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백두산 통일기행

지역

백두산 통일기행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40

 

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photo_2015-09-09_14-39-24

 

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photo_2015-09-09_14-39-34

 

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photo_2015-09-09_14-39-38

 

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백두6

 

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백두2

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백두4

 

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백두5

 

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백두7

 

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백두8

 

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민변 국제통상위 활동소식

김솔아

 

지난 6월 7일 대한민국이 이란기업 엔텍합에 73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중재 패소 판결을 받은 소식을 모두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론스타, 하노칼, 엔텍합, 엘리엇 등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에 잇달아 국제중재를 제기하거나 또는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일반대중에게도 제법 알려진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에서 한국이 최초의 패소 판정을 받은 것이지요.

저희 국제통상위는 그간 위 ISDS 사건들에 대하여 중재의향서 등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기고 등을 통해 ISDS 사건의 실상과 제도적 문제점을 알리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통상위의 중요 관심 분야인 ISDS가 신입회원인 저처럼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ISDS를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ISDS?

ISDS란 외국인투자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직접 국제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원래 외국인투자자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다투려면 대한민국 법원 등 관할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ISDS는 외국인투자자가 ‘법원이 아니라’ 민간 중재인(주로 변호사나 교수가 많이 합니다) 3명 또는 1명에게 국제중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언론에서는 ISDS가 국제 소송쯤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사실 소송이 아니라는 점이 ISDS의 가장 큰 특징인 것이죠.

ISDS는 대한민국이 외국과 체결한 양자간 투자협정(BIT)나 자유무역협정(FTA)에 삽입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이 투자협정상 또는 자유무역협정상 투자자 보호 조항을 어겼다고 투자자가 판단하는 경우 ICSID(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나 UNCITRAL(국제연합 국제상거래법 위원회)과 같은 중재기관을 통해 ISDS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ICSID나 UNCITRAL는 국제 법원이 아니라 ISDS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규칙을 제공하고 관련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이 ISDS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요?

ISDS의 문제점

ISDS의 문제점 중 우리 법률가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아무래도 국가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위 엔텍합 사건의 경우를 보면, 한국이 ISDS에서 패소한 원인은 캠코가 2010년 엔텍합에 대우일렉트로닉스 지분을 팔기로 하고 받은 계약금 578억원을 계약 해제 후에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법원은 이미 관련 소송에서 캠코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실이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엔텍합이 ISDS가 아니라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면 한국 법원은 캠코의 계약 해제가 정당하다는 전제 하에 계약금 몰취 조항이 부당하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엔텍합에 패소 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엔텍합은 한국 법원을 피해 ISDS를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수백억대의 배상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ISDS는 법원 판결들 간의 조화를 통한 법적 안정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사법주권 침해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밖에도 ISDS는 정책주권의 침해 문제, 중재 절차의 불투명성, 소송과 ISDS의 중복 제기, ISDS 포럼 쇼핑, 광범위한 보호 규정에 따른 지나친 외국인투자자 보호,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 국가 재정 부담의 문제 등 광범위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호주는 ISDS를 거부하고 있고, EU에서는 ISDS의 구조적 개혁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한국도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ISDS 조항을 개정한다는 기본원칙을 세운 배경에는 바로 이와 같은 ISDS의 광범위한 문제점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ISDS 사건들

ISDS가 한국에서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한미 FTA 협상 때인데요. 당시 우리 민변에서도 ISDS 문제의 공론화를 주도하면서 ISDS가 그나마 한국에 조금이나마 유리한 내용이 될 수 있도록 협정문 문구를 수정하는데 크게 기여했었죠.

그러나 우리가 ISDS의 가공할 만한 위험을 몸소 느끼게 된 계기는 모두 잘 아시는 론스타 사건입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2007년 HSBC와의 사이에서 2003년 매입한 외환은행 지분을 약 4조5,000억 원의 차익을 남겨 팔기로 계약했지만, 한국정부가 이 계약에 대한 승인을 미루는 사이에 세계금융위기가 왔고 결국 HSBC와의 계약이 무산되어, 2012년에서야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을 넘기게 되었는데요. 론스타는 정부가 이와 같이 계약 승인을 지연한 것 때문에 차익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2012년 한-벨기에 BIT에 기하여 한국에 5조5,000억원대의 ISDS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현재 이 사건은 2016년 변론이 종결되어 판정만을 남겨둔 상태인데요, 우리 국제통상위에서는 이 판정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답니다.

