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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라도 북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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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라도 북에 가고 싶어요”

익명 (미확인) | 월, 2015/08/03- 17:55

-김련희 씨 송환 촉구 종교인 기자회견

탈북자가 아닌 탈북자, 간첩이 아닌 간첩 김련희 씨에 대한 종교인들의 ‘송환촉구 기자회견’이 8월 3일(월) 열렸습니다. 뉴스타파가 김련희 씨의 사연을 보도한 뒤 (나를 북으로 보내주오 / 2015년 7월 4일)국정원과 경찰, 통일부 등 정부 당국은 그녀의 송환 촉구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북한 정부도 입을 닫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한국 사회 종교인들이 김련희 씨의 송환을 촉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김련희 씨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 번 절절한 호소를 보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은 죽기 전에 딸 얼굴 단 한 번이라도 보겠다고 아프신 몸으로 지금 악착같이 견뎌 나가고 있고요. 저의 사랑하는 딸은 4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애타게 부르면서 눈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자식을 둔 모든 부모님들께, 모든 어머님들께 간절히 간절히 호소합니다. 제발 생존해계시는 부모님 볼 수 있게, 제 사랑하는 딸을 안을 수 있게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제발 도와주세요.

기자회견장에서는 기자들의 아픈 질문이 나왔습니다. 한 기자는 ‘만약 돌아간다면 북한은 김 씨를 어떻게 대할 거라고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김 씨는 ‘살아서 못 간다면 시체라도 갈 것’이고, ‘북이 처벌하더라도 부모 곁에 묻히면 그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서 못 간다면 죽어서라도 시체라도 갈 겁니다. 끝내 안 보내주면 판문점에서 분신이라도 해서 시체라도 보내 달라고 할 겁니다…(중략)…시체가 무슨 사상이 있어요. 그렇게라도 갈 겁니다. 그리고 북에 가자마자 처음 들어가서 너는 조국을 배신한 배신자다 역적이다 벌을 받아야 한다 해서 그날로 죽는다 해도 내 땅에 묻힐 거잖아요. 내 부모 자식 곁에 묻힐 거잖아요. 그거면 돼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평화통일위원회 목사들을 비롯한 종교인들은 김련희 씨의 조속한 송환을 염원했습니다. 법회스님은 “김련희 씨의 송환을 계기로 남과 북이 교류가 되고, 소통하고 교류하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문대궐 목사(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고문)도 ‘청와대나 국정원이 김련희 씨를 평안하게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외신들의 관심이 컸던 김련희 기자회견

오늘 기자회견에서 특이했던 점은 국내 언론보다 외신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국내 언론은 뉴스타파와 CBS뉴스,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이 전부였는데, 외신은 BBC, 뉴욕타임스, 블룸버그통신, 교토통신 등 유수 언론사들이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탈북자가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는 이 쉽게 보지 못할 장면을 왜 한국의 유수 언론들은 취재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외신들은 중요한 뉴스라고 판단하는 것일까요? 뉴스타파는 현장에 있던 BBC 기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념적으로 한 쪽 방향에 치우친 사람들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북한 정권의 나쁜 점을 전혀 보지 못하는 북한 정권의 친구 같은 서구 사람들도 있고, 한 쪽 면만 보는 미국이나 한국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현실은 그런 견해들보다는 훨씬 복잡합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매우 사악하고 야만적인 체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복합적입니다. BBC나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사들은 그런 복합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따라서 북에서 와서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김련희 씨 경우는, 물론 현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아니겠지만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아마도 어떤 한국 미디어들은 이념적인 눈으로만 사안을 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황의 복합적인 성격에 관심이 있는 외신들 입장에서는 이런 사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 스테판 에반스Stephan Evans 영국 BBC 서울 특파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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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달리기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던 지난해 9월만 해도 한반도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미국과 북한은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평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겠다는 그의 계획은 무모해 보였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해 1만6000km의 유라시아 대륙을 두 다리만으로 달려서 육로로 북한을 가로질러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로 돌아오겠다는 계획 자체도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품기에 충분했다.

거짓말 같았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그가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로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거친 전운의 바람은 가라앉고 따뜻한 평화의 기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씨(61) 얘기다. 지난 15일, 1년 2개월에 걸친 그의 도전은 결국 미완으로 끝났다. 16개국을 지나왔지만 정작 압록강변을 앞에 두고도 북한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동해항으로 들어온 그는 “앞으로 반드시 남겨 놓은 마지막 구간을 달리겠다”고 했다.

마라톤 풀코스에 맞먹는 40~50km의 거리를 매일 달렸던 그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이미 강씨는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부터 뉴욕까지 5200km의 나 홀로 대륙 횡단 마라톤에 성공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전무후무’ 그런 찬사는 어쩌면 의미가 없다. 평범한 한 사람의 개인은 본인의 표현대로 ‘어지간한 철새의 이동 거리보다도 긴 거리’를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작든 크든 변화와 행동을 이끌어냈다.

