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긴급조치변호인단, 훗카이도를 가다.

지역

긴급조치변호인단, 훗카이도를 가다.

익명 (미확인) | 화, 2015/08/25- 17:06

긴급조치 변호단 2차 워크숍

- 강제동원, 홋카이도를 가다

 

 2015년 8월 그 해, 홋카이도의 여름은 뜨거웠다.

 

 <첫째 여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 서린 홋카이도, 아직도 서러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 이선경

 

 나에게 있어 홋카이도라는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온천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겨울 관광지로 좋은 장소 정도의 의미만 있었다.

 

그 홋카이도에 강제징용되어 희생된 분들의 유골이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아있다는 소식도 이번 워크숍 준비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나는 홋카이도와 우리 민족의 과거사에 대해 무지하고 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던 나에게, 창 밖에 펼쳐진 삿포로의 풍경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과 밭 사이에 빨갛고 파란색 지붕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는 한적한 농촌 풍경은, 그곳이 그 끔찍한 강제징용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에 오르자, 이번 워크숍의 가이드 김영환 선생님이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간단히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반환 운동의 경과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1997년부터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여러 동아시아 지역의 학자와 시민단체가 모여 10여 차례의 학술대회를 거치면서 공동으로 유골발굴을 해왔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활동들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방문할 장소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현장들이라고 하였다.

16일  삿포로별원 - 강제징용 간담회

 

버스로 한참을 달려 101구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본원사 삿포로 별원 납골당에 들어서니 가장 안쪽 구석에 초라한 유골함 3개가 놓여있었다. 본래 일본의 장례절차에 따르면 한 사람의 유골이 하나의 유골함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삿포로 별원에 101명의 유골이 있으면 총 101개의 유골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1997년도에,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을 시켰던 지자키 공업의 요청에 따라 삿포로 별원은 무연고 유골이라는 이유로 유골을 모두 합골해 버렸고, 그 때문에 현재 3개의 유골함 안에 101명의 유골이 섞여있다고 하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최소한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서글픈 상황들이 담담히 다가왔다. 부디 고국으로 돌아가서 햇볕 잘 드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돌아섰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2003년 유골 발굴 당시 발굴된 유골이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근거 중 하나가 유골의 발을 감싸고 있던 발싸개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신발이 아닌 천으로 된 발싸개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임을 확인하였다고 하니, 당시 강제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였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16일  삿포로별원 - 납골당 2

 

반가운 소식은 현재까지 홋카이도에 남아있는 미봉환 유골 150구 중(삿포로 별원과 사루후쓰, 비바이 탄광 등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120구가 올해 9월 한국으로 봉환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올해 유골봉환은 9. 11.부터 9. 20.까지 9박 10일 동안 진행되는데,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끌려왔던 3,500km를 되짚어 서울까지 가는 여정이라고 하였다.

 

이번 유골봉환은 역사적인 의미가 큰 행사이므로 당연히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주최가 되어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정부와 전혀 관계없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2004. 12. 노무현 정부 때 고이즈미 총리에게 유골봉환을 요청한 이래 정부차원에서 유골봉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정부가 유골봉환에 의지를 보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부득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유골봉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유골봉환의 최대 걸림돌은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라고 하겠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이 일본 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입증할 수많은 자료 앞에서도 끝내, 강제징용은 민간기업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므로 일본 정부는 유골봉환을 비롯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 정부만을 탓하고 있을 수 있는지… 힘이 없어 자국민이 이 혹한의 땅에 강제로 끌려와 노예처럼 일하는 것도 막아주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서도 그 유골을 봉환해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일 것인데, 과연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둘째 여정>

차별은 조선인만의 몫이 아니었다. 홋카이도의 자연인 아이누를 만나다.

