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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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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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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2016년 그 날 (93) 들깨를 베서 말렸다. 350명이 참여하여 촛불집회를 했다. 한 주민이 말했다. “성주 성산포대는 안 된다며 촛불집회에 많은 분이 나왔는데, 사드가 롯데골프장으로 가니까 국가가 하는 일은 절대로 못 막는다는 분들에게 하나 여쭤봅니다. 그런 이기적인 애국심은 어디서 나옵니까?” 어디로 가려는가?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무엇 하러 돌아다니는가? 모르겠습니다. 일체가 오직 마음이라고 하는데, 저 뜰아래 돌은 마음 안에 있는가? 마음 밖에 있는가? 마음 안에 있습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왜 무거운 돌을 가지고 다니는가?

금, 2017/10/1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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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대구_돌마고_파티 10월13일 (금) 오후 7시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 MBC KBS 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시민문화제~!!
금, 2017/10/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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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구속연장 확정!!~
금, 2017/10/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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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 사드배치반대김천시민대책위
금, 2017/10/1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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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김천 시민들, 김천 체육대회에서 사드 반대를 외치다 사드반대를 지속적으로 외치는 김천, 성주 주민들께 연대를 보냅니다. 아래는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공보 출처(사진 및 내용)~ .............................................. "오늘 김천시에서 시민체육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농소면과 김천시민대책위 주민들이 체육대회 행진을 앞두고 사드반대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농소면에서 마련한 12미터짜리 사드 철회 요구 현수막을 주민들이 직접 들고 입장했습니다." "농소면 선수단 입장을 하면서 당당하게 사드반대를 외치며 지역 주민들에게 사드 철회 활동에 동참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김천시민대책위 사드 반대 홍보활동 김천종합운동장 동문 앞 삼거리에서 하고 있습니다." "해병전우회와 콜라보레이션~~^^"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국회의원 이철우 일행에게 김천의 여성 시민이 사드배치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거세게 항의를 하자 이 의원을 경호원이 뒤에서 안아서 보호하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입니다." (사진 및 내용 출처: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공보, 2017년 10월 13일)

토, 2017/10/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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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날 (94) 발언했다. 통일을 하려면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북한이 스스로 망하는 것, 둘째 전쟁을 해서 이기는 것, 셋째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북한이 망하면 주민들은 난민이 되어 내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재정은 누가 다 감당하겠는가? 우리의 부담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은 북한을 초토화 시키고, 북한은 서울을 초토화시킨다. 그렇게 통일이 되면 뭘 할 수 있겠는가? 평화통일 비용이 4천6백조라고 하니 많아 보이지만, 계속 들어가는 분단비용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북이 왕래를 하면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이 찾아온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 북한이 전쟁무기를 개발한다고, 우리도 전쟁무기로 맞서면 전쟁위기만 고조될 뿐이다. 남북이 대화하면 외교력도 높이고 평화 통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더 많다. 그런데 누가 청와대에 무단침입해서 이것이 안 되고 있다. 국민이 나서서 바꿔야 하는데, 그 일을 성주 군민 여러분이 하고 있다<발언 중에서> 소식지 “촛불” 제12호를 발행했다(4호부터 ‘1318+’에서 ‘촛불’로 명칭 변경, 10호부터 투쟁위원회 명의로 발간)

토, 2017/10/1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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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반대! 군산 미군 기지 앞
토, 2017/10/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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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리' @부산국제영화제(BIFF)... http://blog.jinbo.net/CINA/4623

