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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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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Creative Commons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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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삼성일반노조의 집회방해를 위해 설치한 삼성SDI 울산공장 대나무장벽이 1년이 넘도록 아직도 무기고 쪽문에 삼성자본의 어리석음을 증거하듯이 유령처럼 서 있다. 대나무장벽 따위로 삼성일반노조의 집회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삼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은 시대의 대세다, 민주노조 건설하여 당당한 삼성노동자로 인간답게 살아보자, 투쟁! 7/19~21 삼성SDI 기흥본사,천안,울산사업장 삼성재벌 규탄집회! 6/28 시신으로 발견된 삼성SDI천안공장 故 김주현씨의 명복을 빕니다! 김주현씨의 죽음은 개인 가정사가 아니다! 구조조정에 의한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다 삼성SDI는 故 김주현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라! 유가족에 따르면 6/24 김주현씨가 가출하던 날 그는 퇴근 후 아내에게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털어놨다.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후 연락이 두절되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김 씨의 가족은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고 가출신고 사흘 후 6/28 회사와 약 2km 떨어진 한 공구상가 주차장에서 회사 동료들에 의해 자신의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7/19 일요신문) 삼성일반노조 김성환위원장과 임경옥사무국장은 7/19-21까지 삼성SDI 천안공장 자살노동자 故 김주현씨의 억울한 죽음을 삼성SDI 기흥본사, 천안공장, 울산공장노동자들과 추모하며 삼성재벌과 삼성SDI의 살인적인 구조조정의 실태를 폭로 규탄하였다. 삼성재벌과 삼성SDI의 아무런 개똥철학도 없는 무노조 경영을 박살내고 삼성SDI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건설을 위한 순회투쟁을 노건추 조합원들과 삼성SDI울산공장 백혈병사망노동자 박진혁님의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며 아버님 박형집씨와 한여름 무더위를 뚫고 힘차게 진행하였다. 삼성백혈병은 삼선전자반도체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SDI 사내기업 백혈병 사망노동자 박진혁은 직업병이다 산업재해 인정하라! 삼성SDI 울산공장 KP&G사내기업 사망노동자 故 박진혁님은 28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아버님 박형집님은 외아들 박진혁씨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과 아들의 명예를 위해 7년째 삼성SDI와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신다. 백혈병피해노동자 박진혁씨의 아버님 박형집씨는 지금 만성신부전증으로 이틀에 한번 씩 투석을 하며 본인 역시 위태로운 삶 속에서 삼성SDI백혈병 산업재해 투쟁을 하고 계신다. 삼성재벌 무노조경영 하에 삼성백혈병과 삼성구조조정은 기업살인이다 동료의 죽음도 모르는 삼성SDI노동자! 김주현씨의 자살을 개인가정사로 매도하는 잔인한 삼성재벌! 