 

- 성춘일

 

8월 17일, 홋카이도 이튿날이 밝았다. 워크숍의 설렘과 고단함을 채 풀기도 전에 오타루 외곽, 해안가에 위치한 청어 잡이 박물관에서 둘째 여정을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을 굽이굽이 두어 번 올라가자 오래된 낡은 집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어 잡이 어부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며서인지 박물관 내부와 외부에 전시된 물건은 화려하거나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100여년 전 어부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었다. 박물관 옆에는 해안가 절벽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뜰이 펼쳐져 있고 바닷바람에 살랑거리는 풀밭 위, 녹슨 크고 작은 닻과 낡은 고기잡이 도구들이 어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전하고 있었다.

 

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부부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입장표를 사서 신발을 벗고 건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두터운 가죽장갑과 눈 위에서 신는 신발이 이곳이 겨울왕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남자 성인용 지게, 여자 성인용 지게, 아이들이 메는 지게를 보니 이곳 주민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청어 잡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층에는 당시 주민들의 의상을 걸어 놓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입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아이누족인 가와무라 켄니치(아이누 이름 : 신리츠 에오리)씨가 운영하고 있는 아이누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 전통복장 입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박물관은 켄니치씨의 조부가 만든 것으로, 일본 정부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누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했다가 현재는 켄니치 씨가 이어 받아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을 알리는 민속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이누들의 배, 의상, 그릇부터 낚시, 사냥도구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어머니’를 뜻하는 아이누의 ‘하루코노’라는 단어는 원래 식량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아버지’는 돈 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족의 호칭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녹아 있어 신기했다.

17일  아이누민속박물관 1

 

아이누족은 일본 정부가 금지하기 전까지 연어잡이와 수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메이지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점령하더니 홋카이도 전체를 일본 정부의 관할 하에 두면서 아이누족들은 일정한 구역에서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누들의 생활수단이었던 연어잡이와 수렵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를 다스리기 위해 일본 본토 주민들을 이주시켰다(둔전병으로 근무하는 일본인에게 일정 면적의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어 유인함). 아이누들이 농사를 지으면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으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누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아이누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이누 전통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금지했다.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족들의 호적에는 출생지역(아이누 거주지역)을 별도로 표기한 결과, 아이누 거주 지역 출신들은 공직 진출을 금지당하거나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등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출신 지역 표기제는 없어져 눈에 보이는 차별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다고 한다.

 

아이누 사람들은 몇 년 전 일본정부를 상대로 본래 자신들이 주인이었던 홋카이도를 돌려달라고 반환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고 한다. 수렵민족인 아이누들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을 소유한다는 인식이 희박했고, 문자도 없었던 탓에 땅에 대한 소유관계를 표시한 공부 자체가 없었다. 고도 문명의 발명품인 글자로 표기된 문서를 가지고 다투는 법적 소송에서 이들의 패배는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억센 모기마저도 정겨워진 숲 속 고겐사에서의 깊은 밤

17일  고겐사2

 

점심을 해결한 후,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슈마리나이 댐 부근에 위치한 고겐사에 도착했다. 고겐사는 현재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의 개최 장소이자 홋카이도 역사교육의 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고겐사가 평화교류와 역사교육의 장소로 변모한 것은 1976년 도노히라 요시히코 씨가 고겐사 본당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 나이, 사망 연원일이 적힌 다량의 위패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위패에는 조선인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승려로 활동하면서 위패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 도중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학습장 내부 각 벽에는 유골 발굴 작업과 유골 반환을 위한 각종 활동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로 희생된 이는 210여명 정도인데 그 중 40여명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전 슈마리나이 댐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오는 시간, 일본 최대의 인공호수인 슈마리나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제법 매서웠다. 거대한 댐의 수문이 물길을 가로막고 서 있고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탑이 수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탑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 도중 사망한 수백 명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인데, 정작 탑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희생자들의 이름 대신 ‘순직자 위령탑’이라는 이름과 댐을 건설했던 우류전력 사장 아다치 다다시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자 이 지역 사람들이 우류전력에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라도 세워 줄 것을 요구했는데, 위령비 세울 돈 조차 아까웠던 아다치 다다시는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했던 교각의 기둥을 옮겨와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일본 각지는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까지 강제로 끌려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사람들에게 위령비 세울 돈조차 아까워했으니 이들이 당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의 참혹함은 이 공사장 집단합숙소의 이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사람들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합숙소를 어항에 들어간 문어가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이 합숙소에 잡혀 들어간 자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타코베야(문어방)’라고 불렀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 타코베야는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저녁식사 후, 고겐사에서 위패가 발견된 후 위패의 주인인 유골 발굴 작업과 한‧일 교류를 통해 수십년 동안 유골 봉환운동을 했던 오노데라 마사미(小野寺正巳)교수님과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으로부터 슈마리나이 공사 현장의 참혹함은 물론 유골 봉환 운동에서의 에피소드 등 유골 봉환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 이어졌다.

