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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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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40

 

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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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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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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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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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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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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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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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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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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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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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원회입니다.

여름 무더위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가,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가을이 성큼 와 있네요. 어느 새 9월. 그것도 1/3이 후딱 지나가버렸어요. 이런, 가을 타면 안 되는데. 암튼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 가는 것 같습니다. 간단히 지난 8월 월례회 모습을 스케치 해봅니다.

지난 8.2.는 과거사위원회는 긴급조치 변호단, 위안부문제 변호단과 함께 ‘한혜인’ 박사(成大 동아시아역사연구소)를 모시고 ‘사료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박사님은 그간 일본의 방위청, 외무성, 후생성, 법무성, 경찰청, 국립공문서관, 국립국회도서관 등에서 발견된 공문서들의 현황과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는 시각의 차이, 위안소, 위안부, 동원 등 위안부 문제의 제도화를 보여주는 문서들 그리고 한일청구권협정과 관계 등에 대하여 진지한 강의를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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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강중인 한혜인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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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달아진지해진 위원님들. 졸~린가? –

- 절대 자는 것이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중입니다. -

– 절대 자는 것이 아닙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중입니다. –

- 흥미진진한 강의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발사됩니다. -

– 흥미진진한 강의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발사됩니다. –

덕분에 위원님들께서도 진지하게 강의에 임하게 되었고, 강의 후에는 역사학자와 법률가가 보는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대하여 위원님들과의 뜨거운 설전(舌戰)이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한 박사님의 강의 ppt에 소개된 몇 개의 문서를 업어왔습니다. 저는 글로만 보다가 실제 문서들이 이렇게 생겨먹었는지는 처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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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소의 제도화와 관련한 육군성(陸軍省) ‘야전주보규정개정설명서(野戰酒保規程改正說明書)’ – ‘위안시설’에 대한 내용이 있습니다. 보병 219연대 소속 경비대 제7중대 ‘영외시설규정(營外施設規正)’(소화 18년. 1943) 중 ‘3. 특수위안소’에 관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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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3.4.付.

육군성 부관으로부터 북지(北支)방면군 및 중지(中支)파견군 참모장 앞으로 보내진

군위안소종업부 모집(軍慰安所 從業婦募集)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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留守名簿

: 남방 제5육군병원(치제10801부대): 89명(간호부)

: 남방 제9육군병원(부10310부대 : 77명(간호보조원) : 배복남, 양재순, 리현숙 외 25명 가능성

: 남방 제10육군병원 :151명(김복동)

 

조선출신자의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강의를 마친 다음에는 위원회, 변호단의 간단한 안건을 정리하고, 한 치의 주저함이 없이 바람처럼 주(酒)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하여, 얼마 남지 않은 한 여름 밤의 아쉬움을 막걸리로 달랬습니다. 일부 위원님께서는 가는 여름이 아쉬워 더 나아가셨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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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같이 조변호사님이 달려와 사진 한 장 장식합니다. –

참고로, 작년 연말 한일일본군위안부 합의문제가 뜨거울 무렵. 우리는 겁도 없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소장을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는 일본정부가 우리의 소장을 ‘주권침해’를 이유로 수령거절 하였다는 송달보고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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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입회원에 대한 가입 승인과정이 본부와 달리 매우 엄격하다는 것이었다. 이 날 승인된 두 명의 신입회원은 가입신청서 제출 후 40여분에 이르는 집행부의 심층 압박 면접을 견뎌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입회원에 대한 보증 절차를 거쳐야 했고, 승인 전 표결을 위한 질의를 받은 다음, 6인 이상의 반대가 없으면 그제서야 비로소 광주전남지부의 정식회원이 되는 것이다! 이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로, 지부에서는 회원임을 인증하는 커다란 벽시계를 선물로 증정한다. 그 시계에는 “민변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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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당일 험난한 과정을 거쳐 신입회원 승인을 받고, 인증 시계를 수여받은 길탁균, 김춘호 변호사님

