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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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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40

 

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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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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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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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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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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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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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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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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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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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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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위원회 소식

장길완 간사

안녕하세요 민변 회원 여러분!

민변 아동인권위원회입니다. 2주에 한번 씩 발송되는 뉴스레터에 아동인권위원회 활동 소식을 전해드릴 때가 돌아왔습니다! 지난 8월 달에 활동소식을 전해드렸었는데, 정말 빨리 돌아오는 것 같지만, 그 동안 아동인권위원회에서 활발히 활동했어서 전해드릴 소식이 많네요! (뿌듯)

 

아동위 8월 월례회 – 영화와 함께하는 월례회

아동위에서는 8월 달에 위원들과의 친목을 돈독히 하고, 쉬어가는 의미에서 “영화와 함께하는 월례회”를 진행했습니다. 명동 모처에 위치해있는 영화 관람에 안성맞춤인 공간에서, 다함께 <원더>를 관람하였습니다. 평소에 아동인권 옹호 활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었어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를 때가 많았는데, 그래서 뒷풀이 시간에는 옆 사람에 대해 인터뷰하고 소개하는 독특한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 참고로 아동위는 이 날 헤어지기 아쉬워 새벽 3시를 넘겨서까지 뒷풀이를 하고 다음 날 모두들 출근이 힘들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아동위 9월 월례회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 토론회

아동위는 작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출범할 당시부터 꾸준히 결합해왔고, 연대체 산하의 국회법률단에 결합해서 꾸준히 법률 제·개정 활동을 해왔습니다. 아 참고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 대해서 잠깐 설명 드리자면, 지난 ‘촛불‘ 광장의 동료였던 청소년들이 정치/사회의 주체로서 사회에 온전하게 존중받기 위해서, 그리고 아동·청소년의 권리가 제도·정책적으로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활동하고 있는 연대체입니다.
하여 청소년 참정권을 위한 선거법 및 정당법 개정 활동, 청소년 정책의 기본을 인권의 관점에서 담아내는 어린이·청소년인권(기본)법 제정, 학생인권 법제화를 위한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아동위에서도 가장 열심히 결합했던 연대체이지만,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아동위 회원들을 대상으로 그간의 활동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고 지속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9월 월례회로 진행했습니다.

이 날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발족과 활동, 그리고 청소년인권운동의 향후 과제를 공동집행위원장인 쥬리 활동가님이 발제해주셨고, 지역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과 학생인권법의 필요성에 대해 이은선 공동대표님이 발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동위 회원이자 국회법률단에서 열심히 활동해오셨던 강정은 회원께서 앞으로 발의하고 제정해 나가야할 입법안의 주요내용과 쟁점에 대해 정리해주는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이 토론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는 관념은 청소년에 대한 보호와 통제를 강화하고, 이러다보니 청소년이 사회적 문제, 본인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 있는 문제들에 참여할 기회와 ‘실수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고, 참여할/실수할 기회의 차단으로 성숙할/책임질 기회가 차단되어 “미성숙의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청소년 운동의 문제의식이자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미성숙하기에 더 참여할 기회와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했을 때 ‘성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부분은 인상 깊었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 운동이 결국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아직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고, 참여를 원하시는 회원들의 적극적 참여를 기다리고 있어요.

아동위 10월 월례회 – 아동인권 모니터링 + 김호철 회장님 참석


민변의 모든 위원회가 매년 해야 하는 숙제, 아니 보람찬 활동! 은 바로 정기국회에 발의된 입법안을 검토하고 의견서를 내는 일과, 한 해 인권현황과 과제를 정리한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는 일이죠! 아동위는 10월 월례회 때 입법의견서를 검토하는 동시에 인권보고서 집필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올 하반기에는 어떤 아동인권 이슈가 있었는지 언론/입법/사법 분야의 모니터링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날은 김호철 민변 회장님도 참석하셔서 아동위의 뜨거운 공부 열기를 느끼고 뒷풀이까지 참석하고 가셨습니다.

 

아동위 의견/성명/논평

아동위에서는 특히 올 하반기에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제약하는 이슈와 정부 정책, 입법 등에 적절한 타이밍에 목소리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8월 달에는 작년부터 잊을만하면 ‘선정적’으로 보도되는 ‘미성년자’의 강력범죄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로 하향하는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법무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민영 소년원 정책에 대해서도, 국가의 보호소년의 정책적 실패에 대해 민영소년원의 도입이 결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님을 지적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0월 달에는 총 4건의 성명을 내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아동위에서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아동에 대해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와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조속히 입법으로 도입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두 번째로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사회서비스공단의 설립과정에서 보육을 제외한 것에 대해서 규탄하는 성명을, 세 번째로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설립·운영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가 공공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내용의 성명을, 마지막으로 김해 원룸 화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동을 애도하며, 이주외국인 아동의 생존권, 교육권, 건강권, 안전하게 자라날 권리 등을 조속히 정부가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를 촉구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 국가의 실패를 민간에게 전가하지 말라. 민영소년원 도입을 반대한다!
http://minbyun.or.kr/?p=40232
[아동위][성명]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13세로 낮추는 정책에 반대한다.
http://minbyun.or.kr/?p=40244
[아동위][성명] 보육은 배제될 수 없다. –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공단이 필요하다.
http://minbyun.or.kr/?p=40717
[아동위][성명]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에게 출생신고와 증명을 보장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 발의를 환영하며 조속한 입법을 촉구한다.
http://minbyun.or.kr/?p=40732
[아동위][성명] 사립유치원 비리, 설립자가 만들고 정부가 키웠다. 사립 유치원 운영 상 공공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라.
http://minbyun.or.kr/?p=40775
[아동위][성명] 김해 원룸 화재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동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땅에 거주하는 모든 이주 아동에 대한 평등한 인권 보장을 촉구한다.
http://minbyun.or.kr/?p=40833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대안마련 정책토론회


