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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광장 투표, 트위터 마을…세계의 직접 민주주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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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광장 투표, 트위터 마을…세계의 직접 민주주의 실험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10:00

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8)
광장 투표, 트위터 마을…세계의 민주주의 실험

스위스 광장 민주주의 ‘란츠게마인데’

동계올림픽 유치 철회, 외국인 귀화 신청 반려, 국립은행의 금 매각 금지, 이민자 숫자 제한…

묵직한 논쟁 주제인 이 의제들은 ‘란츠게마인데 (Landsgemeinde)’라 불리는 스위스 주민총회의 의제들입니다. 란츠게마인데는 일 년에 한 번씩 주민 모두가 광장에 모여 직접 찬반투표를 하는 주민총회를 말합니다. 스위스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란츠게마인데는 칸톤(Kanton, 우리나라 도에 해당하는 스위스의 행정단위) 혹은 코뮌(Commune, 칸톤보다 한 단계 아래의 행정단위)의 지역 법안 개정을 위해 주로 열리고 있습니다.

란츠게마인데는 ‘생활의 정치화, 정치의 생활화’라는 스위스 민주주의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입니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대중교통 요금에 대해 논의하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합니다. 또한 예산안 심의와 세금 인상 문제도 토론하고 의결합니다. 스위스의 약 300개 코뮌 중 약 84%에 달하는 250개의 코뮌이 란츠게마인데를 최고 의결기구로 두고 있습니다. 코뮌보다 더 큰 행정단위인 칸톤 중에서는 현재 아펜첼과 글라루스 두 곳에서 란츠게마인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란츠게마인데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사진출처:MySwitzerland.com)

▲란츠게마인데에 참여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사진출처:MySwitzerland.com)

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란츠게마인데의 첫 출발은 그다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던 반쪽짜리 주민총회였기 때문이지요. 1957년 일부 란츠게마인데에서 여성의 참여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2년 후 1959년 연방 국민투표에서 여성 참정권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거부되었습니다. 스위스 연방 차원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71년의 일입니다.

선거권 연령제한에 있어서 란츠게마인데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보다 많은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현재 만 18세로 규정하고 있는 투표권 연령제한을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연방법안의 개정이 어렵게 되자 각 지역은 독자적으로 법안 개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2007년 글라루스 주민들은 란츠게마인데에서 투표권 연령제한을 만 16세로 낮추는 데에 찬성했습니다. 글라루스에서는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이 가족과 함께 주민총회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에 다양한 권한을 행사하는 곳일수록 경제지수와 행복지수가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정도로, 주민들의 참여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주요한 과제입니다. 스위스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직접 민주제의 가능성은 다양하게 실험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그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았습니다. 일례로 2003년 스위스 아니에르 칸톤에서 최초로 인터넷 전자투표가 실시되었고, 현재 스위스 전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스페인 작은 마을의 ‘트위터 행정’

‘트위터 마을’이라고 불리는 스페인 남부 훈(Jun) 마을의 재미난 실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인구 3,500명의 이 마을은 주민 모두가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어 거리 청소 요청부터 시의회 질의응답까지 모두 트위터를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소셜머신랩은 2011년부터 시작된 훈 마을의 트위터 마을 운영이 직접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지난 4월15일 공개된 연구보고서는 훈 마을의 트위터 시정의 차별점을 설명합니다. 통상적인 SNS 민원의 경우 정부 서비스에 대한 일반적인 요청이 대부분이지만, 이와는 달리 훈 마을의 경우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의 트위터 계정임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시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트위터 시정운영 과정의 간단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민이 가로등이 고장났다는 내용을 시장에게 트윗을 남기면 → 시장이 그 주민과 전기 수리공을 태그하여 답하고 → 전기 수리공은 수리한 가로등 사진을 올리며 그 주민과 시장을 태그한다.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즈 살라스 시장(사진출처:MIT 소셜머신 연구소 블로그)

▲호세 안토니오 로드리게즈 살라스 시장(사진출처:MIT 소셜머신 연구소 블로그)

MIT 연구진이 밝힌 트위터 마을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트위터를 통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시정 참여가 시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런 빠른 대응을 통한 결과물이 트위터로 마을 전체와 공유되면서 주민과 정부 모두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훈 마을의 로드리게즈 살라즈 시장은 트위터 시정운영의 효율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트위터로 주민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인력이 필요하다. 덕분에 마을 경찰을 4명에서 1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이 마을의 경찰관은 하루에 40~60통의 트윗 메시지를 받는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트위터가 주민들의 민원 전달과 처리의 수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의회 회의를 인터넷으로 생방송하고, 온라인으로 회의를 참관할 수 있으며, 트위터로 의견을 전달합니다. 주민이 트위터로 보낸 질문과 의견은 의회에 설치된 화면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이런 트위터 실험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로드리게즈 살라스 시장은 농담 삼아 트위터를 “분 단위로 쪼개진 사회”라고 말합니다. “트위터의 즉각적인 반응에 주민들은 점점 참을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세계에서 43명당 1명 꼴로 불만을 표출한다면, 트위터에서는 27명당 1명 꼴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항상 즉각 답변을 원하고 있지요”
트위터는 최대 140자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사안을 토론하기에도 부적합하다는 것 또한 단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사적인 이야기 노출과 홍보성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트위터 위에서 작동한다’는 MIT 연구진의 표현처럼, 트위터는 훈 마을의 시정활동뿐만이 아니라, 주민들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을 예약하고, 학교 식당의 메뉴를 확인하고, 좋아하는 스포츠팀의 경기일정을 확인할 때도 훈 마을의 주민들은 트위터를 사용합니다.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 들어 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직접 투표하는 스위스의 란츠게마인데, 그리고 먼 나랏님들의 잔치가 아닌 글자 그대로 주민들의 ‘손바닥’ 위에서 정치가 이루어지는 스페인의 훈 마을. 모두 주민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곧 ‘정치’가 되는 지방자치, 주민참여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현장입니다.

글_이은경(연구조정실 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 이 글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MIT launches Laboratory for Social Machines with major Twitter investment (MIT News, 2014.10.01)
MIT’s Twitter-backed research highlights Twitter use by small Spanish town (beta Boston, 2015.04.17)
스페인 ‘트위터 마을’의 민주주의 실험(블로터, 2015.04.21)
스위스와 독일의 주민에게 배우는 ‘디지털 시대의 직접 민주주의‘(김석수, 비영리 IT 지원센터, 2015.11.04)
‘하이브리드 엔진’ 스위스 민주주의, 한국엔 안 맞다?(윤석준, 오마이뉴스, 2010.10.05)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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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금지법’보다 평화로운 집회 보장이 우선이다

복면썼다는 이유만으로 집회 참가자들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하는 것

야당은 정부여당의 기본권침해 시도 적극 막아야

 


정부여당이 이른바  ‘복면금지법’을 도입하여 폭력 집회를 근절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24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불법폭력집회라고 규정하면서 복면을 쓴 집회 참가자들을 심지어 IS에까지 비유하며 복면금지법 도입을 강하게 주문했다.