총회자료집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각종의 활동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지부가 얼마나 분주하게 공익을 위해 헌신하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각종 사업보고에 이어지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는 아주 세심하고 날카로웠다. 가령 2016. 공익소송기획에 대한 정량평가의 경우 5점 만점을 기준으로 공익소송 활동은 4점, 배당은 2점, 사건발굴은 4점을 부여받았는데, 양질의 사건을 발굴한 것이 높게 평가되었다. 회원사업의 보고는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의 경우 배점은 7점이나 그 평가에 있어서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자평. 또한 활동을 하면서 회원들이 자연스레 만나는 과정에서 인생의 동반자가 됐거나, 회원과 지부에 관심이 많은 비회원 간에 곧 결혼할 커플이 있었는데, 이러한 인연 뒤에는 회원사업단이 의미 있는 인과관계를 끼쳤다며 회원사업단의 업적으로 자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자찬을 의식해서인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인과관계가 없다는 측의 항의를 우려해 각주처리를 하면서, 막연하나마 인과관계에 대한 근거를 곁들이며 설명한 것은 마치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게 하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어 어느새 수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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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면서도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총회자료집만 봐도 광주전남지부의 활동과 분위기가 얼마나 가족적이고 화목한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절로 훈훈함이 느껴졌다. 6시가 넘어 시작된 총회는 8시로 넘어가자 식사를 위해 뒷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숨소리마저도 크게 들릴 정도로 근엄했던 총회와 달리 뒷풀이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다. 지부 사회는 총회며, 뒷풀이며 정인기 변호사님 전담으로 보였는데, 진행이 깔끔하고 착착 진행되는 느낌에 감탄스러웠다. 김상훈 지부장님은 귀여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하는 덧니가 매력적이어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삐져나오곤 했는데, 그 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부장님의 그 덧니 뒤에는 또 다른 이가 숨어있는 게 아니라 익살스러움과 유머스러움이 한가득 자리 잡고 있음을. 특히 본부에서도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건배사 전의 지부장님의 호명 3창은 분위기를 흥겹게 달아오르게 하면서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서 있는 사람으로서는 짧게나마 건배사 멘트 준비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친구따라 조건 없는 기부를 거침없이 하시고, 자그마한 얼굴에 우병우와 유재석, 최근 대한변협 회장으로 당선된 그 분의 얼굴까지 두루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그맨보다 더 웃겼던 강성두 변호사님, 지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선한 아우라를 가진 임태호 변호사님, 소고기도 아닌데 겉만 익었다 싶으면 마구 먹어치우는 제 앞에서 연신 고기 굽느라 바빴던 박인동 변호사님, 가장 지부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부족했다며 활동이 뜸한 회원을 위축시키게 한 송창운 변호사님, 너무도 아름다우신 임선숙 변호사님, 광주지부 여성회원들은 어찌 다 그리 고우신지요. 이름만 접했을 때는 원로변호사님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는 최강 동안인 이상갑 변호사님. 그가 있어 광주가 낯설지 않은 동기 김정우 변호사님. 지부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두상이 잘생긴 전직 락커 박상희 간사님 등 한분 한분이 그렇게 정겹고 그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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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쪽 세 번째가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 여기저기 빵빵 터트리는 놀랍고 신비로운 일”(박상희 간사)을 일으킨다는 강성두 회원. 광주지부 제공

