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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문화체험] 샤론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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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문화체험] 샤론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익명 (미확인) | 월, 2015/09/07- 15:49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아이들, 한뼘 더 성장하다"
 

샤론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샤론 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서대문형무소. 한여름 무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 왁자지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울려 퍼졌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10여명 남짓한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6월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운동 역사를 배워가는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보다 생생한 독립운동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광복절 즈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프로젝트 초기만 해도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던 아이들은 불과 두 달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삼점일절에서 ‘31독립운동 역사와 거리를 좁히다

 

 

“191931일 파고다 공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칩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 명이었는데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200만 명이었다고 해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친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랍니다.”

독립운동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운동이었어요.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모두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죠. 그걸 지키려고 애썼던 분들이 계셨고, 총칼로 싸우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각오하고 활동한 분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쓱 지나가며 곁눈질하는 것과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서대문형무소가 초행도 아니고, 독립운동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음에도 서대문형무소 도슨트(전시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윤명희 선생의 설명을 들으니 알고 있던 사실조차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사전 자료조사를 통해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니, 중학교 1학년이면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설명을 듣고도 생각은 오히려 더 깊고 넓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설명을 들으면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독립 운동가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후손들을 위한 그분들의 희생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여성 감옥이 따로 있었다는 건 자료조사 하면서 알고 있었는데, 임산부 독립 운동가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임신한 몸으로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기저귀도 구할 수 없는 감옥 안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저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인데 그 모든 것을 독립을 위해 견뎌내신 분들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아이들 스스로 배움과 깨달음 이어가는 역사탐험 프로젝트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샤론지역아동센터는 초중생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프로젝트 수업이다.

선생님은 큰 주제만 제시할 뿐, 그 어떤 설명도 자료도 일절 주지 않는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은 모두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 오기 전에도 자료조사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또래와 비교해 이해의 범위가 남달랐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설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거나,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시큰둥한 표정을 보면서 아직 어려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재미가 없어서 지루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고 오해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무표정이 전부였지만, 그 뒤에서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새로 알게 된 것 사이를 바삐 오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사실 저 역시 아이들 표정만 보고 걱정하던 때가 있었어요. 한번은 종일 견학만 다닌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 걸으니까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더라고요. 무리한 일정이었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설렁설렁 다닌 줄 알았는데 설명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신문기사로 정리해내는가 하면, 그날 다닌 곳들을 그림지도로 만들기도 하고, 직접 대본을 써서 종이인형극을 선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보기엔 떠들고 장난치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마음에 다 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확신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일보다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고요.”

 

최미란 샤론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2012년부터 매년 올해로 네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되고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단번에 잊게 만들만큼 아이들의 빛나는 성장을 매순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어루만지는 따뜻한 돌봄아름다운 동행 계속되길

 

샤론지역아동센터 최미란 센터장

 

샤론지역아동센터가 2010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어온 것도 아이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 덕분이다. 아름다운재단이 문화소외지역 아동청소년들에게 문화체험 활동을 지원하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에 지원해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피아노 레슨 기회를 연결한 것이다. 최미란 센터장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센터는 지역 특성상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도 많은데,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레슨을 받으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그중 한 아이는 3년간 피아노를 쳤는데 음악으로 마음의 병을 이겨냈고요.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성장했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과 더불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있는 샤론아동지역센터. 아이들을 향한 무한대의 사랑만큼 앞으로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동행도 끝없이 진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글. 권지희 | 사진. 김흥구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아동단체협의회가 파트너쉽을 맺어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아름다운재단 꿈꾸는나무기금, 성도지엘삼더기금, 아름다운영화인기금, 효주기금, 행복한쉼표기금을 기반으로 전국 문화소외지역(농어촌, 광산촌, 섬지역 등)에서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나 아동청소년 이용시설 및 양육시설에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문화예술교육, 현장탐방 등)을 지원합니다. [지원사업 자세히 보기]




 

숨요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전서영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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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일신여학교 재학 당시 차별적인 식민 교육에 항거해 동맹 휴학을 주도하는가 하면 항일여성운동의 전국적인 통일기관인 ‘근우회’에서 활동하며 개혁적인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의 길을 모색했던 박차정. 서울지역 11개 여학교를 비밀리에 조직해 1930년 1월 대규모 학생시위를 주도한 박차정은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박차정은 1930년 의열단에 합류했고, 이를 이끌던 독립운동의 거두 김원봉과 결혼해 사랑과 혁명의 길을 함께 걷는다. 1935년, 의열단 등 좌우 독립운동단체 5개를 통합한 조선민족혁명당이 창당하자 박차정은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해 조선 여성들이 총단결하여 민족독립과 여성해방을 쟁취할 것을 독려한다. 이는 박차정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이념이었다.

우리 조선 부녀를 현재 봉건적 노예제도 하에
속박하고 있는 것도 일본 제국주의이고
또 우리를 민족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도 일본제국주의이다.
우리들이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부녀는 봉건제도의 속박 식민지적 박해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남경조선부녀회 선언문 中-

1938년 조선의용대 창설 후 부녀복무단 단장으로 활약하며 항일투쟁의 선봉에 선 박차정은 1939년 2월, 곤륜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1944년 34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자주독립과 민주혁명을 이룬 통일조국이라는 박차정의 못다 이룬 꿈은, 그러나 김원봉 또한 보지 못했다. 연합국의 힘으로 해방된 조국은 미군정의 주도권 하에 있었고 소용돌이치는 해방정국 안에서 독립운동가 김원봉은 친일경찰 노덕술에 체포돼 참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한다. 역사의 모순이 빚어낸 참상이었다.

분단과 이념의 대립 속에서 지워진 역사. 박차정은 사후 50년이 지난 1995년에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고, 김원봉은 광복 70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과 북 그 어느 곳에서도 독립운동가로 살았던 삶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금, 2016/01/0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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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KYC 온라인 정기총회를 시작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생활속에서 참여와 나눔 그리고 성찰을 실천하는 서울KYC 회원여러분
2월18일 오전 11시부터 2016년 서울KYC 온라인 정기총회를 시작합니다.

2016년 총회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2015년 서울KYC가 회원들과 함께 만들어온 다양한 모습도 살펴보시고,
총회 네가지 안건에 대한 투표참여도 부탁드립니다.
2월25일 18시까지 계속되는 서울KYC 정기총회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총회기간 : 2016년 2월 18일(목) 오전 11시 ~ 2016년 2월25일 18시

총회안건
[안건1] 2016~2017 감사 선출의 건
[안건2] 2015 결산안 승인
[안건3] 2016 운영위원회 구성 승인의 건
[안건4] 2016 사업계획 및 예산안 운영위원회 위임 승인의 건

서울KYC 온라인 총회장 바로가기 (www.seoulkyc.or.kr/vote2016)

로그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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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이 안되는 경우 사무국(02-2273-2276)으로 문의해주세요.




*2016~2017 서울KYC 공동대표 선거 무산에 대한 공지

1. 경과 보고
 - 1월 19일(화) 공동대표 선거 공고
 - 2월 2일(화) 후보 등록 마감 / 미등록
 - 선관위와 운영위원 논의를 통해 2월 14일(일)까지 등록기간 연장
 - 2월 14일(일) 후보 등록 마감/ 미등록

2. 결과
 - 한차례 후보등록 기간을 연장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미등록
 - 후보 미등록으로 인해 선거 무산
 - 2016년 정기 총회 안건 상정 불가능
정기 총회 총회 후, 임시운영위원회를 통해
2016~2017 서울KYC 공동대표 재선거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함.





