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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행동 릴레이 인터뷰] 첫 번째, 민주행동 공동대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목, 2015/08/27- 11:55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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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행동 릴레이 인터뷰- 첫 번째, 민주행동 공동대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민주행동 공동대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인명사전편찬부 원장을 거쳐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맞고 있는 그야말로 우리 과거사 청산운동의 산증인이자 대표인물이다.

광복 70년, 평생을 역사 바로세우기에 헌신해 온 김삼웅 공동대표를 만나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민주행동: 백범 김구 평전을 비롯해 안중근, 조봉암, 안창호는 물론이고 김대중, 노무현 평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사들의 평전을 집필하셨는데 이러한 왕성한 집필활동의 비결이 무엇인가?

김삼웅: 나이 60이 돼서 건강만 허락한다면 우리나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통일운동가 30명의 평전을 쓰겠다고 생각해서 30대 중후반부터 자료를 모았다. 지금 2만 8천여 점의 자료를 모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집필활동을 할 수 있었다.

민주행동: 최근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암살>을 통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새롭게 주목받기만도 하고 과거사 청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김삼웅: 영화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그냥 보고 한 번은 도산아카데미 청년위원회에서 주최한 “암살과 김원봉 이야기”를 강연하는 기회에 다시 봤다. 우리 지성풍토가 아직 사대주의가 심해서 남미의 체 게바라는 알아도 그에 못지않은 철학을 가진 저항가 김원봉은 잘 모른다. 아쉬운 부분이다. 약산 김원봉 선생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 한 독립운동가였다. 김구 선생보다도 현상금이 많이 걸린 사람이었다. 김구 선생은 5만엔, 약산 김원봉 선생은 7만엔의 현상금이 걸렸을 만큼 일제가 두려워했다.

민주행동: 민주행동은 불의한 정권에 맞서 2016년 민주진보세력의 총선 승리, 2017년 민주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들과 함께 제2의 민주화운동을 일으켜나가기 위한 국민운동체다. 이를 위해 민주행동이 나아갈 길은 어때야 하는가?

김삼웅: 안토니오 그람시는 “낡은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위기다”라고 말했다. 지금 보수정권이 8년째 이어져오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에 상당한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안보불안, 민생파탄, 사회정의가 사라지고 광신적인 반공주의, 분단의 고착화, 교과서 왜곡, 특히 빈부격차와 부의 편중 등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있다. 심지어 상위 1%의 부자들이 GDP의 24%를 차지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가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이번 남북간의 전쟁위기도 지뢰매설이 발단인 것 같지만 이미 한반도 자체가 지뢰판이다. 이런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권력교체가 가장 필요하다. 서두에 이야기 한 것처럼 “낡은 것이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위기다”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여전히 위기고 그래서 민주주의국민행동이 만들어졌다. 야당도 현 상태로 봐서는 이 국가적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도 없고 결속력도 없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이탈된 민심을 수렴할 수 있는 대안 정당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검·경은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이나 하고 사법부도 정권의 영향권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월항쟁 이후 가장 어려운 국민이다. 이런 때 민주주의국민행동이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소외된 국민을 만나고 청년들에게도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해야 한다. 4.19, 5.18, 6월항쟁, 부마항쟁을 거치면서 축적된 민족민주역량을 세력화하고 국민들의 힘으로 국민과 함께 새로운 역사의 길을 밝혀나가야 한다.

버나드쇼는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죄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동안 사회적 패악, 빈부격차, 남북대결, 경제정책, 교과서 국정화까지 이렇게 유신시대로 회귀해도 다수의 언론, 지식인, 대학생들 등 사회의 추동세력이 되어야 할 이들이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민중의 아픔에 동참하지 않고 침묵하는 어려운 상황은 대한민국의 진로를 대단히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깨어있는 국민과 함께 민주, 인권, 분배 정의가 일반 국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수 있는 시대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군사독재 파시스트들이 자유주의자로 행세하고 극우보수세력이 시대정신으로 포장되고 친일반역자들은 건국의 선각자로 앞세우고 독재자를 건국의 아버지, 시장독점주의자들은 시장경제론자, 임시정부와 4.19혁명 정신을 훼손하면서 법치주의, 사대강 자연을 파괴하면서 녹색운동, 국가안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서도 반공주의 이런 왜곡된 역사현상, 포장된 국민속임수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8.15 기념사에서 건국절을 운운한 것은 헌법정신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에 제대로 지적조차 되지 않아 국민들이 잘 모른다. 이런 부분을 우리 민주주의국민운동이 해 나가야 한다.

민주행동: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부친(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의혹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영화 <암살> 국회 시사회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씨도 일본에서 망언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김삼웅: 1980년대 친일문제연구소 소장을 했었는데 그 시절만 해도 친일 후손들이 감히 역사 전면에 나서 큰 소리 치지 못했다. 그런데 90년대, 2000년대 들어오면서 드러내놓고 친일파 후손들과 연계된 지식인, 정치인들 한국의 소위 상류층들이 결국은 친일청산과 군사독재 청산을 못함으로써 그들이 뿌리를 견고히 하고 줄기를 뻗어 언론, 대학, 연구소 등을 장악하고 기득권 실세가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정의하면서도 친일세력이 자신들의 악덕과 반민족행위를 덮기 위해 1948년을 건국일로 내세우기까지 한다. 친일청산은커녕 친일세력이 득세하는 모순과 김무성씨의 이런 모습을 보고도 양심있는 지식인과 언론들이 비판하지 못한다. 박근령씨도 일본에서 천왕폐하까지 운운했는데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친인척이 그런 행동을 했다면 과연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침묵했겠는가. 다시 친일세력이 득세하고 활개치고 한국 사회의 민족정기가 땅에 떨어지고 사회 정의가 증발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심지어 의열단 등의 독립운동 역사마저 삭제하려고 한다.

약산 김원봉 선생의 부인인 박차정 여사는 조선의용대, 의열단 단원이기도 했는데 해방 전에 중국에서 돌아가셨다. 피묻은 박차정 여사의 옷을 해방 후 고향에 묻었는데 재작년에 밀양에 가보니 관리가 되지 않고 김원봉 선생의 생가도 표지석만 남아있었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 한 제1의 독립운동가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들을 이렇게 두는 건, 야만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가해자는 사과나 반성이 없는데 피해자가 먼저 용서한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축재하고 자식들 유학 보내고 사법시험 합격시키고 언론사에 들여보내서 기득권이 되었다. 민주화운동, 통일운동가들은 용공, 종북주의자로 몰아버린다. 임시정부기념관 하나 없는 나라에 친일파를 기리는 동상, 기념관이 수두룩하다. 우리 헌법전문에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받는다면서 그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이 수치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끝>

 

김삼웅 공동대표 약력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2004 ~ 2008.03 제7대 독립기념관 관장

1998 서울신문 주필 상무이사

1997 아태평화포럼 편집위원장

1996 아태평화재단 기획조정실 실장

1995 민주당 홍보위 위원장

1991 민주당보 주간

1972 민주전선 편집장

 

주요저서

몽양 여운형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역사의 절망을 넘어, 안중근 평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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