17일  변호단회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고겐사에 도착한 직후부터 슈마리나이 댐, 조선인 유골 매장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신 오노데라 교수님, 일흔 셋의 연세에도 유골봉환 운동을 계속하고 계신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 누가 알아주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묵묵히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고 두 분의 모습은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한 잔 한 잔, 비워지는 술잔은 늘어만 간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도.

 

 

<셋째 여정>

새하얀 메밀밭 한 가운데서 굳은 도약을 외치다.

 

- 이동준

 

고겐사(光顯寺) 조릿대 묘표전시관에서의 숙박.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41도까지 내려간다는 슈마리나이답게 새벽의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

 

일본 남자들은 “매일 아침 나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줘요”라고 청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진짜 일본된장국 냄새가 발길을 이끌었다. 모두들 한솥밥을 떠서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면서 돈독한 정을 나누었다.

 

고겐사를 떠나면서 우리는 9월 본국 봉환 예정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살피고 위령의 의미를 담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골로 남아있는 희생자들의 원혼을 떠올리니 가슴 한 켠이 아파왔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잠드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음 달에 돌아오시는 길 또한 밝혀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8일 아침  유골

 

버스를 달려 슈마리나이(朱鞠內) 호수가에 도착하였다. 동양 최대의 인공호가 보여주는 절경에 감탄사가 나왔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과 세찬 물살이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슬픔을 담은 듯 느껴져서 이내 숙연해졌다.

 

삿포로 시로 이동하는 길에는 광활한 메밀밭이 계속되었다(농업은 홋카이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본의 총 경작 가능한 땅의 4분의 1이 홋카이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백은의 언덕이라 명명된 사진촬영지 및 시마다야란 회사의 계약 농장터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새하얗게 펼쳐진 메밀밭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들이 가진 풍요로움에 대해 부러운 마음 역시 들었다.

18일  메밀밭2

 

이어서 방문하게 된 곳은 다카도마리의 한 공동묘지였다. 슈마리나이 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카가와시 다카도마리 공동묘지에는 2명의 조선인을 포함한 5명의 피해자가 묻혀 있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 외에도 더 많은 희생자들이 그 인근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장 추정지 위로 일반인들의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어 발굴 작업이 어렵다고 하여 몹시 안타까웠다.

 

이어서 이치조지(一乘寺)와 부설 다도시(多度志) 보육원을 방문하였다. 보육원은 이치조지의 주지스님이 서양식 어린이집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모델이었는데, 서양식 종탑과 일본 특유의 견고하고 단정한 목재구조의 건물이 인상적이었고,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는 발길을 돌리기 어렵게 하였다. 벽면에는 매해 어린이들의 졸업 작품으로 공동 제작된다는 대형 판화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많이 인상적이었는지 보육원을 떠난 뒤에도 동심을 가득 담은 어린이들 특유의 그림체가 자꾸만 머리에 남았다.

 

강제징용이 이루어지던 시절엔 하루가 걸려도 당도하지 못하던 길을 이제는 반나절이면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우리의 문명은 그 외관(外觀)이 눈부시게 진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內面)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도 일본도 야만(野蠻)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꾸만 과거로 회기하려 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야만과 대치해야하는 작금의 현실에 맞서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하고 마침내는 승리할 것을 다짐한다.

