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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변호인단, 훗카이도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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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변호인단, 훗카이도를 가다.

익명 (미확인) | 화, 2015/08/25- 17:06

긴급조치 변호단 2차 워크숍

- 강제동원, 홋카이도를 가다

 

 2015년 8월 그 해, 홋카이도의 여름은 뜨거웠다.

 

 <첫째 여정>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 서린 홋카이도, 아직도 서러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 이선경

 

 나에게 있어 홋카이도라는 지역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온천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겨울 관광지로 좋은 장소 정도의 의미만 있었다.

 

그 홋카이도에 강제징용되어 희생된 분들의 유골이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남아있다는 소식도 이번 워크숍 준비 모임에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나는 홋카이도와 우리 민족의 과거사에 대해 무지하고 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던 나에게, 창 밖에 펼쳐진 삿포로의 풍경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반듯하게 정리된 논과 밭 사이에 빨갛고 파란색 지붕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는 한적한 농촌 풍경은, 그곳이 그 끔찍한 강제징용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에 오르자, 이번 워크숍의 가이드 김영환 선생님이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간단히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반환 운동의 경과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1997년부터 시작하여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여러 동아시아 지역의 학자와 시민단체가 모여 10여 차례의 학술대회를 거치면서 공동으로 유골발굴을 해왔고,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평화를 모색하기 위한 활동들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방문할 장소들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현장들이라고 하였다.

16일  삿포로별원 - 강제징용 간담회

 

버스로 한참을 달려 101구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는 본원사 삿포로 별원 납골당에 들어서니 가장 안쪽 구석에 초라한 유골함 3개가 놓여있었다. 본래 일본의 장례절차에 따르면 한 사람의 유골이 하나의 유골함에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삿포로 별원에 101명의 유골이 있으면 총 101개의 유골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1997년도에, 일제시대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노동을 시켰던 지자키 공업의 요청에 따라 삿포로 별원은 무연고 유골이라는 이유로 유골을 모두 합골해 버렸고, 그 때문에 현재 3개의 유골함 안에 101명의 유골이 섞여있다고 하였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최소한의 예우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서글픈 상황들이 담담히 다가왔다. 부디 고국으로 돌아가서 햇볕 잘 드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묵념을 하고 돌아섰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2003년 유골 발굴 당시 발굴된 유골이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근거 중 하나가 유골의 발을 감싸고 있던 발싸개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신발이 아닌 천으로 된 발싸개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일본인이 아니라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임을 확인하였다고 하니, 당시 강제징용 희생자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였는지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16일  삿포로별원 - 납골당 2

 

반가운 소식은 현재까지 홋카이도에 남아있는 미봉환 유골 150구 중(삿포로 별원과 사루후쓰, 비바이 탄광 등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120구가 올해 9월 한국으로 봉환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올해 유골봉환은 9. 11.부터 9. 20.까지 9박 10일 동안 진행되는데,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끌려왔던 3,500km를 되짚어 서울까지 가는 여정이라고 하였다.

 

이번 유골봉환은 역사적인 의미가 큰 행사이므로 당연히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가 주최가 되어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정부와 전혀 관계없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2004. 12. 노무현 정부 때 고이즈미 총리에게 유골봉환을 요청한 이래 정부차원에서 유골봉환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정부가 유골봉환에 의지를 보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부득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유골봉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유골봉환의 최대 걸림돌은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라고 하겠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이 일본 정부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입증할 수많은 자료 앞에서도 끝내, 강제징용은 민간기업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므로 일본 정부는 유골봉환을 비롯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일본 정부만을 탓하고 있을 수 있는지… 힘이 없어 자국민이 이 혹한의 땅에 강제로 끌려와 노예처럼 일하는 것도 막아주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서도 그 유골을 봉환해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의 존재이유일 것인데, 과연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희생자들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둘째 여정>

차별은 조선인만의 몫이 아니었다. 홋카이도의 자연인 아이누를 만나다.