[참고] KYC 선거에 관한 규정
KYC "선거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투표권은 아래 회당하는 회원들에게 주어집니다.
(1) 선거공고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정회원
(2) 선거공고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후원회원 중 투표의사가 있는 회원
    단, 투표에 참여한 자를 투표의사를 밝힌 것으로 간주하여 투표 정족수에 포함 시킨다.

2016년 1월 19일 정기총회 공고일 기준으로
-2015년 7월 19일~2016년 1월 19일 기간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정회원 누구나
-2015년 7월 19일~2016년 1월 19일 기간에 1회 이상의 회비를 납부한 후원회원중 투표의사가 있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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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2/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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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논평] 서울시의 유예요청에도 강제철거 진행, 옥바라지 재개발은 치외법권인가

-30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앞 긴급기자회견 개최

총선으로 이목이 쏠려있는 가운데서도 삶의 가장자리에서 내몰리는 도시 서민들은 고달프다. 특히 각종 개발이익을 위해 추진되었던 재개발 사업의 현장이 그렇다. 지난 겨울부터 계속되고 있는 무악2구역 주택재개발사업은, 서대문형무소와 인접한 곳으로 그동안 역사문화적 가치를 위해 보존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왔다. 특히 해당 골목의 주민들은 재개발을 통한 개발이익보다는 기존 주거지를 존치하면서도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지난 3월 16일 <무악2구역 건물철거 유예 요청>이라는 공문을 종로구청에 시달하면서 "현재 미 이주한 주민들과 조합 및 구청에서 사전협상이 완료되지 않았고 옥바라지 골목 등 보존방안에 대해 현장 조사중에 있으므로 철거 유예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요청을 한 바 있다.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철거가 진행 중이다. 마치 오래된 도시 공간을 유지하자는 제안이 자신들의 개발이익을 줄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인지 조합 측은 막무가내다. 특히 종로구청의 행태는 공공기관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중재자의 역할을 포기했다.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30일 8시경) 강제철거에 항의하는 지역주민을 경찰 측에서 업무방해로 체포하려고 했다. 항의하던 시민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재개발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서대문형무소와 뗄 수 없는 옥바라지 골목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추진하자는 것이 골목 주민들의 요청이고 노동당서울시당과 같이 함께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의 뜻이다.

그런데도 대화나 타협보다는 밀어붙이기식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 사업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민망스럽고 부끄럽다. 재개발 사업은 기존 거주자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것이지, 아파트를 지어서 돈을 남기려고 하는 장사가 아니다. 지난 2004년부터 진행된 뉴타운 사업의 후과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은 주민갈등과 하우스 푸어를 양산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번 부셔지면 절대로 복원할 수 없는 장소를 너무 쉽게 부셔버리는 관행은, 600년의 역사문화도시 서울이라는 말 자체를 부끄럽게 만든다. 

노동당서울시당은 이 문제의 매듭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곳은 서울시 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서울시의 공문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종로구청과 조합에 대해 법에서 정한 관리감독 및 지도를 실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최소한 강제철거로 인해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무엇보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서울의 역사적 장소들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오후 2시에 서울시청앞에서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린다. 이 순간이 지나면 서울의 많은 곳이 그렇듯, 옥바라지 골목을 대신해 드러선 아파트 숲을 지나며 "예전에 여기가 옥바라지 골목이라는 곳이 있었던 곳이다"는 퇴색해 버린 옛이야기만 남을 것이다. 정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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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3/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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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및 회람] 여전히 진행 중인 옥바라지골목 철거, '서울시가 나서라'는 역사 3단체 공동성명을 환영한다

서울시의 '철거유예' 공문에도 불구하고 옥바라지 골목의 철거가 진행 중이다. 불과 이틀 전에 한 주민이 119에 실려가는 충돌이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골목길을 부수며 위협을 한다. 실제로 아침부터 중장비를 동원해 기존 철거된 건축물 자제를 파쇄하는 일을 하더니 그마나 남아 있는 골목길 보도블럭을 부수는 중이다. 

이런 일이 너무 반복되는데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니 주민들 입장에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절로 나온다. 그렇게 옥바라지 골목의 상처가 또다시 헤집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성에 대해 서울시의 관심을 촉구하는 역사단체의 성명이 나오는 등, 골목을 지키기 위한 연대는 지속되고 있다. 부디, 한번 없어지면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도시의 기억, 역사, 경험을 지키는데 관심을 부탁한다.

아래는 역사3단체의 공동성명서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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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해야 한다!

 2011 11, 서울시 종로구는 독립문역 3번 출구 앞에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기거 100년 여관골목 글귀가 적힌 골목길 관광코스 표지판을 세운 바 있다. 기록에 따르면 종로구가 일종의 관광자원으로 골목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2009 9 23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600년 옛 도시 종로의 길을 걷다  고샅길 20코스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는데, 당시 언론은 종로구가 골목마다 숨어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기획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다뤄주었다. 위에서 언급한 옥바라지 골목은 이때 기획된 무악동: 인왕산 영기코스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종로구는 표지판을 설치했고, 2012 1 1일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손수 제작한 동네 골목길 관광 제6코스: 무악동 리플릿을 구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고 있다. 동네 주민의 기억에 따르면 골목길 해설사를 뒤따르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이곳을 지나가고 했다고 한다.

불과 4년 전의 일을 생각해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옥바라지 골목에 해당하는 무악2구역은 바로 그 종로구에 의해 재개발이 결정되었고, 롯데건설에 의해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단지 아파트 6개 동을 세우기 위해 종로구는 스스로가 부여한 옥바라지 골목의 역사적 의미를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종로구 스스로가 옥바라지 골목의 보존과 연관된 경험을 이토록 무의미하게 취급하는 것은 상당히 의아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분명 자본 중심의 재개발 논리가 깔려 있을 것이다. 도시가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어떤 역사적 공간이 폭력적으로 소멸되는 역사가 또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옥바라지 골목이 이런 종류의 폭력에 저항해 왔던 공간 그 자체였음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다.

우선 옥바라지 골목이 바로 맞은편에 있는 감옥과 시간을 함께 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일제는 자신들을 향한 크고 작은 항일운동을 범죄로 취급하면서 감옥의 기능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도 민주화 운동을 범죄로 취급했던 순간순간을 가지고 있다. 저항의 격화는 수감자의 격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동시에 옥바라지의 증가를 의미했다. 옥바라지는 수감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키면서 그들과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담당했는데, 이는 저항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국가의 의도와 완전히 반대되었다. 결국 옥바라지는 매우 사소해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저항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옥바라지 골목은 이런 역사를 거의 100년에 걸쳐 축적한 공간이다.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옥바라지 골목이 서울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저항들은 서울을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공간을 거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 공간들의 기억을 모은 것이 바로 서울의 역사인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해야 하는 것은 옥바라지 골목이 담고 있는 서울의 역사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지 그 공간의 소멸을 방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리한 철거에 제동을 걸기 위해 얼마 전 철거유예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는 이 골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온 주민과 활동가, 연구자들의 첫 번째 성과인 동시에 서울이 스스로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울시의 이런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서울시가 지금 막 시작한 고민을 보다 실질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행하기를 촉구한다.