삼성SDI천안공장 자살노동자 김주현씨의 죽음을 근거없이 회사와 무관한 개인가정사로 단순자살로 매도하는 행위는 고인을 두 번 죽이는 반인륜적인 만행임을 규탄하였다. 더구나 살아 있는 유족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근거없는 말을 유포하지 말라 성토하며 삼성SDI는 故 김주현씨의 죽음을 유족을 위해 산업재해로 인정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하였다. 삼성재벌은 악랄한 구조조정으로 삼성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마라! 삼성중공업 자살노동자 4명, 삼성그룹감사 중에 2명 농약음독 자살시도! 삼성자본의 악랄한 구조조정 차원의 희망퇴직 강요와 강제사직종용 등 삼성그룹감사를 빙자한 범죄자 취급 인격모독 등 비인간적인 구조조정의 실태를 폭로 규탄하며 삼성SDI전영현사장은 故 김주현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원칙과 기준없는 구조조정 차원의 성과급제도를 폐지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였다. 삼성SDI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김성환위원장은 집회발언에서, 삼성SDI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故김주현씨 자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전사적으로 김주현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노동조합 차원에서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대책을 세웠을 것이라며, 지금의 삼성무노조 경영 하에서는 故김주현씨의 죽음에 대해 회사와 무관한 자실임을 증명하려는 듯이 삼성SDI와 어용조직 노사협의회는 근거없는 말로 고인의 억울한 죽음을 은폐하고 욕되게 하고 있다고 규탄하였다. 삼성이재용을 무기징역으로! 삼성경영 악의 축, 삼성족벌 세습경영 끝장내자! 삼성재벌이 만든 어용조직 노사협의회 끝장내고 노동조합 건설하자! 삼성자본의 아무런 개똥철학도 없는 무노조 경영을 위한 노동자 미행 감시 납치 감금 도감청 핸드폰 불법복제 위치추적 인권유린 사생활 침해 등 반사회적 범죄만행 노동자 탄압 끝장내고 민주노조 건설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기업의 탈을 쓴 범죄조직 삼성재벌 해체하고 삼성족벌 박살내자! 삼성SDI 최영주 납치범들이 아직도 범죄조직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삼성족벌 이재용은 삼성재벌 무노조 범죄조직 지역협의회 공개해산하고 사죄하라! 삼성SDI노동자납치범 권혁민차장과 김재윤책임을 처벌하고 노동자에게 사죄하라! 삼성SDI 울산공장노동자 최영주씨 납치에 가담하여 감금 협박한 격리조 권혁민차장, 설득조 김재윤책임 등 납치범들이 범죄조직 삼성SDI에 2017년 현재 아직도 근무하고 있다 삼성일반노조 가입하여 자랑스런 삼성SDI노동조합건설하자! 노동조합 건설하여 구조조정 박살내고 인간답게 살아 보자! 삼성일반노조의 역사는 삼성족벌 무노조 노동자탄압에 맞선 투쟁의 역사! 삼성일반노조 임경옥사무국장은 집회발언을 통해 지난 6/29 삼성일반노조가 노동 3권을 행사하는 적법한 노동조합이라는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았다며, 삼성일반노조의 역사는 삼성재벌의 무노조 노동자탄압의 역사임을 말하며 삼성재벌의 삼성일반노조 말살 탄압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 규탄하였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위원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삼성투쟁을 하였다! 지난 21년동안 삼성일반노조 김성환위원장은 미행 감시 도감청 위치추적, 삼성자본에 의한 해고 구속 등 수 많은 고소로 인신구속과 인권유린 탄압을 받았음에도 삼성자본에 굴복하지 않고 2017년 지금까지 21년동안 삼성일반노조를 지키며 삼성자본의 무노조 경영 노동자탄압 인권유린에 맞서 싸우면서 부끄럽지 않고 올곧게 거침없이 투쟁하고 있다고 힘찬 발언을 하였다!

