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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톡] 평등 나눔 소통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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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톡] 평등 나눔 소통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익명 (미확인) | 월, 2015/08/10- 17:21

평등 나눔 소통이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박차옥경 ㅣ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


인터뷰 : 이경민 ㅣ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올해 28년째를 맞이하였다.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만들고 여성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7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그동안 쉼없이 달려온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인권삼법이라고 불리우는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을 이루었고, 호주제폐지 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여성 차별 및 억압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역할과 책임은 여전히 막중하다. 앞으로 더 달려야만 한다.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복날, 수박한통을 짊어지고 박차옥경 사무처장을 만나기 위해 영등포 여성미래센터를 찾아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에 근무한지 꽤 오래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98년도.. 28살에 한국여성단체연합에 입사했고 그해 3월에 결혼했다. 2000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2002년도부터 약 2년 동안 쉬고, 다시 복귀해서 지금까지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기억나는 사건이 있는데, 복귀하자마자 영유아보육법이 통과되어 논평을 썼다. 그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4년 1월 8일이었다.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어떻게 여성운동을 시작했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지역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연이 닿아 만났던 분들이 여성운동을 했던 분들이었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을 같이 하면서 지향하는 바가 같았는데 여기서 느끼는 편안함과 믿음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현재 위치에 있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에게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일터이자 나의 가장 큰 사조직이다.

 

직장을 사조직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한국여성단체연합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운동을 하다보면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보통 ‘여성’이라고 하면 생물학적인 공통성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각각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공통의 과제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97년도에 창립을 했는데 여성인권삼법이라고 불리우는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을 2000년대 초반까지 추진했고 2005년도에 호주제 폐지운동을 했다. 그 이후 공통된 과제를 10년 동안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단일 조직이 아니다. 7개의 지부와 29개의 회원단체가 있다. 각 단체별로 중점으로 하는 사업들이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조직이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어떤 시점에서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부적인 고민들은 이러하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사회복지 같은 경우 제도자체가 성평등하게 구성되지 않고 몰성적으로 구성된 부분들이 있다. 사회복지의 기본설계의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해야 하니 더 복잡하다.

 

호주제 폐지는 전여성계는 물론,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했었던 운동이다. 그러나 그 이후 공통된 요구가 무엇인가? 다양성의 시대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하나의 의제를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제도적인 부분의 개선을 위한 운동을 함께 진행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상당할 것 같다. 한국사회의 많은 변화들의 비해 사람들의 내면 변화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그렇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보육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70년대 산업화시대부터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음에도 집안일과 아이들의 양육은 여성들의 책임이라는 사고는 여전했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변화는 있었다. 과거에는 양육에 대한 책임이 오로지 개인(가족)의 몫이었다면 양육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데 정부, 공공의 영역에서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고 제도로 반영이 된 부분들이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내후년이면 30년이 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많은 여성운동단체들이 주장하던 것들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제도와 함께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제도와 인식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박근혜 정부가 여성의 사회진출을 도모하겠다고 하며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가서 기자회견을 했다. 여성의 빈곤문제, 보육, 폭력 등 여성이 처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남성이 생활로 들어오고 여성이 사회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남성은 그대로 있고 여성은 집안에도 사회에도 있어야 하는 성역할을 고착화 시키는 방식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시간 선택적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진정 여성을 위한 것일까? 착시효과이다.

 

알파맘에 대해 언론에서 거론될 때가 있다. 알파맘은 전체 여성의 얼마나 될까? 알파맘은 모든 여성의 지위를 나아지게 하는 지표가 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빈곤상태에 처해있다. 일부 소수의 상황이 나아졌다고 전체 여성의 삶의 질과 위치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대다수의 시민단체가 인력의 재생산, 운동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세대 간의 완충역할을 해주는 한 층이 없어졌는데 모든 시민단체가 안고 있는 큰 과제이다. 젊은 활동가들과 얘기하다보면 많이 다름을 느낀다. 예전에 시민운동을 했던 세대들은 활동가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움직였던 것 같다. 반면 요즘 젊은 활동가들은 직장의 개념으로 바라보더라. ‘다르구나’ 내가 고루하고 올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간극을 좁혀가는 노력, 그리고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변화될 부분들에 대한 공유가 필요할 것 같다.

 

시간이 흘렀던 것만큼 사회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사회운동을 하고는 싶은 의지는 있으나 성취감을 경험한 경우가 적고,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누가 나에게 이 활동이 마약같다고 했다. 특정단체의 성과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의 영향력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이루어지는 경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기자회견을 하고, 의견서를 보내고, 직접활동을 해도 우리의 활동만 언론에 잠깐 나올 뿐, 영향력이 많이 줄어 든 것은 사실이다. 물론 현 정권에서 이루어나가는 것이 힘든 부분도 있다.

 

또한 선배들의 책임이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잘된 부분도 있고, 안된 부분도 있다. 더 깊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양한 영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가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복지가 키워드가 되면서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도 2011년 돌봄포럼을 진행했다. 사회복지, 여성, 정치 등의 전문가들이 2주에 한 번 모여 돌봄의 영역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었다. 참가자들의 의견차로 아슬아슬했던 적도 있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포럼의 내용을 정리해서 대선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보육 같은 경우는 변형된 형태이나마 서울시에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성과라고 본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조직적으로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30년을 앞두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들을 회원단체와 함께 나누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 말이다. 응원해 달라. 개인적으로는 매번 얘기했던 것인데, 일생활양립이 제발 잘 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만족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여성들의 일생활양립이 나에게도 영향이 미치길 간절히 바란다.

 

사회복지라는 영역에 있어 단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를 사회를 바꾸는 하나의 나사라고 본다면 그 나사를 어떤 모영으로 만들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디자인을 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안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언젠간 평등․나눔․소통이 승리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가보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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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대회 후기]

희망은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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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계여성의 날을 며칠 앞둔 지난 3월 5일 토요일 32번째 한국여성대회의 열기는 악천후를 이겨낼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당일 숨은 주역이었던 여성연합의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은 행사 사전준비와 행사보조를 원활하게 이끌어가며 참여자들의 목소리를 확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날 자원활동가로 행사에 참여하면서 다른 봉사자들과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서울시청 다목적홀과 종로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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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11시 4분

참가자들을 맞이하기 전에 준비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안내 데스크 정리 외에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께서 그린 그림 위에 참여자들이 자신만의 그림을 덧붙여 그려 넣는 일을 도와야 했다. 엘리베이터 사이에 놓인 책상에는 길원옥 할머니의 작품을 모티브로 그려진 A6사이즈의 스노우지에 꽃 두 송이만 그려진 백지가 놓여있었다. 자원활동가들이 사전에 해야 할 일은 몇 장의 샘플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이 곳 그림판에 배정된 자원활동가는 아니었지만 다른 팀에 소속되었던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멋진 가이드라인을 그려넣을 수 있게 다들 심혈을 기울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소소한 기쁨을 느꼈다.
우리가 그린 이 작품들도 여성미래센터 허스토리홀에서 진행 중인 ‘소녀의 꿈, 함께 피우다-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 전시(3.2-4.1)’에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을 안 건 한참 후였다.정성을 들여 한 작품만 만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오전 11시 4분~오후 1시 50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기념식이 진행되는 서울시청 다목적홀 로비에서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2016년의 희망’을 피켓에 적고 그 피켓을 든 모습을 SNS에 올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해시태그 ‘#희망연결’과 연동되게 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시민들에게는 케이크 선물도 제공했다. 함께 진행했던 친구는 재작년에도 참여했다고 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대학 입학 후 계속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그 친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현장 속 일원이 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있어 부럽기도 했다.
피켓에 내용을 적는 것에 대해 상업용이라거나 혹은 ‘쓸 말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90% 정도였다면 나머지 10%는 여성인권에 대해 그 많은 생각을 간단하게 요약하기 힘들어해 인상 깊었다. 한 줄의 말을 쓰는 일에도 진지하게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여성 인권에 대한 고심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 중 어떤 남성분이 적은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라는 문구는 여성으로서 평소에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졸렬함을 반성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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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50분~오후 2시 30분

방송인이자 한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인 김미화씨의 사회로 ‘2016년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2회 한국여성대회’가 마침내 시작됐다. 오프닝 율동에 이어 시상식이 이어졌고 3.8여성선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1000여명의 참여자가 의자에 혹은 바닥에 앉아 보라색 손수건을 들고 비정규직 철폐, 여성폭력 반대, 역사 왜곡에 대한 아픔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구호를 외쳤다. 보라색 물결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오후 2시30분~오후 4시40분

장대비를 맞으며 참여자들은 실외로 나가 행진을 시작했다. 자원활동가들은 대열을 정비하고 퍼레이드의 끝 지점에서 플랜카드, 피켓 등을 수거하는 일을 도왔다. 거센 비에도 불구하고 꺽이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어린아이, 어르신 할 것 없이 보라색, 흰색 우비를 쓰고 소녀상까지 힘찬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퍼레이드 도중 만난 박기혁씨는 자활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로 재작년부터 전국연대에 가입해 여성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깃대를 든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굳건해 보였다. 박씨 외에도 많은 참여자들을 보면서 한국여성 인권이 적어도 지금보다 더 추락할 수 없도록 하는 든든한 ‘시민 배리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국여성의 권리가 불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의 스쳐갔던 생각들이 ‘개념 있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글 : 이새봄(제32회 한국여성대회 온라인 기자단)
사진 : 김동현,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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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3/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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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_시즌2]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50년 운동의 원동력은 ‘거룩한 분노’”