또 최근에 불거진 엘리엇 사건은, 역시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이 한미 FTA에 기하여 한국을 상대로 ISDS를 제기하겠다고 중재의향서를 보내온 상태입니다. 이 사건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 한국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여 주주인 엘리엇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가 쟁점입니다. 얼마 전 엘리엇과 한국 정부가 화상회의를 통해 ISDS 제기 전에 필수로 밟아야 할 협의절차를 밟았다고 하는데요, 협의가 잘 진행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에서는……

이처럼 ISDS 사건은 사법주권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고 막대한 국가재정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에 국제통상위는 한편으로는 정부에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전 국민적인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ISDS 제도를 개혁하는 데 있어 법률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또한 머지않아 론스타 ISDS 판정문이 나오고, 엘리엇도 곧 ISDS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에, 우리 국제통상위는 각 개별사건에 대해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그 내용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이처럼 할 일이 많으므로 관심 있는 기존회원뿐만 아니라 신입회원들도 저희와 함께 참여하면 좋을 것 같네요! 관련하여 궁금한 내용이 있거나 함께 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 언제든지 우리 국제통상위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금, 2018/06/15- 18:46
103
0

morning07082

금, 2015/07/10- 14:08
102
0

울산지부 소식

 

 

▶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참여.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4기 폭발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깨닫고 울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네트워크 조직입니다. 울산은 남쪽으로는 곧 가동될 신고리3,4호기를 포함하여 원전 8기가 배치되어 있는 세계 최대 핵 단지가 있고, 북쪽으로는 경수로보다 6배 많은 핵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삼중수소를 30~40배 더 배출하는 중수로 원전 4기, 경수로 원전2기 그리고 핵쓰레기장을 끼고 있는 도시입니다. 대형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저선량 방사능에 피폭될 가능성이 높고,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위협 속에서, 핵발전소 단지로부터 법적 방사능 피해구역인 30킬로 이내에 울산시민 96%가 살고 있는 실정입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울산의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노력을 해왔고, 지난 6월 고리1호기 2017년 폐쇄 결정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울산지부에서는 개별 변호사님이 탈핵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오시기는 했으나, 조직차원에서 결합하여 활동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10. 울산민변지부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의 구성단체로 가입하고, 이후 활동을 함께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현재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에는 울산지역 34개 단체가 함께하고 있는데, 울산지부는 법률전문가 단체로서 탈핵과 관련한 법률문제에 대한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현재 울산지역에서 진행중인 삼중수소 오염 조사에서 오염이 확인될 경우, 갑상선암발생 위험성과 관련한 법적 대응 및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앞두고, 울산 서생면 주민들의 의사만 반영되고 울산시민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법적 대응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 독립문화단체 “품&페다고지” 기획공연 “극단 새벽 단막극 시리즈 <4개의 삽화, 그리고 세월>” 재정지원 및 회원관람.

 울산에는 대안문화공간 “품&페다고지”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2008년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논의와 노력 끝에 만들어진 단체로 현재 소극장(품)과 북까페(페다고지)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극장과 북까페등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독립영화상영, 연극·음악·춤등 문화공연,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진행, 노동·대안교육등 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단체입니다. 매년 독립극단과 공동으로 기획공연을 진행하는데, 지난 10. 독립예술집단인 극단 새벽 단막극 레퍼토리 <4개의 삽화, 그리고 세월>을 공연하였습니다. 이에 울산지부에서도 그 취지에 공감하여 적은 금액이나마 티켓을 구입하여 회원들에게 배부하고 함께 관람하는 방식으로 지원하였습니다.

 

▶ 한수원 정보공개청구 관련 공익소송.

 울산시민연대와 공동으로 한수원의 “언론홍보비 집행내역등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지난 6월 9일 제기하여(주심 한정희 변호사님), 2015. 10. 14. 원고 전부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차원에서 지역시민사회와 공동행동을 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데, 현재 한수원이 항소를 한 상태로 판결이 유지되도록 계속 대응할 계획입니다.

▶“알바노조 울산지부” 업무방해등 형사사건 공익변호.

 알바노조 울산지역 조합원들의 활동과정에서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어 울산지부에 공익변호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에 지부 논의를 거쳐 공익변호를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주심 송철호 변호사님).