옥바라지 골목과 이곳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은 우리의 삶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좁은 골목길 구석구석에는 옥바라지 하러 온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한 밥을 먹였다거나 사형수 아내의 처절한 통곡소리에 온 마을이 같이 울었다거나 날마다 치마바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아낙들을 위로했다거나 하는 인간적인 이야기들로 넘쳐났었다. 이러한 사연들은 이 골목이 간직해 온 기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우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기억을 마주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말해준다. ‘옥바라지 골목을 소멸시키면서 이런 기억들을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이 골목을 보존하면서 이런 기억들을 계승하는 직접적인 주체가 될 것인지 말이다. 지금이 바로 그 기로이다. 서울시가 이 기로에서 선택할 도시정책이란 자본 중심의 재개발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하는 도시재생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울시에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한다.

1. 서울시는 자본 중심의 도시재개발정책을 인문 중심의 도시재생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1. 서울시는 종로구 무악동 46번지 일대의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하는 직접적인 행정주체가 되어야 한다.

1. 서울시는 상위 주무관청으로서 종로구와 롯데건설이 행하는 무리한 철거에 실질적인 제동을 걸어야 한다.

1. 서울시는 옥바라지 골목의 보존을 위해 주민 및 역사학자 등의 전문가와 협의해야 한다.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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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4/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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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가이즈카 향나무…이토 히로부미가 대구에 처음 심어
-경남교육청에 심어진 향나무 뽑아내고 소나무로 교체
-교체 강제할 순 없지만 교체 적극 권장할 계획
-친일 음악가 조두남, 창원에만 7개 학교 교가 제작
-일장기 모양의 학교건물도 남아있어
-일본 식민주의 사관 넘어 향나무 뽑는 실천부터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 대담 :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 이일만 장학관

◇김효영> 여러분이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요. 교가는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흔히 친일파로 분류하는 음악가가 만든 교가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교육기관 곳곳에 친일 잔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지시로, 경남교육청에서는 전수조사가 실시가 되고 있습니다.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전수조사를 맡고 계신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의 이일만 장학관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안녕하세요?

◇김효영> 특별히 전수조사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서 우리 교육청 차원에서 일제 잔재 청산과 우리 얼 살리기 교육사업을 전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해서 한 번 실시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돼서 2년간에 걸쳐서 실시를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조금 전에 제가 교가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교가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학교들에서는 가보면 교장실에 역대 교장들 사진이 걸려 있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김효영> 네.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거기에 보면 일본인들의 사진도 그대로 걸려 있기도 하고, 사진이 없는 학교라도 명패 정도라도 이렇게 걸려 있는 그런 학교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가 1910년에 한일합방을 시키고 난 뒤 모든 학교를 군대화하는 형태로 이뤄지면서 교원들에게도 제복을 입혔고 학생들에게까지 교복을 입혀서 통치가 이뤄지다보니까 아마도 교장들의 사진에서도 제복을 입은 것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효영> 경남교육청은 향나무를 뽑았던데, 친일 잔재란 이유로. 학교 교목도 친일잔재로 볼 수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교목 같은 경우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즈카 향나무는 일본이 원산지로 돼 있고, 나사 모양으로 뒤틀려서 자란다고 해서 나사백이라고도 하고, 한자로 표기하면 패총으로 표기가 됩니다.

◇김효영> 패총.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조개무덤. 일제 강점기에 학교나 관공서에 많이 심어졌고, 100여 년 전인 1909년 1월에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순종 황제와 함께 대구 달성공원을 찾아 기념식수로 처음 심었다고 전해지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지난 3월 1일에 우리 도교육청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가이즈카 향나무를 뽑아내고 우리 소나무로 바꿔 심었습니다.

◇김효영> 사실 그런 향나무가 관공서에 많지 않나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다고 표현을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김효영> 거의 다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그렇습니다.

◇김효영> 이번 전수조사에 가이즈카 향나무도 포함이 되고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당연히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학교에 특히 향나무를 교목으로 하고 있는 학교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교체를 하라마라 강제성을 둘 수는 없지만, 적극적으로 교체를 할 수 있도록 권장을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우리가 흔히 보는 향나무는 대부분 가이즈카 향나무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대부분 나무들이 보면 둥근 모양으로 돼 있는, 우리가 흔히 향나무 하면 떠오르는 그 나무들 거의 대부분이 가이즈카 향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나무 이야기를 했고요. 그 다음에 앞서 말씀 드렸던 교가 문제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교에서 작사가나 작곡가 중에 친일 인물로 분류할만한 사람들의 작품이 많이 있습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저희들은 곳곳에 산재한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친일 작곡가, 작사가의 개념이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규정짓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저희들이 친일인명사전이라든지 그런 자료들을 통해서 파악을 했을 때, 오래된 역사들을 갖고 있는 학교들에 대해서는 특정인에 의해서 작사, 작곡된 교가들이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김효영> 장학관님께서는 상당히 조심해서 말씀하시고 계신데, 제가 대신해서 좀 말씀을 드리자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친일 작곡가로 분류되는 사람이 조두남인데요.
이 조두남씨가 창원에 있는 학교 7개 학교의 교가를 작곡을 했습니다.
창원의 성호초등학교, 온천초등학교, 완월초등학교, 합포초등학교, 내서중학교, 경상고등학교, 무학여고. 이렇게 7개의 교가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창원대학교 교가도 조두남씨가 작곡을 했던 겁니다. 참고하시면 되겠고요.
창원 지역만 제가 예를 들었습니만, 창원만 그렇지는 않겠죠?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다른 지역에 대한 부분은 지금 현재 조사 중이기 때문에 5월 정도 되면 전수조사 결과가 집계가 될 것으로 저희들은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앞서 말씀하셨던 조두남 같은 경우는 그때 당시에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고 그래서 여러 학교에서 조두남 작사, 작곡의 교가가 있지 않나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효영> 나무나 교가 말고, 또 어떤게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학교 담부터 시작해서 화단 모양 이런 것에서도 일제 잔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함안의 모 학교 같은 경우에는 운동장 바로 옆에 건물이 하나 있거든요. 그걸 위에서 쳐다보면 일장기 비슷하게 된 그런 오래된 건물이 하나 지금도 있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김효영> 이렇게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무관심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무관심’이라는 표현 자체가, 있어 왔던 것에 대한 익숙함. 그래서 문제의식을 가지기 보다는 있어왔으니까 그대로 가는 그런 형태가 지금의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그런 생각합니다.

