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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괴물의 자화상 - 강준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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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괴물의 자화상 - 강준원 회원

익명 (미확인) | 월, 2015/08/31- 17:05

 

 

괴물의 자화상

강준원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오유진


“지난번 인터뷰는 어떠셨어요?” 
“잘 된 인터뷰와 그렇지 않은 인터뷰의 기준이 뭐예요?”
수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먼저 질문 공세를 펼친다.
음, 잘된 인터뷰라…. 일단,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하면 늘 망친다는 거고, 근데 어떤 걸 빼고 넣느냐 결정하는 게 무척 어렵고, 그렇게 조각난 내용들을 매끄럽게 이어붙이는 건 더 어렵죠. 또 내용이 너무 무거우면 이 코너가 회원인터뷰인지 특집기사인지 구분이 안 가요. 회원들도 『참여사회』를 읽다 숨 돌릴 곳(?)이 필요한데 말이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우면 그것도 문제가 되는데…. 
오늘도 난 누가 듣든 말든 ‘회원인터뷰’라는 작업의 애로사항에 대해 한참을 구시렁거린다. 
“아, 이제 감 잡았어요!”
까만 뿔테 안경 너머로 그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노래 부르려고 가입했어요
“참여연대는 예전부터 알았는데 딱히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그러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참여연대 회원모임 중에 ‘참좋다’가 있더군요.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려면 참여연대 회원이어야 한다고 해서….”
참여연대에 가입한 이유가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라고요? 인터뷰에 대해 감을 잡았다는 그와는 달리 난 아직도 그에 대해 감을 못 잡고 헤매는 중이다. 요즘엔 시민합창단도 많은데 왜 굳이 ‘참좋다’를?
“다른 노래모임도 몇 군데 가봤는데 ‘참좋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여긴 노래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고 그 무엇보다 재미있는 구성원들이 많다는 게 결정적이었죠.”


‘재미있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예요?
“갑자기 이야기의 수위가 좀 높아지는데, 사실 전 부모님과 유대감이 별로 없어요. 그 결핍을 ‘참좋다’ 사람들이 메워주었죠. 제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들이에요. 그것 말고도 ‘참좋다’엔 자랑할 게 많은데, 일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요. 신입회원이 들어오면 그들을 교육할 능력과 경험을 갖춘 분들이 많이 있고 연습할 공간도 따로 있죠. 가장 큰 장점은 주기적으로 공연을 할 기회가 많다는 거예요. 정기공연은 1년에 한 번이지만 다양한 행사나 집회에서 공연할 기회가 무척 많거든요.” 


그의 이력이 적힌 종이를 다시 확인한다. 스물여섯. ‘참좋다’에서 주로 부르는 노래들을 즐길 세대는 확실히 아니다. 
“솔직히 처음엔 좀 거부감이 있었죠. 아무래도 민중가요나 투쟁가를 주로 부르니까요. 그런데 그 거부감을 넘어서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화음을 쌓는다고 해야 하나,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내 목소리 하나를 보태는 것,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또 공연을 보신 분들이 정말 좋았다며 건네는 한마디가 그런 거부감을 뛰어넘게 만들죠.”


노래를 부를 때만은 모든 걸 잊고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는 그에게 취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음악 감상, 악기연주, 인디밴드 공연 관람…. 그의 대답과 상관없이 내 머릿속엔 흔한 정답들이 몇 개 떠올랐다. 
“내면 탐구요.”
오늘 난, 감 잡긴 틀린 것 같다. 

 

나를 살리고 싶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선택한 공부는 호텔경영학. 1년도 채 안 돼 호텔리어의 꿈을 접고 머나먼 프랑스까지 가서 배우고자 했던 건 국제관계학. 그러나 정작 그가 지금 몰두하고 있는 공부는 상담심리학. 내면 탐구라는 독특한 취미는 여기서 유래한다.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스무 살에 집에서 나와 독립했어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학비 때문에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었죠. 공익근무요원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을 가지고 프랑스에 갔어요. 국제관계학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예비학교에서 몇 달 수업을 들어보니 그것도 제가 하고 싶던 공부는 아니더군요.” 

 

호텔경영학과에 지원했던 것도 프랑스에서 공부하려 했던 것도 그렇게 하면 세상이 자신을 알아줄 거라는 열등감 때문이었다고,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털어놓는다.
“제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결핍이 많으셨어요. 저 또한 예전엔 알콜 의존도가 높았고 불면증으로 한동안 약을 먹기도 했어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상담을 받았고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이 극복했어요.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관련된 책을 읽고, 배운 것들을 실천하는 게 무척 즐거워요. 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되었고요. 이젠 많이 편안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는 ‘나’만이 아니라는 걸, 그는 뚜렷이 기억했다.
“19살부터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4년간 신문모니터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구요, 청년유니온에서 상담과 관련한 소모임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참여연대에서 발족하는 청년 참여연대 준비위원회에서 활동 중이에요.”