참여연대(공동대표 김균,법 인,정강자,정현백)는 폭력집회와 시위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하지만, 복면을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는 반대한다.

 

복면금지법 도입을 주장하는 취지는 분명해 보인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을 막자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정만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또한 폭력행위가 있다면 현행 형법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할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하면서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년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하면서 집회의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 (2003.10.30. 결정, 2000헌바67·83병합)”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복면을 쓰고 집회에 참석할 것인지 아닌지조차도 헌법으로 보장되는 집회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사전에 복면을 쓸지 말지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등 다른 주요 국가들에서도 복면금지법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이들 국가들의 집회에 대한 보장 정도가 과연 우리나라와 같은지 되묻고 싶다. 이들 나라들은 평화적인 집회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된다. 우리 집시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심지어 대통령이나 총리 사저, 국회의사당 근처에서도 집회가 가능하며, 우리와 같이 폭력이 벌어지기도 전에 차벽설치나 살수차 동원을 하지는 않는다. 헌법에서 명시하고 헌재에서 확인한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선행되지 않고 오로지 폭력이 예상된다는 자의적인 해석에 근거하여 복면을 금지하는 규정을 만드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는 범죄와 상관없는 대다수의 집회 참가자를 복면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것이다.‘채증' 필요성 때문이라는 주장도, 시민의 가장 기본적 자유의 실현을 행사하는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불법' 때문에 복장을 단속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불법폭력집회로 규정하고 주최 측인 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하는 등 공안 분위기를 조성하는 최근의 흐름이다. 대통령이 직접 집회·시위를 ‘불법’으로 모는 데 그치지 않고 테러리스트와 연계하면서 집회참가자를 범죄인 취급해, 집단적인 의사표현을 불법화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기본권 행사를 위해서는 범죄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누구보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야당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분출되는 각계각층의 집단적 요구를 폭력과 불법으로 매도하는 정부여당의 분위기에 야당이 눈치보며 은근슬쩍 끌려가는 형국이 된다면 야당은 그 존재가치가 없다 할 것이다. 이번 복면금지법을 비롯해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정부여당의 각종 시도들을 야당이 나서 적극 막아야 할 것이다. 

목, 2015/11/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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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19) 오후 2시 30분 서울 대학로 흥사단에서 각계 시민사회노동농민 단체들 대표와 시민들이 함께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중상을 입은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고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지금 병상에서 사투 중인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오늘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인폭력진압 경찰청장 사퇴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시국선언문


 

 

11월 14일 개최된 민중총궐기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경찰 당국의 대응이 많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경찰 당국은 집회 당일, 차벽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시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였습니다.

차벽은 시위 참가자와 국민을 격리시켜 ‘많은 국민에게 집회의 취지를 알린다’는 집회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이미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고, 비록 완화되기는 했지만 법원으로부터도 “통행로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이러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판결을 외면한 채, 광화문과 청계광장, 종로의 통행을 완전히 가로막는 불법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공권력이 집회 참가자에게 ‘불법 필벌’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법을 지키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할 것이며, 시위대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를 행하기 이전에 경찰 당국의 불법적 집회방해 행위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경찰 당국은 집회 당일, 고압의 물대포와 고농도 캡사이신을 동원한 과도한 진압을 펼쳐, 백남기 농민이 중태에 빠져 있고, 수십명이 크게 다치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 당국은 백남기 농민의 머리에 고압 물대포를 직사하였으며,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에도 수십초 간 직사를 계속하였고, 구호조치를 취하러 온 이들에게까지 직사를 계속해 빠른 응급 치료를 가로막았습니다.

 

백남기 농민 뿐 아니라,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에 고압 물대포의 직사가 이뤄졌으며, 참가자가 쓰러진 뒤에도 직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경찰 당국은 팔이 부러진 시민을 이송하려 온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직사해 구조를 방해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집회 이후 경찰 당국의 해명은 더욱 심각합니다. 경찰 당국은 살수차의 모니터로 시위 참가자의 하반신에 살수를 하는지, 참가자가 쓰러졌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백남기 농민과 집회 참가자들에게 쓰러진 이후에도 살수를 한 것이 아니며, 당시 진압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수차가 진압 수칙을 수행할 수 없다면, 그 살수차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경찰 당국의 진압수칙에 따른 진압으로 참가자 한 명이 중태에 빠지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었다면, 그러한 진압수칙은 즉시 개정되어야 할 것이며, 살수차 사용은 중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불통’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14일 집회에 10만이 넘는, 2008년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이후 최대 참가자가 운집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일반해고제 도입’,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등을 강행하였기 때문이며, 쌀 관세화 개방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의 조건이었던 ‘밥쌀용 쌀 수입’을 지속하여 쌀값 폭락의 가속화를 방치하였기 때문이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박근혜 정부는 성난 민심에 불법적 차벽과 고압 물대포, 고농도 캡사이신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모습을 어떻게 ‘불통’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어떻게 지금 이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국민과 소통해야 하고, 민주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일 벌어진 과잉 진압에 대해 사과하고, 경찰청장을 파면하며, 관련 책임자를 문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강행되고 있는 소위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밥쌀용 쌀 수입’, ‘노점상과 철거민들에 대한 강제 철거’를 중단하고, 이들과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은,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하며, 향후 우리의 요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임을 밝힙니다.

 

2015년 11월 19일

 

21C한국대학생연압 경기진보연대 경남진보연합 계승연대 광주노동자교육센터 광주인권운동센터 광주진보연대 교육희망네트워크 구속노동자후원회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노동자연대  대구경북진보연대 대전민중의힘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민권연대 민대협 민자통 미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주의국민행동 민주회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중의힘 범민련남측본부 변혁재장전 보건의료단체연합 부산민중연대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사월혁명회 사회진보연대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서울인권영화제 서울진보연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알바노조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예수살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우리사회연구소 울산진보연대 원불교개벽위원회 이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 피해자구명위원회 인권교육센터'들' 인권운동사랑방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철거민연합 전국학생행진 전남진보연대 전북진보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전태일재단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청년유니온 청년좌파 청년하다 촛불교회 추모연대 통일광장 통일의길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무모회 평화와 통일을여는사람들 평화재향군인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한국가톨릭농민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진보연대 한국청년연대 한살림 등 116개 단체

 