월, 2017/07/24-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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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평]: [7월24일] 평화/통일/국제/사드

월, 2017/07/2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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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평]: [7월24일] 만평/사진

월, 2017/07/2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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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의 대부분은 "상황이 바뀌었다" 는 것이다.대부분의 정치인들이 특히""정치는 생물이다" 라는 말과 연계해서 가장 많이 쓰는 용어다.이것을 우리는 소위 '상황론' 이라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황론이 변명과 자기 유불리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오용되고 있기에 상황론이 갖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합리적인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바뀌드라도 원칙이 흔들리고 근본이 지켜져야 하는 가치 보전과 보존이 지켜져야 할일이 많다.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져야하고 사드는 철회되어야 하고 서민증세는 억제되어야 하고 방위비리는 근절되어야 하고 청년,노인의 일자리는 끊임없이 창출되어야 한다.수많은 적폐가 규명되고 청산되고 새로운 미래비젼이 제시되어야 한다. 화려한 언어구사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선동하고 야바위짓 하고 개인의 자리보전하기 위해 약자와 고통받는 자들에게 희망의 달콤함을 나불거린 "꾼의 정치"를 거부한다. 한결같아야 한다. 지킬 것을 지키고 말 할것을 핑게대지 말고 돌려치지 말았으면 한다.절로터진 주둥팩이로 달콤함만 말하고 달콤함에 춤추는 자들만 취사선택하는 것은 연예인 팬클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혹세무민의 세치혀도 적폐청산의 왕적폐임을 알아야 한다
월, 2017/07/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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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 알림 <정기 일정> 1. 매일 밤 8시 “사드배치 결사반대” 성주촛불을 밝힙니다. 2. 매주 수요일 오후2시 “소성리 수요집회”를 [소성리마을회관]에서 합니다. 3. 매주 수요일 밤 8시 “한 여름밤의 야외극장” 영화상영합니다. [평나광] 4. 매주 토요일 밤 8시 “불법사드 즉각철거“ 소성리촛불문화제를 합니다. [소성리마을회관] 5. 원불교 【진밭재 평화교당】 하루 일정 05:00 좌선 및 기도 10:00 오전기도 14:00 오후기도 16:00 자유롭게 백배기도 21:00 저녁기도 6. 천주교 평화기원 미사 일정 - 매주 월요일 15시 [소성리마을회관] 미사 “월평미” - 매주 수요일 13시 [평화계곡 피정의 집] 미사 “수평미” < 한 주간의 주요일정> 1. 7월26일(수) <정전64년, 평화협정촉구 범종교인 평화기도회> - 낮 12시 천주교, 평화기원 미사 - 낮 1시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천도교 등 평화협정 촉구 범 종교인 평화기도회 - 낮 2시 사드 가고 평화오라. 전쟁을 끝내자. 평화에 살자 35차 수요집회 2. 7/27(목) 밤 8시 “사드배치 결사반대의 뜻을 모으고, 성주사람들의 의지를 모으기 위해 촛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성주촛불 토론회” 3. 소성리 토요일 촛불문화제 프로그램 계획 8/5(토) 밤8시(소성리마을회관) 영양주민투쟁<투쟁하면서 느낀 점>을 공연 및 발언 8/12(토) 밤8시(소성리마을회관) “만남” 장소익 1인극 /청송나무닭 움직임연구소 춤꿈 하귀영(사드퇴출 살풀이) , 농민회와 여성농민회 노래공연 8/19(토) 밤8시(소성리마을회관) 시월문학회 “시와 노래, 미술” 8/26(토) 밤8시(소성리마을회관) 봉화군 청소년밴드 공연, 9월 소성리 토요촛불문화제에는 광주 놀이패 신명, 극단 토박이 섭외중에 있습니다. ★공연참여 문의 및 촛불문의 담당 : 이강태팀장 010-7337-3193 ★후원 문의 (촛불간식 포함) 담당 : 김경숙팀장 010-010-89585-3017 ★성주투쟁위 공식후원계좌 농협 351-0921-2337-93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추가되는 일정은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월, 2017/07/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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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국회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국민참여개헌시민행동이 주최한 국민참여개헌 범시민토론회가 많은 분들의 관심속에 개최되었다. 이날 발표자료와 관련 기사등을 자료집입니다. 토론회 자료는 첨부파일과 같습니다.


21일,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개헌 범시민대토론회가 있었다.정의연대 공동대표이며, 국민참여개헌행동시민행...
월, 2017/07/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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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군기지 반대 싸움이 시작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는 파괴되었고 아름다운 연산호도, 구럼비 바위도 사라졌습니다. 작년에 완공된 해군기지에는 미국 군함들이 수시로 드나듭니다. 강정 뿐만이 아닙니다. 제주 전역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강정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주민 동의 없는 제2공항이 성산에 지어지려 합니다. 제주 전역을 행진하며 제주의 평화를 기원하는 제주생명평화대행진(7/31~8/5)을 앞두고 제주의 평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 게재합니다. - 기자 말
 
① 바다위 6층짜리 구조물... 5년만에 제주에서 벌어진 일
② 사라진 제주 바다 꽃밭, '연산호'를 구해주세요
③ 대중국전초기지냐 평화의 섬이냐, 갈림길에 서 있는 '제주'
④ 강정과 밀양, 쌍용... 모든 문제의 시작이 같았다
⑤ 제주 바다 망가뜨리더니, 오름 싹둑 잘라 제2공항까지?