◇김효영> 그냥 옛날부터 있어 왔으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그것이 일제 잔재였는지에 대한 고민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김효영> 다른 일반적인 공간이 아니라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그래로 둬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하신 거군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그렇습니다. 특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면서 더욱 더 우리 도교육청에서는 우리 얼에 대한, 그리고 나라사랑 교육을 심어주고자 하는 교육감님의 뜻에 따라서 저희들이 그 부분에 대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효영> 전수조사를 한 다음에는 외부 전문기관의 도움도 받으시는거죠?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우선 전수조사가 끝이 나고 나면, 20명 안팎의 TF팀을 꾸리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TF팀을 꾸려서 전수 조사된 내용을 충분히 분석을 하고 이 결과를 가지고 민족문제연구소나 다른 대학 등 전문기관에 의뢰도 하고 도움을 받아서 운영을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친일잔재 청산작업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이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호숫가에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서 물결이 파장이 일어서 변화가 나타나듯이, 이 일을 계기로 해서 그 동안 무심코 넘겼던 일제의 잔재라든지 어떤 흔적들,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습관들까지도 바꿀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일제의 잔재를 깨끗하게 없애버린다는 것 보다는, 지금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고, 이러한 것을 어떻게 현 시점에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정표의 기회가 분명히 일제잔재 청산 정책의 기본 취지라고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효영> 알겠습니다. 적어도 알고는 있자는 겁니다. 기억하자는 것이고. 끝으로 한 말씀 하시고 오늘 인터뷰는 마치겠습니다.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본 사업은 지난 100년간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함께 살아온 일본 식민주의 사관의 결과로서 이 100주년을 넘어 온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사명감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작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육청도 교목이나 교가 하나 바꾸는 것을 넘어서 인류의 보편적 이상인 민주, 평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세계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김효영> 조사결과는 다음달에 나온다고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5월 즈음 전수조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효영> 결과가 나오면 한 번 더 모시겠습니다.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네, 고맙습니다.

[email protected]

<2019-04-18> 노컷뉴스 

☞기사원문: “학교 향나무,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

토, 2019/04/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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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치유하는 의료상담으로 거리 위의 아이들과 거리를 좁히다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포텐’ 이동의료상담 현장 이야기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포텐'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포텐'



늦은 저녁, 의정부시 행복로 일대는 금요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느 번화가와 마찬가지로 밥집과 술집이 즐비한 곳. 덕분에 거리는 낮처럼 환했고, 시간을 잊은 듯 여기저기서 흥겨운 음악소리가 흘러넘쳤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잡아끈 곳이 있었으니, 바로 행복로 끄트머리에 위치한 디스코 팡팡이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 듯 신나는 음악이 쩌렁쩌렁 귓가를 울리는 이곳은 흥에 취한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거리에 유달리 앳된 얼굴이 많았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이 더욱 깊어지자 요란한 음악은 사그라졌고, 디스코 팡팡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밤늦은 시간이니 모두 집으로 돌아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아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생님, 배고파요! 라면 끓여주세요!” 

한눈에 봐도 중학생, 많아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익숙한 듯 천막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디스코 팡팡 바로 앞에 세워진 천막 안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라면과 과자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중 몇몇은 천막 옆에 서있는 버스 안으로 발길을 옮겨 한바탕 이야기를 쏟아냈다. 유흥가 한복판에 난데없이 천막과 버스라니! 이상하게 여길 법도 한데, 오히려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천막과 버스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갔다. 



동트는 새벽까지 천막과 버스 문을 활짝 열고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동트는 새벽까지 천막과 버스 문을 활짝 열고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부모와의 갈등으로 가출을 고민하는 아이들부터 성매매 등 위기 상황에 노출된 아이들까지, 제 나이를 한참 웃도는 고민을 짊어진 10대 아이들은 이곳에서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포텐’은 동트는 새벽까지 천막과 버스 문을 활짝 열고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과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찾아가는 의료상담, 몸을 치유하고 마음의 허기를 채우다  


“겉보기엔 여느 또래와 다를 게 없어요.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른들은 전혀 상상도 못할 고민과 어려움을 안고 있어요. 병원이 아닌 거리에서 상담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절실히 도움이 필요하지만 차마 도와달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걸요. 특히 거리 청소년들은 혼자 힘으로 병원 문턱을 넘기 어려운데, 그들에게 포텐이 작은 디딤돌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지구덕 한서중앙병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지구덕 한서중앙병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지구덕 한서중앙병원 원장은 의정부시이동청소년쉼터 포텐 초창기부터 거리 청소년을 위한 이동의료상담을 해오고 있다. 지구덕 원장은 그동안 사소한 자극에도 감정이 격앙되며 자살을 시도하는 아이부터, 가족에게 폭력을 가하고 위협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아이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위 ‘문제 청소년’들의 상담을 도맡아온 청소년 전문가다. 하지만 병원이 아닌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지금껏 그가 마주한 것과는 또 달랐다. 


10대 청소년의 가출, 성폭행, 성매매…. 어른들에겐 간혹 신문기사에서나 봄직한 끔찍한 일들이 거리의 아이들에겐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기 상황에 노출되고, 잘못인 건 알지만 어디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미처 구조의 손길조차 내밀지 못한 채 더욱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대다수 어른들이 ‘문제아’라며 손가락질하고 외면할 때 가만히 손을 내밀어주는 곳, 어쩌면 포텐의 천막과 버스는 오갈 데 없고 기댈 곳 없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유일한 안식처인지도 모른다. 



포텐 버스 안에서 상담 중인 지구덕 원장포텐 버스 안에서 상담 중인 지구덕 원장


“올 봄인가, 새벽에 긴급 연락을 받고 상담을 진행한 여중생이 있었어요. 한동안 입을 열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포텐 버스 이야기를 꺼냈더니 눈빛이 달라지는 거예요. ‘어, 나도 포텐 가봤는데? 혹시 OO 알아요? 선생님 OO랑도 얘기해봤어요?’ 계속 질문을 쏟아내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더군요. 사실 이런 경우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이 아이는 스스로 입원을 결정했어요. ‘엄마, 나 다녀올게’ 인사까지 하고요. 포텐 활동이 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의지가 되고 있는지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죠.” 




꼬박 3년간 한결같은 열정, 아이들의 마음 빗장을 열다 


지난 2012년 11월 첫 활동을 시작한 포텐은 야간시간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는 ‘움직이는 청소년 쉼터’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의정부 내 청소년 밀집지역을 번갈아 찾아가며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야외 천막에선 허기를 채울 간단한 먹을거리와 심리상담, 진로상담 등을 진행하고, 좀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한 아이들은 조용한 버스 안에서 상담을 이어간다.


 

지난 2012년 11월 첫 활동을 시작한 포텐은 야간시간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는 쉼터다.2012년 11월 첫 활동을 시작한 포텐은 야간시간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는 쉼터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 포텐 천막과 버스가 등장했을 때 아이들은 멀리서 곁눈질만 할뿐 도통 곁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3년여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들을 찾아오는 포텐의 고집에 아이들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이제는 먼저 기다렸다가 포텐 버스가 들어서기 무섭게 몰려들고, 치과․가정의학과․정신의학과․산부인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의 의사․간호사 선생님이 의료상담을 진행하는 금요일엔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지구덕 원장은 손에 꼽히는 ‘인기남’이다. 실제로 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10분 내로 상담을 시작하지 않으면 도망가겠다’는 협박(?)이 난무했다. 오랜 거리생활과 위기 상황 노출로 인해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 지구덕 원장은 유일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상대인 까닭이다. 


