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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4회 – 문명과 녹색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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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시민포럼 4회 – 문명과 녹색철학

익명 (미확인) | 수, 2015/08/12- 19:06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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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7월 20일 월) 전력정책심의회가 열려 7차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녹색연합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전력정책심의회가 7차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을 보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하나, 7차전력수급기본계획 정부안은 현...
월, 2015/07/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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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희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가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코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월요강좌를 실시합니다. 지난 15일 7번째 강사로 나선 참여연대 공동대표 법인 스님의 강연을 지상중계합니다. 주제는 불교의 생명사상과 생명윤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일, 옳은 일 즐겁게...미워하지 않고 싸우자”

[caption id="attachment_151439" align="aligncenter" width="433" class=" "]ⓒ정대희 ⓒ정대희[/caption]

시민단체를 보면, 대체로 다 굳어 있고 엄숙하고 진지하다. 요즘 제 화두가 “좋은 일, 옳은 하는데 즐겁게 하자”이다.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있어서도 “미워하지 않고 싸우자”이다. 시민운동은 결국 모두가 유익하고자 하는 일이다. 누구나 남의 문제를 지적하기는 쉽다. 평론가가 되기는 쉽다. 하지만 그에 걸 맞는 자기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르게 행동한다고 그르게 행동하는 사람까지 미워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에게 없다. 오늘날 시민운동가들은 “미워하지 않고 싸우기”, “좋은 일, 옳은 일을 즐겁게 하기”를 화두로 삼아야 한다.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 기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천릿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한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낮은 데서 시작해야 한다. 지금 여기, 나부터 즐기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들이 자기 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불교 안에 갇힌 불교 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옳다고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느님이 사랑이란 말이 있다. 문장을 바꿔봐야 한다. 사랑이 하나님으로.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부처님이 말한 것이다. 환경을 나무와 물을 다치게 한다면 인간도 다친다. 사람만 살고자 하면 사람도 살 수 없다. 이것이 성경과 불경이 없더라도 맞는 말이잖아요. 보편적 진리이니까. 이것이 성경이 되고 팔만대장경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진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보편적인 무엇인가 늘 연구하고 공감하고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진영논리가 심각하다. 지역과 종교, 정파에 따라서 편이 나뉘고 편을 든다. 무엇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것인가. 옳은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우리사회가 소통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탈중심주를 말하다

[caption id="attachment_151440"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정대희 ⓒ정대희[/caption]

절에는 승소(僧笑)라는 음식이 있다. 스님 승(僧)에 웃을 소(笑)자를 쓴다. 그 음식이 나오면 스님들이 웃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승소(僧笑)의 대표적인 음식이 인절미와 국수다. 옛날 스승이 비빔국수를 좋아했다. 그런데 한 번은 국수를 삶고 나서 뜨거운 물을 수채 구멍에 생각 없이 버린 적이 있다. 결국 이 일로 천배를 하게 됐다. 이유는 이렇다. 스승이 말하길 뜨거운 물을 수채 구멍에 그냥 부어 버리면 벌레가 죽고 땅에 버리면 미생물 등 흙이 다친 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서는 절대로 뜨거운 물을 그냥 수채 구멍이나 땅에 버리지 않는다. 식혀서 버린다. 나무를 한 그루 벨 대도 산신에게 토신에게 수목신에게 고하고 난 후에 벤다. 불교에선 감정이 있지 않은 모든 생물에게 신의 이름을 붙여준다. 절대적 신성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생명을 단순히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환경이 보존되려면 탈중심주의가 되어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다른 것은 타자화(他者化)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고 도구화하고 수단화하게 된다. 탈중심주의는 일방적으로 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없으면서 서로 연결되고 소통하고 사안에 따라서 임시적인 중심을 갖는 것을 말한다. 환경도 이럴 때 공존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불교에서 생명과 환경은 구조가 아니라 관계로 바라본다. 구조는 어떤 것이 미래에서부터 존재해 이것이 연견된다는 논리다. 관계는 미래에서부터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관개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상하(上下)라는 개념이 있다. 이게 미래에서부터 존재해 관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13평이 아파트가 넓은 집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앞산, 뒷산도 무엇이 있어서 앞이 되고 뒤가 되는 것이다.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緣生法)이란 거다. 연기(緣生)는 여러 가지 조건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생명관은 모든 것에 도움과 협력을 받아서 내 존재가 성립된다는 말한다. 화엄경(불교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경전)에 “한 티끌에 우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신비하고 기적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매우 실증적인 이야기다. 우리 몸을 보자. 단순하게 보지 말자. 우리 몸에 햇볕이 있고 바람이 있고 농부의 땀이 있다. 온갖 미생물이 다 있다. 하나 속에 여럿이 있다. 우주가 담겨져 있다는 게 이런 의미다. “이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틱닛한 스님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다. “한 장의 책에서 흘러가는 흰 구름이 보인다”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하고 흙이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한다. 물은 비가 내려야 하고 구름이 있어야 한다.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하지 말라는 거다. 감정이 있는 “유정물”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하나를 절대화 하고 중심을 삼으면 다른 것을 타자화하고 열등화하게 한다. 심지어 국토도 타자화, 열등화 하게 된다.

