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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 시리아의 비극, 끝나지 않은 이야기(10/12 월,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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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당] 시리아의 비극, 끝나지 않은 이야기(10/12 월, 참여연대 지하 느티나무홀)

익명 (미확인) | 수, 2015/09/30- 14:40

 

[2015 지구촌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이야기 마당 - 2]

시리아의 비극,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발생한지 어느덧 4년이 되었습니다.
내전이 장기화되고 유엔난민기구, 유니세프 등 국제기금이 고갈됨에 따라 
난민 캠프의 지원이 끊겨 난민들이 대거 유럽으로 유립되고 있습니다.

 

최근 터키 해안가에서 발생한 꼬마 난민의 비극으로 
시리아 내전과 난민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시리아 난민을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중동난민을 전면 차단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유럽의 난민위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요?
시리아 내전의 돌파구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시리아 난민문제와 무관할까요? 

 

시리아 내전의 배경과 현황을 이해하고, 유럽의 난민 대란을 통해 어떻게 시리아 문제를 바라 볼것인지
난민캠프 이야기와 우리와 함께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및 장소 : 2015년 10월 12일(월) 오후 7시 - 9시 30분/ 참여연대 B1 느티나무홀
○ 사회 :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 실행위원) 
○ 이야기 패널: 유럽의 난민위기, 어떻게 볼 것인가 / 송영훈(강원대 교수) 
                    시리아 내전의 비극과 돌파구 / 김재명(국제분쟁 전문가, 성공회대 겸임교수)
                    시리아 난민의 못다한 이야기 / 압둘와합(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우리안의 시리아, 국내 난민의 현황과 그 해결방법 / 김종철(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 참가비: 5,000원 
○ 신청방법: 신청하기 >> http://goo.gl/forms/waZpRkdcCO
○ 문의: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02-723-5051,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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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8 아시아생각] ① UN조차 집계 포기한 21세기 참극 시리아 전쟁 7년 

 

7년 전인 2011년 3월15일은 '아랍의 봄’ 을 맞아 시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날이다. 시리아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으로 기록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국가가 됐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참극을 끝장내지 못하고,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는 더 늘어났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회에 걸쳐 시리아 전쟁의 실상과 문제점을 다룬다. 편집자 주

 

 

'정의의 무력감' 안긴 시리아 전쟁 어떻게 끝장낼까

[아시아생각] 시리아 전쟁발발 연속기고 ②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구시가지 ⓒ유네세프한국위원회

 

3월 15일로 7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전쟁의 문제는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내전이라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어느 한 쪽이 힘이 빠지면 짧은 기간 안에 그치기 마련이다. 시리아 전쟁에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지닌 여러 외부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7년이나 시리아의 참극이 이어져 온 데엔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린 외부 세력들의 개입 탓이 크다. 결국은 비판의 화살은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시리아에 개입한 강대국과 주변국들로 향한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은 2016년 유엔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안토니오 구테헤스의 후임자이다. 그는 UNHCR에서 3월 9일에 낸 문건 <시리아 분쟁 7년> 앞머리에서 시리아 시민들이 그동안 겪은 고난을 가리켜 국제사회의 '부끄러운 실패(shameful failure)'탓이라고 못 박았다.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가 굳건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엄청난 비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그란디 고등판무관이 지적했듯이, 군사적 수단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면 패자와 희생자만 있을 뿐 승자는 없다. 어느 쪽에선가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일 뿐이다. 누가 이기든 희생자는 분명하다. 분쟁에 휘말려 생목숨을 잃은 시민들, 그리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채로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시민들이다.  

 

시리아 내전? 전쟁? 분쟁? 

 

여기서 짧게 용어 선택의 문제를 짚어보자. 흔히 시리아에서 지난 7년 동안 벌어져 온 유혈 충돌을 '시리아 내전'이라 부른다. 내전은 한 국가 안에서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무장세력들이 벌이는 유혈사태를 뜻한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의 군대와 그에 맞선 반군 사이의 전쟁은 내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시리아에서 무장활동을 벌이는 세력은 정부군과 반군뿐 아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헤즈볼라 민병대), 터키 등 중동지역에 이해관계를 지닌 세력들이 저마다 군사작전을 펴는 중이다. 따라서 '시리아 내전'이란 용어보다는 '시리아 분쟁' 또는 '시리아 전쟁'이란 용어가 더 정확해 보인다. 

