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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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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40

 

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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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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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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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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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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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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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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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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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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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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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오키나와 평화교류회 참여 후기

-김소리, 오현정 회원

   

교류(交流) :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여 흐름

처음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을 때에 이 기회는 제게 ‘교류’보다는 ‘여행’의 의미가 컸습니다. 저는 푸른 바다와 빛나는 햇살, 따뜻한 공기와 순박한 사람들의 가무잡잡한 얼굴… 이런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조금은 숨가쁜 일상을 떠나 작은 섬으로 도망하는 여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오키나와 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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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고, 오키나와 – 이시카키라는 신비한 산호섬과 바다는 그동안 여행하며 보았던 세계의 많은 아름다운 바다들 중에서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서 오키나와 사람들과 5일을 보내고 돌아와 되새겨보니 그 무엇보다도 ‘만남’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게 남았습니다. 친구에게 오키나와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할 때 저는 바다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한 9년의 시간 속에 촘촘히 쌓은 마음들이 만들어 낸 따뜻한 공기 – 밝고 맑은 웃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성취를 이루면 이루는 대로 아낌 없이 용기를 북돋아 주어 온 그 모든 시간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 물결은 막연히 아름다운 여행지를 꿈꾸며 처음 오키나와를 찾은 낯선 이방인이었던 제게도 밀려왔습니다.

교류(交流)는 사귀다 그리고 흐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이어 흐름을, 문화나 사상 따위가 서로 통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왠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교류’가 이렇게 멋진 말이라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교류한다는 것 – 차이를 넘어 평화를 생각하는 마음의 결을 확인하고, 연대한다는 것 – 이 아름다운 작업에 동행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내년에 더 많은 분들이 이러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날 – 이시카키 섬

이번 교류회에 민변 측은 21명이 참가했습니다. 대부분 민변 변호사들이지만, 너무나 훌륭한 통역사이자 교류회를 통해 사랑을 꽃피우신 김영환 선생님, 법무법인 이공에서 일하고 계신 민숙님, 김인숙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일하고 계신 영수님, 김인숙 변호사님 지인이신 이명숙 화가님도 함께하여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교류회의 장소는 이시카키 섬입니다. 첫 날 우리는 나하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이시카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저도 교류회에 앞서 있었던 정영신 박사님의 강연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오키나와라고 구획된 섬들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습니다. 오키나와 섬들 전체가 일본 본토보다는 대만과 가깝고, 심지어 본섬에서 이시카키 섬은 대만 방향으로 비행기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닿을 수 있을만큼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외양도 일본보다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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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공항에서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을 처음 만나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이시카키 섬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은 대부분 오키나와 본섬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시카키 섬에 처음 가본다는 분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시카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면서 이시카키 섬에서 태어나신 나카야마 센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는 오키나와 자유법조단의 큰 어른 같은 분으로, 권정호 변호사님과 함께 민변-오키나와 교류회를 만든 분이십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변호사가 되신 대 선배이십니다만, 가무잡잡한 얼굴에 가득히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분이셔서, 첫 인상부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시카키 섬이 있는 곳을 ‘아에야마 지역’이라고 하는데, 사탕 수수와 파인애플 농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신을 모시는 춤이나 노래가 많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1700년대에 거대한 쓰나미로 사람들이 다 죽고, 주변에서 이주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태풍 피해로 유명(?)하기 때문에 근래에 건축한 집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집입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이나 대만과 많이 교류하고, 삼국의 어민들이 공동 어장에서 어업을 하고 있습니다. 본섬과는 달리 미군기지도, 자위대 기지도 없는 평화로운 곳입니다만, 최근 일본 정부가 자위대 기지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에야마 제도는 일본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동 어장에서의 어업 분쟁 한 번 발생하지 않았을 만큼 우호와 연대의 정신으로 삶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낸 분쟁의 불씨가 자라고 있어 안타깝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숙소인 미야히라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짐을 풀고 근처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거리와 띄엄 띄엄 있는 건물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식당에서 삼삼오오 둘러 앉아 더듬 더듬한 일본말, 한국말, 영어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재일동포인 백충 변호사님의 진행으로 교류회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두 번째 참가한 사람들, 주니어 변호사들, 선배 변호사들, 사무원들 등 몇 명씩 그룹을 지어 앞에 나가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교류회는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원들, 지인들까지 포함하여 다같이 어우러지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사무원 분들의 활발한 참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참여하기 시작했다가, 미군기지와 평화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마리상의 유창한 한국어 자기소개에 교류회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었습니다. 더듬더듬한 일본어, 한국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서먹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오전 – 다케토미 섬 투어

