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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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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동아시아사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잘 다녀왔습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22:29
해방70년, 강제징용과 피폭의 땅에서 생각하는 전쟁 그리고 평화
[2015 서울KYC 동아시아 이해를 위한 일본 평화여행 in 큐슈]


지난 8월8일부터 11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서울KYC회원 20명과 함께
일본의 강제징용과 피폭의 장소인 후쿠오카, 나가사키, 기타큐슈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1945년 전쟁은 멈추었고, 식민지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70년이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런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온 여행이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일본을 뜨거운 가슴으로 만나고 온 기억을 사진을 통해 되짚어 봅니다.

여행첫날, 인천공항에 6시에 집결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8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후쿠오카에 도착하여, 강제징용의 역사를 온몸으로 전하고있는 배동록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여행 내내 저희와 함께 해주신 재일조선인 2세 선생님이셨는데, 연세가 70대의 고령이었지만,
늘 뛰어 다니실 만큼 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더워서 건강이 무척 걱정되었습니다.

답사 첫번째 장소는 지쿠호 지역의 [무궁화당]
지쿠호 지역 탄광에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가혹한 노동에 목숨을 잃은 조선인들의 유골은 방치되었고,

방치된 무연고묘를 2000년 지쿠호지역의 재일동포와 뜻을 함께 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납골당입니다.
당시 이 납골당을 만들었던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움을 [고향의 봄]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두번째 장소는 덕향추모비!
1936년 아소탄광 화재로 25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고,
이후 노동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추모비를
1997년 뜻있는 일본인들과 동포들에 의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아소탄광은 전 총리였던 아소다로 집안이 운영하는 탄광으로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위안부결의는 조작이다"라는
망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인적 드문, 주택가 공터에 자리잡은 덕향추모비
찾는 사람이 없는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외로운 추모비 앞에서 향도 피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도 한잔 올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마음...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강제징용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세번째 장소는 보타야마를 지나, 타가와지역의 [한국인징용희생자위령비]로 갔습니다.
이곳은 미쓰이 타가와 탄광이 있던 곳으로 폐광한 후 석탄역사박물관을 만들었고,
가장 높은 곳에 한국인 강제징용자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생전에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았지만,
죽어서만은 가장 높은 곳에 영혼을 쉬도록 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석탄역사박물관은, 조선인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 높은 곳에 세워진, 위령비가 당시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지쿠호지역은, 탄광이 밀집되어 있던 곳으로 큐슈 강제징용 역사의 아픔을 잘 보여줍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휴가묘지에서 우리는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보타이시(쓸모없는 돌)로 겨우 이곳이 묘지였다는 표식만 되어있는
조선인 무연고묘인 휴가묘지

집에서 기르던 개 고양이를 기억하는 묘비까지도 세우는 이곳에서!
조선인의 묘는 작은 돌들로 표시되어 단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아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그 위치가 전해져 오는 곳이었습니다.
묘역표시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하기도 힘든 휴가묘역에서
실수로 돌을 밟기라도 할까봐 조심조심 걸으며,
배동록 선생님께서는 강제노역의 상황을 [신세타령]이라는 곡조로 증언해주셨습니다.

강제노역의 처참함과 고달픔, 배고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신세타령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들려줬습니다.
듣는것만으로도 아픔이 느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새벽부터 시작한 첫날의 평화여행은 휴가묘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그런 더운날,
저 한복을 입고 잊혀질지 모르는 역사를 얼마나 알리고 다니셨을까요?
낡아진 배동록 선생님의 한복 바짓단을 보니, 더워도 덥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여행 두번째날은 나가사키로 이동하였습니다.
1945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 9일!
조선인위령제는 나가사키 평화공원 '조선인위령비'앞에서 7시30분에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습니다.

일본 남쪽의 가장 큰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2차대전 당시 군수품, 선박, 무기등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도시로, 두번째 피폭도시입니다.  
물론 이곳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1차 피폭이 되었고,
피폭된 이후 이곳에서 사고처리까지 하게 되어 2차 피폭까지 입게되었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의 유일한 피폭국이 일본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피폭된 많은 수의 조선인들도 있었습니다.
재일조선인 피폭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피폭자들이
이른 시간부터 많이 모였습니다. 정작 한국인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계단 한켠에 자리잡고 반핵평화에 대한 기원
그리고 조선인 피폭자들을 추모하는 마음,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손피켓에 담았습니다.