⑥ 싸움 시작한 지 10년, 귓전 때리는 군함 뱃고동 소리

 

싸움 시작한 지 10년, 귓전 때리는 군함 뱃고동 소리

[2017 제주생명평화대행진 ⑥] 강정에서 보내는 노신부의 편지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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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띠잇기가 진행되면 문정현신부는 춤추는 사람들 근처에 서서 진행하는 차량에게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다 ⓒ 혜영

 

제주에서 벌써 7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섬의 여름은 습도와 함께 오더군요. 태평양에서부터 불어오는 후텁지근한 바람은 두터운 해무가 되어 강정마을에 덮쳐 옵니다. 처음 강정에 와 여름을 보낸 곳은 구럼비 바위였습니다. 작렬하는 햇살에 바위는 맨발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에 땀이 줄줄 흐르던 그 여름을 저는 6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병을 낫게 해주고 아이를 갖게 한다는 할망물에서 물을 길어 먹으며, 버틸 수 없이 더울 때에는 용천수에 몸을 맡겼습니다. 구럼비 곳곳에서 솟아오르던 용천수는 바로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했고, 잠깐만 들어가 있어도 뼛속까지 차가웠습니다. 이 물이 없었다면 그 여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구럼비에서 해가 지고 뜨는 모습을 바라볼 때에 제가 믿는 하느님이 이곳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더 이상 보태거나 뺄 것도 없이 평화롭고 따뜻했던 구럼비와 중덕바다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2011년 9월 2일 구럼비로 향하던 모든 곳에 팬스가 쳐지고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깊은 절망에 매일 미사 때마다 '구럼비야 사랑해'를 힘차게 불렀고 그 외침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애타는 마음과는 다르게 2012년 3월 7일 구럼비 발파가 시작된 이래 해마다 마을의 모습은 급격히 달라졌고 마을의 해안선은 해군기지에게 점령당했습니다. 2016년 2월 26일 준공식을 앞두고 우리를 가로막던 팬스가 하나둘 철거되기 시작했습니다. 구럼비로 향하던 작은 길, 곳곳에 있던 하우스와 밭들, 그리운 구럼비 바위는 꿈처럼 사라졌고 그 위에 불의와 폭력의 해군기지가 불을 번쩍이며 완공 되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물론 이곳에 이주해 온 지킴이들은 깊은 절망 속에 그 기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사주의에 맞서 평화운동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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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0일 미군함 입항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엄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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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투쟁10년을 알리는 인증샷캠페인을 시작하며 마을에 살고 있는 지킴이들과 해군기지 정문앞에서 ⓒ 호수

 

해군기지에서 트는 군가 소리가 마을에 들려오고 시시때때로 울어대는 군함의 뱃고동 소리는 온 마을을 때립니다. 한국 군함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강정 해군기지에 와 군사작전을 논의합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해 외국군함이 강정해군기지에 기항하며 군사작전을 펼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중국을 자극합니다. 사드배치로 인해 한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 높아진 것처럼, 이곳에서의 미군주도의 외국군 훈련이 정례화 되고 빈번해 질수록 군사적 대립과 긴장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주에 공군기지를 만들려는 시도도 계속되어 현재 연구용역예산까지 책정된 상태라고 합니다. 지난 10년의 투쟁과정에서 한 목소리로 우려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저는 더욱 이곳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군사기지, 군사주의에 맞선 평화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매일 강정의 평화를 노래합니다. 고맙게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나가다 들리기도 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오기도 합니다. 그동안 못 와봐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힘에 부쳐 주저앉고 싶지만 아직까지 강정을 기억하고 함께 하는 분들의 힘으로 하루하루 버텨나갈 수 있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 올해에도 어김없이 평화대행진이 열린다고 합니다. 첫해에는 저도 걸으며 함께 했는데, 이제는 걷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쉬는 장소에 맞춰 가 사람들과 악수하고 격려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강정에, 제주에 오는 마음이 고마워서 저도 힘을 내 함께 하려고 합니다.

 

올해부터는 특별히 강정과 더불어 제주의 군사화문제를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기 위해 '제주평화대행진'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비록 강정에 해군기지가 지어졌지만 더 이상의 군사화를 막고자함입니다. 또, 제주 해군기지가 전 세계의 외국군이 기항하며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일에 저항하고자 함입니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현장을 지키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기에 여기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곳에 와 불의의 현장을 함께 목격하고 평화를 배워 나갑시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끝까지 함께 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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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부터 시작된 매일미사, 지금도 여전히 오전 11시면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진행한다. ⓒ 에밀리    

 

2017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참가신청 바로가기 >> 

 

 

월, 2017/07/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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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촛불 직원을 모집합니다. #무급 #무숙식 #무보험 #무노조 노동청, 인권위, 권익위 등에 신고하면 짤립니다.

월, 2017/07/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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