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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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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익명 (미확인) | 수, 2015/08/19- 11:47
요약문: 
네티즌 입 막는 방심위의 사이버명예훼손심의규정 개정시도, 막아야 합니다. 네티즌 선언에 함께 해 주십시오.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에 반대하는 네티즌 선언

 

네티즌 입 막는 방심위의 사이버명예훼손심의규정 개정시도, 막아야 합니다. 네티즌 선언에 함께 해 주십시오.

발표일자: 
2015/08/19
방심위 심의규정 개정 반대 네티즌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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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건 변호사가 15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출소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였다. 한국은 아직까지 순수 민간 대체복무가 허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에서 매년 수감되는 병역거부자는 수백 명 규모로, 이들 중 대부분은 젊은 청년들이다. 한국은 전 세계 다른 나라에 수감된 병역거부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다. 대부분은 종교나 평화주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다.

변호사 자격 박탈로까지 이어졌던 부당한 유죄판결로 백종건 변호사가 겪어야 했던,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가 겪어야 할 어려움은 무엇일까? 또, 그럼에도 그가 변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백종건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시민으로서 제 의무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고, 모든 형태의 군사주의에 반대해요. 그건 제가 받아 온 신앙 교육 안에 깊이 새겨져 있는 가치에요. 한국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은 집총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대개는 사상, 양심, 종교나 신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의 모습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의 모습

아직까지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병역거부자들은 살인자, 성범죄자 등과 같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 신앙은 제게 매우 부당한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저에겐 징역 18개월이 선고됐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등록을 취소했죠. 지금 저는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전처럼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할 수 없어서 지금은 마음으로만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이 전과자를 뽑지 않아서 많은 병역거부자들은 사실상 이중으로 처벌받는 셈이나 다름없어요.

2008년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어요. ‘어차피 변호사 등록이 취소될 텐데 그걸 알면서 왜 시험을 준비하느냐’고들 물었죠. 저는 단지 저 때문에만 변호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제가 아끼는 다른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제가 있던 서울남부구치소로 병역거부자들이 계속 들어왔어요. 그걸 보는 게 참 괴로웠어요. 그래도 병역거부자들은 꾸준히 들어왔죠. 정부가 민간 대체복무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계속 외면한다면 제 조카와 동생도 저처럼 감옥에 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우리의 절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근 하급심 판사들이 무죄 판결로 병역거부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 문제가 부각되고 있고 이 같은 판결이 정부에게 압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종건 변호사가 7살 때 모습

백종건 변호사가 7살 때 모습.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혔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가족 중 세 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다.

한국의 병역제도가 제 가족과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출소했던 5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고 변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바뀐 것이 없어요. 지금도 병역거부자들은 한 명, 한 명 살인자, 성범죄자 등과 같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병역제도가 제 가족과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오래도록 범법자 취급을 당해왔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물러서지 않는 것이 저에게 중요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제 변호사 자격을 회복시켜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재등록 신청도 했습니다. 작은 승리일지 몰라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제 역할을 다하려면 이런 작은 일들부터 시작해야겠죠.

수, 2017/10/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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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오리팍 간사


오리오리팍 간사가 전하는 앰네스티 사무국 3월 소식


#1. 뜨거웠던 탄핵 찬/반 집회의 목격자

헌재의 탄핵 결정 날짜가 다가오자 ‘탄기국’ 집회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안국역사거리에 자리한 사무처의 지리적 위치 덕에 직원들은 며칠동안 군가와 애국가를 ‘노동요’ 삼으며 일해야만했습니다. 초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동요가 너무 크고 웅장해서 노동을 하기는 힘든 환경이었지만요.

탄핵 심판 결정일 하루 전, 사무국 입구 앞에는 차벽이 설치되고, 이를 가운데 두고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탄핵 결정이 나는 그 순간, 사무처에서는 환호와 분노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망사고에 이르도록 집회가 격화된 그 안타까운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D-day 안국역 사거리

국제앰네스티는 탄핵에 대한 입장은 없지만, 평화적인 집회시위의 자유는 시민들의 온당한 권리라는 점에서 촛불집회를 인상적으로 지켜봐왔습니다. 그리고 큰 걸개로 시민의 권리를 응원했습니다.

‘촛불 한 자루’ 걸개. 설치한 직원은 그 날 앓아누웠다는..