목, 2015/11/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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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서울 강북구와 함께 강북구의 지속가능발전 비전과 목표 키워드를 도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1일, 강북구청 기획상황실에서 강북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이하 지속위)로 구성된 ‘주민참여단’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워크숍에서는 4개 분과(환경, 사회, 경제, 추진기반)로 나눠 주민이 그리는 미래상을 담아 비전 키워드를 도출하고, UN 지속가능발전 목표에 맞춰 강북구만의 목표를 만들어보았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먼저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주민의 공감과 가치 정립을 위해 권기태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강북구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의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지속가능발전의 기본개념과 국내외 동향,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 과거 국내 예산투자 사업의 폐해 사례와 주민참여 정책의 성공 사례를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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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참여위원 간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초상화 그리기’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얼굴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봐야하기에 쑥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구성원 간 얼굴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대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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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워크숍 시간에서는, 3키워드 워크숍으로 비전에 담겼으면 하는 키워드를 적어보고 그 이유에 대해서 돌아가며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별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중 선정하고 다듬어진 비전을 5개씩 제출했습니다. 모아진 20개의 비전에 주민참여단 모두가 투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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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17개의 UN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분과별로 나눠 브레인 라이팅형식으로 목표 키워드 작성 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 분과별 지속가능발전 목표

▲ 분과별 지속가능발전 목표

각 목표에 주민참여단이 생각하는 강북구의 문제점, 해결방향 등 키워드를 자유롭게 작성해 보았습니다. 의견이 집중된 목표가 눈에 띄기도 했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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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온 소중한 아이디어들은 정리 후 2번째 주민참여단 워크숍(전략과 지표 키워드 선정) 전까지 강북구 지속위 회의를 통해 수정과 수렴의 절차를 거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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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그것을 함께 공유했다는 점에서, 주민의 의견을 담아 강북구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워크숍이었습니다. 9월부터 10월까지 2개월 간 진행될 주민참여단의 활동, 그 멋진 시작을 응원합니다.

– 글 : 서유경 | 뿌리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박정호 | 뿌리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금, 2018/10/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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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재입니다.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에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최소 132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이 행한 테러라고 선언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과 함께 IS의 점령지를 폭격했습니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즉각 모든 난민 수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민전선은 무슬림 국민을 범죄의 원흉으로 지목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범을 잡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1985년 유럽 26개국 사이 국경을 개방하기로 한 솅겐조약이 흔들립니다.
대다수 무슬림은 폭력에 반대하지만, 인터넷에는 무슬림에 대한 욕설이 난무합니다.
국경의 벽을 더 높이 올리고 사회 다양성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시리아 소년의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터키 해변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전 세계가 난민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유럽 각국이 앞 다퉈 난민에 대한 관용정책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관용’(톨레랑스)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서 무장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 시민을 대상으로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이런 테러는 ‘소프트 타깃’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정부기관이나 공적 기관 등과 같은 ‘하드 타깃’을 목표로 하던 테러와는 달라진 형태입니다. 일상적 평화와 안전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식의 테러입니다.

이번 프랑스 테러 사건은 휴머니즘의 불안정성을 보여줍니다.
인류는 이성의 힘으로 문명과 휴머니즘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약한 나라라고 무작정 공격하거나 약한 사람이라고 마구 죽이고 잡아 가두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제국주의와 파시즘, 전쟁으로 얼룩져 있던 유럽연합도,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식민과 살육의 역사를 겪은 동아시아도, 이성의 힘 위에 합의된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은 사실 매우 불안한 균형 위에 있나 봅니다.
파리에서 벌어진 대낮의 테러가 그 불안을 보여줍니다.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에 슬퍼하던 인류애도,
우리가 다 이뤘다고 생각하던 민주주의도,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도,
어쩌면 자그마한 촛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훅 불면 꺼질지도 모릅니다.

갈등이 계속 심해지면, 국수주의가 발호해 세계전쟁으로 치달았던 유럽발 세계대전의 역사가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은 어떤가요?
‘일자리 빼앗아가는 외국인 다 쫓아내야 한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다 처벌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 간혹 듣지 않으시나요?
다양성과 관용,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가 이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갑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습니다.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관용의 힘과 이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사회 일각의 모습처럼 말이지요.
(관련기사 보기 : “아이들이 무슬림 친구를 탓하지 않길 바란다”)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이럴 때일수록 이성과 관용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양성을 지키고 관용을 유지하며,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를 분명히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이원재 드림

목, 2015/11/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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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백남기 씨의 쾌유를 기원하며 – 백 씨의 아픔, 개발독재 미몽에 사로잡힌 결과 Wycliff Luke 기자 출처 : 김상호(신비) 페이스북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와 어정쩡한 크기 때문에 늘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다툼의 희생양 신세를 감수해야 했다. 이런 질곡은 근현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져 이 땅의 민초들은 기구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하근찬은 단편소설 <수난 이대>를 통해 ...

화, 2015/11/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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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포트레이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정동칼럼] ‘급진적 점진주의’는 어떤가

이렇게 자문해본다. 나는 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정치체제를 좋아할까? 다중의 변덕스러운 의견 위에 서 있기에 시끄럽고 불안정할 때가 많은 게 민주주의다. 전쟁이나 세계적 경제위기 같은 외부 요인에 취약하고, 좋은 정당 내지 신뢰받는 정치가 없이는 잘 작동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 자유로운 것만큼 이견을 가진 시민 집단 사이에 주고받는 상처도 만만찮다. 다른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는 큰 변화를 잘 허용하지 않는다. 20세기 초 혁명을 지향했던 유럽 좌파를 괴롭혔던 문제도 거기에 있었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수록 혁명적 열정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혁명의 무덤’이라고 봤던 그들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장 예민하게 인식했던 사람들이었다.

작고 느린 변화의 가치가 중시될 때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이 더는 불편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달리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점진적 접근이 바로 민주적 이상에 맞는 일임을 이해하는 데 있다. 점진주의자라야 일상의 정치현실 속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확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냉소적 관점이나 실현될 수 없는 허상을 안고 괴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 집권하에서는 어떤 개량도 의미가 없다는 근본주의적 태도에 희생되지 않을 수 있고, 약간의 개선을 위한 헛된 노력 말고 큰 싸움을 준비하라는 파국론이나 종말론의 유혹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도 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적극적 에너지를 결집하기 위해 늘 새로워지려는 시도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는 빛난다. 작은 변화를 성취하기 위한 노력, 나아가 작은 변화를 쌓아가려는 접근이 실질적으로는 더 급진적이고 더 적극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