추모제 이후, 피폭도시 나가사키를 알기위한 필드워크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과 함께 나가사키 평화공원, 폭심지와 주변, 우라카미 성당 등을 답사했습니다.
모리구치 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출신으로 은퇴 후 일본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일본시민모임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자원활동가십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졌을때의 상황과 복구된 지금의 모습을 모리구치 선생님의 꼼꼼한 해설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가사키 형무소가 있던 평화공원 주변을 돌아보며,
피폭당시 떨어져나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석탑, 형무소의 돌담의 흔적, 반공호 등등
70년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현장을 직접 둘어보았습니다.

자료가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따가운 뙤약볓 속에서
나가사키의 고통과 아픔, 일본의 씻을 수 없는 전쟁의 책임을 이야기 하시는
리구치 선생님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더욱이 70세가 넘으신 모리구치 선생님이 피폭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잠시 할말을 잃었습니다.
본인이 전쟁의 피해자이기때문에, 더욱 생생한 증언을 할 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비판에 더욱 울림이 있었습니다.




다음 장소는 스미요시터널입니다.
아직도 터널 위로는 도로가 놓여있어 이곳에 이런 터널이 있었을까
상상하기 힘든 곳에 터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본 비밀 터널공장으로 미쓰비시 병기 스미요시 터널공장이었습니다.
이곳 역시 조선인들의 강제 노역을 통해 침략전쟁의 병기를 만들던 곳입니다.
처음엔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곳의 용도를 알고 나니 오히려 서늘해졌습니다.



나가사키를 둘러보며 느꼈던 것중 하나,
일본은 원폭도시를 통해 전쟁 피해자의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쟁가해국으로써의 책임과 반성은 나가사키 역사관에서도,
또 평화의 공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본의 가해책임과 보상문제에 초점을 다룬 자료관이 있었습니다.
1995년 오카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에 의해 운영되는 이 기념관은
원폭의 참상을 초래한 원인이 극도의 잔학함을 만든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있다는 사실과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알리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관입니다.
이곳에서 강제징용당시의 탄광 갱도의 모형, 당시의 피해자들의 참상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이 모두 이렇게 진지했던것만은 아닙니다.

개항도시인 나가사키의 데지마지역에서 항구도 걸어보고,
약간의 여유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세번째 아침은 처음으로 호텔조식을 먹었습니다.
새벽비행기, 새벽출발 등으로 매번 간단하게 빵이나, 삼각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는데,
모처럼 호텔조식을 먹어보았습니다.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가야할 장소는 다카시마(高島) 입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곳이고,
군수품 생산과 수송등으로 재벌이 된 미쓰비시중공업이 있는 곳입니다.
다카시마는 하시마와 함께 이번 '메이지근대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곳곳에 [근대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등재]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중 일부는 강제징용의 현장임에도,
이런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공간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훼리를 타고 도착하여 기무라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어를 공부하셨다는 기무라 선생님은 한국어로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분도 교사출신으로 모리구치 선생님과 같은 자원활동가이십니다.

우리가 갈 장소는 나가사키에서 강제노동으로 돌아가신 조선인 무연고 묘지인 공양탑입니다.
가는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물을 만나고
그 바로 옆에 방치된 수직갱도도 눈에 보였습니다.
또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버린 강제노역의 지옥섬 쿤칸지마(군함도, 하지마)도
멀찍이서 바라보았습니다. (한수산씨의 [까마귀]라는 소설에 보면 이 쿤칸지마가 무대입니다.)

군칸지마는 1년전에 예약을 해도 입도가 쉽지 않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에겐 아픔의 공간인데, 일본인들에겐 근대유산(?)의 공간이 되버렸습니다.
각자의 기억이 이렇게 다를수가 있을까요?



조선인 위령비가 있는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숲속으로 들어가 낫으로 길을 만들어가며 찾아간 공양묘 주변은 한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처럼
주변에 풀들이 가득했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장비들을 이용해서 주변 묘역을 정리하고,
각자 갖고 있던 음식들을 조금씩 내어서 제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먼곳에서라도 편히 쉬시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를 올렸습니다.
일본의 오봉이 얼마 안남은 날이라, 마치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듯
모두가 절을 하고, 이제라도 편히 쉴 수 있기를, 돌아가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작한 [고향의 봄] 노래는 그곳에 있는 모든이의 어깨를 들썩거릴만큼
눈물지게 했습니다.  