 

- 성춘일

 

8월 17일, 홋카이도 이튿날이 밝았다. 워크숍의 설렘과 고단함을 채 풀기도 전에 오타루 외곽, 해안가에 위치한 청어 잡이 박물관에서 둘째 여정을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을 굽이굽이 두어 번 올라가자 오래된 낡은 집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청어 잡이 어부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며서인지 박물관 내부와 외부에 전시된 물건은 화려하거나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100여년 전 어부들의 소박한 삶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었다. 박물관 옆에는 해안가 절벽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뜰이 펼쳐져 있고 바닷바람에 살랑거리는 풀밭 위, 녹슨 크고 작은 닻과 낡은 고기잡이 도구들이 어부들의 고단한 일상을 전하고 있었다.

 

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부부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입장표를 사서 신발을 벗고 건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데 두터운 가죽장갑과 눈 위에서 신는 신발이 이곳이 겨울왕국임을 실감하게 했다. 남자 성인용 지게, 여자 성인용 지게, 아이들이 메는 지게를 보니 이곳 주민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생계를 위해 청어 잡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층에는 당시 주민들의 의상을 걸어 놓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입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아이누족인 가와무라 켄니치(아이누 이름 : 신리츠 에오리)씨가 운영하고 있는 아이누민속박물관에 도착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 전통복장 입고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박물관은 켄니치씨의 조부가 만든 것으로, 일본 정부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누 아이들의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했다가 현재는 켄니치 씨가 이어 받아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을 알리는 민속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이누들의 배, 의상, 그릇부터 낚시, 사냥도구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켄니치씨는 아이누의 역사, 전통, 풍습 등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어머니’를 뜻하는 아이누의 ‘하루코노’라는 단어는 원래 식량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아버지’는 돈 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한다. 가족의 호칭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녹아 있어 신기했다.

17일  아이누민속박물관 1

 

아이누족은 일본 정부가 금지하기 전까지 연어잡이와 수렵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메이지유신 이후 홋카이도를 점령하더니 홋카이도 전체를 일본 정부의 관할 하에 두면서 아이누족들은 일정한 구역에서만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누들의 생활수단이었던 연어잡이와 수렵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를 다스리기 위해 일본 본토 주민들을 이주시켰다(둔전병으로 근무하는 일본인에게 일정 면적의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어 유인함). 아이누들이 농사를 지으면 홋카이도 땅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였으나,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누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모두 빼앗기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아이누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아이누 전통의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금지했다. 또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족들의 호적에는 출생지역(아이누 거주지역)을 별도로 표기한 결과, 아이누 거주 지역 출신들은 공직 진출을 금지당하거나 교육 기회가 제한되는 등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출신 지역 표기제는 없어져 눈에 보이는 차별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하다고 한다.

 

아이누 사람들은 몇 년 전 일본정부를 상대로 본래 자신들이 주인이었던 홋카이도를 돌려달라고 반환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고 한다. 수렵민족인 아이누들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자연을 소유한다는 인식이 희박했고, 문자도 없었던 탓에 땅에 대한 소유관계를 표시한 공부 자체가 없었다. 고도 문명의 발명품인 글자로 표기된 문서를 가지고 다투는 법적 소송에서 이들의 패배는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억센 모기마저도 정겨워진 숲 속 고겐사에서의 깊은 밤

17일  고겐사2

 

점심을 해결한 후,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슈마리나이 댐 부근에 위치한 고겐사에 도착했다. 고겐사는 현재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의 개최 장소이자 홋카이도 역사교육의 학습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고겐사가 평화교류와 역사교육의 장소로 변모한 것은 1976년 도노히라 요시히코 씨가 고겐사 본당에서 죽은 이들의 이름, 나이, 사망 연원일이 적힌 다량의 위패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위패에는 조선인으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승려로 활동하면서 위패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 도중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학습장 내부 각 벽에는 유골 발굴 작업과 유골 반환을 위한 각종 활동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하면 슈마리나이 댐 공사와 철도 공사로 희생된 이는 210여명 정도인데 그 중 40여명이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전 슈마리나이 댐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오는 시간, 일본 최대의 인공호수인 슈마리나이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제법 매서웠다. 거대한 댐의 수문이 물길을 가로막고 서 있고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탑이 수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탑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 도중 사망한 수백 명의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인데, 정작 탑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희생자들의 이름 대신 ‘순직자 위령탑’이라는 이름과 댐을 건설했던 우류전력 사장 아다치 다다시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자 이 지역 사람들이 우류전력에 이들을 위로하는 위령비라도 세워 줄 것을 요구했는데, 위령비 세울 돈 조차 아까웠던 아다치 다다시는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했던 교각의 기둥을 옮겨와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일본 각지는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까지 강제로 끌려와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사람들에게 위령비 세울 돈조차 아까워했으니 이들이 당시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슈마리나이 댐 공사의 참혹함은 이 공사장 집단합숙소의 이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사람들은 슈마리나이 댐 공사장 근처에 있는 집단합숙소를 어항에 들어간 문어가 다시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이 합숙소에 잡혀 들어간 자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의미로 ‘타코베야(문어방)’라고 불렀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 타코베야는 죽음과 공포의 대명사였다고 한다.