“사물이 아니라 바라보는 눈이 변해야”

[caption id="attachment_151442"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정대희 ⓒ정대희[/caption]

그런다면 왜 탈중심주의를 탈피해야 하냐. 이치가 그렇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 일방적 중심주의가 성립 될 수 없다는 거다. 반대로 일방적중심주의가 선다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공존과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화엄경에서는 국토를 세가지로 나뉜다. 부처의 세계와 중생의 세계, 그리고 기세관(器世界). 이 세 가지가 서로 의지하고 관계하고 도우며 살아간다. 예수와 부처가 땅과 물 없이 살 수 있을까. 예수와 부처가 가장 존중하고 받들어야 하는 게 땅이고 물이라는 거다. 예수와 부처는 동경을 받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 예수와 부처도 우리를 공경하고 나무와 풀을 공경해야 한다. 환경생태가 잘 보전되려면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사물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변하는 거다.

여기 호박꽃이 하나 있다. 흔히 사람들이 호박꽃을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예쁘다고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호박꽃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다. 해남에는 해외이주여성들이 많다. 그래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참 다르다. 어떤 할머니는 자기 손자이지만 데리고 다니지 않으려고 한고 또 다른 할머니는 너무 아이를 예뻐한다. 아이는 그대로인데 존귀한 존재인데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 그렇다.

“경운기까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떻게 존재를 올바르게 바꿀 것인가. 돈으로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고마운 관계로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한 번은 음식점에 가서 느낀 것인데,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더라. 서빙하는 아줌마들에게 참 사람들이 함부로 하더라. 서점에 가서도 그렇다. 신사가 인문학 도서를 왕창 사서 계산을 하는데,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이 문제다. 돈이 중심에 가니까 거래 중심이되고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어도 생각의 눈을 도움과 은혜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다르게 보인다. 밥을 만들어주고 날라주는 객관적인 상황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관계가 달라진다. 고맙고 은혜롭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할 수 없다. 좋은 세상이 되려면 나무나 흙이나 미생물들이 고마운 존재로 함부로 하거나 고통을 주거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법구경(法句經)에 모든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이를 견주어 남을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고 되어 있다. 모든 생명이 사람 중심, 동물 중심, 유정물 중심, 자연 중심에서 벗어나 물건까지도 인공적으로 만든 물건까지도 공경해야 한다.