자신을 ‘러너’라 칭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강명구씨가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그 ‘적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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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평범한 개인이 ‘평화 마라토너’가 되기까지

 

강명구씨는 1957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나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다 1990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샌드위치 가게 점원, 쇼핑몰 계산원, 식당일, 가발 영업 등 안 해 본 일 없이 살았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상을 하며 제법 안정된 삶을 누리기도 했다.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09년이다. 30여 차례 공식 마라톤 완주를 했고 두 차례 50마일 산악마라톤을 달리기도 했다.

2015년 2월 운영하던 식당이 어려워지자 그는 일을 그만두고 느닷없이 짐을 꾸려 미국 대륙 횡단 마라톤에 나섰다. 이민 생활에 지치기도 했고, 다른 인생을 설계하고 싶기도 했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의 갖고 싶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팔순의 노모와 느지막이 결혼한 아내에게도 오랜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혼자서 뛰어야 했기 때문에 텐트와 취사도구, 캠핑 장비와 여벌 옷 등 최소한의 물품을 실을 특수 유모차를 마련했다.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달리는 조깅족들을 위해 생산되는 특수 유모차다. 그냥 뛰는 것만도 어려운데 이 유모차를 끌고 뛰어야 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배터리 충전을 위해 휴대용 태양열 축전 패널도 마련했다.

거기까진 ‘평범한 개인의 일탈’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의 마라톤 기록을 글로 빼곡히 남겨 두었다. ‘마라톤 문학’을 지향하는 문학도이기도 하다. 인터넷 매체 ‘뉴스로’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출발 당시 한 기자가 “美50대한인 ‘나홀로 대륙횡단 마라톤’ 첫 도전”라는 기사를 써 준 것이 가슴에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여정은 ‘아시안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일이 된 것이다. 인터뷰할 때 그는 “올해로 분단 70년이 되었다. 점점 잊혀져 가는 통일이라는 화두를 미 대륙을 가로지르며 남북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일상생활로 끌어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것이 그가 ‘통일마라토너’로서 첫발을 내딛은 계기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해 모하비 사막을 뚫고 로키 산맥과 애팔래치안 산맥을 넘었다. 유모차를 보고 아동 학대를 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기도 했다. 야생 동물에 맞서 등산용 삽 하나를 들고 진땀을 빼기도 했다. 석달만에 뉴욕에 도착하자 다시 또 그 기자가 물었다.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다고 했던 그는 막연하게라도 생각하는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미 대륙보다 큰 유라시아 대륙을 달리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또 새로운 출발의 씨앗이 됐다.

2015년 7월 그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이번에는 유모차 앞에 ‘남북평화통일 전국일주마라톤 1879km’라는 배너를 내걸었다.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임진각으로 올라간 뒤 휴전선을 지나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돌아 전국을 일주했다. 진도 팽목항을 거칠 때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기도 했다. 이후 사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던 경북 성주 소성리 마을을 출발해 서울 광화문까지 뛰는 ‘평화 마라톤 순례’에도 참가했다. 제주 강정마을을 출발해 성주를 거쳐 시청 앞 광장까지 가는 평화 마라톤 행사에도 참가했다.

어느새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통일 마라토너’ ‘평화 마라토너’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의 유라시아 횡단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평화마라토너 강명구와 함께 달리는 유라시아대륙 횡단 평화마라톤 조직위원회’를 만들어 후원을 했다. 30여개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송영길 민주당 의원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도 후원을 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에서도 90여명의 시민들이 후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유라시아 횡단을 시작했던 지난해 9월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막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긴 했지만 여전히 남북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는 그런 기류와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한 인터뷰에서 그저 이렇게 소박한 심정을 밝혔다. “14개월 동안 달리면서 여론을 모으고 재외동포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으면 북한도 나 하나 통과시켜주지 않을까. 북한도 자신들이 평화를 사랑하는 정권임을 알리고 싶어할 것이다.”

 

달리변서 변화하고, 주변도 바뀌었다

 

강명구씨도 본인의 글에 따르면 처음부터 “통일에 대한 열정이나 평화를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심정”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꿈과 희망이 필요했다고 했다. 쉼 없이 달려온 인생에서 큰 세상을 만나보고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싶었다고 했다.

달리면서 그는 변화했고, 또 주변에 변화를 전파했다. 그는 혼자 달렸지만 혼자 달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유라시아 대장정을 출발하면서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알리고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웅변(雄辯)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고통스런 달리는 행위를 통하여 주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미 대륙 횡단을 하면서도 그는 “목청에 힘을 주어 말하는 대신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달리면서 사람들과 더 호소력 있게 소통을 할 수 있다는 하늘의 비밀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고 했다.

유라시아 대륙 횡단 결심에는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강명구씨의 아버지는 실향민이었다. “두고 온 강 대동강은 내 핏줄에 흐르고 있다”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강씨는 “지독한 그리움은 시인에게는 훌륭한 양식이었겠지만 나와 어머니에겐 애정결핍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돌아가시고 난 뒤 지금까지도 화해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마라톤을 통해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 시간을 갖고 싶고, 아버지가 살아서는 가 닿지 못한 대동강에 발을 담그고 싶다고 했다.