 

전쟁을 오래 끈 4가지 이유 

 

시리아 전쟁이 7년을 넘도록 이어진 까닭은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로, 아사드 독재정권의 물리적 바탕인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군사적 균형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군사력의 강약으로 결판이 난다. 그런데 시리아에선 여러 해에 걸쳐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이 팽팽히 맞서왔다. 탱크나 전투기 등 고급 군사 장비 면에선 정부군이 압도적이지만, 국제 여론을 등에 업고 민주화를 피로써 이루겠다는 전투 의지의 측면에선 반군이 우세했다. 

 

시리아 인구 1800만 명(2017년 추정) 가운데 △수니파 무슬림은 74%로 시리아 사람 4명 가운데 3명은 수니 무슬림이다. 나머지는 △시아파 무슬림 13%(시리아 독재자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기독교 10%, △드루즈 3% 등이다. 시아파의 한 분파로 독재자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 사람들은 세속적인 성향을 보이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 시아파나 수니파 모두 시리아 전쟁이 종파 간의 전쟁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리아 정부는 정부대로 반란을 진압하고 테러 위협으로부터 사회질서와 안정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며, 반란군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 싸울 뿐이라 주장한다. 독재자 아사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테러분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겠다고 강조한다. 시리아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결코 그의 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아사드 체제를 지지하는 시리아 시민들 가운데는 수니파도 소수지만 섞여 있다. 이들은 체제 안정이 민주화보다는 우선하는 가치라 여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약 4년 동안은 그런대로 힘의 균형 상태에 있었다. 반군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힘을 하나로 모아 다마스쿠스로 진격하지 못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민중의 강력한 저항으로 사기가 떨어져 반군을 압도할 수가 없었다. 정부군 가운데에서도 아사드 독재에 환멸을 느낀 병사와 장교들이 탈영해 반군에 가담하는 일들도 잦았다. 아사드 정권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화학무기를 사용해온 데엔 체제 붕괴의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리아 전쟁 초기에 서구의 여러 중동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아사드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 예측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드 정권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너졌던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는 달랐다. 군 주요 지휘관들은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출신들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아사드는 집권 바트당과 함께 자본가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몇몇 족벌에게 특혜를 주어왔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양극화가 생겨났지만, 그 수혜자인 대기업가들과 고위 종교인사들로 구성된 기득권층은 아사드 체제에 충성을 바쳐왔다.  

 

이런 내부 결속과 러시아 등 외세의 지원을 바탕으로 아사드는 2016년 말 시리아 제2도시이자, 북부지역의 산업·금융 중심지인 알레포를 반군으로부터 되찾았고, 그 뒤로도 정부군의 우세가 뚜렷이 보인다. 2018년 봄 다마스쿠스 동쪽 교외지역인 동구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즈음 아사드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곧 시리아의 안정과 평화를 이룰 것이다"라며 큰소릴 치고 있다.  

 

미국의 IS 공격, 아사드에게 반사이익 

 

둘째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아울러 독재자 아사드의 군대가 수세 국면에서 공세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데엔) 강대국들의 이해 타산적인 개입 정책 탓도 크다. 여기서 강대국이란 미국과 러시아를 가리킨다.  

 

아사드 체제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슬람국가(IS) 세력이다. 2014년 6월 시리아북부 락까를 수도로 한 '이슬람국가(IS)'를 선포하면서 기세를 올리자, 수도 다마스쿠스도 위협받은 상황이 됐다. 바로 여기서 미국이 무력 개입하고 나섰다. 2014년 9월부터 공습이 이루어졌고, 해병대를 주축으로 20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투입했다. 쿠르드 민병대와 손을 잡은 미군이 공격 목표로 겨냥한 것은 시리아 독재정권의 군대가 아니라 IS였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미국이 IS를 공격한다면 누구에게 이로울까. 먼저 이스라엘이다. 미국의 중동정책 핵심은 첫째는 중동석유의 안정적 확보, 둘째는 이스라엘 안보로 요약된다. 중동석유를 위해서라면 사우디 독재정권과도 친구가 되며,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서라면 중동지역의 반미정서가 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왔다. 허약한 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강성 이슬람 극단세력인 I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다면, 이스라엘에겐 안보 위협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스라엘로선 약한 독재자가 강한 극단세력보다 만만하다. 

 

미국이 IS 공격으로 이스라엘 안보를 챙겨주는 상황에서 반사 이익을 얻는 쪽은 아사드 독재체제이다. 아사드는 2014년 9월부터 벌어진 미군의 공습이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IS는 여러 시리아 반군조직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하고 전투적인 투쟁성을 지녔기에 시리아 정부군조차 두려움을 품었다고 알려진다.  