 

저녁식사 후, 고겐사에서 위패가 발견된 후 위패의 주인인 유골 발굴 작업과 한‧일 교류를 통해 수십년 동안 유골 봉환운동을 했던 오노데라 마사미(小野寺正巳)교수님과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으로부터 슈마리나이 공사 현장의 참혹함은 물론 유골 봉환 운동에서의 에피소드 등 유골 봉환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밤이 깊도록 계속 이어졌다.

17일  변호단회의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힘든 몸을 이끌고 고겐사에 도착한 직후부터 슈마리나이 댐, 조선인 유골 매장지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신 오노데라 교수님, 일흔 셋의 연세에도 유골봉환 운동을 계속하고 계신 야마자키 다다시(山崎忠司) 선생님, 누가 알아주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묵묵히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가고 두 분의 모습은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한 잔 한 잔, 비워지는 술잔은 늘어만 간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도.

 

 

<셋째 여정>

새하얀 메밀밭 한 가운데서 굳은 도약을 외치다.

 

- 이동준

 

고겐사(光顯寺) 조릿대 묘표전시관에서의 숙박. 겨울이면 기온이 영하 41도까지 내려간다는 슈마리나이답게 새벽의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

 

일본 남자들은 “매일 아침 나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줘요”라고 청혼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진짜 일본된장국 냄새가 발길을 이끌었다. 모두들 한솥밥을 떠서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면서 돈독한 정을 나누었다.

 

고겐사를 떠나면서 우리는 9월 본국 봉환 예정인 희생자들의 유골을 살피고 위령의 의미를 담아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70여년의 긴 세월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골로 남아있는 희생자들의 원혼을 떠올리니 가슴 한 켠이 아파왔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 편히 잠드실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음 달에 돌아오시는 길 또한 밝혀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8일 아침  유골

 

버스를 달려 슈마리나이(朱鞠內) 호수가에 도착하였다. 동양 최대의 인공호가 보여주는 절경에 감탄사가 나왔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과 세찬 물살이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슬픔을 담은 듯 느껴져서 이내 숙연해졌다.

 

삿포로 시로 이동하는 길에는 광활한 메밀밭이 계속되었다(농업은 홋카이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본의 총 경작 가능한 땅의 4분의 1이 홋카이도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백은의 언덕이라 명명된 사진촬영지 및 시마다야란 회사의 계약 농장터에서 단체사진을 남겼다. 새하얗게 펼쳐진 메밀밭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그들이 가진 풍요로움에 대해 부러운 마음 역시 들었다.

18일  메밀밭2

 

이어서 방문하게 된 곳은 다카도마리의 한 공동묘지였다. 슈마리나이 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카가와시 다카도마리 공동묘지에는 2명의 조선인을 포함한 5명의 피해자가 묻혀 있었고 그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 외에도 더 많은 희생자들이 그 인근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장 추정지 위로 일반인들의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어 발굴 작업이 어렵다고 하여 몹시 안타까웠다.