산부인과 16년 경력의 베테랑 간호사 정인숙 신여성병원 간호부장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산부인과 관련 상담 봉사만 13년째인 그녀는 올해 초부터 포텐에 합류해 아이들의 성문제 상담을 도맡고 있다. 온갖 문제를 끌어안고 거리를 헤매다 포텐을 찾아온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녀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정인숙 신여성병원 간호부장정인숙 신여성병원 간호부장


“요즘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이 많은 만큼 성지식도 상당할 거라고 생각들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보면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지? 할 정도로 아는 것이 너무 없어요. 정작 중요한 것들, 어떻게 해야 피임이 되는지, 성병을 예방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임신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고 보면 돼요. 실제로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포텐 버스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아이를 설득해 부모에게 문제 상황을 알리고 해결방안을 찾도록 돕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적잖은 갈등이 벌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정인숙 간호부장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최근에도 고1 여학생의 부모님과 함께 상담을 진행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부모는 화가 나서 무조건 아이를 윽박지르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마음 문을 닫아버리고…. 현장에서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에요. 다행히 이 아이는 잘 해결됐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최소한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방치 상태에 있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제때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포텐 활동이 더욱 탄탄해지고, 더불어 더 많은 지역에서 거리 청소년을 위한 의료 서비스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거리 헤매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안식처 되어주길


행복로에서 거리 상담을 진행하던 어느 날, 중년의 남성이 천막 사이를 한참동안 기웃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선뜻 다가오진 않는 그에게 포텐을 이끌고 있는 전종수 소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의외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는 학생의 아버님이더라고요. 아이가 왜 이곳을 자주 찾는지 궁금해서 와보셨대요. 어떻게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으시더군요. 처음엔 무척 어두운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한참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아이가 왜 매번 이곳을 오는지 알겠다고, 앞으로 자신도 노력하겠으니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요.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아이와 그 부모가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 함께 상담을 받은 뒤 다정하게 손잡고 가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정말 보람을 느끼죠.” 


전종수 소장을 비롯한 포텐 활동가들은 이날 새벽 4시까지 거리 상담을 진행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반복하는 일상이다. 이유는 단 하나, 더 늦은 시간일수록 고위험군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지만,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만나 도움을 주고 싶다는 포텐 활동가들의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그래서일까. 취재를 마치고 의정부역으로 걸어가는 내내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포텐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이다. 앞으로도 부디 지치지 말고 기댈 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안식처가 되어주길, 못난 어른들을 대표해 간절히 염원해본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만나 도움을 주고 싶다는 포텐 활동가들의 열정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만나 도움을 주고 싶다는 포텐 활동가들의 열정을 응원합니다!



글. 권지희 | 사진. 김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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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청소년 단체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 [꿈꾸는 다음세대영역의 단체지원사업의 일환으로거리청소년 아웃리치 및 지원이 가능하고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단체를 지원함으로써 거리청소년들이 지역 안에서 생활하고 보호받을수 있는 안전망을 제공합니다. 한편 기존의 사후적이고 단편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청소년의 특성과 욕구를 고려한 예방적, 통합적 서비를 제공하여 다양한 거리청소년 지원모델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본 사업은 미래세대1%기금을 기반으로 '거리청소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단체를 지원합니다.



 

숨요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전서영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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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0/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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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 안에서 거리 청소년들의 미래와 만나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캠핑카 이동상담 현장 이야기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이동상담 캠핑카한빛청소년대안센터 이동상담 캠핑카



땅거미가 짙게 깔린 저녁, 희미한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있는 서울 송파구 문정공원에 유난히 밟은 빛이 시선을 잡아끈다. 가까이 다가서니 아담한 크기의 캠핑카 주위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몇몇은 익숙한 듯 라면 물을 끓이고, 또 몇몇은 달뜬 표정으로 재잘거리는 모습이 마치 캠핑이라도 나온 것 같다. 아이들 곁에 노란색 조끼를 입은 어른들이 없었다면 도심 속 캠핑장이라고 단단히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캠핑카의 정체는 한빛청소년대안센터가 운영하는 청소년 이동상담소다. 낯선 어른과의 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위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캠핑카 안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어둑한 밤이 되면 어김없이 캠핑카를 몰고 거리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찾아간다. 


차 한 대가 무슨 역할을 할까 싶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캠핑카를 직접 마주한 아이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온다. 듬성듬성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서 알록달록 팔찌를 만들며 자연스레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아늑한 캠핑카 안에서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집 대신 밤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에게 캠핑카는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마을 어른들 

캠핑카 이동상담소가 아무리 제 역할을 잘해내고 있어도 물리적인 한계는 여전히 고민거리다. 일주일에 몇 번 한정된 장소를 찾아가는 정도로는 거리의 아이들을 모두 보듬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지역민을 대상으로 청소년 상담사를 양성하는 사업이다. 캠핑카는 물론이고, 캠핑카가 진입하지 못하는 마을 깊숙한 곳에서도 일상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어른들을 늘려나가기 위해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들의 곁을 지켜주는 어른들. 노란색 조끼를 입은, 한빛청소년대안센터 캠핑카 이동상담소의 상담자원봉사자들이다.


김연주(33세) 씨는 우연히 퇴근길에 캠핑카 이동상담 현장을 목격한 후 올해 초부터 상담자원봉사자로 매주 수요일 이곳 문정공원에서 거리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학교 상담교사가 돼서 아이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김연주 봉사자학교 상담교사가 돼서 아이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김연주 봉사자



“주로 진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느 정도 친해지면 이성친구 고민도 털어놓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처음엔 친구들과 무리지어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하루는 고2 여학생 3명이 찾아왔는데 일상적인 대화만 하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며칠 후 그중 한 명에게 카톡 메시지가 온 거예요. 그때는 친구들이 있어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밤새 대화를 나눈 후에 이제 길이 보이는 것 같다고, 희망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정말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이후로 다짐했죠. 지금 당장은 이 친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말 힘든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자고 말이에요.” 


김연주 씨는 올해 8월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현재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요즘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린 데는 캠핑카 상담자원봉사 활동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대학원에서 사무실장으로 일했어요. 안정적인 직장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릴 적 꿈이 계속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중학교 2학년 때 많이 힘들었거든요. 늘 가출과 자살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 나처럼 마음이 아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해서 차일피일 미뤄왔죠. 그러다 2년 전에 용기를 내서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작년에 청소년 상담사 자격을 땄어요. 


그 즈음 캠핑카 이동상담소를 알게 된 거예요. 처음엔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아이들을 만날수록 깊은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학교 상담교사가 돼서 아이들과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고요.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현장 경험도 성실히 쌓아서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문제 청소년? 어른들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 


오형근 씨는 캠핑카를 찾는 아이들에게 진로 상담 전문가로 통한다. 올해 서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직업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다. 


학창시절 10년간 육상선수로 활동한 그는 공부에 뜻이 없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직업군인이 됐다. 4년3개월 만에 전역하고 일 년 정도 막노동 생활을 했다. 이후 군인 경력을 살려 대기업 보안회사에 들어갔고, 얼마 후 다른 회사로 옮겨 제조 업무를 맡았다. 직장생활이 지겨워질 즈음 장사를 시작했다가 7개월 만에 정리하고 다시 보안회사에 입사했다. 이후 1년6개월 정도 보호관찰소에서 청소년 보호관찰 보조업무를 했고, 현재 법원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대부분의 직업군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마음 둘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서 말을 걸어주고 싶다는 오형근 봉사자 마음 둘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서 말을 걸어주고 싶다는 오형근 봉사자



“요즘 청소년들에게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대개 모르겠다고 말해요. 몇몇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하고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아이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상담봉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또래에 비해 다양한 업종에서 일한 경험이 아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이 될 수도 있고, 또 저처럼 꿈이 없어서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최근에 상담한 아이도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큰 방향을 찾아가더라고요. 저로 인해 미래에 대한 꿈이 생기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고 큰 보람을 느끼죠.” 