일상의 점진적인 실천을 우습게 생각하면서 오로지 크고 근본적인 변화만 말한다면 그것은 ‘호사가들의 급진주의’ 내지 ‘급진주의를 위한 급진주의’일 수는 있어도 실체적 변화를 이끄는 진짜 급진주의는 아닐 것이다. 작은 변화를 전체 체제의 변화라는 더 큰 목표로 이끌 실력을 키우고, 마을 정치와 전국 정치, 지방 정치와 중앙 정치, 생활 정치와 정당 정치를 연결할 수 있는 시야를 갖는 것이 훨씬 더 급진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누군가 필자의 이념적 성향을 ‘좌파’로 단순화할 때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언젠가 어떤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초청자는 “좌파들이 참여한다”며 나와의 이념적 동질성을 당연시 여겼다. “급진민주주의적 대안을 마련해보자”고 했던 그분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솔직히 이질감을 느꼈다. 내용보다는 좌파 내지 급진민주주의자라는 호명에서 뭔가 특별함을 풍기려는 심리부터가 거부감을 갖게 했다. 그들을 실망시키겠지만, 오랜 공동의 실천 없이 큰 변화의 기획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번의 급진적 변화보다 나날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갈등 속에서 지루하지만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긴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그나마 조금 더 나은 것을 얻는 것, 혹은 그나마 덜 나쁜 결과를 얻는 것도 ‘작은 승리’로 생각하는 것이 좋은 태도라 본다. 막다른 분노와 냉소, 개탄으로 현실로부터 멀어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가능성을 만들려는 꾸준한 노력 없이 급진적 변화는 꿈도 꾸기 어렵다고 본다.

이런 생각이 스스로를 즐겨 좌파나 급진민주주의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누군가 필자의 책 <정치의 발견>을 읽고 난 뒤 “경청할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난 뒤 기분이 더럽게 나빴다”고 평한 것을 보았다. 솔직한 반응에 웃음이 터졌다.

당연히 나의 민주주의관에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만 생각을 달리하면, 전보다 더 창조적인 논쟁과 토론을 이어갈 수 있고, 내용 없이 공격성만 드러내는 나쁜 습속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을 줄일 수는 있다. 차이를 적대가 아닌 이견으로 다룰 수 있고, 그런 이견 속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common ground)’을 점진적으로 넓혀갈 수는 있다. 모두 같은 의견으로 동질화된 사회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달리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민주주의는 차이와 이견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을 확장하려 꾸준히 노력하는 급진적 점진주의자를 위한 체제라고, 필자는 믿는다.

2015-11-09일자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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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1/0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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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인터넷 표현물 검열’ 안된다


송기춘 |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 회장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인터넷상 명예훼손 게시물을 더 손쉽게 삭제, 차단하는 방향으로 정보통신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원래는 당사자나 대리인의 신청에 따라서만 심의신청을 하도록 하는 조항을 삭제해 아예 제3자를 포함하여 누구나 심의신청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아무런 신청 없이도 방심위가 직권으로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명예를 더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기관이 이런 일을 나서서 하겠다는 것이 미심쩍기도 하거니와 이런 일을 하기에는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기관에서 이 일을 감당하겠다고 하니, 그 결과는 시민들의 명예보호보다는 권력을 가진 이들의 ‘명예’만을 위한 활동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또한 명예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법원의 판단을 받기도 전에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물을 삭제함으로써 국민들의 자유로운 표현을 행정기관이 억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것이 컬러TV를 보는 사람들에게 흑백TV를 보라고 강요하는 것이라면, 위와 같은 방송통신 심의규정 개정은 호랑이는 생각지도 않는데 여우가 호랑이의 뜻을 내세우며 위세를 부리는 격이다.

 

명예란 마땅히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는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짓으로 꾸며서 또는 진실을 들춰내서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명예훼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명예가 훼손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어떤 사실이 드러나서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볼 일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허명이 사라지고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졌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명예훼손인지 여부는 당사자의 의사와 분리하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방심위가 명예의 주체가 되는 사람과 무관하게 명예를 훼손하는 게시물에 대해 심의를 개시하겠다고 하는 것은 출발부터 잘못이다.

 

예산이나 인력 운영이 뻔한 기관이 조직을 키울 목적이 아니라면, 자신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을 왜 스스로 하겠다고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수천만 국민의 명예와 관련되는 게시물을 망망대해나 다름없는 인터넷에서 찾아내고 그것이 명예훼손인지를 판단해서 피해를 받은 자가 피해구제를 원하는지 의사를 확인하는 일을 방심위가 할 수나 있을까. ‘명예를 보호하겠다’는 방심위의 고상한 뜻을 존중한다 해도 이런 일을 지금의 조직이 할 법이나 한가 말이다. 

 

결국 ‘철수와 영희가 그렇고 그런 사이더라’는 게시물이 철수와 영희의 명예를 훼손한 거라는 결정까지 할 게 아니라면, 방심위가 염두에 두거나 실제 하게 될 일은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들에 관한 일일 수밖에 없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자유로워야 하는데, 이러한 심의규정은 오히려 행정기관이 나서서 권력자에 대한 비판만 억누르기 쉽다. 아니, 어쩌면 그걸 겨냥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방심위의 개정안은 헌법이 금지하는 검열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도 아닌 행정기관이 게시물을 삭제 요청할 수 있다면, 그 표현물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 아직 공표되지 않은 표현물을 행정기관에 제출하게 해서 심사하고, 심사를 통과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검열은 아니다. 방심위의 심의는 표현물을 존속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검열의 실질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이 검열은 심사기준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눈과 귀에 거슬리는 것을 없애면 안락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건강한 비판이 가해지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민주주의에는 그게 필요하다.

 

* 이 글은 11월 6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금, 2015/11/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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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해방과 한반도 분단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70년 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비극은 핵무기가 인류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지만 갈등과 대결, 군비경쟁의 악순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 그에 따른 미국 핵 자산의 한반도 진입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군사력 확충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군비 경쟁은 70년이 지난 지금 당시보다 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 불안하고 위험한 악순환의 고리를 언제까지 그냥 두어야 할까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이 악순환의 출발 지점인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하는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2015, 이제는 평화'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진을 통해 현안에 대한 분석과 대안, 국방·외교 분야를 바라보는 평화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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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안보법제 밀어붙이기…일본의 4가지 과제

[2015, 이제는 평화] 아베가 망친 일본 민주주의, 선거로 바로 세워야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

 

 

지난 9월 19일 새벽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 법안이 '통과' 됐다.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의 목소리, 전국에서 펼쳐진 시위와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 반대, 야당의 항의 등 이 모든 것을 무시한 강압적인 방법에 의한 통과였다.