광주에서 발견한 것은 지부 회원들의 따뜻함만이 아니었다. 그 날 식당은 낙지마을로 예정돼 있었는데 실제는 낙지가 아닌 메뉴에도 없는 생뚱맞은 삼겹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낙지전문점인 그 식당에서 맛본 삼겹살은 그 동안 먹어 본 삼겹살 중 가히 최고라 말할 수 있었다. 역시 맛과 멋의 고장 광주는 남달랐다. 전공이나 전문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맛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광주지부의 변호사들 또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전문영역뿐 아니라 때로는 낯설고 막막한 공익사건을 마주할 때도 최고의 실력과 헌신으로 준비한다는. 광주는 이런 전통과 습관이 모든 곳에서 자연스레 베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도 불의 앞에 당당했던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지부 회원의 면면 속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따듯한 추억 한아름을 선물해 주신 광주전남지부 회원여러분, 정말 감사드리고, 5월 총회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이야기 둘 : 광주전남 지부 속 공익전담 이소아 변호사의 사는 이야기

이혜정 : 오랜만입니다. 모르는 회원들도 있으니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소아 : 안녕하세요?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이소아 변호사입니다. 저희 단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특히 인권의 도시 광주에서 공익인권 전업으로 법률지원을 하는 비영리단체이구요.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 곁에서 바라보는 귀, 듣는 눈으로 들어 법의 목소리로 세상에 전달하고자“하는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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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서울에서 활동하다 광주로 가셨는데 광주에서의 근황은 어떤가요.

이소아 : 2013년 광주에 내려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어서 정신없이 지냈어요. 친정 부모님 두 분이 모두 편찮으셔서 간병을 해야 했고, 지난 가을에는 아빠가 돌아가셨구요. 아이를 낳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생활에 있어 변수는 더 많아지는 것이니까요.그래도 뭐 어찌어찌 다~ 어떻게 지내왔어요. 주변 분들의 도움도 컸고, 신랑의 도움도 컸구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오히려 미리 걱정하는 버릇이 줄어들었어요.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두더지와 같은 근시안으로 살기로 했어요. 닥친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걸로. 일적인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동행’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으니까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많았어요. 광주는 도시 자체가 생산 도시가 아닐뿐더러 후원에 대한 시민의 인식도 상당히 박하거든요. 또 변호사가 왜 굳이 비영리단체의 상근변호사로 일하냐, 그냥 지금처럼 자신의 사무실에서 좋은 일하면서 지내면 되지 하는…. 그런데 사실 저는(이런 말 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잘될 것 같은, 잘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광주에 내려와서 계속하여 접촉했던 인권단체들은 법률전문가의 결합에 매우 목말라 하고 있었고, 지역에도 지역 고유의 여러 가지 인권 이슈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서울에서 계속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일을 했었기에 이를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고, 이를 잘 엮어낸다면 시민들에게도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현재는 약 170명 정도의 후원회원들이 계시고 월 약 300만원 정도의 정기 후원금이 들어오는 단체로 성장했어요. (지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도 규모로 성장한 비영리단체는 없답니다)

이혜정 : 와 대단하시네요. 광주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하게 된 과정과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소아 : 제가 올해 9년차 변호사인데, 해마루 광주분사무에서 근무했던 1년 반 동안만 로펌에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단체 내 상근변호사로 있었어요. 그러니 해마루에서 공익전담으로 전업을 했다기 보다는, 공익전담으로 다시 복귀를 했다고 보시면 되어요. 저는 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성매매피해여성을 위한 ‘다시함께센터’에서 일을 했고 아파서 잠깐 쉬다가 2011년 5월에 민변에 상근변호사로 들어갔었지요. 왜 공익전담으로 일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저한테 재미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에 제가 2004년도에 적었던 일기장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는 제가 사법시험 1차에 여러 번 떨어지고 마음속으로 굉장히 지쳐있던 상황이었는데, 1년 후, 5년 후, 10년 후, 30년 후, 계획을 써놨더라구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왜 하고 싶은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 순으로….5년 후 계획이 단체 상근변호사로 일한다, 10년 후 계획이 뭐더라… 이거랑 비슷한 거였는데… 아무튼 그때 왜 하고 싶은가를 적는 칸에 “의미가 되고 싶어서”라고 써있더라구요. 당시에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라 인정욕구가 정말 강해서… 그런데 지금은 이유를 바꾸고 싶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라고.