1996년 남편과 민중교회 통해 이주노동자 운동 시작
한국의 이주여성 인권운동 개척자로 제도화 기틀 마련
“집착하지 않고 내가 시대적 사명을 다했는가 질문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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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염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여성운동가'라며 '다시 태어나도 또 여성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자그마치 50년. 반세기 동안 삶의 모퉁이 모퉁이에서 그는 질문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발걸음의 이정표가 됐고, 길이 됐고, 역사가 됐다. 20여년 전에 남편과 함께 서울 창신동에서 민중교회를 섬기기 시작했을 때도 그는 같은 질문을 했고, 그 답은 ‘이주노동자’였다. 그렇게 이주노동자 운동에 뛰어든 한국염(68)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이후 ‘이주여성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국의 이주여성 인권운동을 이끌어 왔다.
“1996년에 성남에 있는 양말 공장에서 일하다 도망쳐 나온 중국 한족 출신 이주노동자 8명을 만난 것이 시작이었지. 임금체불과 성추행을 겪다 도망 나온 노동자 8명 중에 7명이 여성이었어요. 그렇게 남편이 사역하던 청암교회에서 서울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었고, 나는 낮에는 여신학자협의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이주여성노동자들 상담을 했지요.”
한 대표는 “이주노동자 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이라 소위 민주화 개념은 있었으나 젠더의식은 굉장히 약했다”며 여성을 위한 시설과 인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가장 절박했던 것은 이주여성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였다. 당시 이주여성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전무한 상태인데다 기존의 쉼터들도 열악한 처지라 남성들이 입소하면 여성들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여신학자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던 한 대표는 독일의 세계기독위원회에 편지를 써 이주여성노동자 쉼터 마련을 위한 기금 3천만 원을 요청했고, 2년만에야 돈이 도착했다. 하지만 2년 동안 건물 한 층을 임대할 수 있는 전세금은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훌쩍 올라버려 모자란 돈 2천만 원은 따로 모금을 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외국인여성노동자의 집’이라고 이름붙인 쉼터를 마련했고, 그렇게 이주여성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쉼터를 마련할 때 외국인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니 아무도 집을 안 발려 주는 거에요. 부동산에서는 ‘그러지 말고 그냥 집을 하나 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순전히 배짱으로 건물을 매입하고 돈을 모아 해마다 한 층씩 전세 들어 있는 사람들을 내보냈죠. 건물 한 채를 온전히 마련하는데 7년 쯤 걸린 것 같아요.”
15년 전 이주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쉼터는 2003년 ‘이주여성인권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활동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다.
“쉼터에서 다양한 이주여성을 만났어요. 결혼이주여성과 성매매로 유입된 여성도 만나게 됐어요. 실제로 만나보니 성매매로 유입된 이주여성들의 인권문제가 가장 심각했는데 그들을 위해서는 이미 활동하고 있는 두레방이나 새움터같은 전문가들이 있었어요.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나면서는 이들이 24시간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주여성노동자들은 퇴근하면 그래도 사생활이 있는데 폭력 피해를 당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은 그럴 수도 없는 거에요. 그들의 상황이 너무 참혹해서 활동의 중심을 결혼이주여성으로 옮기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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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염 대표는 여성운동 후배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사는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중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학위 포기


45여년 전 한국에서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던 시절 한국염 대표는 ‘여자 목사’가 되고자 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성직자의 길을 택한 데는 어린 시절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던 개인적 체험도 한 몫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이 운영하던 지금의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신이었던 병원에서 한 대표처럼 위독한 환자가 들어와 살아나간 게 처음이었단다. 주변 사람들 모두 죽는다고 했던 13살짜리 소녀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그 경험은 그를 자연스레 신학교로 이끌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한국에 여자 목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신학교에 갔어요. 그 때만 해도 나는 여자들이 똑똑하지 못해서 목사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 제도 때문인 걸 몰랐어요. 그런데 입학하고 보니 여자는 목사가 못된다는 거야. 학교를 그만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우리 학교에 여자 교수가 있는 걸 보고는 ‘목사가 못되면 교수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남았죠.”
1969년 한신대학교에 입학한 한 대표는 대학시절 기장여신도회에서 여성목사 안수를 위해 교단과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 자진해서 찾아다녔다. 해당 교단에서 여성목사 안수제는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한 해 앞둔 1974년 통과됐다. 한국염 대표의 여성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 대표는 대학원 졸업 후 기독교 잡지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에서 기독교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기독교신문 기자였던 남편 최의팔 목사는 주요 일간지에서 싣지 않았던 ‘인혁당 사건’을 신문에 실었다가 안기부에 의해 해고를 당했다. 그 후 한 대표 부부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고, 여성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한 대표는 체류 3년 만에 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독일 가기 전 민중신학을 하시던 교수님들의 삶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존경하지만, 교수라는 위치 때문에 민중처럼 살지는 못하시더라고요. 민중 지향성을 갖고는 있지만 민중과 더불어 사는 삶은 안되는 거에요. 내가 공부를 더 해야하나 고민할 때 그 생각이 나면서 나도 교수가 되면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아 학위를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50년 운동을 돌아볼 때 가장 잘 한 일 중의 하나가 학위를 포기한 것이에요. 기득권 자리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독일에서 돌아온 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운동에도 결합한 한국염 대표는 수 년 째 정대협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1차 아시아연대회의의 실무책임자이기도 했던 그는 1996년부터 실행위원을 시작하는 등 20여년 간 정대협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정대협 운동은 성, 계급, 인종 문제가 다 녹아들어 있는 거에요. 당시 한국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거든. 거기에 계급 문제가 있고, 일본 제국에 의해 희생당한 것이니 제국주의 문제가 있고, 여성이 겪는 성폭력 문제이면서 민족과 인종 갈등까지도 포함된 문제이지요.”
한 대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군 위안부’나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성폭행 당한 베트남 피해 여성들에 대해서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일본처럼 국가가 모집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군이 베트남 피점령지 여성에 가한 폭력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죄를 해야지요. 정대협 운동이 자국의 여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시 하 체제 여성 문제로 끌어안고 가는 것에 대해 의미부여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인에만 집착한다면 그것이 진짜 민족주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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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1회 한국여성대회 '퍼플워킹'에 이주여성들과 함께 참여한 한국염 대표. 앞줄 소녀상 왼쪽 의자에 앉아있는 한 대표.>

“앞으로도 이주여성인권센터가 내딛는 걸음이 곧 길이 되길”


한국염 대표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함께 활동한 지 15년, 정부가 이주여성을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흘렀다. 한국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의 인권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지만 지난 10년간 가정폭력방지법 개정, 이주여성 쉼터 마련, 콜센터 개설 등 이주여성의 인권을 위한 제도화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한 대표의 활동이 큰 부분을 차지했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제도는 좀 나아졌지요. 초창기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전업주부로 상정하고 입국시키기 때문에 이혼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법무부에 체류법 변경을 요구해서 일반인은 5년이 지나야 영주권이나 국적을 신청할 수 있는데 결혼이주여성은 2년 만에 신청할 수 있게 바뀌었어요. 이혼 시 혼인 파탄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면 체류할 수 있게 됐죠. 또 초창기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취업을 못했어요. 친정집에 돈 보내는 문제로 남편과 갈등이 생기고 여성들의 자존심이 다치니까 일자리를 줘서 여성들이 떳떳하게 자기가 번 돈을 고향에 보내게 하자고 설득했죠. 그렇게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권이 열리게 됐습니다. 누군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내딛은 걸음이 곧 길이 됐다’고 얘기를 하는데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여성운동가’라고 말하는 한국염 대표는 “다시 태어나도 또 여성운동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평생 낮은 곳에서 힘들지 않으셨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나 이름 많아. 명예도 있고. 상도 여러개 탔어”라며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없이 살았어. 사람들이 나보고 어떻게 생활했냐고 물어보는데 하루 세끼 밥 먹고 살았어요. 결국 집착을 안하면 쉬운 것 같아요. 우리 센터도 돈이 없어 언제까지 버티겠나 생각하다가도 이거 오래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 욕심이다, 시대적 사명을 다하면 접는 거지 뭐. 문제는 내가 시대적 사명을 다했느냐 하는 질문이에요.”  


글/사진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여성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로

외국인이주여성의 인권보호와 권익신장,
모성보호와 육아지원을 통한 이주여성과 자녀들의 생명존중,
성인지적 관점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교육과 문화활동을 통한 한국사회의 적응지원,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듦으로서
평등하고 평화로운 지구촌 사회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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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6/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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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여성대회 후기] 제32회 한국여성대회 기념식

성평등을 꿈꾸는 여성들의 뜨거운 연대

전국에서 모인 1000여명의 여성들이 함께한 기념식
KTX 열차 승무지부 조합원들 여성운동 특별상 수상
성평등한 우리 사회를 위한 3.8 여성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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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지난 3월 5일 제32회 한국여성대회가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기념식을 가졌다. ‘희망을 연결하라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라는 슬로건으로 개최된 올해의 여성대회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0여명의 여성들과 함께했다. 기념식은 성평등 걸림돌 발표와 성평등 디딤돌 발표, 여성대회 특별상 시상, 3.8 여성선언 발표 순으로 진행됐다.

