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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푸드앤 저스티스 지니스 테이블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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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푸드앤 저스티스 지니스 테이블 박진희

익명 (미확인) | 수, 2015/07/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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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던 지난 7월 7일 강의를 위해 서울에 방문하신 박진희 씨를 만났습니다. 박진희 씨는 사회적 기업인 푸드앤 저스티스 지니스 테이블을 운영 중이시며 유기 농산물 재배 농부이시기도 합니다. 박진희 씨의 먹거리 정의 이야기와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성사된 인터뷰, 소개해드릴게요.

 

환경정의(이하 환경):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박진희(이하 박): 먹거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집은 주거복지라는 개념이 있어 정책도 있지요. 옷은 몇 벌 가지고 있느냐가 생존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문화적 코드의 개념이 강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먹거리 복지라는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는 생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주택은 공유할 수 있고 옷은 재활용하거나 공유할 수 있지만 먹을 것은 그렇게 되지 않죠. 그래서 의식주가 한 데 묶이는 것은 어렵고 ‘식의주’라고 이야기되어야 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먹을거리가 기본적으로 보장된 다음에 주거의 문제를 논하고 문화적인 것(의복)을 충족하는 게 맞는다고 봐요.

어렸을 때, 길거리에 서있는 장애인 형제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그분들이 새우깡 같은 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제 눈에 보기에, 즐기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배고파서 과자를 먹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아 우리가 간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주식일 수 있구나.’라는 경험을 처음 해보았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먹거리에 대한 중요성을 어렴풋이 했던 거 같습니다.

환경: 냉장고 용량은 어떻게 되나요?

박: 양문형 하나, 김치냉장고 하나가 있고 마을용 저온저장고가 있어서 이것도 이용하고 있어요. 김치냉장고는 배추를 팔고 남은 것을 다 담아야 하고 또 어머님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여차여차 마련하게 되었어요. 냉장고는 오래전부터 썼던 냉장고가 고장 나서 냉동실이 큰 양문형을 마련했고요. 음식을 바로바로 해 먹기 때문에 봄-가을엔 냉장실이 거의 비어있습니다. 냉장실의 가치는 다진 마늘, 장류, 오이소박이 보관하는 정도에요. 냉동실에는 다져놓은 마늘과 씨앗 그리고 농번기 필수 아이템인 얼음이 있어요.

냉장고는 소비를 부추기는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걸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보관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무언의 압력이 있잖아요. 용량을 늘리는 것이 부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대형 냉장고를 가져야 하고 양문형 냉장고를 사야 하는 문화적 코드와 맞물리는 거죠. 냉장고는 산업화와 소비지향의 트렌드를 극렬하게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해요.

 

환경: 먹거리를 살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어떤 건가요?

박: 1순위 원산지, 2순위 화학첨가물입니다. 화학첨가물을 염두에 두면 살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아이들과 같이 장을 보러 가서 성분 표시표 보면서 최소한으로 들어간 것을 구매해요. 아이들이 음식을 먹더라도 무엇을 먹는지 인지하면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아이들과 먹거리 교육을 할 때 미각 수업을 진행하거든요. 그때 어떤 것을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를 봐야 해요. 먹거리의 대안으로 생협 식품을 이야기하지만 시골에서는 생협 조합원을 부모로 둔 아이들은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아이들이 현장에서 생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면 취약계층 아이들은 미각 수업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요리 수업도 사용할 수 없는 기구와 식재료 가져와서 만들면 집에 가선 요리가 안 되잖아요. 식생활 지도 나 요리수업들이 내 삶으로 연결되는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해요.

 

환경: 소비의 양극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있다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 소비 양극화는 경제적 양극화가 원인이에요. 경제 양극화는 구조적으로 부를 분배하는 시스템 문제이고요. 소비 양극화 현상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은 그 위에 문화적 코드를 입히는 것입니다. 누구는 스마트 폰을 갖고 있어, 라든가 뭘 입고 있어 라든가 문화적으로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으면 양극화가 없는 것처럼 가려지는 현상인 거죠. 이것이 소비 양극화나 빈부격차를 은폐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생각합니다. 상품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동질감은 문화적인 것이어서 가난한 학생에게 “스마트 폰 살 돈으로 밥을 사먹어.”라는 말은 할 수 없어요. 그 아이가 지금 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죠. 비슷한 예로 미국에서 푸드 스탬프 이용자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이 스타벅스 가서 커피 마시기에요. 그 자체가 문화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죠. “왜 다른 먹을 것을 사지 않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문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의 욕구는 당연하잖아요. 상업적으로 잘 포장된 상술이 문화적인 것들을 향유한다고 믿어서 소비 양극화를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먹거리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를 공유하고 확산해야만 합니다.

 

환경: 시스템을 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한국에서 소비 양극화 해결의 방향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박: 먹거리와 관련된 다양한 시민 소모임 양성이 필요합니다. 토종종자가 관심인 시민, 내 아이 먹일 간식에 관심 갖는 시민, 시민 텃밭에 관심 갖는 시민, 음식 만드는 것이 관심인 시민 등 다양한 시민들이요. 보통은 활동을 정하고 시민들을 그 활동에 맞추는데, 그 프로그램에 맞는 사람은 소수고 그 활동이 안 맞으면 오지 않게 되기 때문에 모두를 아우를 수 없는 문제가 생겨요. 시민활동으로서의 자기 활동을 정한다면 확산될 거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시민활동 플랫폼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시민 단체가 해주었으면 좋겠고 또, ‘당신의 냉장고 프로젝트’가 그런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먹거리 시민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저는 정말 풀뿌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법이 먼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필요에 의해 건의가 되는 거잖아요? 이런 풀뿌리들이 모여 활동들을 서포트 해줄 수 있는 법까지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환경: 먹거리 정의와 먹거리에 대한 철학에 대해 말해주세요.