#2. 집회시위를 둘러싼 경찰/시민단체의 뜨거운 토론 주최자

2016 팬톤 컬러로 멋을 낸 콘퍼런스 포스터

한국지부는 집회시위에서의 경찰력 사용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캠페인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활동 외에도 자체적인 조사와 연구에 더불어 경찰ㆍ국회의원ㆍ학계ㆍ시민단체 전문가로 구성된 논의구조를 만들어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3월 24일에는 그 결실로 국회에서 ‘평화적 집회 보장’을 위한 국제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스웨덴의 현직 경찰과 앰네스티 네덜란드 지부의 경찰력 담당자가 평화 집회 촉진을 위한 그들의 생생한 경험을 들려주었고, 한국의 경찰 측에서도 토론자와 청중으로 적지 않은 수의 인원이 참석하여 경찰의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국회 안행위 소속의 표창원 의원은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참석해 <그것이 알고 싶다> 톤으로 명료한 토론을 진행해주었어요. 경찰대 교수 출신으로서 다른 현직 경찰대 교수의 발제를 비판했던 토론은 이날의 주요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시민단체ㆍ학계ㆍ경찰까지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전문가와 당사자들인지라 날선 논쟁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모두 “평화적인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하나의 대명제에 동의하고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그 방향을 계속 고민해나갈 것이란 점을 공유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기념사진 같이 찍자고 할 걸.. 다음엔 회식 같이 해요.


#3. 두근두근 정기총회

지부의 가장 큰 행사! 운영회원들이 모여 지난해 사업과 예산을 정리하고, 2017년의 방향을 승인하는 정기총회도 무사히 끝났습니다.

어떤 행사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총회를 치르고 나면 앰네스티 사무국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돌아보게 됩니다. 토론만 하는 행사에, 이렇게 좋은 날씨에, 그것도 주말에, 하루 종일, 시간을 내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회원의 모습에서 앰네스티 운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토요일 출근이라고 툴툴된 거 반성..) 그 열정의 힘으로 오늘도 사무국이 굴러갑니다. 앰네스티 회원님들 리스펙트!

끝났다!!!!


#4. 율곡로의 봄

그리고 마침내 율곡로에도 봄이 왔어요!

삼청동 감성 폭발 화분

점심시간에 직원들은 삼청동 돌담길 산책을 하는데요, 산책길에 작고 알록달록한 들꽃들이 속속 피기 시작했어요.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바로 그 도깨비집과 주인공의 걸었던 돌담길이 모두 사무실 근처에 있더라구요. 그런데 정작 많은 직원들이 화제의 드라마 <도깨비>를 본방사수하지 않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언제나 “꺼지지 않는 촛불 타령”하는 바람에 촛불을 꺼야 등장하는 도깨비는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슬픈 사실(…)

로맨스에는 너무나도 취약한 앰네스티..

벚꽃 뒤 수줍은 종로경찰서

그리고 사무실 북쪽 창문을 통해 보이는 청와대와 인왕산에도 드디어 초록빛깔이 드리웁니다. 저 곳에도 곧 봄이 오겠죠?


# 마무리

끝으로 3월 31일, 전 대통령의 구속이 결정된 그날 일어난 사소한 에피소드를 전하며 3월 소식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재소자 인권에 더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기대합니다. >_<


오리오리팍 간사

이상 저는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사무실의 오리오리팍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금, 2017/04/0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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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어제(10일) 전체회의를 열어 인터넷 명예훼손 글에 대하여 제3자 신고 및 방심위 직권으로도 심의개시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그간 다수의 국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개정안이 지지 세력을 가진 공인들의 인터넷상 비판여론을 손쉽게 차단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높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방심위의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 강행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공동 논평

발표일자: 
201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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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12/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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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정치적으로 개방되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쿠바 활동을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아, 쿠바사람들이 겪고 있는 인권문제를 만화로 엮었습니다.