둘째 날 아침에는 호텔 바로 앞의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거리의 다케토미 섬으로 향했습니다. 다케토미 섬은 전통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작은 섬마을입니다. 선착장에서 작은 버스를 타고 5분을 달려 마을로 들어서자 나카야마 센세가 어릴 적에 몰았다는 물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소가 끄는 차를 타는 것으로 다케토미 섬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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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가 이끄는 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물소를 모는 할아버지가 다케토미 섬에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해주셨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농경용으로 사용하던 물소를 가지고 오면서 물소가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카야마 센세도 어릴 적에는 물소를 매일 모셨다고 합니다. 우리를 태워준 물소는 피이스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에 네 번씩 사람들을 태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은 문화재 보존 지역으로 집집마다 전통식 지붕을 설치하고 부엌을 따로 짓고 있습니다. 집에 차를 들여 놓으려면 국가에 허가를 받아서 마당을 넓혀야 한다고 하는 등 불편함이 많지만 전통 보존에 따라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은 없다고 합니다. 다케토미 섬에는 우타키라는 자연신을 믿는 전통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일본식 신사와 도리이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살던 아름다운 아사도야를 도시의 한 관리가 첩으로 들이려고 유혹하였으나 섬 사람으로 살겠다며 지조를 지켰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아사도야노 우타’라는 노래가 전하여져 오는데, 할아버지가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모두 함께 불러보았습니다. 이쪽 지방 사람들은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11월에는 이틀 밤을 새워서 춤을 추는 축제도 열린답니다. 그 동안 마시는 술은 모두 공짜라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마을을 둘러 본 뒤에는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슬아슬한 좁은 계단 끝 전망대에서 마을 조망도 내려다보고, 한적한 골목 골목을 걷다가 쉬기도 하다가 식사 장소로 갔는데, 근처 해변에 다녀온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 내서 저와 소리, 민숙씨는 점심을 포장하기로 하고 15분간 열심히 걸어 해변에 다녀왔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이시카키의 바다였는데, 투명하리만치 맑은 민트색 물빛과 희고 보드라운 모래가 이루는 신비로운 바다 풍경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2일차 오후 –세미나

한적하고 여유롭던 다케토미 섬의 잔상에 푹 빠져 있는 상태에서 세미나 장소로 향했습니다. 학교 교실 같은 아담한 공간에서 제9회 평화교류회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 세미나가 잘 될까 싶기도 했는데, 김영환 선생님의 동시 통역이 너무나 훌륭해서 무리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양국의 치열한 현안들 때문인지 세미나는 상당히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미일 신 가이드라인과 안보법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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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세션은 하야시 치카코상 변호사님이 <미일 신 가이드라인의 개요와 안보법제>에 대해 발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최근 일본 젊은 층들의 활발한 집회 시위 참여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입니다. 미일 가이드라인의 법적인 성격을 검토하고 그 동안의 개정의 흐름에 비추어 2015년 가이드라인의 기본 전제와 주요 내용, 당시 국회 심의를 통과했던 안전보장 법제와의 관련성 및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 주셨습니다. 이어서 심재환 변호사님이 2015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안보법제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해 주셨습니다.

토론에서는 일본의 안보법제 반대 운동에 대한 논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움직임, 변호사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다양한 내용들이 다루어졌습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나라의 상황과 상당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일본은 전후 군대가 아니라 경제번영에 방점을 찍는 요시다 시게루의 비무장 노선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는데, 반면 키시노 고스케는 전쟁 전의 모습을 회복하여 무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 군대를 주장하여 왔습니다. 아베는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여 평화 헌법을 ‘미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일미간의 공동 군사 대응력을 강화하고 군사 대국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익 교과서 장려 활동을 통해 전쟁에 찬성하는 국민의식을 만드는 ‘국가 만들기’ 작업에 한창입니다.