하루키는 달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이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강명구씨에게도 그랬다. 누군가에게 통일은 꿈같은 얘기이고 올 수 없는 미래이겠지만, 강명구씨에게 통일은 마라톤 이상으로 험한 길일지라도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훨씬 가까이 느껴지는” 과정일 것이다.

강명구씨는 처음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시작할 때 중국 단둥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압록강은 건널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했다. 신의주와 평양을 거쳐 판문점을 통과해 남으로 내려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바람은 결국 멈춰 설 수밖에 없었지만 언제든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달리기가 기대한 것이 나비효과이다. 그러나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한 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녀린 날갯짓에 수많은 가녀린 나비들이 동조하여 태풍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평화의 나무를 한그루 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심으면 숲을 이룰 터이고 통일은 그 숲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가녀린 날갯짓 한번하고, 나무 한그루 심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사소한 일을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큰 꿈을 꾸는 것이다.” 참조로 그는 오는 12월1일 임진각에 도착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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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 참고자료

[뉴스로]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서울신문] 마라토너 강명구 “헤이그~서울 1만 6000㎞ 혼자 뜁니다”

[주간경향] 유라시아 대륙횡단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통일 염원·인류 최초 마라톤 세계일주 도전

[뉴시스] 美50대한인 ‘나홀로 대륙횡단 마라톤’ 첫 도전

[연합뉴스] 강명구 마라토너 “분단 한반도 혈맥 뚫는 길 계속 달리겠다”

화, 2018/11/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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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래에 관한 논의는 대북 협력 확대를 통한 투자와 비즈니스, 교통망, 전력망, 에너지 협력 등의 증대를 꾀하는 이들과 북한은 아직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국경의 개방을 수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이므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 간의 싸움으로 비화했다.

지난 해 내내 언론은 이렇게 지극히 단편적인 이야기만 해댔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것 너머의 시사를 통찰하는 시민 토론이 거의 붕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미디어의 전략이 꽤 효과적일 수 있었다.

더 이상 한국에서 1970년대 또는 1980년대 인사동 찻집에 모여 금서를 논하던 반대파와 학생들을 찾을 수 없다. NGO 모임의 정기적인 토론은 물론, 가정에서 저녁을 먹으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또는 찻집에서, 정책, 환경 또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던 모습마저 사라졌다. 휴대전화를 통해 유쾌하고 무해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수동적 인구의 일상이 되었다.

언론이 특정 정책을 “진보”로 또는 “보수”로 규정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론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다. 프린스턴 대학교 셸던 월린(Sheldon Wolin) 교수가 언급한 “전도된 전체주의(inverted totalitarianism)”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도된 전체주의란 상업매체나 광고주의 압력 등 숨겨진 힘에 의해 일상적인 이슈에 대한 담론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정치적 상황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독재자 없이도 전체주의적 시스템이 자리잡도록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권력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풍토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10분 이상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기업 미디어는 정보 획득의 장이 되었고, 소셜 미디어는 고양이와 디저트 사진을 보여주거나 이따금씩 기업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선보일 뿐이다.

한국 사회가 공동의 문제에 대한 담론을 잃었다는 것은 우리 미디어가 지역경제의 붕괴, 외국계 투자은행의 과도한 영향력,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미세먼지의 재앙, 미국 내 일부 세력이 꿈꾸는 세계대전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제한된 국내의 담론은 남북관계의 발전이 어떻게 비춰지고, 통일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통일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예컨대,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포옹하는 사진들을 잔뜩 보여주면, 남북이 DMZ 양측에서 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협력했다는 소식, 평양의 번듯한 빌딩이 등장하는 장면 등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내용 자체는 모두 긍정적이다. 다만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단절, 폐쇄된 봉건-사회주의 국가에 살아야 했던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소비사회의 기쁨을 누리고, 훨씬 부유한 남한의 형제자매들처럼 즐기며 살 수 있게 될 것임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낙원은 아니다. 한국은 상당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힘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깊은 소외감을 느끼고, 이는 높은 자살율, 일상적인 자기학대와 타인학대를 초래하고 있다. 탐욕스러운 고용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어렵사리 일을 찾는다 해도 사회에 봉사하고, 고급 훈련을 받거나 진정한 인생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는 커녕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삶의 모든 측면이 이윤을 쫓는 쇼로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이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빈곤과 고립에서 구원하기 위해 제시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전세계적으로 힘을 잃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한국, 유럽에서 1930년대와 1940년대 사회주의의 도전에 맞서 진화한 수정 자본주의는 더욱 탐욕적인 형태로, 1990년대보다는 1890년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후퇴했다. 프랑스의 갈등을 참고하면 이러한 모순이 더욱 뚜렷해, 한국과 다른 나라가 겪게 될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선진 경제”에서 시장은 단조로운 역할만을 하고 있다. 슈퍼 리치 계층은 경제활동을 독점하고, 해당 계층 구성원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빌리고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봉건주의를 확립했다. 반면,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극도로 제한된 고금리 대출만이 허용될 뿐이다. 언론은 이렇게 민간 은행과 자본이 악몽 같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지 않고, 정책 결정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도 모호하다.