박: 먹거리 정의는 생산, 유통, 가공, 소비되는 모든 영역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정의입니다. 그러나 저는 나아가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먹거리를 조달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해요. 즉 이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이죠. 먹거리 이야기를 하면 미식가를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먹거리 정의라 하면 공정무역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공정무역은 생산자의 문제, 윤리적 소비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먹거리 정의는 씨앗부터 밥상에 올라가는 그 전체 과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농사의 완성은 무엇이죠? 바로 섭취에요. 농업에도 이로우려면 먹는 과정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먹거리 정의는 휴머니즘이라 생각해요.

저도 이렇게 확고한 생각을 가질 줄은 몰랐어요. 유기농 농사를 하려고 귀농을 했는데 유기농은 왜 특정 계층에게만 공급되는 시스템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어요. ‘모두가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이 들었고 검색을 하다가 먹거리 정의 개념을 알게 되어 먹거리 정의 활동까지 하고 있어요. 농부가 안 됐으면 이런 일은 안 했을 거예요.

 

 

박진희 씨와의 인터뷰 재밌게 보셨나요? 이 인터뷰를 통해 먹거리 정의의 개념과 여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도 먹거리 정의와 관련된 분들의 인터뷰는 계속될 예정이니 관심가져주세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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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Books, Live Green

환경정의와 망원동 작은 책방 만일이 함께 진행하는 책 읽기 모임입니다.

환경정의가 2015년에 선정한 환경책을 읽으며 느슨하고 또 촘촘하게 환경과 나를 연결지어 보고

책에 대한 소회를 나누어 보는 자리입니다.

 

참가신청을 원하시는 분은

http://goo.gl/forms/NYP2qoHSjK에서 신청해주세요.

 

모임장소

망원동 399-46 책방 만일

모임시간

저녁 7시 30분

일정

2월 16일 (화) 저녁 7시 30분: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3월 2일 (수) 저녁 7시 30분: 탐욕의 울타리 <저자와의 만남; 박병상>
3월 16일 (수) 저녁 7시 30분: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3월 23일 (수) 저녁 7시 30분: 망원동 에코하우스 <저자와의 만남; 고금숙>

문의

[email protected]

 

모임의 후기는 환경정의 블로그 에서 확인해주세요

 

목, 2016/02/0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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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법조인으로서의 삶]

안현영(이하 ‘안’) : 모르시는 회원분이 없으시겠지만, 시작에 앞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연순(이하 ‘정’) : 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정연순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소영(이하 ‘유’) : 저희와 같은 나이에는 어떤 학생이셨고, 어떤 꿈을 꾸셨는지 궁금해요.

정: 특별히 다를 것 없는 80년대 대학생이었는데요. 고등학교까지는 모범생이었다가 대학에 들어와서야 광주 항쟁이 뭔지 알게 되었고, 박정희가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뒤의 대학생활도 그 또래의 경험과 비슷해요. 매일 최루탄 연기 맡으며 교문 들어가고, 학교를 떠올리면 최루탄 냄새와 그 교문도 같이 떠오르는.

 

유 : 사법시험은 어떻게 응시하게 되셨어요?

정 : 87년 민주화가 되고 나서 이듬해 4학년이 되니 할 일이 없었거든요, 정신적 혼란기였죠.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학점도 형편이 없어서 시험이라도 봐야 겠다, 이랬어요.

 

안 : 보통은 학점이 안 나왔다고 해서 사시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웃음)

정: 그때가 한국사회의 고도성장기라 취직이 잘되었다고 하지만, 여성에게는 꼭 그렇지는 않은, 다른 문제였어요. 막상 졸업을 앞두고 취업하려고 보니 막막했어요. 해 놓은 건 없고… 그래서 일단 시험을 보자 이랬는데, 여성합격자가 많지 않으니까 부모님이 네가 되겠느냐 걱정 많이 하셨죠. 1차라도 합격하면 다행이라고. 일단 대학원에 진학하고 그 2년 안에 합격하지 않으면 두말 않고 취직해서 돈 벌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대학원 등록금도 아르바이트로 벌구요. 다행히 학위과정 끝나기 전에 합격해서 다 마칠 수 있었죠.

 

안 : 석사과정과 시험을 같이 마치시다니, 너무 쉽게 얘기하시네요(일동 웃음)

정 : 아… 그게.. 역시 학점은 안 좋아요… 다만 뭐랄까요, 집중력이 좋다 할까요, 평소에는 느긋해 하다가 시험처럼 통과해야 하는 걸 목표로 설정하고 이걸 해 내야겠다 한번 마음먹고 나면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안 : 어떤 법조인이 되야 겠다 생각하셨나요?

정 : 처음 일했던 곳이 법무법인 덕수였는데, 그 선배님들이 너무 멋져 보여서 그분들을 닮은 변호사가 되겠다 했죠. 그러다 보니 민변 가입도 필수였고.

 

안 : 경력을 보면 미주리 주립대 유학이 있는데요, 어떻게 가시게 된 건가요?