그리고 광주에서 변호사가 상근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든 이유는 간단해요. 필요하니까. 그리고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광주에 내려와서 1-2년 동안은 앞에서 말했던 개인사 때문에 돈이 좀 많이 필요해서 로펌에 잠시 있었지만, 광주에 내려오면서부터 제 마음 속에 광주의 공감 같은 단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 광주지역 인권단체 현황을 계속 알아봤었어요. 그냥 먼저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저를 알리고 함께 일할 부분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1년 반 이상 네트워킹을 쌓아갔어요. 그러던 중 마침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공익전업변호사 자립지원사업 공모전을 하는 거에요. 2년간 변호사의 급여를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 거에요. 기회다 싶어서 바로 단체를 만드는 것을 실행에 옮겼지요. 실질적으로 단체를 만드는 부분은 ‘희망법’이나 ‘감사와 동행’, 법률사무소 ‘보다’, 이주민센터 ‘친구’등에 의견을 구하면서 진행했구요. 결국 저 혼자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혜정 : 그러면 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나, 현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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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전담을 결정했을 때 어려움은, 제가 광주에서 공익전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신랑이 약간 당황했었어요. 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엄마 간병비 등 계속 고정적인 목돈이 들어가거든요. 그래도 결국 흔쾌히 받아들여줬고, 이제 시아버님과 시누이도 저희 단체의 든든한 후원자세요.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법원에서 실무자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해서 변호사를 찾을 때, 제가 변호사라고 했더니 목소리 톤이 바뀐다거나… 하는. 단체의 실무자가 없어서 모든 실무를 제가 직접 하는데, 제가 숫자에 어두워서 홈택스 등 세무 신고에서 오류가 날 때. 뭐 그럴 때.

이혜정 : 현재 주로 진행하는 공익 사건은 어떤 사건들인가요.

이소아 : 장애인권 관련해서 근육병 환자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활동보조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소송,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사건들 중 특히 태국 여성들이 한국에 데려와져서 성매매를 하도록 강요당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는데 그 여성들에 대한 지원, 뇌전증 환자 장애등급변경취소소송, 결혼이주여성의 이혼사건, 이주노동자의 난민불인정처분취소소송,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원, 국가보안법 형사변론, 세월호 현장에서 70일간 근무하다가 자살하신 진도경찰분 유족의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등…. 뭐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입니다. 올해에는 주로 장애인권분야와 이주노동분야에 집중하려고 해요. 농업법률분야도 신경 쓰고 싶은데 아직 여력이 없네요.

이혜정 : 다양한 사건들을 두루 하시네요. 광주에서의 공익사건 현황이나 루트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소아 : 주로 단체들을 통해서 진행돼요. 성매매피해여성상담소, 성폭력 상담소, 장애인권센터,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달장애지원센터, 이주노동자 상담소 등. 저희 단체가 상담소처럼 붙박이로 상담하는 인력이 배치될 수는 없는 구조여서 개인이 직접 찾아오시는 경우는 아직은 잘 없어요.

이혜정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이소아 : 2014년 겨울 여수의 한 유흥주점에서 여성종업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은 원래 조용히 묻힐 뻔했는데, 함께 일했던 동료 여성 9명이 업소를 나와 광주에 있는 언니네 상담소에 제보를 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어요. 보통 다른 성매매 관련 사건의 경우 동료들이 이렇게 증언해주지 않아요. 왜냐하면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의 생계가 달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9명의 여성 모두가 업주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일관되게 증언해 주었어요. 9명의 여성은 수사과정에서만도 각 2-3회 조사를 받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업주가 혐의를 부인해 모두 법정에서 2-3시간씩 증언을 했었거든요. 그 과정이 언니들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증언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업주들도 상당한 처벌을 받았구요.