일, 2017/10/15-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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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쓰는 긴 글이니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글이 길다고 뭐라고 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국은 한국에 대해 보복하고 있는가? 사드배치와 관련되어 중국, 러시아의 전략에 대한 판단을 위해 한국과 중국 간 무역의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 통와스왑의 연장과 관련된 부분은 매우 중요한 지점들이다. 이것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심지어는 한국정부의 사드와 관련된 전략들을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적인 생각이나 바라는 바와는 달리 2017년 들어서 한·중 간 무역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가시적 부분에서는 보복의 형태로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역의 총량은 늘어나고 있었다. 가끔씩 언론에서 한·중 간 무역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보도는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 부분을 무시하며 지나치고 있었다. 우리들 또한 무역보복에 대한 경제피해를 덮기 위한 보도로 치부하고 이 부분을 애써 무시하고 싶어했다. 한·중 간 무역은 올해 8월까지 5.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통화스왑도 또한 재계약의 형태로 연장되었다. 이것은 중국이 사드와 관련되어 보복을 해올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이것은 사드배치와 관련하여 중국이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보복'과는 전혀 다른 방식과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배치 효과의 중심은 자본시장 사드배치 문제를 군사적인 내용을 중심에 놓고 보게 되면 놓치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 때문에 사드배치가 가져오는 효과와 그 효과가 결과하게 될 것들을 간과하게 된다. 사드배치와 관련하여 생명과 환경에 대한 피해와 군사적 효용성과 경제적 부담 등이 이야기 된다. 이런 것들은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들이 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은 잘 감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 자본주의, 네트워크 금융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육감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부분들을 감각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감각능력을 키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드배치는 하나의 강력하고 분명한 효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동북아에서의 대립과 갈등이다. 현상적 부분에서 중국, 러시아를 한 편으로 묶고-북한은 이 묶음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같은 블록인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하나의 편으로 묶이게 하고 있다. 사드를 둘러싼 많은 추측과 추론들을 배제한다면 남는 것은 이 현상뿐이다. 그렇다고 추측과 추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은 무역 규모에서 세계 11위의 국가이다. 땅 덩어리보다는 훨씬 큰 나라이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안토니오 네그리나 마이클 하트의 생각처럼 세계의 자본주의가 모두 '제국'으로 통합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세 개 정도의 블록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중심의 아태권, 유럽연합,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아시아권이 그것들 이다. 그 내부에 국가 간의 위계들이 형성되어 있고 블록 간의 경쟁과 대립들이 진행 중에 있고 할 것이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균형 중국의 경제는 월 스트리트의 주도권이 행사 되지 못하는 영역이다. 한국은 1997년 IMF이후 급속하게 소위 '글로벌 자본주의'로 금융시장이 편입되어 들어갔고, FTA를 통해 상품시장 또한 급격하게 통합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IMF이후 한국의 경제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 왔다. IMF이후 무역에서의 흑자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좋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런 현상들은 마치 한국이 IMF를 잘 극복하고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것처럼 이야기 되는 근거 이기도하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이것을 경제학적으로 다른 의미로 이해한다면 경상수지의 흑자가 확대된 만큼이나 자본수지에서는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경상수지와 자본주지의 흑자와 적자는 시소처럼 한 쪽이 올라가면 한 쪽은 내려오는 상호 균형이루는 움직임을 가진다. IMF이후 한국은 세계금융시장이 만들어 놓은 경제체제에 의해 상품무역과 같은 경상활동을 통해 열심히 벌어들이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자본시장을 통해 왕성하게 빠져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본시장의 경우 이동이 매우 쉽기 때문에 자본시장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은 국제수지를 경상수지 흑자에 맞추는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는다면 외환위기와 같은 문제가 상시적으로 발생할 위험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한국에서 자본시장을 통해 빠져나가는 규모는 대략 1년에 100조 원을 조금 상회할 예상된다. 이것은 2016년 경상수지 968억 달러 흑자로부터 역산 한 것이다. 이런 자본수지 적자의 중심에는 당연히 월 스트리트의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있다. 경제바보 트럼프 국가의 차원에서 볼 때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와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유지되는 나라다. 1985년 이후 미국은 이런 경향들이 강화되고 있다. 트럼프의 경상수지 적자 타령은 미국경제의 흐름과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이야기이다. 당연히 월 가나 공화당으로 부터도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다. 경상수지의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경상수지의 적자 폭을 줄이게 된다면 반대편에서는 자본수지가 줄어들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는 월가의 수익성을 떨어트려 종국에는 금융 중심의 미국경제를 위협하게 된다. 이런 트럼프의 정책은 국가경제를 모르거나 무역시장의 편에 서고자 하는 짓일 뿐이다. 무역수지가 개선되면 환율의 조정 등의 경제적 요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본의 수지도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수지는 조금의 시차는 있더라도 반드시 균형을 맞춘다. 트럼프를 월 스트리트의 자본들이 그대로 두고 볼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기업의 경제와 국가의 경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업을 경영했던 이명박이 국가의 경제를 망쳐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이미 생산시장에 비해 자본시장이 우위를 점한지 오래이며 이는 기축통화 국가로의 숙명적인 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100조 원 대 수 천 억 원 근래의 한국경제는 중국과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무역량으로는 중국이 첫 번째 국가가 된지 제법 되었다. 90년도 이후 중국과의 무역규모는 330배로 커진 상태이다. 