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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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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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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국제적 보호의 대상이지 학살의 대상이 아니다. 전쟁이 나면 한미일동맹국이 되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일본의 이런 발언들이 결국은 너희는 김정은 핵무기 세례의 대상이고 종국에는 우리의 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북한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때 난민이 몰려올 것을 대비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며 다시 위기론을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 아소 부총리는 23일 우쓰노미야(宇都宮)시에서 강연을 통해 북한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일본에 10만명 단위로 난민이 몰려올 것이라면서 "대응을 진지하게 고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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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가을이지만 하늘은 가을을 허락하지 않아 미세먼지 가득한 날,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고 조영삼 님의 영결식이 열린 청와대 앞을 찾았다.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 남북협력정책특보를 지낸 바 있는 고인은 “사드 철회를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죽음이) 한 방울이나마 좋은 결과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문재인 정부에 전했다. ‘대통령이 박근혜가 아닌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렇게 까지 해야 했나?’는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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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7/09/2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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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부역자 후손 자유한국당 정진석의원은 2016년 4.13 총선당시 44억을 재산으로 신고하였다. 정석모의원의 부친 자민련 정석모(鄭石謨.충남공주)의원은 갑부로 알려진 대표적인 부자 국회의원으로 서울강남구역삼동의 대지중 본인지분은 신고했으나 부지위에 완공된 시가 8백억원대 건물의 보유지분을 건물등기가 안됐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부자의 재산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케 하는 조부 정인각의 일급 친일 부역자행각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친일을 하면 삼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http://www.newspago.com/sub_read.html?uid=23555 정진석 조부의 친일행각 추가문건 공개 http://m.newspago.com/24386 http://gangnam.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311175 http://sekijang.tistory.com/726


정진석 후보의 조부 정인각(좌)과부친 정석모(중앙) 및 정 후보(우) © 뉴스파고이번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나선 정진석 후보의 조부인 정인각이 일제 강점기 당시 계룡면장을 지내며, 친일행
일, 2017/09/2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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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강정으로부터.. 고 조영삼 님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방은미) 더 많은 사진 가기 http://cafe.daum.net/peacekj/496a/1785


[9월 23일] 강정에서 고 조영상님 (1959, 9, 1-2017, 9, 20) 의 명복을 빕니다. THAAD OUT! 많은 강정 사람들이 육지의 영결식에 갈 수 없었지만 인간 띠 잇기 시간에 강정 해군 기지 앞에서 'THAAD OUT'을 외치며 고 조영상 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사진: Eunmi Pang 더 많은 사진 가기 http://cafe.daum.net/peacekj/496a/1785 ................................. 관련 링크 가기 http://cafe.daum.net/peacekj/GeUj/676
일, 2017/09/2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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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철회 성주촛불 439일차 성주촛불 플리마캣 with CameraFi Live
일, 2017/09/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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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촛불 439일차는 플리마캣으로 진행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물건들도 사시고 정담도 나누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듯 오손도손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 2017/09/2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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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8 세계노총이 삼성SDI 노동조합창립총회에 보낸 연대사입니다. http://samsunggroupunion.org/gnu/bbs/board.php?bo_table=bbs_free&wr_id=… 문재인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노동조합건설을 탄압하는 기업주를 엄중처벌하겠다는 경고를 조롱하듯이 변함없이 삼성재벌은 이번에도 비열한 탄압으로 삼성SDI노동조합 창립총회를 무산시켰습니다. 삼성재벌의 무노조경영을 위한 노동자탄압 인권유린은 국제사회에서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다. 비록 9/11 삼성SDI 노동조합창립총회는 무산되었지만 삼성재벌의 전근대적인 무노조 노동자탄압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폭로 규탄하며 삼성일반노조는 반드시 삼성노동자와 함께 삼성노동조합 건설을 완수하겠습니다 2017.09.08 아테네 세계노총(WFTU) 연대사 5대륙 9천 2백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세계노동조합총연맹이 2017년 9월 11일에 개최하는 삼성 SDI 노동조합총회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귀하의 토론과 결정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강화시킬것이라고 확신하며 민주적이고 투쟁적인 노동조합의 설립을 보장할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삼성SDI 총회가 노동계급의 현시대의 요구와 이익을 만족시키기위한 절차에 놀랄민한 단계로 나아가길바란다. 국제적인 계급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은 항상 노동자의 편에 설 것이다. 우리는 노동계급에대한 신뢰를 가지고 먼 훗날 우리의 투쟁과 희생이 정당성을 입증할것이라고 확신한다. 삼성노동자 만세! 계급지향의 한국 노동조합운동 만세! 세계노총과 전세계 노동계급 만세! 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 Class oriented - uniting - democratic - modern – independent – internationalist! 40, ZAN MOREAS STREET, ATHENS 11745 GREECE TEL. (+30) 2109214417, (+30) 2109236700, FAX (+30) 210 9214517 www.wftucentral.org E-MAILS :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Athens, 8th September 2017 Solidarity letter on the Samsung SDI Trade Union Foundation Congress Dear colleagues, The 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 representing 92 million workers in the 5 continents, salutes the Samsung SDI Trade Union Foundation Congress, that will be held on 11 September, 2017. We are confident that, through your discusses and your decisions, you will ensure the establish of a democratic and militant Trade Union that will strengthen your struggles in favor of the interests of the working class. We wish you, your congress' proceedings to be a remarkable step towards the satisfaction of the contemporary needs and interests of the working class. The international class-oriented trade union movement will always stand on the site of the workers. We have confidence in the working class and we are convinced that the future will vindicate our struggles and our sacrifices. Long live Samsung Workers Long live the class oriented trade union movement of your country Long live the WFTU and the global working class The Secretariat