여수 여성 사망 사건 언니들의 손

‘여수 여성 사망사건’에서 흔들림 없이 증언했던 ‘언니들’의 손. 이소아 변호사 제공

이 사건은 제가 일을 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여성들이 용감하게 증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건이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진도 경찰분 유족보상금거부처분취소소송 1심에서 승소했을 때, 1심만 거의 2년이 걸렸는데요.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심리적 부검이라는 입증방법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자료도 많이 찾아보았던 사건이라 보람이 되는 사건이었어요. 아직 2심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요.

이혜정 : 활동가와 변호사 그 경계선에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소아 : 변호사와 활동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거죠. 활동가는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활동가로서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며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저와 맞아요. 반면 변호사로써 거리두기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래야지 나의 전문성이 인정받고, 내가 제출하는 서면에 힘이 실리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이 부분의 강약을 조절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럼에도 당사자, 단체 분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아요.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거든요. 저는 ‘내가 이 문제 전체를 해결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일하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야 할 부분을 다하는 것일 뿐이지, 그 결과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혜정 : 광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소아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든든하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혜정 : 저희 단체가 광주에 있긴 하지만 저희가 다루는 인권 이슈들이 단지 광주에만 한정되는 문제들이 아니에요. 장애인권, 이주노동자 인권도 마찬가지로 저희가 다루는 문제들이 결국 관련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일들이더라, 그래서 인권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게 돼요. 광주전남지역에 사는 분이 아니더라도 저희 단체가 다루는 문제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해주시길 바래요. 여러분의 후원이 작지만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낼 원동력이 될 것이거든요. 후원신청은 www.companion-lfpi.org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7/02/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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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 워크샵 소식

 

국제통상위는 2015. 7. 17.∼18. 경기도 용인 파운타운에서 워크샵을 가졌습니다. 다들 업무로 바쁘신 가운데에도 준비를 많이 해 주셔서 1박 2일의 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샵 발제를 나누는 과정에 발제부분보다 참가자가 많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사다리타기를 통한 엄정한 분배로 발제를 맡지 못하신 분들을 위로할 수 밖에 없는 뒷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선 워크샵의 꽃인 발제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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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제도론중에서 김종우 변호사님께서 ISDS 분쟁해결절차 일반론을, 임영환 변호사님께서 ICSID 중재절차에 관한 연구 부분을, 오현정 변호사님께서 ISDS와 최종성의 원칙 부분을, 차명심 변호사님께서 ISDS와 투명성 확보를 위한 국제적 논의 부분을 맡아서 발제를 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ISDS 비교 및 사례연구와 관련하여 박삼성 변호사님께서 우리나라가 체결한 국가별 투자협정에 포함된 ISDS 규정의 비교, 분석 부분을, 노주희 변호사님께서 미국투자자들이 세금 부과한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S 사례 분석 부분을, 박일지 변호사님께서 사법작용에 관한 ISDS 사례 분석 부분을 발제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송기호 변호사님께서 TPP의 현황과 대응과제를 발표하시면서 워크샵 1부의 막을 내렸습니다.

 

노주희 변호사님의 국민MC급의 사회로 발제를 마치고 드디어 바비큐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우를 가져오신 임영환 변호사님께서 직접 요리까지 담당해주시는 멋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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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뒷풀이의 메인 음료는 역시 요즘 대세남인 백종원표 수박소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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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과 음료가 있는 베란다에서 신입 이연지 변호사님, 오현정 변호사님의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뒷풀이가 시작되었고, 밤 깊은 시간까지 멋진 음악을 배경으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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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가볍게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며, 다음 워크샵을 기약하면서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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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8/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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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민변 신입회원 MT 후기

 

 - 황세훈 회원

 

내가 민변에 전화를 건 적은 몇 번인가 있었지만, 민변에서 전화가 오기는 처음이었다. 4월 첫 번째 주말에 시간이 되는지를 물었고, MT에 참석할 의향이 있는지 묻더니, 기획단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그렇게 아주 간단히 MT 기획단에서 일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좋은 기회는 늘 덜컥! 하고 얻어걸렸다는 걸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권유해 준 조영관 변호사님을 떠올린다. 또 내년에 내 전화를 받을 어느 후배님을 생각한다.