올해 국정감사 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사립유치원의 비리 문제에 대해 아동위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관심을 다시 환기하고, 진정으로 유아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 축인 사립유치원이 비리근절과 운영에 있어서 공동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을 위하여 단체, 의원실과 함께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국가예산 지원은 무상보육 정책과 공공성 강화의 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설립자와 운영자에 따라 회계 편성과 집행상의 부적절함이 지속적으로 있어왔는데, 이번 기회에 아동의 교육권이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 제도 정책적 대안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보육 현장이 요구하는 사회서비스공단 기자회견


현재 한국 사회에서 보육 현장은, 대부분이 민간 시설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데요, 심지어 국공립 어린이집의 대부분도 민간위탁에 맡겨져서 보육의 공공성이 실질적으로 담보되어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여 이번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였던 사회서비스공단의 설치 과정에서 보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과정에서부터 보육을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보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한다고 아동위를 비롯한 아동, 부모, 보육노동자 등 당사자의 권리에 기반한 여러 단체들에서 주장을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에서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과정에서 보육 분야를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이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지속적으로 공단 추진에 있어서 보육 사업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동인권위원회 안에는 소속 회원들의 친목과 위원회 활동의 안착을 돕는 회원팀, 매달 월례회마다 공부를 책임지는 교육기획팀, 그리고 이주아동을 포함한 출생등록제도, 입양 등 아동인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아동복지팀, 청소년 참정권, 놀권리, 소년사법 등에 대해 논의하는 청소년팀이 존재하며, 해외입양연구모임(대리인단)을 운영 중에 있으며,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 보육더하기인권함께하기,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의 연대체에 가입해 있습니다. (헉헉 이렇게 하는 일이 많았다니,, 새삼 놀랍네요)

또한 현재 2018 인권보고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소수자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진행할 판례평석집 작업도 한창입니다. 그리고 아동위는 12월에 송년회를 진행할 예정인데요, 제가 예전에 한번 참석해봤는데, 솔직히 그 어떤 송년회보다 재미있고,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 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아동인권 옹호, 청소년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들에 관심있는 민변 회원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아동위 회원팀 팀장 황준협 변호사 혹은 사무처 장길완 간사에게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럼 다음 뉴스레터 때 또 풍성한 활동소식 전해드리러 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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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11/0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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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변호사 관람 후기

- 곽자홍(14기 자원활동가)

두뇌 상위 1%, 승소확률 100%의 에이스 변호사, 한번쯤 변호사라면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이기는 게 정의” 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꿈꾸는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성난 변호사는 두뇌 상위 1%, 승소확률 100%의 에이스 변호사 ‘변호성’(이선균)이 대형 소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승승장구하던 중 시체도 증거도 없는 신촌 여대생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유명한 제약회사 회장의 부탁으로 변호를 맡게 됩니다. 변호성은 사건에 대하여 조사를 하던 중 과거 자신이 승소한 ‘류마티스 부작용 소송’ 이 은폐되었던 사실과 여대생(한민정)은 피의자와 함께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가짜 살인사건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변호성은 돈을 택하며 한민정을 직접 살인하라는 명령까지 받게 되지만 반전으로 변호성은 뒤늦게 정의를 택하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만약 변호성(이선균)가 그 순간 정의대신 돈을 선택했더라면?, 진선민 검사(김고은)이 진실을 외면했다면? 한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현재의 제도아래서는 죄가 없는 용의자가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법조인의 윤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변호사법 제1조에서는 ‘①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② 변호사는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라고 변호사의 법조윤리에 대하여 명시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변호성의 모습은 이미 자본이 계급이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정의보다는 성공보수를, 법조윤리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거대 제약회사는 유능한 변호사를 앞세워 억울한 피해자를 막기 위한 ‘무죄추정원칙’을 재벌의 죄를 입증하기 어렵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회정의와 인권수호를 위해 쓰여야 할 법은 불법을 불법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 되어버립니다. 법은 원래의 목적을 잃고 권력의, 자본의 수단화되어버리고 잘나가던 엘리트 변호사 또한 재벌 앞에서 굴복하여 ‘100명도 살 수 있는’ 돈을 주고 산 물건화 되어버립니다.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현실에서의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와 법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현실에서도 일부 변호사들의 영화 속 변호성처럼 실체적인 진실보다는 선임료 등 사익의 추구나, 법조 브로커와의 유착, 선임계나 준비서면의 제출 없는 청탁성 전화 변호등이 문제가 되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떨어져 입법정책포럼에서 사법현안에 대한 한백리서치연구소의 여론조사 분석결과에 따르면 변호사에 대한 신뢰도는 31.8%에 불과해 68.2%가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어쩌면 로스쿨 제도의 도입이후 공급이 늘어나면서 과거 다른 직업군에서도 통용되었던 논리와 같이 경제적인 상황은 계속하여 악화될 것이 예상되는 것에 반하여 개인에게 경제적 책임은 떠넘기면서 법조윤리라는 의무만을 부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호사 개인의 윤리적 양심으로 정의의 수호라는 변호사의 사명의 유지만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사회의 고민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법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 또한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올해 초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땅콩회항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 무렵 ‘어차피 집행유예가 나올 것이다.’ ‘민사소송은 미국법원에서 진행해라’라는 등의 기사 댓글을 보면서 법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이 신뢰를 잃은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였고 나름의 믿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보며 그리고 정말로 민사소송을 한국법원이 아닌 미국법원에 제기한 승무원들의 모습은 과거 비리들 앞에서의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여 법의 판단을 피해가는 국회의원들의 모습들, 권력과 자본 앞에서 약해지는 법원을 목격한 대중들이 사회의 법과 제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헌법입니다. 헌법전문과 1조부터 130조의 헌법조문이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 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라는 점, 즉 모든 법의 기초이자 개인의 기본권을 국가로부터 보장한다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속에서 소수라는 이유로,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약자가 되어 잃어버린 개인의 권리를 찾는데 법이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멋져보였던 변호사의 “이기는 게 정의”라는 말이 무서움이 아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정의가 이기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 2015/11/1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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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구지부소식