다카시마 공양묘를 나와 주변의 납골당과 다카시마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다카시마 신사의 위령비에는 어느순간 조선인의 이름이 빠졌다는 말씀을 들으니
죽어서도 차별받는게 너무 서러웠습니다.

다카시마를 나와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조선인들과 전쟁포로들이 목숨을 잃었을까요?
그리고 2차대전후 일본은 군수사업으로 재벌이 된 기업을 해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미쓰비시는 주요산업을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조선소 앞의 아리랑 고개를 바라보면서 함께 해주셨던 기무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어제의 모리구치선생님, 오카사마하루에서 만난 일본인들 그리고 기무라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보통의 일본은 전쟁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을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준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데는 이런 일본의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시민들의 힘이 중요하다는것도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이렇게 3일째의 답사는 마무리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자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여행의 기억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진솔한 시간이었습니다.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강제징용의 피해자들이 많았다는것과
이 아픔의 역사가 과거가 아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또 각각 활동하는 공간은 다르더라도,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써
한국에 돌아가서 이 아픈 역사를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잊지 않도록 해야 겠다는 이야기 등등
일본 평화여행을 통해 마음은 분노와 안타까움, 고마움으로 요동쳤지만,
적어도 평화가 왜 필요한지는 몸으로 눈으로 가슴으로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8월 12일일 마지막날은 기타큐슈지역으로 갔습니다.

1901년 만들어진 야하타제철소, 뜨거운 용광로에 피땀을 흘렸을 조선인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잡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등의  일본의 기업들 ..
그 누구도 당시 조선인의 노역에 대해선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 한국법원 판결에서 일본제철이 조선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많은 일본기업은 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배상책임을 지려들지 않습니다.
65년 졸속으로 맺은 한일조약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머물렀던 이곳에 학교가 만들어졌습니다.
후꾸오카 조선학교, 언덕배기 질척한 곳을 직접 일구어 만들었던 '우리학교'입니다.
일본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학교'이기에 모두 감내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관몬터널을 지나 혼슈에 있는 시모노세끼로 넘어갑니다.
복어그림이 크게 그려진 칸몬터널을 뚫을때 조선인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저 터널을 지나 일본에서 제일 먼저 조선학교가 만들어졌다는 시모노세끼 조선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조선학교를 지나 만난 곳은 지금은 오오츠보라고 하는 똥굴마을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분뇨처리장, 화장터 등등 혐오시설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었고, 그러다보니,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살던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조선식 문패라던가 당시의 배수시설의 흔적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40년째 이곳에 거주하신다는 엄선생님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마지막 장소인 시모노세끼 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침략의 발판이었던 관부연락선이 닿는 곳으로
조선과 일본,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이 항은 많은 군수물자도 실어날랐지만, 많은 조선인들도 이곳으로 실어날랐습니다.
시모노세끼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제일먼저 도착하는 곳으로,
창고에 2~3일 감금되어 있다가 큐슈, 홋카이도 등으로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가는 곳입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얼마나 배고팠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일본 강제징용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이 평화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그 당시의 기억과 기록은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들이 보고듣고느끼고 배웠던 것들은 다시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3박4일동안 함께 해주신 배동록 선생님과
오랜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다시 관몬터널을 지나 후쿠오카 공항으로 갔습니다.

이제 서울로 갑니다. 내 소중한 가족있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갑니다.
가족을 만나러 갈 수 있음이 이리 큰 기쁨인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지척에 가족을 두고도 못만났던 그때 그 사람들,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수 없었고, 죽으려 해도 죽음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
전쟁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실이 70년 전 과거의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준 현실은 아직도 우리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의 아베총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더 많고 사과도 여러차례했으니
이젠 전쟁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하면서도
유사시 전쟁도 할수 있는 법안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본의 모습을 통해 일본의 잔혹함을 직접 당한 역사이기에
이런 일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평화여행을 통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픈역사라도 기억하고 잊지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역사를 해설하는 자원활동가로서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최근 몇년간의 평화여행중 가장 힘든 여정이었지만, 가장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여행이었습니다.
이런 여행을 만들 수 있도록 일본현지에서 강사섭외, 사전답사 등등
큰 도움을 주신 김향월, 김붕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통역을 해주신 이기회 선생님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배동록 선생님, 모리구치 선생님, 기무라 선생님!
서울KYC에서 평화여행 왔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던 일본 현지의 동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 전합니다.