언론이 북한에 도입될 거대한 시장경제를 이야기하는 바로 그 순간, 시장경제는 정작 한국, 프랑스 또는 미국에서 소멸하고 있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가 숙고의 연구를 통해 펴낸 저서 “자이언트, 세계 권력의 핵심(Giants: The Global Power Elite)”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슈퍼 리치 계층과 그 조력자들은 이제 서로의 주식을 매입하고, 저금리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그들 만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에 반해 평범한 사람들은 줄어드는 저임금 일자리라도 잡기 위해 잔혹한 경쟁을 계속해야 한다. 이 착취형 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글로벌 기관 투자자의 뜻이 아니라, 그저 하늘의 뜻에 따라) 기술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가 크게 손상될 것이라 전해진다.

그렇다면 언론이 이렇게 저돌적으로 대북 포용과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보도하는 이면에 은밀히 숨기고 있는 이슈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는 누가 무엇에, 왜 돈을 대며, 그로 인해 누가 어떤 이득을 보는 지 등 지저분한 뒷얘기는 하나도 듣지 못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철도가 놓인다면, 북한에서 남한까지 석유 또는 천연가스 수송관이 연결된다면, 그 수송관과 그 석유는 누구 소유인지, 석유를 어떻게 팔 것이며 그 수익금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 수송관을 설치하기 위해 세금이 쓰이는 경우 납세자들도 그 수익금을 일정 부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등을 우리가 아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들이 어떤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지 또는 정부가 북한과 어떤 협상을 진행 중인지에 대해 그야말로 무지하다. 지금 이 시기에는 투명성이 특히 더 중요하다. 광산이나 공장이 정부에 속하는 정부주도형 시스템이 일개 회사 또는 개인이 광산 등 자원에 대한 절대적 통제력을 가지는 자본주도형 시스템으로 변하는 경우에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한과 북한에 더 큰 빈곤, 더 큰 부의 집중을 불러올 수 있다.

어떤 다국적은행, 어떤 국부 펀드가 어떤 조건 하에서 북한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는지 아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투자자들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때 북한 또는 남한 주민들을 보호할 장치는 무엇인지, 서명된 (또는 서명할) 계약서를 대중에 공개할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북한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 있다면 다음의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누가 그 공장에 돈을 대는가? 수익금은 누구에게 가는가? 누가 그 공장을 소유하는가? 그 공장의 노동자들이 가지는 권리는 무엇이며, 이들은 수익금 중 어느 정도를 받게 되는가? 이들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환경에 미치는 공장의 영향력 평가를 위해 어떤 단계들을 수행하는가?

북한은 석탄, 금, 철, 희귀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의 환경 영향성을 평가할 전문지식이 없으므로 전문가와 NGO가 이러한 평가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기구들은 북한 방문 비자 조차 받을 수 없다.

한편,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은 베트남이나 미얀마에서 일어난 일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앞으로 북한도 베트남, 미얀마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기업이 베트남의 국유화 자산을 개발하였을 때 평범한 베트남인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번영하고 있다고만 들었는데, 이것은 정확한 설명인가? 그리고 산업화가 베트남의 환경이나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는 보통 싸게 사서 입고 버리는 옷, 쉽게 소비하는 저렴한 플라스틱, 대수롭지 않게 쓰레기통에 처박는 값싼 스마트폰, 스피커, 선글라스 등에 숨겨진 환경 훼손, 노동자의 피해, 또는 그 밖의 장기적 비용에 대한 토론은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 소비사회 안에서 물건에 숨겨진 진짜 비용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됐다. 이것이야 말로 통일시대의 심각한 문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통해 잊혔던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20~30개의 석탄 발전소를 건립하면, 이는 생태계의 재앙인 동시에 지구 온난화를 부추길 것이며, 이미 위험한 서울의 대기질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말 것이다. 북한이 이윤을 쫓느라 새로 지어지는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 경우, 한국은 그러한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한국 공장들도 북한의 선례를 따를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형편없는 임금과 허술한 환경 보호는 이미 대기오염으로 신음하는 한국 속으로 빠르게 퍼져 나갈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북한 노동자들이 단결권 등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이 모델을 따라 한국 내 근로자들을 착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면 한국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빠졌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 모델에서는 한국인들조차 자유와 행복과 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아니면 현재 투자은행과 기업이 구상 중인 북한 경제개발계획은 애초에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북한을 대상으로도 몽고나 베트남 개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저 수익성을 생각할 뿐,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는 계획을 구상 중인지도 모르겠다.

부의 집중화는 통일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중, 기후변화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전세계적으로 소수의 몇 명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집중화는 법치를 훼손하고, 부패한 미디어의 포장 속에 슈퍼 리치의 사치, 낭비, 화려함을 동경하고 강요하는 문화를 창조한다.