월, 2017/09/2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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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은 끝장대결을 중단하라> 한반도가 다시 일촉즉발의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평화의 전당이 되어야 할 유엔에서의 전쟁위협과 막말 대결, 연이은 군사무력 시위로 한반도를 전쟁 일보직전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북한 완전 파괴” 발언에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겠다는 끔찍한 설전에 이어 미군 전략폭격기가 북한 NLL을 넘어 비행하는 사상 초유의 군사위협까지 전개되는 상황이다. 북한은 이에 맞서 어떤 초강경 대응을 할지 심히 우려된다. 북미간 양보 없는 격돌은 무력충동만 자극시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찰나의 오판으로 한반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빠져들 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한미동맹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반쪽인 북한을 민족애로 감싸면서 더 이상 감정적 대응을 하지 말도록 달래야 한다. 지금은 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시기다. 전쟁은 막아야 한다. 진지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전쟁위기를 가중시키는 일체의 무력시위에 가담해서는 안 되며 이를 반대해야 한다.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북미 평화협상의 중재자로 시급히 나서 한반도 위기를 종결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가 벼랑 끝에 서있다. 우리는 북한과 미국에게 다시 한 번 촉구한다. 한반도에서의 모든 무력시위를 중단하라! 북한은 핵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라! 미국은 제재와 압박을 중단하라! 조건 없는 대화, 평화협상 개시하라! 2017. 9. 25. 새로운 100년을 여는 통일의병
월, 2017/09/2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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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9/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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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 날 (75) 몇 차례 군수와의 협상시도가 실패했다. 군수가 계속 회피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촉박하여 군수에 대한 압박의 수준을 높였다. 12:30 군수와 친분이 있다는 제3부지를 찬성한 사람을 만나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15:00 이강태 신부와 만나 협상내용을 협의했다. 21:30 군수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날 투쟁위원회 측에서 이강태 신부, 김성혜 교무, 김충환 위원장, 이수인 전 기획팀장, 이재동 부위원장이 참석했고, 군수 측에서는 김항곤 군수, 김세환 부군수, 권도기 기획감사실장, 최종관 총무과장, 이재복 노인회장, 조익현 비서실장이 참석했다. 성주경찰서 김강현 정보과장이 배석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살수차에 의해 쓰러졌다. 317일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성주 평화나비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배창환의 시, “대한민국 성주사람 오추옥”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영영 썩지 않을, 서러운 이름 하나 넙죽 받아 안고 저물어갔다. 아! 징그러운 이 땅. 14:00 백남기 농민, 돌아가시다.

월, 2017/09/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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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9/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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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9/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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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09/2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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