*사진제공 : 양승수, 신미정, 정연하, 이명난, 조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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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현 경북도당을 규탄한다. ★ 보복성 징계를 실행한 경북도당 이글을 올리는 저는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영양ㆍ영덕ㆍ울진ㆍ봉화지역위원회 권리당원 류승하입니다. 저는 누구보다 당과 경북의 미래를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지역위소속 유금자당원이 동 지역위원장 김상선의 제소에 의해 도당 윤리심판원에 회부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북도당의 제명 처분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제명 처분을 받은 것은 현 김홍진 경북도당위원장 인준 경위(이 글의 말미에 붙인 ‘더불어민주당 김홍진 경북도당위원장 인준 경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가 비민주적이고 당원의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항의하였다는 이유입니다. 김상선 위원장이 제소한 혐의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혐의들이 일어난 시기또한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 억지 특정이었습니다. ① 당원모집 불법 현수막 게시, ② 이권개입, ③ 당비횡령, ④ 대선운동시 미출근, ⑤ 지역주민과의 불화, ⑥ 사조직 운영, ⑦ 중앙당사 시위, ⑧ 경북도당 비판 가짜뉴스 ⑨ 지역위원장의 지시 불이행, ⑩ 김홍진 도당위원장 불인정과 김상선 지역위원장에 대한 협조 거부이에 따라 피징계청원인이 된 우리 양인은 도당 윤리심판원에 출석하여 각 혐의에 소명한 바, ① 19대 대통령선거 기간 중 회계부정 행위, ② 지역위원장 지시 위반 행위, ③ 짜깁기된 인터넷언론 ‘고발뉴스’의 ‘류호상 조간브리핑’ 등 허위사실 게시물을 SNS에 공유한 행위를 들어 제명으로 징계처분하고 2017년 12월 6일, 그 결과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우리 각인은 같은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우리는 도당이 적용한 단 한 가지 혐의에 대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당의 처분에 불복하여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재심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부 동의라는 표현은 인터넷언론 ‘고발뉴스’의 ‘류호상 조간브리핑’ 기사를 짜깁기한 부분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유금자당원은 이에 관련이 전혀 없습니다.내용은 현 도당에 대한 인지내용에 근거하여 류승하의 판단을 활용한 것이었습니다. 짚고 넘어갈 주요한 사실은, 이 짜깁기 게시물을 도당은 ‘허위사실’ 게시물이라 하였으나 내용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허위라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은 도당은 원 보도 내용의 필자인 류호상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처분을 요청하였습니다. 도당의 이러한 요청에 류효상은 사안이 경미한 수준이라 판단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하여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일부 동의라고 인정한 부분을 제외하고 우리는 도당의 징계처분에 불복하여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재심을 신청하였습니다.2018년 1월 8일 중앙당에서 조태제 윤리위원장님 주관으로 재심이 열렸고, 우리는 1월 15일 중앙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취소’처분을 받았습니다. 아래는 그 심의 결과 내용입니다. 가. 징계대상자 : 유금자, 류승하 경상북도당 당원 나. 의결사항 : “취소”▶ 심의 결과 : 회계부정 행위를 인정할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지역위원장의 지시사항이 무엇이었는지가 명확하지 아니하며 설사 지시사항에 대한 일부 위반 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반드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또한 일부 과장하여 표현한 내용의 게시물을 SNS에 게시한(류승하의 경우)/(유금자 제외) 행위를 허위사실로 인한 당원간의 단합을 해하는 경우나 당의 품위를 훼손하는 경우로 보기 어려우므로, 경상북도당 윤리심판원의 징계 결정을 ‘취소’한다. 덧붙이는 것은 도당윤리위에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신문한 내용이 현 “김홍진 도당위원장을 인정하는가?”였습니다. 이것은 문제 있는 물음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누구나 양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신문 내용으로 삼은 것입니다. 우리는 축제가 되었어야 할 도당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저들의 드러낸 흑색선전과 특정인 선출을 획책하는 협잡, 적대적 공격들을 기억합니다. 저들이 도당집행부를 꾸리자마자 가장 먼저 자행한 결의가 순수한 결기로 충실하게 당을 도왔던 권리당원의 제명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기어린 도당의 폭주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우리를 신호탄으로 이미 광범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우리를 시작으로 상주ㆍ군위ㆍ의성ㆍ청송 지역위원회 위원장 김영태도 중앙당윤리위에 제소되어 기각 처분을 받았고 경북도의 유일한 국회의원인 김현권 비례대표와 임미애 의성군 전의원도 윤리위에 제소되었으나 역시 기각처분을 받았습니다. ★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장기집권을 위하여우리 더불어민주당의 권리당원이 150만을 돌파하였습니다. 