이에 반대하며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집회 시위와 관련하여, 오키나와 변호사들은 주부나 젊은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한 SEALs의 운동의 성격과, 정부 친화적 헌법학자조차도 입헌주의 위반을 지적하는 등 학계의 적극적인 반발이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1960년대의 안보 투쟁은 조직된 사람들이 위주였던 것에 반하여 지금은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 국가에서 군사 국가로 전환한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평화 헌법이 상당히 뿌리 내렸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시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국가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08 촛불집회의 경험이 있지만, 일본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의 대규모 공동 행동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무적이지만, SEALs에 대해 우익 미디어의 공격이 계속되는 등 시민들을 개인 개인으로 분열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어 법률가의 문제제기가 중요하다고 느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연대 활동을 계속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SOFA 민사청구권

한국의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한미SOFA의 민사청구권에 대해 발제를 해주셨고 이어 오키나와의 기타지넨 변호사님께서 미일지위협정의 민사청구권에 관하여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민사청구권의 내용의 대체로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한국/일본 정부와 미군 당국간의 배상금 분담비율이 불공평하다는 점(미군 단독 책임인 경우에도 한일 정부는 25%를 부담), 비공무중 행위에 의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거나 미군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는데 미군 개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비공무중 행위에 대하여 미군 당국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하는 경우 “배상금이 청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내용의 “배상신청 결정 동의서”를 제출해야만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매우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보고(한국)

하주희 변호사님께서 지난 5. 28. 오산 주한미군기지에 탄저균이 반입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주한미군 측은 폐기확인서를 질병관리본부로 제출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를 규율할 수 있도록 한미SOFA를 개정하는 등 재발방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김종귀 변호사님께서는 ‘미군기지 잔류 승인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보고해주셨습니다. 2014. 10. 23. 미국 워싱턴 D.C 펜타콘에서 한미 Security Consultative Meeting(SCM)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 서울 용산 소재 한미연합군사령부 본부 및 경기도 동두천에 위치한 210화력여단을 잔류하기로 하는 내용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하였고, 이에 민변 대리인단은 미군기지 잔류를 승인하고 공표한 국방부장관의 행위를 행정법상 처분으로 보아 취소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법원은 국방부장관의 행위가 통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 걱정되지만, 꼭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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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본 변호사님께서는 지난 해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께서 여론은 어땠는지 물어보셨고, 이에 한국측 변호사님들은 ‘종북’프레임으로 보도하는 언론 때문에 일반인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으나, 지식인층에서는 잘못됐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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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변호사님께서는 김인숙, 장경욱 변호사님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징계개시신청과 법무부가 권한 없이 변협 변호사징계위원회의 징계개시신청 기각결정을 취소하고 징계개시결정을 한 사건에 대하여 보고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가토 변호사님께서는 일본에서는 법무성에 변호사 징계에 관한 권한이 일절 없다고 하며, 한국 법무부에 변호사 징계와 관련하여 권한이 있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하셨습니다. 민변은 곧 법무부 징계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꼭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소송보고 (일본)

다카기 기치로 변호사님이 헤노코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에 대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매립승인처분을 취소하였으니 오키나와의 현재 가장 뜨거운 현안입니다. 나하로 돌아온 뒤에 일부는 헤노코 투쟁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신기지 건설 저지 투쟁 과정에서 섬전체회의 발족, 헤노코기금의 창설, 35,000명이 참가한 현민대회, 손에 손을 잡고 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운동 등 ‘All-Okinawa’라는 구호 하에 연대한 현민들의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연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이데올로기보다는 ‘오키나와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강조가 이러한 운동을 가능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그보다는 평화의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에하라 토모코 변호사님은 기지소음소송 중 아쓰기 4차 판결을 중심으로 발표해주셨습니다. 특히 자위대기의 비행금지 청구를 기지가 이전하는 2016. 12. 31.까지 ‘매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어쩔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부 인용하였는데, 수면방해 등으로 인한 인격적 이익 손상을 강조하는 판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미군기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행정처분의 금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각하하였습니다. 토모코 상은 소음 소송의 추세에 비추어 상당히 높은 기준의 배상을 받아낸 판결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비결(?)에 대해 묻자, 조용한 환경에서 사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고 정밀한 생활에 관한 인격적 평가가 높아졌다는 점이 설득되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변호인단은 2,30년 전에 비하여 정신적 손해의 위자료가 상승한 반면 폭음소송은 30년 전에 인용되었던 위자료 액수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폭음소송만 금액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는 점을 부각하였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2일차 저녁 – 공식만찬

열띤 세미나를 마치고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공식 만찬을 가졌습니다. 다양한 오키나와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엄청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는데, 저는 돼지 귀 요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해파리냉채인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요리사님께서 돼지 귀 요리라고 하셔서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ㅠㅠ).

