제가 사라지면서 평등한 세상을 열었고 집강소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이 빛났습니다. 제폭구민(폭정을 제거하여 백성을 구함)과 보국안민(나라를 돕고 민중을 편안하게 함)으로 인간존중, 사람이 다시 하늘이 되는 세상을 앞당겼습니다.
자유 평등 자주 민권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3.1운동과 해방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4.19혁명 등으로 이어져 민주주의를 열매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광장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동학농민혁명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동학농민혁명에서 시작된 것을 다시한번 확인한 하루! 광장민주주의 시작은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답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7월 근현대사 아카데미는,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전국 봉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주제로 합니다.
많은 회원 분들께 처음 인사 드리려고 하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아, 부족하거나 넘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선은 떠오르는 대로 제 개인적인, 파릇파릇한 첫 마음을
보여드리고, 차차 활동해 나가면서 더할 부분은 더하고, 덜
부분은 덜어 가겠습니다.
제가 시민사회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약 1년 전부터입니다. 막연히 사회를 고민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졸업 전에 무얼 하면 좋을지 찾다가 한 NPO에서 인턴으로 잠시 있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면서 시민사회나 공익 분야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되었고, 관련된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서울KYC의 모집 공고를 보았습니다.
KYC라는 곳을 처음 알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만, ‘일단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서울KYC가 하는 활동들이 흥미롭기도
했고, 의미 있어 보였고 (백수 탈출도 하고 싶었고)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KYC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일을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7월 1일에 이곳에 와서 며칠 동안 교육을 들었습니다. 서울KYC의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앞으로 이곳에서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것들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민운동, KYC의 역사와 비전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서울KYC 소개를 비롯하여 도성길라잡이, 평화길라잡이, 청년 사업, 여러 가지 회원사업 등 이곳에서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현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또래인 청년 세대에 무한한 애정이 있고, 평화를
사랑하며 서울에서만 살아서인지 서울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관심이 있는 저로서는 저야말로 서울KYC 맞춤형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치기도 했습니다만, 교육을 듣고 나니 무엇보다 고민할 거리가
아주 많아지고, 그 고민들을 가지고 KYC에서의 시간을 제대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을 듣고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회원 분들이 참여하고 있는 길라잡이 활동입니다. 도대체 어떤 분들이길래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이런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도성이나 서대문형무소 등 활동 장소들도 어서 직접 가서 보고 싶어집니다.
KYC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KYC가 한국'청년'연합인 만큼, 청년들이 모여 사회를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많은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KYC라는 공간을 통해 생산적인 방향으로 모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상당히 추상적인 말이지만, 앞으로 청년 사업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으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청년 분야와 관련해 최근에는 최저임금과 관련한 논의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청년은 이 문제의 당사자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면서 청년 중 한사람인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KYC도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하자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어서 얼마 전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문화제에도 가볼 수 있었습니다. 청년이 사회를 바꾸어가는 움직임은 아마 청년 스스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KYC의 모든 것이 새롭고, 익히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앞으로 서울KYC에서 많은 회원 분들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게 될 사무국에서의 생활이 기대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사무국
인원의 평균 나이를 낮추는 역할만 하는 것 같지만 젊은 심장을 가지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튼튼한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겠습니다.
그래서 서울KYC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많은 분들의 후원이 의미 있는 움직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일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들이 이런 활동들을 해나가고, 후원하고 있는 것인지... 곧 다양한 장소에서 직접 인사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단풍이 진하게 물들었던 지난 가을에 시작한 도성길라잡이 8기 기본교육 도성길라잡이 8기 선생님들이 드디어 첫번째 관문인 기본교육을 모두 이수하여 지난 1월09일 발대식을 진행하였습니다.
2015년 11월02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15회의 실내강의와 4회의 현장답사로 기본교육이 진행되었습니다. 20명의 교육생이 기본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한명의 낙오자 없이 20명이 모두 기본교육과정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도성길라잡이 8기 발대식은 '기본교육'라는 작은 언덕을 넘고, 수습활동이라는 또하나의 새로운 언덕을 오르기 위한 숨고르기 시간입니다. 어떻게 숨고르기 시간을 가졌는지 한번 살펴 볼까요?