본 대회가 시작하기 전부터 서울시청 다목적홀은 여성대회의 드레스 코드인 보랏빛으로 가득했다. 다목적홀 입구에는 여성대회를 맞이하여 진행되던 ‘#희망연결’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대회 당일까지도 ‘#희망연결’ 캠페인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이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 대회를 앞두고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각 단체들은 노동개악 중단, 위안부 합의 무효, 여성폭력 반대 등 다양한 여성 의제에 관한 피켓을 준비해왔다. 장내는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된 후에도 입장하는 여성 활동가들로 가득차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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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사회는 방송인이자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인 김미화씨가 맡았다. 대회가 시작되자 ‘3.8 무브먼트’가 진행되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우리가 만들어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에 장 내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어서 우리 사회의 성평등을 퇴보시킨 ‘성평등 걸림돌’ 정책과 개인들을 선정하여 발표하는 순서가 진행됐다. 이에는 성평등을 후퇴시킨 박근혜 정부의 △성차별적 성교육표준안 △노동개악 정책 △잘못된 양성평등정책을 비롯하여 △양성평등기금 폐지로 논란을 자아냈던 홍준표 경남도지사, △데이트폭력 사건 판결에서 가해자의 미래를 우려해 벌금형을 선고한 광주지법, △여성 노조지부장을 집단적으로 괴롭힌 인천성모병원, △KTX 승무지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결정한 고모, 김모 주심 판사를 발표했다.

다음으로 ‘성평등 디딤돌’ 시상식에서는 △시설 내 장애인 인권 문제를 고발한 자림성폭력대책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대학생 단체인 평화나비 네트워크, △SNS상에서 여성 인권과 여성 문제를 환기시킨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운동 △원청에 맞서 싸우고, 용역업체의 해고에 대한 투쟁에서 승리를 이룬 전국여성노동조합 인천지부 연세대 국제캠퍼스 기숙사분회, △성매매 여성의 인권과 업주의 폭력에 대해 드러낸 여수 유흥업소 여성사망사건 제보 여성 9명에게 그 영광이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운동의 경우 초기에 운동을 시작한 단체/개인을 찾지 못해 상을 전달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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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특별상은 상금 100만원과 함께 ‘KTX 열차 승무지부’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지난 10여년간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끈질기게 투쟁해왔으며, 최근 원고 패소 판결 이후 또 다른 투쟁의 출발을 선언한 바 있다. 승무지부 김승아 지부장은 수상 소감에서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투쟁 현장에 돌아오니 지치기도 하지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고,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여러분 덕분에 힘내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을 남기며 연대 단체와 개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기념식의 마지막 순서인 ‘3.8 여성선언’은 8개 의제에 대한 입장을 바탕으로, 성평등한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다짐을 이어갔다. 8개 의제는 아래와 같다.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다. 성평등 가치 실현하라!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과 차별을 반대한다! △비정규직 확산, 여성의 고용불안 조장하는 노동개악 중단하라! △역사왜곡, 굴욕외교, 일본군‘위안부’ 합의는 무효다! △세월호 참사, 진실을 규명하라! △남북관계 개선하고, 평화를 형성하자! △탈핵으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자! △20대 국회를 성평등한 국회로 만들자!
박예지 청년참여연대 성평등 분과장, 레티마이투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인권팀장, 이아름 여성환경연대 정책팀 활동가, 조숙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장, 김영순 제주여민회 공동대표가 함께 여성 선언을 외치면서 식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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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 이후 이어 진행된 퍼레이드는 종로를 거쳐 평화의 소녀상 앞까지 이어졌다. 폭우 속에서도 여성대회 참가자들은 성평등을 외치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노동개악에 반대하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무효를 요구했다. 퍼레이드 이후 소녀상 앞에서의 집회를 끝으로 제32회 한국 여성대회는 마무리되었다.

글 : 류희정(제32회 한국여성대회 온라인 기자단)  

사진 : 정지훈,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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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3/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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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콘] 세상을 바꾼 그녀들 시즌 3 신영숙 새움터 대표

“피해자가 한 분이라도 남아있는 한 계속할 것”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3년째 진행 중
“국가폭력에 대한 이 소송은 한국여성운동의 역사적 기록”
장기간 피해에 노출된 기지촌 여성 위한 전담시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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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명확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지 밝혀내, 공식적으로 이분들에게 사과하고 정확하게 배상해야 합니다.  피해자분들이 지치지 않는 한, 피해자가 한 분이라도 남아있는 한 이 운동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언니’들에게 자활지원센터는 ‘학교’

경기도 평택시에 위치한 새움터 사무실은 환하고 따뜻했다.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쳤다는 낡은 건물 내부는 작은 사무공간과 상담실, 오픈형 주방과 작업공간으로 오밀조밀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십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탁자에는 수세미를 만드는 갖가지 색의 아크릴실과 비누 재료들이 놓여 있고, 고령의 ‘언니’들이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벽에는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매일 점심 식사가 만들어지는 부엌은 작업공간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게 ‘오픈형’으로 설계되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다가도 쓰러지는 이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기지촌여성운동조직인 평택 새움터에 자활지원센터가 문을 연 것은 2015년 6월. ‘성매매방지법’에 의거한 자활지원센터에서는 150시간을 일하면 약 93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인 기지촌 피해 여성들이 일을 하고 이 돈을 받으면 기초생활수급비와 의료비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이곳에 나와 일하기를 원한다. 알음알음 주변인의 손에 이끌려 나와 새로운 동료가 되기도 한다.

“언니들이 여기 오는 걸 ‘학교 간다’라고 말씀하세요. 배우지 못한 상처가 깊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집에서는 식사를 잘 안하시는데 여기 오시면 건강식으로 식사할 수 있고, 동료들도 만나면서 건강이 좋아지세요. 정기적으로 긴장감을 가질 수 있잖아요. 또 여기에서 주체로, 당사자로 존중받는 것이 이분들의 삶에 굉장한 에너지가 됩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자신이 죽어도 아무도 모르지만 자활센터에 나오면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센터에서 바로 알 수 있으니까 새움터에 나오는 것이 안도감을 준다고 말씀들 하셔요.”


“군 위안부 제도는 국가폭력에 의한 여성인권유린 정책”

새움터는 지난 2014년 6월 25일 122명의 기지촌 피해여성들과 함께 ‘한국 내 기지촌의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19일 첫 변론을 시작해 2016년 1월 22일 이나영 중앙대 교수의 전문가 증언까지 총 6번의 재판이 진행됐다. 기지촌이라는 특정지역을 설치하고 ‘미군 위안부’를 철저하게 관리ㆍ감독해 온 국가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신영숙 새움터 대표는 이 소송을 두고 ‘한국여성운동의 역사적인 기록’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여성운동에서 122명의 여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기록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성들이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의 인권유린에 대해 낱낱이 밝히겠다고 결의한 것은 한국여성운동에 기록되고 지지받아야 될 일입니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의 재판에서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4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위안부’라는 용어 문제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원고측은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로 용어를 정리했지만 정부측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본인들이 피해를 받을 당시 ‘위안부’로 지칭됐음을 증언하고 있으며, 당시 정부 기록이나 신문기사에도 ‘미군 위안부’라고 명기되어 있다.

두 번째는 ‘자발성’ 논쟁이다. ‘자발적인 성매매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라는 정부측 주장에 대해 당사자들은 당시 기지촌 여성들 대부분이 인신매매와 사기를 당해 기지촌에 유입되었다며 ‘자발적’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이미 ‘미군 위안부’는 존재했었고, 1960년대 초반 정부는 ‘낙검자 수용소’를 설치할 만큼 기지촌 여성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1961년에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에 의해 성매매가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기지촌이라는 특정지역을 조성해 불법적인 성매매를 조장ㆍ방조했다. 뿐만아니라 심지어 체계적으로 관리까지 했기 때문에 그 지역 안에서 피해 여성들이 받았던 성적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원고측의 주장이다.
당시 피해여성들이 기지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 도망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미군부대로 이어지는 유일한 진입로에 있던 검문소에는 이미 포주들이 고용한 깡패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도망친 여성들을 잡아갔다. 도망치다 잡혀 돌아가면 지독한 매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기지촌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미군과 결혼하거나 죽는 것 뿐이었다. 또한 성병 검사를 위해 1주일 혹은 2주일에 한번씩 보건소에서 공무원을 만났지만 기지촌 여성들에게 ‘당신이 하는 일은 불법’이라고 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피해여성들은 자신들의 피해 경험이 ‘자발적’일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세 번째 쟁점은 기지촌이 지방정부의 업무였다는 것이다. 정부측은 기지촌 문제가 중앙정부가 아닌 기지촌이 있었던 동두천이나 평택시 등 지방정부의 일이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원고측은 1971년 청와대 직속 ‘기지촌 정화위원회’가 존재했고, 1960년대 초반부터 내무부나 보건사회부에서 기지촌 여성들의 관리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에 기지촌 문제는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의 일이었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네 번째 쟁점은 공소시효다. 정부측은 시효가 끝나 자료가 없어 답변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원고측은 당시 관련 자료를 제출하며 정부측을 압박하고 있다. 신 대표는 “지금도 E6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여성들을 비롯해 관광특구지역, 외국인 전용 클럽 등에서 파병된 외국 군인을 상대하는 여성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지촌 피해 여성 문제는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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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여성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성매매 피해”

1996년 경기도 동두천 기지촌에 처음 문을 연 새움터는 2001년 6월 경기도 평택시(송탄)에도 센터를 개원했다. 신영숙 대표는 1995년 두레방에서 ‘기활(기지촌여성활동)’로 기지촌 여성 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결혼 후 지방에 머물다가 2004년 복귀해 새움터의 부대표, 공동대표를 거쳐 2012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새움터는 동료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입니다. 준비위원회부터 당사자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제가 대표이기는 하지만 당사자는 아니잖아요.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새움터는 활동가도 50대 50을 지향하고 있어요. 저는 활동주체도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새움터의 정책적인 방향 논의를 하면 당사자분들은 굉장히 명확하세요.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아주 많으시고요.”