상품시장이야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본시장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한국의 자본시장은 년 간 약 100조원이 넘는 규모의 적자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한국의 자본수지 적자는 미국 자본수지 흑자의 원천 중 하나가 된다. 최근 중국 중심의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가 수립되면서 ADB(아시아 개발은행)를 앞세워 왔던 미국주도 세계은행 중심의 체제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 시점에서 사드배치는 중국과 가까워지는 한국경제, 미국과 멀어지는 한국의 자본시장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판단된다. 년간 100조원이 넘는 이익을 만들어주는 한국의 자본시장 규모에 비하면 사드판매대금 1조 5천억원, 순이익 몇 천 억 정도는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이다. 한국경제가 소위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되기 이전에는 군산복합체의 무기판매 같은 주장들이 의미가 있었지만 1985년 이후 경상수지 적자를 숙명으로 안고가야 하는 미국에게는 이제 한참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사드배치의 핵심은 사드의 판매가 아니라 사드배치를 통해 지키고자 하는 한국의 자본시장이다. 그리고 미국의 압력이 있다고 해서 무기구입 비용을 갑자기 늘려서 무기를 무작정 사들일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2017년 한국은 국방비 40조 중 전력증강비 12조원 그중 연구개발비 2조원을 뺀 10조원 내에서 무기를 구매할 수 있을 뿐이다. 항상 그렇게 해왔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전략 이런 상황은 중국이나 러시아도 분명히 알고 있는 부분들로 판단된다. 특히 기축통화를 두고 미국과 다투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예상하고 고려하고 있던 부분일 것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것은 사드배치 그 자체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의 경제가 중국이나 미국 중 어느 쪽의 영향력 하에 두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중국이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아니라 기축통화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드문제는 중·장기적이기는 하지만 한국경제가가 어느 블록에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은 한국을 '보복'을 통해 내치기보다는 경제적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 사드배치에도 불구하고 확대된 무역규모와 최근 재개된 통화스왑은 이런 것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은 이런 정책들과 전략을 통해 미국의 사드배치효과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유통이나 한류, 관광 등에는 '보복'의 형태로 줄어들고 있지만 이는 중국경제에서 부담스러운 부분들을 사드배치를 핑계로 '보복'이 아닌 정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사드보복과 같은 이야기들은 일종의 블러핑일 수 있다. 중·러와 한국 정부 한국 정부 또한 이른 흐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고 뛰어난 브레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런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런 중국의 전략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풀려나가는 것들을 보면 어느 정도는 서로 간의 협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는 읽혀진다. 9월 7일 사드의 나머지 4개의 포대가 배치되던 날 문재인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물밑으로 진행되고 양국의 대표가 묵인하거나 협의하지 않았다면 이런 방문이 가능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미국의 전략에 의해 움직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드를 배치했다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이 지점이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사드문제에 대해 다르게 대응하고 있다고 보이는 부문이다. 어쩌면 촛불이 전쟁을 막았을 수도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사드배치 등에 더하여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의 전략을 가졌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공격은 중국과 한국을 완전히 떼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아마도 박근혜 정부는 대선 전 이런 사태가 일어나기를 바랐을 것이다. 전쟁 상황은 선거를 사라지게 만든다. 선거는 사라지고 집권은 지속되는 사태, 즉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사드배치가 이루어졌다는 이야기가 계속 언급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통일대박' 이야기와 최순실이 언급했던 '통일대통령'이야기 또한 그냥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촛불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변해버렸다. 어쩌면 촛불은 전쟁을 막았을 수도 있다. 한국이 경제력을 그대로 가지고 중국과의 관계가 확대되어가는 것을 바라보기 보다는 미국은 한국을 불구로 만들어서라도 자신들 편에 묶어두기를 바랬을 것이다. 아니 중국으로 다가서는 것을 막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 수단은 바로 사드배치와 전쟁이다. 희망하는 것과는 다른 변화 분명한 것은 우리들이 하는 일반적 생각, 하고 싶어 하는 희망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몇 몇 사람들과는 이런 변화에 대해 이전부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중국과 관련하여 이런 변화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명확하게 자료를 확보하고 있지는 못했었다. 중국과의 무역의 추이들, 한·중 통화스왑의 결과들에 대한 자료들이 확보되면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 지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와 관계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고 한국정부의 움직임도 조금씩은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전략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될지는 이제 모두가 고민해야하는 지점일 것이다.