 

이어서 이치조지(一乘寺)와 부설 다도시(多度志) 보육원을 방문하였다. 보육원은 이치조지의 주지스님이 서양식 어린이집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모델이었는데, 서양식 종탑과 일본 특유의 견고하고 단정한 목재구조의 건물이 인상적이었고,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는 발길을 돌리기 어렵게 하였다. 벽면에는 매해 어린이들의 졸업 작품으로 공동 제작된다는 대형 판화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많이 인상적이었는지 보육원을 떠난 뒤에도 동심을 가득 담은 어린이들 특유의 그림체가 자꾸만 머리에 남았다.

 

강제징용이 이루어지던 시절엔 하루가 걸려도 당도하지 못하던 길을 이제는 반나절이면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우리의 문명은 그 외관(外觀)이 눈부시게 진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內面)은, 특히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도 일본도 야만(野蠻)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꾸만 과거로 회기하려 하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야만과 대치해야하는 작금의 현실에 맞서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하고 마침내는 승리할 것을 다짐한다.

 

변호사는 단순히 “타인의 송사(訟事)”만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대리하면서 몇 배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워크숍은 보고 듣고 느끼는 시간을 거쳐 우리가 힘이 되어드리고자 하는 그분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고 듣고 느껴서 담은만큼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변호단이 “일시적인” 부침을 겪고 있는 지금, 단단히 심신을 다잡고 도약할 수 있게끔 해주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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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 2017. 6. 2. 6. 6. 베트남 현지조사

권민지

  • 이번 베트남 현지조사는 국제연대위원회 산하 아시아인권팀과 과거사청산위원회가 함께 진행했습니다.

사진

2017. 6. 2. 기분좋은 금요일, 출근용 가방을 얹은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습니다.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이하 ‘T/F’) 소속 회원 6명은 6. 2. ∼ 6. 6. 베트남 다낭 인근 지역으로 현지조사를 다녀왔습니다.

2017. 4. T/F가 인준되기 전부터 2015. 7.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했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베트남 전쟁 연구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져왔습니다. 2017. 3.에는 그동안 수집한 국내·외 자료를 정리, 확인하고 추후 활동계획을 논의하는 등 중간점검을 위한 1박 2일 워크숍을 열기도 했습니다. 1년이 넘도록 모임을 지킨 구성원간 신뢰는 모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베트남에게 베트남 전쟁은 위대한 승리의 기억입니다. 전쟁 도중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승자의 아량으로 패자인 한국군을 용서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베트남의 전쟁 신화(베트남 공산주의 혁명의 완성)는 한국에 이르러서는 한강의 기적을 견인한 전쟁 특수(소위 ‘베트남 특수’)로 번역됩니다. 그 틈 어딘가에 한국군에 의한 참혹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현지조사는 한국군 해병대 청룡여단이 주둔하였던 베트남 꽝남성 소재 퐁니·퐁넛마을과 하미마을에서 1968. 2.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생존자 일부를 인터뷰하고 위령비, 학살 현장 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현지조사의 효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하여 출국 전에 그동안 취득한 관련 자료를 다시 확인하는 한편 오랜 시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를 연구하고 활동해온 구수정 박사(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와 협업하여 인터뷰 가능한 학살 생존자를 섭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6. 2. 저녁 비행기로 다낭 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날인 6. 3. 오전 퐁니·퐁넛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57세, 당시 7세)(이하 존칭, 경어 생략)을 인터뷰하였고, 오후에는 퐁니·퐁넛학살 현장을 둘러본 다음 마을에 거주하는 응우옌 티 르엉으로부터 응우옌 티 탄의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들었습니다. 6. 4. ∼ 6. 5.에는 하미마을 위령비 참배를 시작으로 하미학살 생존자 응우옌 꺼이(72세, 당시 22세), 쯔엉 티 투(79세, 당시 29세), 응우옌 티 홍(63세, 당시 13세), 당 티 코아(55세 추정, 당시 5세)를 각 인터뷰하였습니다.