 

아사드에게 고마운 친구는 또 있다. 미군의 시리아 공습 꼭 1년 뒤인 2015년 9월엔 러시아군이 IS공습으로 시리아에 군사 개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오로지 IS를 공습하는 미군과는 달리 짬짬이 반군의 근거지들을 공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시리아-러시아의 우호 관계는 옛소련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군의 무기체계는 미그 전투기와 미사일을 비롯해 옛소련제로 채워져 왔다. 지금 러시아가 옛소련 이외의 지역에 유일하게 해군기지를 두고 있는 곳이 지중해변의 시리아 타르쿠스 항구라는 점은 두 나라의 밀접도를 잘 보여준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투기 등을 수입하고, 러시아는 시리아의 인프라 확장공사, 천연가스처리공장 등에 연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서로의 이해관계를 이어왔다.  

 

지역 패권 노린 사우디-이란의 대리전 

 

셋째,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저마다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개입한 것도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한 요인이다. 중동 지역 패권을 노린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proxy war) 양상은 전쟁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아사드 독재정권엔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헌법상 대통령보다 높은 최고 지도자인 이란은 같은 시아파의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가 권력자로 있는 시리아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왔다. 9.11 테러 뒤 이란 동쪽 아프가니스탄, 이란 서쪽 이라크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이란은 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인 '초승달 벨트'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을 덜어내려 한다. 

 

하지만 많은 이란 사람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음을 느끼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독재 팔레비 왕조를 몰아냈다는 정치적 자긍심을 지닌 이란 시민들의 시각에선 시리아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정부의 대외정책에 박수를 치기 어렵다. 결국 이란-시리아 동맹관계는 시아-수니를 가르는 종교적 신념보다 지정학적 국가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정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넷째, 끝으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국제사회의 무능한 대응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릴 때 내세웠던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이하 R2P) 논리는 시리아엔 적용되지 않았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달라 시리아 평화를 위한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일시적 휴전을 이뤄내고 그 틈에 긴급 구호활동을 펴는 것이 고작이다. 화학무기로 시리아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UN 안보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 문서들은 시리아에서 휴지처럼 구겨졌다.  

 

정치적 해법으로 전쟁 끝내야 

 

기득권 체제의 충성과 외세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아사드 체제는 초반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2016년 무렵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의 균형은 깨졌고, 미국과 사우디 등 지원세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력이 없는 반군은 이제는 수세 국면이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리아 전쟁은 자칫 정부군의 승리로 끝날 조짐마저 보인다. 

 

'극적인 반전'이란 군사적 해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이다. 늦었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제라도 정치적 해법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장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대로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적 해법으로 전쟁을 끝내도록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리아에 개입한 주요국들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탓에, 아사드에게 퇴로를 열어주거나 퇴진을 압박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한계로 꼽힌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미국의 이른바 중동 전문가들이 포진한 여러 싱크 탱크, 또는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와 같은 외교전문가 집단에서 시리아 해법에 관련된 글들을 거듭 검색해봤다. 하지만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스라엘 안보 챙겨주기에 무게중심이 있는 까닭일까, 눈에 띄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은 글을 찾아보질 못했다.  

 

큰 틀에서 바람직한 정치적 해법은 독재자 아사드 일족이 물러나고 다마스쿠스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쪽이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년 집권)처럼 면죄부를 받고 퇴진하는 수순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러시아로 망명해 푸틴의 보호를 받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아사드로선 그럴 뜻이 없다고 알려진다. 지금껏 아사드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측근들도 아사드의 퇴진을 반대할 것이다. 군부 쿠데타나 암살 등 극적인 사건이 터진다면? 전쟁의 긴 터널 끝이 보이겠지만, 그 가능성은 말하기 어렵다. 

 

끝으로 전쟁범죄. 국제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전쟁범죄를 덮어주긴 어렵다. 아사드와 그의 일족이 퇴진을 거부하는 데엔 전쟁범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아사드 체제가 저지른 전쟁범죄 목록은 길다. 전쟁범죄는 공소시효나 국적에 관계없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사법권' 논리가 국제법계에서 힘을 얻는 마당에, 아사드를 전쟁범죄자로 붙잡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좀 더 시일이 지나야 될 일처럼 보인다.  

 

 

결론적으로 전쟁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아랍의 봄'을 시리아에서 되살리려면, 결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아사드 독재정권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면서 평화 중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 아사드의 퇴진과 전쟁범죄 처리는 그 뒤 수순이다. 인권과 민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계 시민들은 지난 7년 동안 시리아의 재앙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픔 속에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시리아에 7년째 이어지는 '아랍의 겨울'은 끝내려면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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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3/1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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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을 겨냥한 미얀마군의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미얀마군이 라킨 주 멍다우의 인딘 마을에서 보안군과 마을 주민 일부가 로힝야 포로 10명을 즉결 처형하고 인근의 집단 매장지에 매립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제임스 고메즈(James Gomez) 국제앰네스티 동남아시아-태평양 사무소장은다음과 같이 밝혔다.