새움터는 동두천과 평택의 사무실 외에도 군산과 부산 등 기지촌(혹은 옛 기지촌) 지역에 있는 여성들을 직접 방문하는 ‘가정방문 사업’을 진행중이다. 군산 아메리칸 타운이나 부산역 근처의 차이나타운의 외국인 전용클럽이 있는 지역에서 고령이 되어 아직도 그곳에 생존해 있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신 대표를 비롯해 새움터 활동가들이 항상 어디서나 잠을 잘 수 있는 짐을 꾸려 다니며 찜질방이나 모텔 생활이 생활화되어 있는 이유다.

평택 새움터 자활지원센터장이기도 한 신영숙 대표는 “현행 성매매방지법만으로는 기지촌 피해 여성들을 온전히 지원할 수 없다”며 “장기간 피해에 노출된 고령의 ‘언니’들을 위한 전담 시설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지촌 피해 여성들에게 알콜, 마약, 흡연, 일상 생활이 뒤바뀐 환경 등으로 인한 다양한 질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높은 힐을 오래 신고 있어서 발가락이 휜 여성도 많고, 굉장히 시끄러운 클럽 음악에 노출되어 있어 청력도 좋지 않습니다. 여성들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다 성매매 피해에요. 하지만 정부는 그것이 성매매로 인한 피해냐며 인정하지 않는 거죠. 피해를 입증해 내는 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난해 6번이나 ‘언니’들의 장례를 치렀다는 신 대표는 진행중인 소송이 길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피해자분들이 지치지 않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피해자분들이) 생을 마감하는데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장 두려워하시는 게 고독사에요. 워낙 혼자 계시니까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이 크세요. 이분들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나올 수 있고, 자활센터를 통해 일을 하면서 기쁨도 얻으시고, 삶을 재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글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사진 : 장수진 여성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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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2014년 시즌1, 2015년 시즌2를 진행한데 이어

2016년 시즌3으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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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2/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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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아시나요?^^
    1908년 3월 8일, 생존권과 참정권 확보를 위해 일어섰던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는 '세계여성의날'.

    세계여성의 날은 특히 일하는 여성들의 안전한 노동환경, 단결권 인정을 내세워 여성 인권신장의 기폭제가 된 날로서, 세계 각국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여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985년 전국 14개 여성단체들의 '제1회 여성대회'를 시작으로,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창립된 후 지금까지 여성연합 주관으로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6 제32회 한국여성대회, "희망을 연결하라! - 모이자 행동하자 바꾸자”
  • 3월 5일 토요일 오후 1시, 광화문 광장에서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성평등한 우리 사회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32번째 여성대회가 열립니다.

    [3.8 샤우팅!]
    #샤우팅, 하나! 여성운동 발전에 공헌하거나, 성평등에 기여한 개인 및 단체에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여합니다.
    #샤우팅, 두울! 2015년 한 해 동안 성평등에 기여한 사람, 사건에 '성평등 디딤돌'을, 성평등을 저해한 사람, 사건에는 '성평등 걸림돌'을 수여합니다.
    #샤우팅, 세엣! 성평등 이슈에 대한 여성대회 참가자들의 힘 주고, 힘 받는 발언을 나눕니다.

    [3.8 퍼레이드!]
    - 다양한 차림새로 성평등 메시지를 알리며 서울 도심을 함께 걸어요~

    [3.8 무브먼트!]
    - 춤과 행진을 통해 성평등 가치 실현과 여성폭력근절 세계연대 등 여성대회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환기시키는 참가자 전원의 즐거운 퍼포먼스!

    2016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캠페인 #희망연결 에 함께해주세요^^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2016년 우리의 희망에는 어떤것이 있을까요? 여러분의 희망을 들려주세요^^ 그리고 3월 5일 여성대회에서 우리의 희망을 연결합시다!

    ‪#‎38여성의날‬ #희망연결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2016년 나의 희망은
    입니다! 3월 5일 광화문광장에서 우리의 희망을 연결해요!

    *참여방법: ↑위의 내용을 해시태그와 함께 빈칸을 채워 본인의 sns에 올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3천원 상당)을 드립니다

    *캠페인 기간: 2016년 3월 8일(화) 까지

    *당첨자 발표: 3월 10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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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2/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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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포럼 후기]
과학의 발전과 여성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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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대학의 새 학기 등록 시기 쯤 되면 어김없이 9시 뉴스에 여대생들이 목돈 마련을 위해 불법이지만 난자를 팔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됩니다. 또한 인터넷으로 원하는 특성을 갖는 난자와 정자를 구매하고 이를 수정시킨 뒤 비용절감을 위해 수정된 배아를 냉동시켜 제3세계의 대리모에게 보내 출산하는, 아기를 인터넷으로 주문 생산할 수 있다는 '구글 베이비(Google baby)', 이런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회사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유투브에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황우석 사건을 통해 생명과 관련된 과학이 우상화되거나 객관성을 상실할 때 일으키는 문제점을 경험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2016년 첫 포럼인 제5차 성평등포럼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로 연세대 생화학과 송기원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송교수님은 생명과학이 발전되고 사회가 변화되어야 하는 속도에 비해서 일반인들이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사회시스템이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못하는데 필요성을 느껴서 과학자이지만, 외부 강의를 시작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강의의 시작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질문들에 대한 답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생명의 정보인 DNA의 중요성과 관련 과학기술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인간유전체는 약 2만 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 인간유전체를 분석하여 인간의 권리를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미국은 개인보험으로 보험에서의 차별을 둘 수 있고, 취업에서의 차별을 둘 수도 있어 사회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건강보험개념으로 미국과는 다르나, 그에 맞는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휴먼게놈프로젝트가 시작한 시점과 같이 법적 제도가 생겼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미흡한 상황입니다.


또 다른 문제로 생식기술의 발달과 생식권이라는 주제로 과학의 발전이 여성의 몸에 어떤 침해를 가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먼저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등을 통한 인간의 탄생에 관한 논의들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난자를 채취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문제가 있는건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한국은 아무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난자 기증 운동을 벌였고 과학을 경제성장에 도구로 여기고, 여성이 도구화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상황입니다.


또한 현재 지구의 약 3백만명의 시험관 아기가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시험관 아기는 10%대로 그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유전체 해독기술과 생식기술이 합쳐져 시험관 아기에서 더 나아가 맞춤아기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원하는 아기로 만들어 인도나 네팔같은 나라에 대리모를 통해 아기를 낳아서 배달해주고 있는데, 이는 제3세계에서 여성의 인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대리모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하는 경우에 일자리(job)으로 인식해야한다는 견해와 그것은 성적자기결정권, 인권을 침해한다는 견해가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인권이 중요한 만큼 생식권도 중요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포럼 참석자들과 열띤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난자, 배아, 대리모 등 여성의 몸(임신.출산)과 긴밀하게 관련된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것이 여성에게 던지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성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봐야하는지, 어떤 제도적 논의와 담론을 형성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포럼 참석자들과 질의 시간을 가진 후 2016년 첫 포럼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2016년 3월 따뜻한 봄날, 6차 포럼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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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2/0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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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시위를 다녀와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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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이 전공인 나는 한국역사에 대해 배울 때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많이 보았지만 모두 이론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12월 23일 직접 수요시위에 가게 되자 무척 기대되고 긴장도 됐다. 일본 대사관 앞에 도착했더니 젊은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 사람들은 길 옆에서 피켓을 들고 수요시위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의 경과보고로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건강이 좋을 때면 날씨가 아무리 나쁘더라도 수요시위 자리에 나오셨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우리는 느낄 수 없지만 자신이 체험한 아픔 때문만이 아니라 후 세대인 세계의 여성들을 위해 이 이슈가 중요하기 때문에 꼭 수요시위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매우 감동이 됐다.

수요시위에 사람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래동안 참여해 왔는데 일본군의 끔직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인 할머니들의 연세가 많아지면서 이미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 시간이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애석하게도 할머니께서 건강 때문에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없는 날이 와 버렸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 특히 중ㆍ고등학생과 대학생, 멀리 제주도에서 온 청소년들까지 이 자리에 참석하려고 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느꼈다. 한 학생은 역사에 대해 배우고 학교에서도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이슈에 대해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께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한 학생은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그것을 보며 할머니들께서 보셨으면 매우 좋아하셨을 것 같았다.