한동대학교 페미니즘 강연 무기정학 학생, 손해배상청구 소송

2017년 12월 한동대학교 학술공동체 ‘들꽃’이 주최하여 학생들을 상대로 페미니즘 강연을 하였습니다. 2018년 2월 말 학교 당국에서 위 강연에 참석한 학생에게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 등으로 무기정학 징계를 내려 부당 징계 논란이 있습니다.
이에 지부에서 TF팀(권영국, 김동창, 예현주, 이주현, 정재형 변호사)을 구성하여 법률적인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건이 현재 대구사무소에 계속 중인데, 진정 건에도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고 의견서 및 자료를 제출하였습니다. 10월 1일 소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는 것으로 의결하였는데, 인권위원회 진정건의 결과를 지켜본 후 징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3월 28일에는 포항여성회 등 7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철회 공동대책위원회(상임대표 권영국 변호사)가 출범하였고, 8월 20일 한동대 학생들과 대책위, 지부 TF팀 변호사들이 모여 간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간담회 자리에서는 추후 기자회견과 소송 진행 등에 있어 상호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습니다.

 

 

8월 27일에는 징계 학생이 원고가 되어 한동대와 한동대 교수 3명을 상대로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법률대리인단에 10명의 지부 회원께서 함께 하였습니다. 소장 제출에 앞서 포항지원 앞에서 징계 학생과 대책위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징계학생에 대한 민감한 개인 정보를 강의시간에 또는 이메일을 통해서 공공연하게 악의적으로 유포함으로써 개인의 명예가 심각히 훼손되었으므로 명예훼손 가해자 및 가해자들의 사용자인 학교법인에게 배상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습니다. 학문과 양심, 표현의 자유가 보장해야 할 대학과 교수들이 비판적 혹은 성적 이념 차이로 명예를 훼손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우며, 학교측이 엄정한 법적 책임을 지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며 더 이상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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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10/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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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를 다녀와서

- 유소영 15기 자원활동가

나비효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절절히 계속 생각난 단어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언론에서 청운진 해운을 쥐잡듯이 잡는 것이 싫었었다. 언론몰이를 해서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병언, 구원파로 이어지며 뉴스는 더욱 자극적이 되어가고 사람들을 그곳에 열중시킴으로써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주로 정부 공무원들)은 빠져나가려는, 꼬리 자르기를 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보면서 세월호는 누구 하나 잘한 것이 없는, 민관의 합작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청운진 해운이 처음 세월호를 국내에 들여올 때부터 과도학 중개축, 그것에 대한 정부의 허가 과정, 검사 등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정말 많고도 많았는데, 기가 막히게도 모든 것이 이어지고 이어져 세월호 참사라는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다. 딱 한 사람만 그 연결고리를 끊어줬다면 정말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모든 것은 관행인간관계의 무한신뢰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다.

박종운 위원은,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만 바뀐 채로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유라고.

그래서 나는 세월호 사건이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정치적인 프레임에 이 문제를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개인을 벌하는데 집중하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봤으면 좋겠다. 박위원장님 말씀처럼, 사람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지만 그 구조와 관행이 있는 한 안전사고는 언제든 모양새만 달리해서 반복될 거니까.

월, 2016/04/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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