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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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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

익명 (미확인) | 목, 2015/09/10- 14:40

 

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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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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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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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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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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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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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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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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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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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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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부터 1박 2일 동안 파주에서 민변 통일위원회 워크샵이 열렸습니다. 워크샵 주제는 “통일위 화합과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바야흐로 문재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여 통일위의 새로운 비전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었는데 실상은 워크샵을 통한 통일위 단합이 우선이었지요

남한의 최북단 파주에 위치한 ‘착한 펜션’에 저녁 6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4시부터 한 분씩 출발을 알려왔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천낙붕 변호사님팀이 펜션의 정확한 위치와 그곳의 현황을 알리면서 출발을 독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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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도착해 동심으로 즐거운 천낙붕 변호사님❯

 

펜션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어서 번잡한 서울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좋았습니다. 짐을 풀고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동네 잔치가 열렸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음악이 끊이지 않고 약간은 소음이라고 생각될 정도여서 음악소리의 근원을 파악해보니 그 음악소리는 휴전선을 두고 남과 북이 서로에게 보내는 선전선동을 동반한 소음?이었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 대신 음악을 쏘아대는 “음악교전”이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네요. 씁쓸한 현실이었습니다.

6시를 전후하여 한분씩 도착하였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방이 공교롭게도 ‘백두산’과 ‘묘향산’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곧바로 식사준비. 풍성한 밥상과 다양한 주류를 맛나게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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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저녁식사와 반주로 단합을 다집니다.❯

 

준비성 좋은 채희준 위원장님이 막걸리만 해도 4종류를 준비해오셔서 밤 깊은 줄 모르고 맛나게 마시며 재미난 얘기와 향후 통일위 활동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오영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현장 월례회가 제안되어 즉석에서 강화도 교동도에서의 월례회가 결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워크샵의 묘미는 여유있는 식사와 반주, 그리고 주제를 정하지 않고 나누는 대화입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중간중간 기념촬영도 해가가면서 재미난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중간에 일어나야하는 변호사님들이 몇 분 있었습니다. 자리를 뜨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뜨는 분들을 그냥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 각자 노래를 하나씩 불러야 이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앵콜송까지 하나씩 더 부르고 3분이 먼저 자리를 떴습니다. 3분이 자리를 뜨는 중간에 휴식과 자리 정돈을 하고 다시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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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자동차 불빛을 이용하여 한 컷❯

 

다음 날은 반구정과 임진각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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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입구에서 ❯

반구정은 잘 알다시피 황희정승이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임진강 바로 옆에 위치해있어 참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임진강 주변을 따라 설치된 철책에 본래의 운치가 변질?된 듯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구질구질한 철책을 두르고 있어야하는지 답답했습니다. 반구정에서 내려다본 임진강은 평화롭게 흐르는데 어찌 우리 민족은 7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 통일위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구정 바로 아래 철책이 설치되어 있고 임진강 건너 편 강둑에도 철책이 설치되어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강건너가 바로 북한 땅이라는 착각 속에 재미난 얘기가 오갔습니다.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 상상에 맡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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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정 바로 아래 설치되어 있는 철책❯

 

반구정을 구경하고 임진각과 평화누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임진각은 이른 시간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망향의 서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려 실향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인데 외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습니다. 임진각 곳곳에 분단과 전쟁 때의 광경을 담은 사진이 있었고 북을 향해 달리고 싶은 녹슨 기차도 있었습니다. 유명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를 확인하였습니다.

1년 전인 2016년 6월 통일위는 “독일통일기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독일의 시골마을인 뫼들라로이트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한때는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동서독 분단을 기억하는 국경박물관으로 남아있었는데 많이 부러웠습니다. 참 아름다운 시골 풍경도 부러웠지만 이제는 분단을 과거로 기념하며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것이라 더 부러웠습니다. 임진각 역시 아름다운 곳이지만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의 임진각이 하루빨리 통일의 기념관으로, 분단을 과거로 기념하는 곳으로 남기를 가슴깊이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통일위 회원들은 임진각 3층에서 북쪽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2017년도 통일위 워크샵을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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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통일위가 방문한 독일 국경박물관이 있는 뫼들라로이트의 철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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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임진각에서 북쪽을 바라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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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3층에서❯

월, 2017/07/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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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변 사법위원회(위원장 성창익)에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위한 사법위원회의 노력