꿈이 생긴 건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다. 캠핑카 상담봉사를 통해 거리 청소년들의 미래를 설계해주면서 오형근 씨에게도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청소년들의 경우 재판을 받기 전에 가정환경과 친구관계 등 주변 상황을 조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를 담당하는 공무원직에 다시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요즘 낮에는 법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사회복지학 공부와 거리 상담으로 연일 강행군이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지쳐 쓰러질 때도 종종 있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가득 채워진 때도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는 하나에요. 관심을 가져주는 어른이 없어서죠. 보호관찰소 때도 그렇고 지금도 법원에 있으면서 범죄에 연루된 청소년들을 접하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혼자 방치된 경우가 많더라고요. 캠핑카 이동상담 활동이 꼭 필요한 건 그래서예요. 마음 둘 곳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을 직접 찾아가서 말을 걸어주고 함께 놀아주며 관심을 가져주는 활동이 많지 않으니까요. 더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어긋난 길을 걷지 않도록 거리의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숨요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전서영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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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1/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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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으로 자라나야 할 아이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실망을 먼저 배워버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똑같이 소중한 꿈 하나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작은 소원은 희망의 근거가 되고, 의욕이 되고, 용기가 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이 세상에 자신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을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마련해주신 아름다운재단의 '소원우체통기금'
아름다운재단에서도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소원우체통기금은
2001년 조성되어 현재까지 650명이 넘는 기부자께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매월 아동청소년의 소원을 신청받아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꿈비용을 지원하였었고,
현재는 소원의 테마를 정하여 소원을 이뤄주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09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청소년 문신제거시술 및 자립지원이라는 테마로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와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국 청소년쉼터 거주 추천 청소년 또는 사회복지기관 및 관련단체 추천 청소년 17명을 신규로 선정하게 되면
2009년부터 60여명의 청소년이 문신제거라는 작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네, 서론이 길었네요.
본론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소원우체통기금을 만들어주시는 많은 기부자님들께 수상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함입니다.

지난 10월 2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청소년쉼터주간이라는 여성가족부 주최의 기념식이 진행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서 아름다운재단에 감사패를 시상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상은 아름다운재단이 아니라 기부자님들이 받으셔야 하기에 늦었지만 축하와 감사인사를 대신전합니다.




<청소년쉼터 주간 기념식 행사 스케치> 2012년 10월 2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

* 청소년 쉼터 주간이란?
- 청소년쉼터 및 가출청소년 보호사업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2006년부터 쉼터주간(10.23~28)을 정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는 주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와 함께 하였습니다.

1. 세미나 : 가출팸 연구용역사업 발표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윤나 교수님께서 연구하신 가출팸 실태조사 및 정책과제 발굴이라는 주제로 짧은 세미나가 있어 내용을기대하였으나 아쉽게도 현재 진행중인 연구로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과제 등의 결과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2. 오프닝 이벤트 :  쉼터 거주 청소년 공연
전국 90여개의 쉼터중 7개 쉼터에서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마련한 공연
오카리나 연주, 댄스, 노래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해 경연 한마당이 진행되었고,
역시 대세는 강남스타일로 참가한 7개팀 중 무려 3팀이 강남스타일을 준비하여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3. 기념행사 :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의 개사를 시작으로 많은 인사분들이 축사, 격사을 해주시는 자리였습니다.

4. 청소년쉼터 지도자의 다짐 선서식
- 저에게는 다소 생소하였지만 기억이 많이 남는 시간으로, 대표자로 나오신 2명의 선생님과 참가하신 모든 쉼터 지도자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지도자로서의 다짐을 낭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5. 각종 상장수여 :  모범청소년 상장수여, 장학금 수여
쉼터생활청소년중 모범청소년 또는 검정고시 합격생들에게 격려의 뜻으로 상장 및 장학금을 시상하였고, 30여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무대에 올라 직접 수상하였습니다.

6. 아름다운재단 감사패 수여
오랜 1,2부 행사 끝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상황이었지만 아름다운재단에 대한 감사패 수여가 있어 제가 아름다운재단과 기부자님을 대신하여 수상을 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정말 낯가리고 부끄러움 많은 저이지만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조순태이사장님과 활짝 웃는 사진으로 감사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



7. 청소년 우리들마당 : 오프닝 공연에 이어 나머지 5개팀의 경연이 진행되고 경연 시상이 있었지만 재단으로 돌아와야 해서 아쉽게도 나머지 청소년들의 무대를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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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패라는 것이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국회 도서관이라는 장소, 국회의원 및 내외빈 인사들의 화려한 축사 퍼레이드 등
아름다운재단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행사에 참석해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쉼터에 입소하여 생활하는 청소년들과 지도자 선생님들의 존재를 직접 보고 왔다는 것이
앞으로의 사업에 있어서 좋은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문신제거라는 테마사업은 또 다른 소원으로 바뀌게 되겠지만
많은 소원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또 그러한 청소년들과 함께 몸부대끼며 현장에서 열심인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열심히 들으며 사업으로 풀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재단이 되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재단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감사패 펼쳐들고 야무지게 해봅니다. 

 



 

낯가리는 서나씨 사업국 <변화의 시나리오> 사업담당이선아
"이 무한한 우주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인간 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다 - Contact(1997)."  Eye contact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낯가리는 서나씨는 배분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월, 2012/11/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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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로 쓰여진 우리의 독립운동사. 그 속에서 독립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여성들은 거의 조명받지 못하고 보조자로 평가절하됐다.

드물게 소개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대개 ‘남성과 동등하게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단순한 측면이 부각됐다. 여성 해방, 남녀가 동등한 조국을 꿈꾼 여성독립운동의 또다른 함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특집을 통해 남성에 가려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그 독자적 의의를 조명하는 한편, 여성 독립운동의 다양한 카테고리를 소개하려 한다.

수, 2015/11/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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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
그리고 독립운동가 ㅡ 권기옥 의사의 치열했던 삶.

월, 2015/11/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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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다. 일제는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하며 조선을 대륙 침략의 기지로 삼고 ‘내선 일체’, ‘황국신민화’를 통한 대대적인 민족말살 정책을 펼쳤다. 이 때 조선의 많은 자산가와 지식인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며 친일과 변절의 길을 택했다. 독립과 여성해방운동을 이끌던 여성지도자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 여성들도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자
– 김활란 (1899-1970)

다른 학교 학생들은 정신대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 그런 용기 있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 황신덕 (1889-1983)

지금은 우리 1500만 여성이 당당한 황국 여성으로서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할 천재일우의 시기입니다.
– 박인덕 (1896-1980)

그러나 이러한 변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독립을 위한 길을 굽히지 않고 걸었던 사람이 있었다.

김마리아. 그녀는 동경 유학 시절,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2.8 독립선언서를 몸에 감추고 국내로 잠입했다. 국내로 온 후에는 모교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이끌었고,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출소 한달만에 당시 최대의 여성비밀 항일단체인 대한애국부인회를 재조직했고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는 재미 대한민국 애국부인회인 근화회를 창설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독립 운동을 이어갔다.

김마리아는 평생 일제의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막대기로 계속해서 머리를 때리는 고문으로 고막이 터지고 귀와 코에 고름이 차는 메스토이 병에 걸렸으며, 가슴을 인두로 지지는 고문으로 인해 한 쪽 가슴도 잃었다. 그녀가 남긴 안섶과 겉섶 길이가 다른 한복 저고리는 그녀가 받은 잔인한 고문을 짐작케 한다.