 

변호사는 단순히 “타인의 송사(訟事)”만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대리하면서 몇 배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워크숍은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거쳐 우리가 힘이 되어드리고자 하는 그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고 듣고 느껴서 담은만큼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변호단이 “일시적인” 부침을 겪고 있는 지금, 단단히 심신을 다잡고 도약할 수 있게끔 해주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를 다녀와서

- 유소영 15기 자원활동가

나비효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2차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절절히 계속 생각난 단어이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언론에서 청운진 해운을 쥐잡듯이 잡는 것이 싫었었다. 언론몰이를 해서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병언, 구원파로 이어지며 뉴스는 더욱 자극적이 되어가고 사람들을 그곳에 열중시킴으로써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주로 정부 공무원들)은 빠져나가려는, 꼬리 자르기를 시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문회를 보면서 세월호는 누구 하나 잘한 것이 없는, 민관의 합작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청운진 해운이 처음 세월호를 국내에 들여올 때부터 과도학 중개축, 그것에 대한 정부의 허가 과정, 검사 등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정말 많고도 많았는데, 기가 막히게도 모든 것이 이어지고 이어져 세월호 참사라는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다. 딱 한 사람만 그 연결고리를 끊어줬다면 정말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모든 것은 관행인간관계의 무한신뢰라는 이름으로 용인되었다.

박종운 위원은,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만 바뀐 채로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단 하나의 이유라고.

그래서 나는 세월호 사건이 삼풍백화점 붕괴나 성수대교 붕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정치적인 프레임에 이 문제를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개인을 벌하는데 집중하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봤으면 좋겠다. 박위원장님 말씀처럼, 사람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지만 그 구조와 관행이 있는 한 안전사고는 언제든 모양새만 달리해서 반복될 거니까.

월, 2016/04/11- 10:00
72
0

2016. 7. 11. 민생경제위원회 공동주최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민생입법을 말한다’ 토론회

 

서채란 민생경제위원장

민생경제위원회는 민변이 발간한 「2016년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중 개인 파산 및 회생, 이자 제한 등 서민금융 분야, 주택 및 상가임대차 등 부동산 분야, 중소상인 및 중소기업 보호, 공정거래위원회 개혁, 소비자집단소송 도입 등 공정경쟁 분야, 공기업 개혁, 국민소송 도입, 법인세 개혁, 누리과정 지방교육재정 개혁 등 조세재정 분야의 입법과제를 집필하였습니다. 특히 민변이 제안하는 12대 개혁입법과제에 선정된 서민금융 분야와 소비자집단소송은 2016. 6. 22. 국회에서 개최된 민변 「2016년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출판 보고대회에서 집중 토론되기도 하였습니다.

민생경제위원회는 위 민변 출판 보고대회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제윤경의원실, 국민의당 박주현의원실, 정의당 정책위원회와 공동주최로 2016. 7. 11.에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민생입법을 말한다〉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photo_2016-08-12_10-57-41

 

〈한국사회의 개혁과 입법과제 민생입법을 말한다〉 토론회는 민생경제위원회가 주최한 최초의 토론회로서, 개인 파산 및 회생, 이자율 제한 등 서민금융 분야 · 주택 및 상가임대차 등 부동산 분야는 백주선변호사가 발제자, 더불어민주당 제윤경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중소상인 및 중소기업 보호, 공정거래위원회 개혁, 소비자집단소송 도입 등 공정경쟁 분야는 박정만변호사가 발제자, 정의당 김용신 정책위의장이 토론자로 참여하고, 공기업 개혁, 국민소송 도입, 법인세 개혁, 누리과정 지방교육재정 개혁 등 조세재정 분야는 조수진변호사가 발제자, 국민의당 박주현의원이 토론자로 참여하여 활발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photo_2016-08-12_10-46-34

이날 토론회에서 민생경제위원회는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제·개정해야할 민생경제 관련 개혁법안들을 제안하였고, 각 정당의 의원님들은 민생경제위원회가 제안한 법안과 일치하거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총선 공약을 제시하고 앞으로 민생경제 관련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류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photo_2016-08-12_10-49-24