지난 당내 대선 경선 시기부터 자발적인 입당러시를 보이더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이룩한 진성당원의 수적 측면에서 세계 헌정사상 최초이자 최대 기록이기도 합니다. 정말 감격스럽고 역사에 기록될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권리당원 150만의 시대! 이는 과거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가장 강력한 경쟁력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느 정당과는 달리 특정 인물에 대한 친소관계나 역학관계에 의한 투표가 아닌 오로지 인물 중심의, 지역의 미래를 위한 투표가 가능해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촛불 민심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은 우리 당의 약진이 내년 지방선거와 21대 총선까지 어떤 모양으로 진행될는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대단히 고무적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그러나 경북의 경우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현 경북도당은 민주정당의 가치를 구현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적폐청산을 외치지만 도당 스스로가 적폐입니다. 당원들의 외면하고 정당한 목소리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우리 당원들은 현 도당위원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자행된 비열한 손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열한 세력에 의해 선출된 현 경북도당은 한 치의 예측도 빗나가지 않고 도당정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 이런 세력이 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개탄을 넘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원이 당의 주인으로 대접받아야 합니다. 100년 정당, 20년 이상의 집권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적폐도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경북도당도 역시 시대적 요구를 받들어 당원은 물론, 이웃과 도민들에게 자랑할 정당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당원들과 함께 저 류승하, 유금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2018년 1월 15일경북도당 영양ㆍ영덕ㆍ울진ㆍ봉화지역위원회 소속의 권리당원인 류승하 올림 -----------------------------※ 가. 더불어민주당 김홍진 경북도당위원장 인준 경위가. 전임 도당위원장인 오중기가 민주당을 탈당하게 되자, 2017년 8월말경 도당 내 9개의 지역위원장들은 그 뜻을 모아 경북도당위원장을 지역위원장이나 지역의원 중에서 선임하여 줄 것을 민주당의 대표인 추미애에게 제안하였고, 이에 민주당의 최고위원회는 민주당 당헌 제77조 제2항 단서, 같은 민주당 당규 제8호 시·도당위원장 및 지역위원장 선출 규정(이하 ‘선출 규정’) 제3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대구시당과 경북도당은 당내에 설치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에서 시당 및 도당위원장 후보를 단수추천하고 이를 최고위원회가 인준하는 방식으로 선임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나. 2017년 9월 11일, 민주당의 대표인 추미애와 사무총장인 이춘석은 경북에 지역기반을 갖고 있고, 민주당 소속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김현권을 불러 공모에 응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다. 2017년 9월 13일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을 공모한다는 모집공고가 발표되었고, 이에 김현권과 김홍진이 응모하였다. 라. 그러나 2017년 9월 20일, 민주당의 조강특위는 경북도당 위원장의 선출방식을 단수추천이 아닌 경선방식으로 하겠다는 결의를 하였고, 같은 날 김현권은 조강특위 위 결의에 대한 항의표시로서 민주당의 사무총장인 이춘석 및 사무부총장인 임종성에게 경북도당위원장 경선을 하게 되면 이에 참여하지 않고 경북도당위원장 후보를 사퇴하겠다며, 조강특위의 결의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마. 김현권의 위와 같은 항의표시에도 불구하고 조강특위의 결의에 대한 최고위원회의 의결이 있을 것으로 알려지자, 김현권은 이춘석에게 조강특위의 결의를 최종 승인할 권한이 있는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보고 난 후에 심사숙고하여 사퇴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바. 2017년 9월 2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조강특위의 결의에 따라 경북도당 위원장의 선출방식을 공모에 응한 김현권과 김홍진을 두고 권리당원의 경선을 거친 후 그 투표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결의를 하였다. 사. 이후 김현권을 지지하는 경북도당의 당원들이 김현권에 경선에 임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김현권은 2017년 9월 25일, 이춘석에게 경선을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아. 김현권은 이에 따라 경선을 준비하였는데, 대구시당의 경우 경선날짜가 잡혀 경선절차가 확정되었으나, 경북도당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 경선일이 연기되는 등 그 절차가 확정되지 않고 있었다. 