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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교육부는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고석규)를 출범시키고 박근혜정권의 국정화 추진과정의 전모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했다. 조사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고 임종국 선생의 정신을 거론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보면서 한 인물을 생각합니다. 전 재산을 들여 평생 동안 친일연구를 한 임종국 선생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친일연구 과정에서 본인 아버지의 이름도 친일인물로 기록하였던 분입니다. 사실에 기초한 기준 이외 혈연, 지연 등 다른 것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저 역시 이와 같은 마음으로 위원회가 세운 기준을 존중하고 일관성 있는 조사를 추진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렇듯 오늘날 임종국 선생이 시대의 귀감으로 인정받기까지는 단연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의 역할이 컸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에 대한 요구는 연구소 출범 당시부터 조금씩 논의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착수한 계기는 2003년 8월 22일 〈KBS 1TV 인물현대사〉 ‘임종국 편_배반의 역사를 고발하다’(연출 김정중)가 방송된 직후부터다. 방송 이후 선생의 대표 저작인 ????친일문학론???? 판매가 급증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그러나 당시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준비에도 힘이 부쳐 기념사업은 언감생심이었다. 기념사업을 위해서는 연구소 재정 외에 외부의 안정적인 재원 마련이 필요하였다. 그러던 차에 당시 연구소 조문기 이사장이 광복군 장이호 선생의 아들이며 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던 장병화 가락전자 대표에게 이 같은 사정을 설명하고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장병화 이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 자리에서 회장직을 수락했다. 이후부터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설립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2005년 2월 3일 준비 모임에 이어 3월 29일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강의실에서 정식으로 출범식을 가졌다. 기념사업회는 별도의 사무국은 두지 않고 연구소가 업무를 맡기로 했다.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기념사업회에 힘을 보태고 있는 주요 인사로는 김지철 현 충남교육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이용길 천안민주단체협의회 초대 의장 등이 있다. 기념사업회는 출범 당시 크게 5가지 사업 계획을 마련했는데 임종국상 제정, 추모 조형물 건립, 문화훈장 추서, 평전 발간 및 학술사업, 장학사업이 그것이다.
이들 사업 중에서 출범 첫해인 10월 15일 문화훈장 추서가 가장 먼저 이뤄졌다. 추서 신청에는 당시 작가회의 이사장이었던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이 동참해 주었다. 그러나 임종국 선생에게 추서된 문화훈장은 총 5등급 중 금관, 은관에 이어 3등급은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삼웅 전 관장은 2000년 서정주에서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된 사실을 상기하면서 추서 거부를 언급하기도 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 모두 똑같은 심정이었지만 그럴수록 기념사업 활동에 더욱 분발하자고 다짐했다. 임종국상 역시 기념사업회 출범 첫해인 2005년 11월 11일 제1회 시상식을 시작으로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전력코자 2008년과 2009년 두 해를 거른 것을 제외하고는 올해까지 11회에 이르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임종국상의 권위가 높아지고 있다.
임종국 선생의 19주기를 맞는 2008년 11월 18일에는 정지아 작가가 ????임종국 – 친일의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여우고개)를 펴냈고, 기념사업회와는 별도로 정운현 씨가 2006년 ????임종국 평전????을 펴내기도 했다.

매년 11월 12일 임종국 선생의 기일에는 천안공원묘원에서 선생의 추모식이 열렸다. 1990년대 말까지는 천안민주단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이용길, 김지철, 전재진(현 우키시마호 폭침진상규명위원장), 김영수(현 천안시의원), 장기수(전 천안시의원) 그리고 전교조 선생님들과 전농 회원님들이 수고해 주었고 2000년대 들어서부터 현재까지는 연구소 충남지부, 천안지회, 아산지회 회원들이 추모식을 주관하고 있다. 찬바람이 부는 높은 산에서 진행되는 추모식을 위해 손을 비벼가며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준비하는 회원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임종국 선생과 기념사업회의 존재를 널리 알린 데는 역시 방송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는데 앞서의 인물현대사 외에 2012년 〈EBS 지식채널e : 임종국 편〉과 2013년 뉴스타파에서 방영한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3부작이 그것이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사업은 바로 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이다. 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은 오래 전부터 시도되었지만 천안시(당시 시장 성무용)의 비협조로 진척을 이루지 못하다가 작년 초 천안지회(지회장 전훈진)가 발의하고 7월 9일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가 발족해 본격 착수하여 몇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11월 13일 천안신부공원에 조형물이 건립되었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3,626명이 참여해 1억 2천만원이란 거금의 모금으로 이뤄낸 쾌거였다.
앞으로도 연구소는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선생의 정신을 더욱 널리 계승, 발전시켜나갈 것을 다짐한다.
• 방학진 기획실장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와대 청원 돌입… 전문가·종교계 “경주로 돌아가야”