각 정당이 20대 국회의 최대 화두를 민생안정으로 정하고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 토론회를 계기로 20대 국회에서는 민생경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법안이 많이 통과되어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더 풍요롭고 안정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금, 2016/08/12- 10:59
71
0

21년의 밤

– 민변 대전충청지부 22차 정기총회 후기

– 김우찬 변호사

 

벌써 1년이 지났나 싶었다. 민변 대전충청지부의 22번째 정기총회가 지난 7월 14일 변산반도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열렸다. 각자의 터전에서 ‘변호사’로 살아가던 이들이‘민변’이라는 이름 아래 속속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날은 장마가 서둘러 자리를 양보하고 불볕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작년 여름에도 이렇게 더웠었던가.

뜨거운 한해였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촛불은 낡은 시대를 불태우고 새로운 시대를 밝혔다. 시민들은 촛불의 열망을 새로운 정권에 전달했다. 민변 대전충청지부도 설립 2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한해였다. 지부 회원들은 조촐하게나마 기념행사를 통해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0주년 기념행사에서 필자가 올린 SNS 글을 찾아보았다.

“시간을 지나고, 나이를 새긴다는 것은 물리적인 말로 쉽게 얘기하기 어렵다. 좋고, 싫고, 실망하고, 칭찬하고, 울고, 웃고, 잘했고, 잘못했고, 울고 싶고, 웃고 싶은 이야기들이 시간 속에 담겨 있다. 그걸 하루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격려하다’. 서로의 격려로 오늘을 말하고 싶다. 민변 대전충청지부는 지난 20년을 격려하고 내일을 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2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회원들은 대외적인 행사를 여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민변 회원으로 살아온 것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념행사에서 민변 대전충청지부가 걸어왔던 발걸음을 공유했던 시간은, 말 그대로 서로를 ‘격려’하며 민변의 회원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소소하지만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지부 회원들은 새로운 1년을 맞이했다. 이날 총회에는 대전, 청주, 충남에서 모인 회원 16명과 그 가족을 포함하여 총 42명이 참석했다. 개인적으로는 민변 입회 후 첫해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작년에 이어 올해 2번째 총회참석이었다. 함께 참석한 아내는 날이 너무 더워서 작년처럼 술자리를 하면 나가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물론 날이 아무리 더워도 술자리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맥주의 시원함이 목을 스치며 더욱 맛있는 술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총회에서는 각 지역의 활동과 지역 현안, 반가움과 무탈하게 지내온 1년의 시간을 빠르게 공유했다. 진정한 공유는 총회 이후 식사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에는 새로 입회한 이승현 회원과 본부에서 지부로 소속이 변경된 오진욱 회원이 참석하여 반가움을 더했다. 2016년에 입회한 이후에 처음으로 신규회원을 맞이한 필자의 반가움은 더욱 컸다. 드디어 막내 회원에서 벗어났다던가, 점점 고령화로 치닫고 있던 대전지역 회원의 평균연령을 낮추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본격적으로 바닷가 앞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화방에서는 라면, 당구장에서는 짜장면, 바닷가에서는 역시 회다. 다만 가족들과 함께 모인 자리이니만큼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인지에 대해서는 걱정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횟집 사장님은 아이들을 위하여 생선가스라는 훌륭한 대안을 마련해 주셨다. 모름지기 분쟁을 조정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술잔을 나누는 서로의 손길이 분주하게 오갔다. 매번 민변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평소에 그렇게 음주를 하면 버티지 못하는데 민변 회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면 이상하리만큼 쉬이 취하지 않고, 다음날 숙취도 거의 없다. 작년에도 함께 총회에 참석했던 아내는 처음 총회에 동행했던 소회를 밝혔던 글에서 이러한 증상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취기는 진작 가셨지만, 그 밤에 나눈 이야기들은 오랜 숙취처럼 몸에 남아 있습니다. 구석구석 스며들어(500mL 헛개차 같은 약효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위 진단에 동의한다. 총회에서 나누는 술잔은 오히려 보약과 같다. 민변 회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직 변호사로서는 시작점에 서 있는 나에게 비틀거리지 않고 걸어 나갈 힘을 준다. 오랜 시간을 변호사이자 민변 회원으로 살아온 선배님들도 고민과 어려움 자체를 마술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비법을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민을 떠안고 묵묵히 버티며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누군가 민변의 정치성향이나 활동을 언급할 때마다 나는 민변의 회원들은 그저 평범한 생활인이라고 답한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다만 지켜야 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회원들은 지켜야 할 것들을 술잔에 담아 몇 번인지 모를 건배와 함께 몸에 담는다.