젊은 사람들이 역사에 대해 잊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이 일본군‘위안부’ 이슈를 해결하고 언젠가는 전시성폭력으로 인한 여성의 인권 침해가 없는 세상이 올 희망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12월 28일 독일 뉴스에서 갑자기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기사가 여러 개 보도됐다. 기사에 의하면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고 싶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게다가 피해자들에게 기금을 제공할 거라고 했다. 독일 뉴스에 의하면 이것으로 이슈가 해결됐고 이제 이들의 투쟁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문제가 이렇게 끝나면 안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할머니들의 인생에 대해 대화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로인해 세계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고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지속적으로(일본, 한국, 중국, 태만, 필리핀 등의 시민사회와 정부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 국가 간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리자
Elisabeth Wag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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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2/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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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포럼 후기]

분단 70, 여성과 한반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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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 70년이 된 올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소식들이 아닌 지뢰폭발, 대북방송으로 인한 남북 갈등이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최근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이것만으로 우리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기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 같은 남북정세 속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들은 평화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논의해보는 자리를 제4차 성평등포럼에서 마련했습니다.

  11월 12일 목요일 저녁 올해의 마지막 포럼이니만큼 시작 전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연말은 아니었지만 푸짐하게 연말 분위기를 냈답니다. :) 그리고 애초 참가신청보다 더 많은 포럼회원님들이 오셔서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본격적으로 포럼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부설 한국여성평화연구원의 김정수 원장님의 사회로 서로 인사 나누고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발제는 코리아연구원의 김창수 원장님의 ‘남북관계와 국제 정세 분석’이었습니다. 먼저 김창수 원장님은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이유부터 설명해주셨습니다. 가장 크게는 북한에 대한 불신이 커진 점을 들었습니다.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었던 문제와 현재 북한권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북한에 대한 불신, 통일에 대한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10여 년 전과 달리 현재 남북관계의 변수는 다양해졌다는 점도 중요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주변 국가의 변화. 즉, 예전보다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력 사이에서 한국이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이슈가 되었다는 것.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의 급격한 성장 - 대륙의 실수라고 불리는 샤오미 - 등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이 왜 ‘대박’일 수 있는가라며 신성장동력 창출의 측면을 언급하셨고, 주변국들의 경제사회적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우리의 방향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정리하셨습니다.  

  이어서 성균관대학교 정현백 교수님의 두 번째 발제가 있었습니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이고 중요한 이슈가 전쟁상태이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평화체제, 북-미와 같은 방식만이 아니라 다자적 방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중적 여성 평화운동으로 제주 해군기지 운동, 탈핵문제도 거론하시며 이 같은 평화운동에 페미니즘이 어떻게 연결되게 할지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북한관계에서도 이 같은 국제정세 속에서 위안부, 독도 등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포럼에 참석하신 분들 사이에서 여러 질문들이 나왔는데요. 특히 ①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NGO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②‘왜 통일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에 대한 답을 정리해봤습니다.

  김창수 원장님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NGO의 역할에는 제약점이 있다. 관계가 안 좋을 때 어렵다. ‘통일 대박론’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찬성한다. 그런데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문제 가지고는 이념논쟁 하면 안된다. 뭘 해서 이념논쟁 생기면 안 하니만 못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극적으로는 조심하고 적극적으로는 폭넓게, 층을 넓히는 게 NGO의 역할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현백 교수님은 “정보부족 문제도 있다. 우리의 분담비용 어마어마하다.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나. 북핵문제와 남북 간의 화해협력을 동시에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함께 하셨던 분께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남북 간 대립으로 인해 남성위주 군사문화와 폭력용인, 복지혜택의 부족 등 무엇보다 전쟁위협이 있다. 통일의 반대는 전쟁이다”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일 수 있었으나 다층화 된 국제정세와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문제를 다뤄봤습니다. 특히 이 같은 국면에서 우리 여성들은 어떤 관점으로 무엇에 주안점을 두며 활동하면 좋을지 다 같이 풀어놓고 고민해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내년에도 계속될 2016 성평등포럼 많은 기대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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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email protected]

02-313-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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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1/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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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콘] 세상을 바꾼 그녀들 15 김윤자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운동은 타인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나도 변화하는 것

 

경남여성연대에서 2002년 경남여성연합 창립

지역 넘어 경남 전체 아우르는 연합체 운동 시작

여성운동,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더 잘 살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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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여성운동을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느날 남편이 당신은 참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엄청 가부장적인 사람이라 결혼 후 직장도 못 갖게 하더니 요즘에는 오히려 어떤 사건이 터지면 여성단체 뭐하냐’, ‘시민단체가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고 말해요. 이제는 여성운동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어요. 여성운동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남편도 더 일찍 바뀌지 않았을까요?”

50대 후반인 김윤자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좀 더 빨리 여성운동을 시작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남편이 여성운동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고, 두 아이들도 엄마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서 이 좋은여성운동을 좀 더 빨리 시작했더라면 주변의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변화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 대표의 더 짙은 아쉬움은 여성운동으로 인한 바로 자신의 변화다. 자신이 누구보다 많은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여성운동과의 늦은 만남이 안타깝기만 하다.

각 단체 활동가들이 들어왔다가 금방 그만두면 제가 막 나무랍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만둔다고요. 운동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지만 나도 변화하는 거잖아요. 나의 변화에 가치의 중점을 두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일을 하면서 공부가 많이 필요해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지금 시작해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발목을 잡더라고요.”

김 대표가 여성운동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2004년 진해여성의전화에서 부설기관으로 방과 후 교실을 시작할 때 교사로 합류하면서 처음 여성운동을 접했다. 아내가 바깥일하는 것을 싫어라 하던 남편도 전직 교사였던 아내의 아이들이 좋아서라는 이유에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운동하는단체인 줄 모르고 발을 디딘 진해여성의전화에서 김 대표는 방과 후 교실 실장, 진해여성의전화 회장, 상담소장을 거쳐 2014년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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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013 여성주간기념 여성정치세력화 토론회 모습 @경남여성연합 홈페이지>


경남여성연합 창립으로 경남 내 여성운동 확산

 

경남여성장애인연대, 경남여성회, 김해여성의전화, 김해여성회,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진주여성민우회, 진해여성의전화, 창원여성살림공동체, 창원여성의전화, 통영여성장애인연대, 거제여성회 등 11개 여성단체들의 연합조직인 경남여성단체연합은 2002년 창립했다. 경남여연이 생기기 전에도 1987년 창립한 경남여성회를 중심으로 10여개의 여성단체들이 경남여성연대라는 이름으로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여성대회나 여성주간 행사를 지속해왔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여성 운동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연이 닿아 200221일 경남여성연합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김 대표는 경남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체인 경남여연이 창립하면서 경남 지역에 여성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남여연 이전에는 연대 형식의 운동을 하더라도 전국 단위의 여성이슈는 다루지 않았어요. 지역도 창원, 마산, 김해, 진해 등 근거리에 있는 단체 중심으로만 모였고요. 통영이나 거제, 양산, 진주까지 먼 거리의 단체들은 경남여연이 생기면서 함께 하게 됐죠. 경남여연이 출범하면서 각 지역에 여성단체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가 제안하기도 하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여성운동이 보다 많이 알려지고 확산되었죠.”

 

창립 15주년을 앞두고 있는 경남여연은 경남도의 여성정책을 모니터링해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에 주력해왔다. 지방선거나 총선 때는 여성정책 공약을 만들어 후보들에게 공약을 채택할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답변을 발표하며 여성정책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또한 경남도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 정책력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지역의 현안 대응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또한 연합체인 만큼 회원단체들의 활동가 임파워링과 교육에도 애를 쓰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여성단체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전반적으로 힘이 빠지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것이 현재 경남 도정과의 거버넌스가 어려워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경남도가 시민단체를 거버넌스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도와 소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여성단체가 지원할 수 있는 사업들에 대해서도 도가 자꾸 제한을 해서 거버넌스를 위한 사업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요. 여성주간사업으로 해마다 토론회와 토크콘서트를 진행했었는데 올해는 사업비가 절반으로 줄어 토론회와 토크콘서트를 묶어서 원탁토론회 하나만 진행했거든요. NGO 박람회도 예산절약 명목으로 없어졌어요. 이런 외적인 영향으로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활동이 위축되다보니 활동가들이 보람을 찾기 힘들어 자꾸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지난 7월에는 창원시의원의 직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해 경남여연이 중심이 되어 피해자 상담지원과 가해자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의원들과의 간담회 자리도 마련해 함께 했던 여성의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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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구색 맞추기일 뿐 실천의 동반자로 생각 안해

 

김윤자 대표는 도와의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경남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지역이라 여성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히 많은 이슈에서 연대하는 소위 진보라 불리는 남성 활동가들과 관계에서 더욱 절망감을 느낀다.

진보라고 불리면서도 가부장성에 갇혀있는 남성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 사람들조차도 변화시키지 못하면서 일반 시민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생각합니다. 그들은 구색맞추기로 여성단체를 필요로 할 뿐, 실천의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과제 중의 과제에요. 성별영향평가 같은 것으로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성평등을 무조건 ‘55’라고만 생각해요. 여성들이나 연대단체들조차도 이러한 가부장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성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여성문제가 잘 안보이는 것입니다.”

 

올 여름 큰 수술을 하고 아직 치료중인 김윤자 대표는 힘든 치료 과정중임에도 시종 밝고 기운차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터뷰 당일 회원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한 여성운동 아카데미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평소 사람을 싫어하거나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매사에 긍정적이라는 김 대표는 최근에는 뉴스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다며 중앙과 경남의 정치세태를 꼬집었다. 덧붙여 지역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단체들이 더욱 많은 정보를 공유해줄 것을 주문했다.