정: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라고, 대안적 분쟁해결절차를 공부했어요. 2003년이었는데, 변호사 생활을 10년 정도 하게 되면 많이 지쳐요. 승패로만 이루어진 판결을 받는 과정에 회의가 들게 되죠. 안식년을 갖게 되었는데 그 무렵 부안 방폐장 사건 등 사회적 갈등이 계속 커지고 있었거든요.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방법이나 절차 이런 것을 공부해보고 싶었죠. 미주리 주립대에 석사과정이 있어서 지원했는데, 입학에 필요한 대학 학점과 영어 점수 미달이라.. 진짜 고생했고, 은사님인 안경환 교수님이 정말 두툼한 추천서를 쓰셔야 했어요. 이 친구가 학점이 낮은 것은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 기인했다고, 그 상황을 설명해 주시느라(일동 웃음).. 수업 중에 인성을 훈련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모두가 눈감고 명상하는데, 영어로 명상을 하니까 그냥 눈뜨고 들어도 졸린데 정말 주체 못하게 졸면서 헤드뱅잉을 했던 기억이..(웃음)..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 전공을 못살려서 좀 아쉽죠.

 

김주환(이하 ‘김’) :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본부장도 하셨어요.

정 : 80년대까지는 격동의 시대라, 사실 차별문제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어요. 90년대를 넘어서서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이슈들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05년 하반기에 차별시정본부를 설치하게 되는데요, 사실 그때까지 저도 변호사로서 주로 구금, 고문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차별시정본부가 설립되고 나서 본부장이 필요하다고 하여, 여성으로서 가졌던 소수자 의식을 가지고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지원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정말 많은 과제들이 있었더군요. 제가 재직 중에 연령차별금지법, 장애인 차별 금지법, 장애인권리협약 제정등 많은 진전이 있었죠. 비록 통과는 못 되었지만 차별금지법안도 만들어졌고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저야말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어요.

 

안 : 변호사를 하다 보면, 해도 안되는 것 같을 때가 많고 거대한 세력에 좀 무력감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정 : 어떤 사람과 같이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고영구 전임 회장님 인터뷰를 했는데, ‘민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질문 드렸어요. 그랬더니 ‘고향’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시더군요. 마음의 고향이죠. 변호사 생활을 가능하게 한 것이 민변이었기에, 민변을 생각하면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얼굴이 하나 둘 다 떠오른대요. 저도 그래요. 격려가 되고, 힘이 되는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이건 최소한의 합리적인 요구다 이렇게 생각했는데도 받아들여주지 않는 법원에 검찰에 많이 실망하지만, 우리끼리 모여서 욕도 좀 해가며 뭐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우리 다 같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그런 데서 위안을 받는 거죠.

 

[그녀, 그리고 민변]

안 : 민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으라면요?

정 : 그런 의미에서 여성위원회를 만든 일이죠. 1999년, 선후배와 함께 여성위원회를 함께 만들었는데요, 이제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일생을 살면서 가장 좋은 동료이고 위안이 되는 사람들이 된 거죠.

 

안 : 회장직에 출마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 : 제가 총장시절부터 중장기적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민변의 장래에 대한 모색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번에도 조직발전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했는데요, 회원 1,000명 시대에서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재화 변호사님도 잘 하시겠지만 제가 민변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마하게 되었어요.

 

안 : 선거운동 중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요?

정 : 음… 선거운동 기간이 너무 길었어요.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통령 선거보다 더 기니까요, 아주 힘들었다기보다는 다른 일을 거의 못하게 되는 게 문제였어요.

 

안 : 당선될 수 있었던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 : 흔히들 선거의 핵심 요소는 조직·정책·인물이라고 하는데, 조직이나 정책이나 다 비슷했기에 그 차이는 뭐였지 이러다 보니 결론이 결국 인물인가?(모두 웃음) 농담이구요. 이재화 후보님도 인품이나 능력 다 훌륭하셨지만, 아무래도 사무총장을 지낸 경험이, 민변의 역사나 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것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재(이하 ‘이’): 최초의 경선에서 당선된 회장이라는 게 상징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정: 추대방식이었다가 선거 방식 도입된 게 10여 년 전인데요, 추대 혹은 단독출마에 따른 찬반투표가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서로가 잘 알았던 작은 규모였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는 추대가 훨씬 더 민주적이었죠. 이제는 민변의 장래를 두고 각자의 포부와 각자의 전망을 가진 후보들이 복수로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규모가 커진 것이고, 이번 경선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질적인 수준에서도 민변의 활동이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시국사건 변론, 양심수 변론 등과 같은 사건에 주안점을 두고 출범했지만, 이제는 민생경제, 장애인, 성소수자, 아동, 디지털 정보 인권까지 나오니까. 다양한 활동만큼 민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우리 회원들이 과연 어디까지를 공유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수도 있었는데, 이번 경선은 그런 공유 지점들을 회원들 사이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중요한 자리였던 것 같아요.

 

이 : 공약으로 공익인권변론센터에 중점을 뒀던 것 같은데, 민변의 앞으로의 방향성과 어떻게 연관된 것인지 궁금해요.

정 : 민변은 전통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는 위원회가 중심이고, 그 활동에 상당한 자율성이 보장되는 구조에요. 지금도 그렇구요. 회비납부도 참여도 다 같이 하는 구조인데, 양적으로 성장하면서 두 가지 문제점이 나타났죠. 하나는 참여기회를 갖지 못하는 회원들, 특히 활동의 중심인 위원회 활동에서 벗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참여기회를 갖지 못하는 회원들이 생겨서 그 참여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고요, 또 하나는, 지금도 위원회가 15개이지만 그 활동으로 커버되지 않는 과제와 영역들, 이런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주고 위원회를 지원하며 기획변론을 강화하는 것, 시민들과 함께하는 변론 등을 활성화해야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이게 어느 특정 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결국 조직발전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한 결과, 연구소와 센터 두가지 설립안 중에서 일단 센터를 설치한다, 이런 결론이 나왔던 거죠. 여전히 위원회 활동이 중심이겠으나 앞으로는 센터나 사무처에서 일반 회원들을 상대로 한 구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 센터가 일을 먼저 찾아서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민변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건가요.