이 날은 먼저 아키후미 마츠자키 변호사님, 하야시 치카코 변호사님 등 전날 환영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던 분들의 소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양측의 선물교환식이 있었습니다. 오키나와측에서는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티셔츠와 핸드폰 고리 모두 디자인이 너무 귀여웠고,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라 다양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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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측에서는 공식 선물로 한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심재환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이명숙 선생님은 따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심재환 변호사님은 아내인 이정희 변호사님이 만드신 쿠키를, 장경욱 변호사님은 아내가 만드신 비누를, 이명숙 선생님은 자신의 북아트 작품을 오키나와측에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키나와 교류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식사 때는 일부러 한국, 오키나와 사람들을 섞어 앉았습니다. 저는 처음 참여하는 거였기 때문에 사실 오키나와 분들이 매우 어색해서 자꾸만 저와 친한 사람들과 앉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이한본 변호사님께서 제재하셨습니다.ㅋㅋ 덕분에 오키나와 분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날 이시가키 섬이 고향이신 나까야마 변호사님, 마리상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었는데,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일본어만 가능하셔서 소통에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마리상이 한국어를 조금 하고 저도 일본어를 아주 조금 해서 어찌어찌 소통은 되더군요. 중간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소통에 힘겨움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시는 건 아닌지 걱정됐는데, 끝까지 저와 함께 식사를 해주셔서 감동받았다는..ㅋㅋ

중간에 식당 측에서 노래와 춤 공연을 해주어 다같이 춤추며 이야기하는 흥겨운 분위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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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로 간 곳은 노래 공연도 해주고 손님도 노래 부를 수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아저씨 두분이 오키나와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나중에 아리랑을 불러주시기도 했습니다. 장경욱 변호사님과 김자연 변호사님께서 오키나와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셨습니다. 한국 변호사들의 공연에 감동을 받은(?) 옆 자리 손님들이 저희에게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았던 술자리였고, 오키나와의 “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3일차

셋째날에는 이시가키 섬의 북쪽을 둘러봤습니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들은 주로 남쪽에 많이 살고 북쪽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는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세계 평화의 종이 있는 시네이 공원이었습니다. 세계 평화의 종은 유엔 본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 있는데요, 평화와 비폭력을 염원하며 매년 유엔 총회 개최일인 국제 평화의 날에 울린다고 합니다.

세계 평화의 종 옆에는 평화헌법 9조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를 새긴 비석이 있었습니다. 뒤에 비둘기가 바치고 있는 형상이었는데, 비둘기는 민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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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이 공원을 떠나 말라리아 희생자비에 갔습니다. 이시가키 북쪽은 오키나와 전쟁때 크게 공습을 당한 지역은 아니지만 말라리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전쟁 말라리아’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당시 일본군들이 식량 확보를 위해 주민들을 유병지역인 산으로 강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에 대한 보상운동이 일어났으나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희생자비 앞에서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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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반나 공원 전망대에 가서 이시가키 섬을 내려다 봤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고, 식당과 붙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도 조금 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한국 변호사님들에게 별도로 또 선물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야이마무라라는 이시가키 전통마을을 구경하고 산호초를 볼 수 있는 글래스 보트를 타러갔습니다. 화려한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니모 찾기에 열심이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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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유 일정을 가졌습니다.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바닷가에서 수영이나 스노쿨링을 했습니다. 저는 김인숙 변호사님, 장경욱 변호사님 등과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았습니다. 여기서 세월호 노래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을 하자는 제안이 있어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해변에서 노래와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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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류회의 마지막 만찬은 소고기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께서 특별히 저희를 위해 소고기 집으로 고르신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만찬인 만큼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했습니다. 사이토 변호사님과 기타 지넨 변호사님은 한국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나까야마 변호사님과 심재환 변호사님의 발언(? 아니면 연설?)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까야마 변호사님은 이시가키섬에서 자라면서 부모님께서는 사람이 성공하면 고향을 버리기 때문에 나까야마 변호사님이 너무 성공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변 분들과 고향을 찾아 고향에 대한 짐을 내려놓게 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ㅠㅠ그리고 이어서 평화교류회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같이 계속 노력하자는 취지로 이야기하셨습니다(정말 감동적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이 안나네요ㅠㅠ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유에 대해서 궁극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뼈아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전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만찬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 호텔로 돌아가 쉬었지만, 2차까지 가신 분들도 많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넷째 날 – 세월호 플래시몹과 헤어짐