“미얀마군이 이처럼 끔찍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범법 행위를 덮어놓고 부인하던 지금까지의 정책에 비해 급변한 태도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인종청소 작전 중 얼마나 많은 잔혹행위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할 근거를 제공했다. 이 작전으로 인해 지금까지 655,000명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이 라킨 주에서 강제로 이주해야 했다.”

미얀마군이 이처럼 끔찍한 사실을 인정한 것은 범법 행위를 덮어놓고 부인하던 지금까지의 정책에 비해 급변한 태도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인종청소 작전 중 얼마나 많은 잔혹행위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에 착수해야 할 근거를 제공했다. 이 작전으로 인해 지금까지 655,000명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이 라킨 주에서 강제로 이주해야 했다.”

제임스 고메즈(James Gomez) 국제앰네스티 동남아시아-태평양 사무소장

“당시 병사들은 자신들이 다른 곳에서 증원 병력으로 왔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는 몰랐다며 비사법적 처형을 정당화하려 했다. 매우 충격적이다. 이 정도로 인명을 경시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미얀마군이 인딘 마을뿐만 아니라 라킨 주 북부 전역에서 로힝야 사람들을 살해 및 강간하고,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기록해왔다. 이러한 행위들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며, 관련 책임자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유엔 진상조사단과 다른 독립적인 감시단이 미얀마 전역, 특히 라킨 주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을 때까지, 로힝야 등의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가해진 폭력과 범죄의 전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배경정보

미얀마군은 이전에도 라킨 주 북부의 로힝야에게 가해진 반인도적 범죄와 관련해, 자신들의 역할을 지우려 시도한 적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의 조사 결과, 2017년 8월 말부터 미얀마 보안군이 로힝야를 대상으로 폭력 작전을 감행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보안군은 남녀와 어린이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로힝야 여성과 소녀들에게 강간 및 성폭력을 가했으며, 지뢰를 매설하고, 로힝야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르는 등의 폭력을 자행했다. 이러한 행위는 오랫동안 유지된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책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다. 국제앰네스티가 인딘 마을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로힝야 거주지는 모두 잿더미가 된 반면 근처에 로힝야가 거주하지 않는 지역은 훼손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앰네스티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 <나의 세상은 끝났다(My World Is Finished)>에는 인딘 출신 로힝야 주민 7명의 증언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8월 말 군과 자경단이 며칠에 걸쳐 마을을 습격했고, 집을 불태우고 도망치는 주민들을 사살했으며, 명백히 로힝야 사람들만을 조준해 사격했다고 증언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인딘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행위의 정확한 규모는 확인할 수 없었다.

온라인액션
‘인종학살’ 당하고 있는 로힝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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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1/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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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이 드러낸 우리의 민낯

예멘 난민,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안과 과제를 노출시키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

 

제주도에 단기간에 입국한 500여 예멘 난민들이 한국사회에 이례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직적 동원 여부를 다 알 수는 없지만 50만 명을 순식간에 돌파한 소위 불법난민 추방, 난민법 폐지 취지의 청와대 청원, 각종 관심 분야별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타오르는 댓글들, 가짜(Fake) 뉴스의 범람과 흔치 않은 언론사들의 자발적인 팩트체크부터 뜨거운 취재열기가 놀랍다. 한국에서 난민제도가 실시된 이래 이런 열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난민들에 대한 열기는 난민들을 배제하는 위험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축출된 공간으로서 약자를 조롱하고 경멸하는 일베 즉 일간베스트 사이트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거나, 여성들을 성적으로 조롱, 혐오하는 게시물들은 공론장에 들어올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베에서 난민을 조롱, 혐오하는 게시물들과 유사한 내용의 글들은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난민들이 위기의 국면에서 가장 먼저 밀려날, 한국사회의 동심원 맨 바깥에 있는 구성원임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왜 난민들만 그렇게 취급되어도 될 존재들인가? 왜 우리는 난민들에게 가혹한가?