정 : 지금까지도 잘 해왔지만 여력이 있다면 조금 더 중장기적인 제도 개혁이나 평범한 국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겠나 생각해요. 흔히들 사회권이라고 하는 민생 경제, 복지, 장애인 인권 등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넘어서서 경제적, 문화적 권리에 대해서 더 열심히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센터가 앞서서 기획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게 시국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밀려오는 큰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니까, 회원들이 좀 벅차하는 것 같아요.

 

이 : 공약 중에 인권 탄압에 더 공고히 대항하겠다는 공약이 있는데 그 실현방안은 어떤 건지 간단히 말씀해주신다면?

정 : 기본적으로 연대를 더 강화해야겠죠. 시민단체와의 연대는 물론이지만, 시민단체가 아니어도 일반 시민들과 강력하게 연대하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고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효과적인 여러 소통수단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김 : 앞으로의 민변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정 : 회원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회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어요. 민변이 왜 좋은가 하면, 공동체적 분위기, 그것은 결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많은 회원들이 다양한 관심사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민변이 그 몫을 다할 수 있게 되니 좋기도 하지만, 회원들 사이의 거리가 옛날만큼 가깝지 않은 게 좀 걱정이 되어요. 그렇다고 모여서 노는 걸 강화할 수 있는 대중단체는 아니라서요. 다양한 배경 속에서도 하나의 기본적인 원칙에 있어서는 공감하고 그 원칙으로 묶일 수 있는 그런 조직,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던 간에 회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조직이 되었으면 해요. 제가 천명의 민변, 천개의 전선이라고 표현했는데, 로펌에서 서면을 쓰고 있는 회원이나 거리에서 경찰하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회원이나 다 같이 ‘민변’이라는 하나의 가치 아래서 공통된 자부심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조직인 거죠.

 

안 : 임기가 끝나실 때는 어떤 회장으로 기억되시길 원하시나요?

정 :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푸근한 회장, 어려운 때 편하게 전화하고 해도 좋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느껴지는, 존경 이런 게 아니라 회원들이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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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피할 수 없는 가족 이야기]

유 : 부군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고, 무엇에 반하셨나요?

정 : 제가 처음 들어간 사무실의 선배이자 동료였어요. 서로의 가치관이 비슷한 것이 좋았죠. 저희가 민변의 1호 커플이에요. 민변에는 부부회원이 상당히 많아요. 아마도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더욱 끌리는 요인이 되지 않나 싶어요. 열 쌍을 훌쩍 넘긴 걸로 알고 있어요. 올 봄에도 한 커플이 있었고.

 

안 : 부군도 민변 회장이셨는데 어떤 팁 같은 걸 알려주신 건 없나요?

정 : 뭐 특별한 게 있다기보다는.. 저는 국가인권위원회 공무원생활을 2년 반 정도 했어요. 그 기간은 특별회원이었는데도 민변에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왜냐면 남편이 그때 회장이었거든요. 부부간 대화가 주로 저녁마다 민변 이야기를..(웃음) 남편이 창립멤버이다 보니 민변의 역사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들어서 아무래도 더 잘 알게 되는 게 도움이 되었죠.

 

유 : 아직도 누군가의 배우자나 연인으로 호명되는 경향이 한국사회에서는 많아요. 예전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셨던 것 같은데, 전 민변 회장의 배우자나 첫 여성 회장 같은 수식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 : 내가 나 자신으로 알려지지 않고 누구의 부인이라고 호명되는 게 너무 싫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세월이 흘러흘러 이분이 정변호사 남편이십니다, 이렇게도 호명되어요.(웃음) 첫 여성 회장에 대해서는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내가 잘났다는 것을 드디어 인정받았구나 이런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는 이것은 안 될 수도 있어, 못 할 수도 있어 라고 저 깊은 마음속에서 일정하게 그어 놓는 선이 있거든요. 그걸 넘어섰다는 것, 말로는 여성도 회장할 수 있지 이래 왔지만 제가 그 실제의 예가 되었다는 게 굉장히 기뻐요. 여성 후배들에게 선배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생각에서요. 민변이 진보적 법률가 단체라고들 하잖아요, 그 단체에서 30년 되지 않은 역사에 여성 회장이 나왔다는 것이 매우 보수적인 한국 법조계에서, 역시 민변답다, 이런 느낌을 주는 것도 좋구요.

 

유 : 일이나 생활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며 살아야 하는데, 여성이라면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역할들이 있잖아요, 그 균형을 맞추는 게 안 힘드셨나요.

정 : 당연히 힘들었죠. 사실 30대 초반, 중반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일과 가정을 양립한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 30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로요. 두 가지 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때론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어야 했나 하는 후회와 짜증이 없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과연 둘다 잘 하고 있나, 그런 심리적 스트레스를 벗어나기 어려웠어요.

 

유 : 예전 인터뷰에, 가정에 남편이 둘 있었다고 표현을 하셨네요.