 

이 법제는 그 내용뿐 아니라 그것을 통과시킨 정치적 절차 자체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시민단체들은 물론 많은 학자, 지식인, 저널리스트들은 이미 이를 경고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안 '통과'라는 사태를 맞았다. 앞으로 일본 국민과 정책 입안자가 당면할 4가지의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과제는 이 '법안 성립'의 유효성을 묻는 것이다. 이 법안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이미 지적해 왔다. 또 표결 강행이 무효라는 법률가의 지적도 있다. 향후 '위헌 소송'이 제기되어야 한다. 법원에서의 철저한 위헌 심사를 통해서 손상된 일본의 입헌주의를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과제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40년 넘는 기간에 걸쳐서 역대 내각이 유지해 온 헌법 해석을 한 내각의 각의 결정으로 대전환하고 각계의 반대론을 무릅쓰고 법안을 무더기로 강행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베 정권에 대해 국민이 나서 심판을 내릴 필요가 있다.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바로 이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 과제는 이 법제의 시행과 운용을 둘러싼 문제다. 이 법제로 인해 자위대는 미군 등과 함께 해외에서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어떻게 실시될지는 정부의 운용에 달린 문제이지만, 국민의 감시와 국회의 관여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될 것이다.

 

더욱이 이 과제는 다음의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명목으로 자위대가 출동해 무력행사를 하는 시나리오의 경우다. 이런 경우를 "우리나라(일본)의 존립이 위협 받고 국민의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의 권리가 뿌리째 흔들릴 명백한 위험이 있는 사태"로 한정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무력행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되어 있어 그 범주가 애매하다. 과연 개별적 자위권의 발동 이외에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이 점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추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자위대의 이른바 '평시' 활동 범주를 확대하는 것에 관해서다. 안보법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경우에 자위대가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 안보법제를 추진해 온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법 제도가 바뀌었다고 중국, 북한, 국제 테러 등의 위협이 줄어들 리 만무하다. 문제는 일본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그 행동 여하로 위협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고, 충돌이나 전투의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자위대는 보다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남중국해에서는 미군과의 공동 경계 활동 차원에서 자위대가 평시 미 함정을 방호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또한 분쟁지에서 임무 수행을 위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어 그 사용 기준이 곧 책정될 것이다. 이들 운용을 잘못하게 되면 자칫 자위대의 행동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다. 비록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상태라도 사실상의 전사자는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위기감을 갖고 향후 정부의 행동을 감시해야 한다.

 

일본 헌법 9조는 비군사적 수단에 의한 문제 해결을 국가의 기본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전쟁 방지의 기본은 외교적, 평화적 해결이다. 그것은 몇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과제는 명문상의 개헌 문제이다. 안보법제에 대한 비판 중에는 헌법의 조문을 바꾸지 않고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것만으로 이를 추진했다는, 그 방법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향후 '자위대가 해외에서 활동하게 됐으니 이제 현실에 맞춰서 헌법을 바꾸자' 식의 '점진적' 개헌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원래 아베 자민당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중요 과제로 강력히 제기해 왔다. 따라서 아베 정권이 명문상의 개헌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어느 과제도 그 논의와 의사 결정 주체를 정부와 국회만으로 해서는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회 앞 그리고 전국에 번졌던 시위의 물결은 일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움직임은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일본의 향방을 좌우하는 이들 중요 과제에 관해서 국민적 논의와 함께 참여 민주주의의 발전이 요구된다.

 

 

* 가와사키 아키라 씨는 반핵 및 평화운동 활동가로 도쿄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뒤 군축 및 평화운동 싱크탱크인 '피스데포'에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피스보트'의 공동대표와 집단적 자위권 문제 연구회 대표를 맡으며 아베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정책들을 비판하는 연구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은 9월 19일 '집단적자위권문제연구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받아 중복 게재합니다. (☞일본어판 보러가기)


 

수, 2015/09/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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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오후 11_17_00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박근혜 노동 개혁, ‘사은품’은 그럴 듯하다
[조성주의 생각] 10%가 아닌 90%를 위한 진짜 노동 개혁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노동 시장 개혁 드라이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노동 시장 개혁을 주요 국정 과제로 내세우며 ‘임금 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과 ‘일반 해고 요건 완화’ 등을 포함한 어젠다를 제시하고 나섰다. 물론 정부가 발표한 안들이 정말 개혁안인지에 대해서는 먼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공공 기관에 임금 피크제를 강제하고 민간 대기업에 확산시킬 경우 역대 최악의 고용 상황을 보이는 청년 고용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임금 피크제는 노-사-정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깊이 숙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임금 피크제가 도입되어도 청년 고용에 효과가 없다는 데에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도 그리고 국내에서의 연구 결과도 세대 간의 고용 대체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수차례 확인되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전체 노동자 1824만 명 중 근속년수 1년 미만은 597만 명(32.7%)이고, 2년 미만은 844만 명(46.2%)이다(2013년 8월 경제 활동 인구 부가 조사). 전체 노동 시장의 절반 가까이가 근속년수가 2년이 안되며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 비율 역시 18.1%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를 기록할 정도로 고용 유연성이 심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60세 정년 연장까지 도달하는 노동자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이들의 임금을 일부 삭감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청년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백번 양보해서 정년 연장과 임금 피크제를 연동해서 도입할 때 청년 고용이 늘어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총액 인건비와 정원 조정을 통해 신규 채용을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 공공 부문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사실 수천 명 수준으로 크지 않으며 이 정도로는 청년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거의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계약직 청년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했던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을 모델로 내세워 홍보를 했던 지난 노사정위원회 논의 때처럼 정부는 오히려 청년들을 인질로 삼아 일부 노동조합과 야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내년(2016년) 총선을 염두에 둔 갈등 유발 전략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노동계와 야권은 임금 피크제 도입이 청년 고용과 관련이 없으며 일반 해고 요건 완화 등은 노동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개악’이라는 점을 부각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임금 피크제, 청년 고용 효과 없어

대통령과 정부가 내세운 노동 개혁 프로그램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대통령은 효과 없는 임금 피크제와 노동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반 해고 요건 완화 등을 주요 이슈로 들고 나왔지만 한편에서는 “실업 급여를 현재 평균 임금 50% 수준에서 60%로 인상”하고 “실업 급여 지급 기간도 현행(90~240일)보다 30일을 더 늘리겠다”라고 제시했다.

이를 두고 노동 기본권 침해와 미미한 청년 고용 대책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 위해 생색내기용 사회 안전망 강화 정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실업 급여 인상과 수급 기간 연장’을 포함한 ‘고용 보험 개혁’은 다수의 노동자에게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진짜 ‘노동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현재 노동 시장 개혁에서 노-사 간, 그리고 노-정 간에 쟁점이 되고 있는 ‘임금 피크제’가 사실 전체 노동 시장의 10% 수준도 되지 않는 공공 부문과 일부 대기업 내부의 문제라면 ‘고용 보험’은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와 청년 실업자, 그리고 영세 자영업자까지 포함되는 노동 시장의 90%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직결된 문제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의 노동 유연성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상적 해고에 노출되어 있다. 계약 기간 만료, 정리 해고 등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다음 직장에 취업하는 동안 생계와 재훈련, 교육 등을 담보해줄 고용 보험이다.