 

난민? 난민의 존재는 사실 새롭지 않다. 일본과 더불어 아시아권에서 난민신청을 접수, 심사하여 난민으로 보호할지 여부를 정부가 결정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인 한국은 이미 1994년부터 난민협약에 근거하여 출입국관리법 일부 조항을 활용한 난민인정심사를, 그리고 2013년부터 난민협약의 수용법률인 난민법에 따른 난민심사를 해왔다. 1994년부터 2017년까지 23년간 난민신청을 하여 한국정부에게 보호를 구한 신청자들만 해도 3만2733명에 달한다. 매우 그 수가 적지만 그간 약 2000여 명의 난민에게 난민 또는 인도적 체류자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이미 받아 들여왔다. 무슬림? 이미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이슬람 배경의 이주자들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심지어 제주에 살던 인도네시아 선원들도 10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결코 갑자기 아무 내부 갈등 없고 단일하고 순결한 한국사회에 예멘 난민들이 이질적인 요소로 불쑥 들어온 것이 아니다. 격렬한 한국사회의 반응에 일부 외신들은 해외에서는 결코 이슈가 될 수 없는 500명에 불과한 예멘 난민들의 도착이 한국의 깊은 외국인혐오(Xenophobia), 혹은 인종주의(Racism)를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국내에서는 우리 사회의 배타주의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고, 소수자성, 권력, 페미니즘과 연계된 논의까지 다양한 분석도 등장한다. 맨 바깥에 위치한 난민들의 자리에 관해 모두 타당한 지점이 있는 분석들이다.

 

노출된 우리의 불안과 생성된 과제

 

개인의 정체성과 차별성이 삭제된 채, 오직 집단으로만 호명된 존재들은 언제나 소수자들이었다. 또 그와 같은 호명은 집단적 정체성만을 근거로 소속된 개인들을 혐오하는 실제 행동으로 진전된다. 제주도에 피신 온 모두를 ‘난민’이란 단어로만 묶어 평가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혐오와 차별의 전제가 되기에, 인종주의적 틀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하지만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는 혐오세력을 제외한, 예멘 난민으로부터 촉발되어, 난민, 혹은 외국인 일반을 향해 불안을 표출하는 일반 시민들을 단순히 외국인혐오주의자, 인종주의자고만 부르는 것은 부분적인 분석이다. 나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인식의 장에서 불현듯 솟아오른 타자인 예멘 난민들의 존재성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불안을 노출시켰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취약한 토대에 대한 불안이 갑자기 난민으로 인해 상기되었던 것이다.

 

어떤 불안인가? 한국현대사의 긴 질곡의 통과는 물론, 촛불혁명을 통한 정권교체까지, 우리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도약을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 불안하다. 여성들의 미투(Metoo) 운동도, 각종 갑질에 대한 폭로와 분노, 처벌도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생명력을 가졌지만, 아직 목표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세월호의 비극 이후 한국사회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아직 안전하지 않은 곳이며, 안전은 정부도, 사회도 아닌 내가 지켜야 하는 무엇임을 시민들은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그런데 솟아오른 난민들은 그 지점을 파고드는 것처럼 오해된다. 잠재적 ‘테러’, ‘범죄’에 대한 불안 혹은 생뚱맞게 ‘이질적 문화수용의 한계’가 한국사회에 줄 불안이란 방식으로 등장한다. 설령 이민자 혹은 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가치관은 우파의 오래된 아이템이긴 하지만 사실 그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국내는 물론, 한국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숫자의 난민들을 오랫동안 수용하고 보호해온 해외의 사례를 통계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비교해도 아무 근거가 없다. 일종의 신앙에 가까운 편견이지만, 이런 편견은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안전에 대한 불안에 터 잡아 강한 강도로 반복된다.

 

또 있다. 한국사회는 우리들의 평화, 복지, 의료, 교육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 점에 대한 신뢰가 없는 시민들은 각자도생해야하는, 멈추지 않는 경쟁에서 고강도의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오롯이 모든 짐을 짊어진다. 스스로를 반복해서 착취해야하는 삶이 버겁고 고되다. 한국 사회의 신뢰할 만한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난민들은 우리들이 힘겹게 짊어져야만 할 내 삶을 위한 노력에, 아무 기여 없이 무임승차할 존재들로 표상된다. 실제로 이 곳을 찾은 난민들이 국제사회의 최저수준에 달하는 낮은 난민 인정율, 심사기간동안 알아서 버티라며 난민신청자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가혹한 시스템을 맨몸으로 마주하며 연대가 필요한 대상이고, 난민은 결코 짐이 아니며, 실제로도 난민관련 총예산도 연간 20억 원 즉, 강남 아파트 값 한 채 정도에 불과한 소액이어 세금 운운할 것도 없음에도 그렇다. 우리의 평화와 복지에 관한 자존적 불안에 터 잡아 난민은 한국에 노력 없이 무임승차한 괘씸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렇다. 불안의 근원은 정작 한국 사회 안에 있다. 