주류 언론의 논조에 따르면, 북한은 가난하고, 남북한 경제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경제용어를 바탕으로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 정착한 북한 사람들 중에는 이 곳 생활의 자기중심성, 경쟁,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상업화와 경쟁하는 문화 대신, 예술과 체조, 글쓰기의 목적 자체를 소중히 하는 문화에 큰 감동을 느낀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설명했듯이, 소수의 손아귀에 더 많은 부가 집중되게 되면 한반도의 분단은 못 먹고 못 사는 북한과 잘 먹고 잘 사는 남한 사이의 분단이 아니라, 남북한의 평범한 시민은 더 가난해지고, 극소수의 선택 받은 자들만 슈퍼 리치가 되는 분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남한과 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격차를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부의 집중으로 인한 경제적 왜곡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런 추세들은 한반도는 이제 매우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 현 상황에서는 북한에서 한강의 기적”을 재현할 가능성은 없음을 시사한다. 앞으로는 물질적인 발전보다 사회 경제적 정의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경제 체계가 보통 사람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미 있는 응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체계에서는 전세계 무역항로를 따라 저렴한 물품 운송 시스템이 장려되고, 지역경제가 흔들리며, 오직 대기업만이 합리적인 금융을 누릴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개방 경제의 실패로 동네 가게, 동네 공장, 동네 약국, 동네 빵집이 무너진 반면, 스타벅스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빵집, 그 밖에 대기업이 진출한 사업들이 번성했다. 대기업들은 값싼 금융을 이용해 수년간 엄청난 손실을 감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비즈니스를 몰아낸다.

그런데 이러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장기 고용이나 적절한 퇴직과 건강보험 혜택을 보장받지 못한다. 직원들은 경영과 금융에 대한 의사결정에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고, 일하고 있는 지점을 소유할 권리도 없다.

한때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파산의 위기에 몰리는 소규모 가게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이런 경제학을 북한에 도입할 작정이라면, 북한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거절해야 한다. 북한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20년 뒤 또는 50년 뒤 국가로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이지, 당장 비디오게임이나 K-Pop 아이돌을 소개해 주민들을 열광시키는 게 아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통일의 궁극적인 의미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모호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통일을 1990년 독일의 통일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외국인들과 소주 한잔 하며 수다라도 떠는 날엔 이 꿈 같은 비교가 단골손님이다. 언제나 동독은 서독의 경제발전을 따라갈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고, 통일 후 동독 사람들의 삶이 좋아졌으며, 그 결과 독일은 더욱 번영하는 강대국이 되었다는 게 그 줄거리다. 한국도 독일처럼 통일의 이점을 누릴 수 있지만, 서독과 동독은 한국과 북한만큼 소득과 산업개발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바, 한국의 통일은 더 오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소득 및 산업개발 격차는 긴 통일의 과정 중에 북한의 노동자를 싼 값에 착취하는 한국기업 및 다국적기업의 변명으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가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전문 기술을 축적하거나 임금을 저축하지 못한다면, 해당 과정은 북한 주민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보다는 모든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북한 노동자가 적은 월급을 벌어 패스트푸드나 휴대전화에 낭비하게 된다면, 이들의 삶은 더 나빠질 뿐이다.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지난 수십년간 상대적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강의 기적”, 그 중에서도 “기적”이라는 말에 가려져 있다. 한국의 번영은 여러 모순의 종합이지만 기적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부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급격한 산업화계획의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그 급격한 산업화로 한국은 화석 연료와 수입 농산물에 너무 의존하게 되었고 산업화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다만 그의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점 하나는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 개발 모델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모든 시민이 마치 거대한 군대의 일부인 듯 국가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산업화로 갈 수 있었던 비결은 외국계 은행과 대기업에서 자본의 통제권을 빼앗아, 정부의 장기 개발 모델 이념에 열정적인 일부 관료들이 그러한 통제권을 갖도록 한 것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의 해외 공금을 전면 제한했고, 국민들이 저축을 통해 (정부 캠페인에서는 저축을 장려) 정부주도 저축계획에 동참, 개발에 자금을 대도록 했다.

또한 한국으로 유입되는 자본을 정부가 통제하여 산업 및 기술의 육성, 기반 시설 개발, 교육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북한에 계획되고 있는 형태의 단기적 투기 목적에는 사용되기 어렵다.

박정희의 접근방식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북한의 발전을 위해 그러한 모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북한의 교육수준이 올라갈 것인지, 또는 어떻게 북한의 시민사회를 육성할 것인지, 녹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북한의 차세대 지식층을 키워낼 필요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식인들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니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대기업들이 북한의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이해의 상충이다. 결국 이 대기업들은 태생적으로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하고, 북한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북한의 개발에 대한 논의는 이해의 상충이 없고, 윤리적인 거버넌스에 전념할 수 있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제한하는 것이 옳다.