 

스물여섯 살의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며 ‘청년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청년

유니온 회원 수가 얼마나 되느냐?'와 같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난 매번 가슴 한켠이 아리다. 
“천명이 조금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2010년 3월에 창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그 새롭고도 놀라운 탄생을 지켜보며 난 1,2년 쯤 지나면 조합원 수가 급격히 늘어날 거라 기대했었다. 실망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아픈 질문을 재차 던진다. 왜 청년들은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노력들마저도 외면하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 보는 거죠. 지금 청년들은 무언가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불안과 공포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오로지 그것뿐이에요.”

 

사람들은 말한다. 왜 이 나라의 청년들은 그런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과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이 쓰라린 질문에 그가 답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그래도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그 절박함이 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여유를 박탈해 버렸으니까요.”

 

참여사회 2015년 9월호 (통권 226호)

 

청년들의 모임을 만듭니다!
무한경쟁사회가 제시하는 온갖 규범들에 맞춰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이 땅의 청년들은 그런 세상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를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히 여기면서도 정작 현실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세상이 정해준 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그 어느 시대의 청년보다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이 이율배반의 시대에도 ‘생각’을 모으고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참여연대 부설로 ‘청년 참여연대’라는 기구를 만들고 있어요. 9월에 발족할 예정인데 저는 준비위원회에서 교육분과장을 맡고 있죠. 취지는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청년들의 힘으로 한번 풀어보자는 거구요. 현재 중점을 두고 하려는 일은 등록금, 생활비, 주거비 등을 포함한 청년들의 ‘비용’문제예요. 청년들의 실생활과 밀접하고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데 의견이 모아진 거죠. 의제도 그렇고 구성원도 그렇고 ‘청년 참여연대’는 누구든지 함께 이야기하고 행동할 수 있게 조직을 열어둘 생각이에요. 또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에 동참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임금이 하나의 변수가 될 텐데 계속 의견을 나누고 지혜를 모아야겠죠.”

 

지금 본인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도 ‘비용’인가요?
“제 생각엔 비용보다 더 시급한 게 패배감인 것 같아요. 지금 청년세대는 국가나 사회를 상대로 싸워서 승리해 본 경험이 없어요. 예전 세대는 어쨌거나 다른 이들과 연대해서 무엇인가를 쟁취해 낸 경험들이 있잖아요. 또 예전엔 사람들이 이 정도로 파편화되진 않았죠. 그 땐 대학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그에 비하면 요즘 청년들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죠. 이런 패배감, 고립감 등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봐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공부를 하다 느낀 건데 논리는 절대로 입장을 뛰어넘지 못해요. 저도 지금 제가 처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죠. 일단은 제 주위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시민단체나 작은 모임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나오게끔 설득해야겠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린, 괴물이 아니다
“예전에 학원 안내데스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어요. 10개월 정도 일하니 정규직 제의가 들어왔어요. 이것도 다 청년유니온에서 교육받고 알게 된 것들인데, 주휴수당, 미사용 연차수당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받지 못했던 것들이 생각났어요. 근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에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1년 정도 있다가 얘기하면 법적으로 절 쉽게 해고할 수도 없고 설사 해고당해도 퇴직금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긴 했는데…. 왠지 그렇게 하는 건 학원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정규직 전환 전에 얘기를 꺼냈더니 비정규직 마지막 근무 날 미지급분들을 못 주겠다면서 정규직 제안도 철회하더군요. 그렇게 해고되었죠.”


그는 다음에 밟아야할 절차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먼저 고용노동청에 신고했다. 그리고 부당해고 사안으로 노사위원회에 제소하려고 할 때쯤 학원에서 합의를 제안했다. 노무사하고 의논 끝에 체불임금을 모두 받고 실업급여까지 받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그 돈 안 받고 그냥 정규직으로 가는 게 더 큰 이득 아니었을까요?
“선택의 문제죠. 그쪽을 선택했으면 실리야 더 있었겠지만 마음이 내내 불편했을 거예요. 학원에는 저처럼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정규직을 포기하더라도, 나라도 이렇게 싸우면 저 친구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죠. 결국 그 친구들 못 받았던 수당들 모두 받았어요.”

 

무한경쟁 속에서 때론 희생양으로 때론 패배자들에게 가차 없는 차별을 일삼는 가해자로 살아가는 20대들을 다룬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란 부제가 목에 걸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자신의 창조주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향해 울부짖는 괴물의 절규가 들려왔다. ‘내 모습은 당신의 더러운 투영이고 당신을 닮았기에 더욱 끔찍스럽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온 결과가 괴물이라면 그런 세상을 만들어낸 우리 모두는 괴물의 창조주이다. 그러나 이 추악한 인과관계 속에서도 우리가 뚜렷이 기억해야 할 것은 끝내 괴물이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얼굴, 이 땅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학원에서 그런 일을 겪으면서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줘야 내 입에 밥이라도 넣을 수 있단 걸 깨달았어요. 근데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긴 싫었어요. 그게 비인간적인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순 없잖아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 난 감 좀 잡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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