 

난민들은 한국사회에서 그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개인과 가족에게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나, 취약한 법적·사회적 지위 때문에 직접 자신을 드러내면서 공론장에 나올 수도 없었다. 제3자에 의해 부정확하게 대표되거나 재현되어 왔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민이 문제’인 것처럼 비춰진 지금의 사태를 숙고할 때엔, 결코 문제의 근원이 결코 난민들, 혹은 이를 둘러싼 제도가 전혀 아님을 분명히 기억해야해야 한다. 정말 500명의 난민이 한국사회를 흔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인가? 과연 그들로 인해 한국사회가 불안한가? 결코 아니다. 난민이 문제가 아니라 난민 앞에 토대의 취약성이 노출된 ‘우리가 문제’다. 현존하는 불안은 더 평화롭고, 더 안전하며, 더 다양성을 포용하고, 함께 공존하는 한국사회의 미완의 과제해결을 위한 연대와 운동의 에너지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모든 분야에서 난민에 대해 이야기하는 지금, 즉 난민들이 공론장에 출현한 지금은 어쩌면 새로운 기회다. 가혹한 한국 난민 제도의 개선을 꿈꿔볼 기회 정도가 아니라, 난민에 대한 텍스트가 사회적으로 두껍게 축적될, 더 나아가 노출된 한국사회의 문제를 새롭게 다시 직시하고 해결할 기회.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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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7/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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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송영훈 l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2015년 가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에 대한 무관심에 경종을 울렸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통해 유러피언 드림을 이루고자 보트에 몸을 싣는 난민들과 말라카 해협을 지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미얀마 로힝야족에 대한 소식들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경을 열지는 못했었다. 아일란의 죽음 이후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그도 잠시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시 국경통제를 강화하였다. 국제사회가 난민들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난민들의 드림은 쉽게 실현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급증하는 난민, 장기화되는 난민위기

 

국제사회의 난민위기를 설명할 때 우리는 흔히 난민(refugees)과 국내피난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기타 다른 형태의 피난민들을 구분하지 않고 분쟁과 박해, 폭력과 인권유린 등으로 인해 고향과 고국을 떠난 사람들을 모두 난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구분하면 이들은 각각 다른 범주의 강제이주민(forced migrants)이며 그에 따라 그들에 대한 국제적 지원도 달라진다. 우선 난민은 제네바협약의 규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며, 이들은 국제난민협약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과 보호를 받는다. 국내피난민은 고향을 떠났지만 국내의 다른 곳에서 대안적 피난을 구하는 사람인데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본국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으나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국제법과 피난국의 법규에 따라 난민인정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비호신청자(asylum seekers)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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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HCR, Global Trends 2014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 강제이주민의 수는 2014년 말 기준 5,95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난민은 1,950만 명이며 이들 중 510만 명은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또한 3,820만 명은 국내피난민이며 180만 명이 비호신청자이다. 이러한 규모를 개별 국가의 인구 규모와 비교하면 세계 24위에 해당한다. 2014년 한 해에만 1,390만 명의 강제이주민이 새롭게 발생했으며, 분쟁과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국내 혹은 국외에서 피난을 구하는 강제이주민들이 매일 42,500명에 이르며 이는 4년 전에 비하면 거의 4배에 해당하는 통계이다. 유엔난민기구 안토니오 구테레스 대표가 강조하듯이 난민발생의 규모나 그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부담이 전례 없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난민을 가장 많이 발생시킨 나라는 시리아(390만 명), 아프가니스탄(260만 명), 소말리아(111만 명)이다. 이들 세 나라 출신 난민의 수는 전 세계 난민의 53%에 해당하며 수단과 남수단 출신의 강제이주민까지 합하면 62%에 이른다.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라크, 에리트리아 등도 난민 발생국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모두 내전과 정부의 조직적 폭력 및 박해 등이 수년 동안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분쟁과 박해가 장기화됨으로써 난민을 포함한 강제이주민들이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난민들의 인도적 위기는 장기화되고 심각해지고 있다.

 