취기가 오를 즈음에 식당 앞 해변에 나가니, 간사님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폭죽놀이가 한창이다. 민변 대전충청지부는 거대한 불꽃놀이를 할 정도의 규모와 활동력은 부족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쏘아 올리는 작은 폭죽처럼 꾸준히 각자의 폭죽을 쏘아 올리며 또 다른 한해를 준비할 것이다. 음주는 있었으나 가무는 없었던 민변 대전충청지부의 22번째 정기총회는 그렇게 폭죽 소리, 바다내음, 조용하지만 치열한 고민들, 잔을 부딪치는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저물어 갔다. 다음 날, 나는 숙취를 겪지 않았다.

The post [대전충정지부] 21년의 밤 / 민변 대전충정지부 22차 정기총회 후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목, 2018/08/30- 17:51
70
0

[국제연대위] 유엔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 대응 사무국 활동

 

안녕하세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의 김진2 입니다.

 

국제연대위는 2018년 초부터 유엔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 대응 사무국에 참여하며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7월에는 무려 이틀간에 걸친 대규모 보고대회, ‘인종차별 보고대회: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말하다’를 준비하고 참여했고요.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9월에는 이 보고대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위원회에 제출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난번 국제연대위 소식을 통해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 기억하실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2018년 12월에는 드디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의 협약 내용에 대한 한국 심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민변 국제연대위의 간사이신 장보람 변호사님과, 연대위 위원인 이탁건 변호사님, 그리고 새롭게 민변에 가입하신 김지림 변호사님 등과 함께 12월 3일~4일 양일간 진행된 심의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 제네바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국제연대위의 손영현 변호사님도 대한변호사협회의 소속으로 제네바에 가게 되어서, 현지에서 반가운 만남을 갖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심의는 크게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는 인포멀 미팅(Informal meeting)과 정부가 중심이 되는 정부의 심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첫째 날 오전 10시부터 3시간동안은 인포멀 미팅, 즉 한국 NGO들이 한국의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고, 여기에 대해 위원들이 질의를 하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 사무국에는 한국 상황을 브리핑할 수 있는 시간이 총 35분 주어져 7명의 활동가가 5분씩 발언을 할 수 있었는데요. 사무국은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나눠 한국 맥락에서의 차별 전반을 포함하여 ‘다문화’의 스티그마, 이주노동자와 인종차별, 이주여성과 인종차별, 이주아동과 인종차별, 난민과 인종차별, 그리고 통역 등 난민 및 이주민의 사법접근권 관련 실제 사례 등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이주아동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장보람 변호사님은 이주여성의 상황, 김지림 변호사님은 난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탁건 변호사님이 난민신청자가 실제로 통역의 문제로 큰 불이익을 겪었던 사례를 소개하며 이주민의 사법접근권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어서 위원들은 시민사회 사무국이 제출했던 무려 96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 내용과 사무국의 발표를 듣고 한국 상황과 관련해 궁금한 점들을 질의하는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포멀 미팅 후 잠시 후에는 런치 브리핑이 이어졌습니다. 런치 브리핑은, 모든 위원이 참석해 CERD 의장의 주재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듣는 공식 일정인 인포멀 미팅과는 달리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진행하는 회의인데요. 모든 위원들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알찬 구성으로 위원들의 흥미를 끌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고, 전후로 한국 심의가 계속되어 많은 위원들의 참석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위원들이 참석하였고, 한국 상황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CERD의 한국 심의가 이어졌는데요. 이 시간은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이 먼저 한국 상황과 국가보고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원들이 여기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저희는 이 시간에도 정부 대표단에게 눈빛 공격을 보내며 정부가 어떤 틀린 내용을 전달하는지, 어떻게 내용을 빠뜨리고 전달하는지 감시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몇 차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였고, 저희 사무국은 이러한 내용을 취합해 위원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는데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날카로운 질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용 이상으로 쏟아져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위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할 수도 있고, 바로 답변하지 못하는 내용은 48시간 내 서면으로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국가 보고서와 시민사회가 제출한 보고서, 그리고 현장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2주 안에 최종 견해를 발표하는 것입니다.

