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청년’은 빈번히 주체로 호명되지만 또 손쉽게 객체로 대상화되곤 합니다. 그래서 청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최근에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너무 실속 없이 남발되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이달 참여사회 <특집>은 ‘청년과 세계’입니다. 청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구절 몇 개 소개하는 것으로 기획에 대한 설명을 대신할까 합니다.
“청년들이 금 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생존의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_ 루쉰 잡문집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이욱연 편역, 예문 2003), ‘청년과 지도자’ 중에서
“냉소하는 사람들은 개혁을 반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를 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중략)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하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소리를 내며, 열이 있으면 있는 만큼 빛을 내야 한다. 설령 그 빛이 반딧불만하다 할지라도 어둠 속에서 다소라도 빛을 뿌릴 수 있을 것이기에, 횃불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앞으로도 끝내 횃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유일한 빛이 될 것이다. 만일 횃불이 나타나고 태양이 솟아오르면 우리들은 물론 기꺼이 사라질 것이다.”
_ 루쉰, 같은 책 ‘얕은 못의 물이라도 바다를 본받을 수 있다’ 중에서
참여사회가 배달될 즈음에는 청년 참여연대가 이미 발족(10월 3일)한 후일 겁니다. 저도 참여연대 사무처를 대표해서 준비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청년 참여연대의 발족이 시의적절했는지, 너무 늦었는지, 아니면 너무 일렀는지는 훗날 검증되겠지요. 지난 수개월간 청년 참여연대 창립을 위해 밤을 낮 삼아 함께 준비해온 참여연대 청년 회원들 모두에게 이 지면을 통해 따뜻한 연대의 인사를 표합니다.
이 달 <통인>은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고 있는 서촌의 세입자들을 찾아 갑니다. 장민수 서촌주거공간연구회 공동 대표, 신창희 서촌 플라워카페 운영자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 달 <만남>은 깃카와 준코 회원, 일본의 비영리단체 ‘희망의 씨앗’(구 일본 희망제작소) 부이사장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간 30년간의 민간교류의 여정 속에서 그의 가슴 속에 남게 된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봅니다.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이태호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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