인터뷰는 약 2시간씩 이루어졌고, 한국말에 능숙한 베트남인 통역사의 도움으로 인터뷰이와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만난 응우옌 티 탄은 2015. 4. 평화박물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한, 학살 진상규명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국 시민단체 등과 오래전부터 관계맺어온 학살 생존자입니다. 그의 경우 기존 미디어 인터뷰 자료 등을 확인할 수 있었고, 퐁니·퐁넛학살의 경우 학살 직후 작성된 미군 조사보고서가 존재하여 증거자료가 비교적 풍부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상세한 질문지를 작성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

한편, 하미학살 생존자들은 구수정 박사의 소개로 처음 접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각 개인의 구체적 학살 경험사실을 인터뷰를 통하여 처음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하미마을은 집성촌이었던 까닭에 생존자 대부분은 직계가족 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이 몰살당한 기억을 갖고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자신의 아들, 딸을 잃은 쯔엉 티 투는 당시 입은 부상 때문에 오른 발을 절단하고 40여년을 살아왔습니다. 그가 한국군이 불지른 집에서 간신히 끌고 나온, 당시 신생아였던 딸(우옌 티 러이)은 이제 중년 여성이 되어 어머니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당 티 코아는 할머니, 어머니, 언니, 동생 둘을 잃고 전쟁고아로 떠돌며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미마을에서 한국군이 학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불도저로 시신들을 훼손하기까지 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파월한국군 전사(戰史) 해당부분에 의하면 당시 하미마을 인근에 주둔한 청룡여단 소속 중대 중에는 공병중대도 있었습니다.

위에서 저는 끔찍한 살육을 경험한 이들의 고통을 지극히 단편적으로 묘사하였을 뿐입니다. 베트남 정부는 여러 원인(베트남 정치체제의 특성, 한국과 베트남간 긴밀한 경제적 협력관계 등)으로 인하여 적극적으로 한국의 사죄 표명을 요구하지 않았고, 또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T/F는 이번 현지조사의 작은 성과를 기반으로 2018. 4.에는 시민법정 개최를, 이후 국가배상소송 제기를 각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과정에서 베트남 현지와 교류하면서 동일한 호흡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고 베트남인 학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여야 합니다.

화, 2017/06/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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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부 소식

 

신지현 변호사 (울산지부 사무국장)

 

▶ 2019. 1. 1.자로 김태엽변호사가 신입회원으로 가입을 하였습니다.

 

▶ 본부 회장단과 울산 지부 회원 간의 만남

2018. 10. 30. 오후 5시경 울산 남구 옥동에 위치한 가꾸상에서 본부 회장단(회장, 사무총장, 간사 등)과 울산 지부 회장단 및 회원들간의 만남이 있었고, 울산지방변호사회 신면주 회장님도 본부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함께 참석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겸한 자리에서 향후 본부와 울산 지부 간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윤종오 전 울산북구청장 구상금 면제 청원 관련 기자회견 참석 및 의견서 제출

윤종오 전 울산북구청장은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으로 코스트코가 울산에 입점하기 위한 허가를 반려하였고, 이에 대하여 코스트코 측이 울산 북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였음, 북구청이 코스트코 측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후 윤종오 전 구청장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약 4억원에 이르는 구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된 후 윤종오 전 구청장 개인 재산에 대한 압류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음, 이에 대하여 지방차지법에 따른 면제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의견서 요청이 울산지부에 접수되어, 장석대 변호사가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2018. 11. 19. 진행된 기자회견에 장석대, 정기호 변호사가 참석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장석대 변호사가 대책회의에 결합하여 법률검토 등 여러 사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양승태 사법농단 울산시국회의 1인 시위 참여

2018. 12. 7. 정기호 변호사님이 큰 추위에도 불구하고 법원 앞에서 진행 된 1인 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울산지부 송년모임 개최

2018. 12. 10. 울산지부 송년모임을 개최하여 회장단 이임식과 신입 회원 환영회를 함께 하였습니다.