이시카키를 떠나는 날입니다. 전날 해변에 갔던 몇몇이 배웠던 세월호 율동을 마지막날 아침 호텔 앞 잔디밭에서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습했습니다. 결국 나하 공항에서 세월호 플래시몹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거나 율동의 의미와 노래의 가사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공항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플래시몹을 지켜보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을 텐데, 조금도 빼지 않고 동참해 준 오키나와 교류회 분들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항에서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요 ^^ 오키나와 분들은 바로 일터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창 바쁜 시기에 끝까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공항에서 각자 선택한 대로 갈라져 일부는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헤노코 신기지 건설 반대 투쟁 현장으로, 일부는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일부는 자유여행을 택하여 각자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츄라우미 수족관 팀에 합류했는데, 박진석 변호사님께서 차 렌트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주셔서 정말 편하고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나하로 돌아와서 박진석 변호사님이 항상 가신다는 재키스 스테이크에서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돌아와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함께 하는 간소한 뒷풀이에 참여했습니다. 나카니시상과 케이타상과는 처음 인사했는데, 처음 만났지만 마치 오래 된 친구처럼 작은 펍에서 다트 게임도 하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도란 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년에 한국에서 봐요’하는 인사로 작별을 나누었습니다.

5일차

다섯째날 오전은 그야말로 자유일정이었습니다. 자녀 장난감 선물을 사러 가는 엄마팀, 츄리성 관광팀, 국제거리 관광팀 등 다양하게 무리지어 오키나와를 관광했습니다. 호텔에서 일하는 변호사님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소감

평화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다기 보다 그냥 오키나와라는 도시를 구경한다는 마음으로 생각 없이(;;) 참여했는데, 세미나도 너무나 유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교류회를 통해 한국과 오키나와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토론한다는 점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분들과 오키나와 분들이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매우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도 지금부터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교류회에서는 오키나와 분들과 더 많이 대화하며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렇게 의미 있는 모임에 함께 하게 돼서 매우 기쁘고, 교류회에 함께 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화, 2015/10/2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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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서 떠난 환상적인 남미 여행 – 4월 월례회 후기

조영관 변호사

남미 여행은 나에게 여전히 남겨진 버킷리스트다. 태양을 닮은 사람들의 정렬적인 삼바와 데킬라, 지구상에서 가장 길게 뻗어 있는 안데스 산맥의 압도적인 장관,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여전히 풀지 못하는 잉카 유적, 비현실적인 매력을 주는 우유니 소금사막 등 이곳 저곳에서 그동안 귀동냥, 눈동냥으로 들었던 남미 여행을 책으로 정리한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설렘으로 월례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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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공익변론센터 재심연구모임 활동을 준비하며 뵈었던 조용환 변호사님, 학창시절부터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던 선배님은 2016년 두 달의 시간을 내어 남미 여행을 다녀오셨고, 그 기록을 정리해 <안데스를 걷다>라는 책을 출판하셨다. 월례회 때 저자 사인을 받으려면 그래도 책을 먼저 사서 읽은 티를 내야 할 것 같아, 먼저 주문해서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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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아서 휘리릭 넘겨보면서 여행서적이라고 하기에 좀 부담스런 약 500쪽의 두툼한 두께에 한 번 놀랐고, 표지 사진(무지개산)을 비롯하여 책 곳곳에 담겨있는 보석같은 사진에 두 번 놀랐다(월례회에서 책에 담긴 사진을 직접 찍으셨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다). 마지막으로 꼭 들려보아야 할 명소도 빠짐없이 담겨있지만, 무엇보다 인문학 책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역동적인 남미 사회의 진지한 내면도 살짝 들춰볼 수 있는 역사의 기억들을 인권과 과거사에 대한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남미에 대한 열병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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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월례회보다 선배님들이 많이 참여해 주셨던 점도 좋았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며 현장의 감동을 되집어 보는 시간에는 몸은 서초동 사무실 귀퉁이에 있지만 마음만큼은 보고타의 광장에, 칠레의 기억과 인권 박물관에, 페루의 맞추픽추를 여행하는 것 같은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심재섭 변호사와 함께 진행한 토크 콘서트도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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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례회가 임기 중 마지막 월례회라며 활짝 웃어 보이시던 정연순 회장님께서 앞으로 저자와 함께 떠나는 남미여행을 기획해보겠노라고 하셨고, 그 순간 나를 비롯해 현장에 함께 했던 많은 회원들의 들뜬 두근거림이 전해졌다. 환상적인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참 아쉬웠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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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5/0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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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탈핵시대를 여는 울산시민 1000인 대토론회> 참가