청년 실업자도 마찬가지다. 고용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100만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고시원과 취업 학원 등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들을 위해 작동해야 것이 바로 고용 보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는 구멍이 너무 많다.

실업 급여 수급 기간은 평균 103일 정도로 3개월 남짓의 수준이며 자발적 이직자나 청년 실업자들에게는 어떤 혜택도 돌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고용 보험 제도 개혁은 비록 박근혜 정부가 생색내기용의 초보적인 수준으로 제시했지만 그 방향만큼은 진보 진영과 노동계 역시 동의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명품처럼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실제로는 형편없는 저질 상품인데 끼워서 파는 사은품이 오히려 더 질 좋고 유용한 것이어서 난감한 경우가 가끔 있다. 임금 피크제와 각종 노동 기본권 침해 정책들에 끼워져 있는 실업 급여 제도 개선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명품보다 유용한 사은품, 실업 급여

현재 정부가 제시한 실업 급여액을 현행 50%에서 60%로 인상하고 수급 기간을 30일 정도 연장하는데 예상되는 추가 재원은 약 1조5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고용 보험료를 현행 1.3%(노사 각 0.65% 부담)에서 약 1.7%(노사 각 0.85% 부담)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이에 대해 보수 색채를 띠는 일부 경제지는 벌써 고용 보험료 인상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을 언급하며 날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노동계와 진보 진영이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 오히려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청년 고용 효과가 없는 강제적인 임금 피크제와 ‘쉬운 해고’ 도입 등의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자발적 이직자에 대한 실업 급여 지급과 청년 실업자를 위한 ‘실업 부조’ 도입, 수급 기간의 획기적인 연장 등을 대안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필요하다면 청년 실업자들과 반복 해고에 노출된 비정규직들을 위해 취업자들과 사측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고용 보험료를 2% 이상의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도 고려하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고용 보험 제도는 노동자 간 연대성이 가장 높은 제도이며 무엇보다도 현재 10% 수준의 조직률에 그치고 있는 노동 운동 밖의 노동에 대한 사회 연대라는 측면에서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비판을 넘어 대안으로 싸워야 한다. 따라서 고용 보험 제도 개혁을 시작으로 노동 시장의 일부 10%의 문제를 뛰어 넘는 노동 시장의 90%를 위한 진보 진영의 대안적 노동 개혁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있어 언제나 가장 효과적인 공격은 더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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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8/1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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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대세다. 전국에 20여 개의 마을지원센터가 만들어졌고, 지금 50여 개가 설립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마을은 이제 시대적인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에 서울시 마을공동체 위원장을 퇴임하신 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은 국민에서 시민이 되기 위해 달려왔는데, 그 시민이 지금 난민이 되어 있다. 그 난민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민이 되는 길이다.” 라고 한국의 현대사를 압축했다. 누구나 동네에 살지만, 주민으로 살지 않는다. 숙소일 뿐이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함께 술 한잔 할 수 있고, 이야기 나누고, 아이들도 같이 키우는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주민이라 말할 수 있다.

마을민주주의와 마을공동체를 연결하는 고리는 ‘마을공공성’이다. 공공성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이 공개적인 의사소통 절차를 통해서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속성’이라고 한다. 인민이 주체가 되고, 공공복리를 얻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그 방식은 공개적이다. 우리 사회가 이 공공성을 일구어왔던 역사는 ‘국민에서 시민으로 다시 난민에서 주민으로’라는 조한혜정 교수의 요약과 딱 들어맞는다.

한국전쟁 이후, 1960~80년대에 한국사회의 근대적 과제는 국가가 주도했다. 엘리트 관료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가 공공성 실현을 담당했다.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동력으로 교육, 의료, 교통, 주거 등 후발국가의 근대적 과제의 대부분을 빠른 속도로 성취해왔다. 하지만 권위주의와 획일성, ‘기득권과 양극화’로 인해 공공성은 위기에 처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를 거치면서, 1990~2000년대에 우리사회 공공성 창출의 과제는 시민사회로 그 바통이 넘겨졌다. 국가주도 공공성의 혁신을 자임한 시민단체들은,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민주적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삼았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파고들어 혁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민운동에 시민이 없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다. 시대적 과제를 떠안기보다는 분과적인 ‘전문가주의’에 갇히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다.

위임(委任)된 권력에 기초한 국가의 통치적 주도이든, 자임(自任)의 진정성에 기초한 시민단체의 계몽적 주도이든, 우리사회의 공공성은 위기에 처했다. 이 공공성의 과제를 누가 다시 떠안을 것인가?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한다. 생활의 필요를 함께 하소연하고, 함께 궁리하고, 함께 협동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개인이 생활의 필요를 공공의 필요로 전환시키면서, 이웃들과 지속가능한 협동적 생활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을이고, 마을이 공공성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민선 5기에 마을공공성의 씨를 뿌렸고, 민선 6기에 본격화되고 있다. 바야흐로 2010년대는 마을공공성의 시대이다.

이제 앞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건강한 ‘마을공공성’의 확장이다. 마을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이끌어가는 다양한 공론의 장을 통하여 형성되고 확장된다. 국가가 주도하거나 시민단체가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필요를 이웃과 함께 나서서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나의 필요가 이웃의 필요가 될 때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며, 나아가 동네의 필요로 확장될 때 그 해결의 수준도 함께 높아진다. 필요에 대한 공감의 확장은 주민들의 공식·비공식의 다양한 공론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공론장을 통한 공감의 확대 과정 속에서 개개인의 사적인 이해관계는 지역사회의 공적 과제로 동의되기도 하고, 지역 차원의 새로운 과제가 합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공적 합의가 지역사회의 건강성을 지켜주는 공공성의 바탕이 된다.

공론장은 친밀한 이웃들 간의 소소한 소통관계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공식적인 회의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와 공식성의 정도가 다양하다. 공론장은 참여하고 싶은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며, 경제적인 형편이나 처지로 인하여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공론장이 동시에 그리고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론장은 때론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립의 장이 되기 때문에 운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다수 주민의 자발성과 참여를 높이는 데에 적절하지 않은 다수결을 통한 결정보다는 다수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결정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합의 과정은 다양한 의견과 입장을 상호 이해하고 학습하는 과정이며,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상대방의 의견과 차이를 조정하는 공유와 공감의 과정이다. 이렇게 도달한 합의는 이후 실행과정에서 협동적 참여의 수준을 보장해주고 결과적으로는 더욱 효과적인 결실을 얻게 한다. 따라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 할지라도 성숙한 토론과 합의의 문화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국가는 국가의 몸집은 커지고, 공론장은 축소 파괴되어 온 역사가 있다. 기술관료의 분배정책은 ‘수혜자주의’를 내면화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각자의 자기 사생활에 각개 약진에 매몰하는 현상까지도 만들었다. 공공성을 다시 복원하고, 다시 마을 단위에서 복원해 내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이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마을공공성은 모든 공공성은 시작이다. 마을공공성은 시민공공성을 다시 부추기고, 국가공공성을 바로잡는 힘이 된다. 그래서 마을은 공공성을 융합적으로 재구성하는 엔진이며,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의 장소다. 마을공공성은 공공성의 혁신이다. 마을이 곧 혁신이다.