▶신임 집행부 구성

2019. 1. 1.부터 지부장 설창환 변호사(연수원 30기), 부지부장 한정희 변호사(연수원 34기), 사무국장 신지현 변호사(연수원 36기)로 새롭게 집행부를 구성하고 활동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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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1/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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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1년여간 민변 부산지부에는 젊은 피가 넉넉히 수혈되었습니다. 제가 가입했던 2015년 초만 하더라도 청년 변호사의 신입회원 가입은 아주 간간이 있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리하여 2017년 11월 말경 부산지부 권혁근 회장님 이하 선배 변호사님들께서는 신입 청변 회원들의 순조로운 민변 적응을 위한 “신입회원과의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산지부의 경우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점심에 월례회가 열리지만 신입회원이 민변에 더욱 잘 적응하도록 하려는 선배님들의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신입회원과의 만남은 민변가입 2년 미만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당시 가입기간이 1년 10개월 정도였던 저도 가까스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신입회원과의 만남에는 20여명의 변호사님이 참석하였는데 청변 회원이 많아졌음을 피부로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고간 다양한 의견들은 민변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 2017년 8월경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한 기결수로부터 민변부산지부를 수신인으로 한 통의 편지가 배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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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인즉 구치소 내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는데 이에 상당한 처치를 받지 못하고 주말 내내 방치되었으며 월요일에 되어서야 응급실로 가게 되었지만 마비증세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시간을 내어 접견을 하였는데 처음 접견하였을 때에는 왼쪽팔다리가 거의 마비되어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말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구치소 측에 휠체어를 요청하였으나 휠체어는 골절환자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여 마비된 왼쪽다리를 질질 끌며 힘든 걸음을 겨우 걷고 있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더 접견을 하였는데 오른쪽 부위까지 마비증세를 보이고 안면부도 더 불편해졌는지 의사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등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었으며 그나마 휠체어 지원은 받고 있었습니다. 뇌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은 질병은 촌각을 다투기 때문에 시급한 응급처치가 필수적인데 토요일에 쓰러진 뒤 월요일이 되어서야 응급실로 실려 간 부분에 있어 구치소 측의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보아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기로 하고 민변이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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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수감자는 신체마비로 인해 형집행정지를 받았고 현재 이 소송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언론매체를 통해 춘천소년원에서 체중이 40kg이나 빠진 대장암3기 재소자에 변비 진단을 해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감시설 의료지원 체계의 허술함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우연히 다른 매체에서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던 한 재소자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의무실에 사람이 없다며 18시간을 방치하는 바람에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현재 진행 중인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사안과 매우 유사한 사건의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해당 수감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치소나 교도소등의 수감시설 내 의료지원 체계의 구조적인 미흡함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 지원하고 있는 손해배상청구 사건이 의뢰인 개인적인 피해회복뿐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데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 2018/01/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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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습니다. 이 글은 사법위원회를 함께하실 미래의 위원님을 모시기 위해 보내는 열렬한 초대장입니다. 오세요, 얼른 오세요. 사법위원회의 문은 활짝 열려있습니다. 제도개혁에 관심 있으신 변호사님이라면 두려워말고 꼭 오셨으면 합니다.

무조건 오시라고 당기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사법위의 올 한해를 소개해드립니다.
2017년 올해의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적폐청산’이었습니다. 적폐청산은 한편으로는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아직 미치지 못하는 각종 사회 조직과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부패한 인적 구성원들에 대한 법적 단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법위는 여기에 어떠한 내용의 개선이어야 하는가,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토론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올 해 초인 3월경 사법위원회는 검찰개혁이슈리포트를 통해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조정, 법무부탈검찰화, 재정신청사건 확대 등 민변의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였습니다. 그 중 특히 공수처 설치 문제와 검경수사권조정의 문제의 경우 실질적인 수사실무의 관행이나, 경찰 조직에 대한 이해와 신뢰의 문제 등 여러 현안이 겹쳐져 있어서 보다 다각도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이에 사법위는 10월, 경찰대 출신으로서 경찰 실무경험을 가지고 계신 경남대 법학과 유주성 교수를 모시고 의견을 청취하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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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위는 미래의 위원님과 아래의 일들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사법위원회는 2018년을 맞아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적폐청산’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슈인 검찰개혁, 법무부 탈검찰화, 검경수사권조정, 경찰개혁, 공수처 설치, 법원개혁, 법조일원화에 따라 도입된 로스쿨제도, 개헌 등 온갖 제도개선의 필요성 등의 문제가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민변 사법위 위원님들께서 각 단위별 위원회에 참여하고 계시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실제 제도개선을 위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개혁의 과업이란 사람 몇 명 바꾸는 것이나 조직 하나를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기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메타적인 시선이 강력하게 요구됩니다. 사법위원회는 민변의 다른 위원회도 물론 그렇지만 사법개혁에 대해 오랜기간 고민하고 공부하신 선배 변호사님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가까이서 듣고, 배울 수 있습니다.