사법위원회는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청와대 및 검찰 고위직의 부정부패로 인한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였습니다. 검찰 외에도 검찰 고위직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는 별도의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하다고 보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여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대해 매달 열리는 사법위원회 회의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대한 사법위원회 차원에서의 논의는 월례 회의에서뿐만이 아니라 지난 8월 30일 국회의원회관 208호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입법토론회’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사법위원회 장주영 변호사님이 좌장을, 사법위원회 김선수 변호사님이 발제를 맡으셨으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도입 필요성, 권한 배분 및 운영 등의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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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사법위원회 성창익 위원장님, 김지미 변호사님이 참석하여 참여연대 등의 단체와 함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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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발의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에 관한 법안은 노회찬의원 등 11인이 2016. 7. 21.에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2001057)’과, 박범계의원, 이용주의원이 2016. 8. 8.에 발의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2001461)으로 총2개이며, 각 법안은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계류되어 있습니다. 위 법안들이 통과되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설치될 수 있도록 사법위원회는 앞으로도 더 많이 연구하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법위원회 회원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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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원회는 지난 10월 21일(금)부터 22일(토)까지 부암동 G하우스에서 회원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워크숍에는 15여명의 변호사 회원이 참석하여 검찰 개혁 등의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법정책 전문가인 선배님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사법위원회 선후배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수, 2016/10/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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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여성인권위원회 간다!

 

이예리 변호사

어느 해보다도 희망어린 정유년, 신입회원 이예리 변호사입니다. 지난 2017. 1. 19. 친구 유원정 변호사를 만나던 날 마침 인연이 닿아 여성인권위원회 1월 월례회의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미가입자가, 월례회에 참석해도 되는지 세미나가 있다하니 무엇인가 준비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긴장감에 손톱 밑을 뜯자 유원정 변호사는 “준비물은 몸과 마음”이라 하였고, 이에 용기 내어 미뤘던 민변 가입을 행하고자 친구를 따라 나섰습니다.

살짝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후다닥 유인물을 집어 들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위원장님을 시작으로 자기소개가 시작되었고, 제 차례가 되어 친구 따라 여성위 온 사연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인사가 끝이 난 후 본격적인 월례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위원회 활동 보고가 있었습니다. 여성인권위원회에서는 가족법연구팀, 빈곤과 여성노동팀, 여성폭력방지팀과 이주여성법률지원단 등 각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변호사님들을 뵈면서 적극적이고 온화한 목소리를 가진 분들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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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세미나 주제는 ‘디지털 성폭력’이었습니다. D.S.O.(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의 하예나 대표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설명해나갔습니다.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인지된 사건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현황 및 그에 대한 수사당국의 안일함 등 제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작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술이나 약에 취한 여성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듯 강간을 하고 여성의 몸에 이를 인증하던 소라넷에 대해 방영되었던 내용들이 떠올랐습니다. 세미나를 들으면서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끔찍함과 당혹감이 다시 느껴졌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 개씩 성범죄 영상이 올라오고, 그 속에는 실제 강간 영상이나 아동 청소년 영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발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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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참여하며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시선에 노출되는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모르는 여성도 강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타인과 돌려보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는 시각은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며, 더욱 끔찍한 문제는 이러한 영상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오지만 수사당국에서는 어떠한 예방책이나 적극적인 수사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가벼운 어감이 들었지만,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딸이고 누나이며 동생인 화면 속의 여성이 2차, 3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이러한 영상을 찍고 유포하는 이들이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디지털 성범죄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다는 생각이 든 세미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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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O.는 수사당국에서 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D.S.O. 회원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수많은 동영상을 보고 추려 신고 및 민원을 제기하고 있었고, 그 존재만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일하고 있는 D.S.O.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친구 따라 갔던 여성위 월례회의에서 따뜻한 변호사님들도 뵐 수 있었고, 사회문제 및 그에 대한 다양한 법적 대응도 공부 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지방근무로 인하여 매달 열리는 월례회를 찾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 2017/02/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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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위원회] 위기는 기회를 싣고
부제 : 한미 FTA 개정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지현영 위원(변시 6회)

 안녕하세요, 회원 여러분.

 2017년 상반기에도, 국제통상위원회는 여러 외교·통상 분야 이슈에 대응하며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일본 수산물 방사능 검역 정보공개청구, 쌀관세화 양허표 수정안 정보공개청구, 국세청에 대한 론스타 정보공개청구소송의 상고심이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론스타 사건의 경우 1심에 이은 항소심 승소를 이끌었습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5조원대의 소송은 그 동안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었지만, 통상위원회의 문제제기로 그 실체가 서서히 들어나게 될 것이며, 적폐청산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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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을 초청하여 ‘트럼프의 한미 FTA와 사드 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5월부터는 Bossche 교수의 ‘Essentials of WTO Law’라는 교재로 알찬 스터디를 시작하였습니다. 부담없이 국제경제법 지식과 영어 실력을 동시에 증진시키는 이 자리로 여러분의 합류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번 소식에서는 최근 가장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 FTA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다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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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06_ROK_Protest_Against_US_Beef_Agreement_04 ⓒChongDae from wikipedia