글_유창복(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센터장)

월, 2015/08/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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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의 이사 소식, 하나 둘 채워지고 있는 사무실 소식에 이어 오늘은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하는 정치발전소의 강의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어느새 3개의 강좌가 진행되었네요. 물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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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금자리에서의 첫 강좌는 조성주 대표의 ‘7월특강_변화의 정치학’ 이었습니다.

아직 강의장을 마련하지 못해 서울혁신파크 1동 1층에 있는 청년허브 세미나실에서 진행했어요. 약 30여분의 참가자들이 왔었습니다. 알린스키의 생애와 한국의 운동과 정치의 현실을 통해서 보는 ‘변화의 정치학’에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도 하는 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에도 진행하게 될 정치발전소의 특강을 많이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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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진행되는 강의는 박상훈 학교장님의 ‘여름방학 정치학 교실’입니다. 2주라는 시간동안 기초반, 토론반, 심화반 세 개의 강좌가 진행됩니다. 조금은 빡빡하지만 더운 여름 열심히 공부하며 이열치열로 이겨보면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수강생 대부분이 처음 만나는 분들이라 더 반가운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심화반이 끝날 때 까지 재밌게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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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동안 진행되는 마지막 강좌는 바로 박찬표 교수님께서 강의하시는 ‘민주주의로 만나는 한국현대사’ 강의입니다. 잘 모르고 있는 1945~1950년 사이의 역사를 주로 다루면서 그 당시의 사회 성격이 현재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 시기의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지에 대한 공부를 하는 강의입니다. 수강신청 해주신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깜짝 놀랐지요^^

앞으로 더 많은 강좌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조만간 하반기 강좌 소식도 전해드릴께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화, 2015/07/28-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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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포트레이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정동칼럼] 텅 빈 민주주의

인간이 만든 정치체제 가운데 민주주의만 유일하게 ‘목적을 전제하지 않은 체제’로 불린다. 민주주의에서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시민이 참여하는 공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민주주의란 시민 모두가 의견을 가질 권리를 향유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고 나선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그는 시민 대중의 불안정한 의견에 의존한다는 이유에서 민주주의를 나쁜 체제로 보았다. 불안정한 의견이 아니라 확고한 진리 위에 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그가 주창한 것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철학자 왕’ 내지 교육받은 소수 엘리트에 의한 지배였다. 민주주의자라면 플라톤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 즉 ‘시민의 자유로운 의견에 기초를 둔 공적 결정의 체계가 과연 잘 작동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절한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민주주의 이론가라고 불리는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실질적 내용에 있지 않음을 다시 강조했다.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것은 공적 논의와 결정의 과정에 평등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차적 조건이 어떠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조건에서 의견의 자유가 공익적 결정과 양립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려 한 것인데, 그는 그 핵심을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찾았다. 시민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들 시민집단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민주정치가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건축물의 단단한 기반처럼 시민 개개인이 다양한 집단으로 결속되어 있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듯 몇 개의 공적 의견이 형성되어 경합할 때 민주주의는 그 이상에 가깝게 실천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이론적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불평등 효과를 제어하고 노사를 포함한 주요 생산자 집단들 사이의 힘의 균형을 다루는 민주주의론의 발전이 있었다. 시민의 의견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 정치적 조직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집단과 조직, 결사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시민 참여와 의견 형성 과정으로 이해된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보면 국가와 개인 사이가 텅 빈 공간처럼 다가온다. 누가 그 공간을 채우는가. 언론과 행정이다. 지난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지만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도, 국가와 개인 사이의 공허한 공간을 주도했던 권력은 이들이었다. 이들에 의해 사회적 의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시민 개개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은 이번에도 반복되었다. 이들이 유능하고 책임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무능하고 무책임함에도 위기 때마다 이들의 존재가 더욱더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시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달리 의존할 수 있는 대안적 판단의 원천이 없기 때문이다. 혹은 대안적 정보와 의견을 공유할 다양한 중간집단에 결속되어 있는 시민의 규모가 형편없이 작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엔 보건의료노조가 합리적 의견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노조나 정당 등 자율적 결사체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 수는 너무 적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은 행정권력과 언론권력에 욕하면서도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사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투명하게 공개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옳고 정확한 사실은 어딘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특정의 인식 틀을 통해 사실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이 해석되고 판단되는 사회적 과정이 어떠냐 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도 일종의 정보처리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정보가 선별되고 교환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집단과 조직, 결사체들이 역할을 해야 하고, 시민 개개인 역시 이 과정에 결속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통해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공적 판단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래야 언론과 행정의 기능에 수동적인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 중대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회적 힘의 균형을 말하기 이전에 국가와 개인 사이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지금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가 행정권력과 언론권력에 휘둘리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욕할 자유뿐이다. 이래저래 시민은 더 사나워지고 사회는 더 분열되는 일만 많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2015-06-08일자 경향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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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6/0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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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2]
 