지난 9월 24일 울산에서는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 주최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탈핵시대를 여는 울산시민 1000인 대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시민사회, 노동단체, 정당, 마을모임 등 210개 참가단체와 가족들이 함께 하는 행사였습니다. 민변 울산지부는 [신고리 5,6호기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가 출범한 지난 7월 19일부터 참가단체로 함께 하면서 지부장 김병수 변호사가 공동대표를, 사무국장 장석대 변호사가 집행위원을 맡아 활동하였고, 당일 토론에는 정기호, 장석대, 신지현변호사등이 가족과 함께 참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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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인 토론]은 당시 진행되던 정부의 공론화절차 관련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핵심쟁점에 대한 입장을 토의하고,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위한 울산시민들의 결의의 장”이라는 취지로 개최되었으며, 성인 870여명, 청년 30여명, 청소년 30여명,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어린이 100여명등이 참여하여 각 조당 10명 내외로 총 100개 조가 동시에 같은 자리에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울산지역 곳곳에서 각계가 참여하는 탈핵릴레이토론이 115회 개최되었고, [1000인 토론]은 각 릴레이토론의 성과를 종합하여 탈핵결의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40분간 진행된 선택토론에서는 “핵발전소 주변 서생면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이주, 건강, 생존권, 보상문제 등)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주제로, 이후 40분간 이어진 공통 토론에서는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날까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이 무엇인지”등에 대한 토론 등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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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 신고리 공론화위원회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로 결론을 내려 아쉽기는 하지만, 울산지역에서 광범위한 시민들이 참가하는 형태로 ‘핵발전소의 문제점과 탈핵의 당위성에 대해 토론하고, 이후 실질적인 탈핵활동’까지 이어지는 등 나름대로 탈핵운동의 외연을 확장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월, 2017/11/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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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위원회 활동소식

지난 해 광장의 촛불을 지나 장미대선을 앞두고 4월의 활발한 선거운동이 어색하기도 하고 새삼 감격스럽기도 한 요즘입니다. 국제연대위원회도 우리가 여기서 지금 할 수 있는 일, 다양한 인권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인권 규약들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국제사회에 알려야 하는 새로운 인권 이슈들을 정리하며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noname01<3월 정기회의에서 Human Rights Now 김창호 일본변호사님과의 특별좌담회>

2017년은 유엔 사회권규약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CESCR), 고문방지협약 (Committee Against Torture, CAT),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 (Universal Periodic Review, UPR) 의 대한민국 심의가 모두 있는 해입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국제인권네트워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법센터 어필, 국제민주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유엔인권정책센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구성원으로서 지난해 10월 ‘2017 유엔 심의 준비를 위한 시민사회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올해 한국 심의를 미리 준비해왔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특별히 국가별 인권상황정기 검토 (UPR)와 11년 만의 고문방지협약 (CAT) 심의 대응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1)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 (UPR)

UPR은 유엔 회원국들의 국제인권 규약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인권을 증진해야 할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기 위해 마련된 새로운 유엔인권메커니즘으로 4년 6개월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심의가 이루어 집니다. UPR은 한국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 이제까지 유엔이 한국 정부에 내린 권고사항 요약본 그리고 국내외 시민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 (이해관계자 보고서) 요약본, 이렇게 세 가지 문서에 기반하여 검토가 이뤄집니다. 올해 11월 제3차 한국심의가 예정되어 있으며, 민변이 사무국으로 참여한 NGO 보고서는 3월에 제출하였고 정부보고서는 8월에 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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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Rights Council During UPR On November 5, 2010 ⓒU.S. Mission/Photo by Eric Bridiers