3화 카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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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쿠바, 아바나 카를로스는 어릴 적, 정보 기관에 지원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뛰어난 신체적 능력 때문이었다. 수년간, 카를로스의 임무는 다양한 직장에 잠입해서 동료들을 감시하고 그들의 동향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카를로스가 하는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가까운 가족 뿐이었다. 카를로스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용의자", "위험인물", "반사회적 인물" 혹은 "믿을 수 없는 자" 등의 동태를 당국에 보고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카를로스는 자신이 보고한 내용 때문에 많은 친구들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를로스는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망쳐버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혁명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탄압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카를로스는 반정부단체 활동에 참여하려 했다. 카를로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정보 기관이 모든 조직에 잡입해있다는 것을 알았다. 카를로스는 감옥에 갇히게 되기 전에 쿠바를 떠나는 위험을 무릅쓰기로 마음먹었다


국가정보요원인 카를로스가 맡은 임무는 여러 회사에 잠입해 동료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일이었습니다. 몇 년 후, 카를로스는 자신의 임무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카를로스는 반정부 단체에 참여하려 했지만, 모든 조직에 국가 정보기관이 잠입해 있는 쿠바에서는 이 또한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카를로스는 감옥에 갇히게 되기 전에 쿠바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 2018/01/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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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문화평론가 손희정님은 ‘꽃할머니’ 심달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까지: 꽃할머니 심달연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MeToo 운동으로 한국 사회가 뜨겁다. 피해 사실에 대한 고발은 고통의 기록이지만,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혁명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현장을 목격하는 흥분 역시 공존한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바로 우리야말로 변화의 주체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상징적이게도 3.8 여성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이를 축하하며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쌓아온 선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오늘 기억하고 싶은 인물은 ‘꽃할머니 심달연’이다. 이전에도 꽃으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꽃할머니’라고 불리는 심달연의 존재를 몰랐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오랜 시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은 권효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2012)을 보고 나서였다.

다큐멘터리는 2007년 한국, 중국, 일본의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으로 완성해 각 나라에서 동시 출판하기로 했던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를 따라간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림책 작가 권윤덕은 위안부 피해 여성 심달연의 증언을 그림책에 담기로 한다. 권윤덕은 의미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지만, 작업은 생각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책 작업을 방해한 것은 여러 가지였다. 무엇보다 13살에 일본군에 의해 강제 연행된 꽃할머니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작가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묻어놓은 상처를 꺼내어 고스란히 대면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권윤덕은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 약탈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닌 가부장제가 조장하는 여성 폭력의 문제로 그려야 한다는 고민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남성 동료 작가들의 반발에 부딪힌다.

예컨대 남성 작가들은 왜 권윤덕이 그림책에서 욱일승천기를 강조하지 않는지 답답해한다. 민족주의적으로 더 선정적인 재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의한 조선 침탈이라는 비극적 역사의 소산이고 이는 재차 강조되어도 부족함이 없다. 일본이 전쟁 범죄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일본의 침탈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가 보여주는 것처럼 피해 여성들의 고통은 위안소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을 역사와 사회에서 배제하여 지워버린 것은 해방 이후 한국의 가부장제와 국가권력이었다. 권윤덕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역사를 ‘일본’의 문제로만 국한시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전쟁 범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문제는 책의 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역사 인식은 치열한 정치공방의 장이 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둘러싼 여론은 악화되었다.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일본 쪽 출판사에서는 책의 출간을 무기한 연기해버린다. 결국 책은 2010년 중국과 한국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일본판은 2018년에도 여전히 미출간 상태다. 다큐멘터리는 ‘평화그림책 프로젝트’를 따라가면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심달연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심달연 할머니를 떠올린 것은 끊어지지 않는 기록을 통해 가능해지는 기억의 연결 때문이었다. 심달연은 용기 있는 증언으로서 침묵을 깨고 일제가 자행한 전쟁 범죄와 만행을 기록하고 그리하여 기억할 수 있게 했다. 그 기억을 권윤덕은 그림책의 형식으로 재기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사실의 복기나 지워졌던 존재의 복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아주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지금/여기의 가부장제 및 식민주의와 싸우는 투쟁의 과정이 되었다. 그 과정은 또 권효의 <그리고 싶은 것>으로 이어졌다. 잊지 않고 기록하려는 노력 위에 서있는 심달연의 이야기는 그렇게 나에게 도달했다. 마지막으로, 심달연의 ‘꽃그림’은 KBS에서 제작된 위안부 여성에 대한 드라마 <눈길>(2015)의 오프닝 크레딧 배경으로도 사용되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심달연의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 안에 담긴 꺾이지 않는 자기표현의 의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의지를 배워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표현하겠다 생각해 본다.

글. 손희정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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