지역에 있으면 관련 정보나 지식이 많이 부족합니다. 서울에서 진행하는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는 좋은 모델이 되기도 하거든요. 여성연합 성평등지역정치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들을 가져다가 경남에서 필요한 것을 더 넣어 우리의 의제로 만들기도 하죠.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많이 공유해 주면 좋겠어요. 또 지역을 넘어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확대되었으면 합니다.”

 글/사진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경남여성단체연합은 경남지역 11개 여성단체연합으로

경남지역 여성운동 단체간의 협력과 조직적 교류를 도모하고

양성평등, 여성복지, 민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에서는

여성권익향상을 위한 법률, 제도의 제정과 개선활동

여성복지와 일하는 여성을 위한 관련사업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 정책분석과 평가

정책개발 의제발굴을 통한 성 주류화 정책실현

여성운동활동가

지역여성교육,연수사업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기념 경남여성대회 주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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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2014년 시즌1을 진행한데 이어 2015년 시즌2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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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11/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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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콘] 세상을 바꾼 그녀들 14 홍리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

“여성운동이 노화방지 해줘요”



“창립 10주년, 제주여성운동 정리하고파”
제주지역 여성단체들과 연대 꿈꿔
제주 해녀, 여성ㆍ지역운동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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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리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는 여성운동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운동의 역사가 그렇게 길진 않지만 우리 세대가 시작했고, 뿌리내렸고, 여기까지 왔다고 자부합니다. 이 자부심을 나누고 싶어요. 여성운동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또 얼마나 열정을 쏟을만한 일인지 막 자랑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홍리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의 목소리는 제주의 날씨만큼이나 청량했다. ‘거센 바람을 뚫고 말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 목소리가 크다’는 그의 설명 탓인지 시원한 목소리와 얼굴 가득한 함박웃음이 천생 ‘제주 여자’인가 싶었다.
내년에 창립 10주년을 맞는 제주여성인권연대는 제주여민회에서 2006년 분리ㆍ독립해 여성폭력방지 등 여성인권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제주여민회에서 상담활동을 시작한 홍 대표는 2007년 제주여성인권연대 부설 상담소장을 거쳐 2012년부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는 “제주의 여성인권 운동 역사를 정리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지난 10년 간 여성인권적 가치를 잘 만들어왔는지 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제주여성인권연대가 어머니와 같은 제주여민회에서 독립한 것은 알이 부화해 병아리가 새로 태어난 것과 같아요. 새로 태어나 연약하지만 여성인권 함양을 위해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리고 제주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단체들 간의 연대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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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리리 대표가 제주대학교 총여학생회의 첫번째 교지를 필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없이 평등없고, 평등없이 민주없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85학번인 홍리리 대표는 ‘운동권’이었던 언니의 영향으로 신입생 때부터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그는 그의 표현대로 ‘구호만으로도 성과가 있던 시대’를 희망과 열정으로 지나왔다. 당시 총학생회 산하에 있던 여학생회는 ‘별로 인기가 없던’ 한직 취급을 받았다. 홍 대표는 학생회와 여학생회 일을 겸해서 맡고 있다가 4학년이 되면서 총여학생회를 총학생회에서 분리 독립시키는 일에 주역으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여학생회가 형식적으로만 있었어요. 그 때는 젠더라는 말보다 평등이라는 말을 주로 썼어요. ‘남녀차별’이나 ‘남녀불평등 불식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어요. ‘민주’라는 화두로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이는데 ‘평등’이라는 제목에는 사람들이 모이질 않더라고요. ‘민주없이 평등없고, 평등없이 민주없다’라고 말들 했지만 여학우들조차 모이지 않아서 더 섭섭했어요.”
홍 대표는 가방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햇귀’[햇살]라고 적힌 책은 1988년 독립한 제주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처음으로 내놓은 교지였다. 그는 이 책이 “총여학생회가 더 이상 총학생회 산하의 보조적 역할이 아니라 주체적인 활동을 하는 곳이라는 선언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젠더’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미 제주지역의 여성운동은 상당히 막강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제주지역 시민단체 중 1987년 11월 제주여민회가 제일 먼저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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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성인권연대의 제10차 정기총회 모습. @제주여성인권연대>


제주도 운동의 시작은 해녀

“제주는 가부장적이고 통제된 사회에요. 제주도라는 이유로 중앙으로부터 상당한 착취가 있었고, 주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남자들은 생존 자체가 어려웠어요. 남편이 세상을 뜨면 집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아들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죠. 대를 이을 아들을 보호하느라 가부장제가 육지보다 강건했다고 생각해요.”
홍 대표는 이러한 공고한 가부장제 하에서도 “제주 여성들은 남성들을 대신해 가계 경제를 꾸리며 자신의 노동에 대해 누구보다도 강한 협상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부당한 노동착취에 대항해 맞섰던 해녀들은 ‘제주도 운동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4학년 때 제주도 모든 일대에서 해녀투쟁이 일어났어요. 지금은 중산간을 중심으로 산개발이 많지만 당시는 바다개발이 굉장히 활발한 때였거든요. ‘공유수면매립법’이라는 것을 제주도에 도입했던 시기가 1987년, 1988년 즈음이었어요. 굉장한 환경파괴, 어장파괴를 불러왔죠. 해녀를 비롯해 근해에서 조업하는 사람들이 근해를 계속 잃어가는 거에요. 당시 제주 땅의 60% 이상이 외지인에게 잠식당했고 그 외지인은 대재벌들이었어요.”
1988년에 경험한 해녀들의 투쟁을 통해 그는 ‘지역운동’에 눈뜨게 됐다. 민중중심, 현장중심, 계급중심을 지향했던 홍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제주의 농산물가공업체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애썼다. 당시 제주의 당근과 양파를 주재료로 하는 농산물가공업체에서 남성들은 대부분 정규직으로, 여성들은 거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제주의 토지잠식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홍 대표는 농민운동에 발을 들여놨다. “민중, 현장, 계급이라는 키워드에 지역운동을 결합해서 내린 결론은 ‘농민운동’이었어요. 제주도 입장에서는 바다도 ‘바다토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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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리리 대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운동을 한다는 것은 활동가의 상당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후반 제주여민회에서 여성폭력 상담 공부를 시작하면서 홍 대표는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여성폭력 근절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그는 제주 여성정책연구원 설립을 ‘오랫동안 희망했었다’고 말했다.
“현장의 실태조사뿐만 아니라 심층적인 연구나 정책개발이 필요했어요. 여성단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담당해줄 연구기관요. 제도가 확충되어가는만큼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굵직한 일들, 제도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실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조금 진행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많잖아요.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유지하려면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정책 현장에서 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표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홍리리 대표는 다음 세대 후배 활동가들의 재생산과 지속적인 성장에 대해서 ‘열정’을 강조했다.
“예전에는 운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대의명분이 분명했고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해줬어요. 지금은 운동의 이슈가 굉장히 다차원적이고 다양화되어 있죠. 이미 제도권 안에 만들어진 부분도 많고요. 대의명분을 성취한 다는 것, 운동을 한다는 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활동가의 열정을 상당히 필요로 하는 일이에요.”

글/사진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제주여성인권연대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과 차별에 반대합니다.
여성들이 존엄한 인간으로서 일상에서 평화롭고
타고난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소통과 연대를 통해 인권향상과 성평등한 대안사회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갑니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웃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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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2014년 시즌1을 진행한데 이어 2015년 시즌2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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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0/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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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포럼 후기]

아직 지겨워하긴 이르다 : 여성정치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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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지난 820일 목요일 오후 6시 반, 2015년 세 번째 성평등포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포럼의 제목은 <아직 지겨워하긴 이르다 : 여성정치세력화>였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인데다 계속해서 다양한 도전과 시도를 해야하는 주제인만큼 그리고 여성차별에 대응하고 평등을 추구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여성정치세력화는 여전히 유효한 논쟁거리이자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이유정 변호사의 사회로 선거구 제도에 대해 그 흐름과 여성운동의 대응을 주제로 한 첫 번째 발제를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님께서 해주셨습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를 이것으로 한 데에는 2016년에 총선이 열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 해 10월 말 헌법재판소는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1에 달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이와 관련된 공직선거법 252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올해 말까지 선거구별 인구 편차가 21일 넘지 않도록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판결에 따라 조정되어야 할 선거구는 62개에 달합니다.  현행 선거제도 개편의 촉발제가 된 판결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선거구 제도가 구성되느냐에 따라 여성의 정치참여율 또한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정문자 대표님께서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여성운동계의 대응 역사를 정리하여 발표했습니다.