 한미 FTA는 2006년 처음 공식화된 이후 재협상을 거쳐 2012년 3월 15일 비로소 발효되었습니다. 그 과정 동안 국내의 각계각층은 많은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대통령은 2016년 대선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협상이라며 수차례 문제시하더니,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 ‘재협상’을 거론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후 미 무역대표부(USTR)는 6월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 무역의 장벽을 제거하고 협정의 개정 필요성을 고려하고자 한미 FTA와 관련한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한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협정문에 의하면, 한 쪽 당사국이 개정 협의 요청을 하는 경우 상대국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재협상에 대해 합의한 바가 없다며 우왕좌왕하여, 사실 은폐 등의 의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예견되었던 일이었던 만큼, 이러한 안일한 자세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정부는 더이상 개정 국면을 막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미국과의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당초 FTA협상 과정에서 우려하였던 점과 발효 후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 되었는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번 개정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많은 통상전문가들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S) 도입으로 한국 공공정책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을 정확히 짚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중소기업 적합업종제’,‘이동통신 기본요금 폐지정책’, ‘저탄소차 지원금 제도’ 등 많은 경제민주화 정책이 좌절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식품에 대한 무분별한 개방 및 약품에 대한 특허권 강화는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상도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의료, 철도 등 공공 분야가 민영화될 가능성 또한 예견대로 커지고 있습니다. 한미 FTA로 대미 흑자가 늘었다고 하나 이는 일부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채웠을 뿐, 고용과 소득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즉, 한미FTA는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한 협상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연일 한·미 FTA를 비판하며 재협상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실리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즉 한·미 FTA 개정도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강조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이 조만간 NAFTA 재협상을 기준으로 우리를 입맛대로 압박해 올 것입니다. 정부는 만반의 대비를 갖추어 이번 개정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비단 한미관계를 넘어 앞으로 다른 양자 및 다자 협정에 미칠 중대한 영향력 및 통상과정의 투명성 여부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인지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52개국과 FTA를 맺은 FTA 강대국임에도, 한국형 원칙을 세우지 못했으며 강대국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데 급급해왔습니다. 또한 국민의 재산권은 물론 환경, 인권 등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임에도, 외교문제라는 핑계로 협상이 밀실에서 불통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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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한민국 청와대 facebook 페이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개정과정에 대하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당당히 임하라고 주문하였습니다. 이를 환영하며,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기나긴 여정을 준비하는 새 정부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요구합니다.

 첫째, 경제민주주의 및 임금주도성장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경제정책을 확고히 하여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경제정책에 따른 한국형 FTA 모델을 세워야 합니다. 셋째, 국민에게 개정 과정과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넷째, 한미FTA를 반드시 사수해야 할 금과옥조로 삼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합니다.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와 대응은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영광스러운 과업이 될 것입니다. 위기의 우려 속에 기회가 있는 셈입니다. 국제통상위원회는 그 과정 내내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며 더 분주히 활동하겠습니다.

월, 2017/07/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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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합시다.

- 오민애 회원

“사서 고생합시다”

 

지난달 30일과 31일 민변 총회에 처음 참석한 후 지금까지 머리에 맴도는 한마디입니다. 총회 시작 전 사전행사에서, 한승헌 변호사님께서 영상을 통해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민변이 소외된 이들,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없는 이들 곁을 28년동안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이자 앞으로도 지켜나갈 수 있는 길이 한승헌 변호사님의 이 말씀에 모두 담겨있는 것 같았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는 따끔한, 그러나 너무도 소중한 채찍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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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난 이듬해 민변이 태어났고 2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민변의 회원으로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던 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초등학교부터 학교들을 모두 마치고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기에 이르게 되는 스물여덟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민변과 함께 해오신 선배님들을 뵙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총회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사전행사는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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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행사에서는 민변의 발자취와 민변에 몸담으셨던 많은 분들의 축하인사가 담긴 영상을 보고 총회에 참석한 분들이 민변이 지나온 길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갔으면 좋겠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처음에 총회 공지를 보고 참여하고자 했을 때는 ‘회원 1000명’, ‘28차 총회’라는 단어만으로는 그 단어의 무게감이 쉽게 와닿지 않았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변호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51명으로 시작한 민변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을 기회로 만들고, 있어야 할 자리를 만들고 지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묵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민변이 지켜왔던 가치에 대한 각자의 소회, 민변에 대한 애정 그리고 후배 변호사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까지… 긴 설명이 아니어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서로 직접 만나기 어려운 각 지역지부의 변호사님들의 소회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도 뜻깊었습니다. 지역지부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갔으면 좋겠는지 한 분 한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애정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30차, 40차 총회를 열고, 회원 1500명, 2000명이 됐을 때, 그 시간을 스스로 민변과 함께 했다고 자부할 수 있고 민변과 민변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을 다른 이에게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그럴 수 있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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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 덕분에 총회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얻을 수 있었습니다. 1박 2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렇게 많은 걸 가져올 수 있도록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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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6/1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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