그럼 다시 1990년 독일의 통일로 돌아가보자. 상당히 오래 전, 상당히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서유럽의 경제체제와 산업생산은 훨씬 더 넓은 부의 분배를 지지했다. 노조와 정부의 규제로 오늘날 우리가 (국내외에서) 목격하는 노동자의 착취는 불가능했다. 공산권을 의식하여 경제체제를 견제했고, 부의 집중이 최근처럼 과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승리로 떠들썩했던 1990년 독일의 통일은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대비, 제대로 된 사회복지국가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급진적 또는 혁명적 사회주의에 전념하는 반대파의 끊임없는 압력과 비판이 없었다면, 독일에서 (또는 프랑스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그런 사회복지국가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1990년 승리한 자본주의는 수정된, 희석된 자본주의였다. 공산권의 도전이 없어진다는 것은 앞으로 30년간 세상이 파괴적인 형태로 회귀할 것임을 의미했다

소수가 자본을 독점하고 시민들에게 공허한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이 악몽 같은 세상과 급작스러운 기후변화의 등장은 무관하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은 소극적이나마 기후변화를 보도하면서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했다. 과학전문가들은 남은 시간이 없다고 외치는 와중에도 말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통일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북한이 환경문제 없이 수십년은 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고 태평스러운 가정을 하고 있다. 이 자체로도 위험한 사기행각이지만,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석탄 사용을 장려하는 것보다는 낫다.

분단의 한반도, 특히 북한이 냉전의 마지막 잔재라는 것 역시 근거 없는 믿음 중 하나다. 북한은 정말 자유로운 개방시장, 자유로운 의견 교환, 민주적인 과정을 통한 개인의 잠재력 실현 등 새로운 세계 질서 곁을 방황하는 한물간 사회주의의 잔재인가? 오늘날 파리의 길 위에서 정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는 게 확실하다.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농부들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거대 기업형 농업과 싸우는 사람들은 서구세계에서 파라다이스를 찾지 못했다. 물론 북한이 부패의 늪에 빠져 주민들을 억압하며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싱크탱크를 통해 정부에 정책을 강요하는 무자비한 다국적 은행들로부터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한반도의 비극적인 분단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상징인 비무장지대, 즉 DMZ를 생각해 보라.

나이든 세대에게 DMZ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세계, 국가의 경제 통제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 간의 가슴 아픈 분열을 뜻한다.

그들에게 DMZ는 유럽 등지에서 이미 극복한 개인의 고통과 과거의 분열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DMZ는 인터넷과 함께 국경이 사라지는 시대, 자유 무역과 자유 관광의 시대, 지난 30년간 자유 무역이 세계의 통합한 지금에도 기묘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보다 효과적으로 DMZ를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DMZ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까?

젊은 세대에게 DMZ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들은 DMZ를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 다시 말해 자본과 상품, 슈퍼 리치는 어디든 돈이 되는 곳이면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동은 제한되는 미래의 전조라 할 지 모른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둘러쌓고 있는 장벽에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가 건설 중인 거대한 장벽에서 DMZ의 후예들을 만난다. 이들 벽은 가난한 자들을 차단하고, 무력을 사용해 글로벌 투자가 야기한 경제적 갈등을 해결한다.

바로 우리 주변에도 벽이 쌓이는 중이다. 부자만의 세상을 둘러싼 벽, 안락한 삶을 즐기는 그들이 자신과 급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쌓는 벽이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곳의 급진적 분열이 편협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작은 집단들로 세분화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드러나지 않은 통일정책의 선례
통일 프로젝트를 더욱 면밀히 보기 위해서는 통일계획을 수립 중인 한국정부와 기업들의 잠재의식 속에 정확히 어떤 통일 모델이 자리잡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그들은 독일 통일을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독일의 통일 과정은 한반도의 역사나 한국인의 본능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과거에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통일을 이룬 바 있다. 한반도는 신라나 고려시대에도 통일되었지만, 시간상 너무나 먼 과거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마음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영향력은 없다 해도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것, 한국인들이 경제 발전과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 그것은 무엇인가?

비교적 최근에도 대규모 경제, 정치적 통일 프로젝트의 선례가 있었다. 1936년 일본인 조선총독에 의해 체결된 “제1차 만주-조선 협력협정 (第一次滿朝協定)” 이다. 해당 협정은 만주와 조선 모두의 빠른 산업화와 효과적인 경제문화적 통일을 위해 “만주와 조선은 하나(滿朝一如)”라는 비전에 시동을 걸었다.

1930년대 후반,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 기업들은 값싼 만주 노동력을 활용하고, 만주의 천연자원(석탄, 광물, 비옥한 토양)을 이용해 빠르게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고 보도하기 바빴다.

2014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한과의 통일은 “대박(bonanza)”이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사용한 대박이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말은 1930년대 만주가 제공한 경제적 기회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썼던 “천금을 낚아챈다”, 즉 일확천금(一攫千金)의 표현을 현대식으로 직역한 것이다.

박대통령이 1930년대 조선과 만주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과 만주가 통합된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조선의 가정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부를 얻었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무의식 속에 그런 개념이 내재되어 있었던 듯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와 경제를 배웠고, 아버지가 야심 찬 젊은이로서 경제 붐을 이용하고자 만주로 가 권력을 얻기 까지를 주목한 것이다. 19세기 수많은 미국인들이 “Go West” 라는 치명적 유혹에 홀렸던 것처럼, 1930년대의 한국인들도 1930년대 만주라는 넓은 땅으로 달려갔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북한의 개발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그리고 1930년대 만주의 개발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는지를 보면, 그 유사함이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비극적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길을 찾고, 착취나 대규모 자본투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개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통일은 반드시 시민운동이어야 한다. 자본가가 가져갈 수익을 걱정하지 않고 개인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거래여야 한다. 통일은 시민들이 비전을 나누고, 실현할 수 있도록 문화와 표현을 되살리는 문화운동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힘을 모으고, 자신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청년 운동이어야 한다.