현재 핵심이 되는 쟁점 1. 선거구획정 2. 권역별 비례대표제 3.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한 각 정당별 입장을 훑어봤습니다. 이어서 여성운동계의 대응 흐름도 살펴봤구요. 최근에 여성정치확대를 위한 여성운동의 요구가 발표되었는데요. 관련해서는 다음을 클릭하여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국회의원 정수 유지 합의 대한 여성공동행동 입장 발표 기자회견]

http://www.women21.or.kr/tc/issue/4617

[국회 의석수 기준 법제화 입법청원 기자회견]

http://www.women21.or.kr/tc/issue/4615

 

다음으로는 여성정치세력화 현실과 이상 사이라는 제목으로 박진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장/ 인천대 교수님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국가별 여성정치인 퍼센트(한국은 189개국 중 113)부터 여성 국회의원 현황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세력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 힘과 권력을 갖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정치 세력화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역차별 담론과 여성혐오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여성의 임파워먼트는 두 번 세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박진경 선생님은 1990년대부터 2010년 이후까지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의 변화를 짚었습니다. 여성할당제에 대한 딜레마와 연결하여 최근의 쟁점으로서 수적 대표성 VS 실질적 대표성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할당제 VS 남녀동수법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이 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젠더정치를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던짐으로서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세 번째 발제로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께서 젠더정치의 실천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먼저, 여성정치세력화가 탄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관련 목표와 담론의 상실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19대 때 남인순 의원께서 국회로 들어가면서 이 같은 과제를 풀어내고 공감대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자 하셨답니다. 아직은 미약하나마 정당 내에서 젠더조직을 만드는 활동이나 국회 내에서 여성주의적 환경을 만드는 데에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계시는 점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혼자 혹은 몇 몇 여성 개인의 힘으로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에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가진 여성주의 리더들이 진입하여 활동을 함께 해야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발제들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에 대해 질의응답과 전체토론을 자유롭게 진행했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지만 관통하는 이야기는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필요성과 다각적인 접근방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번 포럼에도 계획한 마무리 시간을 훌쩍 넘기며 토론을 이어갔답니다. 다음번 제 4차 성평등포럼도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 

 

문의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email protected]

02-313-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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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0/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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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립국어원 앞에서 ‘짜장면 시위’한 김우빈씨

“눈높이에 맞는 사소한 실천이 중요해요”


생태주의 책읽기 통해 페미니즘에 관심
언어학도로서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질 것
“철학을 주입하기 보다는 작은 실천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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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앞에서 '짜장면 시위'를 펼친 김우빈씨가 9월 18일 여성미래센터를 방문했다.>


“카드뉴스를 보고 ‘아! 짜장면이다’ 생각했어요. ‘국립국어원 앞에서 짜장면 먹기’라는 문구가 없었으면 전 안했을 거에요. 그날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짜장면도 먹을 수 있고, 의미도 있고, 제가 (연구단체로서) 좋아하는 국립국어원에도 갈 수 있고 해서 하게 됐지요.”
자신을 ‘평등과 평화를 사랑하는 언어학도’라고 소개한 김우빈씨의 대답은 예상보다 더 ‘쿨’했다. 그는 지난 8월 3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국립국어원 앞에서 피켓시위와 함께 ‘짜장면 시위’를 진행한 주인공이다.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잘못된 뜻풀이에 대한 항의 차원이었다.
여성연합은 지난 1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인과 몰이해를 강화하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 수정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몇 개월 뒤인 6월 초 국어원은 이에 대한 개정된 내용을 내놨지만 별반 달라진 점은 없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해석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견해≒남녀동권주의ㆍ여권 확장론’으로, ‘페미니스트’는 ‘①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해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즘에 대한 일천한 인식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에 여성연합은 7월 말 카드뉴스를 제작해 보다 많은 사람과 내용을 공유하고 향후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잘못된 뜻풀이를 바로잡고자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김우빈씨는 SNS에서 카드뉴스를 접하고 거기에 적힌 항의 방법 중 하나로 ‘짜장면 시위’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8월 초 5시간여 동안 국어원 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그에게 국어원 직원들의 반응은 꽤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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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미래센터를 방문한 김우빈씨는 여성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국어원 '짜장면 시위'를 추억했다.>


“처음에는 국어원 울타리 안에 들어가 본관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경비분이 오셔서 ‘좋은 시위다. 바깥으로 나가서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울타리 밖, 국어원 현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어요. 지나가는 국어원 직원분들이 ‘좋은 내용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하고, 눈을 맞추고 지지를 표하는 분도 있었어요. 한참을 서서 피켓 내용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요.”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우빈씨와 그를 도와주던 친구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드디어 주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주문해 길 위에 앉았다. 막 짜장면을 먹으려던 찰나, 국어원 관계자가 나와 “학생들, 뙤약볕에서 뭐하나. 들어와 그늘에서 먹으라”고 안내해줘 본관 문 앞 그늘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온라인 상에서의 반응도 꽤 긍정적이었다. ‘짜장면 시위’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자 친구들은 물론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찾아와 ‘좋아요’와 댓글로 응원을 보내주었다. 우빈씨는 국어원의 행태가 “행정편의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어를 사전에 올리기 위해서는 용례가 있어야 하지만, (제대로 사용된) 용례를 편하게 찾을 수 없으니까 행정편의주의가 작동해 기존의 것(용례)을 고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잘못된 것이 바뀔 수 있다면 그 정도 행동은 할 수 있다”는 그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 15학번 새내기로 교내 생태주의 책읽기 모임에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책을 읽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편견이 깨졌어요. 대학에 오기 전에는 페미니즘이 ‘여성특권주의’라고 생각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페미니즘이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문제도 될 수 있고, 각종 불평등한 요소를 제거하려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평소에 제가 생각하던 평등이라는 것과 일치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언어학도로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이번 짜장면 시위를 했던 우빈씨와는 달리 대학 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국어원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가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결국 다른 일 때문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냥 시민으로서의 관심인 것 같았어요. 내용을 들여다보니 부당하다는 것을 느껴서 움직이겠다고 한거죠.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학우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아요.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평등을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설명해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설득이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떤 철학을 주입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사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게 좋을 것 같아요.”
‘풀뿌리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우빈씨는 “앞으로 ‘국민참여형 온라인 사전’이 개통되어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정의를 바꾸고자 한다면 그 뜻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글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해석에 관한 지난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www.women21.or.kr/tc/issue/4599?category=7
http://www.women21.or.kr/tc/issue/4600?category=7
http://www.women21.or.kr/tc/issue/4601?category=7
http://www.women21.or.kr/tc/issue/4588?categor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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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9/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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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수련회 & 3차 이사회 · 전국사무국장연석회의]

제주의 밤은 뜨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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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제주의 밤은 뜨거웠습니다.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제주 함덕 바다는

전국에서 모인 여성운동가들의 열정으로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지난 8월 26일부터 27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함덕 대명리조트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2015년 정책수련회와 3차 이사회, 전국사무국장연석회의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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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도 보기 드물게 청명한 날씨 덕분에
함덕 해변은 그야말로 그림같은 풍경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 풍경에 취해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우리는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주제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적 전환'과 여성 노동>
김현미 연세대 교수님과 함께하는 정책토의에 이어
'노동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그룹별 토론과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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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쫀득한 흑돼지 요리로 저녁식사를 한 뒤
3차 이사회와 전국사무국장연석회의가 이어졌습니다.

드디어 뒤풀이 시간.
파도마저 잠잠한 밤바다에서
제주여민회와 제주여성인권연대에서 준비해주신 한치회와 더불어 이야기꽃을 피웠드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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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아침에는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제주에 머물고 계신 이이효재 선생님께서 직접 후배들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생명과 평화에 대한 귀한 말씀을 나눠주신 이이효재 선생님과
멋있게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이후 제주여민회 선생님들의 인솔 하에
근처 서우봉을 지나 4.3기념관까지 트래킹을 시작했습니다.
서우봉에 올라 바라보는 눈부신 바다와 하늘,
인적 하나 없는 조용한 들길 모두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또, 4.3기념관에서 듣는 가슴 저린 역사에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아쉽지만 우리는 또 다음을 기약해야겠죠?
제주에서의 이번 수련회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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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9/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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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_시즌2]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대표


'한’부모 가족은 '온전한' 가족입니다


‘편부모’에서 ‘한부모’로 대안명칭 찾아
‘양육비이행확보및지원에관한법률’ 제정 성과
법 이행 모니터링과 경제적 자립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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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한부모’라고 합니다. 이혼이나 사별을 겪었더라도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한부모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아이를 얼마나 잘 키워내는가죠. 그러기 위해서 엄마들이 힘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엄마 혹은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여전히 강력하다. 최근 결혼보다 이혼이 흔한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편견도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이지만 십 수년 전부터 ‘한부모’(1990년대 후반 한부모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결손’의 의미를 담고 있는 ‘편부모’ 대신 ‘한부모’라는 대안어를 찾아 확산했다. ‘한부모’의 ‘한’은 ‘온전하다’ ‘가득차다’ ‘크다’는 뜻이다.)  가족에 대한 편견에 맞서온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97년 한국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한부모 운동은 군포, 광주, 인천, 원주, 고양 등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2004년 한부모가족지원네트워크가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기존 단체를 구심점으로 시작된 한부모 운동은 2010년 ‘한국한부모연합’(이하 한부모연합)이 창립하면서 당사자 운동으로 전환했다. 한부모연합은 현재 전국 11개 회원단체로 이루어진 연합체로 ‘한부모 가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허물고, 다양한 가족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또 한부모 가족이 독립적이고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적, 사회적 권익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다. 지난해는 한부모지원단체네트워크 결성 10주년, 한국한부모연합 창립 5주년이 되는 해로 지난 성과를 돌아보고 새로운 10년의 비전을 다시 세웠다.
   