정 : 나도 나만 도와주는 마누라를 갖고 싶다, 뭐 그런 거죠(일동 웃음) 사실 저는 시부모님과 10년을 같이 살았거든요. 그러기에 가사노동을 심하게 한 것도 아니고 육아나 가사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것보다는 어머니로서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과, 본인이 그렇게 교육받은 것에 있는 거예요. 일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이라는 것을 떨쳐 버리기가 어려운 거죠. 조금 크니까 큰 상관없는 일이었어요. 엄마 없으면 더 잘 지내더라구요(웃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무조건 좋은 엄마는 아닌 거예요. 근데 이건 사실 말로 되는 게 아니라, 겪어봐야 아는 거죠. 페미니즘이니 뭐니 이성으로는 알고 있어도 내 스스로가 사회화된 게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심리적 부담을 떨쳐 버리기가 어려웠어요.

 

안 : 정말, 밥도 왜 엄마만 해줘야 되는 것인가요. 아빠도 있는데.

정 : 요즘에는 남성 후배들 보니까 ‘선배님 저 애기 보러 가야 해요, 마누라가 오늘 외출하기 때문에 제가 당번입니다’ 그러더라구요. ‘야, 회의해야 하는데!’(웃음) 그걸 보고 여성인 제가 절대로 뭐라 할 수는 없고 꾹 참고, ‘당연히 들어가야지!’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더라고요. 지금의 후배들은 육아 분담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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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인간 정연순]

안 : 사실 저희는 인간 정연순이 많이 궁금해요 여가 시간에는 주로 뭘 하시나요

정: 시간이 나면 여행가거나 책 읽는 것, 둘 중 하나를 해요. 남은 인생의 버킷 리스트의 대부분도 여행이에요. 두 번째로는, 독서인데, 눈이 닿는 곳에는 책을 두고 있죠. 틈나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보는 거에요. 책을 읽을 수만 있다면, 늘 행복할 것 같아요.

 

안: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면요

정; 1998년에 민변 선배이신 차병직변호사님, 조광희변호사, 저와 남편이 노래방에서 놀다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게 되었어요. 우리가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거기에 표범이 있는지 어떻게 아냐, 이렇게 되어 넷이서 돈을 모아, 킬리만자로로 떠났어요. 지금은 직항도 있지만 그때는 암스테르담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다시 탄자니아로 들어가는, 이틀을 비행기를 타야 하는 여행이었구요. 하루 입산객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 같은 등산객들은 가방만 가볍게 메고 요리사, 가이드, 짐꾼 다 같이 함께 줄줄이 올라가는 흔하지 않는 경험이었죠. 3,000미터가 넘어서 본 산장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은하수가 대륙의 하늘에 걸쳐 있더군요. 그런데 4천미터를 넘어서 고산증에 시달려서 다 토하고 정신을 못 차리고, 결국 차병직 변호사님 혼자서 정상에 올라가고 저를 돌보느라 나머지 사람들은 못 올라갔죠. 제 인생에서 가장 멋있고 좋았던 여행이에요. 여러분들도 꼭 킬리만자로를 가보세요.

 

안 : 여행 얘기를 했으니, 책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인가요. 20대 중반,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세요.

정 : 글쎄요. 책 추천만큼 어려운 게 없는 것 같은데…

 

김 : 책을 고르는 기준이나 읽게 되는 기준이 뭔지요?

정 : 1년에 한번이나 두 번, 한꺼번에 책을 사요. 100여 권 정도를. 신간 소개를 유심히 봐서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다가 한꺼번에 구입하죠. 그런데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어떤 책을 좋다 해야 할 지 참 어려워요. 10대 20대에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좋을 것 같고요. 그때의 소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접하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요. 동시에 20대들은, 조금 무거운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기본적으로는 역사와 철학일텐데, 제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역시 ‘자본론’을 공부했던 거에요. 법학도에게는 그걸 배울 기회가 별로 없는데, 80년대의 분위기 속에서 선배들에게 야단맞아 가며 공부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이 정도의 교양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철학도 계보가 길어서 다 공부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역시 자본론을 읽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원전은 너무 어렵거든요. 대신 그걸 소개하는 책들을 읽으면 되죠. 너무 무겁나?(웃음)

 

안 : 교수님으로부터 숙제를 받은 기분이에요.(웃음)

정 : 또 하나 요즘 중요한 게 있다면, 과학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현재와 미래에 걸쳐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 한편으로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인간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철학을 정립하는 게 중요한 문제거든요. 요즘은 좋은 책들이 빨리빨리 번역되어 나와서 읽기 좋아요.

 

안 : 가장 인상깊게 보셨던 영화가 있다면요?

정 : <정복자 펠레>라는 영화가 있어요. 스웨덴이던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른 나라의 농장 노동자로 이주하는 이주민의 이야기에요. 어린 소년이 목격하게 되는 삶의 군상이 쭉 펼쳐져요. 그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는 조금씩 커서 결국 아버지를 두고 하얗게 눈이 내리는 농장의 길을 걸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에요.

 

안 : 변호사가 아닌 사람 정연순으로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정 : 멋있는 할머니가 되겠다.(일동 감탄) 변호사로서 위대하거나 대법관이 된다든지 국회의원이 된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멋진 할머니 멘토가 좀 있어야겠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사실 우리 어머니 세대들은 너무 힘들게도 사셨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이후 세대와 공유하는 게 적기도 하거든요. ‘헌신성’ 이거 하나 외에는 요.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해주고 소통할 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남성 멘토들만 많구요. 저는 20대나 10대들이 아, 이해받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무조건 니들이 꿈을 가져라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지, 잘 늙어야지 이게 소원이에요.