통일은 사회 문제, 환경 문제, 그 밖에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동시에, 군국주의와 거대한 권력 경쟁에서 벗어난 평화운동이어야 한다.

금, 2019/02/0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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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후원회원들이 전국 각지 집회현장에서 보내온 뜨거운 촛불의 기록을 지도에 담았습니다.

※사진/동영상 보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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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6/11/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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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은행은 2017년 미국이 주도한 경제제제로 북한에는 -3.5%의 경제후퇴가 있었다고 발표하였고, 남한과 미국의 정책당국자들은 북한이 마치 제재에 굴복하여 미국과의 협상에 응한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아래의 칼럼은 소련체제가 무너지기 이전부터 동유럽과 사회주의국가의 사회경제 문제에 정통해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의 동아시아 학과장인 R. Frank 교수의 글로, 북한 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제재가 풀리면 높은 수준의 경제적 성취도 가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북미 간에 핵과 미사일시험, 그리고 서로 괴멸을 입에 담던 위험한 설전으로 얼룩졌던 2017년을 지나, 2018년의 한반도에는 정상회담과 비핵화와 협력선언들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에 대한 설명중 하나는,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펼쳐온 “최대압박” 캠페인이 성공을 거둬 김정은이 경제제재의 강도높은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장기전략이나 경제에 대한 평가 중 그 어느 것도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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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비상체제 아래로 들어갔다. 선군정책 이라고 불리는 이 체제는 2013년 김정은에 의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이제 핵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병진노선이 그 뒤를 이었다. 5년 뒤, 2018년 4월이 되자, 병진노선의 성공이 선포되었다. 병진노선은 5개년 계획에 따라 모든 자원을 경제개발에 투입하는 정책으로, 2016년 제7차 조선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북한이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취할법한 방법으로 동아시아 개발모델의 형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방식의 변종은 일본, 남한, 대만, 그리고 중국에서 관찰되기도 한다. 권위주의적이고 강력한 국가, 수입대체제에 대한 선호, 인건비가 낮고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과, 북한에서도 부정될 수 없는, 유교적 노동관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가 구성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동아시아 모델의 구성요소 중 현재 북한에는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수출주도적인 경제구조, 그리고 많은 양의 기술과 자본유입이 그것이다. 이 요소들 중 어느 것도 쌍방간, 다자간의 경제제재가 유지되는 한 외부에서 도입될 수 없는데, 이러한 제재들을 지속하는 결정적인 역할은 미국이 수행하고 있다.

상기적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월 평창 올림픽에서 시작된 뒤 1년간 몇 차례 이어진 남북 정상회담을 거치며 속도가 붙은 외교적 행동에는, 국제적 경제교류를 통한 북한의 장기적 경제발전에 대한 대한민국의 거부를 철회시키겠다는 전략적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전략적 관점은 관계회복에 임하는 북한측의 동기에 대한 기존의 분석과는 다르다. 기존의 관점은 경제제재로 인한 상황의 악화를 통해 평양이 무릎을 꿇게 하였으며, 대화에 임하게 하였다고 판단하여 왔다. 하지만 북한의 현 상태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에 비추어 본다면, 상기의 판단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도 모순되는 주장이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한국은행이 2018년 7월 발표한 수치를 보면 2017년 북한의 경제는 3.5퍼센트 후퇴하였으며, 이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평양이 협상테이블에 앉을수 밖에 없었다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예측은 북한의 대외무역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대외무역의 주요한 상대는(관련자료의 출처 또한) 중국이다. 중국의 무역자료가 지닌 신뢰성에 대한, 그리고 자주와 경제자립정책을 수십 년 간 펼쳐왔던(비록 주장하는 바처럼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라의 경제상태에 대외무역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국영화 비율이 높은 국가들에서는 GDP규모를 엿볼 수 있는 수단인 북한의 공식 세수자료를 보면, 2017년 세수는 4.9 퍼센트 성장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에 있었던 흔치 않은 여러 번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경제학자는 북한이 2016-17년 사이에 2.96조 달러였던 GDP를 3.07조 달러로 성장시켰다고 주장했고, 이는 3.7퍼센트의 증가율이다. 두 가지의 수치 모두 한국은행의 -3.5퍼센트 성장률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올해 북한 내부에서 들려온 일화들로 미루어 봐도, 경제위기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규모 토목사업들 또한 관찰된다. 원산 관광특구나 삼지연 지방의 초대형 사업들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중국 접경지역인 신의주에 이르는 주요도로에 들어선 주유소들까지, 모든 것들은 늘어나는 경제활동의 지표이다. 고속도로들에선 소형 승합차들이 택시영업을 하고 있고, 트럭들이 새로운 중산층들인 부유한 상인들과 탈중앙화된 국영기업체들의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평양은 반복되는 작은 규모의 교통체증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