왕이 되고 싶은 박근혜 vs. 신민이 되기 싫은 시민

허위의 정치를 넘어서자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이미 위헌 논란을 제기하던 터라, 모처럼 여야 합의의 중재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메르스 국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국회의장의 간곡한 부탁에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물론 어느 정도 예측된 바였다. 다만 어떻게 논란을 종식시키고, 어떤 판단 근거를 제시할 것인지가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25일 국무회의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예상 밖을 넘어 경악 수준이었다.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삼권 분립 정신에 의거하여 권력 간 균형을 잡는다는 취지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지금까지 76번의 거부권이 행사되었고, 그때마다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지곤 했다. 대통령의 합법적인 권한 행사인 만큼, 거부권 행사에는 그에 알맞은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상황과 이유에 따라 언행은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안정적인 정국 운용을 위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자 민주주의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76번째 거부권 행사는 권력 남용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만하다.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시키지도,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대신 여당 지도부를 향한 분노, 조롱, 경멸의 메시지를 퍼부었다. 5쪽 분량, 16분 동안 읽어 내려간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대통령의 언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발언이다. 그것은 독선과 아집의 언어였다. '짐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투로 대통령은 자신만이 옳다고 말했다. 말로는 '위민(爲民)'을 내세우지만, 대통령에게 동등한 주권자로서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마치 복종의 대상, 신민으로 여길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세월호의 데자뷔처럼 아른거린다. 대통령은 태생적인 무능,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책임은 무능의 징표이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에는 무능과 무책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 나름의 정치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적 보복으로 정치를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처단할 것을 주문한다. 여당 원내대표에 대해 공개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거부권 행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것이다.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 받은 유승민 원내대표. 그를 축출하려는 친박 진영의 압박. 대통령은 이렇듯 여당을 한 치 앞에 내다볼 수 없는 정쟁으로 몰아넣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대통령은 배신자들을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고 호소한 점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거부권 행사에서 제시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이를 두고 수많은 해석이 오고가고 있지만, 어느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려워 보인다. 분명한 건, 대통령의 발언으로 날선 정파 갈등이 전면화되고 있다. 줄 세우기의 무자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메시지의 진의는 대체로 수신자의 수용 과정에서 밝혀진다. 대통령은 의당 국민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민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공교롭게도 여당을 향해 있고, 또한 즉각적인 반응도 여당에서 나왔다. 여당의 정파 논리가 대통령의 의지를 결정한다. 친박, 비박의 한판 싸움의 전운이 감도는 이유이다. 어찌 되었든 대통령은 정치를 혐오한다. 정치인 모두를 구태 정치로 몰아치면서 국민에게 심판해줄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 국민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유권자들이다. 이번 정부의 수사를 빌리자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시국을 조성하고 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이 전개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공개사과, 반성문 작성. 친박의 조직적인 사퇴 압력, 의총 의결의 거부. 이 모든 과정은 비-민주주의적 발상이고, 왕정체제의 행태들이다. 주말 사극에 나올 법한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시계는 과거에 멈춰있다.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주권자는 정치에서 사라졌다. 우리 모두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정치인들을 구경하는 방관자일 뿐이다.

 

대통령은 시민을 기만하고 있다. 위민을 내세우지만 국민은 안중에 없는 기만인 것이다. 이것은 공약 준수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기본인 언행의 일치, 신뢰조차 사라진 '허위의 정치'의 산물이다. 누구도 듣지 않고 지키지 않는 언행에는 현재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진실한 말과 행동에서만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소통 안에서 얻어진 말과 행동의 의미만이 진실인 것이다. 무릇 진정성에 기반한 소통이 필요한 이유이다. 대통령의 발언에는 주권자에 대한 존중마저 없다. 당청 간 소통 부재를 해결해 달라고 국민에게 떼쓰고 있는 꼴이다. '저 배신자를 처단해 달라'고 호소한 대통령.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대통령의 호소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부하는 우리들을 혼란하게 한다. 주춧돌 없는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무너진 민주주의. 21세기 우리 민낯이 드러나는 현주소이다. 아니 민주주의는 죽었다. 오직 관념으로 이해될 뿐이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 정당 정치는 현실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권력 투쟁으로 귀결된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살아남느냐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 권모술수만 난무할 것이다. 기득권 사수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허울일 뿐이다. 음모는 음모를 낳고 입에서 입으로 회자될 것이다. 여기서 사라진 것은 시민의 정치 참여 기회이다. 지금 우리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빠져 있다. 국정 안정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만든 무책임한 상황이다. 앞장 설 선장도, 나아갈 방향도 오리무중이다. 이런 현실은 내일에 대한 믿음마저 갉아먹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상황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원론적인 물음에 봉착하고 있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희망을 품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희망은 우리라는 생각에서 나오고, 시민으로 거듭나는 태도에서 싹 터 오른다. 대통령도 인정하고 있다. 최종 심판자는 우리 자신들, 시민 정치의 주권자들임을. 지역주의, 지연주의야말로 구태이다. 구태는 허위를 키우는 정치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허위의 반대는 진실임을.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메르스 국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허약한 공공성의 기반이 문제가 아니던가. 공공성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 또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상호 신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축적되고 전승된다.

 

더 이상 방관적 태도론 미래가 없다. 소수의 손에 흔들리는 정치, 국민의 위상을 변두리에 두는 정치에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이를 벗어나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요구대로 심판하는 것이다. 주권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 새로운 정치를 위한 발판이다.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7/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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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순회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 참가자 모집 웹홍보물

 

 

정치,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고 짜증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은 바쁘게 먹고 사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이 놈의 정치는 맨날 싸움박질이나 하고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고요,

 

그런데 우리네 먹고 사는 문제도 다 정치에 달렸다? 이건 무슨 말일까요?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에서 마음 뻥 뚫리게 함께 얘기해봐요!

 

참여연대는 거리가 멀어 참여연대 총회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지역회원님들을 위해 매년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회원 분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부산/대전/광주/대구광역시에서 회원 만남의 날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성남/수원 등 경기남부권에 계시는 회원님들을 위한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를 준비하였습니다.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충돌?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갈등? 노동당-정의당 합당? 녹색당은 뭐지? 현재의 뜨거운 이슈를 포함해 2016년 총선을 앞둔 우리는 지역에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면 좋을지, 비례대표의원과 전국구의원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원 수 확대는 어떻게 볼 것인지 등, 정치를 둘러싼 여러 질문과 해법들을 참여연대 지역순회 민주주의강좌를 통해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2015 하반기 <지역순회 민주주의 강좌 : 손에 잡히는 정치>

 

언제 어디서? 

2015년 7월 22일(수) 7시 수원 그리고 8월 22일(토) 4시 성남에서

(수원시 평생학습관 2층 세미나실 / 성남시 분당구청 2층 소회의실)

 

강사 

서복경 /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참가비

참여연대 회원 무료 (비회원 1만원)

 

참가신청하러가기>>클릭

 

문의

시민참여팀 02-723-4251 [email protected]

화, 2015/06/3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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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자 선거권 보장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국회 전달

보통선거 원칙 확립 위해 모든 수형자에게 선거권 보장해야


지난 11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법심사소위원회는 1년 미만의 선고형을 받은 수형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이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민주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인권사회연구소, 새사회연대,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는 6/24, 관련 의견서를 정개특위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선고형 1년 이상을 선고 받은 수형자는 전체 수형자의 약 83%에 달하므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수형자 10명 중 8명 이상의 선거권이 제한됩니다.

 

우리 단체들은 의견서를 통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과 시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수형자에 대한 선거권 허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왜 국가가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권리인 선거권의 부정을 형벌의 한 형태로 존속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국가권력과 법의 정당성, 준법 의무는 모든 시민이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부터 직접 도출된다”며 “보통선거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모든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보장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2호는 집행유예자와 수형자에 대하여 전면적·획일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2014년 1월 헌법재판소는 집행유예자 부분에 대해서는 위헌 결정을, 수형자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2015년 말 시한)을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집행유예자는 곧바로 선거권을 보장받았지만, 수형자의 선거권은 국회 논의에 맡겨져 있는 상황입니다. 국회가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길 기대하며,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도 부탁드립니다. 

 

※ 공직선거법심사소위 통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는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수, 2015/06/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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