 

안 : 정변호사님이 생각하는 민주사회란 무엇인가요?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란 어떤 것일까요?

정 : 글쎄요, 완벽한 이상적인 사회라는 게, 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도 논리적으로 완전한 평등, 완전한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걸 그려 보면 오히려 그게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 나온, 깨어 보니 모두가 통 속에 들어가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죠. 그런 이상사회는 도래하지 않을 것 같고 도래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더 소중한 것은, 저기 멀리 어디에 있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 그러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신념과 행동이 소중한 것임을 아는 사회,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차이와 차별은 끝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문제를 현명하게 조율해가면서 조정해 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현실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것, 미약하나마 조금씩 이루어내는 것에 대해 우리가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만족할 수 있으면 아, 잘 살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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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월, 2016/06/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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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7.25)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김포 거물대리, 초원지리 환경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정미국회의원과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토론회는 이미 2015년 역학조사 결과로 밝혀진 지역의 환경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과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김포 토론회 12

좌장에 조명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발제에는 임종한 인하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김포 거물대리·초원지리 일원의 역학조사 결과와 피해 실태’를 이영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이 ‘계획관리지역 주거-공장 난개발 실태 및 환경관리 방안’으로 역할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7월 15일 김포시는 환경피해 지역에 대한 후속대책을 발표하였으나, 이미 피해가 확인된 주민과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과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토양오염에 대한 대책이나 공장이전, 주거지와 공장의 분리 등 주민의 요구도 검토되지 않아 김포 거물대리·초원지리 환경피해 대책으로 보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에 대한 김포시의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발언 중인 김충섭 김포시 환경관리소 팀장

김포시에서는 7월 12일 단기, 중장기 후속대책 수립하였으며 피해지역 교육과 상주인원을 비치해 오염발생시 즉각 출동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계획관리지역내 주거와 사업이 혼재되지 않도록 개정을 요청하였으며 환경피해구제법상 피해주민을 위한 특별한 기준마련을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분리식 하수관거 설치, 민관 대책위원회 구성, 해당지역 산업단지 택지조성 가능여부 확인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오른 쪽부터 이근상(김포 초원지리 이장), 김상조(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연구위원), 김충섭(김포시 환경관리소 팀장)

 

오른 쪽부터 박연재(환경부 국토환경정책과 과장), 임상혁(노동환경연구소 소장), 김대훈(김포환경문제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이에 대하여 김포 주민들은 장기적 계획보다도 시급하게 환경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단기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김포시의 대책마련과 더불어 환경부와 국토부 등의 관련 기관에서의 적절한 조력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모아졌습니다. 특히 김포시는 주민과 환경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하여 ‘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아가 주민의 알권리를 포함한 주민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조례재정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김포 토론회 3

앞으로도 김포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토론회와 간담회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오래되고도 시급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화, 2016/07/2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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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황수영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인터뷰 및 정리 이경민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작년 7월, 경북 성주 주민들에게 예고 없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한미 정부가 성주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나라 돌아가는 일은 나라님에게 맡겨두고 평생 농사지으며 풍년에 웃고 흉년에 울던 마을 주민들. ‘국가 안보’란 4글자 때문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주민들의 삶을 절망으로 만들었다. 한 발 양보해 대한민국 다수를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고 해도 삶의 모든 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져있는 곳에 미군기지가 들어선다는데 주민들에게 충분한 설명과 진정성 있는 설득, 진심어린 위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했어야 할 일을 못한 국가를 대신한 활동가, 황수영. 사드 배치 예정지 성주 소성리 주민들에게 황수영 활동가는 사드 반대 상황실 아가씨(?)로 불리우고 있다. 성주·김천 주민들, 그리고 성지를 지키기 위해 나선 원불교 교도들과 함께 “평화를 지키는 무기는 없다, 한국 어디에도 사드 배치는 안 된다”고 외치고, 그들의 목소리가 더 많은 시민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확성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소소한 일부터 어려운 일까지 함께하며 대소사를 대변하는 그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운동이라고 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황수영이라고 한다. 현재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주로 국방, 외교 분야 감시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드 배치나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해외파병, 국방예산, 무기도입 사업 감시, 군사비 축소 요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예산 관련해서는 군사비를 축소해서 복지비용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시민운동 경험은 참여연대가 처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2008년에 티베트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 티베트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뉴스에서 보았다. 티베트 여행 카페에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며 ‘여행자의 윤리’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베이징올림픽 즈음해 티베트와 연대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반대 활동 등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평화문제 전반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참여연대 입사 전에는 ‘경계를 넘어’라는 작은 평화단체에 있었다. 주로 파병 반대,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 국제분쟁을 알리는 활동을 했었다. 


최근 성주에 사드배치가 이슈가 되고 있다. 사드배치 대응 활동을 하고 있는데, 사드가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해 달라. 
사드는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에 속하는 무기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미사일로 맞춰 방어한다는 개념이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사드는 그 일부다. MD는 고도별로 여러 무기체계로 구성되는데 사드는 그중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40~150km)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라고 한다. 탐지하는 X-밴드 레이더와 요격하는 미사일이 사드의 핵심 장비다.  