두 번의 연례 무역박람회는 비중있는 국제회사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들과 사업체들에게 있어 바쁜 행사였다. 바쁜 소비활동들이 장마당들과 광복지구 백화점의 쇼핑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Daily NK를 비롯해 북한에 자리잡은 정보망들을 통해 보고되는 물가 수준도 비교적 안정적이며,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의 압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18년은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북한경제에는 비교적 괜찮은 한 해 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는 없었던 한 해로 보인다.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현실은 일부 경제제재에 의한 것이며, 2018년에 시작된 관계회복의 진행이 멈추지 않는다면 이러한 제재를 제거하는 것이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Rudiger Frank

University of Vienna 동아시아 학과장과 동아시아 경제사회위원회의 의장을 역임

수, 2019/01/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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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UN내 인도주의 원조조정국 북한 담당관이 3월 06일자로 북한실태의 긴박함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아래처럼 발표하였습니다. 아직도 UN이 요청한 지원할당금의 이행을 유보하고 있는.문재인 정부와 동포인 북한에 대한 일체의 인도적 지원행위를 취하지 않고 있는 대한적십자에게 일대의 각성과 결행을 요구하면서 시의적인 것을 감안하여 원문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The Humanitarian Country Team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is today releasing the 2019 Needs and Priorities Plan which calls for US$120 million to urgently provide life-saving aid to 3.8 million people in need of humanitarian assistance.

Humanitarian operations in DPRK are a critical lifeline for millions of people who are in a protracted cycle of humanitarian need. Women, children, the elderly, and people with disabilities are particularly vulnerable and are prioritized in this plan. For example, in the nutrition sector, 90 per cent of assistance goes to children under five and women. In the health sector, 92 per cent of assistance is directed to children under five and women. Their plight must not be forgotten.

An estimated 11 million people in DPRK lack sufficient nutritious food, clean drinking water or access to basic services like health and sanitation. Widespread undernutrition threatens an entire generation of children, with one in five children stunted due to chronic undernutrition. Coupled with limited healthcare and a lack of access to safe water and sanitation and hygiene services, children are also at risk of dying from curable diseases.

Most concerning is that the overall food production in 2018 was more than 9 per cent lower than 2017 and wasthe lowest production in more than a decade. This has resulted in a significant food gap. Without adequatefunding for life-saving activities as outlined in the Needs and Priorities Plan, we open the door to a potential deterioration of the humanitarian situation in DPRK and to increased malnutrition and illness. If we are to address and mitigate the impact of food insecurity on the most vulnerable in the country, including women and children, the time to act is now.

Despite these alarming facts, humanitarian activities in DPRK are critically underfunded and the needs of millions of mostly women and children have not been met. Last year’s Needs and Priorities Plan was only funded at 24 per cent, making it one of the lowest funded humanitarian plans in the world. A number of agencies have already been forced to scale back their programmes. Without adequate funding this year, the only option left for some agencies will be to close projects that serve as a life-line for millions of people.

Although Security Council sanctions clearly exempt humanitarian activities, life-saving programmes continue to face serious challenges and delays. While unintended consequences of sanctions persist, these delays have a real and tangible impact on the aid that we are able to provide to people who desperately need it. We must collectively fulfil our commitment under th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to “leave no one behind.”

Last year, we were only able reach one third of the people to whom we planned to provide humanitarian assistance. An estimated 1.4 million people didn’t get food assistance. Just under 800,000 people were not able to access essential health services. An estimated 190,000 kindergarten children and 85,000 acutely malnourished children did not get the nutrition support they needed. Beyond the numbers, the human cost of our inability to respond is unmeasurable.

In spite of these challenges, and thanks to the generosity of donors, the UN and International Non-Governmental Organisations (INGOs) were able to reach two million people with humanitarian aid. I have never failed to be impressed by the commitment and work of the humanitarian organisations in the country.

I have seen the impact of their programmes on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who they have supported by providing nutritious food, ensuring children are vaccinated, treating malnutrition and diseases, providing access to clean water, and supporting farmers to grow food despite the risk of natural disasters. I have also seen progress being made on the ground. We have made great strides in improving access and monitoring for humanitarian agencies in DPRK through continued, principled, and robust engagement with the Government. Humanitarian agencies rigorously monitor their programmes throughout the country to ensure assistance is reaching the most vulnerable. In 2018, 1,855 project site visits were conducted during 854 monitoring days by UN agencies and INGOs, covering all 11 provinces in the country.

Since 2012, there has also been an improvement in the child nutrition situation with rates of chronic undernutrition amongst children under five dropping from 28 per cent to 19 per cent. Yet my concern, and that of the entire humanitarian community, is that while the impact of stunting is irreversible, these overall improvements are not.

I appeal to all our potential donors and stakeholders to rise above political and security considerations, and to not allow them to get in the way of providing life-saving aid to the men, women, and children who need it the most. We simply cannot leave them behind.

목, 2019/03/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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