 

사실 공식 일정 전에 제네바에서 위원들을 만났을 때에는, 한국 상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것 같고, 저희의 보고서를 다 읽은 것 같지도 않아서 살짝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어영부영 넘어가는 답변에도 불구하고 송곳같이 질문하고, 핵심을 바로 파악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전문가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심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국 담당관 게이 맥두걸 위원의 마지막 발언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지난 (6년 전) 한국의 심의 후, 한국의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주민들은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등록 이주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투명인간이기 대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보건 서비스를 받지 못해도 요청하지 못합니다. 분리 – 이것이 문제입니다.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사람이 국가의 부를 향유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분리되는 것. 바로 인종과 피부색, 민족과 사회계층의 차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네바에 갔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서 한 달 이상 지나 2019년이 왔습니다. 다녀오자마자 국제연대위는 정말 알차고 즐거운(!) 국제인권 워크샵을 진행하였는데요. 국제인권 매커니즘의 활용을 통한 국내 인권옹호 활성화 방안의 모색, 사례 연구, CERD 심의 참여 후기 등이 공유되고 다양한 토론이 진행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참여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안 되어 아쉬웠던 분들을 위해 사진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최종견해의 발표 이후 사무국은 빠르게 권고를 번역해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지금은 이렇게 나온 CERD 권고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는 CERD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정부와 국회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이행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월 22일로 예정된 이 토론회에서는 시민사회 보고서와 CERD의 최종 견해 내용, 그리고 각 정부 부처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 등 알찬 내용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그럼 토론회 일정과 내용이 확정되면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민변과 국제연대위원회의 국제조약 관련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바로 올해 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심의가 있거든요! 이 내용도 또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바로 이어 CERD의 한국 심의가 이어졌는데요. 이 시간은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이 먼저 한국 상황과 국가보고서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원들이 여기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입니다. 저희는 이 시간에도 정부 대표단에게 눈빛 공격을 보내며 정부가 어떤 틀린 내용을 전달하는지, 어떻게 내용을 빠뜨리고 전달하는지 감시했습니다. 실제로 정부는 몇 차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였고, 저희 사무국은 이러한 내용을 취합해 위원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위원들의 질문이 이어졌는데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날카로운 질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내용 이상으로 쏟아져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위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할 수도 있고, 바로 답변하지 못하는 내용은 48시간 내 서면으로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국가 보고서와 시민사회가 제출한 보고서, 그리고 현장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2주 안에 최종 견해를 발표하는 것입니다.

 