전 생애에 걸쳐 흔들림 없이 독립의 길을 걸었던 김마리아. 10여 년의 긴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도 원산의 마르다 윌슨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며 끝까지 일제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는 활동을 펼쳤지만, 꿈에도 그리던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3월 눈을 감고 말았다.

독립이 성취될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한다.
– 김마리아

금, 2016/01/2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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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유행한 적이 있다. 특정한 주제나 소재를 프리즘 삼아 그 사회와 역사를 반추해보는 것이다. 훈장은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이다.

▲ 대한민국 훈장, 건국훈장 등 모두 12개 종류의 훈장이 있다.

▲ 대한민국 훈장, 건국훈장 등 모두 12개 종류의 훈장이 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지난 68년 동안 대한민국이 수여한 훈장 건수는 모두 72만 건에 이른다. 전체 훈장 기록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4개월 동안 대한민국 서훈 72만 건 내역 분석

뉴스타파는 지난 넉 달 동안 대한민국의 전체 서훈 72만 건의 상세 내역을 샅샅이 찾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천여 명을 새롭게 조사했다.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를 병행했다. 지난 4개월 동안 진행된 뉴스타파의 훈장 취재는 이런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민주이념 등 헌법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는가?”

“친일파에게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줬을까?”

“이른바 ‘셀프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대통령은 누구일까? 그리고 몇 개나 받았을까?”

“왜 지금까지 정부는 훈장의 서훈 내역을 비공개해왔을까?”

▲ 지난 5월부터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여러 차례 회의와 공동 분석을 진행하며, 서훈 72만 건을 취재했다.

▲ 지난 5월부터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여러 차례 회의와 공동 분석을 진행하며, 서훈 72만 건을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220명 넘는 친일 인사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4백 건 넘는 훈장을 받은 사실을 찾아냈다. 이 작업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했다. 대한민국 서훈 72만 건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와 민족문제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파를 교차 분석한 결과다.

200명 넘는 친일인사, 대한민국 훈장 400건 받아

친일인사들에게 수여된 상훈의 전모를 확인해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전체 명단은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4부작 다큐멘터리와 뉴스타파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국가 서훈자 명단에는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도 있다. 뉴스타파는 그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3개의 훈장을 받는 기록을 최초로 확인한 것이다. 노덕술은 일제로부터 훈7등 서보장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사실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 A급 친일파에다 반민특위 1호로 체포된 박흥식도, 동족을 배반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민영휘도 각각 1977년과 1964년에 훈장을 받는다.

친일인사 훈장 수여, 박정희와 이승만 집권 시기에 집중

친일인사들에 대한 서훈은 이승만과 박정희 집권 기간에 집중됐다. 훈장 수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두 통치자가 친일인사들에게 무더기로 훈장을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친일인사들은 훈장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 청남대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

▲ 청남대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 훈포장 잔치도 추적

뉴스타파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반민주 행위자들의 서훈 내역도 확인했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신군부 세력들의 훈장 잔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들에게 국가의 이름으로 훈장을 수여한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 12.12 군사반란 직후 촬영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단체 사진, 사진에 등장하는 신군부 34명이 받은 102개의 서훈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 12.12 군사반란 직후 촬영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의 단체 사진, 사진에 등장하는 신군부 34명이 받은 102개의 서훈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자료를 추적하고, 당사자와의 만남도 시도 했다. 지난 4개월의 취재 과정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반민족행위와, 군사독재 하수인들의 뻔뻔한 민낯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굴곡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KBS가 못한 훈장 데이터 분석, 뉴스타에서 풀어내

당초 훈장 취재의 시작은 KBS였다. 지난해 1월 KBS 탐사보도팀 기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3년 간의 소송 등을 통해 서훈 기록 72만 건 전체를 최초로 입수했다. 그러나 KBS 간부들의 반대에 막혔다. KBS 기자들은 지난해 광복70년 특집으로 훈장의 역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도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일부 내용만 나갔고 친일과 훈장 등 핵심 내용에 대한 방송 일정은 기약 없이 밀렸다.

“훈장과 권력” 7월 28일부터 4주 연속 방송

결국 KBS에서 훈장 취재를 맡았던 기자가 올해 2월 뉴스타파로 이직하면서 뉴스타파에 훈장 전담 취재팀이 꾸려졌다. 그리고 행안부가 공개한 60여만 건의 데이터와 뉴스타파가 자체 수집한 자료, 민족문제연구소와의 공동 분석한 결과물 등을 토대로 대한민국 훈장 데이터를 새롭게 구축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해방71년 특별기획으로 준비한 “훈장과 권력” 4부작을 7월 28일부터 8월 18일까지 매주 목요일 4주 연속 방송할 예정이다.

7월 28일 첫 방송으로 나갈 1부 ‘민주 없는 훈장’ 편에서는 헌정질서를 파괴한 독재세력에겐 관대했고, 민주인사들에게는 인색했던 대한민국의 서훈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2,3부 ‘친일 훈장’ 편에서는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친일인사들의 전체 명단을 처음으로 확인해 공개할 예정이다. 또 4부 ‘훈장의 수사학’ 편에서는 역대 대통령들이 서훈 행위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이면과 각 훈장의 의미를 분석한 결과를 담아낼 예정이다.


공동기획 : 민족문제연구소
취재 최문호, 박중석, 송원근, 조현미
촬영 최형석, 정형민
데이터 최윤원, 김강민, 이보람, 연다혜
CG 정동우
편집 정지성, 박서영

월, 2016/07/2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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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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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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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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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이 뜨겁습니다. 

여기에 법원도 최근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는데요.
지난 9월 15일, 서울고등법원은 한국사 교과서 6종의 집필자 12명이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과연 국가권력은 교육내용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우리 헌법이 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정신은 무엇인지, 판결의 쟁점을 짚어보며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교육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명령 항소심 적법 판결  

수정명령,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드는 마법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 2015. 9. 15. 선고. 2015누41441 수정명령취소
판사 지대운(재판장) 강영훈 박창제 

 

 

김선휴 간사

김선휴 참여연대 시민감시팀 간사, 변호사

 

 

 

현재 대한민국의 고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이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직접 또는 위탁하여 편찬하고 모든 학교가 이를 반드시 사용하여야 한다. 반면 검정교과서는 민간에서 집필한 도서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검정합격을 결정하면, 각 학교가 합격된 검정도서 중 해당 학교에서 사용할 도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다양하고 탄력적인 내용의 교과서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가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며 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교육부장관이 검정에 합격한 6개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하여 내용을 수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예를 들면, 국군의 거창양민학살을 서술한 부분에 대해 ‘균형 잡힌 서술을 위해 북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실례도 제시하라’, 북한의 주체사상을 소개한 부분에 대해 ‘학생들이 잘못 이해할 수 있으므로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 노선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대내통합을 위한 체제유지전략이었음을 서술하라’,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 운동’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다’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니’를 ‘극단으로 치닫는 강압정치’로 수정하라는 것 등이다. 

 

이에 위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법적 근거가 없고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므로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적법하다고 인정하였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도 1심판결을 거의 그대로 원용하면서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을 정당화해주었다.