민변에서는 NGO보고서에 전통적으로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에 대한 내용을 작성해 왔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올해 보고서에는 유엔이 한국 정부에 여러 차례 권고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사형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의 도입 등의 과제에 지난 5년여 동안 진전이 없었으며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역시 여전하고, 성소수자, 미혼모, 장애인, 이주민, 난민, 아동 등 소수자 집단에 대한 인권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담았습니다. 정부보고서가 제출되고 나면 NGO 사무국은 다시 로비문서를 작성하여 주한 외국대사관과 국내외 언론을 대상으로 국내인권 문제들을 공론화해 나갈 것입니다.

(2)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 이행 심의 (CAT)

민변은 1996년 1차 고문방지위원회 심의, 2006년 2차 심의에 참가해 주도적으로 국내 NGO를 대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1년만의 이번 3-5차 통합 고문방지협약 한국심의는 제 60차 CAT 세션 (4월 14일 – 5월 12일) 중 5월 1-3일에 열리게 되며, 민변에서는 황필규, 전민경 변호사님이 심의기간 동안 다른 NGO 대표단들과 함께 NGO 브리핑, 심의담당관 로비 등 제네바 현지 대응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현재 진행중인 제60차 CAT 세션은 http://webtv.un.org/live/ 에서 영상으로도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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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보고서에는 그동안 고문방지위원회에 제기되었던 국가기관에 의한 폭행, 가혹행위, 과도한 장구 사용, 집회·시위 진압과정에서의 무력사용, 국가보안법을 통한 자유의 억압, 구금시설에서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비인간적이고 굴욕적인 대우 또는 처벌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외에도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의 물대포와 캡사이신 사용, 세월호 유가족들의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탄압, 밀양·강정·쌍용자동차 집회시위의 국가폭력, 박근혜 정부의 예술검열과 블랙리스트 작성, 일본군 위안부 등의 내용을 포함했습니다.

많은 단체들이 함께 모여 UPR와 CAT NGO 보고서 이슈를 분담하고, 집필, 취합 후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데는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네바에서도 전략을 세워 제네바 주재 각국 대표부, 심의담당관을 직접 찾아가 우리의 이슈를 알리는 활동도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도 계속된 법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이슈,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 집회현장에서의 경찰 위법행위, 노동자의 죽음 등의 문제를 국제사회에 새롭게 알려야 하는 마음도 무겁습니다.

국제인권는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며 한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분야입니다. 국제연대위원회는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가 국제사회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며 계속해서 끈질기고 꾸준하게 활동하겠습니다.

화, 2017/04/2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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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부 소식 2016. 6. 23.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집시법위반 공익변론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4기 폭발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깨닫고 울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만든 네트워크 조직으로 민변울산지부도 참가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최근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관련 이슈로 탈핵공동행동이 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울산시청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울산시청의 고발로 현재 경찰수사가 진행중입니다. 그동안 동일·유사한 경우에서 일체 형사고소·고발을 당한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탈핵공동행동에서는 사안을 심각히게 보고 대응중이고 민변울산지부에도 변론요청을 하여 왔습니다. 이에 우리지부에서는 수사과정에서부터 함께 대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발전()의 광고비등 집행내역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울산시민연대와 공동으로 한수원의 “언론홍보비 집행내역등에 대한 정보공개거부처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2015년 6월 9일 제기하여(주심 한정희 변호사님), 2015. 10. 14. 원고 전부승소판결을 받았고, 2016. 5.경 항소심 역시 승소하였습니다. 현재 한수원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상고기각을 목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차원에서 지역시민사회와 공동행동을 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대한변협의 일명 테러방지법안 검토의견서에 관한 울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공동 성명서발표

2016. 2. 26. “대한변협의 일명 테러방지법안 검토의견서에 관한 울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본부와 소통을 거쳐 우리 지부 주도로 울산지방변호사회 회원 22명 연명을 받아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2016. 2. 27. 언론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월, 2016/06/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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