사실 공식 일정 전에 제네바에서 위원들을 만났을 때에는, 한국 상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것 같고, 저희의 보고서를 다 읽은 것 같지도 않아서 살짝 실망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어영부영 넘어가는 답변에도 불구하고 송곳같이 질문하고, 핵심을 바로 파악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전문가는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심의 마지막을 장식한 한국 담당관 게이 맥두걸 위원의 마지막 발언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지난 (6년 전) 한국의 심의 후, 한국의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주민들은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사람들입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주민들은 한국에서 공정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등록 이주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투명인간이기 대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보건 서비스를 받지 못해도 요청하지 못합니다. 분리 – 이것이 문제입니다.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사람이 국가의 부를 향유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분리되는 것. 바로 인종과 피부색, 민족과 사회계층의 차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네바에 갔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벌서 한 달 이상 지나 2019년이 왔습니다. 다녀오자마자 국제연대위는 정말 알차고 즐거운(!) 국제인권 워크샵을 진행하였는데요. 국제인권 매커니즘의 활용을 통한 국내 인권옹호 활성화 방안의 모색, 사례 연구, CERD 심의 참여 후기 등이 공유되고 다양한 토론이 진행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참여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안 되어 아쉬웠던 분들을 위해 사진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최종견해의 발표 이후 사무국은 빠르게 권고를 번역해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지금은 이렇게 나온 CERD 권고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는 CERD 권고 이행을 촉구하고, 정부와 국회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이행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월 22일로 예정된 이 토론회에서는 시민사회 보고서와 CERD의 최종 견해 내용, 그리고 각 정부 부처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 등 알찬 내용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그럼 토론회 일정과 내용이 확정되면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민변과 국제연대위원회의 국제조약 관련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바로 올해 또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심의가 있거든요! 이 내용도 또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The post [국제연대위] 유엔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 대응 사무국 활동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9/01/25- 15:28
69
0

교육청소년위원회 활동소식

– 김준우 사무차장

지금부터 교육청소년위원회 최신 3대 뉴스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교육청소년위원회 사무처 담당 간사의 교체

먼저 지난 5월 총회 이후 교육청소년위원회 사무처 담당 간사가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해준 김서정 전 간사가 사무처를 떠나게 되면서. 김준우 사무차장이 담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모르셨겠지만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5월말에 교체가 되었는데, 교육청소년위원회 정기모임에 8월이 돼서야 사무처 담당 간사가 처음으로 회의에 출석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우일신하여 교육청소년위원회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수원대학교 등록금 환불 판결 마침내 대법원에서도 승소!

지난 7월20일 수원대 공과대학, 미술대학, 자연과학대학,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학생들의 청구를 인정하는 판결이 소송제기한지 5년 만에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얼마나 학교가 엉망이었으면 사법부에서도 손해배상을 인정했을까 싶네요. 참고로 수원대는 전국 사립대학 중 4번째로 많은 4000억원 가까운 적립금과 이월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등록금 환원율’이 100%를 상회하는 대부분의 학교와 달리 70% 정도에 그쳤다고 합니다. 당연히 전임교원 확보율도 대학평가 기준에 미달했고, 기타 이사장과 총장의 불투명한 자금운용도 드러났구요. 그러다보니 학교의 설립·경영자인 학교법인뿐만 아니라 이사장과 총장에게도 불법행위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웠습니다.

이 사안에 관해서 더 궁금하시면 7월20일자 민변 교육청소년위 논평8월8일자 경향신문에 기고된 이영기 변호사님의 칼럼을 참조하세요! 어쨌든 이 사안은 우리 사회의 사학 비리가 만연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조종을 울린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함의가 적지 않은 판결입니다. 5년 동안 고생하신 교육청소년위원회 변호사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교육판례비평 발간을 위한 닻을 올린다!

노동위원회에서는 매년 노동판례비평을 발간하는 것처럼,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도 교육판례비평을 내년에 발간하려고 합니다. 책의 목차는 다 나왔는데요. 지난 10여년간 교육개혁에 중요한 시금석이 된 판례들이 모두 망라됩니다. 그런데 단순히 원고를 쓰고 출간하는게 전부가 아닙니다. 판결들을 앞으로 매월 교육청소년위원회 정기모임에서 이번 9월부터 내년 4월까지 같이 공부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성과를 모아서 내년 5월-6월경에 출간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육청소년위원회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회원이면 2018년 9월이 가입하기 딱 좋은 시기입니다. 다음 정기회의는 9월 13일(목) 오후 7시입니다. 또 9월 29일(토) 교육청소년위원회가 남한산성 인근에서 워크샵(당일코스)을 개최한다는 중요한 기밀도 누설해드립니다. 절대 놓치지 마시고, 교육청소년위원회의 문을 어서 두드려 주세요.

The post [교육위] 교육청소년위원회 소식 – 수원대학교 등록금 환불 판결 마침내 대법원에서도 승소 외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08/17- 09:52
6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