분단이라는 현실에서, 사드가 우리의 안보를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우선, 방어체계라고 하니 사드가 방어용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사일 방어라는 개념 자체가 ‘절대 방패’를 만들겠다는 미국의 욕망에서 탄생한 것으로, 단순히 ‘방어용’ 체계가 아니다. 군사적으로 완벽한 방어는 완벽한 공격과 동의어로 매우 위협적인 개념이다. 미국은 MD 구축으로 상대방의 미사일 공격은 완벽하게 방어하면서, 미국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려고 한다. 미국은 핵무기 선제사용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핵미사일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는 MD는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릴 수 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다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 구축하는 MD에 한국이 하위 파트너로 편입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한국 배치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한미일이 MD를 강화할수록 중국이나 러시아도 그것을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구축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사드의 본질적인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질적으로 다른 군비경쟁이 유발한다.
두 번째로, 박근혜 정부는 마치 사드가 있으면 북한의 핵미사일을 다 막을 것처럼 이야기해왔지만 사실 한반도에 별로 효용성이 없다. 남한과 북한은 가깝기 때문에 미사일이 저고도로 날아오고, 북한의 공격이 발생한다면 단거리 미사일이나 장사정포, 방사포를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최소 요격고도가 40km인 사드는 쓸모가 없다. 사드가 한반도에 군사적 효용성이 낮다는 것은 그동안 한국 국방부, 미국 국방부의 자료와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로 검증이 되어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실전 배치된 적도 없고 기술적으로 검증도 되지 않은 무기다. 
세 번째로는,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 무기를 도입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커져온 시간은 사실 대화나 협상이 단절됐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은 이미 실패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결국 대화와 협상이다. 사드 배치 등 군사동맹 강화, 군사력 확장은 답이 아니다.

 

ⓒ 참여연대

 

사드 배치가 비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 한미간 합의 내용이나 부지를 성주로 결정한 근거 등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해놓고 3일 뒤에 배치 결정을 발표했다. 사드 배치는 기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뛰어넘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사실상 새로운 조약을 맺는 행위에 해당하고, 헌법상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주민의 동의는커녕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롯데에게 부지를 취득하는 과정, 주한미군에 부지를 공여하는 과정 등 절차 전반에 불법과 탈법이 판을 치고 있다. 주민들에게 호언장담했던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적 합의나 주민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가 안보, 국가 안보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한 국가 안보이고 누구를 지키기 위한 국가 안보인지 모르겠다. 주민들이 반대하고, 사드가 우리 안전과 평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안보를 위한 것이라며 묻지도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는데, 비교하면 어떠한가? 
X-밴드 레이더가 배치된 일본 교가미사키 기지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절망스럽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레이더 배치 전 주민 설명회를 약 16차례 열었다. 지자체와 중앙 정부 간의 면담 자료, 공사 일정, 공사 계획, 각종 질의에 대한 답변, 각종 환경 조사 측정값 등을 교탄고시, 교토현 웹사이트에 상세히 공개했다. 예를 들어 레이더 설치를 하면 비행제한구역을 정하게 되는데, 응급상황 시 헬기를 띄워야 할 때 어떻게 레이더를 멈출 수 있는지 등과 같은 주민들의 궁금증을 듣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현재 사드가 배치되는 성주 주민들은 사드가 성주에 배치된다는 걸 TV를 보고 알았다. 그리고 이런 불투명함에 대해 황교안은 국가안보를 위해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성주 현장 상황을 공유해 달라. 
작년 7월에 소식을 접한 후 성주 주민들은 현재까지 투쟁을 하고 있다. 처음 군은 성주읍 성산포대를 부지로 정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성주 주민들은 인구밀집지역에 사드를 배치한 선례도 없을뿐더러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다. 나아가 성주뿐 아니라 한국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 평화를 지키는 무기는 없다고 외쳤다. 
이후 군이 제3부지를 검토하겠다는 자세로 돌아섰고 그곳이 초전면 소성리다. 소성리는 160명 정도,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소성리가 김천 혁신도시 바로 옆이다 보니 김천 주민들과 함께 반대 운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곳에 원불교 성지가 있다. 원불교 교도들이 평화의 구도길 순례를 하는 곳이다. 원불교는 평화의 종교이며 성지에 전쟁 무기는 안 된다고 하며 결국 현재 성주 주민, 김천 주민, 원불교가 적극 대응하게 되었다. 성주 대책위 상황실장님은 사드 배치에 맞서 성주가 싸워 온 과정을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참 열심히도 해주었고, 30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각자의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성주는 이미 그 자체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묘사한다. 

 

ⓒ 참여연대


대부분의 주민들이 생업을 거의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망치다 보니 작년에 대부분은 생업을 못 챙기셨다. 사실상 생업을 포기한 채 성주 소성리 상황실에 상주하시는 김천 주민 한분은 일요일에 밭에 갔다가 양파한테 정말 미안해서 울었다고 하시더라. 작년에는 참외밭을 갈아엎은 주민들도 많았다. 경찰과 대치하면서도 추운 날씨에 두고 나온 딸기들이 걱정인 분들이다.