1980년 이후 난민 발생국 상위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국가들은 모두 50개이다. 이 중 앙골라,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소말리아 등을 포함한 12개 국가는 지난 35년 동안 최소 20회 이상 순위에 기록되었다. 최근까지 아프가니스탄이 항상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킨 국가로 기록되었지만, 2012년부터 3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대신 시리아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과 분쟁이 이들 국가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난민이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종전이 되고 국내불안정이 완화되어도 안전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난민들이 본국으로 귀환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나라는 터키(160만 명), 파키스탄(150만 명), 레바논(115만 명), 이란(98만 명) 순으로 대부분 시리아 난민의 유입의 영향이 컸다.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요르단(65만 명)도 6위를 기록하였다. 상위 세 나라는 전체 난민의 30%를, 상위 10개 국가는 모두 전체 난민의 57%를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두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시리아 난민의 95%가 이들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냉전 이후 난민들의 국제적 이동이 상당히 제한되고 있으며 고국과 인접하고 있는 국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의 대부분은 난민캠프에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면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국들이 난민의 수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난민을 일부 수용하면서 인도적 원칙을 준수하는 것처럼 주장하곤 한다. 그런데 전 세계 난민들의 86%는 개발도상국가에 머무르고 있으며, 저개발국가들은 전체 난민의 약 25%를 수용하고 있다. 구매력평가 기준 일인당 국내 총생산(GDP PPP per capita) 1달러 당 난민 수용 부담을 고려하면 상위 30개 국가 모두 개발도상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대비 난민 수용 부담을 고려하면 레바논과 요르단이 압도적으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어 시리아 위기로 인해 난민 수용 부담이 가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난민 수용 부담이 증대되고 있다고 해서 선진국들이 난민 수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은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난민들을 자국으로 재정착시켰으며, 난민 발생국가의 전쟁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냉전 종식 후 난민의 정치적 가치가 감소하고,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난민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들은 다른 지역의 난민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정착시키기보다는 발생국 주변에 난민캠프를 설치하고 그 곳에 머무르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더욱이 유럽의 난민위기를 우선적으로 다루면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재정지원도 축소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2000년대 이후 계속 심화되고 있다.

 

난민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25,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한 곳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는 장기화된 난민 상황(protracted refugee situations)이 확산되고 있다. 본국의 불안정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감소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난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케냐의 다다브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소말리아 난민들은 스스로 캠프 안과 밖에서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캠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소말리아에 가 본 적도 없고 소말리아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다. 그들은 케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케냐 정부는 소말리아 내전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난민들이 케냐 내에서 발생하는 테러를 감행하는 알샤바브 단체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20년 이상씩 국경을 떠나 캠프에서 생활을 한 이들이 본국에서 경쟁력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따라서 난민위기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근본적인 난민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된다.

 

난민위기: 안보와 주권, 그리고 정치의 문제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난민의 발생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활동의 역사도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난민위기는 해결되기 어려운가?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제네바협약 체결과 1967년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 채택 이후에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법적 제도의 보완은 꾸준히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은 계속하여 증가하고, 국내피난민의 수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는 난민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지만 국제사회의 체계적 지원과 보호활동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난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지나치게 법적,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시각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난민과 관련된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난민’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를 겸해야 한다. 즉 난민들을 법적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기보다 그들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난민과 난민위기가 개념적으로 가지는 정치적 속성은 난민지위 부여과정에서의 개인중심, 난민의 발생과 수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제규범과 주권과의 갈등, 난민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위기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속성으로 인해 난민문제의 인도적 위기를 정치적으로 안보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반복하여 나타난다.

 

첫째, 난민지위는 개인을 대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 원하지 않는 ‘개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난민지위의 인정은 집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이뤄지는 것이다. 즉 시리아 국민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가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국적’(nationality)이라는 해석 때문에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리아 국적을 가진 사람은 자동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야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난민 정의의 원인에 포함된 국적은 오히려 민족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리아인들이 국가들 떠났어도 그들이 경제적 이주를 선택한 것인지, 박해를 피해서 떠나 온 것인지 수용국 정부가 따지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어렵지만 난민지위가 개인별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국가에서는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둘째, 난민지위의 인정은 수용국가 정부와 발생국가 정부의 주권 및 정통성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난민문제는 국가 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정부는 자국 시민에 대한 일차적 보호책임이 있다. 따라서 난민지위의 인정은 발생국 정부가 시민보호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두 나라 간 외교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시리아 내전사태와 같이 국제적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 주변 국가들이 시리아와의 외교적 고려에 앞서 난민을 잠정적으로 수용한다. 그런데 중국은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중국 내 미얀마 난민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지만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미얀마 난민들의 일시적 체류를 허가한다. 또한 난민지위의 인정은 국제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의 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절차에 의해 난민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결정은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사항이 되는 것이다. 9월 22-23일 유엔난민 특별회의에서도 글로벌 쿼터제와 시리아 내 안전지대 설치 등 난상토론은 있어도 유엔과 국제사회가 유럽국가에게 난민수용을 강제하지 못한다.