 

이미 검정에 합격한 교과서의 내용을 교육부장관이 수정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이는 근본적으로 ‘국가권력이 교육내용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또한 국가권력의 교육내용 개입에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면, 부당한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와 요건이 필요한가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국가와 교육의 관계에 대해 규정한 헌법에서부터 찾아보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 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31조 제4항)

 

헌법의 위 규정은 교육이 국가 백년대계의 기초인 만큼 외부세력의 부당한 간섭에 영향 받지 않도록 교육자나 교육전문가에 의하여 주도되고 관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행정권력에 의한 교육내용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요구 또한 위 헌법규정에서 도출된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도 “국정교과서제도는 정부의 행정관료에 의하여 교과내용 및 교육내용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어 교육의 자주성을 보장하는 위 헌법규정과 모순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헌재 1992. 11. 12. 89헌마88 결정).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를 나타내는 헌법이 교육에 대해 취하고 있는 이와 같은 기본 관점을 전제로, 이 사건 판결이 과연 이러한 헌법정신에 충실한 판결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쟁점 ① 법률유보원칙 : 검정 권한이 있다면 수정 명령을 내릴 권한도 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쟁점은 법률유보원칙 위반 여부, 즉 교육부장관의 이 사건 수정명령이 법률에 근거를 둔 것인지 여부이다. 

대통령령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제26조 제1항은 교육부장관에게 검정도서의 ‘수정’을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령의 근거가 되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은 교과용도서의 ‘범위·저작·검정·인정·발행·공급·선정 및 가격 사정(査定)’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에 위임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교과용 도서의 ‘수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 때문에 교육부장관의 수정명령이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검정권한’에는 본질적으로 ‘그 내용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였다. 쉽게 말해 ‘검정은 수정을 포함’하기 때문에 ‘검정’의 근거규정인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수정명령’의 근거조항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 사건 수정명령은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표현상의 잘못이나 기술적 사항 또는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수정명령권한까지도 검정권한에 포함된다는 해석은, 검정권한의 내용과 범위를 너무 확대해서 해석한 것은 아닐까. 검정교과서제도를 채택한 취지는 헌법이 천명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하고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대법원 2011두21485 판결 참조). 그렇다면 국가의 검정권한의 내용과 범위는 국가의 교육내용에 대한 개입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향(내용의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확대 해석하기보다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쟁점 ② 절차적 적법성: 검정절차의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였는가? 

 

행정부와 법원의 판단대로 내용의 실질적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도 교육부장관의 검정권한에 포함된 것이라면, 그와 같은 수정명령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 이 사건 수정명령은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친 것인지 여부가 두 번째 쟁점이다. 

내용의 실질적 변경을 가져오는 수정명령을 내리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에 대해서는 2013년 대법원에서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역시 검정을 마친 교과서에 대해 교육부장관이 내린 수정명령을 다툰 사안이었는데, “(수정명령이)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새로운 검정절차를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으므로 검정절차상의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심의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시하였던 것이다(대법원 2013. 2. 15. 선고 2011두21485 판결 참조). 
 

이 사건 수정명령을 내리기 위해 교육부장관은 새로운 검정절차를 다시 거치지는 않았고, 대신 ‘수정심의위원회’라는 것을 구성하여 심의를 진행한 뒤 수정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이 ‘수정심의위원회’의 위원 선정방식, 위원구성, 소집절차와 심의방식 등이 교과용도서심의회의 경우와 거의 동일하게 이루어졌으므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라고 인정하였다. 심의기간이 비교적 단기간이라거나 수정심의회의 심의사항 및 수정심의회 위원의 인적사항이 비공개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지나치게 형식적으로만 판단한 것이다. 국가의 공권력 행사에 있어 특정한 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그 절차의 보장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실질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위 2011두21485 판결에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요구하는 이유가 “그렇지 않으면 행정청이 수정명령을 통하여 검정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거나 잠탈할 수 있”기 때문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교과용도서심의회의 절차와 ‘유사한 외관’을 갖춘 절차를 거쳤다는 점만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검정절차를 둔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여야 한다. 따라서 법원은 단순히 수정심의회의 의사/의결정족수, 기초심사와 본심사의 분리운영, 위원의 분리구성 등이 교과용도서심의회와 거의 유사하게 이루어졌다는 외관의 판단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수정심의회 절차의 투명성, 수정심의회 구성원의 다양성, 교육행정권력으로부터의 일정한 독립성, 심의회 내에서의 충실한 토론과 의견 개진 및 이를 위한 충분한 기간 등이 확보된 절차였는지, 그래서 검정절차를 둔 취지를 구현할 수 있는 절차였는지를 더욱 면밀하게 판단했어야 한다. 재판이 있기 전까지 수정심의회 및 그 사전절차에 대해 거의 공개되지 않았고, 재판과정에서도 그 절차의 부실함, 불투명성이 드러났음에도 절차적 적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판단에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다.  

 

쟁점 ③ 재량 일탈·남용: 검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 수 있는 재량?

 

이 사건 판결의 마지막 쟁점은 재량의 일탈·남용 여부, 즉 이 사건 수정명령이 교육부장관에게 주어진 재량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판단이다. 

법원은 검정권한에 포함된 수정권한을 ‘그 내용을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수정하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수정명령은 ‘교육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것’을 ‘적합한 것’으로 바꾸도록 하는 범위에서만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 사건 수정명령들이 “오해 또는 오인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없애거나 고치도록 한 것”, “중요한 사안에 대한 서술의 비중을 다른 쟁점과 균형이 맞는 수준으로 늘리기 위한 것”, “학생들에게 보다 완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재량의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르면 법원은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합성”을 갖추지 못해 검정도서로서 도저히 유지될 수 없는 정도라고 본 것은 아니다. 다만 법원이 보기에는 수정명령이 서술의 균형을 맞추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향이기 때문에 수정명령대로 고쳐도 무방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사실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이 교육적합성을 갖추지 못한 정도라면 불과 3개월 전 더욱 엄격하게 진행된 검정절차에서 합격했을 리도 만무하다.

 

수정 전 교과서의 내용(A)과 수정명령의 내용(B)에 대한 선호나 가치평가를 떠나서, 만약 A와 B 모두 검정교과서로서 교육적합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면, A를 반드시 B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수정명령은 ‘교육적합성’이라는 목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다. A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B라는 내용의 교과서도 검정교과서 제도 하에서 공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계속 강조하는 바와 같이 헌법정신과 검정제도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교육적합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서술의 순서나 분량, 자료의 취사선택, 세부적 표현 등은 역사학자이자 교육전문가인 저자들에게 맡겨진 자율의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명백하게 교육적합성을 상실한 것도 아닌 검정합격도서에 대해, 교육부가 지엽적인 서술 순서나 세부적인 표현까지 고치도록 명령하는 것을 재량의 이름으로 허용한다면, 이는 결국 검정교과서 제도를 수정명령을 통해 국정교과서와 같이 운영할 수 있는 재량을 허용하는 것과 같다. 

 

바람직한 해결을 기대하며 

 

사실 문제의 발단은 첫 번째 쟁점인 법률유보원칙 위반에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29조 제2항이 교과서제도에 대해 법률단계에서 전혀 정하지 않은 채 포괄적으로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하고 있다 보니, 수정권한의 존부와 범위, 필요한 절차가 모두 해석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행정권의 자의적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교과서제도의 중요한 내용들을 법률의 단계에 구체화시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와 같은 입법적 개선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면, 법원은 존재하는 법령을 최대한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해석함으로써 행정권의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제동을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보다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 2012/10/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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