자. 그러던 중 조강특위는 2017년 10월 11일, 김현권이 경선 참여 여부에 대한 의사를 번복하여 신의를 잃었다는 이유로, 경북도당 위원장 공모에 응하여 최고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획득한 김현권의 경선후보자 지위를 일방적으로 박탈하여, 최고위원회에 결의에 따른 경선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김홍진을 경북도당 위원장으로 최고위원회에 단수 추천하였다. 차. 위와 같은 조강특위의 결의에 반발한 경북도당 당원 30여명이 2017년 10월 12일, 중앙당 당사를 항의 방문하여 경북도당위원장의 경선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추미애 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카. 그 다음 날인 2017년 10월 13일, 민주당 중앙당을 항의방문한 경북도당 당원들은 임종성 사무부총장을 만나 경북도당의 경선을 바라는 경북도당 당원 900명이 참여한 성명서를 전달하였다. 타. 그 후 위와 같은 성명서 전달 직후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조강특위에서 단수추천한 김홍진의 경북도당위원장 인준에 관한 격한 찬반논쟁이 있어 그날 최고위원회에서는 이 안건을 다루지 않고 언제 다시 논할 것인지는 결정된 바가 없다는 최고위원회의 회의 내용이 경북도당 당원들에게 전달되었다. 파. 그런데 위 경북도당 당원들이 국회 본관을 빠져나와 의원회관실로 이동하던 도중, 종결되었다던 최고위원회가 다시 속개되어 김홍진을 경북도당위원장으로 인준하는 최고위원회 의결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김홍진은 현재 더불어 민주당의 경상북도 도당위원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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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1/2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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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김일우 기자의 성주주민들의 가야산 해맞이 기사를 두고서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여기에는 사드가 배치된 지역인 달마산과 새해 주민들이 많이 올라오는 가야산을 가지고 어디를 취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 지조차 언급되고 있다. 이는 사드반대투쟁을 바라보는 차이가 다시금 드러난 부분일 뿐이다. 성주의 주민들이 찾아간 곳은 가야산이 아니다. 다만 새해에 많은 주민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예배 드릴 대상이 있는 곳이다. 성경에서 예배 드릴 곳으로 예수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다."라고 했던 의미이다. 예배드릴 대상, 물론 그 분들을 소성리의 주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그 분들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 분들은 예배를 받을 이들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주는 이미 파란나비 원정대를 만들어 대중(multitude)들이 모이는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이 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소성리 달마산은 사드가 배치된 지역이고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생명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이들이 없는 곳이다. 그것은 의미와 언어들을 통해 의미화되며 상징화 된 질서가 존재하는 '상징계'일 뿐이다. 생명의 확장은 언어의 구조와 언어행위의 외부인 잔여영역으로 실재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들이다. 우리와 연결되는 생명들, 타자들이 바로 그 실재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들은 성주의 주민들이고 새해에 가야산에 올라오는 사드투쟁의 외부인들 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드투쟁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통해 새로운 확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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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1/0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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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본색을 드러내는군!! 정치하는 인간들~!! 진짜 싫다!! 니들 월급 우리가 주거든!! 국민이 싫다잖아!! 사드 필요 없다고ᆞ양키 고 홈!! 지발~ http://v.media.daum.net/v/20170926165755212
목, 2017/09/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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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文, 유엔총회 첫 참석차 오늘 출국 21일 한·미·일 오찬 정상회담 김정은 “핵무력 종착점 다다라”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이 도발을 계속할수록 더욱 강화된
월, 2017/09/1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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