 

첫 회의는 3월 17일에 있었다. 민변 회원팀 5분과 신입회원 5분이 모여 앉아 MT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장소를 확정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필요한 소품들을 구상하고, 몇몇에게 순서별 진행자를 맡겼다. 그리고 조금 더 진지하게 먹을거리를 고민했다. 저녁 식사를 정하고, 게임 중 간식을 정하고, 뒤풀이 안주를 정했다. 민변의 모든 회의들은 밥을 먹으면서 해서 정말 좋다. 회의 전날 방송된 ‘태후’에서 ‘송송커플’이 먹던 ‘돌비’를 먹으며, 다음 회의에도 참석할 것을 다짐했다.

 

3월 30일에 두 번째 회의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보다 구체화하였고, 그날 밤 신입회원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몸풀기게임 및 자기소개 시간을 위한 자료와 소품들을 준비했다. 오락 혹은 게임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늘 막연히 ‘나는 이런 분야에는 재능이 없지’라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경험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좋은 사람과 같이 하면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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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를 시작하기 3시간 전, 함께 진행을 맡은 동기와 K호텔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오렌지주스가 12,500원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4,000원짜리 케이크와 물을 주문했다. 자료 준비를 마무리하고 PPT를 넘기며 진행을 연습했다. 음식주문팀, 장보기팀과 카톡을 주고받으며 하나씩 계획대로 준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즐겼다. 물론 예상치 못한 사건도 일어난다. HDMI 케이블을 준비하기로 한 변호사님에게 키우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MT 전날 밤 그 녀석이 케이블을 물어뜯었다거나 하는 하찮은 사건 말이다. 연락을 받은 장보기팀이 마트에서 새 케이블을 구입해왔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둘씩 회원들이 도착하였다. 초면에 건네는 어색하지만 호기심어린 인사, 지인들끼리 안부를 묻고 이어지는 수다, 누군가를 새롭게 소개시켜주는 즐거움. 따듯한 분위기가 감도는 테이블들이 김밥을 입에 넣은 회원들로 하나씩 채워졌다. 이어서 민변 회장님의 환영인사를 듣고, 김지미 변호사님께서 민변 및 위원회의 활동을 소개하셨다. 다양한 위원회들에 대한 소개를 들으면서 각 위원회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지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활동 중인 위원들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본격 ‘친해지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고, 조원 이름 외우기, 조원 이름으로 사자성어 만들기, 헌법 조문 맞추기 등의 게임이 이어졌다. 게임의 열기는 뜨거웠다. ‘조원 이름 외우기 게임’에서는 조원들의 이름을 속사포 렙으로 쏟아냈고, 중간에 박자를 놓친 변호사님은 머리를 움켜쥐며 자책했다. ‘사자성어 만들기 게임’에서는 난이도를 낮춰달라는 원성으로 연회장이 시끄러웠고, 조원들의 이름을 모아 ‘동변상련’을 만들어낸 조가 1등을 차지하였다. ‘헌법 조문 맞추기’는 수많은 빈칸들로 인해 참가자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었지만, 몇 개의 힌트에 힘입어 곧 승리의 환호를 내지를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막내들이 준비한 게임을 유치하다 하지 않으시고 열정으로 함께해주신 변호사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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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게임 사이사이에는 자기소개의 시간을 만들었다. 무작위로 주어진 키워드를 통해 조금 더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고, 취미 또는 관심분야를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취미는 사랑’이라는 매우 인상적인 소개를 한 신입회원이 있었고, 밤새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 이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아쉬웠던 것은, 개인을 소개하는 시간이 위원회의 홍보 시간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이다. 위원회를 홍보해야 한다는 선배님들의 절실한 마음은 십분 느껴졌지만, 이를 위한 시간을 따로 정하고 자기소개 시간에는 본인에 대한 소개에 더 집중하도록 진행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는 내년 MT를 진행할 후배님들을 위한 조언에 포함하기로 한다.