 

셋째, 난민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결정은 국가마다 안보의 문제를 고려하기 때문에 달리 나타난다. 각국 정부는 대규모 난민의 유입을 국가안보의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현재 유럽 국가들도 중동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 행렬 속에 이슬람국가(IS) 대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을 우려한다. 또한 대규모 난민의 유입은 정주민들과의 제한된 자원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을 유발하기도 하며, 정부 재정의 급속한 악화로 이어져 국내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확산될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규모의 난민의 유입에 대해서 국가들은 포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나 하루에 15,000명이 넘는 난민이 계속 유입된다면 아무리 포용적인 독일 메르켈 정부라고 하더라도 국경에서 IS 대원의 적발을 위한 수사를 하는 등 난민문제를 안보 관점에서 다루게 된다.

 

난민의 문제가 안보와 주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난민문제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누구나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도덕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의 문제는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해결해야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난민의 이동이 안보와 주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특징이 국제정치 현실에서 지니는 함의는 인도적 위기의 해결은 정치적 의지가 수반되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9월 초 유럽연합 내에서의 ‘망명쇼핑’을 방지하기 위해 최초 입국 국가에서 난민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의 유예까지 선언하면서 시리안 난민 수용에 나섰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독일정부는 난민에 대한 현금지원 삭감, 난민신청 결격자 신속 귀국 조치 등 난민규제 강화를 추지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난민위기의 속성을 반영한다. 정부의 인도적 원칙과 그에 따른 정책도 국내 정치적 반발이 거세진다면 국익과 안보의 차원에서 난민정책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 없이 인도적 위기의 해결도 없다!

 

난민의 대모라는 칭호와 더불어 탈냉전 후 난민보호활동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 전 유엔난민기구 대표 사다코 오가타는 “난민은 죄인이 아니다. 난민을 만든 정치와 국가,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소용돌이의 국제정치 속에서 방탄조끼만 입고 내전과 분쟁의 현장을 찾아 난민 구호에 앞장섰다. 그런 그녀가 10년의 재임기간의 교훈으로 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활동은 인도적 규범과 동인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난민위기의 본질적 해결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 없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강조하였다.

 

난민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필요하다. 첫째는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과 이들의 재정착에 대해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시리아 난민위기가 국제적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유럽으로의 정착을 희망하는 피난민들이 최소한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개별 국가에 수용하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동시에 시리아 난민캠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규모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난민발생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의 해소에 국제사회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IS까지 개입된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서 시리아 난민위기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하다. 최근 IS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서 시리아 내전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역내 주도권 경쟁으로 더욱 국제화되고 정치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인도적 책무로만은 해결될 수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해결이 요구되는 것이다.

 

난민의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인간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현실은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부재 속에 오히려 난민위기의 악화를 유발하고 있다. 아일란의 죽음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자극하였듯이 이 기회가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월, 2015/11/0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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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동구타에서 화학무기 공격이 감행되었다.

뉴욕타임즈지는 미발표 유엔 보고서가 북한이 2012년부터 2017년 사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를 생산하는 데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물품을 비밀리에 시리아로 공급해온 사실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린 말로프(Lynn Malouf) 국제앰네스티 중동지역 조사국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처럼 끔찍한 무기의 생산 수단을 공급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어떤 국가이든 개탄스러울 일이다. 하물며 이미 민간인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를 돕기 위해 공급품을 보충한 것은 인류에 대한 엄청난 배신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린 말로프(Lynn Malouf) 국제앰네스티 중동지역 조사국장

“유엔은 해당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보고서의 내용이 정확하다면, 오랫동안 지켜졌던 금지 조치를 그동안 시리아 정부의 범죄와 폭력으로 얼마나 무시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불길한 표지가 될 것이다.

국제사회는 오래 전부터 화학무기 사용을 비난해 왔다. 그 사용이 금지된 데는 아주 타당한 이유가 있다. 시리아의 반복적인 화학무기 사용이 시리아 내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끔찍한 암시인 것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행 무기금수조치와 감시 체제는 명백히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처럼 뻔뻔한 국제법 위반 행위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온라인액션
시리아: 동구타 폭격을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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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정보

2월 25일 동구타에서 또 한 차례의 화학무기 공격이 감행되었다는 소식이 언론과 활동가들을 통해 전해졌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는 해당 공격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시리아-미국 의학협회(SAMS)에 따르면 이 공격은 2018년에만 7번째, 2012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로는 197번째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공격이었으며, 이로 인해 수백 명이 숨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1992년 화학무기협약은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 이전, 사용을 금지하며, 당사국은 화학무기 비축분을 의무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화학무기는 본질적으로 무차별적 무기이며, 이러한 화학무기 사용은 국제관습법에 따라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앰네스티는 국제법상 규정된 생화학 무기 금지 조항을 전적으로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비축분 역시 폐기되어야 한다.

화, 2018/03/0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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