“양육비이행지원법 제정됐지만 한계 많아”

“지난해에야 ‘양육비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올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법 제정은 한부모 운동 초창기부터의 이슈였는데 이제야 만들어진 것이지요. 아이 키우는데 많은 비용이 드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비양육자가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어요. 2013년에 관련 법안 4건이 발의됐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통과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국회의원들을 만나 압력을 넣었지요.”
전영순 한부모연합 상임대표는 한부모지원단체네트워크로 시작한 한국한부모연합의 지난 10년의 운동의 성과로 ‘양육비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짚었다. 2014년 3월 제정된 이 법은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 청구와 이행확보 지원을 위한 법률이다.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 한부모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이 법률에 따라 올해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개원해 업무를 시작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채무 불이행자의 자산을 조사해 제재를 가하고 한시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한다.
하지만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가 미약해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 대표는 “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2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둔 한부모 가족의 83%가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소송을 통해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온 후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77.4%에 달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양육비 지급을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제재 조치가 절실한 실정이다. 또한 전 대표는 “저소득층 한부모들 중 비양육자로부터 양육비를 받으면 그것이 소득으로 합산돼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있어 차라리 양육비를 받지 않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한부모연합은 법이 올해부터 시행된 만큼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활용하는데 문제점이 무엇인지 사례를 모집하고 법 집행에 대해서도 모니터링 해 올해 연말쯤 보완대책을 세워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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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운동은 인생의 전환점

1999년 전영순 대표는 한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군포여성민우회를 만났다. 당시 한부모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했었던 군포여성민우회에서 전 대표는 회원으로 참여해 상담소장을 거쳐 대표까지 역임했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민우회 발족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 때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부모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다보니까 여성운동이 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나 아닌 한부모가 또 있네’ ‘여기 오니까 지지받네’ ‘(한부모는) 나만의 문제이고 창피한 일이었는데 그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20대 중반에 결혼해 전업주부로 십 수 년을 살아온 전 대표는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많이 불안하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소송에서 양육비에 대한 판결을 받게 되어 두 아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양육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아이들과 생계를 꾸려가야 할 일은 두려움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한부모운동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이혼한 것 자체가 큰 변화였어요. 이혼하면서 민우회를 만나지 못하고 혼자 무엇을 해보려고 했다면 지금의 이런 삶이 아니었을 수도 있죠. 그랬다면 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았을까. 그냥 전업주부로 살았다면 세상의 많은 경험을 하고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전 대표는 본인 스스로도 한부모가 되는 과정에서 민우회를 통한 활동이 큰 힘과 지지가 되었지만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한부모가 지속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부모 사업이 다른 사업보다 굉장히 힘들어요. 한부모들을 만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에너지 소진이 많지요. 활동가들이 열심히 프로그램을 준비해도 말없이 안나와버린다거나, 교육을 거듭해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던가 해요. 그래서 한부모운동을 하던 단체들이 사업을 접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부모운동의 조직화나 활동가를 키워내는 일이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운동을 지속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당사자들이다보니 생계를 위한 일도 해야 하고 활동도 해야하는 어려움 때문에 열정을 가진 한사람이 사명감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다. 전 대표도 초기 민우회에서 활동할 때 공부방 운영을 겸임했었다. 2009년 한부모연합 창립 준비를 위해 복귀하기 전 3년 간은 돈을 벌 요량으로 운동을 접고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더 나이 들기 전에 돈 버는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엄마만 좋자고 이런 활동하러 다니고, 아이들에게 무책임한 엄마가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그만 카페를 시작했는데 자꾸만 옆에 카페가 생기더라고요. 2년 여 만에 그만뒀는데 그나마 빨리 그만둘 수 있었던게 다행이었다 싶어요. 그때 저도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그걸 지켜봤던 딸도 매일매일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시 돌아와 운동하는 것에 대해 아마 대만족을 하고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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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립과 한부모운동의 외연 넓혀야”

서울 대방동에 위치한 서울여성플라자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부모연합에는 전영순 대표 혼자 상근 활동 중이다. 2013년 10월 이곳에 사무실을 차리기 전에는 사무국이 따로 없어 여력이 있는 회원단체에서 사무국 일을 맡아서 했다. 여성플라자에서 업무를 시작하면서 상근을 하게 된 전 대표는 요즘 돈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여성플라자에 최대 4년간 있을 수 있는데 앞으로 2년 남았습니다. 그 안에 경제적인 자립을 하는 것이 조직의 목표입니다. 다행히 여기에 정착하면서 프로젝트 사업도 회원단체들에게 나누게 됐고 물품후원도 받아서 나누고 있습니다.”
재정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부모연합은 지난해 한국여성단체연합의 회원단체로도 함께 하게 됐다.
“우리가 너무 한부모에 한정되어 활동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여성운동과 연결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운동이 확장되지 않는 거에요. 지난해 군대 관심사병 이슈처럼 한부모에 대한 이슈가 생겼을 때 다른 여성단체와 연대하고 힘도 받고 하는게 필요하다고 뜻을 모았죠. 한부모 이슈가 결국 가족의 문제이고 양육의 문제이고, 이것은 전체 여성의 관심거리여야 하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여성단체들의 의견도 받고 참여도 이끌어내자는 생각입니다.”

글/사진 : 김수희 여성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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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7/3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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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포럼 후기]

‘성매매특별법’ 위헌제청 논쟁과 여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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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과 관련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활동의 대안을 모색해보는 자리인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포럼'이 6월 11일 오후 6시30분 여성미래센터 지하교육장에서 열렸습니다.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 제목 하에 열린 첫번째 포럼 당일인 4월 9일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의 위헌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2012년 7월 1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여성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이에 따라 성매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현재 성매매특별법은 성구매자뿐 아니라 ‘자발적’ 성판매자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참고로 처벌받지 않는 성판매자의 상황은 위계위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했거나 보호 감독하는 타인으로부터 마약 중독되어 성매매 했거나 청소년이나 심신미약자가 알선유인 된 경우, 인신매매된 경우입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박진경 소장님의 사회로 참가해주신 스물일곱 분들의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차혜령(공익인권법재단공감/민변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와 정미례(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의 발제를 들었습니다.

먼저 차혜령 변호사는 위헌소송의 공개변론에서 나왔던 쟁점을 설명하며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위헌법률 사건을 보기 전에 성매매를 둘러싸고 무엇이 문제이고 범죄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매수만이 범죄이다. 공개변론에서 부각된 쟁점 중 하나는 성매매의 해악에 관한 것이다. 강요나 약물 등에 의하지 않고 성매매가 이뤄진 경우 그것을 범죄로 처벌하기 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성매매의 해악이 무엇인가. 성매매처벌규정 합헌을 주장하는 정부쪽 대리인은 주로 ‘성매매는 성풍속을 해하는 사회적 해악’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동시에 정부쪽은 ‘근본적으로 성매매라는 비인간적 사태를 막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는 의미’, ‘성매매는 성매도인 자신에 대한 위해행위이므로 사회적 해악 명백히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방임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이나 ‘자신에 대한 위해의 직접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성판매자 개인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같은 부분은 현행 성매매처벌규정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강요없는 성매매는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쪽도 정부쪽도 동일하다. 성매매는 성매매로 인하여 특정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 범죄, 곧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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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차혜령 변호사는 합의한 성매매라 할지라도 개인적 해악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해악이 정말 없을까? 성병 등의 질병적 위험에 노출되며 물리적 폭력이나 성폭력도 가능하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성매매 여성의 해리성 장애도 굉장히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간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을 깨고 있기 때문에 침해가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발제의 마무리로 “성매매가 성판매 여성들과 사회에 미치는 해악과 그 실체를 더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밝혀내고 성매매의 실체를 더 드러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으로 이론적인 논쟁보다도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해서 여성운동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바람을 시작으로 정미례 공동대표의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성매매특별법 제 21조 1항은 성매매여성과 성매수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조항으로 만약 위헌이라는 선고가 나온다면, 성매매여성뿐 아니라 성매수남성에 대한 처벌 당위성이 없어진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합헌이 유지된다면 성매매여성에 대한 처벌이 그대로 집행된다는 문제가 남게 된다는 점도 고민지점이다.”

무엇보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 또한 해결되어야 할 지점이라고 짚었습니다.

“성매매 문제는 이미 성별화 되었다.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 문제 해결되어야 한다. 독일이나 호주의 경우 제도가 있더라도 사회 내부에서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낙인이 심하다고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한 사회 내 낙인척도가 높은 그룹 중에 성매매여성이 제일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성매매여성에 대해서 피해자화가 아니라 젠더 기반 한 폭력 관점에서 이 문제를 재구성했으면 좋겠다. 성매매 역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봐야 한다.”며 보다 큰 틀에서 성매매문제를 접근해야 할 필요를 제기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발제들에 이어 참가자들과 플로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성적자기결정권과 노동권 등 기본권과 관련해서 성매매 문제를 논하기도 했고, 외국의 성매매 정책과 실제에 대해서도 짧은 토론시간이었지만 질문과 답을 자유로이 나누며 제2차 성평등포럼을 정리했습니다.

2015년 제3차 성평등포럼 일시는 8월 20일(목) 오후 6시30분
주제는 <여성정치세력화와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성평등포럼은 짝수 달 개최되며 회원제로 운영됩니다.
문의 :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연구소 [email protected] / 02-313-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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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6/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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