최근에는 사드 유지비를 한국에게 부담하라고 하지 않았나?
트럼프가 사드배치에 대한 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요구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1조 원 이상이다. 원래는 우리가 부지와 전기 등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나머지 운영비용, 전개비용은 미군이 부담한다는 것이 한국 국방부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비용 부담에 대한 한미간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그래서 비용 관련해서 합의내용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현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새 정부에서의 사드배치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차기 정부에서 재검토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보낸 질의서에서도 집권하면 최우선적으로 사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사드 배치는 주민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변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새 정부가 약속을 지켰으면 좋겠다.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였으면 좋겠다. 평화를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근본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성주에서 사드 반대 상황실 아가씨(?)로 불리울 정도로 열심히 대응하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소성리에 몇 주간 내려가 있었다. 그 와중에 4월 26일 새벽 사드 장비가 반입되었다. 할머니들이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의견 물은 적 있느냐”며 절규하는 가운데 경찰에게 다 뜯겨나와 고착당한 채로 레이더, 발사대 등이 들어갔다. 그 후 연휴 기간에 소성리와 함께 하고 사드 장비 추가 반입 등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시민들이 달려와 주셨고 후원 물품이 쏟아졌다. 만감이 교차하던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또 서울에서 대응할 것들이 많아서 올라와 있다. 이 사안은 박근혜 정부의 적폐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적폐 청산을 요구할 것이다. 오늘부터 김천 주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님, 성주‧김천 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매일 1인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6월 중 한미정상회담이 있을 예정인데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미국 측에도 우리의 요구를 전달할 예정이다. 쉽지 않겠지만 성주, 김천 주민들은 사드배치가 철회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운동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알리고, 사드가 아니라 평화를 선택하자는 우리의 메시지에 동의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또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당분간 평화운동을 계속할 예정인데, 거창한 계획은 없다. 우선은 내가 지금 있는 이곳에 있을 생각이다.

 

목, 2017/06/0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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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바이러스 대습격_인간이 초래한 새로운 대유행병의 시대

앤드르 니키포룩 지음|이희수 옮김|알마|2015 올해의 환경책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그것이 우리를 위협할만한 존재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게다가 그것이 한 두가지도 아니고 연례행사처럼 매년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는 이미 그 두려움의 일부를 경험했다. 바이러스다. 2015년 한국사회를 강타한 메르스는 바이러스의 파괴력과 통제 불가능한 전염성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정부가 종식 선언을 했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메르스만이 아니었다. 작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두려움에 떨었고, 조류독감이나 사스, 구제역 등 우리가 알만한 바이러스만도 한 손에 꼽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바이러스에 비해 우리의 대응은 지나치게 늦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함정이 여기에 있다. ‘바이러스 대습격’은 바이러스로 인한 유행병이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는 원인이 공장식 축산, 이윤창출을 위한 단종재배, 대규모 교역, 환경파괴 등 우리의 경제활동이라고 갈차한다. 현대 경제는 생물학적 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경제활동을 멈춘다면 우리는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경제활동을 멈출 수도, 바이러스를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미래는 암울하다. 저자인 앤드루 니키포룩 역시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진 못한다. 하지만, 한꺼번에 바꾸진 못해도 서서히 다른 세상을 향해 우직하게 다가간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바이러스 대습격’은 그러한 변화를 이끄는 이정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_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학교-생명을-노래하다

학교, 생명을 노래하다

학교환경교육사업단 지음|소복이 그림|우리교육|2015 올해의 청소년 환경책

지난 2011년 학교환경교육지원사업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새로운 학교 환경 교육 모델이라는 첫 나무를 심었다. 2014년까지 총 19개 학교가 환경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 중 2014년 2월로 첫 번째 프로그램을 마무리 했다. 한 학교당 3년에 걸쳐 진행된 지원 사업은 모두 끝이 났지만 상주 백원초등학교, 울산 청솔초등학교, 서울 삼정 중학교와 화원중학교 그리고 성남 숭신여고 등 다섯 곳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아직 남아있다. 그 나무는 잘 자라고 있을까. 이 책은 그 첫 나무와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논농사부터 배 농사와 목공 교실까지 폐교 위기의 학교를 되살린 교사,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 프로그램이 된 ESD 창의인성교실을 개발한 교사, 학교 급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친환경 먹을거리 교육을 동료 교사 연구회로 확산시킨 교사, 통합교과서 교육의 힘으로 학생 자치를 꽃 피운 교사, 그리고 환경 프로젝트 수업 결과물로 대학 입시와 진로지도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교사, 이 책에서 만난 교사들은 자기들은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동료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함께했고 또 이들을 지원하는 든든한 멘토들이 있었다고 한다.

희망이 안 보인다고 말하는 시대에 희망을 찾고 싶은 이들과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_김천영|남한강생태학교·천남초등학교 교사(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바다가 아파요

바다가 아파요_우리가 모르는 31가지 신음하는 바다 이야기

얀 리고 그림|이충호 옮김|비오스포토 사진|두레아이들|2015 어린이 환경책

바다가 우리 지구 지표면의 약 70%를 덮고 있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바다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품고 있는지, 기후와 지구의 건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지적들을 마주하게 되면 누구나 많이 부끄러워질 것이다. 바다의 아름다움과 다양성, 취약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다. 배를 뒤집은 채 잠수부와 함께 헤엄치는 혹등고래나 청소물고기들이 바다거북의 몸을 청소해 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 뿐 아니라 기름을 뒤집어 쓴 바다새, 투명한 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다가가고 있는 바다거북, 수프를 만들기 위해 잘라놓은 상어 지느러미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중에 바다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어하고 있는지,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이 바다와 바다의 생물들을 어떻게 괴롭히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와 닿는다. 저자의 말처럼 이제는 우리가 ‘바다를 망치는 일을 멈추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바다를 돌봐야 할 때다. 두레아이들 교양서 시리즈 제 8권

_정경미|글마루작은도서관 관장

※이달의 환경책 : 환경책큰잔치 환경책선정위원회가 선정한 ‘2015올해의 환경책’ 을 매달 한 권씩 추천해드립니다

월, 2016/02/2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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