목, 2015/11/26- 15:24
101
0

사법위 활동소식

 

1. 군사법제도, 미완의 개혁

 지난 2006년 참여정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군사법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한지 9년 만에 일부 방안에 대한 입법이 이루어졌습니다. 현행 군사법제도에서는 수사단계부터 기소 및 재판부 구성, 판결확인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부대지휘관이 관장하게 되는데 이는 기소와 심판의 분리라는 사법제도의 원칙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헌법상의 삼권분립의 원칙 및 사법권독립의 원칙에 반하는 제도입니다. 이번에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위와 같은 현행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첫째, 현재 사단급에 설치되어 있는 보통군사법원을 폐지하여 군단급 이상의 상급부대에 보통군사법원을 설치하고 둘째, 일반장교를 재판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심판관제도의 대상 범죄 범위를 축소하며, 심판관 재판 운영시 참모총장이나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셋째, 군지휘관이 재량에 따라 자의적으로 형량을 감경할 수 있는 확인조치권(감경권)의 대상 범죄를 한정하는 동시에 감경비율을 선고형량의 3분의 1 미만으로 제한하며 넷째, 지휘관이 사건을 은폐,축소하거나 군 수사에 영향을 미쳐 불공정한 수사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상급부대 검찰부로 관할을 이전하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IMG_7368

그러나 개정 군사법원법은 군사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근본원인인 관할관의 권한남용과 심판관제도가 사실상 유지되고 있어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사법원과 군검찰의 지휘관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현하고 장병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며 군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향후에라도 관할관 및 심판관제도는 완전 폐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사법위 2015 송년회

 2015. 12. 10. 사법위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간단히 회의를 하고 송년회를 하자는 제의가 무색하게 2시간을 꽉 채운 회의를 끝내고 송년회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는데요. 이번 송년회에서는 선배변호사가 후배들에게 책 한권씩을 선물하는 뜻깊은 순서를 마련했습니다만 사법위 선배들이 모두 베스트셀러(?)의 저자이신 걸 깜빡한 덕에 후배들은 선배들의 명저를 얻고 선배들은 쌓여만 있던 저서들을 대량 방출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군요.^^

20151210_211440

 

‘미국수정헌법 제1조와 표현의 자유 판결’(장주영 저),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민경한 저), ‘산과 시’, ‘노동을 변호하다’(이상 김선수 저). ‘형사소송법’(김인회 저),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무엇이 문제인가’(이재화 저), ‘직무발명제도 해설’(성창익 저)…이런 책을 원하시는 분은 사법위로 오세요~~

 

3. 2016년 사법위 첫 회의

 2016. 1. 21.(목) 저녁 7시에 2016 사법위 첫 회의가 열립니다. 정기적인 입법 모니터링과 판례 모니터링 외에 장주영 변호사님의 ‘헌재와 대법원의 민주적 구성’에 관한 짧고 굵은 강의도 들으실 수 있으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수, 2015/12/23- 14:05
97
0

과거사청산위원회 활동 소식

 

 

최근 과거사위와 관련된 가장 큰 이슈는 바로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이 아닐까 합니다. 2015. 12. 28.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일본의 허울뿐인 사과를 받고 이를 받아들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기가 막히는 것은 회원 여러분들도 같으시겠지요.

이에 2016. 1. 5.(화)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에 걸쳐,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 문제점’을 주제로 정대협, 민변 등 공동주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한일외교장관회담에 대하여 위안부 운동에서 바라보는 문제점, 국제법적 문제점,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에서 바라본 문제점 등 다각적인 분석과 토론이 있었고, 취재열기도 대단했습니다.

 

과1 과2

 

앞으로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과거사위 뿐 아니라 민변 그리고 시민사회가 모두 함께 힘을 내야할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과거사위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위 법에서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사할린 한인에게 위로금을 지급하지 않고 사할린에서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기간 동안 사망한 한인들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부분의 위헌성을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5. 12. 23. 이에 대하여 입법재량을 인정하여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동토의 땅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를 품어 청산할 수 있는 기회를 또다시 걷어차 버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또한번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위는 씩씩하게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광부들이 광주에서 열리는 해방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가 미군정에 의해 토끼몰이식 진압을 당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죽었던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스탠딩 뮤지컬 ‘화순’을 2015. 11. 5.에 미군위, 통일위와 공동으로 주관하여 관람하였고, 2015. 12. 23.에는 과거사위+긴급조치변호단 합동송년회를 열어 그동안의 노고를 풀고 힘차게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한 때 과거사위 활동은 이제 다한 것이 아닌가 하고 해산을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들이 순리대로 과거로 흘러가지 못하고 여전히 얼키고 설켜 현재를 장악하려하는 현 상황에서 과거사위는 더욱 왕성한 활동으로 과거사 청산을 위해 노력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새해에도 과거사위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활동 회원이 되어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한한 보람과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 2016/01/18- 09:38
9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