일, 2017/10/1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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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날 (95) 내일 비가 온다고 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깨를 털었다. 손바닥은 다 허물었고, 몸은 녹초가 됐다. 씻자마자 쓰러졌다. 오늘과 내일은 성주촛불과 김천촛불이 서로 연대하기로 했다. 오늘 성주투쟁위원회에서 김천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연대발언을 했다. 북한이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를 발사했다.

일, 2017/10/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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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촛불 460일차 with CameraFi Live
일, 2017/10/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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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우주평화주 (10월 7-14일)의 마지막 날, 제주 강정 마


[10월 14일] 강정에서 우주평화주간(7-14일)의 마지막 날을 마치며 10월 7일 소성리에서 시작했던 우주평화주간이 14일날 강정에서 끝났습니다. 10월 7일 '사드뽑고 평화 심자'가 소성리의 밤하늘에 울렸다면 10월 14일 "제주해군기지 폐쇄해" 가 콘크리트로 덮힌 구럼비를 흔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평화주간이 아니더라도 강정과 소성리, 성주, 김천은 우주평화를 매일매일 실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지구의 군사화, 그리고 미사일 방어망 시스템은 우주의 군사화를 전제하는데 다만 그것이 은폐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주평화주간은 끝났어도 사람들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인식하던 않던 계속 우주평화행동을 펼칠 것입니다. 지금 조약골님이 간 미 메인주 평화 행진(관련 링크)은 우주평화주간의 한 행동으로 기획되었으나 일정은 10월 13일부터 21일까지 입니다. 누구나 정해진 우주평화주간에 상관없이 여건이 되는 시기에 자유롭게 행사를 조직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또한 우주평화주간을 우리가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가 결정적으로 우리의 평화운동을 좌지우지하지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몰라도 '사드 반대,' '제주해군기지 반대,' '전쟁연습 반대' 를 외쳐왔습니다. 다만 우주평화주를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의 평화운동의 지평을 조금 넓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주평화주간에 우리가 대단한 것을 해야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Keep Space for Peace 우주의 평화를 지키자' 라는 피켓을 들고 미 펜타곤 지하철 역 노스롭 그럼맨 무기 회사 광고 앞에 서 있기만 해도 그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수산업이야말로 우주의 군사화로 이익을 보는 유일한 집단이니까요. 우리의 혈세가 군수산업에 투자되는 것에 반비례해 시민의 복지비, 교육비, 의료비는 축소되고 민주주의와 양심, 정의가 설 자리는 줄어들 것입니다. 우주의 군사화를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는 것은 실상 지상의 평등한 밥상을 위한 것, 모든 생명의 존엄을 위한 것, 그리고 기후 온난화에 대응하여 지구 공동체가 지구를 구하기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얼마든지 개인 단위로, 팀 단위로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우주평화주 행사를 함께 기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 언제라도 많은 분들과 함께 하길 원합니다. 10월 7일부터 14일 까지 함께 관심가져주시고 참여해주셔 감사합니다. (성게) 더 많은 사진들은: http://cafe.daum.net/peacekj/496a/1786
일, 2017/10/1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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