인식의 범위가 학습되고 넓히게 되면 자연과 나무, 햇볕, 미생물까지는 존중할 수 있는데, 하나 더 넓혀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책상, 신발, 옷, 농기구, 기계까지도 존경할 수 있어야 한다. 박노해 시인의 시 중에 ‘경운기’란 제목의 시가 있다. 23년간 경운기를 사용한 사람이 이별의 의식을 치른다. 사과와 배, 막거리로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하며 23년간 고생했다는 말을 한다. 이 시를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경운기라하면 기계로 인공적인 것이어서 폄하는데, 경운기까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경천애인(敬天愛人), 경물(敬物). 이런 것들을 환경운동을 하면서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다.

생태계가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탈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서 서로가 관계해야 한다. 농사를 예로 들어보자. 한 톨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종자를 개량하는 사람, 농사꾼, 농사법을 개발하는 사람, 농수산 유통종사자, 농촌정책을 만드는 정책관, 또 그것을 집행하는 관료와 법을 만드는 국회 등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식량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온전한 협력과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일방적중심주의가 폐쇄되어야 하고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농사를 지을 때는 농부가 중심이 되고 농사에 필요한 다른 것들은 도움을 주는 협력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탈중심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계다. 화엄경에서는 이를 주반(主伴)논리다. 주(主)는 어떤 일을 할 때 일의 성격상 누군가 주가 되라. 반(伴)은 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은 협력해라. 주반은 늘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변화는 거다.

재미와 행복의 관심사를 이동시켜야 하는 이유

[caption id="attachment_151443"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정대희 ⓒ정대희[/caption]

우리사회 모든 문제가 연결과 협력하는 시스템이 좋겠다. 그렇다보면, 정책을 세우고 하는 과정에서 나무나 물, 햇볕 등이 중심이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물이 온전하게 청정해지고 쓰일 수 있도록 인간이 물에게 협력하고 후원하는 반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환경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재미있게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관심의 이동이 필요하다. 음식을 예로 들면, 식욕에 재미를 느껴 고기를 많이 먹다보면, 엄청난 동물의 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관심의 거리를 이동하는 게 필요하다.

환경파괴의 원인을 보자. 타자들을 도구화, 소모화해 자기욕망을 채우는데서 비롯된다. 과도한 욕망이 소비의 질은 떨어뜨리고 소비의 총량을 절제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소유와 소비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럼 또 일을 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그렇다고 소유와 소비를 줄이라고 훈계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 살아가는 재미를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게 해야 한다. 생명을 압박하지 않는 곳으로 시선을 이동시켜야 한다. 감정노동자들에게 뽐내고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하면서 느끼는 일시적인 쾌락. 이거는 기쁨과 행복의 수준이 저질이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겸손하고 사랑하고 상대방을 도우면서 느끼는 이런 기쁨들을 어떤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기보단 무엇을 하지 안하게끔 기쁨을 이동시켜야 한다. 장차 소유와 소비를 줄이고 생명과 생태를 보전할 수 있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수, 2015/06/17-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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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9/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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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경주 갈래?”

어느날 술자리에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국내 여행이 취미인 나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형 근데 신청서를 작성해야 되고 다큐 촬영에 출연도 해야한데” 라는 그의 말과 함께 30km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그런데 30km? 이건 뭐지? ‘

신청서에 있던 경주여행의 주제부터 물음표였다. 30km? 검색을 통해 알아낸 것은, 핵발전으로 인한 방사능 피해에 대비한 주민보호구역, 즉 방사능 비상경계구역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럼 경주에 핵발전소가 있단 말이야?’ 부끄럽게도 나는 이때 경주에 월성1호기라는 원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30년의 수명이 끝났지만 현재는 재가동 되고 있다는 것도. ‘아, 경주를 보호하기 위한 환경 프로젝트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1박2일의 여정에 올랐다.