 

연회장에서의 1부 행사를 마치고, 2층 별실로 이동하여 뒤풀이 자리를 이어갔다. 족발, 보쌈, 치킨 등 육류와 과일, 과자 등의 안주를 늘어놓고 소주와 맥주의 향연이 벌어졌다. 사이사이 추가적으로 위원회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모든 문제들은 결국 과거사위원회의 사건이 되는 것’이라는 과거사위의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국제연대위원회 변호사님은 UN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셨고, 아동위원회 변호사님은 ‘Save the Children’에서 아동 체벌의 전면적 금지를 위해 일하며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평화peace’를 주제로 공부하신 변호사님은 체벌금지에 대한 ‘평화적’ 관점을 들려주셨고, 우리는 함께 아동의 의미, 체벌과 벌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화의 뒷면에는 폭력이 있으며 그렇게 체벌금지와 평화에 대한 연구가 연결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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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다가도 한 곡조 노래를 부르면 또 흥겨워 술을 마셨다. 사무총장님께서 ‘사철가’를 완창하셨고(완창이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었다), 신입회원 하나는 온통 음이탈 창법으로 신승훈의 노래를 열창했으며(그가 이 글의 저자이다), 선배변호사님 한 분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옥중서신에 곡을 붙여서 불러주셨다. 마지막으로 이동화 간사님께서 ‘걱정말아요 그대 -이적’의 MR에 맞추어 ‘걱정말아요 그대 -전인권’을 부르자 모두가 함께하는 감동의 합창이 뒤풀이 자리를 뒤덮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면서 16년 민변의 신입회원들끼리 따로 모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8명 남짓이 동그랗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비슷한 고민들, 공통의 씹을 거리가 있었고 더불어 서로에게서 각자 다른 다양한 매력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빠르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함께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민변이라는 이름 아래서 앞으로 우리가 활동할 모습을 그려보았고, 그 그림 속의 나는 혼자가 아니라 옆에 앉은 동기들과 함께이기에 마음이 따듯하고도 든든했다.

 

기록상, “굿밤~”이라는 마지막 카톡은 새벽 5:22 이었다. 3시간 뒤인 8:30, 12명의 생존자들은 호텔 앞 식당에서 연포탕을 나누어 먹고, 동기 모임 날짜를 정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으로 헤어졌다.

 

단 한 번뿐일, 나의 신입회원 MT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졸린 밤처럼 몽환적이고 기분 좋은 기억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민변에서 동기들과 함께하거나 후배들의 신입회원 MT에 참석하는 날에, 나는 다시 그 추억을 꺼내볼 것이다. 혹은 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문득 ‘내가 왜 여기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라는 의문에 그 날을 기억할 수도 있다.

 

함께 준비했고, 함께 즐거워했고, 함께 추억할 신입회원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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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억을 만들어주신 선배님들과 동기님들, 특히 같이 사회를 보며 모든 준비를 함께해 준 동기 이영민 변호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내년에 있을 후배님들의 신입회원 MT에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것을 약속하며, 다분히 ‘주관적인’ 후기를 마친다.

수, 2016/05/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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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월에 있었던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가하였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민변은 지난 2001년부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협의지위를 가진 NGO 단체로 국내 인권시민단체와 연대하여 매년 국내 인권이슈를 유엔에 알리는 대응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2016년 6월 13일부터 7월 8일까지 개최되었고, 민변에서는 황필규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님과 남세영 국제팀장이 6월 13일부 터 6월 17일까지 참석하였습니다.