▲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청와대 석불 1939년 조선총독부 문서에는 청와대 불상이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 절 터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적혀있다. 현재 원위치로 추정되는 이거사 절터가 현재에도 도지마을, 도지동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조선고적도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가 ‘청와대 불상은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라는 청원을 9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등록했다.
청와대 불상(수려한 외모 때문에 ‘미남 부처’로도 불린다)은 데라우치 총독의 환심을 사려던 일본 상인 ‘오히라’에 의해 1913년 서울로 옮겨져 현재까지 청와대 경내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청와대 불상에 대한 대통령 비서실 답변 대통령 비서실은 2017년 8월 22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불상의 이운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계 및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 구진영
앞서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8월 7일 청와대와 대한민국 국회 앞으로 ‘청와대 불상 제자리 찾기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청와대는 “(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불상의 이운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계 및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 “청와대 불상, 경주로 돌려놔야”… 청와대 답변을 공개합니다).
전문가·종교계 “경주로 돌아가야”

▲ 청와대 불상 ‘미남 부처’라고 별명이 붙은 이 불상은 1913년 경주에서 지금의 서울 남산 밑 총독관저에 옮겨졌다. 1937년 새로운 총독관저가 완성되자 현재의 청와대 자리로 위치를 옮겨졌으며 현재까지 청와대 관내에 남아있다. ⓒ 구진영
진정서 접수 이후 2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난 현재, 불상에 대한 여론은 어떨까?
일단 관련 전문가들은 ‘청와대 불상이 경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은 KBS <취재파일K>와의 인터뷰에서 불상이 청와대에 있어야 할 이유를 묻자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덧붙여 “한국을 강제 병합했던 바로 그 당사자인 데라우치 총독의 손을 거쳐서 불상이 지금 총독관저에 옮기게 됐고 총독관저가 옮겨지는 것에 따라 청와대에 들어갔다”라면서 “(불상은) 전형적인 일제잔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불상의 이전을 반대한다고 알려졌던 조계종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9월 26일 의견문을 발표했다. 조계종은 “문화재가 조성됐을 때의 당시 취지와 목적에 맞게 종교성과 역사성을 간직한 문화재로 보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라며 “불상의 역사적 가치가 올바르게 조명되고 신앙적 환경 조성을 위해 원래의 자리로 이전되기를 바란다”라는 입장을 정부에 공식 전달했다고 밝혔다.

▲ 경주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왼쪽)과 청와대 불상(오른쪽 위)) 최근 청와대 불상과 형태가 매우 유사한 쌍둥이 불상이 경주 남산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국립춘천박물관에 청와대 석불좌상의 중대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오른쪽 아래) ⓒ 임영애
청와대가 지난 8월 ‘불상에 관해 다양한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것의 귀결점은 청와대 불상의 경주 이전인 듯하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대통령비서실은 문화재청과 서울시에 현장 조사를 거쳐 국가 문화재 승격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5일 회의를 열어 청와대 불상의 국가보물 지정 건의안을 확정 의결했다. 불상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면 서울시가 갖고 있던 관할 권한이 문화재청으로 바뀌게 돼 정부차원에서 불상 이전 논의를 할 수 있는 행정 요건이 갖춰진다.
이제부터는 청와대 불상이 경주 국립박물관으로 갈 것인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되는 이거사터로 갈 것인지 등 이전 장소에 대한 논의만 마무리되면 될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 불상 제자리찾기 국민 청원 등록청 문화재제자리찾기는 9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청와대 불상은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는 청원을 등록했다.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던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청와대 불상 이전 문제는 시대정신의 구현이다. 해방과 동시에 처리됐어야 할 사건이 권위주의 시대에는 해결될 수 없었다”라면서 “(청와대 불상이 경주로 간다면) 일제강점기로부터 기인한 권위주의의 청산이자 민주주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구진영(lovelygudada)편집: 김지현(diediedie)
<2017-09-29> 오마이뉴스
勸人君南北對話
止爭尋活路(지쟁심활로)
南北本同民(남북본동민)
共滅何邦待(공멸하방대)
休誇美日親(휴과미일친)
나라님께 남북 대화를 권함
다툼을 멈추고서 살길을 찾으소서
남북은 본디부터 같은 백성입니다
共滅하기를 어떤 나라 기다릴까요
저 미국, 일본과 친함 자랑 마소서.
<時調로 改譯>
다툼 대신 살길 찾소 남북 同民입니다
함께 망해 버리길 어떤 나라 바랄까요
美日과 썩 친하다며 자랑 따위 마소서.
*人君: 나라님 *活路: 살아 나갈 수 있는 길 *共滅: 함께 사라지거나 멸망함.
<2017.7.15, 이우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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