첫째날, 첨성대, 방독면, 사명감

버스는 곧장 경주 첨성대로 향하고 있었다. 나에게 경주는 중학교때 수학여행을 마지막으로, 불국사만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거의 20년만에 가보는 곳이라 두근두근  떨리기도 했다. 드디어 첨성대에 도착, 조별로 나누어져 촬영을 시작했다. 새로웠다. 내가 첨성대를 보긴 봤었나?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첨성대 주위 고분들과 왕릉들도 내 동공을 확장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주변에 왕릉을 더 구경해 보고 싶었다.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방독면과 보호복을 입고 촬영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메르스 캠페인 하나?” 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광관객이 아니였다. 그 방독면과 보호복 속 나에게는, 경주의 유적들을 보호해야한다는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니 벌써 해는 저편으로 사라지고 그림처럼 둥그런 달이 우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밤중에 첨성대’.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는 건축물이다. 그래서 꼭 밤중에 가보고 싶어 특별히 촬영팀과 밤 중 촬영을 진행했다. 둥근 달, 첨성대, 그리고 방독면. 토요일 밤이여서인가?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상상한 고요하고 어둡고 별이 잘보이는 첨성대는 아니였다. 방독면과 보호복을 입고 좁은 인도에서 약 10분 가량을 가만히 서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사람이가?”, “엄마 나 저거 사진 찍을래”, “이건 뭐지?”하는 사람들의 말들. 순간 나는 방독면을 벗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화, 2015/09/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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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품이 아픈 마을, 청양 강정리 석면마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비오는 날 차안에서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박자 타는 와이퍼 소리와 함께 가슴이 촉촉해질 때 쯤, 청양 강정리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 접한 여기, 충청남도의 작은 마을은 고요하고 안락했으며, 참 예뻤다. 엄마의 가슴처럼 생긴 두 봉우리가 마을을 품고 있었고 높은 야산들의 가로막힘도 없이 제법 확 트인 풍광을 선사했다. 바람이 논 위에서 제법 놀다 갈 거 같은 시원한 경관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을 곳곳에 붙어 있는 빨간색 글씨의 현수막들은 정말이지, 여기랑 어울리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붙어있는 현수막들은 그 느낌이 서울의 그것들과 전혀 다르다. 적막을 깨는 불협화음이랄까. 차를 타고 국도를 지다가다 무심코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속내를 알면 노인들의 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마을회관을 먼저 방문했다,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이 날은 대전지방법원에서 폐기물매립장건설반대 관련한 5차 재판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마을회관은 흡사 지휘본부 같았다. 현수막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과 부엌 벽에는 지도와 그간 활동해 온 사진, 대자보, 일지까지 언제든 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 녹색법률센터 변호사들과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주민들의 간략한 상황 설명 후에 주민대책위원장과 석면광산을 둘러보기로 했다. 광산이라고 하면 사람이 사는 곳과 떨어진 산에 위치해 있는 것이 상식적인데, 여기는 마을의 중간 쯤 위치해 있었다. 심지어 광산에서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을 노인회장의 집이 위치해 있었다. 석면광산의 위치만 봐도 어느 정도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광산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어이없게도 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대책위원장이 말했다.

 

“마을이 가깝다 보니까 석면줄기 폐기물을 파쇄하는 과정에서 비산먼지랑 소음이 엄청나게 발생하는데 바람이 부는 맑은 날에는 마을이 안 보일정도로 뿌옇게 되요. 그럼 저희가 요구를 하죠, ‘최소한 비산먼지 방지대책이라도 좀 세워 달라.’ 그렇게 얘기를 해도 광산 들어가는 길목에 살수 작업하는 게 다예요. 그것도 누가 방문한다고 그러면 하고, 평상시에는 그것조차도 잘 안해요. 오늘은 방문객이 온다는 걸 알았나, 비오는 날 쓸데없이 뿌리고 있네요.”

 

화, 2015/09/0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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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존재로의 무브멘트 살며 사랑하며 춤추며 (살·사·춤 워크샵) 최초의 언어인 몸짓에서 시작해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경유하고 춤으로...
목, 2015/09/1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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