 

□ 유엔인권이사회 참가

- 6월 17일에 있었던 인권이사회 회의에서는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유엔 특별보고관”이 지난 1월에 한국을 방문해 조사한 내용에 대한 한국보고서가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 특별보고관은 우리나라의 집회결사의 자유 실태에 대해 실질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집회, 차벽과 물포 사용, 집회 참가자에 대한 민형사상 탄압, 교사와 공무원 등 노조 설립의 어려움, 기업의 노조 무력화 등을 지적하면서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한국정부에서도 대표단이 참석해 특별보고관의 보고 내용에 대해 물포는 폭력적인 참가자들에만 엄격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용하고 있고, 백남기 농민 사건은 철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합법적 집회의 평화로운 참가자들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했습니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답변에 대해 민변을 포함한 한국 인권시민단체 대표단은 백남기 농민의 자녀 백민주화씨를 발표자로 내세워 한국에서는 집회가 범죄로 규정되고 있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반박하는 구두발표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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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 관리에 대한 권고의 국가이행에 관한 비공식 토론회 개최

- 민변 참가단은 또 참여연대, 코쿤, 민주노총 등의 국내단체들, 그리고 CIVICUS, Forum Asia 등의 국제인권단체들과 연대하여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을 모시고 말레이시아와 한국에서의 집회 실태를 보고하는 비공식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집회결사 특별보고관은 지난 3월 인권이사회에서 자신이 발표한 집회 관리에 관한 실제적 권고를 만들게 된 배경에 관하여 소개하였고, 말레이시아 인권단체 발제자와 국내 시민단체 발제자가 각 나라의 국내 이행이 되고 있지 않는 실태를 발표하며 활용 방안에 대해 토론하였는데요, 유엔 관계자, 각국 대표부, 국제인권단체 등 약 60여명이 참석하여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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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본부 앞 거리캠페인 개최

- 민변 참가단은 또 민주노총, 참여연대, 코쿤과 함께 유엔 본부 앞에서 백남기 농민의 건강 회복을 염원하고 집회 시 물포 사용 금지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포함해 구속된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였습니다.

- 유엔 관계자, 제네바 시민 등 많은 분들이 뜻을 함께 하는 연대메세지를 작성해 주었고, IUF, SUARAM, Forum Asia, BWI 등 국제인권단체에서도 동참하여 함께 캠페인을 진행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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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외에도 민변 참가단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OHCHR) 소속 여러 인권 담당관들과 면담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유엔 본부를 방문하는 기회에 가능한 한 많은 인권 담당관들과 직접 만나 국내 인권 현안을 다시 상기시키고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 해주면서, 향후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이나 유엔 조약기구/ 유엔 헌장기구의 인권 메카니즘상 한국보고서 작업에도 긴밀하게 연락하며 국내 NGO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꾸준한 교류를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인권옹호자 담당관인 Ms. Elisabeth Andvig, 동아시아 지역 인권담당관인 Ms. Esther Lam,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 담당관 Ms. Margarita Nechaeva, 진실·정의·보상 및 재발방지 담당관인 Ms. Julia Raue,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인Mr. Dante Pesce와 담당관인 Ms. Natasha Andrews, 그리고 Mr. Ulrik Halsteen를 만나 한국 인권현안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국내 현안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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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UN 소속 담당관들과의 면담만큼 중요한 것이 다른 국제인권단체들과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민변 참가단은 국제인권단체 FIDH의 Mr. Nicolas Agostini와 Ms. Sonia Tancic, 국제인권단체 Article 19의 Mr. Thomas Hughes와 Ms. Barbora Bukovska, 국제식품관련산업노동연맹(IUF)의 Ms. Sue Longley 국제 담당관 외 5명의 관계자들, 국제인권단체 ISHR의 아시아 지역 담당인 Ms. Sarah M. Brooks를 만나 민변을 소개하고 국내 현안을 공유하고, 앞으로 국내 인권 이슈 전반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이어나가기로 약속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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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7/1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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