선생님 어서오세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리고 선물입니다. 새해인사와 한양도성이 멋지게 그려진 한양도성 달력선물로 선생님들을 맞이합니다. 한양도성 달력은 도성길라잡이에게 아낌없이 후원해주시는 서울시 한양도성도감과에서 해주셨어요..감사합니다.(--)(__)
도성길라잡이 7기로 활동하시는 이혜성 선생님의 사회로 발대식이 본격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히 3시에 시작하는 "새로운 경험"을 맛보았습니다. (훔..부끄럽지만, 매년 10분 15분 늦게 시작할때가 많았었거든요..ㅜ.ㅜ ) 첫번째는 환영인사부터~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소금때문인데, 내삶의 1%참여, 1%의 나눔, 1%의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는 서울KYC의 우미정 사무국장의 축사로 시작을 했습니다. (소개가..좀..부담스럽긴했네요.--') 그리고 이어진 2016년 도성길라잡이 대표이신 홍은영 선생님의 환영인사가 이어졌습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고 힘들지 모르지만, 함께 하는 많은 도성길라잡이들이 있으니, 그분들과 함께 오래도록 그리고 신나게 함께 하자는 아주아주 유익한 말씀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경과보고...눈물겨운 기본교육과정을 조인숙 활동가가 소개했습니다. 도성길라잡이 8기 교육기획부터 모집, 기본교육의 출결사항은 물론 도성길라잡이 8기의 자랑까지..
경과보고를 마치고 그 눈물겨웠던 영상도 함께 보았습니다. 오병이어 같은 간식이 줄을 이었고, 열정적인 교육생 못지않는, 열정적인 강사선생님들의 10시까지 이어진 강의와 선배 도성길라잡이들이 준비한 현장강의와 여러 메세제들... 성곽이라는 선을 이어 한양도성이라는 면을 만들어 입체적인 한양도성을 이야기하는 도성길라잡이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발대식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구간발표와 신분증 전달식입니다. 그럼 백악구간부터 시작해볼까요? 백악구간에는 총 5명의 선생님이 배정되었습니다. 저마다 백악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양도성 백악으로 이어진 인연의 끈은 질기고 강할것입니다.
사람, 삶 그리고 한양도성이 잘 어우러진 낙산구간 엄마의 품처럼 넉넉한 낙산구간에서 포근한 한양도성의 매력을 알아가는 그런 낙산구간의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입니다.
아프지만 꼭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를 도성길라잡이의 입으로 이야기 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어렵지않습니다. 함께 하는 든든한 도성길라잡이들이 떡하고 있으니, 언제든지 손내밀어 주세요.
뭐든 길은 인왕으로 통한다. 조용필은 늘 무대 마지막에 나오듯, 순성의 마지막은 인왕이 책임진다는 책임감 강한 인왕구간 선생님들.. 무슨말이 필요할까요? 일단 인왕구간은 사람부터 넉넉합니다. 사람향기 찐한 인왕구간...무려 6명의 도성길라잡이 8기 선생님들이 함께 하니 더욱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인왕산처럼요..
이렇게 열심히 하겠다는 8기 선생님들과 함께 손잡은 선배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의 덕담들 ~
이제 새로운 출발선, 수습활동에 대한 자세한 소개의 시간입니다. 아..역시 8기 선생님들은 무척 진지하십니다. 형광펜 손에 들고 수습활동 하나하나에 체크하시는 저 진지함. 수료식이 있는 7월30일 우리 20명의 8기 선생님들 그자리에 꼭 함께 해요~~
다함께 한목소리로 '우리의 다짐'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새로운 시작을 생각해봅니다. 물론 기존 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은 그때 그시절의 첫마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이겠지요.
구간별로 모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 책상을 정리하는 동안 도성길라잡이 8기 기장을 뽑았습니다. 기장은 동기들과 함께 수습활동을 건강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함께 독려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입니다. 늘 큰복을 나누어 주고 계시는 이한복 선생님을 만장일치로 선출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8기 선생님들과 함께 신나고 건강한 수습활동 만들어요~
기존도성길라잡이 선생님들이 열심히 손은 내밀었는데, 어떻게 잡아줄지..궁금하시죠? 먼저 각 구간별로 2016년 운영진 선생님들 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갖는 구간별 인사나눔과 수습활동상세설명의 시간..시기별 수습활동부터 앞으로 구간별 상세한 계획까지.. 그 어느 시간보다 진지...(8기 선생님들은 진지함이 뼈속까지 있으신가봐요..뭘 해도 진지하심..)
구간별 모임까지 마치고, 마지막은 단체사진으로~ 역시 시원한 웃음, 새해부터 이렇게 웃을 일이 생겼으니, 1년 내내 웃는 일들만 가득하였으면 합니다.
어떤분께서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한다는 도성길라잡이 자원활동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민에서 자원활동가로의 변신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참여하고 나누다보면 그안에서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그런 도성길라잡이 활동입니다. 2016년 도성길라잡이 8기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도성길라잡이의 모습 무척 기대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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