사법개혁에 관해서라면 민변 사법위원회에서의 논의가 언제나 최신이며 최고이고 최선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어, 그러면 난 잘 모르는데 위원회 활동을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참여의 마음은 있지만 왠지 겁이 나시는 변호사님을 위해 단란한 사법위 사진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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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자랑은 선후배 변호사의 연차 고하 막론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법위는 현재 위원 구성으로 본다면 표준분포가 큰 위원회이지만 어느 위원회보다도 가장 동등하고 평등한 발언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사법개혁은 인권을 수호하고,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며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 법치주의 작동을 현실화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논의의 흐름을 알지 못하더라도 전혀 사법위에 오셔서 말씀하시는데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언제나 활력을 주고, 더 사회에 적합한 논의를 심화시키는데 이롭기 때문입니다.

 

목, 2017/12/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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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추운 겨울이 지나고 어느 틈인가 따뜻한 봄날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봄을 맞아 민변 아동위도 더욱 성장하고,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아동위는 위원들이 크게 늘었고, 위원들마다 가지고 있는 꿈도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채 품고 있는 희망들도 있습니다. 겨우내 지켜온 생명을 새롭게 터뜨리는 나무들처럼, 추운 시간과 싸워온 희망들이 만개하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추운 시간을 참고 견뎌온 것이 아니라 쉼없이 싸우며 달려 온 아동위의 지난 활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2018년 워크샵 (2018.4.6.-4.7. 경기도 양평)

  아동위는 지난 2018.4.6. 부터 4.7.까지 양일간 경기도 양평에서 아동위 역사상 최다 인원이 참석한 2018년도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이 날 지난 5년간 아동위를 이끌어 오신 전설의 김수정 위원장님의 은퇴식을 진행하였고 앞으로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가실 소라미 위원장님 및 신임 집행부를 맞이하였습니다. 또한 기존의 2팀에서 4팀으로 팀체제을 새롭게 개편하였고, 새로 들어온 신입회원들을 환영하는 자리도 가졌습니다. 올 한해 더욱 활발한 아동위 활동을 기대하면서 밤 새는 줄 모르고 동트는 새벽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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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연대활동

  아동위가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6월 지방선거까지 청소년 참정권의 보장을 위해 지난 2018.3.21.부터 여의도 국회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동위 소속 위원들도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고, 국회 앞 1인 시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4.24.에는 국회 앞에서 릴레이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당당하게 권리를 쟁취하려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아동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이자 시민 동료로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배웠습니다. 하지만 국회 일정 상 이제는 6월 지방선거 전까지 선거연령을 조정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안타깝지만 오는 2018.5.3.에는 오늘 뿌린 씨앗이 어느 날 문득 싹을 틔울 것을 기대하며 농성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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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편적 출생신고와 베이비박스에 관한 세미나

  지난 2018.4.18.에는 민변 4회의실에서 송진성 위원이 ‘아동권리보장의 측변에서 바라본 현행 출생신고제도의 문제점 및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의 도입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현행 출생신고 제도가 제한된 신고의무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아동의 ‘출생 후 즉시 등록될 권리’가 침해되는 사례를 검토했고, 이를 바탕으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의 도입이 왜 필요한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신수경 위원이 ‘언론을 통해 본 베이비박스 논란과 현행법상 문제’라는 주제로 발제하여 아동유기를 조장하여 아동을 더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는 것은 아닌지 논의하고, 미혼모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복지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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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친목도모

  아동위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친목활동을 통해 더욱 끈끈한 팀워크를 다져왔고, 올해는 회원팀을 별도로 신설하여 신입위원의 적응을 돕고, 기존위원들도 평생동료를 찾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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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훠궈 번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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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월례회 뒷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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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농성 후 뒷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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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신입회원 환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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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월례회 및 세미나 후 뒷풀이>

목, 2018/05/0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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